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술은 특별합니다-137화 (137/175)

< 137잔. 개전. >

1.

“마리아주면 괜찮은 종목 아닌가요?”

여전히 사랑방 구실을 하는 아실의 안. 오늘은 소수 정예로 모인 이들이 정환의 월드 클래스 대회에 또 입을 보태고 있다.

정우와 기준만이 자리한 아실은 윤수와 정환이 더해져 아르센 같은 기운을 품고 있다.

“윤수 씨는 마리아주가 괜찮은 거 같아?”

“그렇지 않나요?”

“왜?”

“음. 답이 정해져 있지 않나요? 마리아주는. 어느 정도 공식 같은 게 있으니까요! 육고기에는 드라이한 맛으로 혀를 풀어줄 수 있을 것! 생선은 비린 맛을 감출 수 있을 정도로 향이 풍부할 것! 빵은 밀가루를 잘 분해할 수 있는 효소가 들어간 탄산 쪽으로! 채소가 메인이라면 곡류는 피할 것! 아닌가요?”

“모범생이네.”

윤수는 마치 방금 교과서를 읽고 온 학생처럼 신이 나, 자신이 아는 이론을 뽐내기 시작한다.

바텐딩은 윤수의 말처럼 몇 가지 정해진 공식이 있기는 했다. 공식이 곧 정답인 영역은 아니지만 강하게 권해지는 것이 바로 이런 공식.

페어링에는 윤수가 말한 기본 상식이 있고, 또 음료에 영역에서도 보드카와 증류주를 섞지 않는 것 등 많은 공식이 존재하는 게 바텐딩이란 영역이었다.

윤수는 모범생답게 이런 영역을 쫙 읊으며 마리아주가 제일 쉬운 챌린지라는 말에 힘을 실어 갔다.

하지만.

“그래서 더 어렵다는 거야.”

이어지는 정우의 말이 이런 윤수의 주장을 정면으로 깨부순다.

잔을 가볍게 터는 그의 말이 날카롭게 들려왔다.

“네? 왜요?”

“이건 손님을 맞이하는 영업이 아니라 대회잖아. 대회.”

“대회면 다른가요?”

“다르지. 대회라면. 대회는 결국, 차별성이 있어야 한다는 거니까. 네 말대로 공식대로 잔을 낸다고 생각해보자고. 평가는 어떻게 할 건데? 4명이 다 같은 잔을 낸다면 말이야. 거기서 차별성을 느낄 수 있을까? 심사 위원이?”

“같은 잔이라도 맛이 다르니까요!”

“잘 들어봐. 다들 난다긴다하는 바텐더들이라고. 대회에 참가만 해도 실력에는 자신감이 있는 놈들인데, 본선이라고 본선. 거기에 파이널까지 거르고 걸러 선별된 딱 8명이야. 제아무리 실력이 좋아도 그 사이에서 뛰어난 차별성을 낸다? 그건 어렵지 않을까.”

정우는 취기가 조금 오른 목소리에도 날카로운 분석을 담아 답을 들려준다.

윤수는 조금 주눅 든 모습이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아 본다.

“그래도 사장님이라면···!”

“그래. 정환이라면 가능성이라도 있겠지. 근데. 그런 작은 가능성에 걸어도 되는 걸까? 이 대회라는 게?”

“···그럼 어떡해요?”

“뭐, 방법이 있나. 졸라 굴러야지, 뭐.”

정우는 일시에 풀이 팍! 하고 죽어버리는 윤수에게 장난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어깨를 들썩한다.

정환이라면 무언가를 할 수도 있다는 말은 부정하지 않는 정우였다.

“찾아야죠. 차별성.”

정우는 조금은 날 것으로 나온 정우의 말을 자신이 보태어 마무리 짓는다.

속에는 이런 뜻이 있을 거라. 모르지 않는 그였다. 옆에 있는 이들의 걱정과 별개로 잔잔한 미소가 있는 정환이다.

“방법이 있으신가요? 있는 거죠? 그렇죠?”

윤수는 야릇한 미소를 흘리는 정환을 보며 희망을 찾는다. 언제고 정환의 얼굴에 저런 미소가 나올 때면 무엇이든 방법을 찾는다는 걸 그는 모르지 않았다.

“글쎄요. 연습? 특훈만이 답이겠죠. 정우 형 말처럼, 졸라 굴러야죠.”

여유롭게 농담을 건네는 정환의 모습이 의뭉스럽기 그지없는 윤수였다.

다음 날.

아직은 해가 밝아 바텐더의 시간과는 거리가 멀어 보일 즈음. 정환은 한낮의 태양을 뚫고는 강남의 한 거리에 나선다.

커다란 빌딩 앞에서 위를 올려다보는 정환.

높은 빌딩이 자태를 뽐내며 정환을 내려다보는 것만 같았다.

‘성공한 사업가는···’

다르구나. 정환은 새삼 오늘 만날 사람이 대단하게만 느껴졌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 엘리베이터를 타고는 누군가 일러준 층으로 향한다.

