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술은 특별합니다-82화 (82/175)

82잔. 선물.

1.

“일주일 전에는 정말 감사했네.”

거래처 대표와 아실을 들르고 일주일 후.

서성훈 부장은 그 정도의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아실에 다시 얼굴을 비췄다.

양손 가득 무언가를 준비한 그가 잔뜩 밝은 얼굴을 하고는 아실의 문을 열고 들어섰다.

“아닙니다. 부장님. 일은 잘 해결되셨나요?”

“암. 덕분이네. 덕분이고 말고. 더 빨리 오고 싶었네만, 일이 너무 쌓여서 말이지. 그 일도 전부 자네 덕분일세.”

“다행이네요. 유 대표님은 일본으로 가신 건가요?”

“음. 일단은. 기본적인 일만 정리되면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실 걸세. 아주, 그 뒤로도 차 사장 이야기를 얼마나 하시던지. 허허.”

다행히 일은 잘 풀린 것 같다. 서성훈 부장이 계속해서 짓고 있는 표정도 밝고 말하는 분위기 역시 어둡지 않았다.

감정이 의외로 잘 드러나는 그의 특성상, 이건 좋은 징조가 분명해 보였다.

“참. 그리고 이걸 받아주게.”

서성훈 부장은 들고 온 짐 중 하나를 바 테이블에 올리며 정환에게 밀어 보인다.

늘 안쪽에서 바깥쪽으로만 무언가가 나오는 게 바 테이블의 진리인데, 오늘은 그 반대였다.

“우선, 이건 유 대표님께서 자네에게 보내는 선물이네. 일본에서 인편으로 왔더군. 나도 내용물을 보진 않았네.”

“유 대표님께서요?”

“자네를 무척 마음에 들어 하신다지 않았나. 이번 계약이 유 대표님 업체에도 나쁜 조건은 아니니, 감사의 의미도 있을 걸세. 파손 주의까지 붙었더군. 아주 귀한 물건처럼 보이던데?”

“감사하지만 이런 걸 받아도 될지…모르겠네요. 그저 손님께 잔을 드린 것뿐인데요….”

“잔도 잔 나름이 아니겠나? 또…. 유 대표님이 내게 그러시더군. 가끔은 모른 척 넘어갈 줄도 알아야 한다고. 자네도 이번에는 눈 딱 감고 받게. 그래야, 주는 사람도 편하지.”

“그럼…, 감사히 받겠습니다. 꼭 좀 인사를 전해주세요.”

“직접 말씀하게나. 곧 돌아오실 테니.”

이제는 자연스레 돌아온다는 말을 쓰는 서 부장을 보며 정환은 짙게 웃었다.

손에 들린 선물보다는, 그런 말이 더 반갑게만 느껴졌다.

“확인해봐도 될까요?”

정환은 서성훈 부장이 고개를 끄덕이는 걸 보고는 받은 선물을 열어봤다.

안에는 완충재로 잘 포장된 박스가 하나 놓여 있어 심상치 않은 기운을 풍겼다.

“이건…!”

정환은 포장을 모두 뜯더니 깜짝 놀라는 표정을 한다. 그의 손에는 술병으로 보이는 게 들려있다.

“맥캘란인가? 보자, 18년. 이거, 제법 가격이 나가는 물건이 아닌가? 허허.”

“…….”

제법 가격이 나가는 물건이라 정리하는 서 부장의 말에도 정환은 말을 잇지 못했다.

아직 위스키를 잘 모르는 그라면 그럴 수 있다. 이건, 그런 말로만 포장하기에는 부족한 물건임에도 말이다.

“…특별한 보틀이네요. 1990년 빈티지, 18년.”

“1990년? 그렇게 오래된 건 아니지 않나? 18년이면…, 2008년 릴리즈겠군. 한 5년 정도 된 건가?”

“그렇기도 하지만…, 이건 제가 태어난 연도입니다.”

“허어! 그런!”

서성훈 부장은 재밌다는 듯 손가락을 가리키며 밝게 웃었다. 바에 어떤 선물을 해야 할지 몰라 고민하던 그였기에, 이번에도 한 수 배우는 눈치다.

“생빈. 생년 빈티지라고도 하죠. 맞춰 구하기는 번거로우셨을 텐데….”

“성공한 사업가가 아니신가? 맥캘란 역시 성공한 이들의 상징이고. 자네 역시 성공하라는 그런 의미일 걸세.”

