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3잔. 술, 담배, 그리고 음악. >
2.
“날 압니까?”
길거리 삐끼가 있을 법한 곳도 아닌데. 사내는 조금 이상하게 정환을 보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팬입니다. 가수, 최수영 님. 맞으시죠?”
!
자신을 알아보는 말에 중년인이 깜짝 놀란 표정을 짓는다. 가수라면 제법 얼굴이 알려졌을 법도 한데, 그는 왜 이리 놀라는 걸까.
정환은 그 이유를 모르지 않아, 씁쓸하게 웃었다.
그가 놀라는 이유는 별다른 게 아니다. 그는 철저히. 평생을 무명 가수로 살았기 때문이다.
“허어. 젊은 친구가 날 안다니···. 어떻게?”
“일전에 운영하시던 라이브 바에서 공연하시는 걸 본 적이 있습니다. 공연을 보고 팬이 되었습니다. 1집 앨범은 정말 명반이었죠.”
정환이 조금 가까이 다가서며 유려한 말을 뱉어내자 사내의 표정이 조금 풀린다.
늘 자신이 운영했던 라이브 바에서 공연했던 그였기에 말은 앞뒤가 맞아 보였다.
‘거짓말이지만···.’
실상은 조금 달라도 말이다.
실은 정환은 저 사람을 이렇게 직접 마주하는 건 처음이다. 적어도 정환이 저 최수영이라는 사내를 알게 되는 건 못해도 몇 년이 흐른 후의 일.
일본에서 우연히 들렀던 오래된 LP 바에서, 그곳의 마스터가 정환이 한국인이란 말을 듣고는 틀어준 LP 속의 목소리가 바로 저 최수영이란 사내의 목소리였다.
걸걸하지만 절절한, 애환이 담긴 그의 목소리가 며칠은 잊히지 않았다고, 정환은 그날을 그렇게 기억하고 있다.
이후 집으로 돌아와 정환은 그에 대해 무작정 찾아보기 시작했다. 때는 대 유튜브의 시대. 적지 않은 자료를 찾아볼 수 있었고 그가 라이브 바에서 공연했던 오래된 영상을 정환은 화면이 닳도록 시청했던 기억이 있다.
화면 속에서 봤던 얼굴을 실제로 마주치니, 정환은 반가움에 그에게 먼저 다가가고 만 것이다.
평소라면 이렇게 호객 같은 행위는 절대 하지 않는 그였다. 허나, 오늘만은. 그래, 오늘만은. 정환은 조금 사심을 채워 그를 아실 안으로 부르고 싶을 뿐이었다.
“크흐흐. 그 망한 앨범 말인가? 아아. 이런. 말이 나도 모르게···”
“편하게 하셔도 됩니다.”
“그래요? 그럼. 허허. 이거, 내 팬이라니까 그냥 가기도 뭣하군.”
“최 사장. 뭐 해? 안 가?”
아실의 대문 앞에서 대치 중인 두 사람에게 지인이 다가온다.
함께 길을 나서던 이가 뒤처지니 얼른 쫓아 와본 것이다.
“아. 내 팬이라지 않나. 그냥 갈 수가 있어야지. 흐흐. 한잔 더 하고 가야 할 거 같네. 먼저 들어가.”
“으잉? 최 사장 팬? 허허. 젊은 친구가 취향 하고는. 그럼, 나 먼저 가네? 너무 많이 마시지 말고!”
“쓸데없는 소리는. 들어가.”
손님은 그런 지인을 먼저 돌려보내고는 정환의 뒤쪽에 있는 아실을 슬쩍 살펴본다.
“여긴, 바인가?”
“네. 클래식 바입니다. 칵테일을 다루고 있습니다.”
“칵테일이라. 고상한 곳은 질색인데.”
“마침, 영업이 끝나서요.”
“응? 영업도 끝났는데? 괜찮겠나?”
“다행히 작은 곳이고 제가 운영 중인 곳입니다. 편하게 들어오셔서 한잔, 하고 가시죠. 영광일 겁니다.”
“허허. 영광은 무슨. 사람 말하는 거 하고는. 팬이 초대하는데 그냥 갈 수가 있나. 어디, 내 팬 만나는 게 쉬운 일도 아니고. 들어감세. 내 한잔하고 갈 테니.”
