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술은 특별합니다-57화 (57/175)

57잔. 이유.

3.

삐-. 삐-. 삐이-.

푸우우우.

기계음이 짜증스럽게 울리며 거친 숨소리가 토해진다. 소리의 중심에는 적당한 크기의 침대가 하나 놓여있고 그 위에는 무언가를 덕지덕지 붙인 사람의 신형이 눕혀져 있다.

아르센의 마스터, 이명진이다.

“마스터….”

두꺼운 창밖에서 이를 지켜보는 한 사내가 아련한 목소리로 그를 불러본다.

아들처럼 아끼던 제자, 아르센의 매니저 신정우였다.

“정우 군…. 좀 앉아요.”

“괜찮아요, 사모님. 앉아 계세요.”

그는 뒤에서 자신을 애처롭게 바라보는 명진의 처, 권현선을 보며 비슷한 눈빛을 보내본다.

서로를 바라보는 두 사람의 눈이 붉게 물들어 있다. 둘의 모습 역시, 모자 관계를 떠올리게 하는 풍경이다.

“수술도 잘 끝났고…, 경과도 좋다고 하니 곧 깨어날 거예요. 다들 이런 표정으로 기다리면, 저이가 슬퍼할 겁니다.”

가장 힘들 사람이 자신임에도, 명진의 아내는 남편의 제자들을 먼저 다독여본다.

부부는 닮는다던데. 명진의 인자함이 그녀에게도 서려 있다.

“정환 군 덕분이에요. 정환 군이 제때 발견하지 못했다면…”

지금 자신들이 바라보고 있는 건 관이었을 거다. 현선은 그런 상상에 눈을 질끔 감고 말았다.

정우가 뒤를 돌아본다. 중환자실 앞에 놓인 기다란 의자에 앉아 고개를 숙이고 있는 한 사람.

명진을 발견해 병원까지 데려온 자신의 후배, 차정환이다.

“정환아.”

“네…. 형.”

“고맙다.”

덤덤히 전해보는 진심.

정우는 어떤 말보다도 진심을 담아 정환에게 이를 전한다.

몇 시간 전.

연습을 위해 이른 시간 아르센을 찾았던 정환은 열려 있는 아르센의 문을 마주했다.

도둑이나 사건일 거란 의심도 잠시.

이내 안에서 들려오는 불길한 소리에 몸을 던졌던 정환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광경을 목격하고 말았다.

정환이 목격한 건, 아르센의 마스터, 이명진이 바 안에 쓰러져 있는 모습이었다.

깨어진 술병은 조각이 되어 그의 위를 덮고 있었고 그는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가슴을 부여잡고 있었다.

깨진 병에 찢어진 피부에서 흐르는 핏물은 덤.

정환은 그대로 바 테이블을 뛰어넘어 명진에게 달려갔다. 한 손으로는 구급차를 부르고 다른 손으로는 그들의 지시에 따라 응급처치를 하길 수 분.

다행히 제시간에 도착한 구급차 덕에 명진은 빠르게 병원으로 이송될 수 있었다.

위험했습니다. 제시간에 발견되지 않았다면…. 제 불찰입니다. 어떻게든 입원하시도록 해야 했던 건데…. 죄송합니다.

명진의 주치의인 윤형화가 전한 말은 짧고 강렬했다. 정환이 조금만 늦게 그를 발견했다면 최악의 사태를 맞을 수도 있었다는 말.

명진의 아내인 현선은 그쯤에서 잠시 정신을 잃었던 것도 같다.

“수술이 잘 끝났는데…, 왜 깨어나시질 않는 거죠?”

정우는 병상에 쓰러져 있는 스승을 보며 현선에게 말을 묻는다.

그의 표정이 묵직해, 전에 본 적 없는 얼굴이다. 늘 그의 얼굴을 채우던 가벼움은 간데없다.

