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잔. 인터뷰
7.
“우선, 인터뷰 요청을 받아주셔서 다시 한번 감사드려요.”
약속된 시간인 오후 2시 무렵.
사진 기사 한 명과 아실을 찾은 주민경 에디터는 다시금 정환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아뇨. 저야말로 이렇게 요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기회니까요.”
“가게 홍보, 말씀하시는 거죠? SNS에 게시글을 계속 올리시면 더 홍보에 효과가 있을 텐데요? 어제도, 오늘도 업로드가 없네요.”
“네. 사실 노리고 올렸던 건 아니라서요. 아는 형이….”
“이유야 어쨌든 홍보는 확실하잖아요. 이참에 확! 땡기셔야죠. 솔직히 말씀드리면 이런 인터뷰보단 그게 더 홍보가 되긴 할 텐데요.”
인터뷰 시작 전에 인터뷰이와 인터뷰어의 관계가 가까워지는 건 중요하다.
민경은 그런 생각으로 별생각 없이 정환에게 말을 건넸다.
하지만.
“아뇨. 전 인터뷰가 더 낫다고 생각해요.”
말을 받는 이는 제법 생각이 가득 차 보인다.
“그…런가요?”
“네. 아무래도 SNS상의 관심은 저에게 몰려있는 거 같아서요.”
“나쁜 건 아니지 않아요?”
“바텐더가 ‘바’보다 돋보이는 건 그렇게 좋은 건 아니에요. 댓글만 봐도…, 다들 제 이야기밖에 없기도 했구요.”
정환은 다시금 SNS 이야기를 하며 쑥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오히려 잘난 척하는 듯한 투가 아닌, 아쉽다는 투라서 더 진정성이 묻어나는 반응이다.
“잡지 인터뷰도 사장님께 초점이 갈 수도 있어요. 그건, 아시죠?”
“알고는 있습니다. 그래도, 인터뷰는 제 이야기를 전할 수 있으니까요. 그 속에서 가게에 대한 이야기도 또 ‘바’라는 곳에 대한 이야기도 잘 묻어날 거라 생각해요.”
“제가 잘 담아볼게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카메라 세팅 완료했습니다!”
카메라가 준비되었다는 사진 기사의 말을 끝으로 둘의 사담이 끝났다.
“편하게 대화하듯 진행하시면 될 거예요.”
민경은 간단히 정환의 긴장을 풀어주는 말을 한 번 하고는
“그럼, 시작할게요. 우선, 자기소개를 먼저 해주시겠어요?”
인터뷰를 알리는 시작 멘트를 뱉었다.
그리고.
“안녕하세요, 종로에서 클래식 칵테일 바 ‘아실’을 운영하는 24살, 바텐더 차정환이라고 합니다.”
정환의 소개가 이어지며 그렇게 인터뷰는 진행되었다.
8.
여러 이야기가 오갔다.
대부분 정환이 바텐더로서 자리 잡는 이야기였으며 아르센이 몇 번 나왔고 또 전설적인 스승으로 명진까지 언급되었다.
강남에서도 ‘실력만은 아르센’이라는 말로 인정받던 아르센은 에디터에게 좋은 소재거리였다.
그리고 이어지는 창업기까지. 평범하기 그지없어 보였지만 나름의 굴곡을 담은 한 사람의 이야기가 인터뷰로 전해졌다.
그저 어리고 잘생긴, 그리고 이제는 실력까지 좋은 바텐더라 생각했다.
헌데, 대화를 나누면 나눌수록, 알 수 없는 장인의 냄새가 저 바텐더에게서 풍겨오는 것만 같다.
직업에 대한 철학과 일관된 태도, 거기에 직업과 그간 있었던 일에 대한 냉정한 평가와 덤덤한 태도. 거기에 말 한마디, 한마디에 담으려 애쓰는 메시지까지.
에디터이기에 보이는 것들을 잡아낸 민경은, 저 젊은 바텐더가 아무리 봐도 초짜로 보이진 않고 있었다.
뭐, 어떤가.
그렇다면, 더 좋지 않나.
요즘 보기 드문 청년.
거기에 앞에는 ‘미(美)’라는 글자까지 붙을 테니.
그녀로서는 나쁠 게 없는 요소였다.
민경은 만족하는 표정을 지으며 자신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신했다.
“그래서 아실을 이렇게 구성하신 거군요?”
