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술은 특별합니다-99화 (99/175)

99잔. 여기서만.

1.

“‘숲’에서 여길 추천해주셨어요!”

영업이 한창인 아실.

그런 아실에 들어온 한 무리의 손님이 밝은 표정을 지으며 목소리를 높였다.

다른 업계라면 조금 이상할 수도 있는 말이다. 경쟁 관계에 있는. 아니, 있을 법한 그런 가게가.

바로 옆에 있는 또 다른 가게를 추천해주다니.

허나, 이는 바씬에서는 흔히 있는 일. 이미 ‘숲’이 성공적으로 문을 연 지 2주가 지난 지금의 시점에는 이곳 종로에서 흔히 있는 일이었다.

아실도 숲으로 손님을 보내고 숲 역시 아실로 손님을 보낸다. 이는 작은 상권 속에서의 선순환.

또 직접 보내진 않더라도 아실만을 보고 이곳까지 온 손님이 ‘숲’을 보고 관심을 가지기도 하고.

반대로 ‘숲’에 온 손님이 아실을 보며 관심을 가지기도 한다.

서로가 경쟁이 아니라 서로에게 홍보이자 든든한 동반자가 되는 관계.

그게 ‘바’라는 업계에서 ‘상권’이 가지는 가장 큰 의미일 것이다.

“잘 오셨습니다. ‘숲’이랑은 조금 다른 스타일이지만,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정환은 반갑게 손님을 맞이하며 자리를 안내한다. 벌써 이런 손님들이 오늘만 두 팀째.

나란히 앉은 두 팀의 손님은 서로를 알아보는 눈치다.

“어? 아까 숲에 계셨던 그분들 아니세요?”

“맞아요!”

“여기서 또 만나네요!”

“그러니까요!”

손님들마저 이렇게 서로를 알아보며 즐거워하니, 정환으로서는 골목을 형성한 게 기쁘지 않을 수 없다.

“물이랑 수건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타이밍 좋게 수건과 물이 나온다. 그리고 그에 맞춰 주문을 받는 바텐더.

손님은 메뉴판을 찾으려 잠시 두리번거리는 모습이다.

“아. 숲이랑 달리 여기는 메뉴가 따로 없습니다. 편하게 취향을 말씀해주시면, 최대한 맞춰드릴게요.”

숲과 아실에서 가장 먼저 느끼는 차이는 메뉴판의 유무다. 숲은 창작 칵테일과 새로운 시도가 주를 이루는 곳.

그런 만큼 메뉴판을 도입해 거기에는 재료와 새로운 술에 대한 설명이 가득하다.

손님들은 자세히 풀어둔 설명을 보며 각종의 창작 칵테일을 숲에서 맛볼 수 있었다.

반대로 아실에는 메뉴판이 없다. 아실은 기존의 클래식 칵테일을 위주로 다루는 곳인 만큼, 메뉴판 없이 그저 손님의 취향에 따라, 바텐더가 이를 추천해줄 뿐이다.

“와. 저 메뉴 없는 곳 처음 와 봐요!”

그래도 요즘은 이런 곳이 있다는 게 SNS를 타고 널리 퍼져서 다행이다.

스피크이지(Speak Easy)니 하이드아웃(Hide Out)이니 하며 여러 컨셉이 유행을 탄 것 역시 이맘때쯤.

스피크이지는 문을 숨겨 아는 사람만이 찾을 수 있는 공간을 말했고 하이드아웃 역시 굳게 잠겨 숨을 수 있는 곳을 의미했다.

메뉴판이 없다는 것도 하나의 컨셉처럼 느껴져, 손님들은 반기는 모습이다.

“어떤 맛을 좋아하세요? 플루티한 맛, 또 달콤한 맛. 드라이한 맛 등 말씀만 하시면 제가 맞춰드리겠습니다.”

“음…. 딱히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은 없어서요! 사실 잘 모르겠어요!”

“그럼, 숲에서는 어떤 칵테일을 드셨을까요?”

“네? 어, 메뉴 이름은 기억하는데, 사장님도 아세요?”

“그럼요. 저도 숲을 자주 가는 편입니다.”

살짝 거짓말이 보태진 말이다. 아니, 거짓은 아닐지도. 자주 가긴 한다만, 그게 손님으로 가는 건 아니기에 이건 애매하긴 하다.

“음. 그러지 말구요! 사장님. 숲이랑 여기랑은 다른 맛이 있다고 하셨잖아요. 어떤 차이가 있어요?”

