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술은 특별합니다-114화 (114/175)

< 114잔. 재즈와 블루스, 그리고. >

3.

알려야 할까.

아니면, 무슨 도움이라도?

정환은 순간 그런 고민에 어떠한 반응도, 또 말도 멈추고는 잠시 바보가 되어 버렸다.

회귀라는 걸 겪은 사람에게 따라오는 딜레마가 처음으로 그를 덮친 것이다.

허나, 이내 따라오는 생각은.

- 콜록. 콜록.

독한 기침을 내뿜는 손님 덕에 조금 명확해진다.

이미 늦었다는 것. 정환은 이를 모르지 않았다.

사람의 몸이란 한순간에 생명을 잃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점진적으로 시간을 두고 불꽃을 꺼트려 간다.

지금 앞에 있는 손님 역시 그러할 터.

정확한 사인(死因)이 기억나진 않는다. 허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

정환은 그것만은 또렷이 기억할 수 있었다.

“······.”

“너무 그러지 않아도 된다네. 허허. 벌써 가게는 몇 번이나 문을 닫아 봤으니. 어쩔 수 없는 숙명인 거지. 누구의 잘못도 아니고, 이 나라의 흐름이 그런 거니.”

격하게 식어가는 정환의 얼굴을 보고는 손님은 가게 이야기를 들어 그러는 거란 예상을 한다.

자신의 훗날을 내다보는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하는 그였다.

앞으로 있을 그의 훗날과는 별개로 그의 이야기는 제법 정환에게도 와닿는다.

한국에서는 라이브 바를 운영하기가 쉽지 않다는 그의 말. 정환 역시 그런 사정을 모르진 않았다.

라이브 바는 단순한 음식점이나 술집, 또 바. 그 이상 가는 인건비가 드는 곳이다.

음식과 술을 준비하는 인원부터 서빙 하는 인원도 많고 거기에 연주하는 음악가들에게 지불 해야 할 돈도 있지 않나.

발전한 경제상 만큼 올라 버린 인건비를 생각하면 이를 유지하는 것만도 무리가 있어 보였다.

거기다 주가 되는 건 어디까지나 음식이나 술이 아닌 음악. 필연적으로 음식이나 술의 질이 다른 곳에 비해서는 떨어질 수밖에 없는 곳이다.

다른 가게라면 이런 특성을 안고도 회전율을 좋게 돌려 이를 타파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허나, 라이브 바는 다른 법.

라이브 바는 짧게는 40분, 길게는 90분에 이어지는 공연이 있는 곳으로 한번 공연이 시작된 후로는 테이블 회전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특성이 있는 곳이었다.

공연비 면목으로 입장료를 받는다고는 하지만 이건 고작 오천원에서 만원 정도가 전부.

극악의 회전율을 고려하면 이 역시 부족한 건 당연한 이야기였다.

80년대부터 90년대까지 거리를 가득 채웠던 라이브 바와 라이브 카페가 사라진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아쉽습니다. 좋은 곳이었다고···”

“흠. 뭐. 어쩔 수 있나. 듣는 이가 없으면 음악도 그저 소음일 뿐인데.”

듣는 이가 없는 음악도 마시는 이가 없는 술도 모두 공허할 뿐이다. 이를 잘 알기에 정환은 그의 심정이 더욱 크게 다가왔다.

“그럼, 이제는 음악을 접으시는 건가요?”

“글쎄올시다. 후우.”

수영은 앞으로를 묻는 말에 길게 담배 연기만을 내뿜는다. 슬쩍 웃음을 지어 보이는 모습. 정환은 사람의 웃음이란 게 이렇게 무거울 수도 있다는 걸 오늘에야 새로 알았다.

두 사람의 뒤로는 재니스 조플린의 절규 같은 외침이 들려오고 있었다.

- 쓱. 쓱.

“일단은 다른 곳에 가서 다시 도전해볼 생각이네. 배운 게 도둑질이라서 말이지.”

그럴 줄 알고는 있었다. 이미 듣기로는 그는 죽을 때까지 라이브 바를 계속 운영하고 있었다고 했다.

그때도 언제나 연주되고 있던 곡들은 블루스. 자신이 판 우물은 한결같이 지켜온 그였다.

“부산에 괜찮은 자리가 있다더군. 광안리라고 들어봤나? 거기 해변가라면 괜찮을 것도 같아서. 거기서, 재기를 노려봐야겠지. 잘 될지는 모르겠지만.”

