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술은 특별합니다-101화 (101/175)

101잔. 찾아라.

1.

90년대식 BMW E 시리즈. 그리고 우핸들.

운전하기 그리 좋은 환경은 아니라고.

지금 운전대를 잡은 장윤수 바텐더는 그런 생각을 하는 중이다.

테이프로 돌아가는 구식 음향 장비에서는 오래된 팝송만이 흘러나오고 있다. AC/DC인가 뭣인가. 정확히 기억은 안 나는 한 밴드의 음악이 제법 신이 났다.

아직은 생소하다. 차를 이것밖에 빌리지 못했다는 누군가의 말에 억지로 이 차에 올랐던 게 오늘이었지만, 아직은 이 차가 여전히 어색해 좀처럼 익숙해질 기미가 보이진 않는 그였다.

나오는 음악만 빼고. 음악은 나름 괜찮았다.

“아니, 어디서 이런 차를 구하셨어요?”

오른쪽에 앉아 어색하게 차를 모는 윤수가 왼쪽 조수석에 앉은 젊은 사장을 돌아봤다.

지금 타고 있는 올드카를 빌려온, 바텐더 차정환이다.

“그, 정우 형….”

“그분 취향도 참….”

“마스터가 타던 차가 이거였거든요. 예전에 사고가 난 뒤 그 차는 폐차했고 정우 형이 이걸 따라서 하나 사셨대요.”

“아. 차는 역시 클래식이죠.”

윤수는 자세한 설명을 듣자, 이내 차에 대한 평을 바꾼다. 역시 차든 바든. 클래식이 최고인 것만 같다.

“혹시, 테이프도?”

“아뇨. 그건 제 취향.”

“꺼도 되나요?”

“에헤이.”

시답잖은 농담들. 아무런 의미가 담겨있지 않은 말속에서 의미를 가득 담은 웃음들이 피어난다.

차는 그렇게 달리고 달려, 어느덧 경기도 인근의 한 작은 도시에 닿아 작은 시골길을 헤쳐갔다.

“사장님. 이렇게, 가는 게 맞을까요?”

“아마도요. 저도 잘은 몰라서요. 주변에 논밭이 많은 게 맞는 거 같은데요?”

“내비게이션 보고 가면 되겠죠.”

“믿읍시다.”

자세한 위치는 정환도 모르는 것 같다. 이번 길이 초행이니 당연한 일.

허나, 요즘 세상에 내비게이션만 따라가도 본전은 찾지 않겠나. 그런 생각에 둘은 아무런 걱정 없이 화면에 나온 길을 따라 시골길을 따라갔다.

커다랗게 붙은 네비게이션이 올드카와는 조금 어울리지 않았다.

“왜 이런 양조장이나 증류소는 다들 시골에 있는 걸까요?”

길이 지루해서일까, 윤수는 조용히 지식을 쌓아가려 한다. 오늘은 쉬는 날임에도 함께하는 스승에게 그는 조금이라도 더 배우려 말을 물어 갔다.

“물 좋고 공기 좋은 곳. 그리고 주변에 술을 빚을 좋은 재료가 많은 곳. 아무래도 그런 곳이 도시보다는 시골에 있으니 그렇겠죠?”

“흠. 물 좋고 공기 좋은 곳에서 술을 만든다라. 좋네요.”

“술맛에는 여러 가지가 작용하긴 해요. 제일 처음 쓰이는 물도 중요하고, 또 쓰이는 곡물이나 재료 역시 중요하죠. 쌀이 유명한 곳은 자연스레 술도 유명하고 그렇거든요.”

“아. 그래서!”

처음부터 여러 술을 다루는 바텐더였다면 쉽게 알 수 있는 부분이다. 허나,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했던 윤수는 언제나 이런 이론적인 부분에서 유독 어려움을 보인다.

뭐, 크게 상관은 없다. 모르면 배우면 되는 일. 그래서 정환이 있지 않겠나.

모르는 것에서 안주하는 게 아닌 이렇게 배우려는 자세니. 언젠가는 윤수도 멋들어지게 이런 설명을 제자에게 해줄 날이 올 것도 같았다.

“음. 다 온 거 같네요. 여기 언덕만 내려가면.”

“이제 하나둘 보여야 할 텐데요.”

