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잔. Hard day's night.
1.
“……한 뜻이 느껴져 NO-NAME의 맛이 더욱 풍부하게 다가왔다. ……잔 속에 맛뿐 아니라 뜻을 함께 담는 바텐더가 보고 싶은가. 종로로 가라. ‘아실’은 그런 당신을 위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제법 잘생긴 바텐더와 함께. - 에디터 주민경. 이라. 크흐. 대박이지 않냐?”
“잘 나왔네요.”
정환의 인터뷰를 담은 잡지가 발간되고 얼마 후.
늦지 않은 저녁 시간, 반 정도 손님이 들어찬 아실의 구석에는 두 명의 바텐더가 자리하고 있다.
정환의 선배인 기준과 정우였다.
정우는 손에 잡지를 하나 들고는 연신 재밌다는 듯 꺄륵 거리고 있다.
그의 손에 들린 잡지에는 정환의 사진이 대문짝만하게 박혀있다.
“아니, 이것 좀 봐봐. 마스터가 이걸 보셔야 하는데! 완전 무협지에 나오는 은거 기인처럼 써놨네!?”
“흠. 마스터는 그런 느낌이 있죠.”
“응. 그 은거 기인께서는 지금 크루즈 타고 유럽 가시는 중이란다. 경공술 아닌 게 어디냐? 크흡! 난 뭐, 유명 문파 대제자냐, 그럼?”
“…풉.”
기준마저 참았던 웃음을 터트린다. 고개를 살짝 돌리고는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는 기준이 섭섭한 정환이다.
“그만들 하세요. 진짜.”
“아. 우리 막내 제자 왔느냐? 이 대사형께 당장 슬래지 해머를 대령하거라!”
“…쫓아낼 겁니다.”
오늘은 정우와 기준이 쉬는 날. 둘은 바로 잡지를 한 권 사서 정환의 가게로 달려왔다.
좋은 소식에 기뻐하려는 것인지, 놀리려는 것인지. 정환은 알 수가 없다.
뭐, 어느 인터뷰가 그렇지 않겠냐마는 과장된 면이 적지는 않았다.
정우의 말처럼 아르센은 무슨 무협지 속 사라진 문파처럼 묘사되었고 명진은 당대의 절정 고수처럼 그려졌다.
정환은 마치 그런 문파를 이어받은 하나의 후계자처럼 쓰여졌고.
주민경 에디터의 편집 실력이 생각보다 극적이었다.
“헙헙. 그래도 이거 홍보 효과는 좋았을 거 같은데? SNS에도 크게 올라갔다며?”
웃음을 참지 못했던 게 미안한지 기준이 숨을 고르고는 화제를 바꿔본다.
그의 말처럼, 정환의 인터뷰는 잡지사의 SNS에도 대문을 장식했다.
“괜찮았어요. 이번에는 댓글에도 가게나 바에 관한 이야기도 많았구요. 역시 인터뷰가 나은 거 같아요.”
“다행이네. 손님은 좀 늘었어?”
“극적인 변화는 없어요. 대신, 주말에는 손님이 좀 늘어난 편이에요. 평일은 똑같아요.”
“그게 어디야. 주말 매상이 절반은 갈 텐데.”
“그러니까요. 전 만족하고 있어요.”
“정환아. 이게 다 형 덕분이란다. 감사하지 않냐? 성의는 맥캘란 18년 한 병이면 충분하다.”
“형은 좀 가만히 있으세요.”
정환의 말처럼 크게 변한 건 없었다. 잡지사 인터뷰 한 방에 대박이 나는 건 아니었으니까.
그래도 적당히 변한 것들은 있었다.
민경이 태그를 해준 덕분에 정환의 SNS 팔로워 수가 1만을 돌파했다는 것이 그 첫 변화.
다시 칵테일 사진을 올리기 시작한 정환의 SNS에는 이제 외모보다는 가게와 술에 대한 댓글이 가득했다.
또 다른 변화는 주말에 손님이 늘었고 또 NO-NAME이라는 칵테일을 찾는 이들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정환으로서는 충분히 만족스러운 결과였다.
