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잔. 유명인.
1.
세상만사가 일어나는 장소 중 대부분이 그렇겠지만, 바라는 곳은 별별 사람이 다 모여드는 곳이다.
경력이 오래된 바텐더일수록 이런 경험이 더 쌓여가는 건 당연한 일.
12년의 경력을 가진 정환은 그간 만난 손님의 수만 해도 이미 한 도시를 채우고 남았다.
물론, 만났던 범상치 않은 손님들도 많았고.
유명한 스포츠 선수부터 스타 배우, 그리고 때로는 뒷골목의 어깨들과 가끔은 바에 대한 소설을 써보겠다는 배곯기 딱 좋은 소리를 하는 글쟁이까지.
평범한 일상이라면 만나지 못했을 군상을 만날 수 있었던 것 역시, 바텐더라는 직업의 장점 중 하나일지 모른다.
가끔은, 단점일 수도 있고.
그런 경험에 비춰보자면, 지금 겪는 일 역시 별다른 일은 아니다.
바라는 공간이기에 가능한 일.
그렇기에 아무렇지 않은 일.
하지만.
조금은 특별한 일 말이다.
“저어기, 어디냐. 그 한남동. 한남동의 마리너스 소개로 왔어요. 흐흐. 강성원입니다. 반가워요.”
40줄의 사내가 고개를 까딱하며 아르센 안으로 들어섰다. 잠시 몇 개의 의자를 가리키며 방황하던 사내는 이내 밝게 웃으며 한자리에 앉고는 자신을 소개했다.
강성원이라.
평범한 이름처럼 보인다. 사내의 외관 역시 그저 인상 좋은 40대 아저씨로만 보였고.
웃음기가 잔뜩 서린 말투는 넉살까지 좋아 보여, 그저 평범한 동네 아저씨라 불러도 모자람이 없어 보였다.
허나, 이건 어디까지나 그를 처음 본 사람들의 평가. 적어도 15년 후의 미래를 살았던 정환은.
이 강성원이라는 사람의 실체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를 보는 순간 정환의 머리에 스친 단어가 있다. 일본에 처음 정착해 자취할 무렵 늘 정환이 보던 한 예능 프로의 이름.
‘집밥…!’
강성원이라는 저 손님이 메인으로 출연하던 프로의 이름이었다.
요식업에 종사하며 큰 사업체를 운영하던 저 손님은 곧 방송가에도 얼굴을 내밀며 엄청난 유명인이 된다.
간단한 레시피를 위주로 여러 음식을 소개하고 또 음식에 대한 지식까지 전파하던 사람.
거기에 골목 상권까지 살리겠다며 방송으로 뛰어다니던 사람.
정환의 기억 속 강성원이라는 사람의 실체는 그러했다.
‘한 2, 3년 남았나?’
정환이 막 일본에 정착하던 무렵 강성원이라는 사람의 방송을 많이 봤었으니, 아직은 조금 먼 훗날의 이야기다.
‘신기하네. 영상으로만 보던 사람을.’
일본에서야 유명한 인물을 수도 없이 많이 봤다. 긴자란 곳이 그랬으니까.
허나, 거기서 본 이들은 어디까지나 타국의 유명인들.
고국의 유명인, 아니 유명해질 사람을 가까이서 처음 본 정환은 신기하다는 시선을 연신 보내 본다.
“강성원 님이시군요. 반갑습니다. 마리너스. 좋은 곳이죠. 오너 분께서 소개해주신 건가요?”
제일 처음 강성원이라는 사람을 맞은 건 아르센의 마스터 명진.
명진은 처음 온 손님을 한가한 시간에 직접 맞아 본다.
특히나 다른 바에 소개로 왔다고 하니, 이는 마스터가 직접 나서도 무리는 아니다.
“아뇨, 아뇨. 그, 재훈 씨. 임재훈 바텐더 소개로 왔습니다. 왜, 그 젊고 괜찮은 바텐더 있잖아요.”
임재훈이라는 이름이 나오자 명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한 얼굴을 떠올렸다.
