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9잔. 기다리는 자. >
4.
- 살가가각!
- 살가가각!
두 개의 소리가 겹쳐지며 들려온다. 이건 두 사람의 행동에서 나오는 소리가 아닌 한 사람의 행동에서 나오는 소리.
하지만, 소리를 내어오는 셰이커는 당연하게도 두 개의 셰이커였다.
한 손에 하나씩 셰이커를 든 오시윤이라는 바텐더는 한 치의 틀림도 없이 같은 동작으로 양손의 셰이커를 흔들어 갔다.
‘데칼코마니···’
데칼코마니.
정확히 반으로 접어 양쪽에 같은 그림이 나오게 하는 미술의 한 양식이 정환의 머리를 스쳤다.
“이야. 투 핸드 셰이킹이라니. 이걸 실제로 보는 날이 있네요.”
옆에서 함께 잔을 기다리던 이창혁 바텐더 역시 이런 모습에는 놀람을 금치 못하는 눈치다.
투 핸드 셰이킹이라는 게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은 아니다. 다만, 흔히 볼 수 없다는 말은 어디선가 한 번쯤은 볼 수도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상식을 아슬하게 비켜나가긴 했지만, 완전히 저세상의 이야기는 아닐지도 모른다.
“파티 바텐더로 일하셨다더니, 진짜네요.”
정환은 파티 바텐더들이 바쁜 와중 가끔 저런 모습으로 셰이킹을 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흠. 저렇게 셰이킹을 하면 섬세한 컨트롤은 힘들지 않나요? 효율에 조금 더 기준을 두겠다는 뜻인가.”
창혁은 시윤의 투 핸드 셰이킹을 보며 맛을 조금 포기하더라도 시간과 나가는 잔에 집중하는 효율성을 높인 거라 평한다.
두 손으로 껴안듯 셰이커를 잡아 스트로크와 스냅에 온 신경을 집중시키는 원 핸드 셰이킹에 비해, 투 핸드는 그런 섬세함이 딱 보아도 부족해 보이긴 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눈매를 좁히는 정환은 창혁의 그런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 눈치다.
- 살가각! 살각! 삭!
- 살가각! 살각! 삭!
양손을 똑같이 움직인다는 건 힘든 일이다. 근육, 코어, 또 무게 중심이 따로 있기에 이를 하나같이 움직인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이겠나.
그렇기에 들리는 말들이 섬세하지 못하다는 말.
허나, 지금 정환이 보기에는. 저 바텐더의 양손에 들린 셰이커는 섬세하기 그지없어 보일 뿐이다.
양손은 정확히 같은 동작을 그리고 있고 들려오는 소리마저 완벽하다.
이건 정말이지 두 명의 바텐더가 동시에 같은 동작, 같은 박자로 셰이커를 흔드는 것만 같은 느낌.
저 오시윤이라는 바텐더는 양손으로 하나씩의 셰이커를 완벽하게 통제하고 있는 거로만 보였다.
- 촤아아아아아악! 착-!
- 촤아아아아아악! 착-!
두 개의 셰이커에서 동시에 완성된 술이 쏟아진다. 이를 교차하며 멋들어지게 갈무리하는 바텐더의 모습.
- 우와아아아!
- 오오오오오!
주변에서는 감탄이 터지며 이곳이 칵테일 파티의 현장이 아닌 마치 바라는 공간 그 자체에 있는 듯한 반응이다.
주문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바의 특성과 눈으로 즐길 거리를 모두 잡은 오시윤 바텐더였다.
‘맛만···’
잡혀 있다면 여기서 더 바랄 건 없어 보인다. 정환은 자신의 앞으로 향하는 잔을 보며 이를 확신했다.
“주문하신 사이드카, 화이트레이디. 나왔습니다.”
“감사합니다. 잘 마시겠습니다.”
“저도요. 참. 계속 힘내시고요.”
잔을 받은 두 사람에게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를 전하는 오시윤 바텐더.
그는 잠시의 틈도 없이 이어진 주문을 쳐내려 다시금 손을 움직인다.
