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술은 특별합니다-51화 (51/175)

51잔. 때로는 가볍게.

2.

바텐더는 한 잔의 칵테일을 만들 때 기계처럼 움직여선 안 되는 법이다.

이건, 정환이 이제까지 보여줬던 방식이기도 했다.

정환은 언제나 앞에 앉은 손님의 상태를 살폈고 그에 맞춰 미세하게 잔을 조절해왔다.

손님이 피곤해 보인다면 술을 조금 연하게 타기도 하고, 전작이 독했다면, 후작은 약하게, 거기에 독주를 못 마시는 손님이라면 계속해서 약한 술을.

이건 비단 정환 뿐만이 아닌, 바텐더 대부분이 손님을 대하는 방식 중 하나일 것이다.

그런 바텐더의 방식을 고려하면, 지금 앞에 앉은 손님을 모시는 정환은 제법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고 있다.

그는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그 어떤 바텐더들보다. 강성원이라는 저 손님에 대한 정보가 많은 바텐더였다.

“우선, 앞서 하셨던 말씀 중 ‘클래식’이라는 단어에서 시작했으면 합니다.”

정환은 손님에 대한 배경 지식과 들은 말을 토대로 우선 말을 걸어간다.

손은 계속해서 움직이고 있다.

그의 손에 들린 몇 개의 술병이, 그가 직무유기 중이 아님을 증명하고 있었다.

“클래식 좋죠. 보통 독-하고 좀 쓰린 게 클래식한 거 아닌감? 아니면 좀 오래된 거. 흐흐. 난 그렇게 알고 있는데.”

“사실, 그런 식으로 쓰이는 용어긴 합니다만, 정확히는 오래된, 그리고 전통적인 칵테일을 지칭하는 용어죠. 클래식한 칵테일 중에도 독하지 않고 대중적인 입맛을 지닌 칵테일은 많습니다. 물론, 모던 칵테일 같아 보이지만, 클래식 칵테일인 경우도 있고요.”

“흠, 전자는 다이키리나 김렛 같은 거 말하는 거죠? 알아요. 근데, 그건 손을 너무 많이 타서….”

손을 많이 탄다. 정환은 사업가인 성원이 하는 저 말의 의미를 모르지 않았다.

김렛이나 다이키리는 셰이킹이 필요한 칵테일. 그렇다면, 이들은 만드는 이의 전문성에 따라 맛이 크게 좌우된다는 뜻이기도 했다.

일반적인 펍은 아르바이트생을 쓰고, 그들은 바텐더와 달리 전문적인 기술을 가지고 있지 않다.

거기에 체인점 사업까지 더한다면 어떻게 될까.

일률적인 맛이 중요한 체인점 사업에서 만드는 사람마다 맛이 달라지는 메뉴라면, 이는 대중의 외면을 받기 딱 좋을 것이다.

“맞습니다. 그런 칵테일은 손을 많이 타죠. 하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도 있으니까요. 예를 들면, 진 토닉은 어떠십니까? 진 토닉 역시 클래식 칵테일이죠.”

“진 토닉? 에이. 너무 흔해요. 흐흐. 차별화가 중요하다니까? 아무리 클래식이고 대중적이어도. 요 앞에 펍만 가도 진 토닉은 있겠다.”

예상했던 반응이 나오자, 정환이 짙게 웃는다. 진 토닉이란 흔한 칵테일을 제시하는 건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제안이다.

다만, 거기서 발전시켜 다른 메뉴를 뱉는 건.

바텐더만이 가능하겠지만 말이다.

“진 토닉과 비슷한 여러 칵테일이 있습니다. 이번에 보여드릴 잔은 그런 잔이죠. 오래된 클래식 칵테일이기도 합니다.”

“진 피즈는 안 돼요. 알죠? 쉽게 만드는 거. 흐흐. 부탁 좀 합시다. 점점 염치가 없어지네.”

“괜찮습니다. 바니까요.”

정환은 밝게 웃으며 답과 함께 잔을 하나 만들기 시작했다.

셰이커를 흔드는 소리도, 스터로 바 스푼을 젓는 소리도 없다.

그저 들리는 건 술을 붓는 소리와 자그마한 탄산 터지는 소리.

잔에 그대로 재료를 쌓아가는 빌드업(Build-Up) 기법으로 만드는 칵테일인 듯 보였다.

잠시.

솨아아아.

하는 탄산 붓는 소리가 들리더니, 레몬이 하나 가니쉬로 올라가고 잔이 완성된다.

정환은 이를 내밀며.

“처음 보여드릴 잔은, 톰 콜린스입니다.”

칵테일의 이름을 알려준다.

“톰 콜린스? 요건 또 처음 듣네. 생긴 건, 딱 진 토닉인데?”

성원은 바텐더가 내민 잔을 아래위로 훑어보며 관찰했다. 마치 연구라도 하듯 잔을 뜯어가듯 구경하는 그.

투명한 술이 탄산의 기포를 가득 머금고 있어, 보기만 해도 청량한 느낌의 칵테일이 그를 맞았다.

