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술은 특별합니다-69화 (69/175)

69잔. 엔젤샷

2.

‘바텐더’라는 말의 뜻은 무엇일까.

누구는 부드러운 막대기라는 말도 안 되는 해석을 제시한 적도 있지만, 정확히 그 어원을 따져보자면 바를 지키는 이라는 말이 맞는 해석이다.

바를 지키고, 또 관리하는 사람이 바로 바텐더.

여기서 말하는 바는 비단 바 테이블 안쪽만이 아닌 전체적인 업장을 말할 것이다.

‘바’라고 하는 곳의 초창기 모습을 생각해보면 이런 어원이 시작된 것도 이해가 가능한 일이다.

서부 개척 시대와 금주법 시대, 그리고 더 이전의 산업 혁명 시대라는 거친 시대를 거치며 ‘술’과 관련된 공간은 언제나 폭력에 노출되어 왔다.

그런 폭력 속에서 공간을 지키고 또 자산을 지키며 최종적으로는 손님까지 지켜왔던 이들이 바텐더.

지금은 친절함과 온화함, 그리고 정갈함의 대명사인 바텐더들이지만, 이들의 원래 이미지는 거친 이미지였음이 역사적으로 분명했다.

서부 개척 시대와 금주법 시대에는 실력 좋은 바텐더란 말이 그 지역에서 제일가는 싸움꾼과 총잡이를 일컫는 말이기도 했으니,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할까.

그런 전통이 현재에도 내려오며 바텐더는 언제나 손님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기 위해 만들어진 여러 장치 중 하나가 바로 ‘엔젤샷’.

여기서 말하는 ‘엔젤샷’이란 칵테일이나 술이 아니다. 어느 업계에나 있는 관계자만이 아는 은어.

‘엔젤샷’ 역시 그런 은어의 하나였다.

주로 해외에서 잘 쓰이는 말이지만, ‘엔젤샷’이 바나 클럽, 또 펍에서 쓰일 때면 이는.

도와주세요!

라는 구조 신호가 된다.

윤성현 바텐더가 이를 모르는 게 이상한 건 아니다. ‘엔젤샷’이라는 말이 우리나라 바텐더 사이에서도 유명해지는 건 지금부터 적어도 3년에서 4년은 후의 일이니까.

2016년 정도, 그쯤부터 트위터나 인스타그램 등을 통해 이는 널리 퍼져나갔다.

허나, 이게 처음으로 쓰이기 시작한 건 2000년대 초반 무렵.

이런 용어가 그간 유명해지지 않은 건, 이를 주로 사용하는 서양 바텐더들만의 불문율 때문이었다.

은어가 유명해지면 이를 사용하는 피해자가 눈치를 볼 수 있다.

바텐더들은 이를 위해 부러 이런 은어를 널리 알리진 않았지만, SNS가 광범위하게 퍼지는 시대에서까지 이를 막을 순 없었다.

‘엔젤샷’이란 이름의 다른 칵테일이 없는 것 역시 바텐더들의 배려다.

바텐더들은 혹시 모를 헷갈릴 순간을 위해 어떤 칵테일에도 ‘엔젤샷’이란 이름은 절대 붙이지 않는다.

성현의 말을 들은 정환은 서둘러 엔젤샷을 주문한 손님을 찾아 나섰다.

주방으로 연결된 바가 아닌 스탠딩 손님이 머무는 바 테이블 쪽을 알려주는 윤성현 바텐더.

그의 안내를 따라가니, 안절부절못하는 표정의 젊은 여성 손님이 바에 몸을 기대고 있다.

“손님, 필요한 게 있으시다고요?”

정환은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여성에게 다가가 재차 주문을 확인한다.

정황은 눈에 보이지만, 그래도 손님의 입을 통해 다시 확인하려는 그였다.

염색한 머리가 밝게 빛나는 20대 초반의 여성이 정환을 바라본다.

어두운 조명 아래에서 봐도 눈에 들어올 화려한 외모가 그녀의 목 위를 장식하고 있다.