아, 그리고 또.
딸랑.
“사장님!”
다른 변화도 있었다.
“유미 씨.”
스쳤던 인연을 다시 만났다는 것.
“오늘도 한잔하러 왔어요! 자리 있죠?”
“네. 물론이죠. 여기로 앉으세요. 수건 준비해 드릴게요.”
일전에 정환이 클럽에서 도움을 줬던 가수 지망생 선유미.
정환은 이번 인터뷰 덕분에 그녀를 다시 만날 수 있었다.
그녀는 정환의 인터뷰가 SNS에 업로드되자, 그날 바로 정환을 만나러 종로까지 달려왔다.
매번 연습이 끝나면 아실에 들르는 그녀는 오늘도 등 뒤에 자신의 몸보다 큰 기타를 메고 아실로 들어섰다.
정환은 기준과 정우에게 잠시라는 손짓을 보내고는 새로운 손님을 맞았다.
얼른 가보라 말하는 두 바텐더.
사형인 둘은, 정환이 크게 신경 쓸 손님은 아니다.
“잡지네요? 사장님 나온 그 잡지죠?”
“네. 같이 일하던 형들이 가져다 뒀네요. 저야 부끄럽지만요.”
“뭐에요, 진짜! 내가 먼저 유명해지려고 했는데! 인터뷰 같은 거도 저보다 먼저하고! 부러워요!”
“우연이죠, 우연. 너무 그러지 마세요. 유미 씨도 곧 라디오로 데뷔한다고 하셨잖아요?”
“그야 그렇긴 한데…! 하여튼! 마음에 안 들어요! 인터뷰도 먼저하고! 여자 친구도 있고! 심지어 예쁘고!”
유미는 바 한쪽에 자리를 잡고는 장난스레 투정을 부렸다.
일전에 시은과 아실에서 마주친 적이 있어, 이미 정환의 연애사도 아는 그녀였다.
“하…하. 네네. 제가 잘못했네요. 진정하세요. 주문은 맥주로 하실 거죠?”
“물론이죠! 무슨 맥주인지도 아시죠?”
“기네스. 아닌가요?”
“맞아요!”
이미 몇 번을 반복해서 들른 만큼 그녀의 주문은 정환에게 익숙하다.
정환은 냉장고에서 기네스를 한 병 꺼내 이를 잔에 따르기 시작했다.
흑맥주 특유의 빛깔이 아름답게 잔에 들어찼다. 적당히 누런 거품이 흑색과 어우러져 탐스러운 모습을 자랑했다.
“기네스, 나왔습니다.”
“감사해요!”
유미는 고개를 한번 까딱! 하고는 앞에 놓인 기네스를 들어 올렸다.
까만 맥주 위로 올라온 거품이 크림같이 느껴져 포근한 기분.
그녀는 오늘 하루 연습으로 쌓인 피로와 또 성공에 대한 불안감을 이 한 잔으로 날려 버린다.
“캬하! 이 맛이지!”
“기네스가 제일 입에 맞으시는가 봐요.”
“음, 맛은 몰라도 제일 좋아하는 맥주긴 해요! 이렇게 시원한 기네스를 마시면, 이상하게 불안감이 사라지거든요!”
“불안감요?”
“데뷔할 수 있을까, 또 성공할 수 있을까 하는 그런 불안감요!”
이런 대스타도 한때는 이런 고민을 했나. 정환은 애써 밝은 척 목소리를 높이는 유미를 바라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겉으로 보이기야 그저 성공한 인물이었다. 출중한 재능과 실력을 토대로 성공한 대스타.
하지만, 그녀 역시 그 자리에 닿기 위해서는 처절히 불안해하고 노력했을 것이 분명한 일이다.
이전 생에는 몰랐던 유명인의 모습을, 정환은 이제야 엿보게 된다.
밝은 목소리로 한 말이었지만 속에 든 감정이 무겁다. 정환은 기분 좋게 지금을 즐기는 손님을 위해 화제를 바꿔본다.
