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잔. 낮은 밤보다.
1.
“여보. 오늘 검사 결과 나오는 날 아니에요?”
아내의 걱정스러운 목소리를 뒤로 명진이 셔츠 단추를 채운다.
묵묵히 답하지 않는 그의 태도에 아내는 함께 가는 걸 포기한 모습으로 보인다.
늘 이런 식이다.
몸이 안 좋으면 그걸 홀로 가져가려는 사람.
그로 인해 생길 결과까지 홀로 감당하려는 사람.
그런 사람이 자신과 함께 사는 사람이다.
“…같이 가요. 웬만하면.”
“전화할게요.”
“참…. 그런 몸으로 어느 길이라고.”
“괜찮아요. 아직은.”
명진은 애써 자신을 잡는 아내를 뒤로 집을 나선다. 현관에는 사고 후 새로 구입한 차의 열쇠가 자신을 반긴다.
손을 뻗어 이를 잡으려던 그가 거울을 한 번 보더니 이내 멈추고는 문을 나섰다.
지금으로는 운전도 그리 자신 있게 할 수 있는 그는 아니었다.
2년 전쯤이었나. 몸에 이상이 생겼다는 걸 처음 알게 된 건 그쯤이었다.
계속해서 느껴지는 흉통에 찾았던 병원에서는 심혈관에 문제가 있다는 말을 들었다.
뭐, 이상한 결과는 아니다. 이 나이대의 남성 중 그런 질환 하나 정도 없는 사람이 어딨겠나.
다만, 문제는.
그 흉통과 증상이라는 게, 올해부터 더 심해졌다는 것.
하루의 절반을 서서 보내는 그의 몸이 멀쩡하길 바라는 게 욕심일지도 모른다.
몸이 망가지니 체력이 떨어졌다. 온종일을 일하고, 한잔 걸친 후 다시 일하던 젊은 시절은 이미 빛바랜 영광이 된 지 오래였다.
늙어간다는 건.
참으로 서글픈 일이 아닐 수 없다.
멋들어진 재킷 대신 펑퍼짐한 점퍼를 입고는 택시에 올랐다.
그리고 도착한 한 대학 병원.
강남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이 대학 병원은 언제나 사람으로 넘친다.
명진은 그런 인파를 뚫고 예약을 잡아둔 진료실로 향했다.
“이명진 님. 이명진 님 들어오실 게요.”
한참을 기다리자 간호사가 자신의 이름을 부른다. 홀린 듯 일어나 진료실로 향하는 명진.
그의 눈앞에는, 한 달 전 자신을 찾아왔던 안경 낀 사내가 무거운 얼굴을 하고 있다.
그의 앞에 놓인 명패는 윤형화라는 이름이 교수란 직책과 함께 각인되어있다.
“이번에는 오셨군요.”
“또 걸음 하게 하실 순 없죠. 바쁜 분이시잖습니까.”
“그때는 죄송했습니다. 하지만, 아시지 않습니까? 당장 재검사를 해야 하는 수준이었습니다.”
“이해합니다. 감사하게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참 올곧은 사내다. 바텐더를 했으면 어땠을까 싶을 정도로 욕심이 나는 사내.
그런 사내의 걱정스러운 표정이 계속해서 모니터를 훑는다.
명진은 눈을 감고, 덤덤히 결과를 기다린다.
“…더 안 좋아진 건 아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몸이 느끼실 테죠.”
“…….”
그리고 나오는 그리 기대하지 않았던 결과.
“혈관이 이전보다 더 상했습니다. 당장 수술이 필요할 정도입니다. 솔직하게 말씀드리죠. 지금 당장 입원하셔야 합니다.”
의사의 입에서 나오는 무거운 말에도, 명진은 각오한 듯 별다른 반응이 없다.
“얼마나…, 더 버틸 수 있는 겁니까?”
“수술 전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아니면 수술 후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수술 후라면 재활 후 충분히 오래 사실 수 있습니다.”
“제 말의 뜻을 아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2년이라는 세월이라면 짧게 본 건 아니다. 의사와 환자로서 나눈 이야기도 있었고.
주치의 윤형화는 슬쩍 안경을 올리고는 그의 물음에 답해준다.
“바텐더 말씀이군요. 말씀드렸지만…, 안 됩니다. 수술 전도, 수술 후도. 사후(事後)관리가 중요한 기관입니다. 심장은. 오래 서 있는 일은 더는 하실 수 없습니다.”
“역시 그런가요.”
“죄송한 말씀입니다만, 스스로도 몸이 버티질 못할 겁니다. 서 있다가 앉아야 하는 시간이 늘어날 거고 가끔은 숨도 쉬어지지 않겠죠. 그런 모습을…”
“바텐더가 보일 순 없죠.”
