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잔. 롬 위드 어 뷰.
6.
“어···?”
“와우···. 대박.”
- 여기서 한 판 붙으시죠.
명쾌한 정환의 답이 나오자, 옆에서 힐끔거리며 지켜보던 기준과 정우의 입이 벌어졌다.
그들은 자신이 들은 말을 믿지 못하고 있다.
- 스으윽.
여러 잔잔한 소리를 내며 고개를 돌리는 다른 손님들.
그들 역시, 곁눈질로 옆을 살피며 지금 일어나는 상황을 구경한다.
바텐더라면 제아무리 작은 싸움이라도 말려야 하는 게 맞다.
적어도 이를 보고 있는 이들이 알고 있는 상식은 그러했다.
그 상식에 맞지 않는 장면이니, 어찌 시선을 주지 않을 수 있을까.
“다들···너무 빤히 보지는 마세요.”
그런 손님과 바텐더들에게 명진은 살짝 주의를 주며 자신의 눈을 옆으로 힐끔 돌렸다.
그 역시, 지금 상황을 보지 않고는 못 배긴다.
원래라면 말려야 한다. 손님이 싸우는 것도, 또 그런 싸움을 옆에서 이렇게 지켜보는 것도.
옆자리 손님을 자꾸 힐끔거리는 손님 역시, 다른 손님을 불쾌하게 만드는 손님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은 경우가 다르다.
적어도 저들은 이쪽의 시선을 불쾌해할 여유가 없어 보였고, 또 시선을 먼저 끈 것 역시 저 중년인들이니까.
명진은 그저 티 나게 보지 말란 말로 이들에게 주의를 주고 그쳤다.
자신의 시선도 보태며.
- 꿀꺽.
모두의 목으로 침 넘어가는 소리가 크게 울렸다.
이건, 맛있는 걸 보는 이들의 침이 넘어가는 소리는 아니다.
그들의 시선은 흘깃하게, 또 은밀하게.
젊은 바텐더와 두 중년인이 있는 쪽을 향했다.
“자네···, 방금···?”
“한 판··· 붙으라고···?”
중년인들 역시, 귀로 들은 말을 머리로 이해하고 있지 못했다.
어안이 벙벙한 모습의 둘이 연신 눈을 껌뻑였다.
“네.”
단호한 바텐더의 답.
“······.”
“······.”
잠시간의 침묵이 돌더니, 이내 중년인들이 표정의 안정을 찾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물론, 드잡이질을 말하는 건 아닐 테고···, 복안이 있는 모양이군.”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가?”
그들 역시 교수라는 직함을 거저 얻은 이들은 아니었다.
눈치도 있고, 또 문맥이라는 게 있지 않나.
바텐더의 평소 성품과 주변 상황을 고려한 둘은, 이내 저 말에 숨은 뜻이 있음을 직감했다.
“말 그대로 승패를 가려보자는 뜻입니다. 대신, 바에 관한 내용이고 또, 바에서 펼치는 승부인 만큼···, 바의 방식으로요.”
- 탁.
정환은 말을 마치며 두 사람의 앞으로 무언갈 하나 올려두었다.
잔을 받치는 코스터가 두 사람 앞에 놓였다.
“코스터?”
“이걸로 뭘···?”
“생각해봤습니다. 바에 대한 지식을 겨루기에 뭐가 좋을지. 잘 없더군요. 인테리어, 보유한 술, 바텐더의 실력 등. 대부분 주관적인 평가가 가능한 일이라 여겨졌습니다.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건 바에 얼마 안 되더군요.”
“···음. 주관적이라 볼 수도 있긴 하네.”
“그 주관이 옳냐, 틀리냐의 차이겠지만.”
둘은 무언가 걸리는 게 있는 표정을 하면서도 정환의 말을 긍정했다.
그간 이 둘의 대화가 답보했던 이유 역시, 저 주관 때문이었다.
“그러던 중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게 떠올랐습니다. 바에서 제일 중요하면서도 객관적인 것, 또 바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잘 알고 있는 것···”
바텐더는 말을 이어가며 무언가를 분주히 준비했다.
양손에 하나씩 같은 모양의 잔을 든 정환이 이를 코스터 위로 올려두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그의 말.
“바로, 칵테일입니다.”
!!
“칵테일···?”
“설마···, 블라인드 테스트를 해보자는 건가?”
지동철 교수의 입에서 블라인드 테스트란 말이 나왔다.
메이킹 과정과 재료를 보지 않고 맛만 본 후 이를 평가하는 게 바로 블라인드 테스트.
허나, 여기서는 조금 다른 의미로 쓰이고 있을지도 모른다.
“네. 맞습니다. 대신 맛에 대한 평가가 아닌 재료를 맞춰주시면 되는 겁니다. 바텐더가 만든 칵테일 속 재료를 예상한다. 그리고 이를 맞춘다. 충분히 객관성이 있는 대결이 아닐까요?”
기본적으로 맞는 말이긴 하다.
칵테일처럼 들어간 재료가 명확하고, 또 결과물은 다르고.