“여기서 다루는 걸 숲에서 다루지 않기도 하고. 또 반대로 숲에서 다루는 걸 여기서는 다루지 않기도 합니다.”

“그럼! 전 숲에서 못 마시는 칵테일! 그런 거로 한 잔 부탁드려도 될까요?”

손님은 이런 바 호핑이 재밌는 듯 두 바 사이의 차이점을 탐구하려 한다.

조금은 어렵긴 하지만, 정환은 잠시 머리를 굴리더니 이내 답을 찾아냈다.

“그럼, 제가 추천하는 잔이 하나 있긴 합니다.”

정환은 자신 있게 하나의 칵테일을 골라 손님에게 추천한다. 이는 비단 숲과 아실의 차이라기보다는 여느 로드 바에서는 잘 접하기 어려운 메뉴를 하나 떠올린 것.

아실이기에. 정환이기에. 또, 아실이 정환 덕에 자리를 잘 잡았기에.

그렇기에 가능한 메뉴를 정환이 하나 꺼내 들었다.

“어떤 칵테일이죠?”

“바로, 이걸 쓰는 칵테일입니다.”

정환은 고개를 숙여 아래에 있는 냉장고에서 작은 병을 하나 꺼낸다.

그의 손에는 일반적인 병보다 훨씬 작은 술병이 하나 들려있다.

“그건 뭐예요?”

손님에게 너무 어려운 질문이었나보다. 이건 잘 모르는 이들이 봤다면 모를 수도 있는 병.

모양이야 어디서 많이 본 것 같겠지만, 사실 한 번에 알아보는 게 이상하긴 했다.

“스파클링 와인입니다.”

“샴페인요?”

“조…금. 다르긴 하죠. 스파클링 와인 중 프랑스의 샹파뉴 지역에서 그쪽의 포도만을 써서, 또 전통 방식으로 만든 아이들만 샴페인이라 불리거든요. 아무래도 칵테일에 쓰기에는 그 아이들은 단가가 높아서요.”

“아. 그런 차이가 있었구나.”

바에 오면 즐거운 이유가 하나 더 늘어난다. 술에 대해 몰랐던 걸 알아가는 작은 과정.

손님은 그런 과정에서 또 재미를 느끼며 새로운 칵테일로 새로운 추억을 만들어 간다.

“이걸 이용해서 만들어 보겠습니다.”

스파클링 와인을 베이스로 한 칵테일은 로드 바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칵테일은 아니다.

스파클링 와인은 다른 술에 비해 보관 기간도 짧고 김이 쉽게 빠져 따고 난 후 얼마 후면 맛을 잃어버리는 술.

기주로 사용되는 칵테일 역시 많지 않고 이를 찾는 이도 많지 않기에 단가를 중요시하는 로드 바에서는 이를 부러 멀리하곤 했다.

허나, 아실은 다르다. 정환 자체가 단가에 무덤덤한 성격인 것도 있고 이미 자리를 잡지 않았나.

정환은 돌아오는 여러 수익 중 일부를 그대로 재료에 투자하며 이런 기주를 사용하는 것에 거리낌이 없다.

바라면 손님이 원하는 것, 또 찾는 것에 어떠한 조건도 걸어서는 안 된다.

이건 아르센에서 스파클링 와인을 다룰 때 명진이 들려줬던 작은 말.

정환은 이를 잊지 않고 아실에도 적용했다.

정환은 스파클링 와인을 옆에 두고는 셰이커를 챙겨온다. 진과 레몬주스, 시럽을 넣고는 이를 세차게 흔드는 정환.

챠카착! 챠카착! 챠카착!

그의 셰이커가 손님을 반기듯 현란하게 흔들렸다.

“우와. 아까 거기랑은 또 소리가 다르네요!?”

“바텐더마다 조금씩 자세가 달라서요. 어느 소리가 맞고 또 어느 소리가 틀린 건 아닙니다.”

사실 옳은 소리와 틀린 소리의 차이는 있다. 허나, 이를 굳이 트집 잡아 다른 바텐더를 욕보이고 싶지는 않은 정환.

정환은 간단히 설명만 얼버무리고는 잔을 만들어 갔다.

촤아아아.

일반적인 마무리보다는 천천히 섞인 액체가 잔에 담긴다. 샴페인을 주로 마실 것 같은 글라스에 담기는 잘 섞인 액체.

그리고.

치리리릭! 뽕!

그런 액체의 옆에서 작은 스파클링 와인의 병이 소리를 뿜는다. 경쾌한 소리가 나올 즈음에 손님들이 한번 와아아! 라는 소리를 낸 것 같았지만, 딱히 제지할 정도는 아니었다.

