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술은 특별합니다-89화 (89/175)

89잔. 같이 갑시다.

4.

“시간 내주셔서 감사해요.”

“아뇨. 제가 감사하죠. 마침, 고민하던 중이었으니까요.”

일주일에 딱 하루.

아실이 문을 닫고 쉬어가는 날.

정환에게는 단 하루뿐인 이 휴무 날, 정환은 여전히 아실에 남아 누군가를 마주하고 있다.

정환의 옆에는 지난밤, 정환이 전화를 걸었던 마리너스의 바텐더 임재훈이 자리하고 있다.

늦은 밤 걸려 온 전화에 당황할 법도 한데, 재훈은 정환의 거침없는 물음에 만나서 이야기하자는 말을 전했다.

마침 둘 모두 휴무였던 오늘이기에, 둘은 이렇게 시간을 맞출 수 있었다.

“커피 한 잔 내려드릴까요?”

“네. 부탁합니다.”

두 사람이 마주한 곳은 종로의 작은 바, 아실. 마땅히 둘이 다른 곳을 가기도 애매해, 그저 둘은 여기서 서로를 마주하고 있다.

위이이이잉.

잔잔한 침묵 사이로 커피 내려오는 소리가 울린다. 둘은 이제 어색하지 않은 사이거늘, 둘 사이에는 알 수 없는 어색함이 자리하고 있다.

탁.

“드세요.”

“네. 감사합니다.”

어색함을 누르려는 듯 커피는 향을 뿜으며 둘 사이에 자리한다.

언제나 입으로 들어가는 음료는 어색함을 중화하는 좋은 재료.

둘은 한 모금 따뜻한 커피를 마시며 서로의 생각을 정리했다.

그리고.

“…독립을 아직 고민 중이냐고 물으셨죠?”

먼저 열리는 건 재훈의 입이었다.

“네. 아직 고민 중입니다. 매일 오락가락하는 거 같네요. 아직 저도 제 마음을 잘 모르겠다는 말이 맞겠죠.”

“저번에 말씀하신 것처럼, 잘할 수 있을지. 그게 고민이신 가요?”

“맞습니다. 아무래도 첫 도전이고…, 또 실패에는 내성이 없어서요.”

호륵.

‘실패라….’

재훈은 말을 들은 정환은 이런 말이 쉽게 나오는 말이 아닌 걸 알고 있다.

정환이 아는 재훈의 미래야 성공한 사업가였지만 그건 한참 후의 이야기.

정환은 이 시절의 재훈을, 또 성공하기 전의 재훈을. 알지 못한다.

“정환 씨는 어떠셨나요? 떨리진 않으셨나요?”

“저도 떨리긴 했습니다. 실패를 두려워하기도 했죠.”

“어떻게 이겨 내셨고요?”

“이겨 내진 않았습니다.”

호륵.

정환은 말을 한 번 끊고는 잔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자신을 향해 들려왔던 말이 진심인 만큼, 정환도 진심을 내보여 보는 중이다.

“……?”

재훈은 잠시 시선을 옆으로 돌려 정환의 얼굴을 바라봤다. 이건 무슨 말일까. 그의 고민이 머리를 채우기 전에.

“여전히 두려워요.”

정환의 답이 먼저 입에서 나온다.

“아직도 실패하면 어쩌나 늘 전전긍긍하는 중인걸요.”

“…지금처럼 아실이 잘되어 가는 중인데도요…?”

“네. 지금 이런 상황이 언제까지 계속될지는 누구도 모르는 거잖아요. 또…, 가게가 잘 되는 거랑 제가 생각하는 실패랑은 다른 거라서요.”

씨익.

탁.

정환은 잔을 내려두며 가장 담백한 미소를 지어 보인다. 이건 누군가를 낚아채기 위해 억지로 짓는 미소도, 억지로 꺼낸 말도 아니다.

