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술은 특별합니다-68화 (68/175)

68잔. Bomb&Shot.

1.

“우와. 정환 씨. 우리 시그니처 칵테일을 어떻게 이렇게 잘 만들어요?”

쿵쾅거리는 커다란 음악 소리 사이로 한 바텐더가 정환에게 말을 건다.

음악 소리에 묻힐 법도 한 소리지만, 이들은 애써 목소리를 높이며 소통하고 있다.

“‘헥타콘밤’ 말씀이죠? 워낙 유명해서요. 하하.”

정환은 자신의 앞에 놓인 칵테일을 보며 멋쩍게 웃었다. ‘헥타곤밤’이라 불리는 칵테일이 그의 앞에서 영롱한 빛을 내뿜는다.

‘밤(Bomb)’ 스타일의 칵테일은 쇼트 잔에 리큐르를 조금 담고 이를 에너지 드링크나 맥주 등에 타서 마시는 스타일을 말한다.

대표적인 칵테일로는 약초 리큐르를 쓴 ‘예거밤’과 ‘아그와밤’으로, 흔히들 펍이나 클럽에서 많이 마시는 칵테일 스타일이었다.

‘모를 수가 없지….’

정환은 자신이 만든 ‘헥타곤밤’을 보며 지난날을 회상했다.

이곳 클럽 헥타곤의 시그니처 칵테일인 이 헥타곤밤을 정환은 만들어 본 적이 있었는데, 그건 정환이 한참 아르센에서 일하던 시절이었다.

“헥타곤밤! 몰라요?”

평화롭던 아르센의 한 날. 두 명의 여성이 아르센으로 들어와 건넨 주문은 생전 처음 듣는 단어였다.

헥타곤 밤이라는 칵테일을 달라며 보채는 손님의 말에 정환과 기준, 그리고 정우는 머리를 맞대었지만, 그 누구도 이를 알진 못했다.

“모던 칵테일일까요?”

“음. 우리가 전부 모르는 거면, 모던이겠지? 한남동 쪽에서 먼저 풀린 칵테일인가.”

“잊혀진 클래식일 수도 있죠. 검색해 볼까요?”

한참을 상의하던 바텐더 셋. 셋은 결국 아무런 결론에 닿지 못했고 손님에게 사과와 함께 자세한 설명을 부탁했다.

“손님, 죄송합니다. 저희가 그 칵테일을 잘 몰라서요. 괜찮으시다면 어디서 드셨는지, 어떤 스타일이었는지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와. 이런 바에서도 모르는 칵테일이 있구나. 헥타곤에서 마셨었죠. 클럽 헥타곤요! 거기 바텐더가 우리나라에서 제일 잘 나가는 칵테일이라고 했어요.”

“…….”

그제야 모든 정황이 이해가 가기 시작했던 세 명의 바텐더들.

가끔은 그런 일이 있다. 한 가게의 시그니처 칵테일을 마셔보고는 그게 맛이 좋아 다른 바에서도 그 칵테일을 찾는 경우.

바텐더들이야 여러 바와 교류하며 공부하니 때로는 다른 가게의 시그니처 메뉴도 알 수 있다.

아는 범위에서야 만들어 준다지만, 이렇게 모를 때는 방법이 없다.

“그…, 죄송합니다만…”

“클래식 바라고 해서 기대했는데…. 아쉽네요.”

“…….”

손님의 입에서 아쉽다는 말이 나왔을 때, 정우의 머리에는 무언가 빠직! 하는 소리가 들렸던 거 같다.

“잠시만.”

이라는 말을 후배들에게 남기고 백사이드로 들어갔던 정우. 정우는 누군가와 통화를 하듯 한참을 언성을 높이고 나서야 백사이드를 나섰다.

야이, 미친놈아! 어디서 그런 말도 안 되는…!

시끄럽고 레시피나 불러 인마!

같은 말이 들렸던 거로, 정환은 그렇게 기억했다. 웃으며 백사이드를 나서는 정우의 얼굴에는 광기와 분노가 서려 있었다.

