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술은 특별합니다-125화 (125/175)

125잔. 보석.

3.

챠카착! 챠카착! 챠카착!

몇 번의 셰이킹 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하얀 거품을 가득 안은 술이 하이볼 잔에 담겨 앞으로 나온다.

잔을 받아 든 이는 잡지사에서 에디터로 일하는 주민경.

그녀는 카이칸 피즈란 이름의 잔을 받고는 입술에 거품까지 묻혀가며 얼른 잔을 들이켰다.

“크흐! 역시 이 맛이에요. 일부러 점심도 거르고 왔다니까요!”

“특별히 힘을 줘봤어요. 일종의 뇌물이죠. 오늘 잘 부탁드린다는 의미로요.”

잔을 건넨 정환은 이를 벌컥거리며 마시는 민경을 보며 짙게 웃는다.

뇌물이란 말을 아무렇지 않게 건넬 정도로, 민경과는 제법 가까워진 그였다.

“자. 카이칸 피즈도 맛봤으니, 일을 시작해 볼까요? 이쪽 분이 임재훈 바텐더. 옆에 계신 분이 신주용 바텐더. 맞으시죠?”

잔을 내려두고 쓰윽 입가에 묻은 거품을 닦은 민경이 일을 시작하자는 말을 꺼낸다.

오늘은 또 무슨 인터뷰를 하러 온 걸까.

그녀의 시선이 오늘은 정환이 아닌 그녀의 옆에 앉은 두 바텐더에게 먼저 닿았다.

“‘숲’의 오너인 임재훈입니다.”

“‘봉황당 탕제원’의 신주용입니다.”

두 바텐더는 자신에게 닿는 시선을 보며 얼른 명함을 건넨 후 다시 자리에 앉는다.

이런 자리가 처음이기에 조금은 어색해 보이는 그들의 모습이다.

“사장님도 오셔야죠? 오늘 주제는 세 분 전부니까요.”

정환 역시 그들의 곁으로 가 자리를 차지하고 앉는다. 의자를 돌려 주민경 에디터와는 마주 보는 대형을 만드는 그들.

오늘 인터뷰의 주제는 정환도, 또 다른 바텐더도 아닌 종로의 바 골목.

그 자체였다.

숲과 아실만 있을 때는 당당히 이곳이 바로 이루어진 골목이라 선언하기 부족했다.

허나, 이제는 봉황당까지 생겨 조금은 더 힘이 실린 상태.

정환은 이런 기회를 이용해 당당히 이곳을 홍보할 방법을 찾고 있었다.

그럴 때 떠올랐던 사람이 바로 아실의 단골이자 자신을 인터뷰했던 주민경 에디터.

그녀에게 언뜻 던지듯 흘린 말에 그녀는 또 어떠한 냄새를 맡았는지 곧바로 하겠다는 말을 전해왔다.

기사에서 풍기는 솔솔한 대박의 냄새는 언제나 잘 잡아내는 그녀였다.

“저번처럼 특집 기사로 크게 나가는 정도는 아닐 거예요. 이건 제 이름으로 기획해서 싣는 기사니까요. 위에서 내려왔던 지면보단 작을 수밖에 없죠. 그건 괜찮으시죠?”

“물론이죠. 이렇게 저희 이야기를 실어 주시는 것만으로도 감사한걸요.”

지면이 크고 작고는 크게 개의치 않는다. 그저 자신들의 이야기가, 첫 시작이 어딘가에 남는 걸 원할 뿐.

정환은 시작을 알리는 이런 자리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하고 있었다.

“우선 각자 운영 중인 바에 대한 소개부터 해주셨으면 해요. 그리고 서로가 모이게 된 계기. 또, 앞으로의 계획 등 주된 이야기는 골목 쪽에 맞춰가며 인터뷰를 진행할게요. 시작은 각자 이야기로 출발하면서요. 우선, ‘숲’부터 시작할까요?”

주민경 에디터는 능숙한 기자답게 인터뷰를 이끌어 갔다. 재훈과 주용은 처음 해보는 인터뷰에도 민경의 능숙한 진행에 어렵지 않게 자신들의 이야기를 전할 수 있었다.

“…한 경험들 덕분에 새로운 시도를 많이 하게 되었죠. 강남에서 스터디를 하며 만난 차정환 사장님의 도움도 많이 받았습니다. 그래서 ‘숲’에도 이런 시도를 많이 반영해 늘 도전하는 모습을 보이려 노력 중입니다. 골목에서 숲이 맡은 역할이 그런 쪽이기도 합니다.”

.

.

“…경력을 끝으로 프랑스를 떠났습니다. 바텐더로 살아갈 생각은 딱히 가지진 않았던 것 같네요. 물론, 여기 계신 차정환 사장님을 만나기 전까지는 말이죠. 음료 자체보다는 결국 이걸 마시는 사람에 집중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할까요? 덕분에 이 골목에서 전통주를 담당할 수 있게 되었죠.”

