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잔. Pick me!
1.
“편하게 칵테일 하나 만들어 보세요.”
“아무거나요?”
“네. 아무거나 괜찮습니다.”
밝은 햇살이 내리쬐는 한낮의 종로.
그런 종로의 한 골목을 차지한 한옥 바, 아실에는 조금 특별한 광경이 펼쳐지고 있다.
이곳의 오너이자 바텐더인 정환 대신, 오늘은 낯선 인물이 바 안을 차지하고는 바텐더처럼 서 있다.
“준비되면, 시작하세요.”
진중한 표정으로 무게감 있게 나오는 정환의 목소리. 정환은 오늘, 바텐더도 또 한 명의 신입도 아닌 한 바의 오너로서 이 자리에 있다.
오늘은 아실과 앞으로 함께할 새로운 바텐더를 뽑는 날. 서류만으로 모든 걸 알 수는 없기에, 정환은 몇 명의 사람을 추려 이렇게 면접을 보는 중이다.
정환의 앞에는 비슷한 나이의 청년이 잔뜩 굳은 모습으로 손을 움직일 준비를 한다.
‘흠. 1년 정도 경력이고 캐주얼한 칵테일 펍이었네. 나쁘지 않지.’
지원자가 잠시 주변 도구를 둘러보는 동안 다시금 이력서를 읽는 정환.
조주기능사 자격증과 캐주얼한 칵테일 펍에서 1년 정도 일한 경력이 그의 이력서를 채우고 있다.
뭐, 굳이 클래식 바에서 일한 사람만을 뽑으려는 건 아니다. 출신이야 어떻든. 조건만 충족한다면 정환은 누구라도 뽑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시작하겠습니다.”
“네.”
지원자는 천천히 술병을 살피더니 몇 개를 골라 가장 자신 있는 칵테일을 만들기 시작했다.
살각! 살깡! 살끄락!
몇 번의 셰이킹 소리가 들리고는 잔이 완성된다. 지원자는 떨리는 손으로 메이킹을 마치고는 정환에게 잔을 밀어냈다.
“다이키리인가요?”
“네. 맞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한번 맛봐도 될까요?”
“네. 물론입니다.”
정환은 정중히 허락을 구하고는 지원자의 다이키리를 음미했다. 색이 적당히 묻어 나와, 겉보기에는 나름 봐줄 만한 다이키리였다.
‘흠….’
한 모금 잔을 들이킨 후 정환의 표정이 굳는다.
‘셰이킹도 부족했고 계량도 어긋났네. 이건…’
손님에게 내놓기에는 부족하다. 정환은 애써 속에서 피어오르는 그런 생각을 감추며 다음 질문을 이어갔다.
“혹시, 다이키리를 택하신 이유가 있을까요?”
“어, 아무래도 클래식 바와 어울려 보여서요.”
“다이키리가요? 왜죠?”
“클래식 칵테일이고…, 또 입맛도 대중적이고….”
“그게 전부인가요?”
“네. 아. 거기에 만들기도 어렵지 않고….”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고생하셨어요, 오늘. 결과는 내일까지 문자로 알려드리겠습니다. 차비 챙겨가세요.”
칵테일 만드는 모습 하나, 그리고 질문 한 개. 딱 이 정도면 면접을 보기에는 충분하다.
칵테일에서는 실력이 부족함이 느껴졌고, 다음에 이어진 질문에 대한 답 역시 만족스럽지 않은 지원자였다.
정환은 아쉬움을 가득 안고는 그렇게 지원자를 돌려보냈다.
‘바텐더가 쉬운 것만 찾아가면 되나….’
실력이야 가르치면 된다지만, 그래도 기본적인 사고 회로는 자신과 맞을 필요가 있다.
정환이 원하는 건, 그리 거창한 건 아닌 딱 그 정도였을 뿐이다.
이후로도 몇 사람이 더 아실을 들어오고 나가고를 반복했다. 다들 1년에서 3년 정도 경력이거나 또는 조주기능사 자격증이 있던 사람들.
그들은 앞선 사람처럼 아무 칵테일을 하나 만들고는 정환의 물음에 답하는 똑같은 과정을 거쳤다.