“여러 곳이 모여있는 곳이라 했죠?”

“네. 이쪽 마을이 아예 전통주로 유명한 곳이라서요.”

“기대됩니다!”

“윤수 씨는 오늘 참아줘요. 맛을 봐도 바로 뱉어주셔야 하구요.”

“그건 좀 슬픈데요?”

“다음에 제가 제대로 대접하겠습니다.”

“넵!”

오늘은 윤수가 이렇게 동행 해줘 다행이다. 홀로 차를 끌고 왔다면 제대로 맛도 보지 못했을 정환.

정환은 새롭게 개발할 칵테일을 위해 재료를 찾으려 이렇게 시골까지 내려왔다.

당연히 맛도 볼 수 있는 게 좋을 터. 윤수가 자원해 따라와 이렇게 운전대까지 잡아주니.

정환은 오늘 조금 자유롭게 맛을 볼 수 있을 것만 같다.

아. 뭐. 절대 취하려는 의도로 온 건 아니지만.

“다 왔습니다. 사장님.”

끼익.

마당이 넓고 단지가 제법 큰 건물 앞에서 올드카는 거친 소리를 내며 브레이크를 잠갔다.

그리고 내리는 두 명의 바텐더.

전통주를 만든 곳이란 말이 딱 어울리는 멋들어진 한옥과 양옥이 적당히 섞여 상상에 딱 떨어지는 모습이 윤수와 정환을 반겼다.

이런 술을 만드는 곳에 처음 와본 탓일까. 윤수는 설렘과 또 기대감이 동시에 부풀어 오르는 것만 같았다.

“안녕하세요. 연락 드렸던, 차정환이라고 합니다.”

정환은 제일 앞에 있는 관리동으로 보이는 건물로 들어가 인사를 전했다.

정환을 한 번 휙! 보고는 노트를 살피더니 이내 이름을 발견하는 경비원.

그는 시간과 인원, 그리고 정환의 신분증을 확인하고 나서야 안으로 정환을 들여 보내줬다.

생각보다는 관리가 철저한 곳처럼 보였다.

“여기가 마을에서 운영하는 공동체라서요. 다른 양조장이나 증류소처럼 단일 품목을 다루는 곳은 아니지만, 종류만 본다면 재료를 찾기는 더 좋을 겁니다.”

“딱히 정해두고 오신 건 아니었군요.”

“네. 우선은 전통주. 딱 거기까지만 생각을 해보고 왔어요.”

“전통주라. 오면서 듣기는 했지만, 생각보다 어려운 부분에 도전하려 하시네요.”

“스승님이…못다 이루신 부분이라 생각해서요.”

정환은 가볍게 눈으로만 웃으며 마지막 말을 남기고는 걸음을 서둘렀다.

평범하게 한 말이었다. 아무런 아련함도 없이. 허나, 이를 들은 윤수의 얼굴에는 슬쩍 감동이 아린다.

“크! 역시, 아르센!”

윤수는 잠시 떨어져 홀로 감탄하더니, 얼른 정환을 따라나선다. 자신도 정환의 제자뻘이니 나름 아르센의 족보에 오르는 사람이 아닌가.

그런 생각에 스스로가 참 대견한 윤수였다.

“조심히 가십시오! 사장님!”

윤수는 최선을 다해 오늘 정환을 모실 것만 같다.

정환이 조금 더 안으로 들어가자, 이내 본격적인 술 빚는 과정이 보이기 시작한다.

누룩을 걸러둔 보관 장소부터 원재료를 보관하는 창고, 그리고 이를 저장해둔 저장고까지.

안에는 나름대로 안내도까지 있어 관광을 겸하는 곳처럼 보였다.

“누겨? 여기, 함부로 돌아댕기면 큰일 나! 훠이!”

딱히 안내하는 사람 없이 안을 누비던 정환과 윤수. 그런 정환의 앞에 양 손목에 팔 토시를 한 노인이 하나 나오며 얼른 나가란 말을 전한다.

정환은 목에 걸린 방문증을 보여주고는 자신의 신분을 증명했다.

“오늘 견학 신청한 바텐더입니다, 선생님.”

“바텐더? 보자, 바텐더면…. 잉. 그 술 섞어서 파는 양반들 말하는 거구먼? 그렇지?”

“정확하십니다.”