“과분한 선물이네요.”

아직은 그렇게 비싼 보틀은 아니다. 2008년도에 풀린 만큼 시간이 그렇게 많이 흐르진 않았으니까.

허나, 이 보틀을 찾으려 쏟은 정성도 있고 또 시간이 흐른 후의 가치도 있지 않나.

이건, 선물한 사람이 정환을 머리에 떠올리며 발품을 팔아 구한 정성이 담긴 특별한 보틀이다.

“받게 그냥. 때로는 그래도 되는 거네. 허허. 이거, 내 선물을 먼저 보여 줬어야 했나? 나중에 나올 게 조금 초라해지는 느낌인데?”

“아, 아닙니다. 선물 그 자체만으로 감사한 일이죠.”

정환은 자칫 선물의 경중을 비교할 수 있는 상황에 얼른 손을 내저으며 아니라 항변했다.

허나, 품에 꼬옥 술병과 케이스를 끌어안는 그의 모습이 조금은 말과 다르게 보이는 서 부장이었다.

“뭐…. 바텐더니. 허허.”

서성훈 부장은 한번 짙게 웃고는 자신이 준비한 선물을 건넸다.

그가 테이블 위로 올린 종이 가방 안에는 전자 기기로 보이는 상자가 하나 놓여 있었다.

“카메라네. SNS에 칵테일 사진을 주로 올린다고 하지 않았나? 휴대폰 카메라는 영 시원치 않아. 자네 칵테일 정도면 이런 카메라로는 담아야지.”

“아, 아닙니다! 너무 부담스럽습니다, 부장님.”

“괜찮네. 우리 회사에서 다루는 물건이라 내 좋은 가격에 구했어. 또 이 정도는 선물해야 내가 마음이 편하니, 그저 잘 써주기만 하면 되네.”

“그래도….”

“어허. 자꾸 이러면 내가 뭐가 되나?”

“…감사히 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초라할 거란 손님의 말과 달리 과분한 선물이 나온다. 현재 가치로만 보자면 맥캘란보다 더 비쌀 수도 있는 선물.

정환은 과하게 쏟아지는 선물에 부담감을 감추지 못한다.

반대로 서 부장은, 놓칠 가능성이 크던 큰 계약을 정환 덕에 따낸 만큼 감사함을 잔뜩 전하고 싶어 할 뿐이다.

“그리고. 하나 더 있네.”

“네? 또요?”

선물이 또 있다는 말에 정환은 눈을 크게 뜬다. 이건 너무 과한게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려 할 때.

“회사 차원에서도 보답해야지. 절차도 다 밟아서 나온 거니, 편하게 쓰면 되네.”

“…오늘 과하십니다.”

“이건 정말 별거 아니네. 여기.”

서성훈 부장은 별거 아니란 말과 함께 종이봉투를 하나 테이블에 올렸다.

혹시 현찰일까 하는 생각에 불안해하던 정환에게 그건 아니란 말도 함께 전하는 그였다.

정환은 현찰이 아니란 말을 듣고서야 봉투를 열어봤다.

“숙박권인가요?”

“음. 저기, 동해 쪽에 우리 회사에서 운영하는 리조트가 있네. 제일 좋은 방이고 내년까지 쓸 수 있을 테니, 편히 쓰게나.”

이번에도 가볍지 않은 선물이 나온다. 정환은 손님에게 깊게 고개 숙여 감사를 전했다.

“마음에 들었다니 다행이군. 자네도 가끔은 쉬어야지.”

“저 부장님. 정말 감사합니다만…, 혹시 이 선물은 부모님께 드려도 될까요?”

“부모님께? 뭐. 자네에게 넘어간 선물이니 상관은 없네만. 왜 그러나? 직접 쓰지 않고?”

“아무래도 쉬는 날이 적어서 직접 가기는 무리가 있을 것 같아서요….”

“허어. 그래도 가끔 쉴 때는 쉬어야지. 휴일을 쓰면 되지 않나?”

“주말에 손님이 몰려 요즘은 쉬기가 힘드네요. 하루 쉬는 날에는 꼼짝도 못 할 정도입니다.”

“그 정도인가? 이거 축하해야 할지 아쉬워해야 할지 모르겠군. 허허.”

서성훈 부장은 들려오는 좋은 소식에 너스레로 웃으며 이를 넘겼다.

선물을 건넨 이상, 이걸 어떻게 쓰는지는 받은 이의 마음일 것이다.

