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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술은 특별합니다-42화 (42/175)

42잔. 다녀오겠습니다.

1.

새로운 신입 바텐더가 지인들을 초대했던 강남의 작은 바, 아르센.

소소하지만, 나름은 흥미로운 사건이 있었던 아르센은 하루가 지나자 어느새 여느 날과 같은 안정이 다시금 찾아왔다.

이 또한 ‘바’라는 곳의 특성일지도 모른다. 누구에게는 제법 큰일들이, 누구에게는 제법 구구절절한 사연들이.

결국에는 바텐더에게도, 바에 앉은 또 다른 손님에게도. 하룻밤의 작은 소동에 불과하다는 특성 말이다.

“그래도 과했어.”

“네···?”

“어제 말이야. 교수님들이 이해해주셔 망정이지, 기분 나쁘셨다면 자리를 박차고 나갔을 수도 있다고.”

“아, 네···. 죄송해요, 정우 형···.”

제아무리 작은 소동이래도 없는 것보단 존재감이 큰 법. 아르센의 매니저 신정우는 작은 소동을 일으켰던 신입에게 한소리를 남겨본다.

“딱히 뭐라 하려는 건 아니지만···, 다음부터는 조심해줘. 김태현 교수님이야 자주 다니신 분이지만··· 다른 한 분은 아니잖아? 너도 손님으로 모신 건 처음이었고.”

처음은 아니다. 오래도록 손님으로 모셨고 그의 특성, 또 그의 성정 등을 모르는 것 역시 아니다.

세상의 어느 바텐더보다 지동철 교수라는 사람을 잘 알고 있을 이가 바로 자신.

허나, 이를 밝힐 수가 없는 정환은 입이 있어도 할 말이 없다.

“조심하겠습니다. 제가 의욕이 과했어요.”

“그래, 정환이 너도 나쁜 의도로 그런 건 아닌 거 알아. 일도 잘 풀렸고. 그래도 조심해줘.”

“네, 형.”

정우는 크게 정환을 다그치진 않았다. 애초에 잘 풀린 일에 입을 대는 스타일도 아니었고.

다만, 정환에게 한 번쯤은 이렇게 주의를 주는 사람이 있노라.

정우는 그것도 알려주고 싶었다.

실력이 넘치고 비범함이 가득한 신입이다. 언제고 이런 이들은 한 번쯤 제풀에 넘어지는 법이 있다는 게 정우의 생각이었다.

그를 잡아주는 게 선배이자 형이고 관리자의 역할. 정우는 오늘, 매니저로서 또 형으로서. 자신의 일을 다 했다.

“너무 뭐라 그러지 마세요. 마스터도 괜찮다 하셨잖아요.”

영업 준비를 마친 기준이 풀이 죽어 보이는 정환의 편을 들어준다.

“그래. 여기까지만 하자. 내 스타일도 아니고. 정환이가 잘하겠지. 그냥 그렇게 보는 사람이 있다고만 알아줬으면 해. 손님들도 그렇고.”

“정우 형도 걱정돼서 이러시는 거야. 알지?”

“네, 제가 과했던 거 같아요. 해주신 말씀 명심하겠습니다!”

정환은 여느 때와 같이 밝은 신입의 모습으로 정우의 말을 받는다.

정환이 정말 신입이었다면 반발하고 반항심이 들었을지도 모른다.

잘 풀린 일이고 그날은 온전히 정환의 날이 아니었나. 허나, 이미 관리직을, 또 선배란 위치를 경험한 정환은 정우가 저런 말을 꺼내는 심정을 모르지 않았다.

“그나저나 걱정이네요. 다시 안 오는 건 아니시겠죠?”

“모르지. 앞에서야 아무렇지 않게 넘어가셨지만, 또 돌아간 후 생각이 바뀌셨을 수는 있으니까.”

기준과 정우는 전날 있었던 일을 회상하며 두 교수의 다음 행보를 예측해본다.

바라는 곳이 그렇다.

잔을 내어주고, 또 나가는 손님을 배웅하며 오늘 하루가 어땠는지를 묻는다.

웃으며 답해주는 이들이 다수인 당연한 결과.

누가 바텐더가 보는 앞에서 굳이 싫은 소리를 하려 하겠나. 앞에서야 괜찮았노라, 좋았노라. 그런 말을 던지고는 뒤돌아 다시는 찾지 않는 이들 역시 없진 않았다.