“네. 모두가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청담동이나 한남동 자체에서 오는 거리감이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조금은 편하게 동네 술집처럼 들를 수 있는 바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어떤 질문을 던져도 답이 유려하게 흘러나온다. 정환은 마치 준비된 사람처럼 민경의 질문에 답해갔다.
민경은 자신에게 먹거리를 던져주는 저 바텐더가 귀여워죽겠다는 표정을 하며, 자신도 그가 원하던 걸 슬쩍 던져줘 본다.
“최근 SNS상에서 화제가 되셨는데, 그 일이 사장님의 목표에 도움이 될까요?”
!
제법 노골적인 질문이다. 처음으로 질문 후에 잠시 텀이 생긴 정환의 모습.
이건, 정환이 인터뷰 시작 전 민경에게 사담으로 흘렸던 말에 대한 질문이다.
정환은 입꼬리를 살짝 올리고는 민경이 주는 선물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크게 도움이 될 거 같진 않습니다.”
“어째서죠?”
“‘바’는 공간이거든요. 많은 분들이 저에게 관심 가져주신 일에는 감사하고 있습니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일이고 다시 없을 일이죠.”
“하지만, 가게에는 큰 도움이 아닐 거다?”
“네. 아쉽게도요. 여기는 ‘바’니까요.”
“의미심장한 말씀이네요.”
“‘바’는 분명 낯선 공간입니다. 누구에게는 진입장벽이 있는 곳이기도 하죠. 전 그런 허들을 분명 낮추고 싶습니다.”
“그렇다면, 좋은 기회가 아닌가요?”
“허들을 낮추고는 싶지만, 없애고 싶은 건 아니어서요. 적어도 ‘바’라면 이런 건 있어야 한다. 그런 생각은 개인적으로 가지고 있어요. 공간 자체가 주는 아늑함. 그리고 다른 손님을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자신의 여유를 즐기는 것. 그 정도는 바텐더로서 타협할 수 없는 부분이라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SNS상으로 유명해지며 자신에게 쏠린 관심을 관통하는 정환의 말.
정환은 한참 화제가 되던 때에도 덤덤히 사건을 바라봤고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아니, 그러지 않으려 사실은 애를 썼지만.
관심이 쏠리고 또 손님이 늘어나는 건 어디까지나 좋은 일이다.
허나, 그런 손님이 다른 손님에게 방해가 되는 일이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되는 공간이 바.
정환은 그렇기에 저 많은 팔로워들이 이곳을 오지 않을 거다. 그런 일은 없을 거다. 스스로 계속해서 덤덤히 최면을 걸고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그러던 차에 이런 인터뷰 제의가 온 건 그에게 좋은 기회였다.
SNS를 통해 스스로 말하기엔 거북한 것들을 인터뷰에서는 천천히 또 유하게 돌려서 말할 수 있으니까.
정환이 한 치의 고민도 없이 민경의 인터뷰 요청을 받았던 건, 그런 의도 역시 없지 않았다.
많은 이들이 SNS상으로 화제가 되면 연달아 게시글을 올리며 흔히들 말하는 ‘물 들어 왔을 때 노 젓는’ 행동을 한다.
관심은 언제고 줄어드는 법. 남는 건 언제나 소식을 볼 수 있는 ‘팔로워’이기 때문이다.
허나, 정환은 그러지 않았다. 화제가 된 기회를 이용해 더 홍보에 박차를 가할 수 있음에도 지난 이틀을 자중했던 정환.
정환은 어차피 벌어진 이번 일이, 어떻게든 아실에 좋지 않게 적용되는 걸 막고 싶었을 뿐이다.
계정을 지우거나 게시글을 지우는 것까지 고민하던 때에, 이런 인터뷰를 통해 그는 하고픈 말을 이렇게 전하게 되었다.
‘하. 이거 생각보다?’
요물이네.
민경은 자신이 던져준 선물을 그대로 요리해버리는 정환을 보며 재밌다는 표정을 짓는다.
인터뷰를 오래 하다 보면 그들이 속에 담는 말뜻을 알아채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좋은 기회는 자기가 잡았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보니, 이걸 제대로 활용하고 있는 건 저 바텐더였다.
‘뭐, 윈윈….’
딱히 자신에게 해가 되진 않는다. 그러니, 방금 그 선물은 제대로 마무리해주기로 하는 민경이다.
“‘아실’에 오시는 분들이 잘 알고 오시면 더욱 풍성한 시간이 되겠네요. 말씀 감사합니다.”