기억이 난다. 일전에 주니어 바텐더들이 아르센을 찾았을 때, 자신이 아닌 뒷줄에서 뛰어다니는 정환에게 시선을 고정했던 그 바텐더라.
명진은 그렇게 그를 기억하고 있다.
“임재훈 바텐더의 소개로 오셨군요. 실력도, 눈썰미도 좋은 분이죠. 잘 오셨습니다. 아르센의 마스터, 이명진입니다.”
“마스터? 사장님이세요?”
“맞습니다. 편하게 불러주시면 됩니다.”
“마스터? 호칭 좋네요. 편하게 강 사장이라고 불러주십쇼. 밥장사하고 있습니다. 네.”
“그러셨군요. 반갑습니다, 강 사장님.”
명진은 재차 허리를 숙여 손님에게 인사를 건넸다. 이는 서로의 신분을 안 후 다시 나누는 인사.
들은 것처럼, 청담동은 참으로 클래식한 곳이라. 성원은 그렇게 느꼈다.
“예, 예. 아휴. 반겨주셔서 감사합니다. 근데, 오늘은 어떤 바텐더를 찾아왔는데, 괜찮죠?”
“바텐더까지 소개를 받으셨군요. 그럼요. 아르센의 바텐더라면, 누구든 편히 찾으시면 됩니다.”
“보자아. 보자.”
성원은 주머니를 뒤져 작은 메모지를 하나 꺼낸다. 그리고 눈에 힘까지 줘가며 거기 적힌 이름을 읽어보는 그.
“차…정환? 차정환 바텐더라고 있어요?”
!
그의 입이 한 이름을 말하자, 구석에서 흘끔 성원을 구경하던 한 젊은 바텐더가 깜짝 놀란다.
그의 명찰에, 차정환이라는 이름이 적혀 있다.
“정환 씨를 찾아오셨군요. 좋은 추천입니다. 정환 씨. 이리로 오시겠어요?”
“네? 아, 넵. 가겠습니다.”
정환은 얼른 놀란 표정을 지우고는 손님의 앞으로 다가섰다.
고개를 한 번 숙이고 나서야 그가 인사를 건넨다.
“차정환입니다. 임재훈 바텐더의 소개로 오셨다구요?”
“실력도 좋-고. 아는 거도 많다고. 꼭 가보라던데요? 많이 좀 가르쳐 줘요. 나 칵테일 공부하고 있으니까.”
“저야 영광입니다. 뭐든 궁금한 게 있으면 물어보시죠. 아는 거라면 전부 말씀드리겠습니다.”
“영광? 무슨 영광까지 찾아요. 그냥 손님인데. 흐흐.”
영광이라는 말이 과하게 들릴 순 있다. 하지만, 정환은 전혀 그런 기색 없이 그런 말을 뱉었다.
한때는 자신의 가게를 준비하려던 정환에게, 그는 제법 사업가로 존경할만한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보여준 여러 행보 중, 정환이 구상하던 것과 닮은 행보 역시 존재하고 있었고 말이다.
‘재훈 씨가 선물을 보냈네.’
처음 그 이름이 나왔을 때 설마란 생각은 했지만 그게 정말 자신일 줄은 몰랐던 상황.
정환 역시 훗날 자신의 가게를 열어 사업체를 꾸릴 꿈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이루고 싶은 더 큰 꿈 역시 있는 사람.
앞에 앉은 손님과 관계를 맺어두는 게, 정환에게 나쁠 건 없을 것이다.
‘그럼, 재훈 씨가 그랬던 것도?’
앞에 서서 강성원이라는 사업가를 마주하자, 정환의 머리에 하나의 가설이 스친다.
- 강성원은 임재훈의 소개로 이곳에 왔다.
- 강성원은 칵테일을 공부 중이다.
- 그렇다면, 그 칵테일 공부는 임재훈과 함께하고 있다.
- 둘은 제법 친할지도 모른다.
는 제법 논리적인 가설이.
그리고 그런 가설의 결론은.
임재훈은 사업 방식을 강성원에게 배웠다.
는 결론으로 나아갔다.
이전 생에서 임재훈이라는 바텐더가 보여줬던 행보는, 어쩌면 이 사람으로부터 시작된 것일지도 모른다.