서성훈 부장은 선물을 건네고 나서야 마음이 놓이는지 잔을 들 수 있었다.

한참을 기분 좋게 잔을 들이킨 그는 시간이 조금 흐르고야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만 가봐야겠군. 오늘도 잘 마셨네.”

“오늘 여러모로 감사했습니다. 주신 선물은 잘 간직하겠습니다.”

“사람하고는. 이제 그 이야기는 그만하게.”

배웅 나와서까지 감사하다는 말을 하는 정환에게 손을 젓는 서성훈 부장.

물론, 이 청년의 이런 건실함이 싫은 건 아니었다. 그저 가끔은 이런 건실함이 걱정도 될 뿐.

“일도 좋네만, 가끔은 쉬어 가면서 해야지. 그러다 몸이 상하면 그게 다 무슨 상관인가? 난 자네를 오래 보고 싶네. 너무 바쁘면 사람을 하나 들이는 거도 생각해보게나.”

그는 마지막으로 그런 걱정과 함께 따뜻한 마음을 담아 한마디를 남기고는 아실을 떠났다.

오래 보고 싶다는 그의 마지막 말이, 또 하나의 선물처럼 느껴진 정환이었다.

2.

찰칵! 찰칵!

시간이 조금 지나고 어느덧 찾아온 주말.

정환은 아직 이른 시간에 아실에 들러 카메라 셔터를 연신 누르며 이리저리 몸을 움직였다.

그의 손에는 휴대폰 카메라가 아닌, 선물 받은 최신형 카메라가 멋들어짐을 뽐내고 있다.

카메라는 바뀌어도 정환이 찍는 건 여전히 같은 것들이다. 언제나처럼 자신이 만든 칵테일을 찍고 또 아실 안을 찍어가며 카메라를 움직이는 정환.

새 카메라로 찍은 사진들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어 보였다.

‘맥캘란도 한 컷.’

찰칵!

그렇게 그가 한참 셔터를 누르며 온갖 사진을 찍고 있을 때.

딸랑.

아실의 문이 열리며 누군가 안으로 들어선다. 아직은 영업이 시작되기 한참 전.

손님을 받기에는 이른 시간이었다.

“아. 재훈 씨. 오셨군요.”

아실 안으로 들어선 사람은 다름 아닌 한남동 마리너스의 임재훈 바텐더.

오늘 휴무인 그가 적당히 단정한 차림으로 아실에 들어섰다.

“늦은 건 아니죠?”

“그럼요. 오픈 시간에 맞춰 오셔도 됐을 텐데요.”

“그럴 수 있나요. 기왕 돕기로 한 거 준비부터 도와야죠.”

“쉬는 날에 미안해서 어쩌죠?”

“어차피 쉬는 날에는 잠밖에 안 자요. 이렇게 나와서 하나라도 더 배우는 게 낫죠. 기준 형이 안 된다고 하길래 냅다 자원했습니다. 제가 원해서 온 거니, 부담가지지 말고 써주세요.”

그가 아실에 온 건 다른 이유 때문이 아니다. 그저 오늘 하루 헬퍼로 이곳에 온 것.

요즘 주말이면 넘칠 듯 몰려오는 손님에, 일손이 부족한 정환이 기준에게 도움을 청한 게 여기까지 흘러갔다.

“사진 찍고 계셨나 봐요? SNS용인가요?”

“아, 네. 카메라를 선물 받아서요. 사진 하나 찍어드릴까요?”

“…아뇨. 괜찮습니다. 어? 저건?”

임재훈 바텐더는 자신을 카메라로 겨누는 정환의 장난에 얼른 얼굴을 숨기고는 다른 곳을 가리켰다.

그가 가리킨 곳은 아실의 백바 정중앙.

거기에는 한 병의 술이 멋들어지게 홀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얼마 전에 선물 받아서요. 제 생빈입니다!”

정환은 엄지로 자신을 가리키며 목소리를 높였다. 누군가 알아 봐주는 사람이 있어야, 물건은 더 가치를 가지는 법.

같은 바텐더는 이를 자랑하기에 더없이 좋은 상대였다.

“그랬군요. 여긴 아르센에서 물려받은 다른 올드 보틀도 많지 않나요?”

“그렇긴 해도 손님께 받은 선물이고 또, 생빈이니까요. 기념이죠!”

“손님께 생빈이라. 확실히 특별하네요. 부럽습니다.”