올렸던 안경을 슬쩍 내리며 시선을 피하는 형화. 그는 환자의 눈에 비치는 서글픔을 보지 않으려 할 때, 언제나 이런 식이다.
“오신 김에 입원하시고 바로 날을 잡으시죠. 다행히….”
의사는 잠시 모니터를 살피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제 앞으로 나온 병실이 있습니다. 수술은 다음 주. 네. 일정상 다음 주면 되겠네요. 그때 바로 진행하는 거로 하시죠.”
“…입원은 꼭 필요한 겁니까?”
“시한폭탄입니다. 언제 터질지 모르구요. 수술 전까지, 병원에서 쉬는 게 맞습니다. 혹여나 긴급한 사태에는 바로 수술에 들어갈 수도 있습니다.”
“…….”
가끔은 이런 갑작스러운 선언이 환자에게 부담이 되는 걸 모르지 않는다.
그럼에도 자신이 해야 할 일이기에 덤덤히 선고하는 그.
그런 의사의 선고에도 환자는.
“입원은 잠시 미뤘으면 합니다.”
좀처럼 뜻을 따라주지 않는다.
“선생님. 시한폭탄이라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수술은 받겠습니다. 다음 주 수술. 그대로 진행해주세요.”
“입원도 중요한 문제입니다.”
“당장 오늘은 그래도 무리가 있습니다.”
“…….”
뭘까, 이 덤덤하고 단호한 어조는.
마치 이렇게 될 걸 알고 있었다는 사람처럼 덤덤히 나오는 명진의 태도에 의사는 말을 잇지 못하고 그를 빤히 바라보기만 한다.
“무슨 생각이신 겁니까?”
“하루 이틀이면 됩니다. 주변 정리도 필요하니, 그 정도 시간만 주시죠. 마지막으로…. 네. 마지막으로 들려야 할 곳도 있고 해야 할 일도 있습니다.”
“수술 후에 하셔도…”
“그때는 늦습니다. 마지막 고집이라 생각해주시죠.”
언제나 마지막이라는 말은 의사의 발목을 잡는다. 수술이 그렇게 위험한 건 아니다.
부위야 충분히 위험하지만, 충분한 사례도 있고 임상 경험도 있으니까.
다만, 수술이 끝나고 나면.
그는 더는 바텐더가 아닌 몸이 됨을 형화는 알고 있었다.
늘 자신의 직업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었다. 언제나 병원을 올 때면 먼저 묻던 건 바텐더로 계속 일할 수 있는가의 여부.
그는 이제 얼마 남지 않은 바텐더로서의 자신을, 돌아보고 싶은 걸지도 모른다.
이미, 바텐더라 부를 수 없는 몸임에도 말이다.
“하루. 하루 이상은 안 됩니다. 이것도 도박입니다. 내일 오전까지 병원으로 오셔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전 다시 선생님을 찾으러 강남 바닥을 헤매고 있을 겁니다. 그게 살아계신 선생님이길 바라면서요.”
섬뜩한 의사의 경고를 마지막으로 명진이 고개를 숙인다.
“감사합니다.”
“모르겠습니다. 이게…, 인사를 받을 짓인지. 무리하지 마시고 꼭 누군가와 함께 계십시오. 제가 드릴 수 있는 말은 이게 전부입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명진은 마지막 인사를 남기고는 진료실을 떠났다. 고집이고 아집이며 억지다.
알고 있다.
명진은 그런 와중에도 자신이 젊었던 시절, 늘 만나던 이들을 떠올려 본다.
‘긴자 사나이.’
‘긴자의 사나이는 고집을 빼면 시체다.’ 언제고 손님에게 들었던 어색한 그 일본어가, 이제는 제법 잘 어울리게 된 자신일지도 모른다.
그들과 늘 마주 보던 명진은, 오늘은 그렇게 살아보고자 한다.
병원을 나선 명진이 길을 걷는다. 그리 멀지 않은 길이기에 걷기를 택해보는 그.
아직은 선선한 날씨에 그리 쨍하지 않은 햇볕이 그를 반긴다.
이런, 재킷을 입을걸.
조금은 펑퍼짐한 점퍼가 마음에 들지 않는 그.
그럼에도 어깨만은 당당히 펴고 걸음을 바르게 해본다. 제아무리 술에 취해도 바에서 나설 때만은 똑바로 걷던, 긴자의 사나이들처럼.
그렇게 얼마의 시간을 걸었을까. 명진은 익숙한 골목이 나오자 이내 얼굴에 밝은 미소를 짓는다.
강남의 바가 즐비한 청담동 거리가 그의 눈에 들어왔다.
어색하다.
아무렴.
그가 활동하는 시간은 이 시간이 아니지 않나. 그래도 이 거리는, 그에게 언제나 안정감을 준다.
띠리리링.
