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술은 특별합니다-45화 (45/175)

45잔. 바라는 곳.

6.

“아르센의 마스터···, 그러니까 오너, 아니··· 사장. 이명진입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명진은 허리를 잔뜩 접어가며 바 안에 들어선 중년인에게 인사했다.

손님을 맞이하는 그의 자세가 평소보다 더 기합이 들어가 있다.

그럴 수밖에 없긴 하다. 적어도 눈앞에 있는 손님은 평범하진 않은 손님.

그는.

“차정환 아비 되는 차영균입니다. 아들을 맡겨 놓고 이제야 인사를 드립니다.”

소개하는 문구가 예사롭지 않은 사람이었다.

“우선, 앉으시죠. 이쪽으로 모시겠습니다.”

명진은 손수 그를 자리로 안내하며 의자까지 잡아준다. 이는 언제나 정환과 기준의 역할이었던 것.

확실히 지금 방문한 손님이 아르센에 있어서는 귀한 손님인 것 같다.

원래 누군가의 부모란 존재가 그렇다. 제아무리 친한 사이여도 조심스럽고 부담스러운 사람.

그게 바로 타인의 부모란 존재다.

거기에 정환이 막내라는 사실과 또 현재 그 부모란 사람이 이 직업에 반감이 크다는 사실까지 아는 바텐더들은.

더욱이나 정환의 아버지인 영균이 조심스러운 게 당연했다.

한 가게의 주인이자 이곳의 책임자인 명진은 어떻겠나.

딱히 직원에게 관심이 없는 사장이라면 신경 안 쓸지도 모른다.

가볍게 만나고 가볍게 인사만 나누고 끝날 수도 있는 관계.

허나, 명진은.

그렇게 가벼운 마음으로 직원을 품는 사장은 아니었다.

“우선···여기 수건을 받으시고 물이라도 한잔···”

“너무 그러지 않으셔도 됩니다. 평범한 손님이라 생각하시지요. 딱히 따지거나 으름장을 놓으러 온 건 아니니 말입니다.”

“······.”

솔직히 말하자면, 그런 걱정이 전혀 없었다는 것도 거짓말이다. 명진은 그렇게 생각했다.

아들의 말에 강경하게 반대했고 또 격한 대화를 주고받았음을 이미 들었다.

어찌 그런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있겠나.

하지만, 영균 역시.

그리 상식이 통하지 않는 인물은 아니었다.

아, 물론. 아들과의 관계에서는 조금 별나도 말이다.

“너무 그러시면 오히려 불편합니다. 그저···, 어떤 곳에서, 어떻게 일하나. 그 꼴···, 아니. 그 모습이나 한번 보러 온 것이니까요. 신경 쓰지 마십시오.”

어찌 신경이 안 쓰이겠나. 그럼에도 명진은 애써 밝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불편한 시간은 계속됐다. 정우와 기준이 돌아가며 영균에게 인사를 건네는 시간.

그들은 직장의 동료이자 정환과 친한 형으로서 영균에게 짧고 정중한 인사를 건넸다.

적어도 같이 일하는 이들의 모습이나마 바르게 보여주는 게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도움이었다.

“···우린 가만히 있어도 되겠지?”

“조용히 있게. 괜히 나섰다가 무슨 소리를 들으려고.”

“음. 조금 옆으로 갈까?”

“좋은 생각이네.”

영균이 미친 영향은 비단 바텐더들에게만 있진 않았다. 바에서 잔을 들던 손님 중 당황하는 이들 역시 있긴 마찬가지.

조금 전 자신 있게 부모님을 설득하는 걸 돕겠노라. 그리 말하던 두 교수는 슬쩍 자리를 옆으로 옮겨본다.

“이거만 마시고 빠르게 옮기세.”

“그, 긴급 피난이군. 그래, 우선은 밖으로···”

두 사람이 눈앞에 놓인 잔만 비우고 자리를 뜰 준비마저 하려 하자.

“교수님들.”

!

바텐더 중 한 명이 이들에게 다가와, 작은 경고를 준다.

“어디 가실 생각은 아니시겠죠? 지켜보셔야죠. 도움도 주신다더니.”

매니저 신정우였다.

“그, 그게 약속이···”

“집에 일이 있어서···”

변명을 해보는 이들. 하지만, 상대가 좋지 않다.

“흠, 가셔야 한다면 지금 바로 정환이 아버님께 소개를 드려야겠네요. 미리.”

“으응?”

“한 분은 이곳 아르센을 직.접. 추천해주신 분이고. 또 다른 한 분은 정환이 전.공. 교수님이라고요.”