그러자 나오는 건 스튜디오 형식의 커다란 한 주방.

정환은 술병과 식재료로 가득 채워진 그곳을 보며 입을 쩍벌렸다.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느낌이지만, 예전보다는 더욱 크게만 보였다.

“선생님! 오셨네요. 흐흐. 여기에요. 여기.”

정환이 입을 쩍! 벌리고는 두리번거리던 때. 구수하고 친근하며 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오늘은 내가 선생인 거 알죠? 흐흐. 편하게 강 선생이라고 불러요.”

그는 정환을 늘 술선생님이라 부르는 요식업자, 강성원 대표였다.

여유로운 웃음을 가진 그의 목소리가 따스하게 들려왔다.

“자. 특훈을 시작해 봅시다.”

굴러야 한다고.

2.

“월드 클래스 코리아 파이널 1라운드 입장 마감하겠습니다! 초청받으신 분과 관계자분들은 얼른 입장해 주세요!”

월드 클래스 코리아 대회의 파이널은 총 3회로 나눠서 진행되었다.

오늘은 그 첫째 날. 오늘은 정환이 속하지 않은 A조의 챌린지가 있는 날이다.

B조에 속한 이들은 오늘 그저 참관인의 자격으로 이곳에 자리하고 있다.

이는 정환 역시 마찬가지. 어색한 복장을 갖춘 정환이 두리번거리며 행사장 안을 돌아다녔다.

초청받은 이들만으로 통제되어 안을 채운 행사장은 마치 사교 행사장을 방불케 했다.

이건 오늘의 챌린지 덕분도 있을 터.

저마다 깔끔하고 고급스러운 복장을 갖춘 이들이 잔잔한 음악이 나오는 행사장을 돌아다니며 담소를 즐기고 있다.

“오셨네요. 정환 씨.”

“아. 창혁 씨. 오셨군요.”

광주에서 올라온 이창혁 바텐더 역시, 자리를 빛내고 있다.

“곧 시작하겠네요. 조금 외곽으로 피할까요?”

“그러시죠. 안쪽은 복잡해 보이네요.”

두 사람은 외로운 공간에서 짝을 찬은 이들처럼 구석에 자리를 잡고 서 있다.

그래도 내부를 둘러보는 눈빛만큼은 외곽이 아닌 중심에 향한 그들이다.

“흠. 우리도 마셔볼 수 있겠죠?”

“투표권은 없어도 맛은 볼 수 있다더군요. 딱 한 잔씩만. 뭐. 주는 대로 맛만 봐라? 그런 의미겠죠.”

“투표라. 그게 평가의 전부는 아니라던데요?”

“전체적으로 나간 잔의 수와 투표로 얻은 표를 합산해 점수를 낸다고 합니다. 투표에서 적게 득점해도···. 잔이 많이 나갔다면 유리하겠죠. 아. 우리가 마시는 잔은 점수에도 들어가지 않는다고 하네요.”

A조의 챌린지는 칵테일 파티 챌린지다. 이런 행사장의 중심에서 네 명의 바텐더가 저마다 부스를 차리고는 손님에게 잔을 제공하는 것이 칵테일 파티 챌린지.

선보이는 잔의 주제는 딱히 정해진 게 없다. 자유 그 자체. 다만, 정해진 시간 동안은 계속해서 영업해야 한다는 조건은 있었다.

그리고 부스별로 준비된 잔에는 저마다 바텐더를 나타내는 번호가 적혀 있다.

그 번호를 통해 최종 집계를 하는 것처럼 보였다.

정환은 여러 부스를 돌아보던 중 한 명의 바텐더와 눈을 마주친다.

열심히 부스를 열 재료를 다듬는 노벰버의 지웅이었다.

“인사라도 하고 와야겠네요.”

정환은 잠시 창혁을 두고는 지웅에게 향했다. 열심히 재료를 준비 중이던 지웅이 정환을 보고는 반갑게 인사한다.

“괜찮죠, 지웅 씨?”

“죽어요. 정환 씨. 칵테일 파티가 아닌 게 정말 다행이실 겁니다.”

“힘내요. 응원할게요.”

“고마워요. 열심히 해야죠. 결승전에서 정환 씨 만나려면.”

“오늘은 뭘 준비하신 거예요?”

“전 그냥 시그니처 메뉴 다섯 개만 준비했어요. 잔이 너무 적어도 그러니까, 5잔 정도. 모두 제 오리지널입니다.”

“이야. 이건, 필살기 아니에요? 안 힘드시겠어요?”

“이게 편해요. 레시피도 몸에 익었고.”

파이널인 만큼 잔뜩 힘을 준 지웅의 모습이 정환의 눈에 들어온다.

오리지널 레시피를 벌써, 그것도 5개나 꺼낼 정도로 그는 진심처럼 보였다.

“다른 분은 펀치 스타일을 준비한 분도 있다지만···, 어디 쉽나요, 그게. 한두 잔이면 질릴 텐데.”