일전에 임재훈이라는 사람을 낚기 위해 던졌던 미끼에 아무래도 두 마리의 물고기가 걸린 모양이다.
그것도, 대어로.
‘제대로 해야겠네.’
정환은 결론이 나오자, 이내 자세를 고쳐 조금은 더 신경을 쓰고 앞에 서 본다.
딱히 나쁜 의도를 가진 건 아니다.
바텐더가 손님을 잘 모시겠다는 게 어디 나쁜 마음이겠나. 오늘은, 사심이 조금 들어갔어도 그저 자신의 원래 모습을 보여주면 되는 거라.
정환은 그런 생각만을 품고 그의 앞에 섰다.
“그럼, 강 사장님은 정환 씨가 모시도록 하세요. 소개로 오셨으니, 잘 부탁드립니다.”
“네, 마스터.”
“불편한 점이 있다면, 언제든 불러주세요.”
명진은 마지막 말만 남기고는 자리를 뜬다. 바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는 성원과 정환만이 마주하고 있다.
“칵테일 공부를 하고 계신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게 궁금하신가요?”
“아니, 뭐. 그런 거긴 한데. 흐흐. 일단 그건 차차 이야기합시다. 일단 주문. 주문부터 할게요. 실력이 워낙에 좋다고 그래서. 그래도 되죠? 기분 나쁜 거 아니죠?”
성원은 정답게 말을 거는 정환에게 주문부터 하겠다는 말을 한다.
말이야 주문을 가리키지만, 이는 실력부터 보겠다는 뜻이다.
다른 이라면 기분 나쁘게 들릴 수는 있다. 그의 말투가 너스레를 잔뜩 품고 있어 정환은 그리 기분 나쁘진 않았지만 말이다.
“아뇨. 괜찮습니다. 손님이라면, 언제나 바텐더의 실력을 궁금해하실 수 있습니다.”
“에이. 그래도 기분 나쁠 순 있지. 그래도, 이해 좀 해줘요. 나도 아무것도 모르고 온 거라. 예, 기분 나쁜 건 내가 사과합니다. 미안해요.”
“괜찮습니다. 오히려 실력을 의심하고 검증해주는 분들이 감사할 뿐입니다.”
“얼레? 그건 또 뭔 소리래?”
“손님이 바텐더를 의심하지 않으면, 바텐더는 나태해집니다.”
정환은 너스레를 떨다 또 사과하는 손님에게 괜찮다는 말을 전한다.
그리고 덧붙여지는 조금 남다른 말.
이는 절대 그에게 잘 보이기 위해 지어낸 말이 아니다. 이는 바텐더로서 늘 정환이 경계하는 마음 중 하나.
정장이라 불리는 멋들어진 옷을 입고 값비싼 술병을 휘두르면, 가끔 손님들은 바텐더를 대단한 위인처럼 보곤 한다.
때로는 실수가 있어도, 또 때로는 대충이 있어도.
바텐더를 올려다보는 손님은 바는 원래 그런 거라며. 자신이 잘 모르는 거라며, 이를 넘어가곤 한다는 말이다.
과연 이게 바텐더로서 옳은 일일까.
정환은 언제나, 이 생각에 고개를 절레 저었다.
바텐더는 언제나.
손님을 두려워하고, 손님을 무서워하며 발전해야 한다.
정환의 말속에 숨은 뜻은 그러했다.
“건실하네. 재훈 씨랑 비슷해. 흐흐. 벌써 재밌네.”
“그럼, 편히 주문하시죠.”
“그래요? 그럼, 우선 파리지앵. 근데, 이제 그 재훈 씨가 말해줬던 방식. 알죠, 그거 뭔지? 그걸로 하나 만들어 줄래요? 여기가 원조라던데.”
“셰이킹으로 만드는 파리지앵 말씀이군요. 네, 물론 가능합니다.”
“오케이. 그걸로 갑시다. 부탁해요.”
넉살 좋은 주문을 받은 정환이 빠르게 손을 움직인다. 뚝딱거리며 재료를 준비하더니 이내 셰이커를 올려 드는 정환.