민경은 어떤 식으로 서술이 이루어질지를 알려주듯 정환의 말을 마무리했다.
그저 방싯 웃어 보이는 정환의 표정이 또 요물로 보이는 그녀였다.
“저, 주 주임님. 마지막으로 컨셉 촬영이 좀 필요할 거 같은데요?”
“아. 네. 마지막 질문이랑 같이 가볼게요.”
때마침 마지막 질문을 앞두고 사진 기사는 건질 사진을 하나 요구한다.
평범히 바 안에 서 있는 모습보다는 무언가 바텐더스러운 사진을 원하는 그.
민경은 알겠다는 사인을 보내고는 마지막 질문에 들어간다.
“자, 이제 마무리인데요. 바텐더분께 실례가 안 된다면 한 잔을 청해도 될까요?”
“물론입니다. 기왕 바에 오셨으니, 한잔하고 가셔야죠.”
“감사합니다. 그럼, 바텐더로서 아직 이곳에 오지 않은 분들에게 이곳을 알려줄 수 있는 한 잔! 바 아실은 이런 곳이다! 하는 그런 한 잔이 있을까요? 시그니처도 좋고, 아니어도 좋습니다.”
“음, 상당히 어려운 주문이네요.”
정환은 슬쩍 턱을 잡으며 고민에 빠지는 모습을 보인다.
찰칵! 찰칵!
이런 모습까지 플래시를 터트려가며 카메라에 담는 사진 기사.
민경과 사진 기사는 조용히 바텐더의 마지막 답을 기다린다.
“한 잔 정도 떠오르는 게 있는 거 같습니다.”
“그런가요?”
“바로 만들어보겠습니다.”
정환은 서 있던 중앙에서 벗어나 바 안을 누비기 시작한다. 계속되는 찰칵! 소리의 향연.
이제야 사진 기사는 자기 일을 찾은 사람처럼 정환의 모습을 사진에 담기 시작했다.
럼과 함께 벌꿀을 셰이커에 넣더니 이내 세차게 셰이커를 흔드는 정환.
잘 녹지 않는 벌꿀 때문에 평소보다는 더 강하게 흔드는 그의 모습이 더욱 바텐더스러운 지금이다.
촤아아아악!
언제나처럼 셰이커에서는 액체가 쏟아진다. 조금은 진한 갈색빛이 도는 액체.
넣었던 럼의 색을 그대로 안은 액체가 잔에 담겼다. 바텐더는 불에 그을린 계피로 하나 장식을 더한 후, 그대로 진한 갈색의 액체를 이들의 앞으로 밀어낸다.
찰칵! 찰칵!
플래쉬가 연달아 터진다. 진한 갈색의 칵테일이 바의 분위기가 잘 어울려 제법 작품이 나올 거 같다.
거기에 잔에 올라간 가니쉬인 계피 역시 원목과 어울려 고풍스러움을 더했다.
“좋네요. 잔도 한 번 잡아주실래요?”
몇 번의 설정 샷을 더 찍고야 촬영이 마무리된다. 이제는 민경의 차례.
민경은 자신의 앞에 놓인 잔을 보고는 침을 꿀꺽 삼켰다. 탐스러운 색과 전해지는 달콤한 향이 예사로운 칵테일은 아니다.
별다른 재료가 들어가진 않았지만, 맛있을 게 분명했다. 저 바텐더의 실력이야 자신이 잘 알지 않나.
민경은 그런 생각에 손을 뻗어 얼른 잔을 낚아챘다.
호르륵.
바로 맛을 보는 그녀. 달콤한 향이 코를 찌르더니 이는 혀에 닿는 느낌 역시 마찬가지였다.
묵직한 럼의 무게가 달콤한 맛에 중화되어 그야말로 조화란 말이 어울리는 맛 그 자체였다.
잔을 입에서 떼어낼 때쯤에는 살짝 그을리게 태운 계피의 향이 전해져 잔향을 더욱 짙게 만들었다.
색도 진하고, 또 향도, 맛도, 여운도 진한 그런 잔이 그녀를 스치고 갔다.
“아.”
민경은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뱉고는 정환을 바라봤다.
“말도 안 되게 맛있네요! 과연 여길 상징하는 그런 잔이에요! 진한 향과 색, 맛. 그게 아실이라는 뜻인가요?”
나름의 해석을 전해서 정환에게 전해보는 민경. 허나, 정환은 가볍게 고개만을 절레 저었다.