!!!!!!

“크···, 여기가 아니었으면 정환이가 이렇게 빠르게 바텐더가 됐으려나? 아니지. 전공 교수님이 안 말려서 이러고 있는 건 아니려나? 여쭤봐야겠네요, 아.버.님.께.”

“······.”

“······.”

정우의 입이 마저 열리자 두 교수의 얼굴이 사색이 된다. 나름 강단에 서고 있다 보니 두 사람은 잘 알고 있다.

누군가의 부모와 만나는 자리가, 그리 편하지 않은 자리라는 걸 말이다.

거기에 이들은 정환이 바텐더를 하고 있는 것에 작은 지분이나마 가진 이들이다.

바텐더를 반대하는 정환의 아버지와는, 마주치지 않는 게 좋을 지도 모른다.

“그, 야, 약속 취소됐네.”

“나, 난 사실 혼자 사네.”

두 교수는 정우의 손에 의해 간단히 제압되었다. 꼼짝없이 두 부자의 상봉을 지켜봐야 하는 두 사람이다.

도움이야, 아직은 모르는 일이지만 말이다.

정환은 자신이 맡았던 손님들께 하나둘 양해를 구하고는 영균의 앞에 섰다.

아래위로 정환의 모습을 살펴보는 영균의 눈.

“옷은···유니폼이냐?”

“네. 칵테일을 만들 수 있는 바텐더라는 하나의 표시에요.”

“흠.”

제법 잘 어울린다. 그런 생각이 떠오르긴 했지만, 영균은 차마 꺼내고 싶지 않았다.

어떻게든 이곳과 아들이 어울리지 않기를 바라는 게 그의 본심이다.

짧은 대화가 흐르고 고요한 적막만이 감돈다. 조금은 싸늘하게 느껴지는 아르센의 온도.

그런 온도의 중심에는 이 부자가 있다.

“해서···, 뭘 하면 되는 거냐? 이 바라는 곳은.”

“어떻게 오셨는지에 따라 다르죠. 손님으로 오신 건지···, 아니면 가족으로 오신 건지에 따라서요.”

“무슨 차이가 있고? 그 둘은.”

“글쎄요. 저도 자세히 말로 설명할 순 없습니다. 다만···. 손님으로 오셨다면, 적어도 앞에 서 있는 게 아들은 아니겠죠.”

“그렇단 말이지···.”

밖에서 보길 잘했다. 오히려 정환은 이곳을 찾은 아버지를 보며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

집이었다면, 둘의 감정이 한도 끝도 없이 격해질 수 있다. 정환은 직장이라서, 또 영균은 아들의 직장이라서, 그리고 또 보는 이들이 있어서.

둘은 최대한 감정을 절제하며 오랜만에 대화다운 대화를 나눈다.

“손님···이 낫겠구나. 아들과는 사이가 안 좋아서 말이지.”

“손님···이시군요.”

정환은 아버지의 대답을 듣고는 조용히 눈을 잠시 감았다. 호흡을 고르며 숨을 한 번 내어 쉬는 정환의 모습.

- 후우우.

그리고 그가 눈을 뜨자.

“알겠습니다. 그럼···, 지금부터는 손님으로 모시겠습니다.”

어느새 그는 아들의 모습을 지우고는 바텐더의 모습으로 변해있다.

영균은 잠시의 순간이지만 분위기가 달라진 바텐더를 보며 눈을 껌뻑였다.

‘이 녀석···’

나름 분위기를 풍긴다. 그런 생각을 하며 아들을 다시 보는 그.

그런 영균의 앞으로 정환은 능숙한 손놀림을 보여주며 바툴을 챙겨 들었다.

미끄러지듯 옮겨지는 기구들이 제법 화려했다.

“흠···.”

“주문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글쎄···, 술이란 걸 그렇게 안 좋아해서···. 바에서 맥주도 파냐?”

“있긴 합니다···. 생맥주는 아니고 병맥주인데 괜찮으실까요?”

“뭐, 나야 종류는 상관이 없다.”

“네, 그럼. 맥주 준비해드리겠습니다.”

멋들어진 준비자세와 달리 김빠지는 주문이 나온다. 정환은 뒤로 돌아 작은 냉장고에 준비된 병맥주를 하나 꺼내왔다.

주문에 맞게 움직이는 평범한 모습이다. 그래도 이런 정환을 지켜보는 영균의 눈에는 무언가 불편함이 아린다.

‘옷도, 준비도 저리 멋들어진 척을 해도 결국···’

하는 일은 술을 따르는 거다. 그런 생각이 영균의 머리를 스친다.

