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술은 특별합니다-37화 (37/175)

37잔. 오래된.

5.

- 콰앙!

잔잔하고 고요한.

그리고 평온함이 감도는.

아르센이라는 바와는 어울리지 않는 소리가 울렸다.

옆에 앉아 자신만의 시간을 즐기던 손님들의 시선이 한 곳에 몰렸다.

그들이 시선이 닿은 곳에는 사회적으로도 제법 성공했을 법한 두 중년인이 서로를 향해 눈을 부라리고 있다.

“아직도 인정을 못 하는 건가!”

“흥! 틀린 말을 한 적이 없다지 않나!”

“이런 뻔뻔한···!”

“뻔뻔하다니···! 누가 할 소릴!”

작은 언쟁으로 시작된 둘의 대화는 어느새 고성이 오가며 몸까지 일으키려 하고 있다.

바라는 공간과는, 사뭇 어울리지 않는 풍경이다.

멀리서 소동을 본 명진과 정우가 나서려 하자, 정환은 손을 뻗어 자신이 해결하겠다는 표시를 보낸다.

“저···교수님들? 목소리를 조금 낮춰주시겠습니까? 다른 손님들이 불편해하십니다.”

가장 기대했던 두 손님에게, 이런 말을 하게 될 줄은 정환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계속···, 이러시면 저도 어쩔 수 없습니다. 두 분도 아시겠지만···”

쫓아낼 거다.

바에 대해 잘 아는 두 손님은 바텐더가 차마 뱉지 못한 마지막 말을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바에는 몇 가지 규칙이 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온전히 자신의 시간을 가지되, 다른 손님의 시간을 방해하지 말 것.

이는 제아무리 바와 친분이 두터운 단골이라 해도, 절대 피할 수 없는 규칙이다.

그리고 이 규칙을 어긴 손님은.

바텐더에 의해 쫓겨나게 된다.

언성을 높이며 싸우는 건, 분명 다른 손님의 시간을 방해하는 일이다.

사실 지금까지만 해도 아르센은 이들에게 많이 참아주고 있었다.

이미 이들이 언쟁을 시작한 지는 벌써 20여 분 째.

지동철 교수의 앞에 놓인 오유와리는 어느덧 바닥을 보이고 있고, 김태현 교수가 주문한 사이드카 역시 반 이상이 비워졌다.

정환의 초대 손님이 아니고 또 단골이 아니었다면.

이들은 진작에 다른 바텐더들의 손에 끌려 문밖으로 쫓겨나고도 남았을 것이다.

“이···!”

“쯧···!”

- 털썩!

두 교수는 정환의 엄중한 경고를 받고 나서야 자리에 몸을 앉혔다.

어느새 몸까지 일으켜 서로를 위협하던 둘이다.

“···그나저나 의외군요. 두 분께서 친분이 있으셨다니···. 조금 전 들었습니다만, 고교 동창이시라고···.”

어떻게든 서로를 향한 눈빛을 떼어 놓으려 정환이 자신에게로 관심을 돌린다.

바텐더의 대화를 듣는 중에는 그래도 옆을 보지 않는 둘이다.

“뭐, 그렇긴 하네만.”

“학교 다닐 때는 서로 모르는 사이였네. 어느 순간 친한 척 먼저 다가온 사람이···”

“내가 언제 친한 척 다가갔다는 말인가!”

“뭐야? 이제는 아주 모르는 척···!”

허나, 이런 평화도 잠시.

둘의 관계를 묻는 말에 대한 답이 나오던 중, 둘은 다시금 불이 붙고 만다.

지동철 교수의 말에 김태현 교수가 크게 발끈한 모양새다.

둘의 언쟁이 격해지려 하자, 정환은 입술을 깨물고 서둘러 손뼉을 쳤다.

- 짜악!

- 휙! 휙!

큰 소리에 일시에 돌아가는 둘의 고개.

정환은 차분한 표정으로 두 사람이 스스로 화를 가라앉힐 때까지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이럴 때는 말리는 것보다, 스스로가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게 만드는 게 최선이다.

“···미안하네.”

“···목소리가 컸군.”

둘에게 많은 시간이 필요하진 않았다.

바라는 곳에 제법 다닌 이들인 만큼, 자신의 추태와 바텐더의 반응 정도는 금방 알아보는 두 사람이다.

“고교 동창이셨고. 지금은 사이가 좋지 않으신 거군요.”

“굳이 말하자면 그렇네.”

“팩트는 그렇지.”

조금씩. 아주 조금씩이지만 감정이 누그러져 간다.

정환은 더 이상 둘의 관계에 대해 묻지 않고 그저 묵묵히 기다리기만 했다.

오랜 그의 경험에 따르면, 이렇게 무언가를 보여주고 또 바텐더의 개입 후라면.

“···확실히. 학창 시절에는 연이 없었긴 하지만 말일세.”

손님은 스스로 자신의 사연을 이야기하게 되어 있다.

“그런 경우가 많다더군요. 저도 대학에 진학 후 이름도 모르던 동창생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흔한 일이지. 특히나 우리 때는 사람도 많았으니.”

“우등반, 열등반. 분반도 있던 시절일세. 들어 봤나?”

어떻게든 캐묻는 그림이 나오면 안 된다.

바텐더는 손님에게 무언가를 얻으려 해서는 안 되는 것.

