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잔. 흐린 기억 속의.
4.
언제고 80년대에 발간된 칵테일 북을 읽은 기억이 있다. 아마 외국의 책을 그대로 번역한 거로 보였던 오래된 낡은 책.
정환은 방금 주문을 듣는 순간, 오래된 도서관에서 겨우 찾았던 그 낡은 책을 떠올렸다.
외국어를 한글로 옮겨쓰는 게 지금과는 많이 달랐던 시기였다. 발음이 정형화되지 않았음은 물론, 일반 대중들은 영어를 그리 잘하지 않았기도 했던 시절.
조-오‧ㅁ-비.
김레-트.
새즈-랔.
진 피이-즈.
등.
당시에는 눈을 크게 뜨고 봐야 겨우 이해가 되었던 그 단어들이 다시금 머리를 스치는 정환이다.
그리고 그런 칵테일 북의 중심에는 분명 방금 들었던 그 단어 역시 없진 않았다.
탐-카린스.
아마, 저 이름은.
톰 콜린스를 말할 것이다.
“톰 콜린스 말씀이시군요. 알겠습니다.”
“부탁해요.”
톰 콜린스를 만들어 보는 건 오랜만이다. 발음과 상관없이, 정환은 그런 생각을 하며 손을 움직였다.
아마 아르센에서 일할 때 강성원 대표에게 만들어 주고는 처음인 것 같은 정환.
클래식 칵테일이 주를 이루는 아실이지만 톰 콜린스는 그런 클래식 중에서도 더 클래식함을 자랑했기에 요즘은 찾는 이가 많지 않은 칵테일이었다.
퐈아아아.
탄산수가 캔을 뚫으며 청아한 소리를 낸다. 진과 레몬, 시럽과 탄산수가 전부인 간단한 칵테일이 톰 콜린스.
정환은 계량한 술이 든 컵에 얼음을 넣고 이를 피해 탄산수를 부은 후 스푼으로 얼음을 살포시 들어 올렸다가 그대로 내려둔다.
탄산이 들어간 칵테일은 스터를 해줄 때도 신중해야 하는 법. 그래야 탄산의 맛을 그대로 살리며 기포를 죽이지 않을 수 있다.
스윽.
“톰 콜린스. 나왔습니다.”
“아. 네. 감사합니다. 톰 콜린스…. 발음은 매번 고쳐지지 않는군요.”
“탐-카린스라고 부르셔도 상관은 없습니다. 외국어니, 어떻게 부르셔도 괜찮을 겁니다.”
“그런가요? 다들 발음이 틀렸다고 하시던데.”
“맛만 좋으면 그만. 아닐까요?”
“암요. 그렇지요. 허허. 잘 마시겠습니다.”
손님은 만족스럽게 웃고는 잔을 들어 올린다. 잔을 올리기 전, 잠시 잔을 바라보던 그의 눈빛이 조금은 아련하게만 느껴졌다.
호르륵.
가볍게 한 모금을 삼켜보는 손님. 청량한 탄산이 그의 입을 채우자, 그의 얼굴에 만족감이 걸린다.
탄산도, 또 레몬의 맛도. 거기에 술의 무게감도 모두 실린 그런 톰 콜린스였다.
“입에는 맞으신가요?”
“…맛있군요. 아니, 허허. 이걸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칵테일을 많이 마셔본 사람이 아니어서, 딱히 표현할 방법을 모르겠군요. 정말 맛있습니다. 빈약한 단어가 미안할 정돕니다.”
“과찬이십니다.”
“아닙니다. 얼마 전에 다른 곳에서도 마셔봤지만…, 이와는 확실히 달랐습니다. 독보적이군요.”
“감사합니다. 오늘 기분이 좋으셔서 그럴 겁니다.”
“허허. 겸손하시군요. 사장님은.”
무난한 손님이다. 정환이 받았던 첫인상 그대로의 손님.