“…아닌가요? 그럼, 이유가 뭐죠? 이 칵테일의 이름은 뭐구요?”
민경은 말이 끊기지 않게 재차 바텐더를 재촉한다. 그리고 여유롭게 나오는 바텐더의 말.
“칵테일의 이름은 NO-NAME입니다. 즉, 이름이 없다는 뜻이죠.”
!
“이름이…없는 칵테일이 이곳을 상징한다는 뜻인가요…? 왜죠?”
묻는 말이 조금 이상하다. 아마, 묻는 이의 진심이 담겨서인 것 같다.
바텐더는 그런 손님에게, 자신만이 품은 답을 들려준다.
“이 칵테일을 처음 만든 바텐더는 마시는 사람이 직접 이름을 짓기를 바라는 마음에 이렇게 불렀다고 들었습니다. 마시는 상황, 또 기분에 따라 이름은 매번 다르겠죠. 아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분이 오시느냐에 따라 매번 다르게 변하는 곳. 또 그런 분을 맞을 수 있는 곳. 그런 곳이 아실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실이 어떤 곳인지는, 오시는 분들이 직접 판단해주셨으면 하는 마음에 이 잔을 ‘아실’을 나타내는 잔으로 정했습니다.”
“아.”
정환의 거창한 말이 끝나고 나서야 민경은 아. 하는 작은 소리만을 뱉으며 자신의 마지막 부탁이 얼마나 멍청했는지를 깨닫는다.
한 장소에 대한 느낌은 어디까지나 주관적인 것들이다. 맛도, 분위기도 또 그곳에서 겪는 경험도 모두.
그런 모든 걸 한 잔으로 표현해달라니.
민경은 제법 멍청한 질문을 던졌던 걸지도 모른다.
그런 멍청한 질문에 나온 바텐더의 답이 제법이다. 모든 걸 손님에게 맡기겠다니.
오늘 하루 내내 그와 나눈 인터뷰에서 계속해서 언급되었던 게 저 손님이라는 존재였다.
그는 마지막까지.
그런 손님이란 존재를 챙기는 걸 잊지 않는다.
“멍청한… 주문이었네요.”
“아뇨. 재밌는 주문이었습니다.”
민경은 결국 졌다는 표정을 한 번 짓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만하면 인터뷰는 충분할 터.
시간도 점점 5시를 향해 가니, 자리를 비워줘야 할 것만 같다.
저 바텐더가 입이 닳도록 이야기하던, 그 손님에게.
“오늘 감사했습니다. 인터뷰는 충분한 거 같아요.”
“감사했습니다. 좋은 글, 부탁드릴게요.”
“기대하세요. 이전에 올리셨던 사진. 그것보다 더 큰 관심을 받으실 수 있을 테니까.”
“조금, 무서운데요?”
“좋은 관심일 거예요. 여긴…”
민경은 마지막 말을 전하다 말고 바 안을 한 바퀴 둘러봤다. 공간 자체에서 느낀 무언가는 없었다. 적어도 자신의 온 신경은 앞에 선 바텐더를 향해 있었으니까.
헌데, 이제와서 보니. 제법 괜찮은 공간이 눈에 들어온다.
애초에 ‘바’로서 이곳은 제대로 즐겨보지 못한 것만 같은 그녀다.
어제 왔던 것도, 업무의 일환이기도 했고.
“충분히 좋은 곳 같아 보이니까요.”
“네?”
민경은 결국 확답하지 않았다. 아직 손님으로 이곳을 온전히 즐겨본 적이 없는 자신은 이곳에 대한 확답을 내릴 자격이 없는 것만 같았다.
대신.
“다음에는 손님으로 다시 올 게요. 그때는, 일하러 말고 손님으로. 아실이 어떤 곳인지는 그때…, 손님으로 와서 판단할게요. 물론, 이번에 에디터로서 글은 쓰겠지만요.”
바텐더가 제일 좋아하는 작별을 그녀가 건네본다.
다시 오겠다는 저 말만큼, 바텐더가 좋아하는 말이 어디 있겠나.
그렇게 민경은 다음을 기약하며 장비를 챙겨 아실을 떠났다.
정환은 저 멀리 나와 이들을 배웅하고는 평소처럼 손님을 기다렸다.
시간은 그렇게 흘러, 일주일이 더 지난 후.
정환의 인터뷰가 실린 잡지가 발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