잔의 모양이 조금 달랐지만, 그의 말처럼 진 토닉과는 구분이 되지 않는 겉모습이다.

“이야, 향도 좋고. 괜찮은데? 맛만 있으면.”

“드셔보시죠. 최대한 간단하게 만들어봤습니다.”

손님이 대중적인 걸 원하고 간단한 레시피를 원한다. 바텐더의 기술을 최대한 절제해야 하는 상황.

기술을 뽐내는 걸 좋아하는 바텐더라면 불평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허나, 정환은.

손님이 원한다면, 그저 그대로 행할 뿐이다.

이를 알아본 성원은 정환의 마지막 말을 듣고는 홀로 웃어넘겼다.

저 바텐더가, 제법 싫지 않다.

한 번 웃은 손님이 잔을 들어 톰 콜린스를 삼켰다. 기다란 잔에 담겨 탄산까지 더해진, 마시기 좋은 목 넘김의 톰 콜린스.

톰 콜린스는 그대로 벌컥! 소리를 내며 성원의 목을 타고 흘렀다.

“흐음. 키야! 이거 물건이네. 술맛은 나는데 또 레몬 맛이랑 단맛이 죽질 않았네? 진 토닉을 이렇게만 타면 최곤데.”

“대부분의 펍에서 톰 콜린스를 만들며 진 토닉이라 착각하는 일이 많습니다. 하지만, 레몬즙, 그리고 시럽이 들어가면 더는 진 토닉이 아니죠. 탄산도 진 토닉보다 많이 들어가고요.”

“허. 이건 그냥 진 토닉으로 팔아도 되겠는데? 아니지. 톰 콜린스라고 이름을 그대로 가져가도 괜찮을 수도 있지. 진 토닉 싫어하는 사람도 이건 마셔볼 거니까. 허허. 재밌네.”

“만드는 법도 쉽습니다.”

“그러니까!”

만드는 법도 쉽다는 말에 강성원은 크게 반응하며 손뼉을 쳤다.

하나를 말하면 둘 이상을 알아듣고 그에 대한 답을 내놓는다.

이곳을 추천해준 이의 말처럼, 정말 재밌는 바텐더가 아닐 수 없다.

“다 드셔 가시는 것 같으니, 다음 잔 준비해드릴까요?”

“또 있어요? 흐흐. 이거 오늘 취하는 거 아닌지 모르겠네. 벌써 두 잔이나 마셨는데.”

정환은 아직 보여줄 게 남았다는 듯 자신 있게 다음 잔을 권했다.

취할지도 모른다는 말을 하는 손님의 얼굴에 걱정은 없어 보였다.

오히려 그의 얼굴은 점점 기대감으로 번지고 있다.

“스크류 드라이버를 아시나요? 이 역시 클래식에 속합니다.”

“스크류 드라이버? 알죠. 그거 그냥 보드카에 오렌지 주스 탄 거 아니에요? 그게 클래식인 줄은 또 몰랐네. 에이. 근데 그거도 너무 흔한데?”

“당연히. 차별화를 줘야죠.”

“그럴 줄 알았으! 흐흐. 이번에는 또 뭐에요?”

이제는 장단까지 맞춰주는 손님의 앞으로 정환은 보드카와 오렌지 주스를 가져왔다.

그리고 더해지는 특이한 모양의 노란색 술병.

성원은 그 병을 보고 아는 척을 해본다. 삼각형으로 기다란 병의 모양이 이를 아는 이라면, 누가 봐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병이었다.

“갈리아노! 맞죠? 갈리아노 같은데.”

“알고 계셨군요.”

“내가 빵도 구워요. 커피도 타고. 저거 빵 만들 때 가끔 쓰거든. 향도 괜찮고.”

“맞습니다. 갈리아노는 제과제빵에도 쓰이는 재료입니다. 그만큼, 대중적으로 다가가기 어려운 향도 아니죠.”

정환은 간단히 잔에 보드카와 오렌지 주스를 섞은 후 바 스푼을 들었다.

그리고 잔의 벽에 스푼을 가지고 가는 정환.

“플로팅이다!”

성원은 그게 무엇인지, 알아보는 눈치다.

“굳이 플로팅을 해줄 필요는 없습니다. 천천히 가라앉게 만들어도 나쁘지는 않죠. 하지만, 여기는 바이니. 우선 플로팅으로 만들어보겠습니다.”

정환은 간단히 설명만 전하고는 바 스푼 위로 갈리아노라 불리는 리큐르를 부어갔다.

천천히 그리고 섬세하게 부어지는 얇은 갈리아노 줄기.

갈리아노는 스푼의 등을 타고는 천천히 정환이 쌓아둔 스크류 드라이버 위로 층을 이루기 시작했다.

이는 플로팅(Floating)이라 부르는 기법으로 술이 가진 비중의 차이를 이용해 층을 만들어 내는 기술.

바텐더의 손에서 떨어지는 갈리아노는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완벽한 층을 형성해 스크류 드라이버 위에 안착했다.

“‘하비 월뱅어’입니다.”

정환은 조심히 잔을 밀어 하비 월뱅어를 건넨다.