.

.

“그러셨군요. 들어보니 두 분의 이야기가 묘하게 차정환 사장님 쪽에서 겹치네요.”

“그럴 수밖에 없죠. 저희를 모으고 또 이 골목을 기획한 사람이 차정환 사장님이니까요.”

“차정환 사장님이 없었다면 이렇게 모이지도 또 바텐더로 전업을 생각하지도 못했을 겁니다.”

“그럼, 이 종로 바 골목의 중심은 차정환 사장님이다? 이렇게 봐도 되는 건가요?”

“아뇨. 아뇨. 그런 건 아닙니다. 절대요.”

이어지던 이야기를 듣던 중 자신을 향한 이야기가 나오자 정환은 얼른 손을 내저으며 이를 부정했다.

조금은 부담감이 커지는 말에 난색을 보이는 그였다.

“전 그저 의견을 물어보고 함께 해주길 권했을 뿐입니다. 다들 각자의 바를 건사하고 계시고 결단을 내린 건 두 분의 사장님이죠. 누가 중심이고 그런 생각은 전혀…”

“지금 하시는 말씀만 보셔도 알겠죠? 누가 중심인지.”

이어지는 정환의 항변을 재훈이 적절히 자르며 재치 있게 받아친다.

씨익 웃는 재훈과 주용, 그리고 민경의 표정이 제법 장난스러웠다.

‘이건 제법…’

괜찮다. 민경의 머리에는 또 확신이 스친다. 이건 아실을 처음 취재하러 왔을 때도 스쳤던 느낌.

바의 골목이라는 곳이 새로 생겼고, 그게 강남이라는 메인 스트림과는 벗어난 종로라는 것.

그리고 그런 골목을 만들어지며 모인 이들 사이에 누군가 하나 중심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

거기에 그 사람이 제법 유명하고 또 실력이 좋은 사람이라는 것까지.

대중들은 언제나 스토리가 있는 대상을 환영한다. 그리고 그 스토리에 꼭 필요한 건 그 중심을 잡아줄 인물.

여기 종로 바의 골목은 대중이 환영할 스토리도 있고 그 중심을 장식할 매력적인 인물까지 있는, 그야말로 대중이 환영할 모든 요소를 갖춘 곳처럼 보였다.

이번에도 노트가 빵빵해짐을 느끼는 그녀였다.

탁.

민경은 적당히 분량이 확보되자 노트를 접고는 인터뷰의 마지막 순서로 나아간다.

“저번 인터뷰에서 제가 아실이라는 곳을 표현할 수 있는 칵테일을 추천해 달라고 했었죠. 그때는 노네임이라는 칵테일을 보여주셨구요. 음. 이번에도 비슷하게 여쭤봤으면 해요. 여기 종로. 이 바의 골목을 표현할 수 있는 칵테일. 혹시 마지막으로 그런 잔을 보여주실 수 있을까요?”

그녀의 마지막 질문이 나오자 저마다 난감한 표정을 지어간다. 언제고 이런 질문은 실력 좋은 바텐더들에게도 어려운 법이다.

“이건 누가…?”

“세 분 모두의 잔을 맛보고 싶지만 그건 시간상 무리가 있어 보이네요. 괜찮으시다면 아무나 한 분만 나서주실 수 있을까요?”

“흠.”

“그런 거라면….”

누가 만들어도 좋다는 말에 재훈과 주용이 얼른 시선을 교환한다.

둘은 음흉한 미소를 한 번 지어 보이더니 이내.

“이런 건 대장이 해야죠.”

“맞습니다. 중심을 차지하는 분이 하는 게 맞죠.”

동시에 정환을 바라봤다.

“네? 제, 제가요?”

“에디터님이 괜찮으시다면요.”

“아실에 단골이셔서 조금 그렇나요? 그래도 어쩔 수 없긴 합니다. 이 골목을 떠올리고 또, 여기까지 만들어 온 사람이 정환 씨니까요.”

“표현도 제일 잘해주실 테죠.”

이미 작당 모의는 끝난 두 사람. 짙은 장난기와 은근한 믿음이 그들의 얼굴에 가득했다.

“하아.”

정환은 그저 고개를 절레 저으며 한숨을 토해낼 뿐이다.

“그럼, 이번에도 차 사장님께 부탁드려보죠. 떠오르는 게 없으시면 잠시 시간을 드릴까요?”

“아뇨. 실은 마침…, 또 떠오르는 게 하나 있긴 합니다.”

“거봐요. 제일 잘한다니까.”

“준비해 왔을 수도 있어요.”

지켜보던 재훈과 주용은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이다.

“그럼, 보여주시죠.”