그렇기에 바텐더가 손님을 대할 때는 더욱 신중하게 된다. 세세하게 무엇이 부족하다, 무엇이 별로였다. 그런 말을 남겨주는 손님은 극소수다.

정말 바텐더가 부족했고, 또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게 있었다면.

손님은 자리에서 일어나 웃으며 인사를 건네고 돌아서 밖으로 나간다.

그리고 그는 다시는 그곳을 찾지 않을 뿐이다.

정우가 걱정하는 건, 정환이 이런 경험을 하지는 않을까 하는 그런 점도 없진 않았다.

정우가 걱정하는 것처럼 어제 들렸던 두 교수 역시 다시는 이곳을 찾지 않을 수도 있다.

바에 대해 자존심을 내세웠고 이는 젊은 바텐더의 앞에서 깨졌다.

거기에 직접적이지는 않았지만, 잔을 통해 들은 간접적인 교훈까지.

바텐더와 손님의 나이 차를 고려한다면, 이들이 불쾌했을 수도 있을 테니까.

“뭐, 그래도 또 오셨으면 좋겠네요. 두 분···, 바에서는 괜찮은 분들이셨는데.”

“이미 우리 손을 떠난 일이야. 미련 두지 말자고. 정환이가 제일 아쉽겠지.”

“그것도 그렇네요. 그래도 정환이 손님들이셨으니까.”

둘은 두 교수가 다시는 이곳을 찾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아쉬움을 잔뜩 얼굴에 안고 있었다.

바에 대해 잘 아는 손님을 잃는 건 바텐더로서 아쉬운 일이다.

그렇게 바텐더들이 어제를 떠올리고 있을 무렵.

- 딸랑.

아르센의 문이 열리면 한 무리의 일행이 안으로 들어선다. 손님이 온 걸까.

바텐더들의 고개가 일시에 돌아갈 때. 아르센의 입구에는 손님이 아닌 다른 익숙한 신형이 드리운다.

“마스터. 오셨군요.”

아르센의 마스터 이명진이 뒤늦은 출근 도장을 찍는다. 그리고 그런 명진의 뒤로.

“음. 나도 왔네만!”

“흡흡. 너무 일찍 온 건지도···.”

익숙한 모습의 두 중년인이 아르센의 안으로 들어선다. 전날 이곳을 방문했던, 그리고 정우와 기준이 다시 찾지 않으면 어쩔까 걱정했던.

김태현 교수와 지동철 교수였다.

“교수님!”

“오셨군요!”

정우와 기준은 아쉬움을 담았던 만큼 반가운 표정을 더 담으며 그들을 맞이한다.

혹여나 다시는 찾지 않지 않을까 걱정했던 이들을 마주한 바텐더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어난다.

오히려 이들을 직접 상대했고 혹여나 기분 나쁘게 만들었을지도 모를 젊은 바텐더, 차정환만이.

아무런 표정의 변화 없이 이들을 맞았다.

마치, 이들이 다시 찾을 걸 알고 있었다는 이의 표정이다.

“어서오세요, 교수님들.”

“음. 뭐. 이제는 자유롭게 와도 된다고 들어서. 난 원래 단골이기도 하고.”

“우연히···, 마주쳤네. 이 앞에서 말이지. 어쩌다 같은 바에 다니게 되어버렸군.”

아마 우연은 아닐 거다. 둘은 알게 모르게 서로의 스케줄을 흘렸을 거고 맞는 시간을 찾아 이 앞에서 마주했을 것이다.

허나, 정환은 이를 그저 모른 척 해본다.

“그러셨군요. 우연이네요. 우선 여기 앉으시죠.”

마치 전날 아무 일이 없었다는 듯 둘을 대하는 정환. 정환은 아무렇지 않게 둘을 나란히 앉히고는 잔을 대접했다.

누구도 전날에 있었던 일에 대해 언급하는 이는 없었다.

다만, 두 손님의 주문이.

“오유와리로 하지.”

“사이드카 부탁하네.”

를 거친 후.

“사제락.”

이란 주문에 닿았다는 것. 그리고 그 사제락이 한 번 더 주문된 뒤로는 둘 사이로 잔이 교차했다는 것.