정환은 일전에 재훈에게 알려줬던 것처럼 셰이커를 눕히지 않고 세운 채 아래위로 굴리듯 흔들기 시작했다.
살각! 살각! 살각!
파리지앵 만드는 소리가 들려온다. 서서히 시선을 바텐더에게 향하는 손님.
그는 흥미롭다는 눈빛으로 정환의 바텐딩을 지켜본다. 여기가 원조라던 재훈의 말이, 거짓은 아닌 것 같았다.
살각이던 소리가 몇 번 더 들리더니 이내 앞으로 잔이 밀려 나온다.
붉은 포돗빛을 품은 액체가 널따란 잔에 담겨 자태를 뽐내고 있다.
“파리지앵, 나왔습니다.”
성원은 잠시 받은 잔을 여기저기 살피며 관찰한다.
“진짜 같은 건가?”
같은 속마음을 살짝 중얼거린 그가 그대로 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노즈니 팔레트니, 피니쉬 같은 것은 신경도 안 쓰는 거 같은 그의 모습.
그는 그저 맛.
맛에 집중하며 파리지앵을 삼켰다.
그리고.
“이야. 이거 진짜 맛있네. 허허. 나, 어이가 없네. 이게 원조의 힘인가? 허허. 재밌네, 진짜.”
터져 나오는 그만의 감탄사. 정환은 영상에서 보던 그 말투가 자신을 향하자,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맛은 괜찮으신가요?”
“아니, 내가 이걸 마셔봤거든요? 이야. 근데 다르네.”
“당연한 말씀입니다. 같은 레시피라도…”
“만드는 사람마다 맛이 다르다! 그 말 하려고 그랬죠?”
“알고 계셨군요.”
“재훈 씨도 매앤날 그 말 해요. 아휴. 바텐더들은 다 똑같아, 아주.”
“바텐더로서 자부심이니까요.”
“흐흐. 자부심이야 좋지. 하긴, 그거 없는 바텐더 매력 없어요. 요리하는 사람도 그렇고.”
성원은 정환이 만든 잔이 만족스러운 듯 웃으며 연신 잔을 들어 올렸다.
그의 얼굴에 미소가 번질수록, 정환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이 점점 친근함을 가져갔다.
“사실, 내가 재훈 씨한테 그랬거든요. 이거 레시피 좀 알려달라고. 내가 로얄티까지 낸다고 했다니까?”
“흠, 수락하시던가요?”
“어땠을 거 같아요?”
“제가 아는 임재훈 바텐더라면, 안 했을 거 같습니다만.”
“자리 까셔야겠네.”
“파리지앵에서 크게 바뀐 것도 아니니까요. 만드는 기법만 바꾼 거라서요. 임재훈 바텐더가 그럴 분은 아니죠.”
“에헤이. 이거 완전 담합인데? 내가 보니까? 서로 아주 칭찬이.”
넉살이 좋은 사람과는 언제든 말이 잘 통한다. 이는 바텐더도 마찬가지.
내성적인 손님에 비해서, 이렇게 먼저 농담도 걸어주는 손님은 접객에 있어서 부담감을 덜게 된다.
미래의 일은 놓고 보더라도, 강성원이라는 사람은 손님으로서 제법 괜찮은 인물이었다.
이런 감정은 성원 역시 마찬가지. 바텐더로서 실력은 자세히 몰라도, 이 차정환이라는 사람이 나쁘진 않다.
성원은 점차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로열티 이야기가 나왔을 때 자신이 만든 거라며 먼저 목소리를 낼 수도 있었다.
헌데, 그는 그저 재훈과 같은 말만 반복할 뿐이 아닌가.
아무래도, 임재훈이라는 바텐더에게.
제대로 된 선물을 받은 것 같은 둘이다.
“자자. 이제 본격적으로 부탁 좀 해봅시다. 괜찮죠?”
“바와 관련된 부탁이라면 뭐든지요. 바텐더는 그러기 위해 있으니까요.”