“그러셨군요. 기네스라. 혹시, 비틀즈와 오아시스 때문인가요?”
“어! 사장님, 아시는 거예요? 대박!”
“술에 관한 거니까요. 비틀즈와 오아시스가 사랑한 맥주가 기네스였죠.”
“그러니까요! 비틀즈도 젊어서 기네스를 즐겼고, 특히 오아시스는 기네스랑 인연이 아주 깊었죠! 제가 오아시스를 제일 좋아하거든요! 기네스를 마시면 저도 그런 음악을 할 수 있을 것만 같아요! 성공두요!”
가수는 가수인 걸까. 그녀는 유명 밴드인 비틀즈와 오아시스의 이야기가 나오자 더 밝아진 표정을 짓는다.
정환은 그녀의 기타 케이스에 붙은 두 밴드의 스티커를 보고 기네스를 얼른 연관 지을 수 있었다.
이런 눈썰미도, 바텐더의 역량이다.
“특히 모닝 글로리 앨범은 제 인생 앨범이에요! 그 앨범에서 유명한 곡을 녹음할 때 기네스를 마시고 두 형제가 배트까지 휘두르며 싸운 일화도 있죠!”
“‘Don’t look back in anger.’ 말씀이군요.”
“와! 이걸 아는 사람이 또 있다니!”
유미는 신난 듯 눈을 크게 뜨며 기네스를 벌컥벌컥 마시기 시작했다.
시원한 맥주가 목을 뚫고 흐르는 것처럼, 대화도 시원하게만 흘러간다.
“비틀즈는 어떠세요? 좋아하세요?”
“그럼요! 어렸을 때부터 쭉! 비틀즈를 싫어하는 사람도 있을까요?”
“그렇긴 하네요. 그럼, 비틀즈에서는 제일 좋아하는 멤버는요?”
“전 존 레논이요!”
“여기서 갈리네요. 전 폴 매카트니 쪽이라.”
“아! 아쉽다! 이건 타협이 안 돼요. 노노! 존 레논의 솔로 1집을 들어본 사람이면 그런 생각을 안 할 텐데!”
“폴 매카트니의 대중성도 무시할 수 없죠.”
“흠. 이 이야기는 저도 양보 못 해요! 다음에 시간을 넉넉하게 잡고 제대로 한 번 붙어 봐요!”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안 질 겁니다. 저도.”
“좋아요! 기대해요!”
오랜만에 만난 대화 상대에 유미는 얼굴까지 붉히며 대화를 나눈다.
격렬해 보이지만, 그저 정다운 대화일 뿐이다.
호르르륵.
어느덧 그녀 앞의 기네스 잔이 비어간다. 바텐더는 이를 놓치지 않았다.
“자, 그럼. 오늘 덕분에 재미난 이야기를 나눴으니까, 제가 다음 잔을 한 잔 추천해드려도 될까요?”
“다음 잔이요?”
“칵테일을 한 잔 만들어 드릴게요. 맛있고, 또 불안감을 확! 날려 버릴 수 있는 그런 칵테일로.”
“기네스 같은 칵테일인 거네요! 좋아요!”
손님의 허락이 떨어지자 정환의 손이 움직인다. 브랜디와 카카오 리큐르, 그리고 크림을 차례로 계량한 정환이 그대로 셰이커를 들어 올렸다.
챠카착! 챠카착! 챠카착!
빠르고 짧게 흔들며 음료를 섞어가는 정환. 8에서 10초 정도의 짧은 셰이킹이 끝나자, 음료가 잔으로 쏟아진다.
하얗다고 말하기도 또 노랗다고 말하기도 애매한 빛깔의 술이, 딱 기네스의 거품처럼 보였다.
거름망을 사용해 두 번 걸러낸 음료가 잔에 담겼다. 정환은 그 위로 넛맥 가루를 조금 뿌려 향을 돋우고는 이를 유미의 앞으로 밀어냈다.
“브랜디 알렉산더, 나왔습니다.”