“심혈관 문제로 쓰러진 사람이 살아난 것만 해도 기적이라더군요…. 몸도 약해질 만큼 약해져 있었고…. 그래도 경과나 징후가 좋다고 하니, 기다려봐요, 우리. 깨어날 겁니다. 저 사람은 꼭….”

현선은 마치 자신에게 이야기하듯 바람을 전해본다. 근거는 없는 믿음이다.

다만, 꼭 그리되리라. 그녀는 간절히 바라고 있을 뿐이다.

“기준아.”

정우가 시선은 명진에게 둔 채 바닥에 앉은 사람을 부른다. 벽에 기대어 몸을 그대로 바닥에 내팽개친, 아르센의 바텐더 한기준이 고개를 돌렸다.

그의 눈가가 붉게 물들어 퉁퉁 부어 있다.

“네. 형….”

“마스터는 뭘 하셨던 걸까? 왜…, 그런 몸으로까지 아르센에 가셔서….”

“…….”

기준은 바닥에 앉은 채 아무런 답을 하지 못한다. 명진이 아닌 이상, 누가 여기에 답을 할 수 있겠나.

하지만.

“교수님은 아시는 거죠?”

정우는 고개를 돌려 다른 이에게 이를 물어본다. 답을 알 거 같은, 의외의 인물이 그곳에 자리하고 있다.

“…정우 군.”

정우의 고개가 향한 곳에는 의외의 인물이 의외의 복장을 하고 서 있다.

정갈한 정장이 잘 어울리는 김태현 교수가 한껏 흐트러진 정장 차림으로 정우를 애처롭게 바라보고 있다.

풀어헤친 넥타이에 삐져나온 와이셔츠, 그리고 주름이 가득한 정장 바지가, 호텔맨 출신인 그와는 퍽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다.

김태현 교수가 왜 여기 있는 걸까. 또, 저 차림은 무엇이고.

답은 간단했다.

그 역시, 명진의 소식을 듣고는 바로 달려왔기 때문이다.

정환은 구급차를 타고 명진을 옮기며 두 통의 전화를 받았다. 명진의 휴대폰을 울렸던 두 번의 전화.

한 번은 그의 처였던 최현선이었고, 다른 한 번은 그레인 호텔 출신의 김태현 교수였다.

“마스터와 아르센에서 만나기로 하셨다고 하셨죠? 무슨 일이셨죠?”

“의논하던 일이 있었네. 만나서 이야기하자 하셨기에 가는 길이었고….”

“의논이요?”

“…그건 지금 전할 말은 아닌 것 같네. 나중에 따로 이야기하세.”

“그럼…, 단지 교수님을 만나기 위해 아르센에 가신 건가요?”

“그건 나도 모르겠네. 처음 전화를 받았을 때는 아르센에 있다는 말밖에 듣지 못했어. 그저 자네들이 오기 전에 잠시 보자는 말만 들었지, 자세한 내막은….”

단골과 바텐더가 사적으로 만나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다. 단골도 특히나 김태현 교수처럼 오래된 단골이면 한 식구처럼 느껴지는 곳이 바라는 곳.

개인적인 의논일 수도, 그저 친분을 위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다만, 요양 중인 명진이 그것도 수술을 선고받은 날 찾은 이가 김태현이었다는 게 조금은 남달라 보였다.

“후우.”

정우가 깊게 숨을 내뱉는다. 손 모양을 따라 김이 서리는 유리창.

유리창 너머에는 여전히 인자한 표정으로 잠든 명진이 침상에 누워있다.

정우는 그 모습이 보기 싫어, 뒤로 고개를 돌려본다.

의자에 앉은 현선과 정환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정환은 손등에 이마를 대고는 그대로 얼굴을 묻고 있다.

그의 손바닥에는 명진의 것으로 보이는 피가 흥건했다.

“손이라도 좀 씻고 와. 세수도 하고.”