지웅은 시선을 다른 부스에 보내며 이야기를 이어간다. 그의 시선을 따라가니, 지웅의 말처럼 펀치 스타일을 준비한 부스가 정환의 눈에 들어왔다.

펀치(Punch) 스타일은 전형적으로 파티를 위한 칵테일 스타일을 말한다.

한 번에 대용량 용기에 여러 재료를 넣고는 이를 만들어 두어 저마다 잔으로 떠 마시는 스타일이 펀치 스타일.

꼭 직접 떠 마실 필요는 없다. 그저 그렇게 시작된 칵테일의 이름일 뿐.

바텐더는 대용량의 재료를 섞어둔 뒤 이를 퍼내 마무리만 지으면 그만인 게 펀치 스타일이었기에 이런 자리에서는 빠르게 많은 잔을 제공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파티를 위해 탄생한 스타일인 만큼, 이번 챌린지에는 제격처럼 보이는 칵테일이다.

하지만, 이런 펀치 스타일도 단점은 명확했다. 특히나 이런 대회라면 더욱.

준비할 수 있는 레퍼토리가 적기에, 손님은 맛에 질리며 다른 부스를 찾을 수 있다는 것.

한두 가지의 펀치 스타일을 얼마나 맛있게, 또 얼마나 대중적으로 만드느냐에 따라, 나가게 되는 잔의 수는 달라질 것이다.

정말 맛있는 펀치 칵테일이라면, 한 종류라도 계속해서 찾는 손님은 있을지도 모르지만.

“과감하네요. 대회에서 펀치라니.”

“그렇죠? 나쁘진 않은데, 용감해 보이기도 하죠. 그래도···”

지웅은 주변을 둘러보며 다른 부스로 시선을 옮긴다. 끝나지 않은 그의 말이 다른 부스를 향하는 것만 같다.

“저쪽보다야 용감하진 않겠지만.”

끝나는 지웅의 말은 시선과 함께 앞줄에 자리한 다른 바텐더에게 향한다.

부산에서 왔다던 그 덩치 좋은 바텐더가 있는 부스였다.

“네? 저쪽은 부산에서 오셨다는 그분이죠?”

“네. 오너라던 분. 감이 없는 건지, 아니면 자신감이 넘치는 건지. 용감하기 짝이 없어요. 아니다. 무모하다고 해야 하나?”

“뭘 준비하셨길래···?”

“저분. 오픈 오더(open order)로 진행한다네요. 허.”

!

“오, 오픈 오더요?”

오픈 오더라는 말이 나오자 정환은 깜짝 놀라며 눈을 크게 뜬다.

잔뜩 커다래진 정환의 눈이 부산 바텐더의 부스를 훑었다.

마치 영업을 준비하는 바의 모습처럼 평범한 그의 모습이다.

“정환 씨도 믿기 힘들죠?”

지웅은 그런 정환의 표정을 보며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여전히 재료 손질에는 멈춤이 없는 그였다.

오픈 오더가 무엇이길래 정환이 이렇게 놀라는 걸까.

오픈 오더란.

이런 파티 현장에서, 일반적인 바와 같은 형식으로 주문을 받는 걸, 뜻하기 때문이었다.

여긴 자리가 정해져 있어 한정된 수의 손님만을 받는 바가 아니다.

얼마나 많은 잔이 얼마나 동시에, 또 얼마나 복잡한 주문이 될지 알 수도 없는 상황.

그런 상황에서 오픈 오더를 진행하겠다니, 많은 잔을 내보내 최대한 점수를 얻어야 하는 상황에서.

이건 정말이지 무모하다는 말밖에는 설명할 수 없는 결정처럼 보였다.

“허어.”

굳이 찾아보자면, 하나의 이유를 찾을 순 있다. 그만큼 복잡해도 많아도, 또 밀려도.

그 모든 주문을 쳐낼 자신이 있는 것. 이유를 찾자면, 그게 유일할 것이다.

“다른 한 명은 저랑 같아요. 몇 개 고정 메뉴로 진행한다네요. 뭐. 메뉴를 안 봐서 오리지널인지는 모르겠지만요.”

지웅은 다른 무엇보다 맛과 효율이라는 정석적인 부분에서 승부를 거는 것처럼 보인다.

오리지널 메뉴란 바텐더가 선보일 수 있는 최고의 한 수일 것이다.

- 10분. 10분 후 월드 클래스 파이널 1라운드 챌린지를 시작하겠습니다. 참가자분들께서는 준비를 서둘러 주십시오. 아울러 내빈···

“힘내세요. 응원할게요.”

“네. 그럼. 나중에 봐요.”

안내가 나오자 정환은 지웅에게 인사하고는 뒤로 물러선다.

구석에서 창혁을 다시 만나 몸을 벽에 기댄 정환의 시선은 계속해서 부산 출신 바텐더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무뚝뚝한 인상에 큰 덩치에서 나오는 기운이 유독 범상치 않게 보이는 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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