그런 사실들만이 전날을 짐작케 하고 있을 뿐이었다.

“괜한 걱정이었네요. 이렇게 금방 다시 찾으실 줄은···.”

“그러게···. 나 괜히 한 소리 했나?”

“그냥 넘어가요. 정환이도 신경 안 쓰는 거 같으니까.”

“그, 그게 낫겠지?”

정우만이 멋쩍은 듯 뒷머리를 긁고 있다.

두 교수는 자리에 앉아 조용히 잔을 들었다. 둘 사이로 잔이 몇 번 오갔지만 깊은 대화는 없다.

감탄사만 몇 번 토한 이들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각자의 시간을 즐길 뿐이다.

아르센은 어제의 시끌벅쩍한 하루가 마치 없었던 일인 듯 평화로운 영업을 이어갔다.

“마르가리타요.”

“마스터, 전 솔티독요!”

“이거, 맛이 예술인데? 누구야? 정우 씨야?”

“정환 씨가 한 잔 만들어줘. 머리 올리자고. 뭐? 이미 데뷔전을 했다고? 이런···”

“그래서, 내가 이 잔을 마시는 이유는···”

평범한 대화가 오가는 바 안. 싸움도, 내기도 또, 오늘은 아무런 사건도 없는 아르센은 평범하게 폐점 시간까지 내달렸다.

이제야 찾아온 온전히 바텐더들만의 시간.

“저, 마스터.”

그리고 그런 바텐더들의 시간에 마스터를 향해 다가가는 정환.

“네, 정환 씨. 무슨 일이죠?”

정환은 마치 무거운 말을 꺼낼 것처럼 몸을 쭈뼛거린다.

“내일 말씀입니다만···. 하루 정도 스케줄을 바꿀 수 있을까요?”

“흠, 내일이요? 저야 나올 예정입니다만, 기준 씨가 어떨지 모르겠네요.”

“저요? 전 괜찮습니다. 대신 다른 날 하루 바꿔줄 거지?”

“네, 물론이죠. 내일이 아니면 시간이 없을 거 같아서요.”

“다녀오세요. 셋만 채워진다면 문제없습니다. 주말도 아니니까요.”

하루 스케줄을 바꿔 쉬고 오겠다는 말. 그리 크지 않은 말이지만, 정환으로서는 처음 꺼내 보는 말이다.

“헌데···, 무슨 일이 있나요? 처음 있는 일인 거 같군요.”

“아뇨. 그런 건 아닌데···, 다녀올 곳이 있어서요.”

“음. 개인적인 일인 모양이군요. 알겠습니다. 다녀오세요.”

명진은 물을 법도 한 상황에서 직원의 사생활을 지켜준다. 다만, 이런 말을 받는 직원이 스스로 말하고 싶어 하는 눈치였지만.

“···본가에 다녀올까 합니다.”

“본가···라면?”

“부모님께 이제는 말씀을 드려야 할 거 같아서요.”

!

부모님.

단지 작은 세 글자가 토해졌음에도 바 안을 움직이던 다른 바텐더 셋의 움직임이 일시에 멎었다.

이들은, 정환이 하는 말과 하려는 말을 직감적으로 알아챈 것처럼 보였다.

“너···, 아직 말씀 안 드린 거야?”

얼른 다가와 말을 보태는 신정우 매니저. 그는 정환의 말 속에서 맥락을 단박에 잡아냈다.

“네. 아직은···”

“하, 얘도 대책 없는 애였네.”

“전 이해합니다···. 저도 그랬거든요. 아마 반대하시는··· 걸 겁니다. 무섭겠죠, 정환이도.”

기준 역시 어느새 정환의 곁에 다가와 있다. 자연스레 바텐더들의 담화가 열린다.

“뭐, 다들 그렇긴 하지···. 나도 뭐 순탄하게 바텐더가 된 건 아니니까.”

“형도 부모님께서 반대하셨었군요?”

“응. 심했지. 바텐더 하겠다고 말했던 그때···. 비 오는 날 먼지 나는 거 처음 봤다, 난. 으으.”

“저도 한 며칠 쫓겨났었죠. 처음 면접 보고 온 날.”

둘은 가만히 있는 정환을 두고는 자신들의 지난날을 회상한다.

바텐더라면 언제고 한 번쯤은 겪는 일이 이런 것이다.

