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술은 특별합니다-140화 (140/175)

< 140잔. 셰프와 바텐더. >

1.

“가자.”

- 짝짝짝!

가볍게 뺨을 서너 대 때린 정환이 얼굴에 물을 묻히며 거울을 바라본다.

거울에는 정갈한 정장 차림을 갖춘 자신의 모습이 멋들어지게 걸려있다.

월드 클래스 코리아 파이널 1차 챌린지의 첫째 날이 끝나고 3일의 시간이 더 흐른 지금.

오늘은, 정환의 시간이다.

3일 전 칵테일 파티 챌린지가 있었던 행사장은 어느새 그 모습을 바꾸고는 다른 챌린지가 열릴 준비를 끝냈다.

오늘 정환이 참여하게 될 챌린지는 마리아주.

정해진 음식에 맞춰 함께 페어링할 칵테일을 만들어 내야 하는 게 정환의 임무였다.

큰 틀 외에는 자세한 내용이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이제 저 행사장 안으로 들어선다면 곧 들려올 터.

어떤 과제라도. 결국에는 바텐더의 손끝에서 해결될 과제임은 분명할 것이다.

행사장으로 들어서니 첫날과는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마치 공연장의 모습처럼 높은 무대가 있고 아래로는 관객석이 자리한 행사장의 내부.

손님을 초청해 여러 사람에게 잔을 선보이는 자리가 아닌 만큼 행사장의 구성 역시 달라진 모습이다.

“참가자분들 스탠바이 해주세요! 무대 뒤로 모시겠습니다!”

전날이 실전의 형식을 갖춘 챌린지였다면 오늘은 예능이나 티비쇼와 같은 형식을 갖춘 챌린지처럼 보인다.

유명하다는 전문 진행자도 한쪽에 자리를 구성하고 있고 카메라도 여러 대 준비되어 각 부스를 비추고 있다.

정환은 자신에게 배정된 4번이라는 번호를 바라보며 무대 뒤로 향했다.

“정환 씨.”

긴장한 모습이 역력한 또 다른 바텐더가 정환을 맞이한다. 같은 조에서 유일하게 말을 튼 이는 광주 출신 이창혁 바텐더뿐이다.

“창혁 씨. 드디어 오늘이네요. 준비, 많이 하셨어요?”

“분명히 했던 것 같긴 한데···. 긴장 때문인지 뭘 준비했는지도 잊었네요. 안 떨려요? 청심환, 하나 드릴까요?”

“아뇨.”

“어휴. 대담하시네.”

“먹고 와서···.”

“아.”

“두 알.”

“아.”

바텐더로서 12년의 경험이 있고 산전수전을 다 겪었다는 건 전혀 중요하지 않다.

누구라도 이런 무대에 선다면 곧 긴장이 몰려올 터.

손님의 시선을 받는 것이 어색하지 않은 직업이 바텐더라지만. 이건 과해도 너무 과한 시선들이다.

“어쨌든, 올라가면 정환 씨랑도 이제 적이네요?”

“그렇겠죠? 그래도 적보다는 선의의 경쟁자. 그 정도로 하시죠.”

“흠. 그게 어감이 더 좋아 보이네요. 그럽시다. 그럼. 후회 없이 놀다 오자구요.”

“좋네요. 논다는 말이. 최선을 다해야죠. 후회 없게.”

“힘내요. 저보다는 조금만.”

“창혁 씨도요. 저보다는 조금만.”

둘은 긴장을 떠나보내려는 듯 어색한 농담과 함께 손을 한번 마주 잡았다.

마주치는 눈빛에는 긴장감과 떨림, 그리고 새로운 무대에 대한 설렘이 함께 담겨 있다.

- 참가자 입장 시작합니다. 1번 참가자부터 입장해주세요.

“가야겠네요. 전 2번이라.”

창혁은 들려오는 안내를 듣고는 정환과 인사하고 먼저 무대로 향했다.

무대 앞에서는 저마다 등장하는 바텐더를 반기는 박수 소리가 열렬하게 들려왔다.

- 소개합니다. 월드 클래스 코리아 파이널 1차 챌린지, 오늘의 마지막 참가자! 아. 유명한 곳이죠. 종로의 아실에서 온 차! 정! 환!

- 짝짝짝짝짝!

정환은 숨을 곱게 고르고는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맞춰 무대로 뛰어올랐다.

쏟아지는 박수와 밝은 조명이 어색한 모습이다.

“하. 하하. 하.”

어색하게 손을 흔들며 자리를 찾지 못하는 정환의 모습이 조금은 우스꽝스러웠다.

“안쪽이요. 안쪽. 4번 부스.”

“아. 네, 넵!”

진행요원의 안내를 받고야 겨우 자리를 찾아가는 정환이다.

