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잔. 감각의 함정.
7.
“롬···뭐라고···?”
“위드 어 뷰···. 이 사람아.”
“크흡. 어쨌건···, 처음 듣는군.”
“나 역시 마찬가지일세.”
바에 대한 지식으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두 사람이 앞에 놓인 칵테일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어 보인다.
둘은 처음 보는 칵테일을 보며 그저 입맛만 다실 뿐이다.
정환은 잔을 바라만 보는 두 사람에게 작은 메모지 하나와 펜을 건넨다.
“드신 후 예상되는 재료를 적어주시면 됩니다. 들어간 재료는 총 5가지. 얼음을 뺀 재료들입니다.”
“···5개를 모두 맞춰야 하는 건가?”
“아닙니다. 두 분 중 많이 맞추신 분이 이기시는 겁니다.”
“자네가 이기는 조건은 우리 둘이 무승부일 때, 그리고 그 무승부가 만점이 아닐 때만이다···이거고. 맞나?”
“정확하십니다.”
두 교수는 한 번 더 승리 요건을 따져보고는 잔을 앞으로 당겨갔다.
준전문가답게 외관, 향, 가니쉬, 그리고 얼음의 모양까지 섬세하게 살펴보는 두 사람.
둘은 처음 보는 칵테일에 설레는 표정과 승부에서 이기고야 말겠다는 결연한 표정을 동시에 지어가고 있다.
“천천히 드셔보시죠.”
칵테일을 만들어낸 바텐더만이, 이들보다 여유로울 뿐이다.
‘아마 드셔도···’
모를 거다. 정환은 속으로 그런 확신을 가지며 두 교수를 재촉했다.
조금은 미안한 일이지만, 모던 칵테일인 이 ‘롬 위드 어 뷰’는 2011년에야 미국의 ‘밀크 앤 허니 바’에서 처음으로 선보여진 칵테일이었다.
정환이 손님들에게 자신 있게 이름을 알려 줄 수 있었던 이유 역시 이것.
‘롬 위드 어 뷰’란 칵테일이 바다를 건너와 한국, 그리고 다른 아시아 등의 국가에서 유명해지는 건 적어도 지금으로부터도 1년, 어쩌면 그 이상의 시간이 지난 이후쯤의 이야기다.
설령 저들이 이 칵테일의 유례에 대해 안다고 해도 둘러댈 말쯤은 충분히 있다.
2012년은 이미 손에서도 인터넷 검색을 할 수 있는 시기.
정환은 인터넷을 통해 이를 공부했노라, 변명까지 준비해둔 상태였다.
물론, 진실은 그가 이전 생에서 직접 배웠다는 것에 있지만 말이다.
진실을 모르는 두 교수는 한참을 더 잔을 노려보고 나서야 잔을 들어 올린다.
당연하다는 듯 코로 잔을 가져가는 둘.
둘은 노즈를 맡으며 다양한 표정을 지어간다. 처음 맡아보는 향에 즐거움을, 난제를 만나 당황스러움을 동시에 품어보는 두 교수.
고개를 끄덕이던 둘은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탄산이 더해진 술인 만큼 한 번에 벌컥거리며 들이켜 보는 둘.
청량함을 잔뜩 느낀 두 사람이 잔에서 입을 떼고는 이내.
“으흠!”
“크흐!”
라는 감탄사를 내질러 버린다. 내기를 따져보기 이전에, 탄산이 전부 살아있어 정말로 잘 만든 칵테일이 목을 타고 넘어갔다.
칵테일을 만드는 것에 있어서 탄산을 살리는 것 역시 바텐더의 역량이다.
다른 건 몰라도 우선 이 칵테일을 만든 바텐더의 실력이 최고란 것만큼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맛은 괜찮으신지요?”
“흠···. 내기 중인데도 맛을 신경 쓰는 건가?”
“참. 집중을 못 하게 만드는군.”
언제나처럼 맛을 물어오는 바텐더에게 두 교수는 웃으며 쓴소리를 들려준다.
다른 이였다면 당장 핀잔이 나왔을 상황에도 둘은 정환에게 다정할 뿐이다.
“최고의 맛이네. 이런 칵테일을 이런 기회로 맛보는 게 아쉬울 정도로.”
“아까부터 옆 사람과 말이 통해 기분은 자꾸 나쁘네만, 나 역시 마찬가지네. 이게 자네 오리지널인가?”
