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잔. 아버지.
7.
바는 어떤 곳일까.
어떤 바텐더도 ‘바’라는 걸 함축적으로, 또 한 잔으로 표현하는 건 쉽지 않을 것이다.
이는 오랜 경력과 괜찮은 실력을 지닌 정환 역시 마찬가지였다.
잠시 고민하고 아버지에게 대접할 잔을 찾던 정환의 손이 백 바를 방황한다.
‘이건 부족하고 저건 넘치는 거 같고···.’
언제나 그렇다. 술에 대해 잘 모르는 손님, 거기에 술을 잘 즐기지 않는 손님은 바텐더에게도 어려운 손님이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정환이 홀로 당황하며 망설일 때.
정환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 누군가를 바라본다.
어느새 한껏 의지하고 있는 한 바텐더, 아르센의 마스터 명진이다.
손님을 앞에 두고 바텐더들끼리 속닥거릴 순 없다. 조언이야 받고 싶었지만, 불가능한 상황.
대신 정환의 눈빛을 받은 명진이 무언갈 하나 알려준다. 아무런 말 없이 손가락으로 자신의 가슴팍에 있는 무언갈 가리키는 명진.
그의 손가락이 닿는 곳에는.
멋들어진 아르센의 명찰이 달려있다.
명진의 손가락이 정환의 가슴 쪽을 향한다. 하얀 재킷에 달린 금색 명찰에.
그곳에는.
- Bartender 차정환.
이라는 당당한 이름이 걸려있다.
명진은 무슨 말을 하려는 걸까. 마지막으로 인자하게 웃고 돌아서는 그의 모습을 보며, 정환은 명진에게 들었던 말을 곱씹어 본다.
- 바텐더의 방식으로 접근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정환의 머리를 스치듯 흘러가는 명진의 한 문장.
어쩌면, 명진은 지금 정환이 아들이 아닌 바텐더라는 걸 다시금 일깨워주려는 건지도 모른다.
바텐더라. 바텐더라면 지금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런 생각이 들자, 생각을 정리해보는 정환.
손님이 술을 멀리한다는 걸 미리 알고 있었다. 아들이 아닌 오늘 처음 만난 바텐더라면, 이를 알 수 있었을까.
지금 바텐더로서 손님께 바를 알리려는 자신의 의도가 정말 바텐더로서 순수한 의도일까.
생각이 거기에 닿자, 정환은 백 바를 방황하던 손을 거둔다.
손을 거둔 정환은 뒤를 돌아 손님 자리에 앉은 영균을 마주 본다.
“죄송합니다, 손님. 지금 당장은 손님께 드릴 칵테일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그리고 아주 당당하게. 영균을 향해 고개를 숙이며 솔직한 말을 뱉어보는 정환.
“지금···, 이게 무슨 짓이냐? 네가 한 잔을 더 하고 가라더니, 당장 무슨 칵테일을 줘야 할지 모르겠다니?”
“그래서 사과드리는 겁니다. 또, 앞서 드렸던 말은 아들로서 의욕이 과했습니다. 바텐더였다면, 그리 쉽게 뱉을 말이 아니었습니다.”
“그럼, 줄 술이 없으니 가면 되는 거냐?”
“그건 아닙니다.”
“허.”
영균은 이제 단호함을 넘어선 아들의 뻔뻔함과 마주한다. 바텐더로 변한 정환은 자신이 알던 아들의 모습과는 많이 다르다.
“일반적인 바텐더라면 처음 뵙는 손님이 술을 멀리하는지, 약한지. 또 어떤 술을 좋아하는지 알지 못합니다.”
“넌 내 아들이었으니, 그걸 알고 한 말이었고, 그랬으니 사과한다? 또, 그래서 생각이 바뀌었다?”
“맞습니다.”
“허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거냐? 평범한 바텐더와 손님이라면.”
“대화를 나눠야겠죠. 보통은 여쭤보곤 합니다. 어떤 술을 즐기시는지, 또 취향은 어떻게 되시는지 등을요.”
“흠, 이미 말했지만, 술을 즐기지 않는다. 술을 못 마시는 건 아니고. 취향은 딱히 없다. 같은 말을 반복하는 거 같지만, 이제 된 거냐?”
“아뇨. 바텐더라면, 여쭐 말이 하나 더 남았습니다.”
정환은 같은 말을 반복해 진절머리난다는 영균을 향해 의미심장하게 눈빛을 빛냈다.
아들이었을 때는 묻지 못했던 말, 아들이었을 때는 알려고도 하지 않았던 말.
