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술은 특별합니다-122화 (122/175)

122잔. 다시 살다.

3.

언제나 주인으로서, 또 바텐더로서 아실이라는 공간을 지켜왔던 정환.

그런 정환이 오늘은 손님으로서 아실의 바 테이블 바깥쪽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있다.

정환의 맞은 편 바텐더의 공간에는, 그의 스승이자 단골 바텐더인 명진이 서 있을 뿐이다.

오랜만에 그 자리에 선다면 어색함이 있을 법도 한데. 어디서 들었던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라도 있는 걸까.

1년 만에 바 안에 자리 잡은 명진의 모습에는 한치의 어색함도 찾을 수가 없었다.

“마스터. 정말 괜찮으신 거죠?”

“오랜 시간도 아닐 거고, 여러 잔을 줄 수도 없을 겁니다. 이번에도 한잔. 딱 그 정도가 전부겠지요. 허나, 산송장은 아닙니다. 그런 눈빛은 거둬주세요.”

“네. 그럼, 한잔 부탁드리겠습니다.”

정환은 재차 건강을 물으며 다짐을 받아내고 나서야 온전히 자리를 잡고 앉는다.

찾고야 싶었다. 이렇게 잔을 청하고도 싶었고. 허나, 그런 모든 생각보다 먼저 들었던 생각은.

다름 아닌 명진의 건강에 대한 걱정이었을 뿐이다.

손님까지 자리에 앉아 모든 준비가 끝나자 명진은 찬찬히 바 안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자리가 바뀐다면 바텐더도 익숙해져야 할 시간이 필요할 터. 다만, 여기서는. 그런 고민이 소용없어 보였다.

바 툴의 위치하며 백바의 정렬까지 전부 아르센과 닮아 있는 곳이 바로, 아실이었으니까.

조르르르르륵.

간단히 대화를 나누는 자리여도 챙길 건 전부 챙겨본다. 그게 이명진이라는 바텐더의 스타일. 그는 체이서를 내어놓으며 정환의 앞으로 내밀었다.

“자. 그럼, 들어볼까요. 정환 씨의 눈에 가득한 근심은 무엇인지. 또, 정우 씨가 이런 시간을 마련해 준 이유는 또 무엇일지.”

그리고 시작되는 1년여 만의 바텐딩.

바텐더가 손님에 대해 아는 게 많을수록 나오는 잔은 풍부해진다. 제일 먼저 바텐더가 해야 하는 일은 주문을 받기보다는 손님에 대해 알아가는 것이다.

“얼마 전…. 그러니까 마스터께서 귀국하시기 전에 작은 일이 있었습니다. 그레인 호텔. 정우 형이 일하는 곳에서 작은 세미나를 열었죠.”

정환은 조심히, 그리고 정확히. 지나간 날을 뱉어가기 시작했다.

나오는 이야기는 간단했다. 세미나를 열었고 거기서 우연히 한 사람을 마주했다.

그 사람은 김태현 교수의 후임이며 그레인 호텔의 F&B 총괄부장 윤현민.

그리고 그 사람이 다시금 아실에 들려 들려준 이야기까지.

“…해서, 월드 클래스 코리아 우승 정도를 갖추면 아시아 베스트 후보에 투표할 가능성이 올라가고 또, 뽑힐 가능성도 있다고…. 물론, 저도 그에 맞춰 어느 정도 그레인에 도움은 줘야 할 것 같긴 합니다. 네.”

정환은 빠르고 간결하게 지난날을 명진에게 들려줬다.

별다른 반응이 튀어나온 건 아니었다. 명진은 그저 덤덤히 자리에 서서 고개를 끄덕이며 정환의 이야기를 들었을 뿐.

모르는 일에 대해 알아가는 제일 좋은 자세는 이렇게 듣는 자세일 것이다.

“흠. 그런 일이 있었군요.”

정환의 이야기가 종극을 향해 가자 명진이 처음으로 반응이란 걸 들려준다.

덤덤한 표정으로 이해했다는 반응을 보이는 그.

그리고.

“해서, 고민은 무엇이죠?”

나오는 말은, 조금 원론적인 질문이다.

“그레인 호텔에 묶일까, 겁이 나는 건가요?”

“아뇨. 그런 건 아닙니다. 제시해준 조건도 어디까지나 절 위한 거였고 딱히 계약서를 쓰자는 말도 없었으니까요. 제가 단호하게 거절만 한다면, 딱히 문제 될 일은 없을 겁니다. 물론, 선의로 돕긴 해야겠지만요.”

“그럼, 문제는 대회 쪽이겠군요. 아니면, 아시아 베스트에 오르는 게 문제거나.”

역시나.

앞에 선 이 바텐더에게 무언가를 숨기기는 쉽지 않다. 몇 마디의 말을 듣고는 그대로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는 명진을 보며 정환은 다시금 혀를 내둘렀다.

“맞습니다.”