“브랜디 알렉산더요? 처음 마셔봐요!”
유미는 향긋한 냄새에 침을 꼴깍! 삼키며 앞에 놓인 잔을 바라봤다. 포근해 보이는 거품 위로 넛맥 가루가 이쁘게 흩뿌려져 있어 보기에도 좋아 보이는 잔이다.
이를 입으로 가져가 삼켜보는 그녀. 달콤하고 부드러운 맛이 그녀의 혀를 감쌌다.
마치 맥주 거품 속에 알콜을 담은 듯한 포근함이 함께 느껴졌다.
“우와! 엄청 맛있어요!”
“입에 맞으셔서 다행이네요. 이 브랜디 알렉산더는 존 레논이 가장 좋아했던 칵테일이라고 해요. 존 레논은 이걸 밀크 셰이크라고 부르면서 늘 입에 달고 다녔다고 하죠.”
“아! 그래서 기네스 같은…!”
기네스를 마시며 오아시스나 비틀즈를 꿈꾸는 가수 지망생. 나름의 힘든 시간을 보내는 그녀에게 바텐더가 해줄 수 있는 조언은 뭐가 있을까.
답은 간단했다. 없다는 것. 바텐더는 누군가의 힘든 시간을 위로하는 이가 아니다.
그저 그가 그런 시간을 이겨낼 수 있도록 힘을 낼 수 있는 한 잔을 주는 것. 정환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그게 전부임을 모르지 않았다.
그녀가 좋아하는 가수가 즐기던 칵테일은, 그녀에게 분명 큰 힘이 될 것이다.
“밀크 셰이크…! 좋아요! 저도 앞으로 그렇게 부를래요! 이 칵테일요! 존 레논처럼요!”
“얼마든지요. 앞으로 밀크 셰이크를 주문하시면 이걸 만들어 드릴게요.”
“꼭이요! 제가 존 레논만큼 유명해질 때까지!”
손님이 한 잔의 칵테일에 자신만의 이름을 붙인다. 이는 바에 대한 애정을 주는 것.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이렇게 사람과 바의 관계로 바뀌는 순간이다.
유미는 한참이나 설레는 표정으로 잔을 즐겼다. 그녀의 어깨에서 무언가 짐이 툭! 하고는 떨어져 나가는 것만 같았다.
“저 가볼게요! 그리고, 사장님! 한동안 못 와요! 라디오 데뷔가 잡혀서요! 2주 뒤, 저녁 6시 반! 제가 나오는 첫 라디오 방송이니까, 꼭 들어주세요! 꼭! 저도 사장님께 선물 드릴 거니까요!”
“꼭 들을게요. 연습도 힘내시구요. 화이팅!”
“넵! 또 봐요! 안녕!”
잔을 비운 유미는 그렇게 손을 흔들고는 자기 몸보다 큰 기타와 함께 뒤뚱거리며 뛰어갔다.
정환은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고는 안으로 돌아갔다.
2.
2주란 시간은 짧고도 빠르게 흘러갔다.
조금이나마 얻은 유명세 덕에 한참 바빴던 2주.
정환은 주말이면 몰리는 손님, 평일에는 늘어난 단골을 상대하며 2주를 힘겹게 보냈다.
어쩌면, 아실에도 새로운 사람을 들여야 할 날이 머지않은 건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이 시간은 여유롭다. 바텐더가 언제나 여유를 느끼는 건 하루가 시작되기 전인 오후 6시 무렵.
누군가의 하루가 저물어가는 이 시간이 바텐더에게는 해가 뜨기 전 잔잔한 새벽 같은 순간이다.
거기에 오늘은 더 특별한 날이지 않나. 아실의 단골 중 한 명인 유미가 라디오로 데뷔하는 날.
꼭 자기 방송을 들어달라던 그녀의 말을 정환은 잊지 않고 있었다.
정환은 커피를 한 잔 내린 후 자리에 앉아 방송을 기다렸다. 시계가 어색하게 겹쳐져 6시 반 정도를 가리킬 때.
