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술은 특별합니다-66화 (66/175)

66잔. 경험이 부족한 바텐더.

2.

“네네. 말씀드렸던 원목만 구해주시면 길이는 제가 나중에 측정해서 따로 보내드릴 요. 네네. 계약금요? 에이, 사장님 너무 하시네. 우리 다 알 거 아는 사람들끼리. 그렇죠? 네네. 잘 좀 부탁드릴게요!”

개업 준비라는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두 번째 하는 일임에도 정환은 그를 여실히 느끼며 몸을 움직이고 있다.

걸으면서 통화하고 또 자리를 잡고 앉아도 통화. 거기에 다른 일을 보면서도 문자로 연락을 주고받아야 하니,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란다는 말이 딱 지금에 어울리는 상황이다.

‘후우. 또 움직여 볼까.’

정환은 허리를 한 번 피고는 길게 숨을 내쉰다. 그리고 잠시 간판을 올려보더니 이내 작은 사무실로 들어섰다.

그가 올려다본 간판은 ‘부동산’이라는 글이 적혀 있었다.

“어서 오세요.”

“안녕하세요. 매물 좀 보려고 하는데요.”

“…학생이요?”

너무 어려 보이는 외모 탓일까. 매물을 보러왔다는 정환의 말에 중개사는 슬쩍 믿지 못하는 표정을 짓는다.

“가게를 열려고요.”

“아. 가게. 그래요. 요즘 청년 창업이 인기라더니. 장하네.”

“네. 뭐.”

“잘 왔어요. 여기가 계약만 하면 대박 나는 그런 부동산이니까. 하하하.”

이런저런 대화를 주고받던 두 사람이 부동산 사무실을 나섰다.

골목을 누비며 정환이 말한 조건에 맞는 곳을 찾아보는 중개사의 모습.

“특이한 매물을 찾으시네. 뭘 하려고 그런 걸 찾으세요?”

“작은 가게를 하려고요. ‘바’요.”

“바?”

“네. 바.”

“그, 아가씨들 나오는…?”

“아뇨. 저 혼자 일할 겁니다. 제가 바텐더라서요.”

“아.”

그래. 아가씨들 나오는 곳과는 이런 매물이 어울리지 않지. 중개사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바’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떠오른 편견을 감추지 못했다.

“자, 여기 골목으로 들어가 봅시다. 여기가 대로랑도 가깝고 또 말씀하신 거처럼 구옥이 많아요.”

“정확히는 ‘한옥’이었으면 하는데요.”

“조금 개축한 곳도 있죠. 일단 봐봐요.”

정환이 찾는 매물의 조건은 ‘한옥’. 조금은 ‘바’라는 곳과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콘셉트이지만, 정환은 정확히 ‘한옥’을 짚어 여러 부동산 사무실을 뒤지는 중이다.

이전 생에서 정환이 만들었던 자신의 바 역시 한옥을 토대로 개축한 콘셉트.

정환은 그때 미처 열지 못한 자신의 바를 이번 생에서 계승하고 싶어 보였다.

한국적인 멋을 담은 한옥에 이국적인 서비스를 더하는 것. 정환이 예전부터 꿈꾸던 바는 그런 곳이었다.

“자아. 여기부터 보실까요? 회랑도 살아있고 또 안채도 그대로. 칸은 두 칸인데, 나쁘지 않아요.”

“음. 조금 자세히 봐도 될까요?”

“그래요.”

정환은 안으로 들어가 매물로 나온 한옥을 살폈다. 구석구석 한옥 특유의 모습은 남았지만 여기저기 손본 곳이 많아 원하던 느낌이 나는 매물은 아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생각했던 거 보다는 너무 크네요. 조금 작았으면 합니다.”

“작은 거라. 이쪽 골목은 없는데, 다음 골목으로 가보죠.”

홀로 꾸려가기에는 너무도 큰 크기에 정환은 우선 이번 매물을 탈락시키고 본다.

무작정 넓은 가게가 좋은 건 아니다.

‘후. 쉽지 않네.’

이미 며칠을 반복해서 돌고 있음에도 원하는 매물이 보이진 않는다.

이제는 몸도 지쳐가 적당한 타협을 고려해보던 그때.

“이쪽 골목으로 가볼까요? 여기도 대로 사이에 있는 골목이고 또 주변에 한식당도 많은데.”