아직 바에 대한 인식도, 또 바텐더에 대한 인식도 한국이라는 나라 안에서는 열악하다.

해외에서야 전문직으로도 분류한다는 직업이 바텐더지만, 한국에서는 술이나 따르는 사람으로 취급하는 이들도 적지 않은 직업이 바텐더였다.

특히나 ‘부모’라 불리는 기성의 세대에게는.

바텐더란 직업에 대한 인식이 처참한 것은 말로 더할 필요가 없을 정도였다.

“흠···. 그런 사정이 있었군요. 혹, 내일 꼭 가야 하는 이유라도 있는 건가요?”

“아뇨···. 딱히 그런 건 아닌데, 데뷔도 했고 마침 내일이 아버지께서 쉬는 날이셔서요. 주말은···바에 나와야죠. 평일에 쉽게 뵐 수 있는 분은 아니셔서요.”

정환은 밝게 웃으며 답했지만, 표정에 무언가 그늘이 함께하는 모습이다.

앞선 선배 바텐더들의 말을 들으니 더욱 그런 그림자가 진하게 전해져 온다.

이런 상황에서 정환을 고용한 고용주는 어떤 말을 들려줘야 할까.

노련한 바텐더인 명진도 사실.

이런 가족 사이의 일에는 감히 끼어들어 조언을 건넬 수가 없다.

- 투욱.

명진은 그저 가볍게 정환의 어깨로 손을 올리고 따스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잘 다녀오세요. 가게는 걱정하지 말고. 혹여 시간이 더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말씀하세요.”

“네, 마스터.”

“그리고···”

명진은 말끝을 흐리고는 백사이드로 들어섰다.

잠시 기다리란 제스처를 펼친 그는 무언가를 분주히 찾더니 오래 걸리지 않아 다시금 바 안으로 들어섰다.

“이걸···, 이렇게 드리려던 건 아닙니다만, 오늘 드리는 게 맞는 거 같군요.”

그리고 정환을 향해 무언가를 건네는 명진의 모습. 그의 손에는 작은 상자가 하나, 묵직하게 들려있다.

“이건···?”

“가져가세요. 혹시나 도움이 될지도 모르니까요.”

정환은 조용히 명진이 건넨 물건을 바라봤다. 그리고 다가서는 선배들.

“명함이군요.”

“이야, 언제 이런 걸 준비하셨대? 빠르시네요.”

“조금 더 있다 드리려 했습니다만, 지금 드리는 게 맞는 거 같군요.”

“그렇죠. 보통 프론트에 서고 한 달을 채워야 주시니까요.”

“저도 그때 받았었죠.”

프론트에 서고 한 달이 지난 뒤에야 명함을 준다. 이건 아르센에서 그를 한 명의 바텐더로서 인정한다는 전통.

하지만, 명진은 그런 전통을 오늘 한 번 깨어 본다.

정환은 명진이 건넨 명함집에서 하나의 명함을 꺼내 들었다. 빳빳한 하얀 종이에 그려진 지팡이를 든 검은색 신사의 모습.

그리고 그런 신사의 모습 뒤로는.

- Arsene’s Bartender 차정환.

이라는 글이 멋들어진 필체로 휘갈겨져 있다.

따라오는 가게의 주소와 전화, 정환의 개인 번호까지.

정환은 한 명의 바텐더로서 자신의 명함까지 가지게 되었다.

“···감사합니다.”

“당연히 드려야 하는 겁니다. 조금 이르긴 했지만요. 가져가세요. 그리고 당당히 보여드리세요. 아르센의 바텐더로서.”

“···네. 꼭.”

“그리고···. 돌아오세요. 기다리겠습니다.”

명진은 그 말만을 남기고는 정환의 어깨를 한 번 더 쓰다듬었다.

무어라 말을 보탤 수는 없다. 이건 정환과 가족 사이의 일이니까.

그럼에도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응원을 보내본다.

“그냥 몇 대 맞아. 그리고 튀어. 나중에는 이해해주신다고.”

“잘 말씀드려 봐. 진심은 통하니까.”

선배들의 진심 어린 조언을 마지막으로, 아르센은 영업을 끝마쳤다.

그렇게 날이 조금 밝고 시간이 흐른 오후 무렵이 되어서야.

정환은 고향으로 가는 버스에 오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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