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술은 특별합니다-138화 (138/175)

< 138잔. 칵테일 파티. >

3.

시끌벅적한 소리가 장내를 채운다. 들려오는 내용은 저마다 다른 사교적인 내용들.

누구는 처음 본 사람에 대해 알아가는 말들을, 또 누구는 오늘 진행 중인 행사 이야기를 하며 파티는 무르익어 갔다.

이런 파티가 한창인 속에서도 원하는 대화는 언제든 들을 수 있다.

이런 현상을 나타내는 말이 바로 칵테일 파티 효과.

수많은 군중이 밀집한 칵테일 파티 내에서도 자신의 이름이나 자신이 관심 있는 주제에 대한 이야기는 곧바로 귀에 꽂히는 현상을 사람들은 이렇게 불렀다.

- 호르르륵.

작은 잔에 채워진 칵테일을 한잔 들어 올린 정환의 귀에도, 지금은 자신이 원하는 이야기만이 들려오고 있다.

“이 김렛 마셔봤어?”

“어디서 가져온 건데?”

“오픈 오더 부스.”

“아. 거기? 3번 부스? 맞지? 진즉에 마시고 왔지. 난 사이드카로. 맛이 좋아.”

“그렇지? 이거 마시고 다음 잔도 거기로 어때?”

“좋지. 얼른 비우자고.”

정환의 청각이 포인트를 맞춘 건 분주한 분위기 속에서 홀로 고고함을 뿜어내는 작은 부스에 관한 이야기였다.

누구는 펀치 스타일을 누구는 픽스 오더를 진행하는 중에도 홀로 바처럼.

바의 변하지 않는 주문 방식을 택한 한 사람.

부산에서 왔다는 그 바텐더의 이야기.

정환이 듣고 있는 건 바로 그 이야기였다.

파티라는 현장이 주는 장점이 있다. 오가며 귀를 몇 곳에만 펼친다면 쏠쏠한 정보가 들려오는 곳이 파티 현장.

정환은 이곳저곳을 다니며 저 바텐더에 대한 이야기를 주워들으려 귀를 기울였다.

아직은, 크게 주의를 기울일만한 내용은 없었지만.

“즐기고 계시죠?”

잔을 넘어 부산 바텐더에게 시선을 고정한 정환에게 창혁이 다가온다.

광주 출신 바텐더인 그는 손에 두 개의 잔을 들고는 두 잔을 비교하며 잔을 맛보고 있다.

결승전에서 마주칠지도 모를 상대를 미리 예습하는 모습이다.

“네. 재미난 잔이 많네요. 역시 파이널답네요.”

“지금 드시는 잔은?”

“펀치 스타일요. 보드카랑 사과, 소다, 리큐르에 체리를 더한 것 같네요. 시원해요. 상큼하고.”

“흠. 금방 질릴 것 같은 맛은 아니고요?”

“나름 괜찮은걸요.”

“다른 잔은요? 드셔보셨어요?”

“음. 지웅 씨 잔정도? 오리지널 레시피라서 그런지 괜찮아요. 맛도 독특하고요.”

“마셔봐야겠네요. 강남 바텐더의 실력도 보고 싶고. 그나저나 아까부터 한쪽만 계속 보고 계시던데. 누굴 그렇게 보는 거예요?”

정보는 때로는 의외의 곳에서 나온다. 정환의 몸이 완전히 기울어진 쪽을 함께 바라보는 이창혁 바텐더.

그는 부산 출신의 바텐더를 보고는 정환에게 의외의 말을 들려준다.

“시윤 씨네?”

!

“누군지 아세요?”

“그럼요. 왜 몰라요. 프로필 촬영 때 기억나죠? 그때, 다들 삼삼오오 모였잖아요. 서울은 서울끼리. 지방은 지방끼리. 인사랑 가벼운 대화는 나눴죠. 제주에서 올라온 다른 분이랑.”

여기저기 정보를 찾던 정환은 이제야 저 바텐더에 대해 제대로 아는 사람을 만난 것만 같았다.

정환은 기울었던 몸을 창혁 쪽으로 돌리며 조금은 적극적인 자세로 그와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누굽니까? 저분은?”

“네? 허허. 정환 씨가 시윤 씨한테 관심이 많나 보네요. 뭐, 실력이 좋아 보이긴 하죠. 패기의 오픈 오더! 도 하고 있고.”

“드셔보셨어요?”

“아뇨. 아직. 시간은 많잖아요. 어때요? 같이 가볼래요?”

창혁은 양손에 든 잔을 보이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의 턱이 시윤이라 불리던 부산 바텐더의 쪽을 향했다.