휴대폰이 울린다. 화면에 아내의 이름이 뜨자 명진은 얼른 휴대폰을 들었다.
조금은 무거운 이야기가 오갔다. 건물 외벽에 붙어 인자하게 웃어 보이는 그지만, 내용은 그렇지 못한 상황.
덤덤히 괜찮음을 전하고 자신의 위치를 알린다. 그리고 내일의 준비를 부탁한 명진은 애써 진정시킨 마음으로 전화기를 내렸다.
아내의 우는 소리가 더는 듣기 힘들었다.
그리고.
천천히 다가서는 한 건물의 1층.
‘Bar Arsene.’
작은 나무 간판에 각인된 글자가 서글프게 눈에 잡혔다. 명진이 처음부터 향했던 곳은, 다름 아닌 아르센이었다.
외부와 바를 나누는 육중한 문이 명진을 반겼다. 이제 이 문 너머는 완전히 다른 공간.
바라는 곳은 이렇게 육중한 문을 통해 현실과 그 안의 공간을 단절시켜 준다.
수술 전, 자신이 꼭 해야 할 일을 하기에는 안성맞춤인 곳이다.
육중한 문 위로 손을 얹어두고 한참을 바라보던 명진.
그는 잠시 숨을 고르더니, 아르센으로 들어섰다.
2.
띠리리리리링.
띠리리리리링.
“으아아아암.”
시끄럽게 울리는 알람 소리에 정환이 기지개를 켜며 잠을 깼다.
시간은 오후 1시 무렵.
밝은 햇살이 창으로 들이치는, 바텐더에게는 조금 이른 시간이다.
자연스레 일어나 집을 나설 준비를 마친다. 이런 시간에 움직이기 시작한 것도 이제는 익숙한 정환.
벌써 한 달여를 이렇게 보낸 정환은 이제는 딱히 피곤함조차 느껴지지 않는 것만 같다.
요즘 정환은, 연습시간을 낮으로 바꿔 이른 시간부터 움직이는 중이다.
연습이 크게 간절한 건 아니다. 12년이라는 세월 동안 해온 것이 있지 않나.
한 명의 바텐더 몫을 해내는 건 정환에게 연습 없이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그저, 요즘은 정환이 한 명 이상의 몫을 해내려 하고 있기에 연습이 간절할 뿐이다.
‘내가 조금이라도 더 빨리 움직여야 해.’
명진이라는 걸출한 바텐더가 자리를 비웠다. 사람이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표가 나는 법.
그 난 자리를 누가 채워야 할까. 그다음 책임자인 신정우 매니저? 아니면, 이제 2년 경력의 한기준?
정환은 그 두 이름에 절레 고개를 저으며 거울 앞에 섰다.
그 둘은 모를 수 있다. 아니, 명진까지도 모를 수 있다. 허나, 자신만은 확실히 알고 있다.
지금 아르센이라는 곳에서, 명진의 빈자리를 채울 수 있는 바텐더는 자신밖에 없다는 것을.
정환이 바텐더에게 ‘꼭두새벽’이라 불리는 이 시간에 매일같이 일어나 연습에 몰두하는 이유는 그러했다.
준비를 마친 정환이 집을 나섰다.
평소 출근하던 때보다 더 강한 햇살이 유독 밝아 자신과는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시간.
점심시간을 맞아 삼삼오오 모여 대학가를 거니는 또래들 사이를 헤쳐 정환은 강남으로 향했다.
청담동 작은 골목 1층에 자리한 아르센의 문 앞에서 멈추는 정환의 모습.
까맣게 칠해져 육중함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아르센의 문이 정환을 반겼다.
이 문을 열고 아르센의 하루를 시작하는 건 이제 정환의 몫.
정환은 정우에게 건네받은 열쇠를 꺼내 자연스레 잠금장치를 해제하려 했다.
하지만.
‘열려…있네?’
잠금이 풀려있는 아르센의 문.
정환은 잠시 눈을 오가며 사태를 살핀다.
‘도둑?’
정우나 기준은 이 시간에 아르센을 찾지 않는다. 그렇다면, 도둑이라는 추론도 그리 나쁘진 않을 터.
바에는 값비싼 술도, 또 집기도 많다.
일본에 있을 때는 이런 바만을 전문적으로 노리는 도둑까지 본 적이 있기에 정환은 주변을 경계했다.
부스럭.
안에서는 인기척이 들려온다. 정환은 온몸에 신경을 바짝 세우고는 안에서 들리는 소리에 집중했다.
귀를 대고는 차분히 바 안의 소리를 들어보는 그.
그런 정환의 귀에는.
와장창! 창! 창!
!!!
하는 술병 깨지는 소리와
쿠웅!
하는 둔탁한, 그리고 불길한 소리가 들려왔다.
무언가 불길함을 느낀 정환이 서둘러 아르센으로 뛰어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