오후의 발굴! 안녕하세요, 여러분. 매주 새로운 신인을 소개하는 오후의 발굴을 진행하는 여러분의 DJ, 김태영입니다! 오늘 이 자리를 빛내줄 신인은 누굴까요? 여러분께 소개합니다! 자작곡과 함께 데뷔한 실력파 신인, YU-MI!
안녕하세요! 유미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려요!
휴대폰 어플로 틀어둔 라디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정환은 이 어색한 시간을 여유라 칭하며 즐기는 중이다.
방송은 평범했다. 유미가 직접 작곡했다는 신곡을 먼저 듣고 이어지는 이런저런 이야기들.
정환의 인터뷰를 부러워하던 그녀는 드디어 라디오에서 자신만의 인터뷰를 이어갔다.
길지 않은 방송은 20여 분을 쉬지 않고 달려갔다. 시계를 한 번 본 정환이 이제는 오픈을 준비하려 몸을 일으키려 할 때.
자, 마지막 시간으로 유미 씨의 작별송! 안 들어볼 수 없겠죠? 준비되셨나요, 유미 씨?
물론이죠! 준비됐습니다!
어떤 곡을 들려주실 거죠?
최근 어떤 분께 아주 감사했던 일이 있었어요! 매번 신세만 지는 것 같아 그때 감사했던 분을 위해 이 노래를 들려드리고 싶어요!
와, 마음이 너무 예쁘네요! 어떤 노래일지도 정말 기대되구요. 여러분, 박수로 맞아주세요. 지금까지, YU-MI! 였습니다!
유미의 방송도 끝나려 하며 마지막 음악이 흘러나온다. 잔잔하게 깔리는 통기타 소리.
정환은 일어나려던 걸 멈추고는 이를 마저 듣기로 했다.
어차피 문을 여는 즉시 찾는 손님은 많지 않다. 뭐, 준비도 철저히 해뒀고.
그런 생각에 정환은 잠시 여유를 부려본다.
기타는 몇 번을 조율하듯 간단하게 베이스 음을 튕겼다. 딩딩! 거리는 소리가 몇 번 들린 후 이어지는 노래는.
마음 울적한 날엔, 거리를 걸어보고. 향기로운 칵테일에 취해도 보고. 한 편의 시가 있는, 전시회장도 가고. 밤새도록 그리움에 편질 쓰고파아-.
마로니에의 칵테일 사랑.
‘이게 선물이구나.’
바텐더에게는 제법 잘 어울리는 선물이었다. 청아한 음색의 목소리가 아름다운 노랫말을 읊어갔다.
유미라는 가수의 실력은 이번 생에도 변함이 없다.
정환은 조용히 앉아 커피와 함께 유미의 선물을 감사히 받아들였다.
눈을 감고 턱까지 들어보는 정환의 표정이 바텐더 앞에서 맛있는 잔을 받은 손님의 표정이다.
무언가를 즐기는 이들은, 자연스레 저런 표정이 나오는 것만 같다.
누가 내게 눈부신 사랑을 가져줄까. 이 세상은 나로 인해 아름다운데에-.
잔잔한 기타의 선율이 종장을 향해 달린다. 정환이 계속해서 눈을 감고 이를 즐기고 있을 때.
딸랑.
하는 하루가 시작되는 소리가 울리더니, 이내 손님이 아실의 안으로 들어선다.
“어, 어! 죄, 죄송합니다! 잠시만요!”
서둘러 자리를 정리하고 라디오를 꺼보는 정환. 그런 정환에게 손님은.
“아. 차 사장. 날세. 나. 괜찮네.”
생각보다 이해심이 깊은 말을 들려준다. 이제야 손님을 바라보며 누군지 확인하는 정환.
“서 부장님?”
평소 같지 않은 시간에 아실을 찾은 이는, 다름 아닌 이곳의 첫 단골이었던 서성훈 부장이었다.
평소보다 훨씬 이른 시간에 아실에 닿은 그의 표정이 제법 무겁게 가라앉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