“그럼, 너무 큰 집이 아닐까요?”

“다 한식집인데, 이 중에 또 주거용으로 쓰던 곳이 딱 하나 있어요. 얼마 전에 주인이 나가서 바로 들어올 수도 있고. 용도도 상업용으로 사용 가능해요. 딱 맞는 조건이죠?”

“우선 봐야죠.”

“하여튼, 젊은 양반이 야무지네.”

중개사는 정환이 여간 깐깐한 게 아님을 알아보고는 회심의 매물을 보여준다.

버스가 다니는 대로를 따라 한식당이 자리를 채우는 골목. 그런 골목의 한편에 사람이 사는 용으로 꾸며졌던 작은 한옥이 정환을 반겼다.

“짧은 회랑. 서까래랑 대들보 살아있고 저기 방 한 칸에 뒤쪽에 작은 방 하나 더. 그리고 마당. 이만한 매물 없어요. 알죠?”

“흠. 잠시 둘러 볼게요.”

정환은 중개사의 말을 막고는 유심히 한옥을 살폈다. 짧지만 넓은, ‘ㄱ’ 모양의 회랑은 바 테이블을 두고 메인 공간으로 활용하기 충분해 보였고 따로 난 한 칸의 방은 홀(hall)로 삼아 딱 한 테이블을 두기 좋아 보였다.

‘뒤쪽은 작은 방은 백사이드로 쓰면 좋겠네.’

제법, 괜찮은 매물을 찾은 거 같다.

그 외에도 정환은 이것저것 치수까지 측정하고는 한참을 더 그 한옥을 살폈다.

문을 나서는 정환의 얼굴에는 미소가 걸려있다.

우선은 중개사와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반 이상 마음이 기울었지만, 쉽사리 그 자리에서 정할 수는 없었다.

띠리리링.

정환이 골목을 빠져나올 때 걸려오는 한 통의 전화.

“네, 마스터. 방금 점포 위치 보고 오는 길입니다. 네네. 적당한 곳이 잘 없어서요. 한 곳 정도 보인 거 같아요. 네네. 우선 같이 한 번 보시고…, 어-. 제가 알아서 하라구요? 그래도 될까요? 아. 네네. 그럼 방금 거기가 제일인 거 같긴 해요.”

가게의 투자자인 명진이다.

“그렇게 할게요. 네. 우선은 몇 번만 더 둘러보고요.”

명진은 전적으로 정환에게 맡기며 자신들의 눈치를 보지 말라는 말을 전한다.

든든한 아군이 되어주는 명진의 말에 정환이 밝게 웃었다.

“네네. 그럼 그렇게 하고 또 연락드릴게요. 아마, 별다른 곳이 없으면 여기로 할 거 같아요. 매물이 잘 없더라구요, 여기…”

명진에게 푸념하듯 자신이 둘러본 것들을 일러 바쳐보는 정환의 모습.

그는 마지막 말로 자신이 둘러본 곳이 어디인지를 투자자에게 알려준다.

“‘종로’에는요.”

3.

“흠. 종로라. 자네가 말한 기준만 본다면 나쁘지는 않겠군.”

“좋게 봐주셔서 다행입니다.”

“경복궁에 광화문에 북촌까지. 주변에 관광지도 있고 먹거리 골목이나 술집도 제법 많지. 대학도 하나 있고. 거기에 오피스 빌딩이나 공관도 많으니 입소문만 잘 타면 꽤 괜찮을 걸세. 주변에 한식당도 많고.”

“입소문이 잘 나야겠죠.”

“물론 그래야지. 해서, 계약은 진행했나? 그때 봤다던 그 한옥.”

“네. 계약서 작성하고 곧 공사 들어가기로 했습니다.”

“흠. 한옥을 개조한 바라. 기대되는군. 프리 오픈 때는 먼저 볼 수 있는 거겠지?”

“공사 중이라도 언제든지요. 투자자시니까요.”

잔잔한 재즈 연주곡이 흐르는 바 안. 그런 바 안에서 정갈한 양복을 입은 중년인과 젊은 청년이 함께 잔을 기울이고 있다.

한 명은 새롭게 바를 열 바텐더 차정환, 그리고 다른 한 명은 그곳에 투자하기로 한 호텔 출신의 교수 김태현 교수였다.

“완성된 모습으로 보겠네. 그래야 더 기대되니.”