다행히 정환의 호객이 그리 기분 나쁘지 않은 모양이었다. 손님은 팬이라는 말에 기분이 좋은지 연신 웃음을 지으며 정환을 따라, 아실 안으로 들어섰다.
취기가 조금 얼큰한 얼굴이지만, 그게 그의 원래 얼굴일지도 모른다.
“좋은 곳이군. 이런 본격적인 곳 같기도 하고.”
“그러신가요? 평범한 가게입니다. 편하게 즐겨 주세요.”
팬이라는 말 때문일까. 아실 안으로 들어선 그는 정환과 친근하게 대화를 나눈다.
말이 조금 짧게 느껴지지만 정환이 허락했고 또 호탕한 어투였기에 딱히 거부감은 들지 않았다.
흰 머리가 제법 자리한 그의 나이 역시, 거부감이 들지 않는 원인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흠.”
손님은 아실 안을 한번 둘러 보고는 품을 더듬거리더니 무언가를 하나 테이블 위로 올려 둔다.
빨간 담뱃갑이 하나 테이블 위로 올라왔다.
“여기, 재떨이입니다.”
“혹시나 했는데, 괜찮으려나? 요즘은 실내 금연이다, 뭐다. 말이 많아서.”
“말씀드렸지만, 영업이 끝난 후라서요. 편하게 피셔도 됩니다.”
“그럼, 감사히. 이거 없으면 영 기분이 안 나니. 흐흐.”
- 타, 탁.
- 콜록, 콜록.
불이 붙은 연초는 작은 연기를 뿜으며 아실 안을 채워갔다. 그와 동시에 뿜어지는 손님의 기침.
늘 있는 일인 듯 그는 대수롭지 않게 기침을 얼른 떼어 냈다.
취기는 눈에 가득하고 담뱃재는 대충 털어 댄다. 정리되지 않은 듯하면서도 나름 정갈한 차림새.
연기를 연신 뿜는 그의 모습이 상상 속의 그 모습 그대로라 정환은 싫지 않아 웃어 보였다.
“드시고 싶은 걸 편히 주문하시면 됩니다.”
“그럼 진토닉으로 할까. 칵테일이라고 해봤자, 아는 게 별로 없어서. 아. 우리 가게는 와 봤나?”
“압구정. 맞으시죠? 한 번이지만, 신입생 시절에 들른 적이 있습니다.”
“음. 뭐. 우리도 진토닉이나 잭콕 정도는 팔고 있지. 그래도, 여기서 잭콕을 시키는 건 조금 그렇지 않나. 하하. 그건 콜라가 전부니.”
“그럼, 진토닉으로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딱히 극적인 한 잔을 주고 싶어 그를 불러들인 건 아니었다. 그저 한때는 큰 위안을 받았던 음악이었고 그 음악을 만든 사람이었기에 한번 이렇게 모시고 싶었던 게 정환의 마음.
정환은 우연히 마주친 그에게 정성이 가득 담긴 진토닉을 만들어 갔다.
뇌리에는 지난날 들었던 그의 음악이 떠다닌다. 일본에 정착 후 힘든 시간을 보낼 때, 또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 한참을 고민할 때.
정환에게 힘이 되어 주었던 건 다름 아닌 그의 음악.
‘제목이 ‘이젠 한마디 해볼까.’ 였지.’
정환은 문득, 그때 그가 불렀던 아련한 노랫말이 떠올랐다. 마침 일본에서도 더 큰 일자리로 옮길지 말지를 고민하던 그에게 그의 노래는 큰 힘이 되어 주었었다.
“여기 진토닉, 나왔습니다.”
“아. 고맙네.”
잔이 나오자 손님은 가볍게 담배를 비벼 끄고는 얼른 잔을 들어 올린다.
어디서나 접할 수 있는 진토닉이 그의 입술을 적셨다.
자신이 운영하던 가게에서 팔기도 하는 만큼 흔한 술에 대한 기대는 그의 얼굴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 호르르륵.
한잔이 그대로 그의 혀를 적시고 목을 넘는 순간, 그의 얼굴이 크게 흔들린다.
음악이라는 예술을 하는 이라서일까. 제법 표현력이 좋은 표정이다.