정환은 입을 앙다물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창혁을 따라나섰다.

창혁은 걸어가며 저 바텐더에 대한 설명을 이어갔다.

“이름은 오시윤. 뭐, 연고지야 부산인 걸 아실 테고. 직접 바를 운영하고 있다는 것까지도 알죠? 부산에서 ‘야흐로’라는 작은 바를 운영 중이래요.”

“오너라. 젊은 나이에 대단하시네요.”

“······?”

창혁은 무심결에 나오는 정환의 반응에 고개를 갸웃한다. 젊기는 당신이 더 젊지 않냐.

눈을 세차게 깜빡이는 창혁의 얼굴에는 그런 의문이 잠시 스쳤다.

“뭐···. 그렇죠.”

“가게 이름이, 바 야흐로. 바야흐로. 재밌네요. 위트있고.”

“요즘 그런 가게가 많잖아요? 트렌디한 거죠.”

“그것 말고는 다른 특별한 점은 없었나요?”

“흠. 정환 씨가 관심이 많으신 모양이네. 어떻게, 시윤 씨가 올라갈 것처럼 보이나 봐요?”

“그런 것도 있지만···. 아무래도 신기해서요.”

“오픈 오더 때문에?”

“···그렇죠.”

“하긴. 이런 곳에서 오픈 오더라니. 패기죠. 패기. 근데, 나도 잘 아는 건 아니지만 언뜻 들어보니 이유가 다 있더라구요.”

“이유요?”

“특별한 점이 없냐고 물었죠? 저 친구. 해외파에요. 유학파.”

“유학요? 어딜?”

“일본에도 잠시 있었다고 하고 상해에도 잠시. 하지만, 제일 많은 시간을 보낸 건 미국. 거기서 일한 곳이 저 패기의 이유일 겁니다. 아마.”

“어디서 일을 했길래요?”

“플레이 보이.”

!

정환은 씨익 야릇하게 웃으며 은근한 표정을 짓는 창혁의 말에 슬쩍 걸음을 멈춰 세웠다.

“플레이 보이요?”

“플페이 보이 알죠? 그 잡지. 알잖아요. 그, 크흡. 바니걸.”

“···아, 알죠. 거기서 일했다는 건 그럼···. 파티 바텐더였다는 말이군요.”

“바로 아시네요. 그렇죠. 이제는 이해가 되죠? 저 패기의 원천이.”

그의 말처럼, 이제야 저 패기의 이유가 납득이 가는 정환이었다.

‘플레이 보이 출신이라···’

미국의 수많은 누드 잡지는 수시로 크고 작은 파티를 연다. 당연히 이런 파티는 칵테일 파티.

누드모델과 유명인사를 참석시켜 환상을 파는 이런 파티에는 언제나 바텐더가 빠지질 않았다.

매번 유명 바텐더를 초청하기에는 시간도 일정도 또 금액도 어긋나는 경우가 생긴다.

그렇게 잡지사들이 택한 건 결국 바텐더를 직고용하는 것.

미국에서는 파티 바텐더라는 직종이 바텐더들 사이에서는 호텔 바텐더와 함께 제법 유망한 직종에 들곤 했다.

“그런 사람에게 칵테일 파티 챌린지라니. 완전 호랑이가 날개를 단 거죠. 부럽네요. 여러모로.”

창혁의 말처럼 파티 바텐더 출신이라면 칵테일 파티 챌린지가 정말 쉬운 과제에 속할지도 모른다.

물론 대회는 실제 파티와 달리 다른 영역에 대한 평가 역시 있겠지만, 적어도 오픈 오더로 진행해도 중간에 꼬일 일은 없을 터.

차라리 오픈 오더가 아닌 다른 형식을 시도했다면 그게 더 저 바텐더에게는 무리였을지도 모른다.

‘파티 바텐더···. 그게 전부일까?’

하지만, 대회와 파티는 확연히 다르다. 이건, 참가자라면 누구나 알 사실.

정환은 왜인지 그가 파티 바텐더 출신이라는 것 외에도 자신 있게 오픈 오더를 꺼낸 이유가 있을 것만 같아 보였다.

두 사람의 발걸음이 어느덧, 오시윤 바텐더의 부스에 닿았다.

“시윤 씨. 고생 많아요. 어때요? 할만해요?”

- 살각! 살각! 살각!

“아. 창혁 씨. 와주셨네요. 그저 그렇죠, 뭐. 쉬운 일이 있나요.”

오픈 오더를 진행하는 바텐더답게 손놀림은 잠시의 여유도 가지지 못한다.

고개만을 돌려 잠시 짤막한 답을 남기는 그는 쉴 틈 없이 잔을 만들어 갔다.