“피치 리큐르에 체리 리큐르 빌드. 그리고 비터스 두 대쉬. 나머지는 에너지 드링크랍신다…. 정환아. 네가 만들어라.”

손님이 원한다면 바텐더는 답을 구해와야 한다. 다행히 당시 클럽 ‘헥타곤’에서 일하던 헤드 바텐더가 정우와 아는 사이였기에 이들은 레시피를 알아내 손님께 잔을 대접할 수 있었다.

“와! 이전에 마셨던 것보다 더 맛있어요!”

원조보다 맛있다는 말이 칭찬인지 아닌지 모르는 상황에서 씁쓸한 미소만 지었던 기억이 정환을 스쳤다.

둥둥둥!

둠칫! 둠칫! 둠칫!

두쾅! 두쾅! 두쾅!

큰 음악 소리가 계속해서 클럽 안을 울린다. 어두운 조명에 레이저가 정신 사납게 오가고 또 소리 지르는 젊은 남녀까지.

바텐더와 손님 사이의 대화는 짧고, 소리를 지르듯 말해야 겨우 소통이 가능한 곳이 바로 여기, 클럽이란 곳이다.

“예거밤 3개, 아그와밤 4개, 헥타곤밤 3개요!”

“데킬라 샷으로 15잔!”

열정이 가득한 클럽의 스테이지만큼 클럽의 바 안도 분주한 모습이다.

다른 바들보다 조금 더 분주함이 더해 보이는 모습.

클럽은 진득하게 오래 술을 마시는 분위기보다는 간단하게 한 잔씩 입에 얼른 털어 넣는 분위기가 강했다.

이를 맞추기 위해서, 바 안은 속도전이라 불러도 모자람이 없을 정도였다.

솨아아! 솨아아! 솨아아!

푸어러(Pourer)라 불리는 술을 쉽게 따를 수 있는 도구가 술병마다 달려있어 이런 바쁜 와중에도 바텐더를 돕고 있다.

푸어러는 술이 나오는 속도를 일정하게 만들어 정확한 계량을 돕는 도구로 주로 플레어 바나 펍, 이런 클럽에서 자주 사용된다.

“예거 3개! 아그와 4개! 헥타곤 밤 3개요!”

아마 자신이 일했던 곳 중에서는 가장 바쁜 곳이 이곳일 거라. 그런 생각까지 해보는 정환.

명진은 이런 속도감이 있는 곳에서 젊은 손님층이 즐기는 술 문화를 접해보라는 의미에서 정환을 이곳에 보낸 것 같았다.

확실히, 이전에는 해본 적이 없는 경험이다.

슈슈슈슈슈-!

15잔을 한 번에 두고는 그 위로 술을 흩뿌리는 정환. 어느새 정환은 이런 클럽 바의 분위기에도 적응해 속도를 맞춰가고 있다.

“데킬라 샷 15개 나갑니다!”

“오케이!”

이제야 한숨을 돌리며 클럽 안을 살펴보는 정환. 주말이라는 특성과 맞물려 정말 많은 젊은 남녀가 클럽을 누비며 청춘을 즐기고 있다.

이런 클럽을 크게 즐겨본 적이 없어 풍경이 어색한 정환의 모습.

정환은 주방처럼 안쪽으로 놓여있는 바가 아닌, 손님과 마주할 수 있는 바로 나서본다.

클럽이라고 전부 주방 같은 바만이 있는 건 아니다.

손님들이 간단하게 스탠딩으로 서서 잔을 둘 수 있는 바 테이블도 있는 헥타곤 클럽.

정환은 한숨 돌릴 타이밍에 손님들의 앞으로 나섰다.

손님이 앞에 서 있다고는 해도 바텐더와 깊은 대화를 나누거나 하지는 않는다.

아니, 애초에 음악 소리가 크게 들려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환경도 아니고.

그저 나눌 수 있는 대화는.

“취할 수 있는 거! 독한 거요!”

라는 고성이 담긴 주문과.

“네! 달게 해드릴까요, 아니면 안 달게요?”

같은 바텐더의 고함까지.