그는 아들이 잔 하나와 맥주병을 가져오는 모습조차, 그리 마음에 들지 않았다.

차라리 집에서, 또 다른 가게에서라면 아무렇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헌데, 아들이 직원으로 있는 술집에서 손님인 아버지에게 술을 따른다니.

그리고 그걸 평생 업으로 삼겠다니.

영균은 차마 그 모습을 못 보겠는지, 앞에 놓인 병을 향해 손을 뻗었다.

하지만.

“죄송하지만, 손님. 병에는 손을 대시면 안 됩니다.”

단호하게 병을 당기며 이를 막아서는 바텐더. 정환은 손바닥까지 내보이며 영균을 만류한다.

“병에는···손을 대면 안 된다는 거냐?”

“네. 손님.”

“어째서? 고작 맥주 한 잔이 아니냐? 그 정도는 내가 따라 마셔도···”

“고작 맥주 한 잔이라도 바텐더가 직접 따라야 하는 곳이 바라는 곳이니까요.”

!

정환은 한 번 더 단호한 태도로 영균의 말문을 막았다. 이렇게 단호한 아들의 모습을 본 적이 있었던가.

그런 생각에, 영균은 넋을 잃고는 손을 내리고 말았다.

아무 일 아니라는 듯 잔을 내려두고는 맥주병을 따는 정환의 모습.

- 치커엉!

경쾌한 병 따는 소리가 들려온다.

영균은 그 소리가 불쾌해 입을 삐죽여 본다.

고작 맥주 한 잔 따르는 거로 잘난 척이라니. 이런 게 바텐더란 직업의 실체인 걸까.

그의 표정이 조금 더 일그러지려 할 때.

“왜 맥주 한 잔조차 바텐더가 직접 따라야 하는지···, 궁금하신 모양이군요.”

병맥주를 살짝 기울이려던 바텐더가 손님에게 말을 건다.

“그래···. 궁금은 하구나. 맥주는 섞는 것도 없으니, 그걸로 돈값이라도 하겠다는 거냐? 여기 강남은 앉기만 해도 돈을 받는다지?”

“물론 그런 이유도 있습니다만. 그게 전부는 아닙니다.”

“그럼?”

턱을 들며 물어오는 영균의 모습에 정환은 말 대신 행동을 보여준다.

잔을 정확히 자신의 중심 쪽 바 위에 두고 잔 밑 부분을 고정하는 정환의 모습.

보통 맥주를 따를 때면 잔을 꼭 쥐고는 조심스레 기울여 천천히 맥주를 붓는다.

허나, 지금 정환은.

- 솨르르르르륵!

그런 모습 없이 그저 잔만을 고정한 채 거침없이 맥주를 부어 버린다.

- 솨아아아아아!

“그, 그러면···!”

영균 역시 맥주는 마셔본 경험이 있다.

적어도 자신이 알기로는 저렇게 붓는 맥주는 거품이 크게 일어 잔을 넘고는 만다.

아들이 아직 부족한 걸까. 그가 주변까지 살피며 정환이 실수할까 걱정할 때.

- 스윽.

정환은 거기서 맥주병을 다시 기울여 붓는 걸 멈추고 만다.

- 휴우.

크게 한숨을 내쉬는 영균. 혹여나 잔이 넘칠까, 자신이 있는 곳에서 아들이 실수라도 할까 걱정하는 그의 모습.

허나, 아쉽게도.

정환은 지금 실수하고 있는 게 아니다.

정환이 거침없이 부으며 일어나던 거품이 서서히 죽어간다. 그런 거품이 반쯤 죽어갈 무렵.

- 솨아아아.

이번에는 천천히 병을 기울이는 정환. 그런 정환의 손끝에서 흘러나오는 맥주는 서서히 거품을 밀어 올리며 잔을 채워갔다.

조금씩 맥주가 차오른다. 그리고 그런 맥주는, 조금의 넘침도 없이 잔을 정확히 채우고 만다.

적당히 거품이 끼어 겉모습이 보기 좋은 한 잔의 맥주. 정환이 천천히 따르기 시작한 후로는 거품도 더는 생기지 않았다.

“맥주 한 잔을 대접해도 최선의 맛으로 드려야 한다. 그게 바의 기본입니다. 직접 따르실 수···있습니다. 다만, 맛은 다르겠죠.”

“바텐더가 따른 술이 손님이 따른 것보다 더 맛있다? 고작 맥주라도?”

“네.”

“······.”

비꼬는 듯한 자신의 말에도 아들은 단호한 답밖에 하지 않는다.