누구에게도 보인 적 없던, 정환이 늘 가지고 있었던 내심. 정환은 자신과 비슷한 길을 걸어가려는 저 젊은 바텐더에게, 자신이 가지고 있던 속 깊은 이야기를 들려줄 뿐이다.

“그럼, 정환 씨가 생각하는 실패란 어떤 거죠?”

“글쎄요. 쪽박을 차는 것도 실패일 수도 있겠죠. 하지만, 제가 생각하는 가장 큰 실패는 아마도…, 네. 여기. 아실이 제가 원하는 공간이 아니게 되는 것. 그게 가장 큰 실패가 아닐까 싶네요.”

“철학적이군요…. 조금은 현실성도 없어 보이고.”

“제가 철이 없어서요.”

대신 다른 건 있어 보인다. 아르센에 가득하던 무언가가. 재훈은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굳이 말하진 않았다.

“뭐, 어쨌든…. 개업한 후에도 계속 그렇게 두려워하며 지내야 한다는 거군요.”

“아마 모든 바텐더, 아니. 모든 자영업자가 그럴 거예요. 개업이 끝은 아니니까요.”

“개업이 끝이 아니라…. 괜히 더 무서워지는데요.”

“너무 겁을 준 건가요? 그래도 어쩔 수 없는 사실이라서요.”

“그렇겠죠. 오히려 그런 말을 들으니, 더 덤덤해지긴 합니다.”

“그렇담 다행이구요.”

호르륵.

호르륵.

“그래서…, 더 현실적인 부분을 외면할 순 없는 거 같습니다. 바텐더가 독립할 때 가장 중요한 건 데려갈 수 있는 손님의 수겠죠. 제가 가장 걱정하는 건 지금…딱, 그 부분입니다. 막상 개업한 후…, 그런 손님의 수가 줄어든다면 실패라 볼 수밖에 없겠죠.”

바텐더가 한 가게를 새로 여는 것에는 말 그대로 수많은 요소가 작용하게 된다.

실력, 경력, 경험, 단골, 수완, 홍보 등 고려할 것만 해도 양손이 모자랄 정도.

허나, 그런 요소 중 가장 중요한 건 재훈의 말처럼 바텐더의 이름 하나로 끌어모을 수 있는 손님의 수일 것이다.

이건, 비단 개업이 아니라 이직에서도 바텐더의 가치를 측정하는 중요한 요소가 되곤 했다.

정환만 봐도 그런 면이 없진 않았다. 애초에 실력이 워낙 좋기에 무주공산에 삽부터 밀어 넣은 경향도 없진 않았지만.

정환에게는 누군가 물려준 유산이 있지 않았나.

정환의 아실은 아르센의 적통으로서, 아르센의 단골과 손님을 대부분 물려받아 초창기를 버텨낼 수 있었던 곳이다.

마리너스라는 본가를 그대로 두고 나오려는 재훈은 정환의 그때와는 조금 다른 상황일 터.

재훈의 손님 중에는 그저 임재훈 바텐더의 손님이 아닌, 마리너스의 바텐더 임재훈의 손님인 이들도 있을 게 분명했다.

“투자자도 있고, 또 장기적으로 제가 원하는 공간을 운영하려면…, 결국 수익이 중요하니까요. 현실적이지만, 어쩔 수 없죠.”

재훈은 이런 사실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손님의 수…. 중요하죠. 재훈 씨. 그럼, 혹시 그런 손님의 수를 다른 쪽에서 채울 수 있다면. 그렇다면. 재훈 씨의 고민은 조금 덜어질까요?”

“…그게 무슨 말씀이죠?”

정환은 기회를 노리며 차분히 자신의 본론이 나올 타이밍을 기다렸다. 그리고 기회가 오는 순간 무심히 툭! 꺼내 보는 자신의 본심.

오늘 정환이 재훈을 만난 건, 다름 아닌 지금 이 이야기를 꺼내기 위해서였다.

“잠시만요.”

스윽.

정환은 자신의 말을 그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재훈을 위해 무언가를 가져온다.

백사이드로 들어가 한 권의 노트를 가지고 나오는 정환.

