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술은 특별합니다-65화 (65/175)

65잔. 개업 준비.

1.

“수속은 다 되셨어요. 남은 등록금 반환받을 계좌만 여기 적어주시면 끝이에요.”

“네. 감사합니다.”

평일의 이른 오후 무렵.

정환이 적을 둔 건성 대학교의 학사 행정실은 오가는 많은 학생으로 붐비는 분위기다.

학생들에게야 방학이 있다지만 대학의 교직원에게는 그런 게 어디 있겠나.

방학에도 학교의 모든 절차는 그대로 흘러가며 학기 중과 같은 모습이다.

서류를 받으러 오는 학생, 등록금을 묻는 학생, 여러 학위 과정을 묻는 학생.

그리고 자퇴를 위해 찾은 학생까지.

방금 젊은 여직원이 수속을 도와준 학생은 자퇴를 확인하는 서류를 들고는 행정실을 나섰다.

‘후. 이렇게 안녕이네.’

부모님을 생각해서 최대한 학교에 적을 둔 상태로 있으려 했다.

허나, 이제부터 자신이 가야 할 길은 되돌아오기에는 너무도 먼 길.

학교에 적을 둔다는 것이 어쩌면 미련으로 남을 수도 있다.

정환은 그런 생각에 우선 학교에 둔 적부터 말소시켰다.

부모님께는 당연히 먼저 말씀을 드렸다. 조금 놀랐던 건 다시 한번 생각해보라는 어머니와는 달리 아버지께서.

하려면 제대로 해야지. 해보거라. 자퇴도 하고. 개업도 하고.

이번에는 정환의 편을 들어줬다는 것이다. 눈을 찡긋하며 베스퍼를 마시러 가겠다는 아버지의 모습이 낯설었던 정환이다.

개업에 대해서도 아버지는 별말이 없으셨다. 아마, 마스터가 따로 전화를 드려둔 거라.

정환은 그런 생각에 일이 수월하게 흘러감을 느꼈다.

서류를 품에 안고는 정환이 수업을 듣던 강의동을 지나 옆에 있는 빨간 벽돌의 건물에 닿는다.

교수들의 연구실이 있는 연구동 건물.

정환은 그곳에서 회귀한 후 얼마 되지 않아 찾았던 한 연구실을 문을 두드렸다.

똑똑.

“들어오게.”

“안녕하세요, 교수님.”

“아. 왔군.”

“정환 씨. 오셨군요.”

정환의 단골이자, 이전 생에는 오랜 후원자였던 지동철 교수의 연구실.

그 연구실 안에서는 세 개의 목소리가 정환을 반겼다.

“마스터. 김태현 교수님. 다들 와 계셨군요.”

“오늘 보기로 했으니까요.”

“이제야, 다 모였군. 하하. 새로운, 응? 정환 군 가게의 주역들이 말일세.”

김태현 교수의 너스레처럼, 이들은 정환이 열게 될 새로운 가게의 투자자들이다.

“앉지.”

지동철 교수는 기다란 책상 끄트머리에 정환을 앉히고는 커피를 한 잔 가져다준다.

늘 주는 잔을 받기만 하던 그가 정환에게 잔을 건네는 아이러니한 풍경이다.

“자네를 낮에 보니 어색하군.”

“사실 학교에서 더 자주 뵈어야 하긴 했죠.”

“이것도 마지막이고.”

“네. 방금 자퇴 신청하고 오는 길입니다.”

정환은 방금 받은 서류를 펄럭이며 밝게 웃어 보였다. 투자자들에게 학교를 그만둔 것쯤은 아무 일이 아님을 어필해보는 그였다.

“자자. 이제 시작합시다.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해봐야지요.”

김태현 교수는 성격답게 앉은 자리에서 이야기를 주도한다. 오늘은 정환이 열게 될 가게에 대해 투자자와 간담회를 가지는 날.

편하게 진행되는 차담이지만, 형식은 그러했다.

“이제 개업 준비를 시작해야지? 계획은 있고?”

“네. 언제가 될지는 몰라도 제 가게를 가진다면 어떻게 준비하겠다는 계획은 늘 세워둔 상태였습니다. 이걸 봐 주시죠.”

투자를 결정하고도 아직 본격적인 이야기를 나눈 적은 없다.

정환이 만들려는 곳이 어떤 곳인지도 모르고 그저 사람만 보고 투자를 결정한 세 사람.

그런 투자자들에게 정환은 자신이 작성한 사업 계획서를 보여줬다.

“아르센보다는 가벼운 분위기로 갈 거 같습니다. 나중은 몰라도 우선은 혼자 꾸려갈 정도면 그게 맞을 거 같아서요. 캐주얼 오센틱. 그 정도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투자자들은 제법 진중한 자세로 정환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최종적인 선택권이야 정환에게 있더라도 아닌 건 아니라 쳐내 줄 준비가 된 이들.