잘되진 않는다. 이를 알지만, 정환은 감히 나설 수가 없었다.

“잘되실 겁니다.”

“그런가? 자네가 이 맛있는 진토닉 만드는 법을 알려준다면 그럴 수도 있겠군. 어떤가? 하하. 무리한 부탁인가?”

“얼마든지요.”

“이렇게 쉽게?”

“별다른 기교가 들어간 건 아닙니다. 그리고 라이브 바에서 파시기에는 이게 더 어울리실 겁니다.”

정환은 손님을 잡고는 이런저런 칵테일에 대한 강론을 풀어갔다. 나온 말은 전부 어디서 들어본 말이다.

술을 마시고 온 다음이라 지금의 진토닉이 좋았을 거란 말부터 라이브 바에서 팔기에는 톰 콜린스가 더 어울릴 거란 말까지.

간단하지만, 알짜배기 같은 팁을 정환은 진심과 함께 그에게 전했다.

귀를 기울이고 듣는 이의 표정이 완연하게 펴졌다.

“이렇게만 하면 자네가 만든 것처럼 맛이 난다는 말인가?”

“비슷한 맛은 날 겁니다.”

“완전히 같다는 말은 아니고.”

“완전히 같지는 않을 거라서요.”

“하하하하! 이 친구. 보면 볼수록 마음에 들어! 콜록! 콜록! 흐허허허! 그래. 그런 자부심. 중요하지. 우린 그런 거로 사는 이들이니까.”

정환은 왁자지껄하게 웃어넘기는 손님에게 진한 미소로 답한다. 겸손함이 제아무리 미덕이라고 해도, 세울 때는 자신의 것을 똑바로 세우는 정환이었다.

“보자. 자네가 이걸 알려줬으니, 난 뭘 해줘야 하나? 완전 같지는 않아도 자부심에 가까운 걸 알려줬으니 무어라도 보답은 해야 할 텐데.”

“무리한 부탁이 아니라면, 싸인을 한 장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싸인? 내 싸인? 이렇게 대작까지 해놓고, 고작 싸인? 그거면 된다는 건가?”

“괜찮으시다면, 1집 앨범에.”

“하하하하하하! 이거 인제 보니 완전 능구렁이일세. 아쉽지만, 그건 힘들겠군. 내 1집은 나도 없으니 말이야. 완전히 망한 앨범이라.”

“아쉽네요. 꼭 가지고 싶은 앨범이라서요. 대신, 다음에 구하시면 한 장 보내주시죠. 그거면 됩니다.”

“그러지. 내 꼭 그럼세. 여기로 보내면 되겠나?”

“와주시면 제일 좋죠. 우선, 제 명함입니다.”

“차정환이라. 좋은 이름이군. 기억하겠네.”

그저 다음이나 기약해 보자. 정환은 그런 희망으로 명함을 건네고는 말을 마쳤다.

담배를 비벼 끈 손님은 몸을 일으키려 준비를 마친다.

“한잔했으니, 이젠 가봐야겠군. 오늘 좋은 시간이었네.”

“벌써 가시려고요?”

“벌써라니. 사람. 체력도 좋군. 젊어서 그런가? 시간이 몇 시인데.”

“그럼, 딱 한 잔만 더 하고 가시죠.”

자리를 뜨려던 손님을 정환이 잡는다. 정환은 무언가 건네고 싶은 잔이 있는 듯 또 평소답지 않게 군다.

평소라면 정환은 손님이 자리를 뜨려 할 때 잡는 사람이 아니다.

“이상한 바텐더로군.”

“꼭 드리고 싶은 잔이 한잔 있습니다. 마셔 주셨으면 합니다.”

“···내게 말인가?”

“네.”

단호한 정환의 답에 수영은 잠시 진중한 표정으로 바텐더를 한번 보고는 다시 자리에 앉는다.

정환은 감사를 표하며 고개를 한번 숙였다. 둘 사이로는 여전히 재니스 조플린의 음악이 흘러나온다.

“그럼, 또 한 잔 더 안 할 수가 없지. 한 잔 줘 보게. 내게 주고 싶은 한잔이 무엇인지.”

손님의 허락이 떨어지자 정환이 분주히 움직인다. 여러 재료를 챙겨온 정환이 다시금 바텐딩을 시작한다.

“바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원 포 더 로드(One For The Road). 들어보신 적, 있으신가요?”

“원 포 더 로드? 처음 듣네만.”