거기에 바에서 중요한 역할까지 하는 그런 객관적인 요소는 더는 찾기 힘들지도 모른다.
생각이 거기에 닿자, 두 교수는 서둘러 자신의 승률을 가늠했다.
대결이 객관적이라면, 참전을 결정할 다음 요소는 자신의 승률.
두 사람의 머릿속에는 계산이 가득했다.
우선, 김태현 교수는.
‘필드에 뛰어 본 내가 확실히 유리하다!’
라는 식음료 학과 교수다운 생각을 하고 있었고.
지동철 교수는.
‘칵테일이라? 내가 마셔본 칵테일만 해도···!’
잔으로 이미 강남의 골목 하나 정도는 채웠다는 긴자의 바호퍼다운 생각을 떠올리고 있었다.
두 사람의 눈에 확신이 아린다.
지지 않을 거란, 확신이.
“충분히 객관적이라 보네.”
“해볼 만하겠군.”
두 사람은 순차적으로 입을 열었다.
둘의 입은, 정환의 제안을 그대로 받아냈다.
이들의 갈등이 결말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하지만.
“대신 조건이 두 가지 있습니다.”
바텐더는 결연한 눈빛을 보이는 두 사람의 힘을 빼놓고 만다.
그의 제안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조건? 무슨 조건 말인가?”
“갑작스럽군, 조건이라니.”
“평범한 대결이면 승패를 인정하기가 쉽지 않을 겁니다. 해서, 간단하게 내기로 했으면 어떨까 합니다. 이게 첫 조건입니다.”
“내기라?”
“무엇을 걸어야 한다는 말이군.”
“바텐더가 주관하는 대결이니 너무 거국적인 건 걸 수 없을 겁니다. 바텐더는 어디까지나 바 안에 있는 사람이니까요. 대신, 바 안에서 가능한 것들로 내기를 했으면 합니다.”
“예를 들면?”
“여러 가지가 있겠죠. 예를 들면···”
정환은 음흉한 미소까지 지으며 되묻는 말에 답했다.
“한 사람을 바에 오지 못하게 한다던가.”
!
“또는 내기를 주선한 바텐더에게 다시는 주문하지 못하게 한다던가.”
!
“그것도 아니라면···, 뭐. 계산을 몰아주는 정도? 가 있지 않을까 싶네요.”
마지막에야 김빠지는 말을 섞었지만, 정환의 앞선 말이 제법 매력적이다.
사과를 하라던가, 진심으로 뉘우치라는 말은 현실성이 없다. 차라리 내기를 주선한 바텐더를 중심으로 저런 페널티를 주는 게, 어쩌면 서로에게 더 후련함을 남길지도 모른다.
“조건이···나쁘지 않군. 그런 조건이라면야. 이런 곳에 없어야 할 사람이 보이기도 하니.”
“피차일반일세. 눈에 보이지만 마실 수 없다면 얼마나 아쉬울까. 해볼 만한 대결이군.”
둘은 정환의 조건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바에 오는 것과 맛있는 술에는 진심인 둘이다.
둘에게는 바에서 받는 저 페널티가.
제법 가혹할지도 모른다.
“두 번째 조건은···”
정환의 말이 이어진다.
정환의 입에 집중하는 두 손님.
그리고 그런 정환의 입은.
“저도 내기에 참여했으면 합니다.”
!!
두 사람의 눈을 크게 만들고 만다.
“그, 그건 무슨 말인가?”
“자, 자네가 만든 칵테일이 아닌가? 자네가 참가한다니?”
“오해하신 모양이군요. 제가 만들고 제가 맞추면 너무 유리하죠. 대신···, 전 가장 불리한 선택지로 내기에 참여할까 합니다.”
“가장 불리한 선택지?”
“···이게 당최 무슨···?”
“두 분께서 동점을 이뤘을 때. 그리고 그 동점이 만점이 아닐 때. 그때만이 제가 이긴 거로 하겠습니다. 어떻습니까?”
“······.”
“······.”
당당함이 가득 섞인 마지막 조건이 발하자, 두 교수는 그만 입을 닫고 말았다.
무언가 잘 짜인 판에 들어왔다는 느낌이지만, 조건 자체는 나쁘지 않게 보이는 둘이다.
만약 정환이 둘 모두 답을 맞히지 못했을 때만을 조건으로 걸었다면 이는 다시 생각해볼 여지가 있는 조건이었다.
허나, 저 조건은 그런 간단한 조건이 아니다.
둘 모두가 틀렸더라도 둘이 동점이 아니라면, 또는 둘 모두가 완벽히 답을 맞히기라도 하는 경우라면.
정환은 승리하지 못하는 조건이다.
“저도 판에 들어가야 아까 말씀드린 조건이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그래야 저도 이긴 분의 조건을 들어드려야 할 이유가 생기는 거니까요.”
“아까 던진 조건들은 미끼였군.”
“무언가 잘 짜인 판에 낚인 기분이 드는데.”
조건이 좋고 승률 역시 내 쪽이 높게 보인다.
그저 이들이 망설여지는 건 이 모든 게 바텐더의 그림으로 보이는 것이기 때문.