반응은 다양했다.
“네? 아무 칵테일이라니요? 클래식 바는 그래서는 안 됩니다. 젊은 사장님이 뭘 모르시는 것 같은데…”
로 시작해 정환을 가르치려 들었던 20대 후반의 한 지원자도 있었고.
“어, 그, 저…. 아메리카노 레시피가…? 스위트 베르무트 맞았나요? 드라이였나?”
라며 레시피를 역으로 정환에게 묻는 사람까지.
서류로 거른다고 거른 건데도 이 정도였으니. 지원자를 전부 면접했으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지, 정환도 감히 예상 가는 바가 없을 정도였다.
털썩!
정환은 구석 자리에 앉아서는 몸을 뒤로 눕혔다. 잔뜩 지친 기색이 그의 얼굴에 가득했다.
‘사람을 구하는 게 이렇게 힘든 일이었나….’
가게를 열어보기도 전에 회귀했기에 이전 생에는 알지 못했다. 일본에서 매니저로 일할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고.
뭐든, 사람을 쓴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님을 이제야 실감하는 그였다.
후우우우.
정환이 숨을 거칠게 몰아쉬고는 몸을 일으켰다. 이제 곧 마지막 지원자가 들어올 터.
정신을 차리고 자세를 고쳐 앉은 정환은 마지막 지원자의 이력서를 들어 올렸다.
‘경력은 3년. 두 곳 정도에서 일했네. 흠. 일했던 곳이…. 뭐. 상관은 없지.’
나이는 정환보다 한 살 아래인 스물셋.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곧장 취업 전선에 뛰어든 그는 제법 성실히 바텐더로서 경력을 쌓아온 것처럼 보였다.
지난 주말 아실에 들러 정환을 잔뜩 구경하고 돌아간 사람이 바로 이 마지막 지원자.
지원자 중 정환과 구면인 이는 그가 유일했다.
딸랑.
문이 열리고는 익숙한 얼굴의 사내가 안으로 들어섰다. 과묵한 얼굴에 진중해 보이는 표정.
그는 얼굴에 잔뜩 힘을 준 채 정환을 한 번 보고는.
“안녕하십니까! 바 아실에 면접을 보러온, 장!윤!수! 입니다!”
자신이 낼 수 있는 가장 큰 목청으로 자신의 등장을 알렸다.
‘허어….’
제법 기합이 들어간 모습에 슬쩍 몸을 빼며 피하는 정환의 모습.
사내는 딱 보기에도 절도 있고 기합이 잔뜩 들어간 모습으로 정환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눈에는 알 수 없는 이채와 함께 빛이 반짝이고 있다.
“아, 네. 윤수…씨? 우리 구면이죠?”
“네! 그렇습니다!”
“바, 반가워요. 안으로 들어와요.”
“감사합니다!”
장윤수 지원자는 90도에 가깝게 고개를 숙이고는 정환이 손으로 가리킨 곳을 향했다.
어찌나 빠르게 움직이던지, 정환은 그 옛날 군시절 신병 때가 떠오를 정도였다.
‘생각보다 괜찮은데?’
첫인상이야 좋다. 면접을 보러 와서 이렇게 절도 있고 빠르게 행동해주면 어찌 싫을 수가 있을까.
지난 주말 하도 빤히 보길래 이번 면접 역시 무언가를 알아보거나 시비를 걸려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없진 않았다.
헌데, 저리 나오는 걸 보니, 딱히 그런 의도는 아닌 모양이다.
“전 차정환이라고 해요. 아시다시피, 여기 아실의 오너 바텐더입니다.”
“넵!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존경합니다!”
‘가, 갑자기…?’
“어, 예. 그! 가, 감사합니다. 우선, 바 안으로 들어가 보실래요?”
“넵!”
윤수는 정환의 말에 곧잘 따라 바 안으로 얼른 들어갔다. 이전 주말, 정환을 노려보던 표정은 얼굴에 간데없고 이제는 빠릿한 모습만이 가득한 그였다.
“주말에는…어떻게 오셨던 거예요? 우연인가요?”