아니다. 다른 사람이 한 말이었다면 그게 전부는 아니라는 말을 했을 정환.

하지만, 여기 계신 어르신들과 이런 걸로 입씨름을 할 만큼 정환은 어리석고 꽉 막힌 사람은 아니었다.

그래도 이렇게 시골에서 전통주를 빚는 분들이 바텐더란 단어를 한 번에 알아듣는 건 신기하다.

나름 되물어 볼 법도 한데, 같은 주류 업계에 종사해서일까. 이들은 바텐더라는 직업에 아무런 거리낌이 없어 보였다.

“그럼, 저짝에 있는 시음관으로 가보소. 거기 가믄 마셔볼 수 있는 술이 널렸응께. 일단 마셔보고, 마음에 드는 술 이름 적은 다음에 일로 오고. 그게 순서여.”

심지어 바텐더에게 코스를 추천까지 해주는 나이든 장인. 그는 바텐더라면 이런 걸 원할 거라는 걸 아는 사람처럼 유려하게 코스를 짜주기까지 했다.

설명을 들은 정환은 그의 말이 타당해 보여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잉. 가보쇼잉. 이짝으로 왔다가 다시 보거들랑, 술이나 한잔 타주고 가고. 콕테일이여? 칵테일이여? 암튼.”

“네. 꼭 그러겠습니다.”

나아가 칵테일을 한잔 타달라는 당당한 말까지! 정환과 윤수는 전해지는 이들의 모습에 위화감이 느껴져 살짝 당황하는 눈치다.

“이야. 같은 업계라서 그런가요? 잘 알고 계시네요.”

“그러게요. 저도 이런 적은 처음인데.”

아실을 준비하며 몇 번 이런 양조장을 들른 기억은 있다. 허나, 그럴 때마다 바텐더라는 직업에 대해 열변을 토해야 했던 게 그가 마주했던 현실.

오늘은, 조금 다른 분위기에 또 새삼 놀라는 정환이다.

“우선…, 추천해주신 코스로 가보죠.”

“네. 사장님.”

둘은 노인이 추천해준 코스로 움직이며 걸음을 계속한다. 시음관으로 옮겨 이쪽 양조장과 증류소에서 나오는 술을 하나씩 살펴보는 둘.

주종별로, 또 재료별로. 적당히 잘 정리가 되어 있어 시음관은 한눈에 돌아보기 무척이나 편한 구조였다.

“백바처럼 정리가 되어 있네요? 이야. 이거, 바텐더가 정리한 느낌인데.”

마치 백바처럼 정리가 되어 있다. 다른 곳을 둘러보면 그리 체계적으로 관리되는 것처럼은 보이지 않는 곳인데도 이곳만큼은 다른 모습.

윤수는 그런 모습을 보며 바의 얼굴과도 같은 백바를 연상했다. 정환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이에 동의한다.

“몇 개를 우선 마셔봐야 할 거 같아요.”

“어떤 술을 찾으시게요?”

“소주도 좋고 과실주도 나쁘지 않아요. 거기에 첨향(添香)된 술이라면, 그것도 나름 쓸 만한 용도가 있겠죠.”

“복잡하네요. 종류도 적진 않고.”

“천천히 봅시다. 여기만 둘러볼 것도 아니니까.”

주변을 돌아보니 양조장이나 증류소처럼 꾸며진 곳이 비단 이곳만은 아니었다.

가장 규모가 크기에 먼저 들린 곳이 바로 이곳.

만약 여기서 적절한 술을 찾지 못한다면 다른 곳을 가면 될 거라. 정환은 그렇게 생각하며 조금씩 술을 맛봤다.

“크으. 좋다아.”

“사장님. 아저씨 같아요.”

“아니, 이거 진짜 좋은데요?”

“무슨 술인데요?”

“고구마로 빚은 술요. 흠. 깔루아 쪽이랑 어울리려나?”

“달콤하고 쌉싸름하면서 또 고소-하겠네요. 크흐.”

“여기는 사과로 만든 술이다. 이야. 증류한 거 같은데요? 브랜디보다 조금 날카로운 느낌인가? 흠. 잭 로즈 같은 쪽으로 가면 괜찮을 것도 같고.”

“후. 하지 마세요. 저 운전해야 해요.”