김태현 교수는 이런 바텐더의 판을 흔들어 보려 한다.
“좋네. 자네의 조건을 받겠네. 대신 나도 하나 조건을 걸지. 아니, 이건 지 교수도 동의할 게 분명하니 우리의 조건이라 하지.”
“우리?”
“말씀하시죠.”
“절대. 그러니 자네가 이겨도 절대. 우리 둘을 강제로 화해하란 조건을 붙이지 말란 조건이네. 그게 바 안에서만이라도 말일세.”
김태현 교수는 혹여나 정환이 이를 빌미로 자신들을 화해시킬까, 그런 걱정에 조건을 하나 걸어본다.
이상적이고 괜찮은 생각이지만, 현실은 그렇게 낭만적이지 않은 법이다.
“그거 좋은 조건이군. 나도 그렇다면 자네의 조건을 받겠네.”
지동철 교수 역시 같은 생각.
그는 웬일로 김태현 교수와 죽이 맞아간다.
“좋습니다. 제가 이겨도 교수님께 화해하란 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그게 바 안에서만이라도 말이지요.”
의외로 정환은 이런 교수들의 조건을 빠르게 받아들였다.
어쩌면, 애초에.
그에게는 이들을 화해시킬 의도 자체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됐군, 그럼.”
“시작해보지.”
마지막으로 발목을 잡던 부분이 해결되자, 교수들은 자세를 고쳐 앉고 대결에 임할 준비를 마쳤다.
내기를 건 바텐더 역시 무언가 생각이 있어보이지만, 이들은 제일 중요한 걸 걸지 않았다는 생각에 안심을 하고 있다.
그런 그들 앞에서 바텐더는.
이제 있을 대결을 설명한다.
“클래식 칵테일은 제가 두 분께 깜냥이 되지 않을 겁니다. 해서···, 2000년대 이후로 나온 칵테일을 만들어 볼까 합니다.”
“모던 칵테일 말이군.”
“넥스트 제너레이션이라고도 부르지.”
둘의 주 분야가 클래식일 거란 생각에 이를 피했을 순 있다. 허나, 그런 의도가 민망하게. 둘은 모던 칵테일에 대해서도 잘 아는 눈치였다.
의기양양함이 두 교수의 얼굴에 걸린다.
둘은 여전히.
자신의 승리를 확신하고 있다.
교수로서, 또 한 분야에 통달한 취미인으로서.
둘은 업계에 대한 공부를 미루던 이들이 아니다.
그런 이들의 뒤로 정환이 등을 돌린다.
평소에는 잘 볼 수 없는, 바텐더의 등이 보인다.
“죄송하지만 돌아서 만들겠습니다.”
“물론이네.”
“당연히 그래야지.”
가볍게 양해하는 그들.
그리고 돌아선 바텐더는 천으로 재료를 가려가며 열심히 계량하기 시작한다.
손님의 자리에서는 돌아선 정환의 앞쪽이 보이지 않고 있다.
무언가 뚝딱하더니 잠시 후.
- 샤카! 샤카! 샤카!
언제나 마음이 편해지는 셰이킹 소리가 들려온다.
소리는 숨길 수 없는 것.
바텐더 역시 이를 아는 듯 애써 숨기려는 모습은 아니었다.
‘우선 기법은 셰이킹이군.’
‘셰이킹이라? 맛을 흐리게 만들겠다는 뜻이고.’
이를 지켜보는 두 교수는 이미 대결을 시작했다.
그들의 머리에는 여러 개의 레시피가 스치고 지나갔다.
- 촤르르륵! 착!
잔에 음료를 따르는 소리가 들리고, 잠시 후.
- 파악! 촤악! 촤아아아아!
크게 튀는 캔을 여는 소리와 올라오는 청량한 탄산의 소리.
정체를 알 수는 없지만, 탄산이 들어간 음료로 마무리하는 칵테일이 분명했다.
무대에 선 두 사람은 팔짱을 끼고 칵테일을 기다렸다.
과일로 가니쉬까지 마치고 마침내 돌아서는 바텐더의 모습.
혹여나 재료가 보일까 싶어 고개를 쭉 빼본 이들의 눈에는 이미 정리가 끝난 모습만이 들어온다.
판을 준비한 딜러, 아니 바텐더가 제법 철두철미하다.
- 탁. 탁.
두 개의 코스터 위로 올라가는 칵테일 잔.
자몽색 음료에 동그랗게 잘린 라임이 가니쉬로 더해져 잔을 꾸미고 있다.
시트러스한 향과 탄산, 그리고 색이 합쳐져 아르센에 앉은 모두의 침샘을 자극한다.
알게 모르게 멀리서 지켜보던 손님들조차 꿀꺽하며 이번에는 맛있는 걸 봤을 때 내는 그 소리를 들려준다.
두 교수 역시 넋을 놓고 이를 바라보자, 바텐더는.
“롬 위드 어 뷰(Rome With A View). 나왔습니다.”
칵테일의 이름까지 알려주는 만용으로 잔을 완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