중간중간 대화를 섞음에도 그의 손놀림에는 아무런 빈틈이 느껴지지 않았다.

“이쪽은 저랑 같은 조에 배정된 차정환 바텐더라고 해요. 들어보신 적 있죠?”

“모를 수가 없죠. 종로 바 골목의 대장을 이렇게 뵙네요. 잡지 인터뷰. 인상적이었습니다. 오시윤이라고 합니다. 악수는 잠시 후에 나누시죠.”

창혁의 소개에 시윤은 가볍게 목을 까딱하고는 여전히 칵테일 만드는 것에 집중한다.

그런 바텐더의 모습이 싫지 않아 정환은 밝게 웃었다.

제대로 된 바텐더를 이번 기회에 많이 만나는 것만 같다.

“영광입니다. 차정환이라고 합니다. 주문은 많이 기다려야 할까요?”

제대로 된 바텐더를 만났다면 응당 그의 잔을 맛봐야 한다. 정환은 그의 솜씨가 예사롭지 않게만 보여 입에 침이 고이는 것만 같다.

그는 가볍게 주변의 잔을 훑어보고는 입을 열었다.

“하나, 둘 셋···, 네 잔. 3분은 안 걸리겠네요.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어요?”

남은 잔에 비해 들려오는 시간이 길지 않다. 잔마다 다르지만, 보통은 바텐더가 한 잔의 칵테일을 완성할 때 걸리는 시간이 약 2분 정도.

저마다 스타일이 다르기에 정해진 시간은 없겠지만, 시윤의 입에서 들려오는 시간이 무척이나 짧은 건 누구나 알 수 있었다.

- 턱, 텃, 탁. 탕!

- 살가가각!

기다리는 사람들의 앞에서 그의 손은 빠르게 움직여 간다. 셰이커를 닫고는 이를 들어 올려 세차게 흔들어 가는 그.

정환은 그의 실력이 예사롭지 않음을 이제는 확신할 수 있었다.

‘스트로크부터 스냅까지···’

의식하지 않고 흔드는 셰이킹이 아닌 철저히 계산된 움직임이라는 것.

그의 셰이킹을 본 정환의 감상은 그러했다.

- 또르르르르르륵.

스터 역시 만만치 않다. 딱 한 바퀴를 돌리는 데에 필요한 움직임만을 쓰는 그의 손가락.

온전히 세 개의 손가락 안에서만 이루어지는 유려한 스터는 쉽게 볼 수 있는 실력은 아니었다.

“다이키리, 맨하탄, 그리고 스팅어와 네그로니까지. 주문하신 칵테일 나왔습니다.”

“와! 빠르다! 감사해요!”

“여기여기! 맨하탄은 여깁니다!”

“이게 스팅어?”

네 잔을 만드는 데 3분 정도가 필요하다던 말이 아마 겸손이었던 것 같다.

실제로 그가 잔을 내어두기까지 걸린 시간은 2분하고도 30초 남짓.

몇 개는 재료가 겹치기도 했지만, 이 역시 철저한 계산과 머릿속에 완벽한 레시피가 없다면 불가능한 일.

앞서 마셨던 펀치 칵테일도 한 잔을 뜰 때는 1분 정도가 걸렸으니.

누구보다 파티에서 빠르게 잔을 낼 수 있다는 펀치 칵테일의 장점도, 이 바텐더 앞에서는 무력할지도 모르겠다.

“자. 이제 우리 바텐더분들 차례네요. 주문. 하시겠어요?”

잔을 전부 손님에게 내어 보인 시윤이 정환과 창혁을 바라봤다.

무뚝뚝한 인상에 비해 손님을 대하는 말투는 바텐더스러운 그였다.

“뭐. 여기서 민폐를 끼칠 수가 있나요. 정해진 메뉴가 없다면 진토닉으로 가야죠.”

창혁은 어깨를 한번 또 들썩이고는 진토닉을 주문한다. 손님이 많은 곳에서는 서로 배려해야 하는 게 바텐더의 불문율이다.

“아뇨. 편하게 주문하세요. 괜찮습니다.”

“그래요? 그럼 조금 과감해져 볼까요? 정환 씨는요?”

“전 사이드카로 하겠습니다.”

“오. 사이드카.”

“오는 길에 맛있다는 이야기를 들어서요.”

“흠. 편하게 주문하라고 하셨어도, 너무 복잡하면 그렇겠죠? 그럼, 전 화이트 레이디로 해주시죠. 통일은 너무 삭막하고.”

불문율은 바텐더의 괜찮다는 말로 쉽게 깨어진다. 그가 받았다면 몰라도 사양했다면 이제는 배려가 오히려 무시가 되는 단계.