“바에서는 길에 나서기 전 마시는 마지막 한잔을 원 포 더 로드라고 부릅니다. 흔히들, 작별을 위한 잔이라고도 부르죠.”

“월컴 드링크와는 반대의 개념이란 말이군. 지금도 딱이고.”

“또, 먼길을 가시는 분에게 보내는 응원이기도 합니다.”

“···부산, 말인가?”

먼 길이란 바텐더의 말에 수영은 조금 전 자신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이제 부산으로 내려가 준비할 거란 말에 대한 답일 거라, 그렇게 예상하는 그.

허나, 정환은 그 말에 따로 답을 하진 않았다.

“재니스 조플린의 음악은 어떠셨나요?”

“말해 뭐하겠나. 최고였지.”

“평소에도 좋아하시구요?”

“팬이냐는 말인가? 그렇다면, 예스. 그게 답이네.”

재니스 조플린의 팬이란 말에 정환이 밝게 웃는다. 다행이란 생각이 스친 것 같은 그의 얼굴이다.

배경에는 여전히 조플린의 걸걸한 음성이 [Piece of my heart]를 열창해 갔다.

“아시겠지만, 재니스 조플린은 대표적인 27클럽의 멤버였습니다. 요절···이란 말이 딱 어울리는 비운의 천재였죠. 그런 그녀가 죽었을 때, 주변에는 있었던 건 무엇인지 아시나요?”

“말보로 레드 한 갑과 그 잔돈인 4달러 50센트. 너무 쉬운 문제군.”

“정답입니다.”

단박에 나오는 손님의 답에 바텐더는 정답을 외친다.

하지만.

“아쉽게도, 3분의 2정도만요.”

!

“더 있다는 말인가?”

이어지는 말이, 제법 의외였다.

“딱 한 가지. 딱 한 가지의 물건이 죽은 재니스 조플린의 주변에 더 놓여있었습니다. 전해지는 말에 의하면, 조플린의 시신 바로 앞에 놓여있었다고 하죠.”

바텐더는 놀란 손님의 모습이 재밌어, 한 번 웃고는 마저 답을 알려준다.

테이블 아래에서 무언가를 하나 가져온 그가, 마지막 답을 손님의 앞에 내려두었다.

위스키와 닮은 듯, 조금은 다른 병이 그의 앞에 놓였다.

“이건···?”

“서던 컴포트(Southern Comfort)라는 술입니다. 재니스 조플린이 평생 달고 다니며 애용했던 술이죠.”

“아, 아! 써코! 풀네임은 몰라도 그런 줄임말 정도는 들어 본 것 같네. 맞나?”

“맞습니다. 앞글자를 따, 미국 본토에서는 그렇게도 부릅니다.”

손님은 또 한 번 신난 표정을 지으며 술병을 자신의 앞으로 가져가 연신 훑어보기 바쁘다.

원래 술병에 손을 대는 건 바텐더의 허락이 있어야 하지만, 오늘은 이런 것에 신경 쓰지 않는 정환이다.

“이게 그 써코였군. 이걸 실물로 보긴 처음인데! 지금이야 손가락만 움직여도 자료가 쫙! 나오는 세상이지만 예전에는 라디오로나 전해 들었던 세상이니까. 하하! 이거 완전히 잊고 있었구만! 그래, 재니스 조플린하면 써코였지! 원 포 더 로드로 재니스 조플린의 술이라! 좋지!”

“미국에서는 대중적인 술입니다. 위스키처럼 보이지만 정체는 리큐르. 맛에는 강한 복숭아 향이 도는 달콤한 술입니다. 미국에서 대학 생활을 보낸 사람들에게는 추억으로 떠오르는 일 순위라고도 하죠.”

“그런가? 유명한 술이었군! 재니스 조플린이 좋아했던 술이라! 자네가 내게 주려던 술이 이건가?”

“맞습니다. 대신, 그냥 드시면 너무 달아서요. 진토닉처럼 토닉 워터나 콜라를 타서 드셔보시는 게 어떨까요?”

“우선은 스트레이트로! 왜 재니스 조플린이 평생 이 술을 마셨는지 이참에 한 번 알아보세!”

술이 있고 담배가 있고 음악이 있으니 기분이 좋아진다. 헌데, 그 술과 담배, 음악이 하나로 연결되니 오죽하겠나.

거기에 연결이 되는 지점은 자신이 좋아했던 가수. 어떤 손님이라도 여기서는 목소리를 높일 수밖에 없을 상황.