“그러고 보니, 정환 씨가 새삼 빠르게 달려왔다는 게 느껴지는군요. 보통은 개업 전에 대회를 경험하는 이들도 많은 거로 압니다만.”

“그렇죠…. 대부분은.”

경력이 쌓였거나 자신의 가게를 가진 바텐더들은 대회에 참가하는 걸 피하는 경향이 있다.

우승해도 본전, 만약 우승하지 못한다면 이는 곧바로 망신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부분 대회에 참가하는 바텐더들은 그리 경력이 오래된 이들은 아니다.

꾸준히 도전하다 경력이 쌓이거나 독립하면 더는 도전하지 않게 되는 것.

그건 어쩌면 이 씬에서 어쩔 수 없는 생리일지도 모르겠다.

물론, 지금 시점이 조금 애매한 감은 없지 않아 있다. 플레어 바텐딩 대회가 저물고 이제는 클래식 바텐딩 대회가 떠오르던 시기가 딱 이맘때쯤.

이때는 플레어에서 클래식으로 넘어오는 이들이 많아져 대회는 활성화되었지만, 꾸준히 클래식에만 발을 담그던 이들은 이미 경력이 차 대회에 도전하기에 부담이 되는 것도 사실인 시기였다.

딱 정우 정도 경력의 클래식 바텐더들이, 이런 애매함에 걸쳐 있는 바텐더들일 것이다.

“경력으로 본다면, 문제는 없어 보입니다만. 정환 씨는 뭐가 고민인 거죠? 실패에 대한 두려움…. 그런 건 아닐 것 같습니다만.”

명진은 정환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실상은 달라도 그의 시작과 현재까지를 모두 지켜본 이가 명진이 아닌가.

그가 보기에 정환은 이런 대회에서 떨어지거나 우승하지 못할 것을 두려워할 그런 사람은 아니었다.

당연히, 정환이 고민하는 것도 그런 건 아니었고.

‘말을…’

어떻게 해야 할까. 정환의 머리에 고민이 아린다. 이건 대회라는 단어를 듣던 순간부터 가득했던 고민이다.

이번 고민은.

이전 생을 떼어놓고 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전 생에서 이미 대회를 겪은 건 아니었다. 일본, 그것도 긴자라는 골목은 보수적이라는 특성이 있었다.

장인 정신이라는 포장이 먹히기도 하고 때로는 그게 미덕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누구에게는 답답한 전통이 있다는 뜻이다.

일본의 바씬은.

세계 대회와는 달리 독자적인 씬을 구성했다는 뜻이다.

대회에서 얻는 명성과 자국 바씬에서 얻는 명성을 철저히 분리한다. 그게 바로 일본 바씬의 특징.

따라서 일본에서 활동했던 정환은 이런 대회에 참가할 필요 자체가 없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뭐가 문제일까.

답은, 차정환이라는 사람이 겪은 하나의 기사(奇事) 때문일 것이다.

회귀.

정환이 쉽사리 대회 참가를 결정하지 못하고 있는 건 바로 그 이유 때문이었다.

이전 생이라는 게 존재했기 때문.

회귀한 이후로 정환은 많은 걸 바꿨다. 아르센이 아름답게 퇴장할 수 있도록 바꿨고 눈앞에 선 바텐더의 삶 역시 바꾼 것이 정환.

정우와 기준, 그리고 윤수와 재훈, 주용에 또 다른 손님까지 합한다면, 어쩌면 정환이 바꾼 것들은 상상보다 더 많을지도 모른다.

허나, 정환은 그 많은 걸 바꾸면서도 한 번도 다른 이의 정해진 미래에 크게 간섭한 기억은 없다.

누군가를 실패로 이끌지도 않았고 누군가가 가졌어야 할 무언가를 뺏은 적도 없는 것이 사실.

회귀라는 거창한 말이 붙었지만, 소소하다면 제법 소소하게 살아온 게 바로 정환일 것이다.

그래서 정환은 대회에 대해 고민했다. 아실이라는 곳을 처음 문 열 때도 오갔던 말이 대회 수상.

김태현 교수는 홍보 방법을 떠올리며 정환에게 대회 참가를 권유했던 적도 분명 있었다.

그때도 정환이 답을 망설였던 건 또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이전 생에서도 분명하게 월드 클래스 코리아라는 대회는 개최되었었다.

이때는 아직 정환이 바텐더라는 삶을 살기도 전.

그리고 당연히 있었을 단 한 명의 우승자.

정환의 고민은 거기에 닿아 있는 것이다.

‘내가 만약 우승이라도 하게 된다면…’

누군가가 가졌어야 할 트로피를 뺏게 되는 건 아닐까. 아직은 다른 누군가의 것을 뺏어와 자신의 것으로 가지는 것에 망설임이 있는 그였다.

망설임은 곧장 입으로 나타난다. 우물거리며 쉽사리 입을 떼지 못하는 정환의 모습.