정환은 잘 섞인 액체 위로 스파클링 와인을 채워갔다. 그리고 얇게 자른 레몬 껍질을 꼬아줘 이를 잔 주변에 묻혀가는 모습.

퐁.

마지막으로 그 껍질이 잔에 빠지자, 바텐더는 이를 손님에게 밀어낸다.

“프렌치 75. 나왔습니다.”

“와아!”

고급스러운 잔이 나오자 손님들이 환호한다. 바텐더로서 소리가 조금 신경 쓰이지만 싫지는 않은 반응.

그런 반응에 호응하듯 손님은 얼른 코로 잔을 가져가 향을 맡기 시작했다.

상큼한 포도향이 레몬향과 잘 어울려 과일밭에 누운 것만 같은 기분이 그를 반겼다.

술이 들어가지 않은 그저 주스. 그렇게 불러도 모자람이 없는 잔이 손님의 손에 들렸다.

“이거 술 맞아요?”

“그렇게 생각하고 드시다가 크은-일 나죠. 여러 잔 마시면 취하실지도 몰라요.”

“그런가요? 한 번 마셔볼게요!”

호르르륵.

손님은 고급스러운 샴페인을 맛보듯 고개를 들고 잔을 마신다. 스파클링 와인 특유의 기포감이 입을 채워줘 재미도 있고 또 향에서 맡았던 맛이 그대로 입을 감싸 기분이 더욱 올라만 간다.

그리고.

“오! 적당히 술맛도 나요!”

미세하지만 분명하게 느껴지는 술의 맛. 손님은 그 맛이 싫지 않아 미소를 지을 뿐이다.

셰이킹으로 꼭꼭 숨겨둔 진이 제 역할을 전부한 것만 같다.

“입에는 맞으세요?”

“그럼요!”

“다행이네요. 또 필요한 게 있으시면 언제든 불러주세요.”

접객에는 짝수의 접객과 홀수의 접객이 있다. 무리를 이뤄 찾은 손님에게는 잠시 대화를 나눌 시간을 주는 게 알맞은 접객.

정환은 친구들끼리 하하호호할 시간을 주려 잠시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사장님?”

바로 옆에 앉은 다른 손님이 또 얼른 정환을 부른다. 윤수는 저 멀리서 다른 손님을 맞이하고 있는 지금.

정환은 얼른 걸음을 옮겨 그들을 맞았다.

“네. 말씀하시죠.”

“다른 칵테일을 마셔보고 싶어서요.”

“음. 어떤 맛으로 드릴까요? 방금 드신 네그로니 같은 느낌으로 드릴까요?”

“이것도 좋았어요. 하지만, 조금 다른 맛도 보고 싶네요. 저기, 저분들처럼 스파클링 와인? 그걸로 하나 만들어 주실 수 있으세요?”

네그로니를 마신 손님이 주문하는 스파클링 와인이 들어간 칵테일이라.

마침 따놓은 스파클링 와인도 있어 잘되었다 싶은 정환은 서둘러 백바에서 다른 술을 하나 가져왔다.

바에서 때로는 이렇게 옆자리의 주문을 보고 또 새로운 잔을 주문하기도 한다.

“어? 또 캄파리가 들어가는 건가요?”

앞에 앉은 손님은 네그로니를 맛보며 마셨던 캄파리를 알아본다. 붉은색에 감기약같이 보이던 술이 캄파리.

식전주로 주로 사용되며 텁텁함 속에 알 수 없는 매력이 숨겨진 캄파리는 색으로도 유명한 술이었다.

“아뇨. 이건 캄파리랑 다른 술입니다.”

“그래요? 완전 비슷하게 생겼는데요?”

“색을 자세히 보시면, 조금 다를 거예요.”

정환은 이내 두 술이 다른 것임을 알려준다. 비교하기 쉽게 캄파리를 가져와 두 개의 색을 대조해 보여주는 정환.

손님은 이내.

“어! 이게 더 연한 색이네요.”

두 술의 차이를 알아챈다. 보는 재미는 칵테일 뿐만이 아니라 다른 술병에서도 얻을 수 있다.

“네. 비슷한 술이긴 하지만, 확실히 다른 술이긴 합니다. 이걸로, 제가 한 잔 만들어 드릴게요.”

정환은 넓은 와인 잔처럼 생긴 잔을 하나 챙겨와 술을 따르기 시작했다.