그런 말을 하려 준비하는 정환.
정환은 턱을 당기고는 아버지가 아닌 손님을 향해 물었다.
“술을 즐기지 않으시는 이유가 있으십니까?”
!
영균은 거침없이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질문에 고개를 번쩍 들었다.
처음이다. 적어도 정환이 자신에게 이런 말을 묻는 건 처음이 분명했다.
“그걸 왜 묻는 거지?”
“말씀하기 싫으시다면 답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다만, 술과 관련된 일이라면 바텐더가 알아두어 좋지 않은 이야기는 없습니다. 손님과 관련된 모든 요소가 잔에는 담기거든요.”
“······.”
이런 대화를 나눠본 적이 없는 영균은 아들을 빤히 바라본다.
정말 바텐더로서 묻는 걸까, 아니면 아들로서 궁금한 걸까.
얽힌 감정이 있기에 의도는 아직 알 수 없다. 허나, 확실한 건, 지금 눈앞에 있는 이는 아들이 아닌 바텐더란 느낌을 그가 분명히 받고 있다는 것이다.
“아들의 모습을 지운다더니, 거짓말은 아니었구나. 확실히···, 아들로서 네가 그런 말을 물은 적은 없었지.”
“전 그저 바텐더로서 물었을 뿐입니다.”
“흠.”
그는 정환이 그토록 알고 싶어 하던 일에 대한 답을 들려줄까.
원래라면 이런 이야기를 떠들고 다닐 사람은 아니다. 차영균이라는 사람의 성격이 원래 그러니까.
다만, 바라는 곳은.
그런 사람조차, 가끔은 입을 열게 만드는 신기한 공간이다.
영균은 잠시 팔짱을 끼고 턱을 당기더니, 고개를 끄덕이고는 입을 연다.
조금은 길고, 무거운 이야기가 그의 입에서 시작되었다.
“이미 알고 있겠지만, 난 공무원이다. 오래 근무했지. 보자···, 올해, 네 나이가···”
“스물셋입니다.”
“흠. 그럼 이십하고도 삼 년이 더 흘렀겠구나, 내가 공무원이 된 지도.”
!
몰랐다. 아버지가 얼마나 오래 공직에 몸을 담았는지, 또 언제부터 공무원을 하고 있었는지는.
그저 정환의 기억이 있었던 때부터 쭉 그는 공무원이었고, 아버지는 늘 그렇게 알고 있을 뿐이었다.
처음 듣는 이야기에, 바텐더와 아들의 모습이 겹쳐진다.
“요즘은 말이다, 공무원이라는 직업에 대한 취급이 아주 좋은 모양이더구나. 들어오는 신입 아이들만 봐도 그렇긴 하지. 다들 몇 년씩 공부에, 대학 졸업자에···, 또 젊은 나이까지.”
“연금도 있고 복지랑 안정성이 좋으니까요.”
“그래, 그렇지. 그렇긴 한데···. 적어도 내가 공무원을 할 때는 그렇지 않았었다.”
정환은 처음 듣는 아버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38살이란 나이가 될 때까지도.
아버지와 이런 이야기를 나눠본 적이 없는 정환이다.
“내가 공무원에 임용되었던 그해는 더했었지. IMF 전, 한창 사회가 들뜨던 시기가 그때였다. 취업을 준비하던 젊은 놈들은, 공무원?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거다. 대학물 먹었다는 놈들은 다들 은행이나 대기업으로 가기 바빴거든. 그게 아마 내 나이 서른. 그쯤이었을 거다.”
길게 풀어지는 영균의 옛이야기를 들으며 정환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은 조용히 듣는 게, 바텐더의 역할이다.
“나 같은 놈도 공무원이 될 수 있었으니, 더 말할 필요가 없지. 허허.”
!
그리고 이어지는 영균의 말.
그 말이 조금 자조적이다.
“그런 식으로 말씀하지 마세요. 아버지, 아니. 손님이 뭐 어떠셔서요.”
“뭘 알고는 하는 말이냐?”
“그건 아니지만···.”
아들이 튀어나왔다. 방금 나온 반응은 분명히 바텐더가 아닌 아들의 반응이었다.
“공무원이 되기 전에는 뭘 하셨나요? 서른이면, 그리 이른 나이가 아닌 거로 아는데요. 특히 그때는.”
정환은 아차! 하는 표정을 짓더니 얼른 바텐더로 돌아와 말 사이를 채운다.
손님의 말이 끊어지지 않게, 그 사이를 채우는 것도 바텐더의 역할이다.