정환은 바 안으로 들어간 그를 보며 조금 거리를 두고 앉았다.
그리고 던져보는 간단한 질문. 지난 주말, 이곳을 방문한 이유를 정환은 직접적으로 그에게 던져 봤다.
“전! 운명이었다고 생각합니다!”
!
“네…?”
“우연히 SNS와 인터뷰를 봤습니다! 사장님의 철학과 생각, 그리고 전설적인 아르센에서의 이야기까지! 전부 감동이었습니다!”
“그럼, 주말에 왔던 이유가…?”
“옙! 제자가 되고 싶어 여기까지 왔었습니다! 마침 제가 들른 후 구인 공고가 나오다니요! 이건 운명이라고 생각합니다!”
“하…하하. 재, 재밌네요. 면접에 붙어도 제자 같은 건 아니니, 편하게 임해주세요. 그냥 사장일 뿐입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의 입에서 나오는 답이 제법 걸작이다. 그가 지난 주말 아실에 들러 정환을 그토록 노려봤던 이유가 이런 이유일 줄이야.
실력을 한번 보니 나름 괜찮게 보여 일하러 온 것일지도 모른다는 단순한 정환의 예상은 단박에 저 멀리 날아가 버렸다.
‘제자까지는…’
무리가 아닐까. 정환은 살짝 진땀을 빼며 자신을 향하는 뜨거운 시선을 겨우 외면했다.
“우선, 면접부터 진행하죠. 네. 아무 칵테일이나 하나 만들어 보시겠어요?”
“아무…칵테일이면 되는 건가요?”
“네. 편하게 만들어 보세요. 일하는 모습, 또 방식.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결과물까지 보려는 거니까요. 경력도 3년이나 있으시네요. 편하게 해보세요.”
정환은 여느 지원자와 같은 설명을 풀어가며 장윤수란 지원자를 독려했다.
열정이 넘치는 거야 좋은 일이다. 거기에, 이곳에서 일하고 싶은 마음마저 가득하니 더할 나위 없지 않나.
그래도 지금 제일 중요한 건 실력일 터. 자신에 대한 존경도. 또 열정도. 실력이 없다면 상관치 않을 정환이었다.
“긴장하지 마세요. 그리고, 몸에 힘을 좀 풀까요? 기합도 좋지만, 바텐더가 너무 딱딱한 것도 안 좋아요. 편하게. 편하게 해봅시다.”
“네. 알겠습니다.”
“도구랑 재료는 익숙한 거로 마음껏 쓰시고, 준비되면 시작하세요.”
차분해지라는 정환의 말에 지원자는 조금 진정된 모습을 보인다. 그는 조용히 테이블 위를 둘러보며 도구를 눈에 익혔다.
‘흠….’
정환은 이력서와 지원자를 번갈아 보며 그의 반응을 살폈다. 셰이커가 놓인 곳과 술병을 차례로 보더니 조금 떨리는 것같은 그의 눈.
‘역시, 그걸 찾는 건가?’
정환은 그런 모습까지, 놓치지 않고 보고 있었다.
“시, 시작하겠습니다.”
눈을 여기저기 흔들던 지원자가 손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는 클래식 셰이커라고도 불리는 코블러 셰이커를 꺼내 조심스레 삼단으로 분리했다.
그리고 떨리는 손으로 술을 계량하는 그의 모습. 지거에 술을 붓는 그의 손이 떨리고 있어 보는 이마저 불안할 정도였다.
기대에는 못 미치는 실력인 걸까. 정환은 아무 말 없이 그 모습을 지켜볼 뿐이다.
타, 탓, 탁!
셰이커가 닫히고는 지원자가 자세를 잡는다. 조금은 엉성한 파지법에 엉성한 자세가 나오는 그.
그런 엉성함은, 이내 들려오는 셰이킹 소리에까지 이어졌다.
착착! 깡! 착착! 깡!
들려오는 말도 안 되는 소리에 정환은 그만 눈을 꼭 감아 버렸다.
저렇게 소리가 난다면 십중팔구. 결과물은 처참하게 나오고 만다.
“그, 그만-!”