언제봐도 예측이 불가능하고 신기한 사람이다. 그리고 대박을 안겨주는 사람.

민경은 이번에도 기대감이 가득한 눈으로 그를 지켜봤다.

정환은 터덜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로 향했다.

백바를 지긋이 바라본 정환이 손을 움직인다. 정환은 세 병의 술을 가져온 후 잔과 바 스푼을 꺼내 준비를 마쳤다.

그의 앞에는 진과 스위트 베르무트, 그리고 그린 샤르트뢰즈가 놓였다.

재료를 보더니 이내 반응이 엇갈린다. 고개를 갸웃거리는 주민경 에디터와 진한 미소를 짓는 바텐더 둘.

영문을 모르는 그녀와는 달리 재훈과 주용은 바텐더답게 정환이 만들어갈 잔을 아는 듯 보였다.

그런 시선 사이로 정환은 잔에 스푼을 대고는 그대로 술을 쌓아가기 시작했다.

제일 아래에 깔리는 술은 스위트 베르무트.

주정 강화 와인의 일종으로 무게가 가장 무거운 베르무트가 잔 바닥에 안정적으로 층을 만들어 갔다.

이건 바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기법인 플로팅일 터.

정환은 그런 예상이 부끄럽지 않게 서둘러 그 위로 샤르퇴즈마저 쌓아 간다.

검붉은 베르무트 위로 초록빛 샤르최즈가 두 번째 층을 만들었다.

두 개의 술은 조금의 섞임도 없이 각자의 층을 만들어 명확히 구분되어 있었다.

샤르퇴르마저 안정적으로 안착하자. 정환은 마지막 술인 진을 그 위로 쌓기 시작했다.

흔히들 말하는 푸스카페(Pousse Cafe) 스타일의 잔. 얼음도 없이 나온 잔이 각기 다른 술의 3색은 또 잘 어우러져 유독 보기에 좋아 보였다.

“층이 정확하네요. 색이 예뻐요. 이건 이름이 뭐죠?”

“비쥬(Bijou)라는 칵테일입니다. 정확히는 뒤에 샷이란 단어가 붙어 비쥬 샷이라고 부르는 잔입니다.”

“비쥬…라면, 불어인가요?”

“불어로 보석이라는 뜻입니다. 투명한 진이 다이아몬드, 샤르트뢰즈의 녹색은 에메랄드, 베르무트의 검붉은 색은 루비를 나타낸다고 하죠.”

“아! 그럼…! 서로 색이 다른 보석 같은 3곳의 바가 종로에서 이렇게 공존한다! 그런 의미로 이 잔을 만드신 거군요! 이야, 멋지네요!”

알려주기 전에 먼저 알아냈다. 그런 기쁨에 방긋 웃으며 목청을 높여보는 민경.

이제는 잔을 내어주며 ‘맞다.’는 답을 들려줄 법도 한데.

바텐더는 은은한 미소만을 짓고는 잔을 내어줄 기색을 보이지 않는다.

마치, 아직 잔이 완성되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

“퍼포먼스도 하나의 과정이라서요. 에디터님이 이해해주세요.”

잔이 나오지 않아 벙찐 상태로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그녀에게 옆에 앉은 재훈이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알려준다.

정환은 그런 재훈의 말을 증명하듯 계속해서 바텐딩을 이어갔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이 칵테일은 ‘비쥬 샷’이라 부르는 칵테일입니다. 세상에서 제일 색이 아름답다는 3개의 보석을 상징하죠.”

“전 당연히 그 3개의 보석이 아실과 숲, 봉황당이라 생각했는데요?”

“제 의도는 맞습니다. 하지만, 아직은 부족하죠. 조금은 조화롭지도 않고.”

“그게 무슨…?”

“이걸….”

촤아아!

!

정환은 짓궂은 모습으로 한번 웃더니 이내 정성스레 층을 나눠 만든 잔을 그대로 믹싱 글라스에 부어 버린다.

“자. 이제 한곳에 모였네요!”

“어, 어? 그래도 되는 거예요?!”

민경은 깜짝 놀란 표정을 하며 입을 쩍! 벌릴 뿐이다.

“같은 재료로, 또 기법을 스터로 바꿔 만드는 비쥬 역시 존재합니다. 제가 만들 비쥬는 사실 그쪽이죠.”

손님의 놀란 반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바텐더는 잔을 섞어 간다.

달그라아아악. 달그라아아악.

얼음까지 더 해 이어지는 그의 스터.

그리고 잔에 술을 붓기 전, 정환은 아직 스터가 끝나지 않은 믹싱 글라스에 무언가를 가져와 더하려 했다.

“비터스인가요?”

“네. 오렌지 비터스. 이게 꼭 필요한 재료죠. 스터로 만드는 비쥬에는.”

정환은 비터스를 몇 방울 믹싱 글라스에 더하고 나서야 스터를 멈출 수 있었다.