“괜찮아요. 조금만 더 여기 있다가…”

“다녀와. 여기 있다고 마스터 일어나시는 것도 아니고. 가서 바람 좀 쐬고 와.”

“…네. 형.”

오히려 저렇게 기계를 달고 침상에 누워있는 모습은 충격이 덜한 거다.

정우는 그렇게 생각하며 후배 정환을 안쓰럽게 바라봤다.

정환이 처음으로 마주했을 장면은 이보다 더 처참한 명진의 모습이었을 게 불 보듯 뻔한 일.

‘녀석….’

힘들 거다.

모르는 사람의 그런 모습을 봐도 힘든 게 사람이라는 존재가 아닌가.

정우는 오히려 그런 힘든 상황에서도 이런 대처를 보여준 정환이 대견해 보인다.

만약, 자신이 명진의 그런 모습을 처음 발견했다면, 정환처럼 빠르게 대처했을 자신은 없는 정우였다.

정환은 몸을 일으켜 화장실로 향했다.

솨아아아아.

세면대의 물을 틀어두고는 자신의 손을 살피는 정환.

이제야 따끔거리는 게, 명진 위를 덮은 술병을 치우다 자신의 손도 다친 모양이다.

흐르는 물에 핏기를 씻어내고 정환이 안면을 적신다. 찬물에 번쩍까지는 아니어도 돌아오는 약간의 정신.

그는 이제야 정신이 들며 슬픔이라는 게 조금 몰려오는 중이다.

‘마스터…’

다시 만날 때는 건강해져서, 또 좋은 소식으로 만날 거라 믿었다.

그게 얼마나 철없는 믿음이었는지 이제야 깨닫는 정환.

정환은 세숫물에 섞어 다른 물을 슬쩍 흘려본다. 정우와 기준의 뺨을 타고 흐르던 물이 세면대에 닿았다.

아직도 생생하다. 자신이 아르센 안으로 뛰어들어 마주했던 명진의 그 모습이.

깨진 술병 사이로 고통에 몸부림치던 스승의 모습은, 쉽게 잊혀질 그런 장면은 아니었다.

짝! 짝! 짝!

정환이 세차게 자신의 뺨을 친다. 떠오르는 장면도 잊고 정신도 차리려는 그의 의도.

이런 일이 있었다고 해서 축 처져 있을 수만은 없는 일이 아닌가.

정우 씨와 기준 씨. 도와주세요. 제가 없을 때는 더더욱.

정환은 마지막으로 봤던 스승의 모습을 지우고 다른 모습을 떠올려 본다.

손님과 바텐더로서 마주했던 다른 마지막 순간을.

그리고 스치는 명진이 남겼던 말.

명진은 막내인 정환에게 정우과 기준을 도와달란 말을 전했었다.

그저 열심히 보조하란 말일 수도 있다. 정환의 경력과 다른 이들의 경력만 봤을 때는 그게 맞는 해석일 수도 있고.

허나, 말은 받아들이는 이에 따라 뜻이 달라지는 법.

정환은 저 말을, 그렇게 단순하게 받아들이고 있지는 않았다.

‘마스터가 없을 때는 내가 책임을 져야 해. 정신 차리자, 차정환! 진짜 막내처럼 굴면 안 돼!’

기준은 이제야 2년 차 바텐더고 정우도 7, 8년 정도의 경력밖에 되지 않는다. 거기에 정우 역시 아르센에서의 경험이 전부인 상황.

명진이 없는 이 시점에서, 저들을 이끌고 또 도우며 버틸 수 있는 이는, 12년 경력의 자신밖에 없을 것이다.

어쩌면, 명진은 이런 상황까지 예상한 건 아닐까. 정환은 그런 말도 안 되는 상상까지 하며 자신을 채찍질한다.

머리를 차게 식힌 정환이 화장실을 빠져나왔다.