맛을 보는 정환의 옆에서 윤수만이 울상을 지어간다. 운전대를 잡았기에 맛보지 못하는 서러움을 정환은 알지 못할 것이다.

기어이 소나무 향을 넣은 증류식 소주까지 맛보고는 입가를 닦는 정환. 그런 정환의 옆에서 홀로 술을 톡! 찍어서 손등에 올린 후 혀만 대어 보는 윤수의 눈가가 촉촉하다.

삼키지는 못한다. 그저 혀에 닿은 후 바로 이를 뱉을 뿐. 바텐더가 음주 운전으로 잡히는 것만큼 쪽팔리는 일이 어딨겠나. 윤수는 그런 생각에 이런 행동도 몇 번을 하고는 멈추고 만다.

그렇게 윤수가 가장 궁금했던 사과 증류주만을 마지막으로 찍어서 맛을 보고 있을 때.

“거, 바텐더여?”

옆에서 지나가던 이곳의 관리인으로 보이는 사람이 고개를 옆으로 돌리며 말을 걸어온다.

단박에 이들의 신분을 알아보는 모습에 둘은 또 놀란 표정을 지었다.

“어…. 네. 맞습니다. 어르신. 어떻게 아셨어요?”

“술 맛보는 모양이 딱 바텐더구먼 뭘.”

머리는 하얗고 얼굴에는 주름이 자글하다. 나이가 제법 있을 법한 관리인은 아무렇지 않게 뒷짐을 지고는 말만 남기고 그들을 내버려 뒀다.

마치, 바텐더라는 직업이 흔한 것처럼.

‘허어. 참.’

뭐 이런 동네가 다 있을까. 정환은 그런 모습을 보며 헛웃음을 지었다.

바는 고사하고 간단한 주점도 없어 보이는 동네에서 이렇게 바텐더를 다들 알아보다니.

이건, 예사로운 일은 아님이 분명했다.

“저기, 어르신.”

정환이 서둘러 반대로 움직이는 관리인을 부르러 간다. 무언가 궁금한 게 있는 듯 노인을 잡고는 말을 물어가는 정환.

“잉? 와? 뭐 궁금한 거 있소? 뭐든 말허소. 나가 여기 안내하는 사람이여.”

“아뇨. 그냥 궁금한 게 있어서요.”

“잉잉. 물어보쇼. 괜찮응께.”

“여기, 바텐더들이 자주 오나요?”

정환은 관리인을 잡고는 여기 바텐더가 자주 오냐는 말을 묻는다. 바텐더를 흔히 볼 수 있으니 이런 반응이 나오는 걸 거라. 누군가 여기를 주기적으로 들리며 이미 선수를 친 걸 수도 있을 거라.

그런 예상에 조금 긴장하며 말을 묻는 정환.

관리인은 그런 정환의 말을 듣더니.

“자주는 안 오제. 자네들이 두 번째인가?”

“두 번째요? 그럼 한 번밖에 안 왔었다는 말인가요?”

“잉. 그라제. 아니지. 그케 따지면 말이 안 되제. 한 놈은 왔다가 여서 살고 있응께, 가는 빼야제.”

!

조금 의외의 말을 들려준다.

“아, 안 갔다구요?”

“잉. 안 갔으. 놈. 여기 눌러앉아 버렸으. 저기 외당 밖으로 나가믄 있는 모퉁이 보이제? 거기서 아래로 쭈욱 내려가면 굴다리가 하나 나올 겨. 그 굴다리 길 따라서 쭉 다시 올라가믄 합판으로 지은 가건물 하나 나올 겨. 거기 산다. 갸.”

“…사, 산다는 말은?”

“거서 뭐 술 빚는다든디? 가끔 내려와서 여그 정리도 해주고 술도 만들어주고 한다. 갸. 착혀. 갸가. 나이는 보자. 어. 자네들보다는 조금 많것다.”

“…….”

관리인은 물은 말에 비해 자세한 이야기를 들려주고는 자리를 뜬다. 때로는 이렇게 하나를 물었을 때 열 가지 이야기가 나오는 어르신들의 특성이 참 고마운 지금이다.

정환은 자리에 멈춰 서 그대로 관리인이 가리켰던 방향을 바라보고 있다.

가봐야 할 곳이 한 곳 더 늘어난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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