그녀는 재차 주문을 묻는 바텐더의 모습에 점점 기대를 잃어 가는 표정이다.

“아…. 엔젤샷…이 필요한데요. 아세…요?”

떨리는 목소리와 부정확한 발음으로 다시금 엔젤샷을 주문하는 손님.

조금은 꼬부라진 듯한 발음이 들려온다. 이건 술에 취해서가 아닌 한국어에 익숙하지 않은 이의 발음.

윤성현 바텐더의 예상처럼, 유학 생활을 오래 했거나 혹은 교포처럼 보이는 여성이었다.

그녀의 팔에는 굵은 누군가의 손자국이 남아있다. 멍이 든 것처럼 선명하게 남은 폭력의 흔적.

정환은 이를 보고는 얼른 답부터 들려준다.

“그럼요. 제가 만들어 드릴게요. 어떤 색을 원하시죠?”

!

정환의 말에 여성의 표정이 조금 밝아졌다. ‘색’을 언급하는 정환의 말을 여성은 단박에 이해한 듯 보였다.

“‘검정’만 아니면 좋겠어요.”

여성은 말을 하며 머리칼로 감춘 눈으로 자신의 왼쪽 뒤편을 가리켰다.

그녀가 가리킨 곳에는 잔뜩 화가 난 표정의 검정 셔츠를 입은 사내가 그녀를 응시하고 있다.

멀지 않은 곳에서 바텐더와의 이야기를 엿듣는 느낌의 그였다.

‘저놈이구나.’

정환은 잠시 그를 눈으로 확인하고는 얼른 시선을 거뒀다. 바텐더가 피해자의 피해 상황을 확인한 걸, 가해자가 알게 두는 건 좋지 못한 일이다.

비단 클럽만이 아니라 일반적인 바에서도 이런 일은 많기에, 정환은 능숙하게 일을 처리해 갈 수 있었다.

술이 있고 어두운 조명 아래에 또 남자와 여자가 있으면, 한 번씩 이런 문제는 생기게 된다.

“주문 확인했습니다. 잔은 어떻게 드릴까요? 스트레이트로 드릴까요? 아니면…, 라임도 필요할까요?”

“아뇨, 아뇨. 라임까지는…. 온더록으로 주시면 충분해요.”

있지도 않은 술에 디테일한 주문이 오간다. 이는 이 모든 게 주문이 아니기에 가능한 상황.

지금 정환과 손님이 주고받는 말은 모두 은어를 뜻했다.

‘엔젤샷’은 구조 신호를 뜻한다. 그리고 거기에 ‘니트’나 ‘스트레이트’를 덧붙이면 그저 밖까지 안내해달라는 뜻.

반면에 ‘온더록’은 택시나 다른 탈것에 안전히 탈 때까지 보호해 달라는 뜻으로 조금은 더 심각한 상황을 말했다.

정환이 말하고 손님이 거부한 ‘라임’은 이런 상황 중 최악을 뜻했는데, 이는 경찰을 불러 달라는 제법 심각한 상황을 말한다.

‘흠. 경찰까지는 안 부르고 싶은 건가. 오케이.’

“네. 제가 처리할게요.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정환은 아무렇지 않게 말하고는 서둘러 윤성현 바텐더를 찾았다.

이런저런 사정을 설명하니 심각해지는 윤성현 바텐더의 얼굴.

그는 돌아서서 셔츠에 달린 무전기로 무언가를 이야기하더니, 이내 정환에게 손님을 밖으로 모셔도 좋다는 사인을 보냈다.

“잔은 바 끝에서 드리죠.”

“괜…찮나요?”

“저쪽까지만 가면 무사히 잔이 나올 겁니다. 더 필요한 거 있으세요?”

“아뇨. 그럼 괜찮아요.”

여성은 옆에 간단한 짐만 챙기고는 바 끝으로 가 정환과 합류했다.

그런 모습을 보더니 잔뜩 화가 난 얼굴로 욕까지 중얼거리며 다가서는 검정 셔츠의 남성.

허나, 그는.

“손님. 잠시만요.”