정환은 그런 손님의 모습이 싫지 않아 자신도 밝게 미소 짓고는 홀로 웃었다.
제법 나이가 있는 노신사가 홀로 바에 앉아 칵테일을 기울이는 저 모습이, 한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은 아니기에 더욱 흐뭇하게 바라보는 그였다.
일본이나 유럽과는 달리 한국에는 바와 칵테일이라는 문화가 늦게 전파된 편이다.
들어온 시기야 전후인 50, 60년대였다고는 하지만 당시 사정으로 일반적인 서민이 이를 즐겼을 수 있었을 리는 만무하지 않나.
당시에는 그저 미군 관련 종사자, 또는 일부의 부층이 아니고는 쉬이 접할 수 없는 문화가 바로 이 ‘바’와 칵테일이란 문화였다.
80년대 살포시, 그리고 90년대 과감히. 그리고 2000년대에는 활발히.
그렇게 발전한 게 대한민국이란 나라의 바 문화.
그렇기에 실제로 한국의 바를 방문하는 이들 중 백발이 성성한 이는 매우 드문 편이다.
‘아르센에는 제법 있었지만.’
물론 그 시절에도 외국에서 생활했거나 재력이 제법 있었던 이들은 간간히 이런 문화를 접했다는 말은 들었다.
허나, 그런 이들이 국민 중 몇 퍼센트나 될까. 아마, 한 자릿수일 거라.
정환은 그런 생각에 이 풍경을 더 귀하게 지켜봤다.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 말씀하세요.”
정환은 불러 달라는 말만 남기고는 슬쩍 손님의 앞을 비워둔다.
잔에 집중하며 아련한 표정을 짓는 손님에게는 이게 어울리는 접객일 터.
손님은 그런 바텐더의 모습이 싫지 않아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시간이 흐르며 점점 바에는 2부 영업이 시작되려 하고 있다. 조금씩 자리를 채워가는 바 안의 손님들.
끝자리에 앉은 노신사는 그런 손님들을 한 번 보고 또 자신의 잔을 다시 바라보며 알 수 없는 표정을 짓는다.
아실을 찾은 손님의 대부분은 한 쌍의 커플들. 그런 커플들을 바라보는 그의 표정에는 잔잔한 미소가 어린다.
“저어. 한 잔을 더 주문해도 되겠습니까?”
그렇게 시간이 조금 더 흐르고 노신사는 슬쩍 손을 들며 정환을 불렀다.
그에게 얼른 달려가는 정환.
“네. 주문하시죠.”
“그래스하프. 그걸로 부탁합니다.”
손님은 그에게 또, 예스러운 발음을 들려준다.
“그래스호퍼 말씀이군요. 네, 가능합니다. 바로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뭐, 어떻게 말하든 그게 뭐가 중요한가. 바텐더가 알아들었다면 그만이지 않나.
정환은 손님의 조금 예스러운 주문에도 찰떡같이 주문을 알아듣고는 그래스호퍼를 만들 준비를 마쳤다.
크렘 드 민트와 크렘 드 화이트, 그리고 크림을 준비하는 정환.
정환은 이를 계량해 셰이커에 넣고는 활기차게 흔들기 시작했다.
챠카챠카착! 챠카챠카착! 챠카챠카착!
듣기 정말 좋은 소리다. 그런 감상에 절로 고개가 올라가는 손님의 모습.
그는 눈을 감고 한껏 고개를 들어 올렸다가 이내 감상에서 빠져나와 자신의 옆자리를 한 번 훑는다.
텅 빈 옆자리를 쓸쓸하게 한 번 훑고는 다시금 테이블 위로 내려가는 그의 고개였다.
촤아아아악.
연두색 액체가 조심히 잔으로 쏟아진다. 민트색에 하얀 거품이 더해져 불투명한 연두색이 잔에 담겼다.