촤아아아아악!

칵테일은 이제야 완성되었다는 듯 잔을 향해 그 기세를 뿜는다.

이전과는 달리 다채롭진 않지만, 은은한 색의 칵테일이 잔에 무사히 안착했다.

정환은 이를 민경의 앞으로 밀어내고는 이제야 잔이 완성되었음을 알렸다.

“비쥬. 나왔습니다.”

“조금 전…, 그 플로팅 칵테일과는 다른 건가요?”

“정확히 말하자면 그 잔은 비쥬 샷. 또는 비쥬 푸스카페 스타일이라고 부릅니다. 클래식 바에서 그냥 ‘비쥬’라고 했을 때는 이쪽을 가리키죠.”

“흠. 뜻은요?”

이제는 포기다. 더는 이 바텐더의 의중을 따라가는 걸 포기하는 민경.

민경은 그저 노트나 펼치고는 받아적을 준비만을 마쳤다.

“종로는 지금 아실과 숲, 그리고 봉황당이 만나 하나의 골목을 이뤘습니다. 조화롭게 서로 도움도 주고받고 교류도 이어가고 있죠. 해서, 층을 나눈 푸스카페 스타일이 아닌 이렇게 스터로 조화롭게 섞인 스타일의 비쥬로 준비해 봤습니다. 종로의 골목은 우리 모두가 조화롭게 섞인 그런 곳이니까요.”

“좋은 뜻이네요. 상징성도 있고. 하지만 분명 비터스를 더하셨잖아요? 비터스는 그럼, 새롭게 생길 바에 대한 암시? 그런 건가요? 4번째로 종로에 문을 열 바텐더를 구했다거나, 혹은 구상 중이라거나?”

민경은 취재를 다니는 언론인답게 날카로운 추론을 펼쳐본다. 칵테일은 몰라도 상징과 은유는 글쟁이가 조금 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뇨. 이건, 현재의 종로 그 자체를 나타낸 게 전부입니다. 새로 생길 가게나 바텐더에 대한 상징은 담겨있지 않습니다.”

“그럼?”

“비터스 역시 현재 종로에 있는 걸 나타냅니다. 이렇게 스터로 비쥬를 만들 때는 꼭 들어가야 하는 게 비터스죠. 물론, 여기 종로의 바 골목에도 꼭 있어야 하는 걸 상징하기도 합니다.”

“흠. 꼭이라면 다른 가게나 바텐더는 아니란 뜻인데…. 어렵네요.”

“사실 샷으로 만든 비쥬도 상징으로서는 나쁘지 않았습니다만, 제가 내어드리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기도 합니다. 재료가 세 개뿐인 비쥬는 종로의 바 골목이라고 하기에는 하나가 부족해 보였으니까요.”

“지금의 종로의 바 골목에는 네 개가 존재한다? 뭘까요. 전 딱히 떠오르는 게 없네요.”

민경은 남은 힘을 발휘해 얼른 머리를 쥐어 짜본다. 허나, 쉽게 답은 나오지 않는 상황.

그런 민경의 고민을 덜어주는 건 언제나처럼 정환이다.

“거창한 건 아닙니다. 그저, 제가 말하고 싶었던 건 ‘손님’입니다.”

“손님이요?”

“손님을 떼어놓고는 바도, 바텐더도, 또 바의 골목도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하나의 바가, 한 명의 바텐더가, 또 바의 골목이 있다는 건. 당연히 그 안을 채울 손님도 있다는 뜻이니까요. 그래서 여기 종로의 바 골목을 상징하는 잔에는 꼭 하나의 재료를 더 담고 싶었습니다. 바로, 손님을.”

하.

또.

민경은 그런 생각이 들어 헛웃음을 터트린다. 이전 인터뷰에도 노네임이란 멋들어진 칵테일을 만들며 손님 타령을 하더니.

바텐더라는 족속들은 정말이지 ‘손님’ 없이는 아무런 표현도 못 하는 걸까.

은은하게 향이 퍼지는 칵테일 옆에서 똑같은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재훈과 주용까지 보이니, 그녀는 그런 생각을 감히 떨쳐낼 수 없었다.

탁.

‘정말이지…’

한결같은 이들이다. 그런 생각에 민경은 허탈하게 고개를 저으며 잔을 들었다.

은은하게 퍼지는 풀향 사이로 들어오는 진과 베르무트, 샤르트뢰즈의 맛.

그 중심을 비터스의 강한 향이 잡아줘, 마치 바라는 곳을 지탱하는 이는 손님이라 소리치는 바텐더의 외침처럼 느껴졌다.

지금 자신을 둘러싼.

이 골목에 있는 바텐더들의 모습처럼.

이 보석으로 가득 찬 골목이, 좀처럼 싫을 수가 없는 그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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