“아뇨, 이미 있는 칵테일을 만들어 봤습니다. 제가 만든 칵테일은 아닙니다.”
“흠. 그렇군. 과일 풍미도 좋고 적당히 술의 묵직함도 느껴지네. 좋은 칵테일이야.”
칵테일에 대한 소감을 들려준 두 손님은 다시금 내기의 참가자로 돌아섰다.
한 손에는 잔을, 다른 손에는 펜을 든 두 사람의 모습이 바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광경은 아니다.
늘 문제만 내어오던 이들이 이제는 문제를 풀고 있다. 얼마 만에 접하는 풍경일까.
- 스슥, 슥.
한 모금에 한 글자씩.
두 사람은 그렇게 20여 분을 써가며 칵테일을 맛봤다.
기다란 잔의 칵테일은 얼음이 녹아가며 점점 맛이 변한다. 그렇다면, 그 속에서 진해지는 재료의 맛이 있고 또 연해지는 재료의 맛도 있는 법.
이를 잘 아는 두 사람은 찬찬히 이를 기다려가며 칵테일의 모든 맛을 혀로 체험하려 했다.
- 딸그락.
마지막으로 김태현 교수가 잔을 내려놓자, 얼음끼리 부딪치는 소리가 울리더니 이내 잔이 바닥을 보인다.
둘은 그와 동시에 메모지를 휩쓸던 펜마저 내려두었다.
“전부 쓰셨습니까?”
“뭐···, 우선은.”
“개성이 약하지는 않더군. 어렵지는 않았네.”
둘은 메모지를 테이블에 올리고 정환에게 건넸다.
5개의 항목은 모두 채운 둘이다.
“아메리카노의 트위스트였던 거 같더군.”
너무 자신만만했던 덕일까. 지동철 교수는 안경을 한 번 쓰윽 올리고는 묻지도 않은 설명을 덧붙였다.
아메리카노는 캄파리와 스위트 베르무트를 섞어 소다수를 더하는 클래식 칵테일의 일종으로 얼핏 보면 앞의 칵테일과 제법 닮은 칵테일이었다.
“흥. 아메리카노와 맛이 비슷한 것쯤이야. 잘난 척은 여전하군.”
“아메리카노의 맛을 느꼈으면 그렇게 시간이 오래 걸렸다?”
“시끄럽네. 채점이나 기다리세. 그냥 천천히 쓴 것이니.”
바텐더는 분명 이들에게 5종류의 재료를 맞추라 말했다. 아메리카노에 들어가는 캄파리와 베르무트, 소다수를 빼면 단 두 개만이 남는 상황.
정확히 따져보면, 이번 문제는 그저 아메리카노란 칵테일에 정환이 무엇을 더했느냐. 그게 이번 문제의 핵심일지도 모른다.
정환은 두 교수가 제출한 답안을 살펴봤다.
다섯 개의 재료를 모두 채운 두 교수의 답안을 보고는 슬며시 웃어 보이는 바텐더의 모습.
“왜 웃나? 승부가 난 건가?”
“흠, 문제가 생각보다 쉬웠는데···. 내가 저치를 과대평가한 모양이군.”
보채오는 두 교수를 향해 정환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답안지를 돌려 보여준다.
“한 번 서로의 답을 살펴보시죠.”
각자가 적어낸 답안지가 아닌, 상대의 답안지를.
“······.”
“······.”
이건 무슨 의미일까. 자칫 자존심 싸움이 될 수도 있는 상황.
그런 상황에서도 궁금증은 도저히 참을 수 없다.
“이리 주게.”
“나도.”
서로가 상대의 답안지를 휙! 낚아채 간다.
그리고 이를 확인한 둘은.
!!!!!
깜짝 놀란 표정을 하며 서로를 얼굴을 연신 번갈아 볼 뿐이다.
둘의 답안지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히 같은 재료를 적어둔 상태였다.
“흠···, 제법이라 해야 하나?”
“승부가 나지 않은 거군.”
둘은 입만을 삐죽거리며 무승부를 아쉬워한다. 자신들의 답이 틀렸을 거란 생각은, 전혀 하지 않는 둘이다.
뭐, 나름대로 일리 있는 추론일 수 있다.
적어도 베이스가 되는 칵테일이 아메리카노라는 것까지는 둘 모두 알아챘고 나머지 하나 역시 처음부터 강하게 느껴졌던 향과 맛이었다.