“이것저것 했었지. 고등학교를 겨우 졸업하고 군대에 다녀오고. 또 군대를 전역하고 한 몇 년은··· 허송세월하고.”
“잘 상상이 안 되네요. 건실하신 분 같습니다만.”
“건실해진 거지. 적어도 그때는 아니었다.”
영균은 말을 끊고는 담배를 꺼내 정환에게 보여준다.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는 재떨이를 꺼내오는 정환.
- 치, 칙.
담배에 불이 붙고 하얀 연기가 한 번 나온 후에야 영균은 다시금 말을 이어갔다.
“허송세월하는 동안···, 밴드에서 드럼을 쳤었다. 그리 잘 치는 건 아니었지만, 나름 밤무대 정도 설 실력은 있었지.”
!
- 후우우우.
말과 함께 나오는 연기가 무겁게 가라앉는다.
아버지가 악기를 연주했다니. 그리고 그게 밤무대였다니.
정환은 누구에게도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없다.
“몰랐습니다. 그런 일을 하셨을 줄은···”
“뭐, 당시에는 어렸으니까. 한량이었지. 그때는 술도 많이 마셨고 그렇게 지내는 게 재밌었거든. 돈도 못 벌고 또 인생에 계획도 없는 한량이었지만.”
“드럼은 왜 그만두신 건가요?”
“왜라. 글쎄···. 돈이 안 되어서일까. 그래. 그것도 하나의 이유일지 모르겠구나. 그게 7, 8년을 그렇게 산 사람치고는 이유라긴 조금 부족해 보여도 말이다. 대신···, 서른이 조금 안 되었을 때. 그쯤이었을 거다. 선진이···, 아니. 네 엄마를 만난 게.”
이야기가 여기에 닿자, 정환의 머릿속에 하나의 이유가 떠오른다.
한량처럼 지내던 영균이 건실한 가장으로 변할 수 있었던 건 아마.
“아이가 생긴 거 군요.”
정환의 역할이 컸을 것이다.
“그래. 기적이었지. 나 같은 놈에게도 가족이란 게 생길 줄이야. 기뻤다. 진심으로. 그리고···무서웠고.”
담담히 감정을 토로하는 영균의 손에 들린 담배가 아래로 고개를 숙인다.
정환의 고개도 함께 내려갔다.
- 툭, 툭.
영균은 재를 털어내고는 말을 이었다.
“당장에 하던 일로는 가족을 부양할 수가 없었다. 일정하지도 않은 수입에, 미래도 보장할 수 없었지. 밤무대 공연이야 한 번 끊기면 그대로 끝이니까. 다른 일을 찾아야 했다. 헌데, 배운 것도 가진 기술도 없는 놈이 무슨 일을 할 수 있었겠냐?”
“그래서 공무원을 택하신 거군요.”
“음. 고등학교만 졸업한 사람이라면 쉽게 붙을 수 있었던 시기였다. 박봉이었지만, 세 식구 입에 풀칠할 정도는 되었고. 밴드를 접고 곧장 반년을 준비해 겨우 합격했다. 다행히 네가 처음 울던 달에는 월급이란 게 들어오더구나. 아직도 그날이 잊히지 않아.”
무겁다. 전해지는 사연 속에 한 사람의 인생이 담겨있지 않나. 그것도 자신과 관련된 묵직한 인생이.
정환은 고개를 끄덕이며 영균을 따스하게 바라봤다.
“그때 이후론 술을 드시지 않는 거군요.”
“아니. 그건 아니다. 공무원이 되고도 술을 접해야 할 자리는 많았으니. 막내 때는 여기저기 불려 다니기도 하고. 그러던 중···, 그래. 네가 딱 초등학교에 들어갈 무렵이었을 거다.”
영균의 이야기가 정환의 나이를 기준으로 흘러간다. 어쩌면, 이런 게 아버지의 기억법일지도 모른다.
“당시에는 회식을 나이트 크럽 같은 곳에서 하기도 했었다. 단체로 방문해 맥주나 마시고 놀기에는 그만한 곳도 없었거든.”
“지금의 클럽 문화와는 달랐다고 들었습니다. 단체로도 자주 찾는 곳이었다고요.”
“그런 것도 아는 거냐?”
“술과 관련이 있으니까요.”
“음, 그래. 술.”
영균은 술이란 단어에서 잠시 주춤했지만, 아무렇지 않게 말을 이어갔다.
“그때 우연히 옛 친구를 만났다. 같은 밴드에서 기타를 치던 놈이었지. 실력도 괜찮았고 열정은 넘쳤던. 그 나이트 크럽의 무대에서 반주를 하고 있더구나.”