바텐더가 손님에 대해 자세히 알면 알수록, 이렇게 잔은 풍부해지는 법이다.

정환은 마치 어린아이처럼 방방 뛰는 손님 앞에서 빠르게 손을 움직였다.

작은 노징 글라스에 위스키와 닮은 색의 술이 한모금 내려왔다.

향은 복숭아의 향을 그대로 품은 듯한 향. 거기에 조금은 튀는 듯한 술 향기가 제법 강한 느낌이었다.

“사실 재니스 조플린이 왜 이 술을 좋아했는지는 굳이 마셔보지 않아도 알 수는 있습니다.”

“알 수 있다? 어떻게?”

“재니스 조플린의 출신이 어딘지, 혹시 아시나요?”

“남부. 재즈와 블루스가 탄생한 그 지역이지. 정확히는 몰라도 거기까지는 알고 있네.”

“맞습니다. 남부. 그 남부 때문입니다.”

“재즈와 블루스, 재니스 조플린의 출신···. 이거 생각보다는 어려운데?”

처음으로 손님의 답이 막힌다. 술에 대해 공부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여기서부터는 조금 어려울 수도 있다.

그래도 괜찮다. 여기는 바니까. 앞에는 이를 알려줄 유능한 바텐더가 있다.

“이 서던 컴포트 역시, 남부의 술이기 때문입니다.”

!

“흠. 같은 지역 출신이라 이 술을 마셨다? 재밌군. 출신지도 또 자신이 연주하는 곡도. 모두 이 술에 들어 있다는 그런 뜻인가?”

손님의 추론이 제법 날카롭다. 예술가 특유의 사고방식이 나쁘지 않아 정환은 고개를 끄덕인다.

정환은 손님이 만져 조금 틀어진 병을 똑바로 세워둬 라벨이 정면으로 향하게 돌려두었다.

“그런 의미도 분명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저는 조금 다르게 생각합니다. 아마 이 술의 이명(異名) 때문은 아닐까, 하고요. 재즈와 블루스가 시작된 남부. 그리고 그런 남부를 상징하는 이 술.”

‘Souther Comfort.’라 적힌 라벨이 손님을 정면으로 응시했다.

“이 술의 또 다른 이름은, ‘남부의 자부심(Pride of South.)’입니다.”

****

1. 서던 컴포트(Southern Comfort).

- 버번 위스키에 여러 향과 맛을 더해 나온 술이 서던 컴포트입니다.

- 1800년대 후반, 버번 위스키의 질이 들쭉날쭉해 불만이던 '헤론'이라는 바텐더에 의해 만들어진 술입니다. 공장화가 덜 진행되었던 당시 버번은 매번 맛이 달라 때로는 마시기 힘들었다고 합니다.

- 미국에서는 추억의 술, 또는 젊은 시절의 술 정도로 통합니다. 값싼 가격, 그리고 마시기 쉬운 맛 등으로 대학생들이 한때는 즐기던 술입니다.

- 위스키처럼 생겼고 또 때로는 위스키로 아시는 분도 있습니다. 허나, 스피리치(증류주)에 다른 맛을 더한 이런 술은 리큐르로 분류됩니다.

- 복숭아 맛과 향이 강합니다. 스트레이트의 경우 복숭아 맛 감기약. 이라고도 하죠.

- 토닉 등의 방법이 있지만, 개인적인 추천은 콜라! 입니다. 서던 콕!은 버번 콕 이상의 맛입죠. 헤헤.

- '재니스 조플린'이라는 가수가 매우 애정했던 술입니다. 27세 클럽이자 3J의 일원인 그녀는 매일 서던 컴포트에 취해 있었다고 합니다.

- 재밌는 건, 매일 취해있었기에 매일 지니고 다녀고 덕분에 사진이 찍힐 때면 언제나 서던 컴포트 역시 함께였습니다. 돈 안 받고 엄청난 광고를 해준 거죠.

- 덕분에 서던 컴포트는 어마어마하게 팔려 나갑니다. 남부 출신에 남부의 음악을 하는 그녀가 남부의 술을 매일같이 마시니, 자부심 강한 그 남부 사람들이 가만히 있었을 리가 없죠.

- 재니스 조플린 당시의 서던 컴포트는 지금과 많이 다르긴 했습니다. 그때는 도수가 대략 50도. 이후 몇 번의 변화를 거치고 지금은 50도도 있고 그 아래의 도수도 있습니다.

- 재니스 조플린의 추천곡 : Try, Piece of My He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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