덩치 좋은 가드 둘을 데리고 온 윤성현 바텐더에게 가로막히고 만다.

“뭐, 뭐야? 저리 안 비켜? 당신들 뭐야?”

“같이 좀 가시죠. 신고가 들어와서요. CCTV 좀 보고 마저 이야기해야 할 거 같네요. 거칠게 나오시면 경찰까지 부를 수도 있습니다. 조용히 가시죠.”

“…….”

“가드분들. 모셔주세요.”

고개를 숙인 검정 셔츠의 남성은 가드와 함께 사무실로 향했다.

정환은 그 틈을 타 인파 속에 몸을 숨겨 스태프 전용 출구로 여성 손님을 안내했다.

“감사해요. 말에 몇 번 대답해줬더니 손도 잡고 벽에 밀치고…. 나중에는 다른 사람과 말만 섞어도 욕을 하더라고요. 거부해도 막 입을 맞추려 하고…. 스태프나 가드 주변에는 가지도 못하게 했어요. 말을 섞을 수 있는 사람이 바텐더뿐이라….”

“잘 하셨어요. 그러려고 바텐더가 있는 거죠. 위험하셨네요. 몸은 괜찮으세요? 팔은 어때요?”

“이 정도는 괜찮아요. 조금 놀란 게 크지만요. 그래도 ‘엔젤샷’을 아는 분이 있어서 다행이었어요.”

“인터넷에서 지나가다 봐뒀는데 도움이 되네요. 유학, 다녀오신 건가요?”

“호주에서 어렸을 때부터 살았어요. 음악이랑 춤이 좋아서 한국 클럽도 와봤는데, 생각한 거랑은 다르네요.”

“원래 이런 곳은 아니에요. 오해는 말아주세요. 가끔 그런 사람이 있는 거니까.”

“뭐. 보호해주는 좋은 바텐더도 있다? 그렇게 기억할게요. 그럼 됐죠?”

여성은 밖으로 나와 대로변에 가까워지자 점점 활기를 되찾아갔다.

클럽이라는 분위기 속에서 또 압박감을 느꼈으니, 이전에는 위축된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정환은 그런 손님을 안심시키려 계속해서 말을 걸고 그녀의 기분을 풀어주려 노력했다.

“도와주셔서 감사해요.”

사람도 많고 차들이 쌩쌩 달리는 대로변에 닿자 조명이 밝아진다.

이제야 자세히 보이는 여성의 얼굴. 그녀는 한 손으로 귓가의 머리를 쓸어올렸다.

클럽 안에서 보던 것보다 훨씬 더 자세히 보이는 얼굴에 정환은 잠시 넋을 놓았다.

그녀의 얼굴이, 안에서 보던 것 이상으로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이건…’

일반인의 얼굴은 아닌 거 같다. 그런 생각마저 드는 정환. 그런 생각의 와중에는 어디서 본 것 같은 느낌도 강하게 정환을 스치고 간다.

“전 선유미라고 해요. 그쪽은요? 도와준 분 이름 정도는 알고 싶어요.”

선유미라는 이름이 들리자, 정환은 이내 그 기시감의 정체를 알아챈다.

‘유미(YU-MI)?’

‘유미’라는 제법 유명한 이름이 떠오르는 정환. 분명 이전 생에서 들어본 유명한 가수의 이름이 그런 이름이었다.

거기에 얼굴까지. 당시에 봤던 것과 스타일링은 달랐지만, 분명히 매체로 접했던 가수 ‘유미’의 얼굴이 그녀에게 남아있었다.

“아…. 네. 차정환입니다. 혹시 신고나 후속 조치가 필요하면 찾아주세요.”

“아뇨. 일을 크게 만들고 싶지는 않아서요. 사실…, 연습생이거든요. 데뷔 준비하고 있어요. 경찰 부르고 시끄러워지면 회사에서 싫어할 거예요.”

“그러셨군요. 그럼 저희가 말 나가지 않게 알아서 잘 처리해두겠습니다.”

유미라는 가수의 노래는 정환도 즐겨들었다. 외모로만 승부를 보는 게 아닌 싱어송라이터로서 재능도 출중했던 그녀.