“그때까지 음악을 하고 계셨던 거군요. 결과적으로는”
“음. 밤무대지만, 어쩔 수 있나. 음악으로 성공한다는 게 가당키나 한 소리인지. 그렇게만 살아남았어도 성공한 편이었지.”
“반가우셨을 거 같습니다.”
“암. 반가웠지. 연주도 잘 감상했고. 그래서 공연이 끝난 후 따로 녀석을 찾아갔었다.”
“오랜만에 만난 전우···, 그런 건가요?”
“기대는 그랬지. 들뜨기도 했고. 헌데, 현실은 다르더구나.”
영균의 손에 들린 재가 스스로 떨어진다. 이제는 끝까지 태워진 것 같은 한 대의 담배.
영균은 이를 아직 놓지 않는다.
“뻗어 있더구나. 완전히. 공연이 끝난 지 얼마 지나지도 않은 시간에 말이다. 얼굴은 빨갛고 주변에는 잔뜩 쌓인 술병···, 그리고 풍기는 진득한 술 냄새까지.”
“중독이군요.”
“그래. 중독.”
생계를 위해 꼭 해야 할 일만 끝내고는 그대로 술에 취한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몸을 가누지 못할 때까지.
의외로 이런 모습이, 알콜 중독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술에 잡아 먹힌 게지. 매일 같이 밤무대에서 연주하던 놈이었으니, 받는 스트레스도 많았을 거고.”
“그럼, 그 일 때문에···?”
술을 끊었냐. 정환은 조금은 약해 보이는 사연에 고개를 갸웃했다.
허나.
“궁금해지더구나. 다른 녀석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지. 같이 밤무대를 뛰었던 놈들···. 그래서 소식을 한 번 알아봤다.”
“잘 살고들 계셨으면 좋았을 텐데요.”
“나도 그랬다. 근데, 아니더구나. 베이스를 치던 놈은 죽었고 보컬을 하던 놈은 병원에 있다더라. 기타를 치던 놈은 차라리 잘 된 편이라 해도 모자랄 정도였지.”
- 픽.
영균은 말을 하며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웃었다. 허나, 저 웃음이 그렇게 가볍게 느껴지진 않는 정환이다.
“······.”
“다들 술 때문이었다. 한 놈은 연탄을 태웠는데, 그 자리에는 연주하던 가게의 맥주 궤짝이 연탄을 덮고 있었다더구나. 다른 한 놈은? 제 손목을 긁었다지. 제가 마시던 소주병을 깨트려서.”
영균은 이제야 다 타버린 담뱃재를 재떨이에 비비며 이를 놓았다.
이야기는 종막을 향해 달려간다.
“모두 잡아 먹힌 게야. 술에. 밤무대에, 가라오케에. 다들 술 옆에서 일하니 어찌 그 유혹을 이길 수 있었을까. 어이가 없더구나. 젊었을 때는 함께 마시고 떠들던 놈들이 그렇게 되었다는 그 사실 자체가 말이다. 마치, 내가 겪었을지도 모르는 일처럼도 보이고.”
“······.”
그게 모두 술의 탓은 아니다. 이건 분명한 일.
적어도 정환이 느끼기에는, 이는 모두 사람의 문제였기 때문이다.
허나, 영균의 얼굴을 한 번 본 정환은 감히 그런 항변을 하지 못한다.
“그제야 보이더구나. 같이 술을 마시고 있는 사람들의 얼굴, 표정, 그들의 말투, 또 목소리까지. 점점 잡아 먹히고 있었던 거야, 다들···.”
“거기가 시작이군요. 술을 멀리하신 건.”
“그래. 꼴도 보기 싫었다. 술 근처에서 일하지 않아도 술 주변에 가는 이들. 그리고 또 그 술을 마시고 변해가는 사람들까지. 그리고 그들이 술에 취해갈수록 막 대하는 내 과거의 모습들조차···!”
영균은 눈까지 크게 뜨며 지난날 자신이 본 현장에서 느낀 감정을 전달한다.
영균은, 술 취한 이들이 종업원을 대하는 태도에서 지난날 자신과 함께했던 이들이 술을 찾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찾고 있는 것 같았다.
실제로, 그가 밤무대에서 일할 때도.
그런 일을 많이 겪기도 했었고.
“술을 따르다 보면 온갖 일이 생길 거다. 그리고 손님이 모두 지나간 후 네 귀에는 누가 속삭이겠지. 자신을 마시라고. 뒤를 돌아보거라. 네 뒤에는 뭐가 있냐?”