그런 단계에서도 창혁은 정환의 주문에 맞춰 사이드카에서 기주를 진으로만 바꾸면 되는 화이트 레이디를 주문한다.

이 역시 작지만 같은 씬에 속한 이의 배려일 것이다.

“주문 확인했습니다. 괜찮으시다면 뒤에 분들 주문까지 같이 받아도 될까요?”

“물론이죠. 자자. 신사분들, 앞으로.”

창혁은 사람 좋게 뒤에 줄 선 이들의 앞으로 모시며 주문할 공간을 만들어 준다.

그중 한 명이 재밌다는 표정을 지으며 주문을 이어갔다.

“그 앞에 두 분이 레시피가 겹치는 잔을 주문하셨던데. 저도 그렇게 해도 될까요?”

“꼭 그러실 필요는 없습니다. 뭐든, 드시고 싶은 잔을 주문하시면 됩니다.”

“그래도 된다는 말이군요. 재밌지 않습니까? 파티고.”

“그럼?”

“전 발랄라이카. 보드카는 스미노프로 해주시죠.”

“아. 그럼 전 XYZ로 합시다. 하는 김에.”

대회 현장에 칵테일 파티라는 거창한 이름을 건 만큼 칵테일에 대해서는 잘 아는 이들이 초청받은 자리다.

이들은 앞서 주문을 전한 바텐더들의 레시피가 통하는 걸 보고는 그에 맞춰 주문을 이어갔다.

사이드카, 화이트 레이디, 그리고 발랄라이카와 XYZ는 기주를 제외한 다른 재료와 메이킹이 모두 같은 칵테일이다.

“···배려 감사합니다. 주문 확인했습니다.”

뭐. 이런 유흥이라도 손님을 위한 것이라면 바텐더는 오케이다. 실력이나 효율적인 면에서 보자면 나쁠 것도 없었고.

시윤은 고개를 끄덕이며 재료를 준비해 갔다.

다른 모든 건 다듬어져 있었기에 술만을 가져오면 끝인 그의 준비였다.

- 후우우.

그는 숨을 한번 짧게 내쉬고는 셰이커를 준비한다. 그의 손을 놓치지 않고 바라보던 정환과 창혁은.

!!

이내 그의 준비 동작을 보고는 눈을 크게 뜨고 만다.

그가 준비한 셰이커는 총 4개. 여기까지는 이해가 가능한 영역이다.

셰이커를 씻을 시간이 부족할 수는 있으니까.

허나, 이들이 놀랐던 건.

- 촤아악!

- 촤아악!

- 촤아악!

- 촤아악!

그가, 4개의 셰이커에 동시에 술을 붓기 시작한 그 모습 때문이었다.

그는, 4잔의 칵테일을 동시에 만들 심산으로 보였다.

‘허어.’

양손에 하나씩, 두 개의 셰이커가 동시에 바텐더의 손에 들렸다.

***

1. 사이드카

(브랜디 + 코앵트로 + 레몬주스)

2. 화이트레이디

(진 + 코앵트로 + 레몬주스)

3. 발랄라이카

(보드카 + 코앵트로 + 레몬주스)

4. XYZ

(화이트 럼 + 코앵트로 + 레몬주스)

- 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워 스타일의 셰이킹 칵테일 4종 세트 입니다!

- 전부 기주만 바꾸면 메이킹도 재료도 같은 칵테일입니다!

- 보시는 것처럼 사실 사이드카를 제외하면 외관상 알아보긴 힘..들죠 :) 미묘한 차이..만이..ㅎㅎ

- 실패는 없는 타선이라고 생각합니다. 김렛까지 포함해 칵테일에 입문하시는 분들께 클린업 트리오 급으로 강추 하는 라인업입니다!

- 이름에서 오는 여러 이야기도 있습니다. 다만, 이 녀석들을 묶어서 한번 다루고 싶었습니다.

- 간단히 xyz의 경우 일본 바에서는 영업 종료를 알리는 잔으로 쓰인다고 하네요. xyz. 알파벳의 끝이죠. 이 뒤로는 어떤 글자도, 어떤 칵테일도 없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 글쎄요. 전 경험을 해보지 못해서..ㅋㅋ 인터넷에 떠도는 속설 아닐까요?

- 맛은 다들 아는 스윗 앤 사워, 그리고 적당한 술맛입니다. 사이드카가 조금 더 진득함을 주고 화이트 레이디가 깔끔함을, 발랄라이카는 조금 더 강렬함을 XYZ는 여운을 주는 느낌입니다.

- 같이 바에 간 일행이 있다면 맞춰서 주문해 보시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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