그녀는 얼마 뒤 데뷔한 이후 한국에서 제일 잘 나가는 여성 싱어송라이터가 된다.

‘이야, 이런 스타를 다 만나네.’

“그리고 가수로 크게 성공하실 겁니다! 정말요!”

“풉! 뭘 알고 하시는 말씀이에요? 어떤 연습생인지도 모르면서.”

“가수…겠죠? 노래 정말 잘하실 거 같아요!”

“재미난 분이시네요. 차라리 그 쪽분이 작업을 걸어줬으면 좋았을 텐데.”

“네? 아뇨…. 그런 스타일은 아니어서요.”

“농담이에요. 농담. 저런 작업은 누구나 최악이죠. 그래도 덕분에 이런 농담까지 할 수 있게 되네요. 감사해요.”

“하하. 아닙니다. 택시 잡아드릴게요.”

정환은 어색한 상황에 뒷머리만 긁으며 택시를 잡으려 했다.

싫지 않은 분위기 속에서 좋지 않았던 기억을 날리려 노력해주는 정환.

그런 정환의 옷깃을 유미가 살짝 잡아본다.

“저어. 별다른 뜻은 없는데요.”

그녀는 도로로 나와 택시를 잡는 정환에게 쑥스러운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감사해서, 정말 감사해서 그러는데, 번호…라도 알려주실래요?”

“네?”

“아니, 다음에라도 꼭 보답하고 싶어서요! 정말 그래서요!”

오늘만 두 번째다. 다만, 이번에는 곧 유명한 스타가 될 사람이어서 조금 당황하는 정환.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해외에서 온 사람이고 또 유명인이 될 사람이니, 어쩌면 말처럼 정말 보답만을 원하는 걸 수도 있다.

이를 거절하기도 또 마냥 좋아하기도 애매한 상황.

정환은 그런 상황에서 기지를 발휘해 본다.

“그럼 이걸 받으시죠.”

“명함? 여기 바텐더가 아니네요?”

“네. 잠시 헬퍼로 와 있는 거라서요. 이번 주가 끝나면 또 다른 곳으로 옮깁니다.”

“그럼 원래 일하는 곳은 여기 아르센? 강남에서 일하세요?”

“아뇨. 거긴 이전에 일하던 곳인데 문을 닫아서요. 곧 종로에 제 가게를 열 예정이에요.”

“우와. 벌써요? 젊어 보이시는데, 대단해요!”

“운이 좋았습니다. 보답은 다른 거보다, 나중에 한 번 바에 들려주세요. 맛있는 술, 대접하겠습니다. ‘엔젤샷’ 말고요.”

선유미는 한참이나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정환의 명함을 보고는 이를 챙겼다.

“개업하는 가게! 꼭 한 번 갈게요.”

“편하게 들려주세요.”

“혹시 알아요? 제가 나중에 크게 뜨면 홍보해 줄 수도 있죠!”

“그렇게 되면 저야 감사하죠. 꼭 그렇게 되길 바랄게요!”

“오늘 감사했어요.”

“조심히 들어가세요.”

선유미는 고개를 한 번 숙이고는 정환이 잡은 택시에 올라탔다.

정환은 기사에게 목적지를 일러주고는 번호까지 확인한 후 그녀를 안심시켰다.

하나의 큰일을 겪은 후인데, 어찌 택시라도 안심이 되겠나. 보여주기식이긴 해도, 안심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해두는 그였다.

“무슨 일 있으면 명함 번호로 연락하세요.”

“고마워요! 안녕-!”

어둡던 표정의 손님이 밝게 웃으며 손을 흔든다. 이것만으로 더한 보상도 없는 게 바텐더라는 직업.

오늘은 조금 다른 일을 처리한 덕이지만, 그래도 같은 보상을 받았다.

정환은 그런 생각에 밝게 웃으며 돌아섰다.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한 진정한 보상이 돌아오는 건 조금 훗날일 수도 있지만, 아직은 모르는 이야기다.

3.

위이이이이이이잉!