“이건···, 내가 알던 진토닉이랑은 전혀 다른 맛이군.”
“입에 맞지 않으신가요?”
“그걸 말이라고···. 말도 안 되게 맛있군. 여기에 비하면 내가 파는 건 쓰레기였어. 쓰레기. 허어. 최고네.”
조금의 거짓도 보태지 않은 솔직한 말이다. 수영은 그렇게 생각하며 혀를 끌끌 찼다.
어디서 배운 적은 없지만, 진토닉이야 진과 토닉 워터만 있다면 누구나 탈 수 있는 게 아닌가.
그런 가벼운 생각에 라이브 바에서 판매하던 메뉴가 바로 이것. 허나, 지금 자신이 마신 잔은 가게에서 팔던 그런 진토닉과는 궤를 달리하는 맛이었다.
“정말 진과 토닉 워터 말고는 안 쓴 건가?”
“네. 들어간 재료는 진과 토닉 워터, 그리고 레몬이 전부입니다.”
“헌데, 이런 맛이라? 바텐더는 역시 다르다는 건가. 신기하군.”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만족하셨다니, 더 기분이 좋습니다. 꼭 이런 맛있는 잔을 한잔 대접하고 싶었습니다.”
- 타, 탓.
- 콜록. 콜록.
손님은 기침을 하면서도 다시금 담배에 불을 붙이고는 연기를 내뿜는다.
그의 얼굴에 잔잔한 미소가 안겨 기분이 좋아 보였다.
“술도 있고 팬도 있고 담배도 있군. 이 정도면 최고의 날이지. 아. 음악은 없으려나?”
정환은 음악을 청하는 손님의 요청에 뒤로 돌아 작은 CD플레이어를 건드린다.
한 장의 CD가 쏙! 하고는 기계 안으로 빨려 들어가자, 기계는 빙빙 도는 소리를 내며 시동을 걸기 시작했다.
“여전히 CD를 쓰나? 요즘은 다들 컴퓨터로 하던데.”
“전 이게 편하더라구요. 플레이리스트를 따로 만들지 않아도 음악이 통일성이 있구요.”
“그 맛에 앨범을 사는 거지. 하하.”
플레이어는 시동이 걸리자 이내 음악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리드미컬하면서도 강렬함이 숨은 기타 소리가 잔잔히 스피커를 때리며 아실을 채웠다.
- 씨익.
- 콜록. 콜록.
“내 팬이 맞군. 블루스라니.”
음악이 나오자, 손님은 연기를 케케하게 뿜으며 입꼬리를 올렸다.
그가 연주하고 노래하는 장르 역시, 언제나 블루스였다.
한 우물만 중창 파는 그런 사람이 바로 이 최수영이라는 사람이었다.
한때는 블루스 장르가 잠시 유행의 바람을 탄 적도 있지만, 현재는 한층 저문 상태.
그래도 그는 늘 블루스 곁을 떠나지 않으며 한결같이 자신이 빠져든 음악에 그대로 투신한 그런 사람이었다.
그런 그의 삶이, 오히려 그의 음악을 더욱 돋보이게 만든 건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원래는 연주곡 위주로 트는 편입니다만, 말씀드렸듯이 지금은 영업이 끝났으니까요.”
“쉿.”
자연스레 평소와 다름을 설명하는 정환의 말을 손님이 가로막는다. 그는 눈까지 감고는 담배와 술, 그리고 음악을 즐겨간다.
- 콜록. 콜록.
콜록거리는 소리는 아니었지만, 이 역시 정환의 상상 속 모습, 그대로였다.
“재니스 조플린! ‘Try’로군!”
수영은 블루스 가수답게, 얼른 블루스의 거장인 목소리의 주인공을 알아본다.
한때는 미국을 강타했던 매력적인 보이스의 블루스 가수, 재니스 조플린의 노래가 스피커를 타고는 그의 귀에 닿았다.
“볼수록 마음에 드는 바텐더군. 하하. 재니스 조플린이라니. 재즈나 틀면 다행이라 여겼는데!”
“좋아하는 앨범이고 좋아하는 곡이라서요. 마음에 드셔서 다행입니다. 재즈보다는 블루스를 좋아하는 편입니다.”
“암. 그래야지. 내 팬이라면. 하하. 블루스와 재즈의 차이를 아는 것 같아 더 마음에 들고.”