민트 초코맛이 나 취향은 갈리지만, 언제나 바에서는 베스트 셀러에 이름을 올리는 게 이 그래스호퍼였다.
클래식하지만 민트 초코맛이라는 나름의 선구적인 맛.
어찌 보면, 참 역설적이지 않을 수 없는 잔이다.
“그래스호퍼. 나왔습니다.”
정환은 마티니 글라스에 칵테일을 담아 손님에게 밀어냈다.
“잘 마시겠습니다.”
손님은 그래스호퍼를 내려보며 눈에 무언가를 떠올린다. 이번에도 아련한 시선일까.
아쉽게도 그런 시선은 아니었다. 손님은 감정보다는 조금 현실적인 눈빛을 하고는 잔을 뜯어 보기 시작했다.
아래 위로 색을 살피며 무언가를 확인하려는 그.
‘맞겠지?’
그는 그래스호퍼에 무언가 확인할 것이 있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확신이 서지 않아 얼른 잔을 들어 본다.
호르르륵.
한 모금의 그래스호퍼가 그대로 손님의 입을 채운다. 포근한 거품에 연달아 들어오는 민트의 상쾌한 향.
연달아 달콤한 뒷맛까지 이를 받쳐주니, 그야말로 맛있다는 말이 어울리는 술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저어…. 정말 미안합니다만. 말씀을 좀 여쭤도 되겠습니까?”
손님은 그런 맛과는 별개로 만족하지 못한 모습을 보인다. 조금은 실망감이 가득해 보이는 그의 얼굴.
클래식에서는 이겁니다. 이거.
그의 머리에는 정환을 향해 엄지를 추켜세우던 강 대표의 모습까지 스쳐, 더욱 실망감이 배가 되는 지금이다.
“네. 말씀하시죠. 혹시, 입에 안 맞으신가요?”
“아. 그런 건 아닙니다. 정말 맛있는 칵테일입니다. 그저…”
“편하게 말씀하셔도 됩니다.”
“흠. 네.”
손님은 이런 경험이 이미 있는 듯 헛기침을 한번 하고는 슬쩍 정환의 눈치를 봤다.
정환은 최대한 편하게 손님이 말할 수 있는 자세로 듣는 자세를 고쳐 본다.
부담을 주지 않고 또, 압박감을 주지 않을 그럴 자세로.
“그러니까, 혹시나 하고 묻는 겁니다만, 이게…. 음, 그래스하프. 그 칵테일이 맞는 거지요?”
그러자, 손님의 입에서는.
조금 의외의 질문이 나온다.
“어…, 네. 그래스호퍼가 맞습니다만. 왜 그러시죠?”
“아. 다름이 아니라…. 무, 물론. 얼마 전. 그러니까, 몇 달 전? 다른 바에서도 이렇게 똑같이 만들어 주긴 했습니다. 아. 당연히 여기가 더 맛있긴 했지만….”
“원래 찾던 맛은 아니시군요. 거기도. 또 여기도.”
“…제가 찾는 건 조금 다르긴 합니다. 조금 더 무거웠던 느낌이….”
“흠….”
기분이 나쁠 법도 한데. 저 바텐더는 그런 기색이 없이 멈춰서서 조용히 턱을 잡는다.
이건 언제나 그가 고민에 빠질 때면 나오는 특유의 자세.
지금 그의 머릿속은 그저 손님이 찾는 맛에만 맞춰져 있다.
“기분 나쁘게 하려는 의도는 아니었습니다.”
“아뇨. 아뇨. 괜찮습니다. 찾으시는 맛이 있으시다면 당연히 맞춰드려야죠. 잠시, 생각을 좀 해보고 있었습니다.”
“이거, 귀찮게 해드렸군요. 죄송합니다.”
사과를 전하는 손님의 말에도 정환은 입으로 웃으며 여전히 고민을 거듭한다.
그리고 그런 정환의 머리를 스치는 하나의 사실.