거친 기계 소리가 한적한 골목을 채운다. 한식당과 한옥이 즐비한 거리에는 이런 공사 소리가 익숙하진 않다.

“바 카운터 들어갑니다!”

“오케이! 안쪽으로 쭉 넣으쇼!”

“거기, 거기! 힘 더 줘야지!”

인부들은 저마다 사인을 주고받으며 합을 맞추고 있다. 그리고 그런 인부들을 지켜보며 무언가를 손에 꼭 쥐고 있는 정환의 모습.

“젊은 사장님. 오늘도 또 나왔네?”

“아, 네. 소장님. 오늘 바 카운터가 들어가는 날이라고 해서요.”

“그렇지. 그게 중요한 날인감?”

“네. 나름 상징적이어서요. ‘바’로서 이제 출발한다는 그런 느낌이죠.”

“허허. 나야 뭐, 그런 걸 아나. 손에 그건 뭔감?”

“아, 동판입니다. 간판 대신 쓰려고요.”

“동판? 간판을 따로 안 올리고?”

“네. 작게 담벼락에 목판이랑 동판 하나만 달아두려고요.”

현장 소장은 정환이 품에 앉은 목판과 동판을 받아 이를 살핀다.

젊은 사장은 목판을 아래두고 그 위에 동판을 고정할 생각인 모양이다.

“흠. 우리가 박아줄까?”

“그러시면 좋죠.”

“보자아. 여기. 딱 여기 정도가 어뗘?”

“좋은데요?”

“잠깐 기다려 보쇼.”

현장 소장은 정환에게 잠시 기다리란 말만 남기고는 장비를 챙기러 갔다.

그의 손에 들린 동판에는 바의 이름과 ‘Classic Cocktail Bar.’란 글이 멋들어지게 새겨져 있다.

“자. 이거 받으슈.”

현장 소장은 정환에게 자신이 가져온 드릴을 건넸다.

“간판은 첫 못질을 주인이 해야 운수가 대통한답디다. 젊은 사장이 첫 못 박읍시다. 목판 먼저 내가 박을 테니, 그 드릴로 동판 박으슈.”

사람 좋게 웃으며 자신들만 아는 미신을 전수해주는 그. 정환 역시 이를 좋게 받아들이며, 드릴을 건네받았다.

현장 소장은 능숙하게 목판을 담벼락에 고정하며 동판이 들어갈 공간을 만들었다.

손을 털고 나와 이제는 정환에게 직접 해보라며 위치를 알려주는 그.

정환은 그의 지시에 맞춰 자신이 운영하게 될 바의 얼굴을 직접 달아본다.

위이이이이이잉.

웅장할 것도 없이 적당한 소리로 박혀가는 드릴의 소리. 의외로 간단하게, 못은 벽을 뚫고 들어가 이내 목판 위에 동판이 고정된다.

탁! 탁! 탁!

현장 소장과 정환이 동시에 손을 털고는 그 모습을 바라봤다. 언제든 한 가게의 간판을 거는 모습은 보기 좋은 모습이다.

“좋네. 동판이 잘 나왔어.”

“감사합니다. 소장님이 잘 걸어주셔서 그런 거에요.”

“에이! 내 일인데, 그럼! 크흐흐흐.”

현장 소장은 사람 좋게 웃고는 계속해서 동판을 응시했다. 무언가 궁금한 게 있어 보이는 그의 모습.

“이건 뭐라 쓴 겨? 내가 꼬부랑 글씨는 젬병이라. 영어인가?”

“아뇨. 프랑스어입니다.”

“아 불란서! 크흐. 멋지네. 어떻게 읽는담? 앞에는 ‘바’라고 쓰인 거 같은데.”

정환이 운영할 가게의 이름을 물어오는 현장 소장. 정환은 그런 현장 소장을 보고 밝게 웃은 뒤 자신이 차릴 가게의 이름을 알려준다.

“Asile. ‘아실’이라고 읽습니다. 프랑스어로 피난처란 뜻이죠.”

간판까지 달자, ‘Bar Asile’의 개업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