“편한신 대로 해주세요.”

“바 카운터도 원목으로 해뒀다니, 한옥과는 잘 어울리겠군.”

“추천해주신 공방에 재료가 많아서요. 덕분에 한옥에 쓰인 재료와 같은 원목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아무렴. 그만한 곳이 없네.”

“좋은 곳을 추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 내 돈 벌자고 하는 일인데.”

김태현 교수는 오래도록 호텔에서 일하며 여러 바를 런칭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다.

그런 경험만큼 많은 거래처 역시 가지고 있는 게 바로 그.

그는 정환에게 여러 업체를 소개해주며 개업을 돕고 있다. 세세한 업체는 아르센에서 물려받았지만, 새로운 것들은 여러 사람에게 도움을 받고 있다.

“한 잔 더 하지.”

“좋습니다.”

“주문은 어떻게 하겠나?”

“주문을 물으셔도….”

“하하. 그렇지. 이런. 어차피 진토닉이지.”

새로운 주문을 묻는 김태현 교수의 말에 정환이 당황한다. 어느 바에 왔길래 진토닉밖에 마실 수 없는 걸까.

답은 간단했다. 바텐더가 앞에 앉은 손님의 직업을 아는 곳. 또, 그런 바텐더와 사이에서 서로의 편의를 봐줘야 하는 곳.

여기가 바로 그런 곳이기 때문이다.

“얼굴에 철판을 깔고 복잡한 걸 주문해보지 그러나?”

김태현 교수는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정환을 보채본다. 그때, 들려오는 다른 목소리.

“참아주세요. 바쁘다구요.”

조금은 투정이 섞인 익숙한 바텐더의 목소리.

“정우 형.”

아르센의 매니저였던, 신정우 바텐더였다.

“바빠 보이시네요.”

“응. 무지 바빠. 죽어. 그러니까 진토닉만 마셔. 아니, 안 마시면 더 좋고.”

“허허. 바텐더가 그러면 쓰나.”

“그래도 됩니다. 바텐더랑 바텐더 출신인 손님한테는요. 그리고 저를 여기 밀어 넣으신 분도 김 교수님 아니세요?”

“밀어 넣었다는 표현은 좀….”

“이렇게 바쁜 줄 몰랐다구요! 매일매일 회의에 또 서류에 손님에! 거기에 홀은 얼마나 큰지! 속았습니다! 속았어요!”

여기는 그레인 호텔의 바. 얼마 전부터 정우가 새롭게 자리를 잡은 직장이다.

정우는 아르센과는 다른 형식의 정장을 갖추고는 이곳의 치프 바텐더로 일하고 있다.

아르센이라는 작은 매장을 벗어나 이렇게 큰 매장을 관리하는 새로운 일이 익숙하지 않아 보이는 그였다.

“경험이라고 생각하게. 마스터께서도 그래서 자네를 여기 보낸 게 아닌가. 나중에 바를 운영하려면 다 익혀둬야 하는 것들이네.”

“네네. 그래야죠. 그래야 ‘아르센2’를 운영하죠.”

“그 촌스러운 이름은….”

정우는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둘 앞에 새로운 진토닉을 가져다준다.

촌스러운 이름에 고개를 절레 저으며 잔을 받아드는 김태현 교수와 정환.

헌데, 이들 앞에 놓이는 진토닉이 조금 특이하다. 진토닉이란 원래 진에 토닉 워터를 섞어 서빙되는 칵테일.

그런데 지금 이들 앞에 놓이는 건 그냥 스트레이트로 나온 진과 얼음이 든 잔, 레몬 껍질, 그리고 멀쩡한 토닉 워터 캔이 전부였다.

아직 완성되지 않은 진토닉이 그대로 나온 것이다.

“이것 봐요. 진토닉도 이상하고. 익숙해 지지가 않는다니까요.”

“호텔의 방식이네. 자네도 익숙해져야지.”

김태현 교수는 이를 보고는 호텔의 방식이라 부른다.

호텔은 하나의 기업체다. 즉, 호텔은 제아무리 사소한 진토닉이라고 해도 정해진 매뉴얼이라는 게 있는 곳이란 뜻.

이곳 그레인 호텔의 진토닉 매뉴얼은 손님에게 진토닉을 전적으로 맡긴다는 것이 었다.