정환을 전적으로 믿지만, 이들 역시 투자금이 쓰일 곳에 대해 알 권리는 있었다.

“사람을 처음부터 들이는 건 어렵긴 하지. 그것도 나쁘지 않네.”

“음. 자네 경력도 있으니 쉽게 밑으로 오려는 사람도 적을 테지. 힘들어도 한동안은 혼자 버텨야 할 걸세.”

“규모는 작게 시작하는 게 좋겠군요. 홀 테이블을 최대한 줄이는 방향으로 구상해야겠습니다.”

저마다 보태는 말이 끝나자, 정환의 설명이 계속 이어졌다. 조금은 가벼운 느낌일 거란 말과 칵테일은 그래도 클래식 위주로 시작할 거란 말.

그리고 거래처는 아르센에서 거래를 이어오던 곳들을 물려받을 거란 말이 연속해서 나왔다.

예전부터 준비해두었다는 그의 말이 허언은 아닌 것으로 보였다.

“…해서, 그렇게 하고 또 자제들은 …에서 …하고…하면 원가 절감이 될 거 같아서요. 그렇게 진행할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예상 견적은…”

인테리어부터 가게의 콘셉트와 메뉴, 그리고 견적과 업체까지 술술 나오는 그의 입을 보며 투자자들은 이게 정말 1년 차에 처음 개업을 준비하는 이가 맞는지 자신들의 귀를 의심하고 있다.

물론, 정환은 이미 한 번 개업을 준비해본 적이 있기에 이리 술술 나오는 거지만 말이다.

“…자네, 혹시 개업해 본 적 있는 건가?”

“그러게 말일세. 허허. 잔뜩 조언이나 해주려 했더니, 오히려 로드바 쪽은 나보다 구체적으로 잘 알고 있군.”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계획서입니다. 세세한 부분도 신경을 많이 썼군요.”

개업은 이대로 진행해도 문제없어 보였다. 정환은 거침없이 계획서를 읽어가며 마지막에 닿는다.

“마지막으로 가게를 열 위치입니다. 아마, 청담동도 한남동도 아닐 거 같습니다.”

“아예, 강남이 아니란 말이군.”

“네. 현재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유가 따로 있나?”

“제가 만들고 싶은 바는 ‘누구나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입니다. 강남은…늘 오던 분들이 편히 쉴 수 있는 곳이라 생각해서요.”

“허들이 높다?”

“‘강남’이라는 이름에서 주는 위화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강남의 바’라고 했을 때 떠오르는 이미지. 그 이미지를 탈피한 바를 만들었으면 합니다.”

“음. 괜찮겠나? 대신, 상권에서 벗어난다는 뜻이 되기도 하네만.”

“모든 바가 강남에만 있는 건 아니니까요. 그리고 상권은…, 차차 형성될 수도 있는 거구요.”

씨익.

정환은 마지막 말을 남기며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그런 그의 말을 곱씹어보는 투자자들.

이내, 그들의 얼굴에 무언가 스치기 시작한다.

“자네, 설마?”

“호오. 그런 의미였나요.”

“허. 방금 내가 제대로 들은 건가?”

이들은 정환이 앞서 한 말 중 ‘차차’란 말에 방점을 두고는 말을 새로이 해석했다.

그런 해석을 거치면 나오는 뜻은.

결국, 자기가 상권을 만들겠다는 뜻이 아닌가.

“청담동도 한남동도 아닌 새로운 상권을 만들고 싶습니다. 오래전부터 제가 꿈꾸던 건 그거였습니다.”

“단순히 바를 운영하는 게 아니었다는 말이군?”

“제일 중요한 건 제가 운영하는 바가 잘되야 한다는 거겠죠. 그래야 다른 가게들도 생길 테고요.”

“그야 그렇지만….”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지동철 교수는 그런 말을 하려다가 얼른 삼켜 버렸다.

기운 좋게 새로운 사업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초를 치긴 그렇지 않나.

만약 실제로 도전한다고 해도 정환은 자신의 바부터 건사해야 할 테니 한참 뒤의 일이기도 하고.

“좋은 생각이군요. 허허. 젊어서 그런가요? 패기도 넘치구요. 정환 씨. 응원하겠습니다. 여러 곳을 돌며 호핑 투어를 할 수 있는 거리라면 좋겠군요.”

“그때는 정우 형도 기준 형도 같은 골목에서 바를 운영할 수 있었으면 해서요. 아니면 같이 ‘아르센2’를 만들어도 좋겠죠.”

“이름만 ‘아르센2’가 아니라면 찬성입니다. 작명 센스가 별로여서요, 정우 씨는.”

“그건 저도 동의합니다.”

바텐더들은 이렇다. 지동철은 잔뜩 추상적인 이야기를 풀어내며 밝게 웃는 두 사제를 보며 혀를 찼다.