오늘은 집에 간 후, 목이 조금 아플 것만 같다.

“달게 해주세요!”

대부분의 주문이 이렇다. 20대 초반의 청춘 남녀가 모여서 즐기는 이곳은 얼른 취해 취기를 발판 삼아 더 즐겁게 놀 목적으로 술을 마시는 곳.

깊은 맛보다는 단맛이 강하고 단박에 술을 들이켜 얼른 취할 수 있는 술이 제일로 잘 팔리는 곳이었다.

‘흠. 달고 빨리 취하는 거라….’

어떤 게 좋을까. 사실 이런 고민을 할 시간도 사치였다. 옆에서는 주문이 쏟아지고, 또 클럽에서 잔을 기다리는 손님은 오래 기다려 주지 않는 법이다.

“아직이에요?”

“네네. 나갑니다!”

정환은 잠시도 고민하지 못하고는 서둘러 잔을 말아준다. 럼콕이나 버번콕 같이 콜라에 증류주를 섞은 칵테일을 간단히 만들어 내미는 정환의 모습.

오늘 하루 일하며 클럽에서 가장 인기 있는 칵테일을 살펴본 결과, 이런 종류의 칵테일이 여기서는 제일 잘나간다.

‘잭콕, 버번콕, 럼콕 이런 게 20대 취향인가. 흠.’

자신이 추구하는 방향과는 다르지만, 이 역시 하나의 술 섭취 문화다.

자신이 원하는 바는 이런 곳을 즐기는 젊은 남녀도 와서 즐길 수 있는 공간.

정환은 이런 취향도 머릿속에 남기며 새롭게 배워가고 있다.

“괜찮아요? 정신없죠?”

그렇게 정환이 한참을 클럽에 익숙해지고 있을 때. 옆에서 다른 바텐더가 말을 걸어온다.

클럽 헥타곤에서 바텐더로 일하는 윤성현 바텐더.

정환과 경력이 비슷해, 오늘 처음 봤음에도 둘은 제법 편하게 지내고 있다.

“복잡하네요. 그래도 재밌어요. 속도감도 있고.”

“그래요? 다행이네요. 전 처음 여기 왔을 때,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더라구요.”

“제가 지금 그래요. 익숙해져도 어색하긴 하네요.”

“그렇죠? 일반 바랑은 다르니까요.”

“네. 맛도 물어보고 싶은데…, 다들 쌩! 하고 가버리시네요.”

손님과의 상호 작용이 없다는 게 제일 아쉽다. 정환은 그런 마음에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지나간 일을 말해본다.

“맛은 몰라도 다른 말은 많던데요? 다들 새로 온 바텐더 잘생겼다고 난리에요.”

“에이, 설마요. 하하.”

장난일 거라. 그런 생각에 웃으며 넘기는 정환. 하지만 그런 웃음이 무색하게.

“저기요. 저기 바텐더분께 한 잔 사고 싶은데….”

한 여성이 바로 다가와 정환을 가리키며 한 잔 사겠다는 말을 전한다.

바텐더에게 잔을 권하는 손님이야 본 적이 있기에 능숙하게 대처하려는 정환.

“아, 지금 근무 중…”

하지만.

“네. 좋죠. 뭐로 한 잔 사시겠어요?”

근무 중이라 말하며 잔을 피하려는 정환의 말을 옆에 있던 윤성현 바텐더가 잘라 버린다.

“‘헥타곤밤’으로요!”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성은 쑥스러움 없이 당당히 헥타곤밤을 외쳤다.

이런 모습이 익숙한 듯 술을 만들어 정환과 여성에게 내미는 윤성현 바텐더.

“우리 매장은 손님이 주는 술은 마셔야 해요. 그게 방침이라서요.”

“…근무 중에도요?”

“네. 그것도 다 매상이니까요. 분위기도 띄워야 되고.”

성현은 눈을 찡긋하며 정환에게 얼른 잔을 들라 말했다. 정환은 어색하게 여성과 잔을 맞대고는 헥타곤밤을 들이켰다.

“감사합니다.”