탐-카린스. 그래스 하프.
손님의 발음이 제법 예스러웠던 걸, 정환은 다시금 떠올렸다.
“혹시. 무겁다는 말씀이, 술맛이 강했다는 그런 뜻일까요?”
“그, 그랬던 거 같습니다.”
씨익.
거기에 손님의 답까지 들리자 머리에 빛이 스치는 정환. 정환은 이제야 턱에 올렸던 손을 떼고는 밝게 웃는다.
“잠시, 잔을 수리해서 드려도 될까요?”
“이걸, 말씀입니까?”
“네. 잠시면 됩니다.”
정환은 자신만만하게 손님의 잔을 가져가 자신의 앞으로 되돌렸다.
그리고 백바에서 술병 하나와 바 스푼을 가져와 천천히 잔에 그 술을 더하는 정환.
얇은 층이 하나 잔 위에 생기더니, 이내 정환이 수리를 마친다. 정환은 잔을 다시 손님의 앞으로 내밀었다.
“이제 드셔보시죠. 제 생각에는 이 맛이 가장 비슷하지 않을까, 합니다.”
손님은 잔과 바텐더를 연신 번갈아 보더니 슬며시 손을 앞으로 뻗는다.
그리고 아까처럼 다시금 입을 타는 그래스호퍼.
호르르륵.
한 모금의 잔이 다시금 그의 입을 타자.
!!!
그의 눈이 찾던 맛을 찾았음을 정환에게 알려준다.
“찾으시는 맛이 맞으신가요?”
“이, 이겁니다! 이거예요! 어, 어떻게 맛이!?”
처음으로 과한 동작을 펼치는 손님을 정환이 겨우 진정시킨다. 그리고 보여주는 건 자신이 가져왔던 하나의 술병.
“브랜디로 층을 더 했을 뿐입니다.”
“브랜디…?”
“네. 도수가 조금 높지만, 향은 좋은 술이죠.”
“그랬군요. 레시피가 달랐던 겁니까?”
“변했다는 말이 맞을 겁니다.”
“그게 무슨…?”
“그래스호퍼는 오래된 칵테일이라서요. 1918년, 미국의 뉴올리언스에서 만들어져 금주법마저 이겨낸 칵테일이죠. 그리고 오래된 칵테일이 대부분 그렇지만 여러 시대를 지나면서 다들 레시피가 바뀌곤 했습니다. 최초의 그래스호퍼는 지금, 앞에 놓인 잔보다는 조금 더 복잡한 레시피였구요.”
“그럼, 제가 마셨던 칵테일은 그 옛날의 그래스하프였다는 말씀이군요.”
“그것과도 조금은 다릅니다. 원래는 크렘드 카카오를 두 종류. 민트도 두 종류. 이렇게 넣은 후 브랜디를 플로팅 해줬습니다. 하지만, 카카오도 민트도 결국 색만 다르고 맛이 비슷해 한 종류만 써도 된다는 결론도 나왔었죠.”
정환은 그래스호퍼에 들어간 재료를 하나씩 보여주며 손님에게 설명을 이어갔다.
“그래서 바뀐 레시피가 리큐르를 하나씩 넣고, 브랜디를 살짝 플로팅하는 레시피였습니다. 변화의 과도기같은 레시피죠. 물론, 지금은 브랜디도 빠졌습니다만. 딱…, 그런 레시피가 유행했던 시기가. 아마 손님께서 처음 칵테일을 드셨던 7, 80년대였을 겁니다.”
!
“어, 어떻게, 그때를…?”
“발음, 그리고 찾으시는 맛. 이걸 종합해서 유추해 봤습니다. 무례였다면, 사과드리겠습니다.”
“…….”
이거다. 손님의 머리에는 순간 강성원 대표의 목소리로 그런 말이 스쳤던 거 같다.
물론 엄지를 추켜 올리는 그런 모습까지.