정환은 이를 재훈의 앞에 두고는 다시금 자리에 앉았다.

“이건 뭐죠?”

“읽어 보세요. 아실의 주말 영업을 정리한 장부입니다.”

!

“이걸…왜…?”

“한 번 읽어 보시면, 조금 이해가 가실 겁니다.”

재훈은 간단히 답하고는 잔을 드는 정환을 한동안 빤히 바라봤다.

언제나 속을 알 수 없는 인물이기는 했지만, 오늘은 유독 그 정도가 심하다.

삭. 삭. 삭.

장부의 책장이 넘어간다. 눈에 잔뜩 힘을 주고는 이를 읽어가는 재훈.

재훈은 바텐더로서, 또 한 명의 예비 오너로서. 아실이라는 떠오르는 가게의 장부를 차분히 살폈다.

‘탄탄하다.’

제일 처음 든 생각은 탄탄하다는 것. 당장에 지난 2주 만이 아니라 그 이전부터 아실의 주말 영업 자체는 탄탄함 그 자체였다.

아르센에서 흘러온 손님도 있고, 또 종로라는 특성이 잘 반영되어 적당한 워크인 손님도 지나간 흔적이 장부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그리고.

‘……!’

장부의 책장이 마지막을 향해 갈 때.

재훈은 눈은 이미 동그래져 정환의 옆얼굴과 장부를 번갈아 가며 바라볼 뿐이다.

하루 정도 일하며 살폈던 것보다는 훨씬 많은 정보가 담긴 장부가 재훈의 눈을 채웠다.

“이건…, 대박이군요. 그 짧은 시간에 이 정도 성과라니요. 그것도 첫 가게에….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당장 바를 열겠다는 말도 나올 정도입니다.”

“보이는 건, 그게 전부인가요?”

넘어가는 책장 사이로 정환의 말이 자리한다. 정환의 물음에도 재훈은 여전히 시선을 장부에서 떼지 못하고 있다.

“아뇨. 그렇지는 않네요. 좋지 못한 부분도 점점 보입니다.”

“어떤 점이죠?”

“흠…. 조금은 성급하지만, 확장이나 분점을 고려해야 할지도 모르겠네요. 회전율이나 수용율에서는 그런 점이 조금 걱정이네요.”

역시. 바텐더는 바텐더다. 거기에 사업적인 안목까지. 정환은 자신의 눈이 틀리지 않았음이 증명된 듯 밝게 웃었다.

재훈이 보는 시선은 정확히 지금 아실의 상황과 들어맞고 있었다.

이유가 회전율이나 수용율 같은, 조금 현실적인 이유는 아니었지만 말이다.

“어제는 8팀이 아실 안에 들어오지도 못하고 돌아가셔야 했습니다. 대기 손님은, 셀 수도 없을 정도였죠.”

“벌써 그만큼이나요? 8팀이면 웬만한 가게 평일 매상일 텐데요.”

“네. 2주째, 이런 일이 반복이네요.”

“이제는 자리를 잡았다는 말로는 부족한 정도군요…. 대단합니다.”

“그렇죠?”

“투자자가 이런 장부를 보시면 확장이나 분점을 제안하실 텐데요? 보여드렸습니까?”

“아뇨. 아직.”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넘치는 손님을 받아줄 곳이 필요해 보입니다만.”

“문제가 있는 건 아닙니다. 그저, 분점이나 확장보다는…”

정환은 연신 장부를 훑는 재훈에게 마치 일반적인 대화를 던지듯 가볍게 말을 이었다.

옅게 가진 그의 미소가 제법 의미심장했다.

“다른 가게가 손님을 받아줬으면 해서요.”

!

재훈은 정환의 마지막 말이 나오고 나서야 시선을 장부에서 뗄 수 있었다.

휙!

하고 빠르게 돌아간 그의 고개가, 정환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사람처럼 보이진 않았다.

“…그 말씀은?”