스크루 드라이버와 갈리아노는 같은 노란색이었기에 두 술 사이에 생긴 층이 자세히 보이진 않았다.

눈앞으로 가져가야 보일 정도.

허나, 플로팅 덕분에 섞여들지 않아 살아난 갈리아노의 향이 조금은 떨어져 앉은 성원의 코까지 날아와 꽂힐 정도로 강하게 풍기고 있었다.

갈리아노의 달콤한 바닐라 향이 코에 꽂혔다.

“이야. 이건…, 스크류 드라이버랑 비교하면 미안할 정도인데? 향이 아예 다르네. 근데, 플로팅은 좀 어렵지 않나?”

“갈리아노는 색이 오렌지 주스와 겹치는 편입니다. 플로팅이 어설퍼도, 크게 티가 나는 경우는 없습니다. 층이 무너져도 맛이 크게 다르진 않을 겁니다.”

“그래요? 그럼 해볼 만한데. 음. 우선 잘 마시겠습니다.”

성원은 이번에도 거침없이 잔을 들이킨다. 스크류 드라이버야 익숙한 맛이다.

집에서도 간단히 만들어 먹기도 하고.

하지만, 여기에 갈리아노가 더해진 하비 월뱅어는.

조금 다른 맛을 가지고 있다.

!

“이거, 왜 이래요? 아니. 왜 스크류 드라이버에서 클래식한 맛이 나지?”

“텁텁하다는 말씀이군요. 별로이신가요?”

“그런 건 아니고, 뭐랄까? 더 좋은데? 약간 술맛이 이제야 난다고 해야 하나? 스크류 드라이버는 그렇잖아요. 주스 같고.”

“갈리아노가 의외로 도수가 높은 술입니다. 하비 월뱅어 자체의 도수는 스크류 드라이버보다 낮을 수 있지만, 플로팅된 갈리아노 덕분에 첫맛에는 강한 느낌이 들죠.”

“허. 이것도 물건이네. 술술 넘어가기도 하고.”

성원은 팔짱을 끼고 잔을 보다 턱까지 괴어가며 감상에 빠진다.

그의 머릿속에는 이를 응용한 레시피가 몇 개 스쳐 지나가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르센, 잘 왔네. 허허. 어휴. 오늘 많이 배웁니다.”

“아직 보여드릴 게 더 남긴 했습니다.”

“더 있어요?”

“고작 두 개로는 임재훈 바텐더의 면이 서질 않죠. 주량이 괜찮으시면, 한 잔 더 보여드리겠습니다.”

“아, 이러면 안 되는데. 근데, 또 이거 맛있으니까 거절을 못 하겠네. 어쩔 수 없지. 가봅시다! 나도 몰라요. 나 취해도.”

“조절해주실 거라 믿습니다.”

“믿긴. 으이.”

짓궂은 표정을 짓는 손님 앞에서 정환은 다시금 재료를 준비한다.

그의 앞에는 럼과 라임, 그리고 설탕 시럽이 놓인다.

“재료가 어디서 많이 보던 건데?”

“알아보시는군요. 아까 말씀 나눴던 한 칵테일의 재료죠.”

“다이키리. 맞죠? 다이키리는 나도 알죠. 근데, 다이키리는 그, 뭐냐. 그래, 셰이킹. 그거 손을 너무 많이 타서 맛이 변해. 우리 애들이 셰이킹을 전문적으로 배운 애들도 아니고. 요건 좀 무리가 있지 않을까요?”

성원은 정환이 만들려는 잔의 정체를 보자 손을 내저으며 거절하려 한다.

다이키리란 칵테일은, 앞서 말한 것처럼 바텐더가 아닌 이들의 손에서는 맛있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셰이킹을 사용하지 않아도 되는 다이키리가 있습니다.”

!!

다음에 이어지는 바텐더의 말이, 그의 관심을 끌어모은다.

“응? 그런 게 있다고요?”

몸을 잔뜩 앞으로 당기며 집중하는 성원의 모습. 다이키리라. 이름의 유명도도 높고 또 맛 역시 대중적인 편이다.

얽힌 이야기가 많아 마케팅에 써먹기도 나쁘지 않고.

만약 만드는 이에 따른 편차만 없다면 당장 가져와 팔고 싶을 정도로 딱 맞는 술이 다이키리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 되는데? 안 흔들고 그런 느낌을 낼 수가 있나? 맛도 그렇고. 스터로 섞으면 독할 거 같은데, 내 생각에는.”

“제 말을 오해하신 모양이군요. 당연히 스터는 아닙니다.”

“……?”

성원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바텐더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스터도, 셰이킹도 아니면 빌드란 말인데. 그게 다이키리라 부를 수는 있긴 한 맛일까. 그런 생각까지 드는 그.

그런 손님을 위해, 바텐더는.

이전까지 바에서 보지 못했던 다른 도구를 보여준다.

묵직한 무언가가 테이블 위로 올라왔다.

“이걸 사용하면 되니까요.”

!!

“믹서기…?”

정환이 바 테이블 위로 올려둔 물건은, 다름 아닌 블렌더(Blender)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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