이번에도 두 손에 셰이커가 동시에 들리는 그였다.
“저쪽으로 가죠. 여긴 피해줘야 할 거 같네요.”
“그러시죠.”
잔을 받아든 정환과 창혁은 다시금 구석 자리로 향한다. 시윤에게 주문하려 모여드는 손님이 적지 않았기에 얼른 자리를 피하는 그들이다.
“자. 결과는 아직 몰라도 우리의 파이널을 위해.”
창혁은 구석에 자리를 잡고는 정환을 향해 잔을 내민다. 화이트레이디가 담긴 정갈한 잔에 사이드카가 가까워졌다.
댕! 하는 소리는 전해지지 않는다. 허공에서 가볍게 마주한 잔을 서로의 코로 가져가는 두 바텐더들.
바텐더답게 하는 행동이 닮아 있는 두 사람이다.
‘흐음.’
비슷한 향이 날 것만 같다. 기주만 다르고 메이킹이 겹치는 칵테일이지 않나.
그렇기에 투 핸드 셰이킹도 더욱 쉬웠을 터.
그런 생각이 무색하지 않게 시트러스하면서도 달콤한 향이 적당히 풍기는 잔이었다.
“노즈가 잘 잡혔네요. 뭐, 기주 빼고는 똑같은 잔이니 정환 씨 잔도 그렇겠죠?”
“재료의 향을 그대로 살렸네요. 브랜디 향도 적절히 녹아 있구요.”
둘은 간단히 노즈에 대한 감상을 주고받고는 그대로 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 호르르륵.
브랜디의 진득함을 머금은 사이드카가 그대로 정환의 입을 타고 넘는다.
혀를 강하게 자극하는 첫맛은 강렬한 브랜디의 도수. 그리고 이내 혀를 감싸며 터지는 맛은 상큼한 레몬의 풍미였다.
코앵트로는 둘 사이에서 적절히 균형을 잡으며 밸런스를 조절해 준다.
한쪽으로 치우쳐 너무 술맛이 강하지도, 또 너무 과실 향만 남지도 않은 잘 만든 잔.
그저 맛있는 칵테일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잔이었다.
“맛···있네요.”
“그렇죠···? 투 핸드로 이 정도 퀄리티라니···. 웬만한 바텐더가 각 잡고 만든 수준인 걸요?”
이창혁이라는 바텐더의 보는 눈 역시 나쁘지 않다. 그는 자신의 입으로 느낀 걸 그대로 뱉어가며 정환과 조각을 맞춰 갔다.
말을 하며 천천히 내쉬는 숨 사이에서는 브랜디 특유의 향이 더욱 강해지며 정환에게 여운을 남긴다.
여운이 남는 건 창혁 역시 마찬가지인 듯. 코로 연신 숨을 내뱉던 그는 정환과 눈을 마주쳤다.
“같은 생각이시죠?”
“창혁 씨도?”
“그럼, 진행하죠. 결벽증, 그런 건 아니죠?”
“그럼요. 절대.”
둘은 짧은 신호만을 주고받고는 그대로 손에 든 잔을 교환한다.
정환의 손에는 진을 베이스로 한 화이트레이디가, 창혁의 손에는 브랜디 베이스의 사이드카가 들렸다.
둘은 앞선 잔과 똑같은 과정을 한 번씩 거치고는 그대로 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 호르르륵.
잔이 입안을 채우자, 이내 정환의 눈이 크게 떠진다. 사이드카와 비슷한 맛 속에서 진의 향이 느껴질 거란 예상도 잠시.
이건, 앞서 마신 잔과는 확연히 다른 기풍이 물씬 느껴지는 그런 맛이었다.
‘이건···’
투 핸즈로 셰이킹을 하면서도 미세하게 다른 차이를 준 거라. 잔을 마신 정환도 바텐더였기에, 그는 바로 이를 알아챌 수 있었다.
“허. 참.”
반응은 정환의 옆에서도 나온다. 창혁 역시 이를 모를 바텐더는 아닐 터.
그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연신 손에 들린 잔을 아래위로 바라보며 고개를 절레 저었다.