“재훈 씨. 종로로 오세요. 독립. 합시다. 그리고 아실의 옆에서 저 쏟아지는 손님을 같이 받아줬으면 합니다.”

!

“네…?”

갑작스러운 정환의 제안에 재훈은 당황하며 몸을 뒤로 당겼다.

재훈의 얼굴에는 갑작스러움과 놀라움, 그리고 당황이 동시에 아렸다.

“종로가 나쁜 위치는 아닙니다. 장부를 보셔서 아시겠지만, 워크인으로 들어오는 손님도 적지 않고 지금 아실이 불러오는 손님도 적지 않아요. 거기에 재훈 씨가 데려올 수 있는 손님까지 합쳐지면. 아마, 바 하나 정도는 감당이 가능할 겁니다.”

“그야 그렇게 보이긴 했지만…”

이건 너무 갑작스럽지 않나. 재훈은 그런 생각과 동시에 잠시 머리를 굴려 본다.

장부가 보여준 현재 아실의 상황이 정환의 말과 다르진 않았다.

“…그렇다고 해도, 보통은 분점이나 확장을 먼저 생각하는 게 정상 아닌가요? 어째서…, 이런 기회를 다른 사람에게 주려는 겁니까?”

그리고 나오는 원론적인 질문.

재훈은 자신의 머리로는 아무리 생각해도 정환의 제안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실이라는 곳은 이 골목에 하나만 있으면 충분합니다. 분점도 좋고, 확장도 좋죠. 하지만, 분점이라면 꼭 이 골목이 아니라 다른 곳에 내는 게 더 좋을 겁니다. 확장은…. 글쎄요. 제가 생각하는 크기는 딱 이 정도가 좋아서요.”

“아무리 그래도…”

“단순히 아실로 손님을 감당하는 게 힘들어서 이런 제안을 하는 건 아닙니다.”

“그럼…대체 왜 이러는 겁니까?”

“상권.”

!

“새로운 상권을 만들었으면 해서요. 지금 한남, 청담을 기준으로 형성된 상권과는 다른 바의 골목을 만들고 싶습니다. 바 호핑(bar hopping)이 가능한 골목. 한 가게에 들어가지 못했다면 다른 가게에 갈 수 있는 골목. 그래서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바들이 있는 골목 말입니다. 그걸 위해서는…, 다양한 바가 있을 필요가 있겠죠. 아실만 가득한 그런 골목이 아니라.”

하.

나오는 거창한 소리에 재훈은 자신도 모르게 그런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고 말았다.

혼자 작은 가게를 내느냐 마느냐로 전전긍긍하는 사람 앞에서 상권이라니.

이건, 이야기하는 스케일이 너무 다르지 않나.

재훈은 그런 생각에 쉽게 답을 하지 못했다.

“…….”

“현실적인 부분만 보셔도 됩니다. 장부, 보셨잖아요. 거창한 꿈이야 어디까지나 제 몫이니까요. 장부만 보시고. 가능성이 있어 보이면, 고려해주셨으면 합니다.”

정환은 마지막 말을 던지고는 선택권을 재훈에게 넘겼다. 현실적인 부분을 보던 그였던 만큼 꿈에 대한 거창한 설득보단 이게 나을 거라. 정환은 그렇게 판단했다.

“…….”

선택권을 넘겨받은 재훈의 손이 다시금 장부로 향한다. 처음부터 다시 장부를 살펴보기 시작하는 재훈.

‘확실히 나쁜 제안은 아니다.’

장부를 빠짐없이 훑는 재훈의 눈에는 그런 생각이 맺혀가고 있었다.

재훈은 한참이나 공을 들여 장부를 처음부터 다시 뜯어봤다. 장부만 보려 이런 시간을 보낸 건 아니다.

그는 장부를 보며, 또 그렇게 시간을 들이며. 머릿속으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 갔다.

정환은 차분히, 그를 기다릴 뿐이다.

탁.

마침내 장부가 덮힌다.

그리고.