“감사합니다.”
“보통은 말야. 재즈를 아주 고상한 음악이라고 아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건 아주 잘못된 상식이지. 암. 재즈는 블루스와 형제 같은 음악이라고. 이제야 고상한 티가 묻은 음악이긴 해도, 재즈 역시 한때는 반항의 상징이었으니까. 알고 있나?”
“클래식 외에는 취급이 좋지 않았던 시기였다고 들었습니다. 지금의 ‘힙합’처럼요.”
“그런 시기에 재즈와 함께 발전한 게 블루스지. 누구는 어디서 뭐가 나왔냐니, 아니냐니 말이 많지만, 둘은 그저 함께 자란 형제일 뿐이야. 그렇고말고. 출신도 둘 모두 남부지.”
손님은 오랜만에 이야기가 통하는 상대를 만난 듯 신나서 떠들기 시작했다.
술과 담배, 또 음악과 대화할 상대만 있다면 언제든 밤을 새우곤 했던 사람이란 말이 떠올라 정환은 미소 지을 뿐이다.
손님과 바텐더가 이런 취향이 맞는 순간, 둘은 더 없는 사이가 되며 자리는 빛이 나기 시작한다.
딱, 지금처럼.
“의외입니다.”
“뭐가?”
“당연히 재즈를 블루스의 한 갈래로 보실 줄 알았거든요.”
“허허허. 그럴 리가. 내가 블루스 가수라서? 그저 블루스가 좋아서 하는 것뿐이야. 블루스가 우월한 음악이란 생각 따위는 없으니.”
“멋진 생각이십니다.”
정환은 진심을 담아 답을 한다. 이건, 비단 가수가 아니라 어느 영역에서 일하는 이라도 배울 자세일 것이다.
- 타, 탓.
- 콜록. 콜록. 콜록.
손님은 담배를 한 대 더 꼬나물고는 불을 붙인다. 그와 동시에 짝처럼 나오는 콜록거리는 소리. 벌써, 세 대 연속이었다.
기침을 막으려 입으로 가져가는 그의 손이 제법 거칠어 보였다.
“오길 잘했군. 이런 곳인 줄 진즉 알았다면 먼저 찾아 왔을 텐데.”
“오늘은 영업이 끝난 후라 조금 자연스러운 것도 있습니다. 영업 중일 때는 조금 다르긴 합니다.”
“영업이 끝나고 오면 된다는 말이고.”
농담처럼 친근하게 건네는 말에 정환은 씨익 웃고는 그의 앞에 놓인 재떨이를 새 것으로 교체했다.
한국에서야 흡연을 허용하는 바가 점점 사라지는 추세지만, 12년의 세월을 일본에서 보낸 정환은 이런 걸 오래 두고 보지 못한다.
“제가 무리한 부탁을 드린 건 아닌지 모르겠네요. 내일도 가게를 여셔야 할 텐데요.”
“가게?”
“운영하시던 라이브 바···”
“아.”
정확한 이름까지 나오자 손님의 표정이 조금 어두워진다. 씁쓸한 미소를 한번 지으며 담배를 눌러 끈 그는 무겁게 입을 열었다.
“‘저스트 블루스’를 말하는 거군. 그거라면 이태원으로 옮긴 지 몇 해 되었네. 아. 아니지. 이제 말을 바꿔야겠군. 옮겼었지.”
“그럼···?”
“얼마 전에 이태원 가게도 처분했다네. 이 나라에서 라이브 바로 먹고살기가 쉽지가 않으니···.”
- 콜록. 콜록.
!
정환은 가게를 처분했다는 말에 깜짝 놀라며 무언가를 알아채는 표정이다.
슬쩍 고개를 돌려 달력을 한번 바라보는 그.
잠시 잊고 있었다. 자신이 회귀했던 시점이 언제인지를. 거기에 주변 사람이 아니기에, 또 만날 거란 생각도 못 했기에 떠오르지 않았던 이유도 있었고.
허나, 말을 듣는 순간 인터넷 검색으로 얻었던 앞에 앉은 손님에 대한 정보가 치고 지나갔다.
가게를 접고 다른 지역으로 떠난 이 손님은.
곧, 귀천(歸天)하고 만다는 사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