잠시간 둘 사이에 대화가 단절된 순간이었다.
둘은 조용히 남은 잔을 바꿔 음미한 후 같은 곳을 바라봤다. 북적이는 사람들 속에서도 유독 기다란 줄이 있는 한 부스.
오픈 오더로 칵테일 파티를 진행하는 부스에 두 사람의 시선이 함께 닿았다.
5.
- 10분 후. 10분 후 월드 클래스 코리아 파이널 챌린지 1차, 칵테일 파티를 종료합니다. 행사 종료를 알리는 방송 이후에는 잔을 받을 수 없으며 내빈 여러분께서는 퇴장과 함께 투표지를 정해진 상자에 넣어주셔야 합니다. 감사합니다.
종료가 가까워지자 장내는 어수선함을 더해간다. 누구는 끝나기 전에 한 잔을 더 마시겠다며 손에 든 잔을 빠르게 비웠고, 누구는 찬찬히 행사장을 돌아보며 투표할 이를 돌아보는 모습이다.
부스를 운영하는 바텐더들의 모습도 마찬가지. 여전히 잔을 쳐내기 바쁜 이가 있는가 하면, 반대로 이제는 한산한 풍경에 벌써 정리를 서두르는 이 역시 있었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이면 당연히 예상치 못한 일들이 많이 벌어진다.
파티는 그런 예상치 못함이 언제나 가득한 공간.
이는 제아무리 노련한 바텐더들이 있는 곳이라도 그럴 것이다.
지난 시간 파이널 참가자들이 자리한 부스에도 이런저런 일은 끊이지 않았다.
빠르게 몰아치는 주문에 술병을 깨트리는 일도 있었고, 누구는 주문을 헷갈려 다른 잔을 내어주기도 했다.
여러 일이 있었지만, 그래도 오늘 제일 당황스러워 보이는 쪽은.
펀치 스타일의 칵테일을 준비한 바텐더로 보였다.
“이야. 절반 이상이 남았네. 저건 다 어쩌려고?”
“폐기···해야겠죠.”
“끔찍하네요.”
야심 차게 준비했던 펀치 스타일의 칵테일이 반 이상이나 남아 버린 것.
대중적인 맛과 빠르게 잔을 내줄 수 있다는 펀치 스타일의 장점은 쉽게 질리는 맛이라는 단점에 발목을 잡히고 말았다.
오랜 시간 보관이 가능한 술을 다루는 바텐더들이기에, 폐기라는 말이 조금은 아리게만 다가오는 것 같다.
- 월드 클래스 코리아 파이널 1차. 칵테일 파티를 종료합니다. 알립니다. 월드 클래스 코리아 파이널 1차. 칵테일 파티. 현 시각 부로 종료함을 알려드립니다.
“아!”
“휴!”
“···.”
“허.”
종료를 알리는 마지막 방송이 울리자 바텐더들이 일시에 손을 멈춘다.
기진맥진한 그들의 얼굴로 다양한 반응이 스쳤다.
“내빈분들 퇴장은 이쪽으로 도와드리겠습니다! 참가자분들은 옆쪽에 마련한 행사장으로 이동해 주세요! 1시간 휴회 후 결과 발표 진행합니다!”
행사가 끝난 현장에는 진행 요원들이 자리하며 빠르게 정리를 도와간다.
정환은 그런 진행 요원들의 안내에 따라 옆방에 있는 행사장으로 자리를 옮겨 결과를 기다렸다.
진행 요원들은 모두가 자리를 비운 행사장에서 번호가 적힌 잔을 집계하고 투표용지를 개표하기 시작했다.
약속한 1시간이 지나자, 관계자들과 휴식을 끝낸 참가자들도 행사장 안으로 들어서며 분위기는 종극을 향해 달려간다.
- 아아. 지금부터, 월드 클래스 파이널 1차, 칵테일 파티 챌린지의 결과를 발표하겠습니다. 우선, 참가자분들께서는 전원 단상 위로 올라와 주시기 바랍니다.