명진은 그런 제자를 보며 무언가를 알아채는 모습이다.

“또…. 건방진 생각을 하고 있는 모양이군요.”

!!

“네?”

“정환 씨는 늘 그랬죠. 면접에 찾아와 마티니를 만들었을 때도, 손님을 배웅하며 골목 끝에서 그림자가 사라질 때까지 고개를 숙일 때도. 또, 선배를 위해 몰래 다른 술을 건넬 때도. 늘. 다른 바텐더들이 어떻게 하면 기가 죽지 않을까. 그것만을 고민하는 것 같더군요.”

“마스터. 저는…”

“마치. 자신의 실력이 객관적으로 어느 정도인지 아는 사람처럼.”

!!

발가벗겨진 기분이라는 게 이럴 때 쓰는 말일까. 정환은 자신의 지난 모습을 꿰뚫으며 이를 그대로 말하는 명진을 보며 할 말을 잃고 만다.

모습이야 보였더라도 그 속에 숨은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을 줄은 몰랐던 그였다.

“…….”

이 바텐더의 앞에 서면 언제나 말이 적어지게 된다. 전해지는 건 많아도 말이다.

“마스터. 여쭤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

“말씀하시죠.”

“김태현 교수님께서 아르센을 아시아 베스트 후보에 올리려 하신 적이 있으셨다고 하셨습니다. 사실인가요?”

“3년 전 정도겠군요. 분명 있었던 일입니다.”

“거절하셨다고….”

“그랬었지요.”

“이유를 여쭤봐도 될까요?”

정환은 그 시절 명진이 자신과 비슷한 고민을 했을 거라. 그렇게 추론하며 질문을 이어갔다.

언제나 씬을 생각하며 후대에 이어질 바텐더들을 고민하던 이가 명진이라는 바텐더.

그런 이가 아시아 베스트라는 명예를 포기한 이유는 젊고 유능한 다른 바텐더에게 기회를 주기 위해서였을 거란 게 정환의 추론이었다.

하지만.

“설마, 제가 다른 이들을 위해서 그걸 포기했을 거란 그런 생각을 하는 겁니까?”

!

명진의 입에서는 조금 결이 다른 답이 나온다.

“그게 아니라면…?”

“이룬 게 많아 시야가 흐려졌군요. 언제나 정답을 알던 사람이 정환 씨였거늘.”

“…….”

언제나 명진과 같은 생각을 하며 명진의 입에서 답이 나오기 전에 답을 찾아내던 이가 정환이었다.

오늘은 정답을 맞히지 못하는 정환을 보며 명진이 손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답은 나온 것 같군요. 지금 당신에게 필요한 한잔.”

“네?”

“주문은 받지 않겠습니다. 오늘 당신에게 필요한 잔은 바로 이 잔일 테니.”

손님의 주문도 없이 잔을 만들어 가는 명진의 모습. 마치, 누군가를 꾸짖듯이 거침없는 손놀림이 아실의 바 테이블 위를 쓸어갔다.

진과 코앵트로, 릴렛 블랑, 그리고 레몬주스가 차례대로 셰이커에 담긴다.

마지막으로 더해지는 건 한 방울의 압생트. 향이 강한 압생트는 때로는 이렇게 한 방울로만 사용되어 맛을 돋보이게 만들어 주곤 했다.

명진은 언제나처럼 완벽한 모습으로 도구를 정리한 후 셰이커의 캡을 닫았다.

착! 하고 닫히며 바람이 빠지는 소리가 1년의 공백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시작되는 그리운 소리.

샤카! 샤카! 샤카! 샤카!

완벽이라는 말에 가까울 정도로 청아한 소리가 정환의 귓가에 닿는다.

언제 들어도, 정말 아름다운 소리였다.

‘이건…’

은퇴한 사람의 손놀림이 아니다. 정환은 명진이 아직 온전히 모든 걸 내려놓은 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촤아아아아아악!

셰이킹이 끝나자 한줄기 술이 잔으로 떨어진다. 높은 위치에서도 조금의 흐트러짐 없이 내려오는 술 줄기.

마티니 글라스라 불리는 잔이 전부 차자, 이내 명진은.

촤악!

이라는 깔끔한 소리와 함께 셰이커를 한편으로 갈무리했다.

마지막으로 더해지는 건 오렌지 껍질을 이용한 트위스트. 가니쉬로 이를 올리고 나서야 명진은 잔을 정환의 앞으로 밀어낸다.

“이름은 말하지 않아도 알겠죠?”

“콥스 리바이버(Corpse Reviver)…. 넘버 2군요.”

“뜻도 아시나요?”

뜻을 물어오는 스승의 물음에 제자는 쉬이 답하지 못한다. 정환의 얼굴에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당황이 아리고 있다.

콥스 리바이버란 술. 그 이름의 뜻은.

“죽은 자를 다시 살게 한다는… 뜻입니다.”

제법 정환에게 가까웠기 때문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