문제가 너무 쉬웠다는 평이, 틀린 평이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기는···, 제가 이긴 거 같군요.”
!!!
이어지는 바텐더의 판정은, 둘의 무승부가 아닌 자신의 승리를 선언하고 만다.
“그게 무슨 소리인가!”
“어허! 자네!”
발끈하는 두 교수. 둘은 슬쩍 몸까지 일으키며 조금 전처럼 언성을 높여 본다.
허나, 단호한 정환의 표정이. 자신의 말이 거짓이 아님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캄파리, 드라이 베르무트, 소다수, 그리고 자몽즙과 시럽! 그게 아니란 말인가?”
“말도 안 되는 소리. 다른 재료가 들어갔을 리는 없네. 도대체 뭐가 틀렸다는 말인가? 아니, 둘 모두가 같이 틀렸다면 대체··· 뭐가?”
정환이 앞서 선언한 자신의 승리 조건은 둘의 무승부와 둘 모두 만점이 아닐 경우가 동시에 충족되어야 했다.
그렇다는 말은 지금 제출된 둘의 답이 동시에 틀렸다는 말.
두 교수는 무엇이 틀렸는지, 당최 알 수가 없다.
“예상 가능 재료가 없으신지요?”
여유롭게 반문하는 정환의 말에 두 교수는 잠시 입을 닫아본다.
혹여나 자신들이 실수한 건 없나 맛을 되돌아보는 둘.
“드라이 베르무트가 아니라 스위트 베르무트인가?”
“아니. 그건 아니지. 스위트는 특유의 단맛이 있으니. 자몽즙과 시럽이 아니라 자몽 주스를 쓴 거군! 원래 당이 포함된···!”
“바보 같은 소리! 그럼 재료가 하나 줄지 않나. 5개란 말을 못 들은 건가? 자몽 맛이 옅은 건 분명 자몽즙의 맛이네. 달콤한 향은 시럽이 분명했고!”
“뭐야?”
한 번 불붙은 둘의 논쟁이 다시금 격화된다.
이를 종결 시킬 방법은, 아마 하나뿐일 것이다.
“자자. 두 분 이제 진정하시죠. 제가 답을 공개하겠습니다.”
둘 사이를 슬쩍 갈라놓고는 뒤에 두었던 재료들을 꺼내오는 정환.
정환은 이들이 보는 앞에서 똑같이 ‘롬 위드 어 뷰’를 다시 만들어 낼 모양이다.
“처음부터 만드는 과정을 보여드리겠습니다. 그래야 판정에 이의가 없으실 테니까요.”
“맛까지 봐야지. 같은 칵테일인지···, 자네를 믿지만, 우리도 확인은 해야 하니.”
“오해는 말게. 자네가 우릴 속일 거란 생각은 하지 않네. 속인다 해도···, 나름 좋은 의도겠지. 허나, 알지 않나. 민감한 주제인 만큼 철저히 확인하고 싶을 뿐이네.”
방법은 정해졌다. 정환이 이들의 눈앞에서 다시 칵테일을 만들고 이들이 다시 맛을 보는 것.
정환은 미소로 이들의 말을 받아들였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천으로 병을 감싸 감춰두었던 재료들을 하나씩 열어 보이는 정환.
정환은 그렇게 셰이커를 준비해 다시금 ‘롬 위드 어 뷰’란 칵테일을 만들어 갔다.
제일 처음 그의 손이 향한 곳은 캄파리의 술병. 붉은빛에 쌉싸름한 맛이 도는 식전주로 제격인 술이었다.
“역시. 아메리카노 베이스가 맞았군.”
“흥. 그걸 아는 게 뭐 대수라고.”
캄파리 특유의 쌉싸름함을 느꼈던 둘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답이 맞았음을 확인했다.
그리고 연달아 움직인 정환의 손은 드라이 베르무트로 향한다.
와인에 다른 약초와 재료를 더해 만든 강화 와인인 베르무트는 포도 특유의 향을 전부 지우지 못해 두 교수의 혀에 그대로 걸리고 말았다.
“여기까지는 아메리카노가 맞는데···”
“답은 뒤에 있다는 거군.”
원래라면 여기 바로 탄산수를 더해 완성하는 게 아메리카노란 칵테일.
허나, 정환의 손은 아직 셰이커를 닫지 않았다.
무언가 더할 재료가 있다는 뜻이다.