사회자는 작은 종이를 하나 전해 받고는 진행을 이어간다. 그의 손에 들린 작은 종이는 결과를 품고 있는 것만 같다.
안내를 듣고는 오늘 하루 가장 바빴을 이들이 단상 위로 향한다.
축 처진 어깨를 보니, 이들의 하루가 쉽지 않았음이 한눈에 보였다.
이들은 순서대로 도열한 후 덤덤히 결과를 기다렸다. 몇몇은 이미 결과를 아는 듯한 눈치였다.
“자. 대망의 월드 클래스 코리아 파이널 1차. 칵테일 파티 챌린지의 결과가 이곳에 있습니다! 여러분들, 자리는 충분히 즐겨주셨나요? 그렇다면, 큰 박수로 이분들을 맞아주시길 바랍니다!”
- 짝짝짝짝짝!
- 짝짝짝짝짝!
“네. 큰 성원, 감사드립니다. 아. 결과가 아주 박빙이었는데요. 지금부터, 그 결과를! 여러분께 공개하겠습니다! 점수는 득표수와 일정 시간 제공한 잔을 합산한 점수입니다!”
사회자의 말을 모두 믿을 순 없다. 박빙이라는 말이 진실인지 아닐지 누구도 알 수 없는 상황.
보였던 건 조금 달랐기에 바텐더들은 이를 믿지 않는 눈치였다.
“우선, 4위부터 발표하겠습니다! 대망의 월드 클래스 코리아 파이널 1차의 4위는···! 네! 2번 부스의 김태영 바텐더! 펀치 스타일의 칵테일로 대중적인 접근을 선보인 김태영 바텐더께 박수를!!”
- 짝짝짝짝짝!
진행은 생각보다 빨랐다. 티비에서는 시간도 나름 끌고 하던데. 아마, 시청률과 관계가 없으니, 진행도 빠른 모양이다.
진행자가 뱉은 4위의 바텐더는 강남 출신의 김태영 바텐더.
펀치 스타일의 칵테일을 준비했던 이가, 바로 이 바텐더였다. 그는 조금은 풀이 죽은 모습이지만, 쏟아지는 박수에 애써 웃음을 억지로 지어가는 표정이다.
어색하게 흔드는 손이 애처로운 그였다.
“이어서 발표를 계속하겠습니다! 월드 클래스 바텐더 1차 챌린지, 칵테일 파티의 3등은···! 1번 부스의 이정출 바텐더! 픽스 오더로 선별한 칵테일의 진수를 보여준 이정출 바텐더는 호텔 바텐딩의 정석을 보여줬습니다! 박수를!”
- 짝짝짝짝짝!
몇몇은 전해지는 순위에만 관심이 쏠릴지도 모른다. 허나, 바텐더들은 예외.
정환과 창혁은 행사 시간 동안 쌓였던 잔을 대강 훑으며 저들과 1, 2위 사이에 큰 차이가 있음을 모르지 않았다.
제주 출신의 바텐더는 씁쓸하게 웃으며 4위가 아닌 것에 만족하는 표정이다.
“아. 지금부터는 아주 박빙이네요! 이제 월드 클래스 코리아 파이널 1차 대망의 1, 2위 만이 발표를 앞두고 있습니다! 여기서 1위를 달성한 바텐더는 최종전으로 진출합니다!”
- 와아아아아아!
진행자는 최종 발표를 앞두고는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그의 양옆에 서 있는 서지웅 바텐더와 오시윤 바텐더는 그런 긴장감을 그대로 받아든 모습이다.
“월드 클래스 코리아 파이널 최종전에 진출할 참가자는···!”
사회자는 몸을 한번 접어가며 대미를 천천히 읊어간다. 숨을 들이쉬며 몸을 크게 펼친 그는.
“3번 부스의 오시윤 바텐더!!!!!”
모든 힘을 짜내 결승으로 향하는 이의 이름을 외쳤다.
- 와아아아아아아아아!
- 짝짝짝짝짝!
몇 개의 추가 멘트와 2등을 기리는 말이 이어졌지만.
크나큰 환호 속에 묻힌 진행자의 목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