“솔직하게 말씀드리자면…, 장부만 봤을 때는 나쁜 제안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의 입에서는 긍정적인 반응이 나왔다.

“지금, 결정하셔도 되겠어요?”

“더 시간을 끈다고 해도…, 결론이 다르진 않을 거 같네요.”

그래, 사실 고민 중이라는 말로 표현했지만, 내심에서는 재훈 역시 이번 독립이라는 문제에 대해 답을 내리고는 있었다.

그저 조금 두려운 마음에 미루고 있었을 뿐. 그는 그렇게 미뤄왔던 결심을, 이제는 내릴 준비가 된 듯 보였다.

“받지 않을 이유가 없어 보입니다. 이건 현실적인 문제도 그렇고, 또…”

덤덤하게 말을 이어가는 재훈. 정환은 그의 말이 끝날 때까지, 어떤 동요도 보이지 않고 기다리고 있다.

“거창한 꿈이라는 것도 싫지 않아서요. 파리지앵을 배울 때도 말씀드렸지만, 저 역시 바를 찾는 손님층이 다양해지길 바라고 있습니다. 정환 씨가 그리는 골목은 그럴 수 있는 골목이겠죠. 그렇다면, 저 역시 한몫 거들고 싶습니다.”

재훈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정환을 정면으로 응시했다. 그의 얼굴에서 이미 고민은 사라져 간데없는 지금.

애초에 처음 제안을 받았을 때부터 재훈은 한쪽으로 기울었을지도 모른다.

현실적인 조건, 또 거창한 꿈.

그런 건 전부 빼고라도.

저 차정환이라는 자신이 인정하는 바텐더의 옆에서 무언갈 해보고 싶다는 마음은 언제나 재훈에게도 있었으니까.

장부를 넘기며 재훈은 마음속으로 그런 생각을 정리하고 있었다.

독립이라는 문제도 그저 미루던 와중에 계기가 생겼기에 빠르게 결단을 내렸을 뿐이고.

“완전히 결심하신 건가요?”

“많이 도와주셔야 합니다. 가게 하나로 끝날 일은 아니니까요. 기획부터 방향까지. 정환 씨가 전부 참여한다는 조건이라면. 네. 종로로 오겠습니다. 투자자분은 제가 설득하죠.”

!!

“무, 물론이죠! 최선을 다해서 돕겠습니다!”

명쾌하게 나오는 답에 정환은 반색하며 몸을 앞으로 내밀었다. 그의 얼굴에는 그리던 그림이 완성되어 기뻐하는 표정이 걸린다.

“아마 앞으로는 원망도 하실 겁니다. 제가 지독하게 도와달라며 괴롭힐 거니까요.”

“얼마든지요.”

“당장 준비해보죠. 여기까지 온 김에…, 근처 점포를 조금 보고 갔으면 합니다.”

“지금요? 그러시죠! 제가 아는 부동산으로 갑시다. 업체도 제가 다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한번 결정을 내리고 난 후 재훈은 일을 일사천리로 진행하기 시작했다.

당긴 김에 쇠뿔을 빼려는 이의 모습. 결심까지는 최대한 고뇌한다. 그리고 결심인 선 후에는 불처럼 밀고 가는 그.

어쩌면, 이전 생에서 정환이 봤던 재훈의 성공은 이런 성향 덕분일지도 모른다.

“고맙습니다. 이런 기회, 제게 제안해주셔서.”

“아뇨. 제가 더 감사하죠. 받아주셔서.”

“얼른 보고 싶네요. 완성될 그 골목. 물론, 바 두 개로 끝날 일은 아니겠지만요.”

“네. 차차 늘려가야죠.”

“좋습니다. 나머지는 같이 찾아보죠. 우선, 제 가게 먼저 찾아보고.”

“네. 그래야죠. 가실까요?”

둘은 자리에서 일어나 아실 밖 종로의 골목을 향해 걸어 나갔다.

늘 혼자 걷던 종로의 그 골목을.

정환이 처음으로 누군가와 함께 걷기 시작한 날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