둘은 한참을 맥캘란에 대해 이야기한 후에야 영업 준비에 들어갔다.

바텐더들의 수다란, 늘 이런 식이다.

“과일이랑 얼음을 평소보다 두 배는 준비해야 해서요. 이것만 같이 해주시면, 나머지는 제가 할 수 있을 겁니다.”

“편하게 부리세요. 여기부터 하면 되죠?”

“네. 부탁드려요.”

그래도 막상 일을 시작하니 둘은 또 프로다운 모습을 보인다. 하나씩 일을 해나가는 두 젊은 바텐더의 모습이 제법 보기 좋은 풍경이었다.

“생각보다 준비할 재료가 많네요. 이야, 요즘 대박이시겠는데요?”

“어휴, 말도 마세요. 얼마나 힘든데요.”

“그게 좋은 거죠. 개업해서 이렇게 되는 게 어디 쉽나요.”

재훈은 손을 움직이며 정환에게 말을 묻는다. 그 역시 언젠가 개업을 하고 또 성공할 사람.

이를 아는 정환은 그를 슬쩍 떠보려 한다.

“재훈 씨도 잘하실 거 같은데요. 언제쯤 생각하세요? 독립.”

“네? 아직은…. 글쎄요.”

“그래도 이제 슬슬 말씀 나오지 않나요? 마리너스면 그렇게 오래 잡아두는 곳도 아니고.”

“뭐, 그야 그렇긴 하지만….”

재훈은 정환의 말을 듣고는 슬쩍 고민하는 표정을 짓는다. 요즘 생각하는 게 있기에 정환의 말이 더 와닿는 그였다.

“사실, 투자할 테니 바를 운영해볼 생각이 없냐는 제안을 받긴 했습니다.”

“그래요? 좋은 기회네요!”

“뭐, 나름 오랜 단골이시고 좋은 분이시긴 한데…. 제가 잘할 수 있을지 걱정이어서요.”

“잘하실 거예요. 저도 하는걸요.”

재훈은 잠시 손을 멈추고는 정환을 빤하게 바라봤다. 그의 표정이, ‘넌 논외지.’라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글쎄요. 조금 더 고민해 봐야죠.”

“언제든 고민되면 말씀하세요. 그래도 먼저 개업해봤으니, 제가 해드릴 수 있는 말도 있을 거예요.”

“감사합니다. 그때가 되면, 꼭 상담 부탁드려요.”

재훈은 자신을 생각해주는 정환의 말을 따스하게 받고는 짙게 웃어 보인다.

정환은 그런 재훈을 의미심장하게 바라봤다.

정환이 최종적으로 꿈꾸는 건 청담동이나 한남동 같은 하나의 상권을 만드는 일이다.

그렇다면, 좋은 바와 좋은 바텐더가 많을수록 좋은 게 당연한 사실.

정환은 저 임재훈이라는 바텐더를 자신의 골목에 끌어들이고 싶은 생각에 속으로만 군침을 흘리고 있었다.

“얼추 다 된 거 같네요.”

“덕분에 준비가 빨리 끝났어요. 역시 손이 하나 느니까 다르네요.”

“준비해보니, 확실히 주말은 혼자서 힘들어 보이네요. 내일도 헬퍼 쓰시는 거죠?”

“네. 내일은 정우 형이 와주시기로 했어요. 저도 갑작스레 손님이 늘어나 이걸 어떻게 해야 할지…. 참.”

“주말이라도 사람을 한 명 더 쓰시는 게 어떠세요? 그게 훨씬 나을 거 같긴 한데….”

“역시 그렇죠?”

일이 정리되자 둘은 간단히 손을 털고는 자리에 앉아 대화를 나눈다.

언제나 영업을 시작하기 전 이 시간이 바텐더에게는 잠깐의 여유.

지금의 주제는, 요즘 부쩍 늘어난 주말 손님에 관한 문제였다.

SNS와 잡지 인터뷰를 통해 정환이 제법 유명해졌다. 덕분에 주말이면 언제나 바 안을 채우는 게 아실의 상황.

갑작스레 늘어난 손님이기에 지금은 헬퍼로 이렇게 때우고 있지만, 이것도 1, 2주가 지나면 무리가 될 게 분명했다.

‘새로 사람을…’

구하긴 해야 할 거 같다.

정환이 그런 복잡한 생각을 하고 있을 즈음에.

딸랑.

문이 열리고는 아실의 주말 영업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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