두 교수 역시 이를 모르지 않았다. 둘 모두의 입에는 강하게 걸리는 한 과일의 맛과 향이 있었기 때문이다.
색부터 그 과일의 색을 닮았었고 또 맛까지 완벽하게 그 과일과 일치했다.
자몽(grapefruit).
이들은 여기 자몽이라는 재료에서 승부가 갈렸을 거라, 그렇게 확신하고 있다.
이전부터 언급되던 자몽은, 두 교수 모두가 확신하는 재료 중 하나였다.
둘은, 다른 과일 따위는 애초에 머리에 떠올리고 있지 않아 보였다.
자몽즙을 썼을까, 아니면 자몽 주스와 또 다른 재료? 아니면, 자몽을 재료로 만든 다른 리큐르?
둘의 의문이 뭉쳐져 정환의 손에서 시선으로 발할 때.
!!!!!!
정환의 손은 둘의 예상과는 전혀 다른 과일로 움직이고 만다.
“자, 자네 지금···!?”
“라, 라임···?”
전혀 생뚱맞은 과일은 아니다. 가니쉬로는 분명 라임이 들어가 있었으니까.
허나, 맛에서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던 라임의 산미에, 둘은 경악하는 표정을 짓고 만다.
손님의 반응이야 어떻든, 바텐더는 본분에 충실한다. 어느덧 라임을 모두 짜 셰이커에 넣은 그는 설탕 시럽마저 셰이커에 넣고는 뚜껑을 닫았다.
말 그대로.
모든 재료를 전부 넣은 것이다.
캄파리와 드라이 베르무트, 그리고 라임즙과 설탕 시럽. 이제는 마지막에 채워줄 탄산수만이 남은 상태.
즉, 이들의 답은 자몽에서부터 틀렸었다는 뜻이다.
“······.”
“······.”
입을 닫은 두 중년인의 앞에서 바텐더는 경쾌하게 셰이커를 흔든다.
소리와 대비되어 더욱 초라하게 보이는 두 사람의 모습.
- 샤카! 샤카! 샤카!
셰이커는 손님의 마음도 모르고 무심하기만 할 뿐이다.
- 촤르르르륵, 촤악!
그대로 얼음이 든 잔에 부어지는 결과물. 정환은 그곳에 탄산수를 부은 후 라임을 한 조각 더해 칵테일을 완성한다.
“롬 위드 어 뷰. 다시 나왔습니다.”
- 스윽.
이를 다시 밀어내는 그의 손끝에는 웃음이 아려있다.
“···이게 정말 조금 전에 그 칵테일과 같은 칵테일이란 말인가?”
“믿을 수가 없군···, 라임이라니.”
라임은 칵테일의 재료로 가장 많이 쓰이는 과일 중 하나였다. 즉, 친숙하고 칵테일에 대해 조금만 아는 이들이라면 놓칠 리가 없는 맛이란 뜻.
특유의 산미 역시 강하기에 바를 제법 다녔다는 이들이 잡아내지 못했을 리는 없었다.
두 교수는 자신들이 눈으로 본 걸 전부 믿지 못한다.
“드셔보시죠. 확실한 게 좋으니까요.”
자신만만하게 둘을 향해 손을 내미는 정환.
당당한 바텐더의 태도에도 둘의 의심은 변함이 없다.
“흐음. 그럼!”
“확인해 보겠네!”
둘은 낚아채듯 잔을 가져가 자신의 입으로 향했다. 노즈고 팔레트고 피니쉬고.
그런 개념은 이제 필요가 없다.
그저 맛. 맛이 조금 전의 그 칵테일과 같으냐. 오로지 그것만을 바라보며 술을 삼키는 둘.
- 벌컥! 벌컥! 벌컥!
마치 의심을 표출이라도 하듯 거칠게 들이켜는 두 사람의 입으로 술이 들어가자.
!!!!
“이, 이게 왜??”
“······!!!”
둘은 어느 때 보다 커진 동공으로 눈을 맞춘다. 방금 자신이 느낀 맛이 맞는 것인지, 상대를 보며 확인해 보려는 것이다.
“마, 말도···”
안 된다. 둘은 그 말을 동시에 뱉고는 잔을 한 번 들이켰다.
여전히 전해지는 진득한 자몽의 향과 맛.
잔을 마시면 마실수록.
둘의 패배는 더욱 확실해질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