“네?”
“잠시 멈추시죠. 잠시만요!”
“……?”
지원자는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어색하게 셰이커를 내려놓았다.
경력이 3년이나 되는 사람인데, 이 자세며 이 소리는 다 어떻게 된 걸까.
정환은 그 답을.
이력서에서 찾을 수 있었다.
“그…, 편한 도구를 쓰셔도 됩니다. 굳이 코블러 셰이커를 쓸 필요는 없어요. 저도 보스턴 셰이커를 즐겨 쓰는 편입니다. 또, 푸어러 역시, 사용해도 됩니다.”
그의 이력서에는 제법 상세한 이력들이 기재되어 있었는데.
<근무 이력>
2010. 02. – 2011. 05. 마틴 플레어 홍대 근무(바텐더)
2011. 05 – 2013. 04. 살롱 트위스트 앤 샷 신촌 근무(바텐더)
정환은 이 바들이 전부 플레어 바임을 모르지 않았다. 이름에서부터 플레어 바인 티가 나지 않나.
화려한 손기술이 필요한 플레어 바의 경우, 코블러 셰이커보다는 믹싱 글라스와 믹싱 틴 두 개를 합한 보스턴 셰이커를 더 자주 사용했다.
보스턴 셰이커가 결합력이 더 좋기에 화려한 손동작 중에도 셰이커가 분리될 걱정이 없기 때문이다.
거기에 술을 계량하는 방법도 플레어 바와 오센틱 바는 조금 다른 방식이다.
술병에서 지거를 거쳐 계량하는 방식의 오센틱 바와 달리, 플레어 바는 푸어러라 부르는 도구를 사용했다.
이는 액체가 일정한 용량으로 흐르게 해주는 도구로, 흐르는 모양도 보기 좋고 계량도 어렵지 않아 플레어 바에서 애용되는 도구였다.
어느 바가, 또 어떤 셰이커가. 그리고 또 푸어러를 쓰냐 안 쓰냐가.
절대 바텐더의 실력을 가늠하는 기준이 될 수 없음은 정환 역시 알고 있다.
플레어 바텐더 중에도 코블러 셰이커를 정환보다 잘 다루는 사람 역시 존재했고.
허나, 지금 눈앞의 지원자인 저 장윤수라는 사내는. 조금 어색하게 코블러 셰이커를 다루고 있음이 분명해 보였다.
아직은 익숙하지 않은 것이다.
“…그래도 클래식 바인데…”
“괜찮습니다. 플레어 바 출신이냐 클래식 바 출신이냐. 그런 기준으로 사람을 뽑진 않으니까요. 제가 아는 플레어 바텐더 중에는 저보다 실력이 좋은 분도 많습니다. 그걸 감추려 하지 마세요.”
“…네.”
정환은 다소 의기소침해진 지원자에게 작은 푸어러를 몇 개 건네고는 그를 다독였다.
술병에 푸어러를 끼워 넣는 그의 표정이 자신에게 잔뜩 실망한 사람처럼 보였다.
“다른 걸 보려는 게 아닙니다. 결과물. 바텐더는 결과물을 내야 하는 사람이니까요. 방식은…중요치 않아요. 평소처럼. 손님 앞에서 일한다는 생각으로 익숙하게 만들어 보세요.”
“네…. 알겠습니다. 평소처럼…또, 익숙하게….”
덧붙이고 싶은 말이야 넘치도록 많다. 허나, 아직 결과물을 보지 않은 정환은 이를 애써 참고는 그에게 한 번의 기회를 더 주기로 했다.
과한 열정만큼, 정환도 그에게 기대하는 바는 있어 보였다.
후우우.
지원자는 깊게 숨을 한 번 몰아쉬고는 눈을 고쳐 떴다. 이전의 당황하던 기색과 떨리던 손은 간데없고 이제는 차분히 내려앉는 그의 눈빛.
그리고 그의 손이 바 테이블 위를 몇 번 움직이자.
탓! 탓!
빙그르르르!
탁!
두 개로 분리된 보스턴 셰이커가 공중을 돌며 춤추기 시작했다.
엉성함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