“지금부터 월드 클래스 코리아 파이널 1차의 두 번째 챌린지를 시작하겠습니다! 오늘 여기 네 분의 바텐더가 진행할 챌린지는 마리아주입니다!”

바텐더가 저마다의 부스를 찾아 자리를 잡자, 진행자는 진행될 챌린지에 대해 설명을 이어갔다.

마리아주! 라는 외침이 울릴 때 스크린에는 Mariage는 글이 필기체로 멋들어지게 휘갈겨졌다.

“참가자들은 이번 챌린지에서 총 5잔의 칵테일을 선보이게 됩니다! 코스 요리에 맞춰 요리와 함께 즐길 5잔의 칵테일! 아! 우리 관객 여러분은 더 많은 칵테일을 즐길 수 있죠! 참가자가 4명이니 총 20잔의 다채로운 칵테일! 모두 즐길 준비 되셨나요?”

- 와아아아아아!

월드 클래스는 확실히 엄숙한 다른 콘테스트와는 다른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다.

일반 관객은 적어도 업계 관계자에게는 최고의 축제와 같은 게 월드 클래스 대회.

대회는 마치 축제처럼 밝은 분위기를 이어갔다.

“자, 여러분. 그럼 오늘 참가자들이 마리아주를 선보일 코스 요리가 궁금하시겠죠? 그 코스 요리를 제공한 셰프이자, 이번 챌린지의 심사 위원이기도 한 한 분을 모셔보겠습니다! 프랑스 파리의 미슐랭 2스타 레스토랑에서 메인 셰프로 활약한, 현 그란츠 호텔 주방의 수장! 연상규 셰프입니다!”

- 짝짝짝짝!

간단한 챌린지 소개 후에 이어지는 건 마리아주에서 빠질 수 없는 요리의 주인공.

프랑스 요리를 전공한 그의 등장으로 보아, 챌린지에서 페어링할 요리 역시 프랑스식으로 보였다.

“셰프님, 오늘 심사와 챌린지 시작을 앞두고 한 말씀 해주시죠?”

“그럴까요? 우선, 초청해주신 월드 클래스 코리아 관계자분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요리사로서 이렇게 우수한 바텐더분들과 합을 맞춰 볼 수 있는 건 큰 영광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코스 요리를 제공하는 것 외에도 심사도 담당하시는 거로 알고 있는데요. 중점으로 평가할 요소가 따로 있을까요?”

“물론입니다. 요리와 조화를 이루는 잔. 그래서 요리도 잔도 더 풍부해지는 잔. 전체적으로 마리아주란 말에 걸맞은 그런 칵테일에 더 높은 점수를 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저 말고도 다른 심사 위원들도 계시지만, 전 그렇게 중점을 둘 생각입니다.”

페어링이란 말은 요리와 음료 사이에 빈번하게 쓰이는 말이다. 허나, 서양에서는 이런 페어링을 때로는 다른 곳에 쓰기도 한다.

마리아주와 함께 쓰이는 이 페어링이란 단어가 쓰이는 곳은 다름 아닌 셰프와 바텐더, 또 소믈리에의 사이.

유명 레스토랑이나 호텔의 경우는 바텐더와 셰프의 궁합이 맞지 않을 때, 둘 중 한 사람이 자리를 비워야 하는 경우도 빈번했다.

뭇 사람들은 바텐더보다는 셰프에게 더 중점이 가 있을 거라 예상할지도 모른다.

이건 크나큰 착각.

셰프의 요리와 바텐더의 칵테일이 조화를 내지 못할 때는 냉정한 평가를 내린 후 때때로 셰프를 쫓아내는 경우도 빈번했다.

연상규 셰프는 이러한 바텐더와 셰프의 생리를 잘 아는 듯 존중을 가득 담아 자신의 소감을 전했다.

바텐더로서 평하자면, 정환은 전혀 기분 나쁘지 않은 그의 말이었다.

“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이어서 다른 심사 위원을 소개하겠습니다! 월드 클래스 코리아 2011년 우승자 백성민 바텐더! 그리고 음식 평론가 이재환 교수님입니다!”

연달아 두 명의 심사 위원이 더 무대에 오르고 나서야 소개가 막을 내린다.

교양 프로에 자주 얼굴을 비추던 한 나이 지긋한 교수와 익숙한 얼굴의 백성민 바텐더가 심사 위원석을 빛냈다.

심사 위원이 모두 자리를 채우고는 간단한 개회사가 뒤를 잇는다.

주최사의 임원으로 보이는 이가 나와서 일장 연설을 늘어놓은 후에야 챌린지는 진행될 수 있었다.

“지금부터, 참가자에게는 5분의 시간이 주어집니다! 부스를 돌아보며 바툴과 술을 확인하시고 필요한 게 있으시다면 진행 요원에게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시작되는 본격적인 챌린지의 속행.