“아니에요. 잘생기셨어요! 이건, 제 번호에요!”

잔을 삼키고 나서야 쑥스러워하는 여성. 여성은 말과 작은 쪽지만을 남기고는 도망치듯 자리를 떠났다.

정환으로서는 처음 해보는 경험이었다.

“청춘이니까요.”

윤성현 바텐더는 어깨만 들썩이며 이해하란 표정을 지었다. 확실히, 클래식 바와는 다른 분위기다.

“그나저나, 맛있네요. 이거.”

“네? 헥타곤밤이요?”

“네. 생각보다 맛있어요. 마셔본 건 처음이라서요.”

“당연히 맛있죠. 그래도 여기서 제일 잘 나가는 칵테일인데.”

“…그렇죠.”

조금은 짧은 생각이었다. 그저 취하게만 만들려 단순히 단맛이 나는 리큐르를 넣고 에너지 드링크에 빠트린 일차원적인 술이란 생각.

정환은 이 헥타곤 밤이란 술을 직접 마셔보고 나서야, 클럽 바도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떠올릴 수 있었다.

‘결국은 맛이 중요한 거지.’

어떤 목적으로 마시는 술이든 맛이 있어야 한다. 취하기 위해 단순히 털어 넣는 목적이든 오래 음미하는 목적이든 이는 마찬가지.

결국, 맛없는 술은 누구에게도 또 어디에서도 선택받지 못하는 법이다.

정환은 어느새 자리로 돌아가 이전처럼 일을 시작했다. 안쪽 바에 다시 자리를 잡고 밀려드는 주문을 쳐내는 정환의 모습.

그렇게 한참을 일하며 클럽이 가장 붐비는 자정 무렵이 되었을 때쯤.

“참. 클럽 바에도 이런 경우가 다 있네요.”

조금 전 정환과 이야기를 나눴던 윤성현 바텐더가 주방 쪽으로 들어오며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어 보인다.

“왜 그러세요?”

“아니, 우린 대부분 메뉴판에 있는 술만 팔거든요. 아시잖아요, 주문도 많아서 복잡한 칵테일은 취급도 못 하고.”

“그렇긴 하죠.”

“그래도 제가 만들 수 있는 건 해드리는 편인데, 진짜 태어나서 처음 듣는 걸 주문하는 손님이 있어서요.”

어느 바에나 있는 일이다. 아르센에서 정환도 겪었던 일이고.

다른 바의 시그니처나 한 바텐더의 오리지널 칵테일을 다른 곳에서 시키는 일.

그게 비단 클래식 바에서만 있는 고충은 아닌 모양이다.

윤성현 바텐더는 난감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연신 고개를 절레 저어 보인다.

없는 술을 달라는 손님만큼, 까다로운 이도 없는 법이다.

“무슨 술을 찾으시길래요?”

“어휴. 정환 씨도 모를걸요? 저도 예전에 클래식 칵테일 좀 공부했는데, 진짜 들어본 적도 없는 술이에요. 발음하는 거 보니까 교포나 유학생 출신 같던데. 해외에서 마신 술인가?”

“흠. 유럽 쪽 모던 칵테일이려나요?”

“글쎄요. 칵테일이 아닌 거도 같고요.”

“칵테일이 아니라고요?”

“네. 샷으로 달래요. ‘엔젤샷’. 몇 번이나 그걸 주문하더라구요. 하, 참. 그런 술이 있었나?”

!

정환은 ‘엔젤샷’이라는 말을 듣자 눈을 크게 고쳐 떴다. 손에 쥔 도구를 내리고는 몸을 돌려 성현을 바라보는 정환.

“혹시, 그분 여성분이셨어요?”

정환은 목소리에 다급함을 담아 성현을 보챈다.

“네네. 젊은 여성분이셨죠. 왜 그러세요? 아는 술이에요?”

자신을 잡고 흔들 듯 묻는 정환에게 왜 이러냐는 표정을 지어주는 윤성현 바텐더.

그런 성현의 앞에서 정환은.

“어딥니까? 그 손님이 계신 곳?”

다급히 그 손님을 찾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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