“술···이 있습니다.”
“그래, 술!”
영균의 고개가 들린다. 애써 보지 않던 아들의 눈을 마주하는 영균.
그의 눈에는 아집도, 또 적대감도. 진한 자기주장도 남아있지 않다.
그저, 남은 거라곤.
무어라 말로 할 수 없는 애잔한 감정뿐이다.
“환아.”
“네···.”
대답하면 안 된다. 바텐더라면. 이를 알면서도 정환은 그대로 답을 해버린다.
“해서, 이 아비는 바텐더라는 직업은 여전히 반대란다. 오늘 바라는 곳을 잘 둘러보았다. 좋은 곳이구나. 손님들 역시···, 나름 신사적이고.”
“······.”
“그런데 말이다. 그게 비단 오늘만의 문제는 아니란 걸 너도 알지 않으냐? 내일은 어떨 거 같으냐? 아니, 어제는 어땠고? 아무런 일이 없었다고. 없을 거라고. 정말 확실히 내게 말할 수 있는 거냐?”
“아버지···.”
정환은 자신을 향해 강경하게 물어오는 영균에게 쉬이 답하지 못한다.
아니라. 자신은 괜찮다. 그렇게 말하고 싶다. 하지만, 그런 말을 하기에는, 조금 전 들은 말이 너무 크다.
바라는 곳에서 일어나는 일이 늘 평화로운 게 아니기도 했고.
“난 네 덕에 술이 있는 밤무대를 나왔고, 친구들 덕에 술자리까지 멀리하게 되었다. 덕분에 술에는 잡아 먹히지 않을 수 있었지. 네게 술을 마시지 말란 말까지는 하지 않으마. 대신···, 바텐더. 그 바텐더란 직업만은 포기하면 안 되겠냐?”
아버지의 애원이 묵직하게 바텐더를 누른다.
이런 사연이 있었을 줄은. 정환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지난 생에는 이미 바텐더라는 직업에 깊이 발을 담근 후였다.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기에는 영균 역시 늦었었다는 말.
만약, 여기서 아들이 흔들린다면. 정환의 회귀는 영균을 위한 것이었을 지도 모른다.
손님의, 아니 아버지의 말을 들은 정환의 눈이 감긴다. 잔잔하게 울려오는 영균의 말.
- 바텐더. 그 바텐더란 직업만은 포기하면 안 되겠니?
그리고 정환의 머릿속에는 영균이 들려준 지난날의 인생까지 함께 흘러가는 중이다.
바텐더란 단어와 영균의 살아온 날이 정환의 머릿속에서 엉켜갔다.
머리가 무거운 듯 고개를 잠시 뒤로 젖혔다가 턱을 당기는 정환. 정환은 서서히 눈을 뜨더니.
“이제는 될 거 같습니다.”
!
의미심장한 말을 하나 남긴다. 짙게 뜬 그의 눈에는 이채가 서려 있다.
“무슨···의미더냐? 바텐더를 포기한다는···?”
혹여나 자신의 설득이 통했을까, 기대하는 눈치의 영균.
하지만.
“아뇨. 손님께, 아버지께 드릴 한 잔···. 그 한 잔이 이제는 될 거 같다는 말씀입니다.”
“너···!”
이 이야기를 듣고도 그런 소리가 나오나. 영균은 그런 말이 목에 걸렸다. 영균의 눈에 다시 적대감이 잠시 찾아왔지만, 정환은 신경 쓰지 않는다.
“드셔보시고 마저 말씀 나누시죠.”
정환은 그런 영균을 차분하게 만들고 있다. 아직은 여지가 있다는 듯한, 애매모호한 말로.
“우선 마시기나 하라는 말이구나. 오냐. 한 번 마셔보자. 내 이야기를 듣고도 네가 만들겠다는 그 한 잔을 말이다. 대신 마신 후에는. 확실히 네 답을 들려줘야 할 게다.”
“감사합니다.”
정환은 한풀 꺾여주는 영균에게 고개를 숙이고는 재료를 챙긴다.
재료는 간단했다. 술병 두 개와 셰이커만이 정환의 앞에 놓였다.
“그래서···, 어떤 술이냐? 내게 줄 술은.”
술에 대해 잘 모르는 영균은 술병과 재료를 보아도 이게 무엇인지 알 수 없다.
바텐더는 자신이 마실 잔을 물어오는 손님을 향해 확신에 찬 눈으로 만들 술을 알려준다.
“제가 대접할 술은, ‘마티니’입니다.”
그의 답이 조금은 의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