정환의 말처럼, 손님이 처음 그래스호퍼를 접했던 건 딱 그 무렵이었다.
그리고 정환이 만들어 낸 맛마저 그 당시의 맛.
손님은 넋이 살짝 빠진 표정을 얼른 지우고는 이내 얼굴에 기대감을 채웠다.
이 맛을 재현해낸 바텐더라면. 또 저렇게 박식한 바텐더라면. 자신이 던질 질문에 대한 답을 알 수 있을 거란, 그런 기대감을.
“사장님. 우선, 감사합니다. 제가 찾던 그래스하프는 이 맛이 맞습니다.”
“다행이네요. 아닐까봐, 조금 걱정했습니다.”
“그리고…그, 이런 부탁이 참 이상하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만…. 혹시 칵테일과 관련해서 다른 부탁을 하나만 더 해도 되겠습니까?”
“그럼요. 제가 들어드릴 수 있는 거라면 최선을 다 해보겠습니다.”
흔쾌히 응하는 바텐더의 말에 손님은 눈에 힘을 주고는 그를 정면으로 바라봤다.
어쩌면, 애초에 이곳을 찾은 이유는. 지금부터 시작할 말에 있을지 모를 그였다.
“이름을 모르는 칵테일이 하나 있습니다. 꼭 찾아야만 하는 칵테일이지요. 혹시…, 그 칵테일을 알 수 있을까요?”
!
이름을 모르는 칵테일이라. 칵테일의 종류만 해도 수백 가지가 넘는다.
거기서 이름을 모르는 하나를 찾아 달라니.
정환은 난제처럼 보이는 질문에 당황을 금치 못했다.
“…이름을 모르는 칵테일이라면?”
“바텐더가 서비스로 건넸던 칵테일입니다. 아쉽게도 이름은 듣지 못했지요.”
“서비스라…. 쉽지는 않겠군요.”
“역시 그렇습니까….”
“그래도 도전은 한번 해봐야죠. 맛이나 색은 기억하시나요?”
그래도 시도는 해봐야 하지 않겠나. 손님의 취향을 못 맞춰도, 또 입맛을 놓쳐도.
계속해서 도전해야 하는 게 바텐더라는 이들.
정환은 쉽지 않은 질문이지만. 언제든 난제에 도전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가, 감사합니다! 전부는 아니라도 맛과 색을 어렴풋이 기억은 합니다. 불그스름한 색에 포근한 맛. 그리고 달콤한 맛이 있었습니다. 표현법을 몰라서 이런 표현 밖에는….”
“흠….”
어렵다. 예상했던 것만큼 어려운 질문에 정환은 다시금 턱을 잡았다.
붉은 계열에 달콤한 맛이라. 당장 떠오르는 칵테일만 해도 수십 가지가 넘는다.
아무래도. 접근하는 방법을 바꿔야만 할 거 같다.
“이렇게 해보시죠. 당시 상황이나, 분위기. 이런 걸 기억하시나요?”
“네?”
“아무래도 바텐더라면 분위기나 상황을 봐가며 서비스를 제공했을 것 같아서요. 전작도 좋고, 또 당시의 이야기를 들려주실 수 있다면. 답을 찾는 데 도움이 될 겁니다. 물론, 실례가 된다면, 들려주시지 않아도 됩니다.”
“아. 아닙니다. 그런 건….”
손님은 당시 상황을 물어오는 바텐더의 말에 잠시 고개를 숙인다. 이건 고민이나 말하길 꺼리는 것이 아닌 일종의 준비 동작.
그는 이야기를 꺼낼 준비를 위해 잠시 마음을 다독이는 것처럼 보였다.
잠시 마음을 다독인 그가, 그래스하프를 한 번에 비우고는 고개를 들며 입을 열었다.
“물론 기억하고 있습니다. 잊을 수가 없는 날이지요. 1976년. 전 그날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