방금 잡은 술과 스파클링 와인을 조금씩 계량해 잔에 넣는 정환. 마지막으로 탄산수까지 조금 더해 이내 잔이 완성된다.

“아페롤 스피리츠. 나왔습니다.”

“우와! 색이 대박이다!”

와인처럼 보인다. 그런 말이 딱 어울릴 아름다운 색에 넋을 잃고 마는 손님.

손님은 색이 싫지 않아 연신 사진을 찍어대고 있다.

“세계적으로도 많이 팔리는 칵테일이에요. 이탈리아에서는 아주 유명한 칵테일이구요. 마침 저희가 쓰는 스파클링 와인이 프로세코라, 딱 재료가 맞기도 했네요.”

설명이 귀에 잘 들어오는 편은 아니다. 허나, 그런 들 어떠한가. 보기에도 좋고 향도 좋으니, 손님은 그저 손을 뻗어 이를 입으로 가져갈 뿐이다.

이 칵테일에 쓰인 빨간 기주의 이름은 아페롤. 이는 캄파리와 비슷한 맛이 나는 감귤향에 허브를 더한 술로 여기에 스파클링 와인마저 합쳐지니 잔에서는 과일 향기가 멈출 줄을 몰랐다.

잔을 마신 손님은 만족스럽게 웃고는 연달아 몇 모금의 술을 더 삼켜갔다.

계속해서 잔에 입을 대는 것만큼 좋은 찬사는 없을 거라. 바텐더는 그런 생각에 흐뭇하게 미소를 지었다.

“저기, 사장님.”

그렇게 정환이 두 팀의 앞에서 연신 몸을 오가고 있을 때. 조금 전 프렌치75를 주문한 손님이 정환을 부른다.

아직 잔은 남아있는 손님. 아마, 다른 질문이 있어 부른 거라. 그렇게 여긴 정환은 얼른 귀를 그곳으로 가져갔다.

“이게 여기서만 마실 수 있는 칵테일이면, 이건 시그니처인 건가요?”

그러자 들려오는 질문이 제법 구체적이다.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너무 전문적이면 안 된다.

그렇다고 너무 간단해서도 안 될 질문.

정환은 에둘러.

“아뇨. 그런 건 아닙니다. 음, 스파클링 와인을 쓰는 곳이 있다면 이 칵테일도 다른 곳에서 맛보실 수 있긴 합니다.”

“아. 그런 거구나. 그럼, 여기서만 맛볼 수 있는 건 아니네요?”

사실 이렇게 맛있는 프렌치 75는 다른 곳에 없습니다. 라는 말을 하고 싶긴 했다.

허나, 그런 말을 자연스레 뱉을 수 있는 사람은 아닌 정환.

“그렇죠. 아쉽게도 스파클링 와인을 하우스로 쓰는 곳이 적긴 하지만, 분명 있는 곳도 있을 겁니다.”

정환은 그저 웃으며 긍정할 뿐이다.

하지만.

“그럼, 여기서만 마실 수 있는 칵테일은 뭐에요?”

손님은 거기서 포기하지 않았다. 무언가 아실만의 잔을 맛보고 싶어 하는 손님.

흔히들 말하는 시그니처 또는 오리지널이란, 지금 손님의 말처럼 이렇게 그 가게에서만 맛볼 수 있는 칵테일을 말할 것이다.

지금 손님은 정환의 시그니처, 오리지널이라 불리는 칵테일을 원하는 모습이다.

딱히 아실에는 그런 메뉴가 없긴 했다. 이런 주문이 없기도 했었고.

손님이 적었을 때는 단골 위주로 장사를 해 주문이 정해져 있었고 유명해진 후에는 또 유명세를 타게 해준 잔이 있지 않았나.

이제는 유명세도 안정되고 또 주변 바에 들렸던 손님도 밀려오니, 이런 주문도 마주할 수밖에 없는 상황.

정환은 여기서 어떤 잔을 보여줘야 할까.

숨겨둔 시그니처 칵테일이 나오는 걸까.

멀리서 이를 훔쳐 듣던 윤수도 자신이 아는 바가 없어 살짝 침을 삼키고는 정환의 반응을 살폈다.

그런 손님과 눈을 맞춘 정환은.

“여기, 아실에서만 드실 수 있는 칵테일. 그걸 드셔보고 싶으세요?”

여전히 여유가 만만한 모습으로 주문을 접수할 뿐이다.

“네!”

“그럼 만들어 드려야죠. 아실에서만 드실 수 있는 칵테일로.”

답을 마친 그의 손이 잔이 모여있는 곳으로 향해 조금은 특이한 잔을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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