두꺼운 유리창 앞에서 머리를 맞대고 있는 정우와 기준, 그리고 명진의 아내 현선.

정우는 심각한 표정으로 팔짱을 끼고 있고 현선은 덤덤한 척하지만 조금은 불안해 보이는 표정, 기준은 넋이 나간 얼굴로 이들의 대화가 이어지고 있다.

김태현 교수만이 조금 떨어져 벽에 기대어 있다.

정환이 이들에게 다가섰다. 그리고 들려오는 이야기들.

“우선, 오늘은 무리…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정우 군이 알아서 처리해줘요. 그이라면…. 그렇게 맡겼을 거예요.”

“…뒷일까지는 저도 사실 모르겠어요, 사모님. 일단 오늘만은 안 된다…. 그거까지만. 거기까지만 해두려구요.”

“그렇게 해요. 부담가지지 말고.”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걸까.

예상가는 이야기는 있다.

아르센.

아르센에 관한 이야기일 거라는 예상.

정우는 그런 정환의 예상이 옳다는 듯, 얼른 오라는 손짓을 보내본다.

현선은 뒤로 물러나 자리에 앉아 명진만을 바라본다.

“너도 알겠지만…, 이런 상태에서 오늘은 영업 못 해. 알지?”

“네. 형.”

“마스터…였다면 또 열라고 하셨겠지만, 오늘은 안 돼. 이런 상태에서 문을 열면 그게 아르센이라고 볼 수도 없는 거고.”

“맞아요. 오늘은 저도 자신이 없어요.”

자신이 없다. 이건, 일을 잘 해낼 자신이 아니다. 그저 바텐더로 있을 자신이 없다는 그런 말이다.

바텐더는 바 밖에서의 감정을 안으로 가져가서는 안 된다.

오늘 이들이 그게 가능할까.

셋은 함께 고개를 절레 저었다.

“솔직히, 뒷일은 나도 모르겠다. 마스터 없이 우리가 해낼 수 있을지도 모르겠고…”

정우는 정환에게 조금은 나약한 소리까지 하며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는다.

이제까지 해왔던 것과는 다르다.

이제까지 자리를 비웠던 명진과, 지금의 명진이 다른 것처럼 말이다.

“형….”

그런 정우를 안타깝게 바라보는 정환.

아직 서른도 안 된 정우가 뭘 알겠나. 또, 뭘 할 수 있고.

정환은 그가 홀로 짊어지려는 무게가 어떤 무게인지, 모르지 않았다.

자신이 짊어지려 해도 이렇게 벅찬 것을, 정우는 오죽하겠나.

“모르겠다….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

정우는 그대로 머리를 감싸며 유리창에 기대선다. 마치, 명진에게 기대고 싶어 하는 그런 모습으로.

기준은 아무런 말이 없다. 아직, 기준에게는 정우처럼 이런 상황을 덤덤히 받아들일 경험치가 없기 때문이다.

때로는 덤덤함이 더한 슬픔이란 걸 알기에는, 기준은 너무도 어렸다.

명진의 아내 현선은 정우에게 모든 걸 맡기고는 자리만을 지킨다.

원래 바깥 일에 신경을 쓰는 이도 아니고 또 아르센은 명진이 없다면 정우에게 맡기는 게 옳다는 게 그녀의 생각이었다.

즉, 누구도.

아르센이 어떻게 해야 할지.

또 이들이 무얼 해야 할지는.

답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다.

정환은 한 발짝 물러나 이들을 살펴본다.

흔들리고 있다. 휘청거리고 있고. 명진이라는 커다란 기둥을 잃은 아르센의 상황은 그 말이 딱 맞는 지금.

이를 한 발치 뒤에서 지켜본 후에야 정환은 알 수 있었다.

이전 생에서 자신이 아르센을 몰랐던 이유도.

또, 이명진이라는 걸출한 바텐더를 몰랐던 이유도.

그 시작은 여기서부터였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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