확실히 언쟁이 붙을 일은 없어 보이는 상황.

영균은 이토록 단호하고 자신감 넘치는 아들의 모습이 익숙하지 않다.

“마셔보면 알겠지.”

영균은 그런 아들의 앞에서 잔을 들고 벌컥! 들이켰다. 평소 술을 즐기지 않는 그지만, 이번에는 거침이 없다.

잔이 영균의 입을 타고 목을 넘어가자, 영균의 눈이 커진다. 극적으로 맛이 변하거나 생전 처음 느끼는 그런 맛은 아니다.

다만, 앞에선 바텐더의 말처럼. 이보다 저 맥주의 맛을 그대로 살린 맛은 없을 것만 같은 느낌이 영균을 스치고 갔다.

“보통은 잔을 기울여 맥주를 따릅니다. 나쁘지 않은 방법이죠. 하지만, 그렇게 되면 기울인 공간을 통해 공기가 섞이게 됩니다. 술에 공기가 더해지면···, 아무리 맥주라도 맛은 변하고 말죠.”

실제로 잔을 기울여 맥주를 따라도 섞이는 공기는 많지 않다. 허나, 이런 미세한 맛을 잡아주는 것이 바텐더의 역할.

정환은 바텐더의 역할을 영균에게 똑똑히 보여준다.

“···흠. 바텐더들이 말은 청산유수라더니. 제법 바텐더 흉내는 내는 모양이구나.”

“아직 바텐더로서 많이 부족하긴 합니다.”

아니다. 이 말을 듣는 이들 중 영균을 제외한 모두가 그게 아님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감히 저 둘 사이에 끼어들어 정환의 실력에 대해 설파할 자신은 없는 다른 이들이다.

“그래. 네가 일하는 모습은 잘 봤다. 대충···, 이런 일을 하는 거구나.”

“아직 다 보여드리진 않았습니다.”

“더 보여줄 게 있단 말이냐?”

그저 술을 따르고 그에 대한 설명을 늘어놓고. 영균은 그런 일이 아들의 직업이라 생각하며 자리를 마무리하려 했다.

여전히 변한 건 없는 그의 마음.

제법 멋들어진 아들의 모습에도. 그는 아직 바텐더라는 직업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영균을 잡아보는 아들, 아니 바텐더의 말.

“칵테일도 드셔보시죠.”

“칵테일···?”

“술이 약해도 편하게 드실 수 있는 칵테일이 있을 겁니다. 괜찮으시다면, 제가 한 잔 대접하겠습니다.”

술을 즐기지 않는 사람이다. 정환은 영균이 강한 술을 좋아하지 않을 거라 생각해 에둘러 설득하는 말을 해본다.

“···술이 강하지 않아도 된다라···”

영균은 여기 있는 자신의 존재가 다른 이들에게 얼마나 불편한지 알고 있다.

그럼에도 바텐더가 자신을 잡는다는 건, 어쩌면 자신이 정말로 아직은 바에 대한 걸 전부 보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여기 바 안에서 봐 온 아들은, 바텐더로서 자신의 모든 모습을 보여주려 자신에게 노력하고 있다.

그런 아들이라면. 칵테일까지는 맛보란 말이 허투루 하는 소리는 아닐 것이다.

“···그럼, 딱 한 잔. 시간도 있으니, 딱 한 잔만 더 마셔보고 일어나도록 하마.”

“감사합니다.”

이제는 대화가 조금 통한다. 한 사람이 무언가를 말하면 상대는 그 뜻을 이해하려 노력하는 그런 대화.

정환은 기쁜 마음에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그런 정환에게.

“대신···. 굳이 약한 술을 줄 필요는 없다. 네 생각처럼 술이 약한···사람은 아니니.”

“네?”

조금은 새로운 말을 들려주는 영균.

“술을 마시지 않는 거지 못 마시는 건 아니니···.”

“······.”

정환은 영균의 말을 듣고는 생각이 많아진다. 그간 아버지의 모습을 봐오면서 예상했던 건 여러 가지가 있었다.

술이 약할지도 모른다는 생각, 또는 술에 대해 안 좋은 기억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등.

어쩌면, 이 자리에서.

그런 아버지에 대해 정환은 더 알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해서···, 칵테일은 뭘 마시면 되는 거냐? 주문을 하려 해도 아는 게 없으니···.”

영균은 아들이 대접하겠다는 칵테일에 대해 묻는다.

이런 손님, 이런 아버지께는 어떤 한 잔을 드려야 할까.

잠시 고민하던 정환이 이내 고개를 끄덕이고는 백 바를 향해 손을 뻗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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