“여러 손님이 오는 호텔이니까 어쩔 수 없죠. 특히나 진토닉은 취향을 많이 타는 칵테일이니 국제적인 호텔에서는 이게 최선일 거예요. 투숙객 중에는 여기 바의 성격을 모르고 오는 사람도 있을 테니까요.”

“너도 참 징하다. 그런 걸 어떻게 다 아는 거냐?”

“책에서 봤어요.”

“그래, 어련하겠냐.”

정우는 어깨만 들썩이고는 바 안으로 돌아가 여러 바텐더를 호령한다.

익숙해지지 않았다고 힘든 소리를 하는 그였지만, 실력 있는 바텐더답게 어느새 바 안을 주름잡고 있는 그였다.

“새로운 경험은 늘 중요한 법이지.”

김태현 교수는 자신의 취향에 맞게 탄 진토닉을 들이켜며 그런 정우의 모습을 바라본다.

그리고 정환에게 닿는 그의 시선.

“그럼, 해둬야 할 중요한 일들은 대충 끝난 거로군?”

“네. 이제는 공사만 끝나면 바로 개업도 가능합니다.”

“그래, 그렇단 말이지.”

그는 옆에서 조심스레 진토닉을 만드는 정환을 보며 의미심장한 표정을 짓는다.

“그럼, 자네도 한층 여유로울 테고.”

“…아뇨, 딱히 그런 건…”

“거짓말은 좋지 않네. 투자자한테.”

“…왜 그러시죠?”

“말했지 않나. 경험이 중요하다고.”

“그렇…죠. 경험.”

“자네는 그런 경험이 부족하고.”

아닌데요. 충분한데요. 정환은 그런 말이 목 끝까지 차올랐으나 차마 뱉지 못했다.

이미 호텔과 로드 바를 12년에 걸쳐 충분히 경험한 그에게 경험이 부족할 리는 없으니까.

다만, 오늘도 이를 설명할 수는 없는 정환이다.

“낮에는 개업을 준비하고 밤에는 여유로울 테니, 이제는 시간을 좀 내보게나.”

“시간요?”

“부족한 경험. 그걸 단기간에 우리가 채워주기로 했네. 마스터와 내가.”

점점 불안한 기운이 정환을 덮쳐온다. 김태현 교수는 무슨 말을 하려는 걸까.

정환이 한창 불안해하고 있을 때.

“몸도 슬슬 근질근질하지 않나? 바텐더라면 응당 바 안에 있어야지.”

“네?”

“다음 주부터는 출근을 준비하게. 앞으로 개업까지 남은 기간, 자네를 여러 바에 보내 용병으로 쓰기로 했네.”

!

“요, 용병이요…?”

“흠. 자네 같은 인력을 그냥 둘 수야 있나. 공사야 자네는 둘러보기만 하면 되는 거고. 겸사겸사해서 부족한 경험은 우리가 단기간에 채워주겠네.”

“어…, 저…, 그게…?”

힘들지 않을까요. 밤낮으로 일하면. 정환은 그런 변명을 해보려고 했다.

하지만.

“투자한 곳의 바텐더를 키우는 것도 우리의 일이네. 잊지 말게. 또, 마스터의 뜻이기도 하네. 개업 전까지 자네를 최대한 굴리…아니, 키우겠다는, 응? 스승의 뜻이란 말일세.”

호르륵.

가볍게 잔을 들이켜며 야릇한 미소를 짓는 김태현 교수에게 정환은 아무런 항변을 할 수 없었다.

그의 말이, 그리 틀린 말도 아니지 않나. 투자자라면 요구할 수도 있는 일이고.

바 밖에서 바텐더가 아닌 정환은 김태현 교수 앞에서 무력할 뿐이다.

‘이거 생각보다 강행군이…’

“마스터께서 자네가 일할 바들을 알아보고 있으시네. 기대하시게! 동철이도 아주 기대하고 있네. 자네 칵테일을 못 마신 게 벌써 한 달이 넘지 않았나. 아, 절대 그래서 자네를 다른 곳에 보내는 걸 동의한 건 아니고! 하하하!”

조금은 사심이 가득 담긴 김태현 교수의 말을 마지막으로 정환의 고개가 내려갔다.

개업까지, 순탄하지만은 않을 거 같은 정환의 앞날이다.

진토닉이 이상하리만치 독한, 그런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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