“흐흐. 바랑은 관련이 있죠. 술이니까. 대신, 나도 좀 이런 거 내다 팔려 하는데, 그건 괜찮아요?”
“다른 업장 말씀이신가요? 설마, 바를…?”
딱히 바를 연다고 해도 레시피를 알려주지 못하는 건 아니다. 허나, 강성원이라는 사람이 바를 열었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기에 정환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아니, 아니. 바는 아니고. 저어기. 펍. 가벼운 거 있잖아요. 음식도 팔고, 술도 팔고. 그런 거 하는 사람이에요, 내가.”
“펍을 말씀하셨던 거군요. 물론 알려드릴 수 있습니다. 펍이라면…”
대충 이해는 된다. 강성원이라는 사람이 운영하는 여러 개의 사업체 중 그런 게 있었던 것도 같고.
정환은 이전 생에서 알던 사실과 방금 들은 말을 조합해, 강성원이라는 사람이 원하는 게 어떤 스타일인지, 얼른 눈치챌 수 있었다.
“가벼운 느낌의 칵테일이 어울리겠네요. 만드는 법도 간단하고.”
“그렇지! 근데, 이제 특이하면 좋죠. 그래서 클래식 쪽에서 좀 바뀐 것들을 알아보고 있는데…, 쉽진 않네요. 허허. 사업이 다 그렇지만.”
손님의 이야기를 듣고 잠시 고민하던 정환은 이내 손님에게 정보를 더 캐내기로 한다.
조금은 이야기를 더 들어봐야 답이 나올 것 같은 그였다.
“혹시, 그런 특이한 칵테일을 찾으시는 이유가 있을까요?”
“음. 요즘 흔해요. 칵테일. 아시잖아요? 펍이나 저기 뭐야, 호프집에만 가도 간단한 칵테일은 팔고. 차별화가 중요하거든, 사업은. 우리 같이 후발 주자로 나가는 사람들은 차별화를 해야 해요. 그러니까, 이제 좀 다른 곳에서는 안 다루는데, 만들기 쉽고 가벼운 칵테일. 근데 이름도 좀 있고. 그런 거면 좋죠.”
주문이 제법 까다롭다. 그럼에도 정환은 머리를 굴리며 답을 찾아본다.
딱히 강성원이라는 사람 때문은 아니다. 손님이 물었으면 답해야 하는 게 바텐더기 때문.
물어오는 질문이, 자신의 가게를 가질 바텐더로서 한 번쯤은 고민해볼 주제이기도 했고 말이다.
자기 가게를 준비하던 정환 역시 비슷한 고민을 했던 경험이 있다.
“내가 아예 메뉴를 만들어 달라, 이런 건 아니에요. 오해하지 마요. 나 그런 사람 아니니까.”
“무슨 말씀인지 이해하고 있습니다. 참고할 자료가 필요하신 거겠죠.”
“그렇지. 정답! 참고만 해서, 개발은 내가 할게요. 나 양심 있습니다.”
성원의 너스레를 끝으로 정환이 다시 고민에 잠긴다. 턱을 몇 번 긁으며 잠시 백 바를 돌아보는 정환.
정환의 눈에 몇 개의 술병이 들어오자, 정환의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
무언가 스친 모양이다.
“몇 개가 떠오르긴 합니다. 시중에 많지는 않지만, 대중적인 입맛. 그리고 이름도 있는 칵테일로.”
“오. 진짜? 만들어 줘봐요. 내가 맛보고, 참고 좀 할게요. 제대로 알려주시면, 신세는 꼭 갚습니다. 나 그런 사람이에요.”
“그러면, 우선 떠오르는 것들부터 한 번 만들어보겠습니다.”
정환은 말을 남기고는 백바로 돌아가 재료를 챙겼다.
그리고 그런 바텐더의 등을 보며 씨익하고 웃는 손님.
듬직한 모습이다. 말이 나오고 칵테일을 떠올리기까지 걸린 시간만 봐도 그렇지 않나.
그렇게 느낀 그는.
“어디, 한 수 배워봅시다. 그럼.”
마지막 말을 하며 자세를 고쳐 앉았다.
눈에는 호기심과 기대감이 함께 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