현실적으로 하나의 상권을 새로이 형성한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그래도 성공만 한다면…’

이는 대한민국 바씬에 제법 큰 사건이라. 그런 생각에 자신도 슬쩍 입맛을 다셔보는 지동철이다.

어쩌면, 그저 술이나 편하게 마시려 발을 담근 투자가 제법 족적이 큰 투자로 변할 수도 있겠다는 그런 생각이 그의 머리를 스쳤다.

“뭐, 당장에 크게 자네 가게에 미치는 영향만 없다면 나도 상관없네. 여기 계신 두 분이랑은 달리, 난 투자금 회수에도 관심이 있어서 말이네. 알지 않나, 두 사람에 비하면 난 가난한 축이라서.”

오랜 호텔 경력으로 여러 프로젝트 바를 기획했던 김태현 교수 역시 별다른 말 없이 이를 넘어갔다.

꿈이라고는 하지만 한참 뒤의 일이고, 또 우선은 정환이 지금 여는 가게가 일정 궤도에 올라야 가능한 일이기에 투자자로서는 딱히 반대할 정도의 야망은 아니었다.

“물론입니다. 우선은 제가 운영할 가게를 일정 궤도에 올려야죠. 차후 그를 통해 상권을 만들어 가는 것. 장기적인 계획일 뿐입니다.”

정환은 이전 생에서부터 자신이 꿈꾸던 꿈을 차분히 투자자들에게 설명했다.

하나의 가게에서 하나의 상권으로 나아가 결국에는 바의 거리를 만들겠다는 것.

낯간지러운 낭만이 묻은 꿈이지만, 딱히 꾸지 못할 꿈도 아니었다.

“좋네. 일단은 가게에 집중하는 거로 하세. 당장 이것저것 포함하면 준비 기간은 얼마나 걸리겠나?”

“짧게는 석 달, 길게는 여섯 달 정도를 보고 있습니다.”

“마스터, 보통 그 정도는 걸리는 겁니까?”

“오히려 빠른 편일 겁니다. 정환 씨가 준비가 잘 되어 있어서요.”

“그렇습니까? 뭐, 계획서를 보니 대부분 일은 맡기고 저희는 돈만 주면 될 거 같아는 보입니다.”

“뭐, 그게 마음 편하지. 어련히 알아서 안 하겠나. 저런 꿈을 꾸는 사람이면.”

이렇게 가볍게 투자하는 이들도 많지는 않을 거라. 아니, 어쩌면 거의 없을 거라.

정환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이들을 보며 고개를 절레 저었다.

이들은 어느새 계획서를 접어두고는 잡담하기 바쁘다.

“이제 정환 씨가 해야 할 일은 정해졌군요. 우선 첫 가게를 연다. 그리고 이를 성공시킨다.”

“다음으로는 주변에 새로운 바를 입점시킨다. 그것도 실력 좋고 마인드 좋은 바텐더들로.”

“그리고 이를 유명해지게 만든다.”

투자자들의 머리에는, 정환이 말한 새로운 상권이라는 게 제법 깊게 남은 모양이다.

“완성만 되면 걸작이겠군.”

“벌써 기대가 되는군요.”

“흥. 좋게만 만들어 보게. 매일 찾아가 돈이란 돈은 펑펑 뿌려줄 테니.”

마지막으로 그려보는 완성된 정환의 거리. 이들은 그 모습을 한 번 떠올려 보고는 기분 좋게 미소를 짓는다.

허황한 꿈일 수도 있다. 허나, 모든 성공은 그런 허황한 꿈에서 나오는 법.

당장 개업할 가게에 영향을 주지만 않는다면, 이를 응원하지 않을 이유가 어디 있겠나.

이들은 그런 생각에 기분 좋게 앞에 놓인 술…, 아니. 커피잔을 들었다.

그리고.

“참. 급한 일이 정리되면 연락해 주세요, 정환 씨. 개업 전에 남는 시간을 활용할 방법이 있더군요. 김태현 교수님과 제가 준비 중인 게 있습니다.”

“아, 그거 말씀이시죠? 제가 잘 알아보고 있습니다, 마스터. 제대로 굴려야죠.”

“그건 또 무슨 말인가?”

“걱정하지 마시게. 동철이, 자네에게도 나쁜 일은 아닐 테니.”

“저는 불안…한데요? 왜 그러시죠?”

“쓰읍. 자네는 몰라도 되네. 그런 게 있네. 대신 기억하게. 바에 들어가기 전, 한동안은 우리가 ‘갑’이라는 걸.”

“호오. 그거 듣던 중 반가운 소리군. 이제야 ‘을’을 탈출하는 건가? 기대되는군.”

“…….”

투자자들의 조금 의미심장한 작당 모의를 끝으로, 이들의 차담이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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