정환은 주어진 시간을 얼음과 과일, 바툴과 칼, 그리고 술병의 위치를 확인하는 곳에 썼다.

개별적인 바툴을 쓰는 것도 허락이 되는 현장이지만, 정환은 원래 아실에서도 평범한 툴을 쓰기에 딱히 가릴 것은 없었다.

‘흠. 술병은 역시나···’

주최사에서 수입하고 발매하는 술들이 대부분의 라인업을 채우고 있다.

아직 영역을 확장하지 않은 주류는 유명한 다른 브랜드를 가져왔지만, 대부분의 기주는 갖추고 있는 주최사였다.

남들보다 조금 빨리 부스를 돌아본 정환은 주변을 크게 훑어본다.

눈에 들어오는 건 연상규 셰프의 모습.

꿋꿋해 보이면서도 말속에는 존중이 들어있던 그를 보며 정환은 나올 코스를 차분히 예상해 본다.

‘프랑스식 정찬이겠지. 시작은 식전 빵이나 아뮤즈 부쉬(amuse-bouche) 정도.’

다섯 코스라면 아뮤즈 부쉬라 불리는 셰프의 한입 요리로 시작할 가능성이 크다.

이후는 에피타이저, 즉. 전채 요리. 그리고 생선과 메인에 이어 디저트로 끝난다면, 딱 다섯 개의 코스가 채워지는 구성이다.

정환은 속으로 준비한 칵테일을 떠올리며 하나의 개념을 상기한다.

코스 요리에 맞춰서 내는 음료라면 응당 칵테일 역시 하나의 코스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는 것.

이건, 호텔에서도 일한 적이 있는 그였기에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는 개념이었다.

누구는 그저 음식에 맞춰 하나하나 잔을 제공하려 할 수도 있다. 허나, 이건 나쁘지 않은 선택은 될 수 있어도 좋지는 못한 선택일 터.

코스에 제공되는 칵테일이라면, 코스라는 이름에 맞게 그 역시 하나의 연결성을 갖추고 있어야 할 것이다.

때로는 앞에 나온 잔이 다음에 나올 잔을. 또 때로는 다음에 나올 잔이 앞에 나올 잔을 망칠 수 있기에, 바텐더는 전체적으로 이어지는 하나의 로드맵을 머릿속에 그려가며 음료를 조율해야만 한다.

머릿속을 칵테일로 채우니, 어느덧 긴장감이 달아난 듯한 정환의 모습이었다.

“네! 이제 마리아주 챌린지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겠습니다! 참가자분은 대기해주십시오!”

5분은 빠르게 흘러가 대회의 시작을 알린다. 일시에 주목을 끌어들인 진행자는.

“지금부터, 대망의 마리아주 챌린지! 그 첫 번째 코스를 소개하겠습니다!”

조금의 쉴 틈도 없이 바로 첫 코스를 향해 진행을 내달렸다. 경쾌하게 큰 손동작을 곁들이며 시선을 자신의 손끝에 모으는 그의 모습이 노련해 보였다.

“연상규 셰프가 직접 고른 첫 번째 코스의 요리는 바로···!”

시선이 집중된 그의 손이 휘익-! 하는 소리와 함께 스크린으로 향했다.

그리고 스크린에 뜨는 필기체의 글씨는.

“아페리티프(APÉRITIF)입니다!!”

APÉRITIF라는 평범한 사람이라면 알아보기 힘든 프랑스어.

허나, 이 자리에 모인 이들 사이에서는 저 글을 모르는 이가 드물지도 모른다.

아페리티프란.

프랑스어로 식전주, 그 자체를 말하는 단어로 다른 음식이 전혀 개입하지 않는, 셰프의 코스 중 유일하게 타인의 손이 묻을 수 있는 영역이 바로 이 아페리티프였다.

프랑스에서 일했다더니. 연상규라는 저 셰프는 이런 대회에 제공하는 코스 역시 진심을 담은 것처럼만 보인다.

‘마리아주의 첫 코스가 단독 잔이라니. 허.’

이상하게 보일 수는 있다. 마리아주라는 주제를 들고 와서는 마리아주할 음식이 없다니.

다만, 서양에서 말하는 마리아주란 코스와 코스의 마리아주를 뜻하기도 하기에, 완전히 상식을 벗어난 출제는 아니었다.

“아페리티프?”

“단독 잔이라니···.”

“허어.”

예상외의 개념이 등장하자, 바텐더들이 술렁인다. 음식과의 마리아주에만 초점을 둔 이들은, 단독 잔을 준비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건 정환 역시 마찬가지. 정환은 첫 잔으로 선보이려던 잔을 어느새 머리에 지우고는 준비된 술병을 훑기 시작했다.

제일 어려운 챌린지가 마리아주일 거란 그의 예상처럼.

쉽게 흘러가지만은 않는 챌린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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