정환은 그저 적절한 대꾸만 하며, 이들이 스스로 말하는 걸 듣고 있을 뿐이다.

“법으로는 금지했었다고 하던데요.”

“그래도 알게 모르게 하긴 했었네. 물론, 자네도 예상하겠지만···, 저치는 우등반, 난 열등반이었지. 공부는 젬병이었거든.”

바텐더의 계략이 어느 정도 유효하다.

김태현 교수는 어느덧 옆에 두던 이글거리는 눈을 거두고 몸을 앞으로 돌렸다.

옛날을 회상하는 그의 표정이 이제는 차분하다.

“그래도 인연···, 아니 우연으로 다시 만나셨네요. 두 분은.”

“우연도 아니지. 인연은 더더욱 아니고. 동창회에서 서로를 소개받았을 뿐이네. 10년? 그 정도 된 거 같군.”

“정확히 9년 전이네. 2003년.”

지동철 교수 역시 점점 안정을 찾아간다.

자연스레 대화에 끼어드는 그였다.

“의외네요. 제가 아직은 잘 모르지만···, 전 동창회에 가도 친했던 사람들만 만날 것 같아서요.”

자연스레 앞선 말의 꼬리를 잡아 다음 말을 유도한다. 정환은 정말 몰라서 물어본다는 표정까지 연신 지어대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 이런 바텐더의 반응은.

“원래라면 그런 이들이 대부분이네. 다만···, 알지 않나? 소위 명문이라 불리는 곳의 동창회를 가면···, 자연스레 정보도 얻고 또 꼭 필요한 분야의 사람도 만나는 법이지. 그때도 딱···, 그런 경우였네.”

자연스레 손님의 다음 이야기를 끌어낼 수 있다.

“그게 지동철 교수님이셨고요.”

“···홍보 같은 게 필요했네. 호텔에서 리뉴얼한 라운지와 프라이빗 바. 이 두 곳에 대한 홍보···. 잡지 칼럼이나 신문 기사 같은 그런 거 말일세. 당시에는 그런 게 전부였지.”

“···먼저 다가왔다는 말을 거창하게도 하는군.”

덤덤히 꺼내는 둘의 첫 만남에 지동철 교수는 반론을 제기하지 않았다.

여기까지는, 김태현 교수가 제법 객관적으로 정보를 전달하고 있다는 뜻일 것이다.

“주변에서 다들 그러더군. 동기 중에 지동철이라는 이가 있다고. 긴자에서도 유명한 바호퍼이고 일본과 한국 잡지 양간에 관련 칼럼도 쓴다고. 마침 또, 그날 자리하기도 했었고···.”

김태현은 말을 이어가며 한숨을 내쉬었다.

일의 시작은, 저 지점일 게 분명했다.

둘의 사연과는 별개로 정환은 지동철이 바와 관련된 칼럼을 썼다는 사실에 놀라는 중이다.

이전 삶에서도 지나간 세월에 관해 이야기를 종종 나눴었지만, 칼럼을 썼다는 말은 들은 적이 없다.

무언가 둘 사이에, 아직은 남은 이야기가 있는 모양이다.

“···그래서 칼럼을 써달라 말씀하신 거군요.”

“그랬네. 아, 오해는 하지 말게. 동창이니, 친구니. 이런 말을 하며 부당하게 잘 써달란 그런 청탁은 아니었으니.”

“흥. 그래. 처음에는 아니었겠지. 나중에야 몰라도.”

“뭐야? 그 말은 꼭 내가 청탁을 한 것처럼 들리네만?”

“원고를 고쳐달라 말한 사람이 자네가 아닌가?”

“그야, 잘못 알고 있는 게 있으니 정정해달라는 정당한 요구였지!”

“글쎄···. 겉으로야 그리 말하지만···”

“이 사람이···! 여전히 자기 잘못을 모르고 있군.”

“잘못? 웃기는 소리! 칼럼을 써달라 해서 써줬더니 성낸 사람이 누군가? 잘못은 무슨.”

서로가 서로를 비난하는 태도가 당당하다.

둘은 자신만의 입장이 완고해 보였다.

“칼럼을 쓴 걸 말하는 게 아니지 않나?”

“아, 그렇군. 그래. 내가 잘못이었군. 그저 좋은 말만 했어야 하는 건데! 눈에 보이는 단점을 절.대. 말해선 안 되는 거였는데 말이지! 아닌가?”

“어허. 이 사람이! 몇 번을 말하나? 자네 칼럼에 쓴 내용이 틀린 건 아니라고! 대신 호텔 바에는 맞지 않는 내용이 있으니 수정해 달라. 이게 우리 요지가 아니었나?”

“‘바’는 ‘바’일세. 호텔 바이든, 로드 바이든 눈에 보이는 단점을 쓰는 게 뭐가 문제란 말인가?”

“그게 호텔 바에서는 단점이 되지 않으니, 하는 말일세! 반론으로 쓴 칼럼! 읽지도 않은 모양이군!”

“흥! 변명을 위해 돈으로 산 지면 따위···!”

이 정도로 대화를 들으니, 정환에게도 감이라는 게 오기 시작했다.

- 지동철은 김태현의 부탁을 받아 그레인 호텔 바에 대한 칼럼을 기고했다.

- 칼럼에서 바에 대한 평은 그리 좋지 않았다.

- 김태현의 눈에는 그 평이 너무 로드 바에 맞춰진 내용으로 보였다.

- 그는 칼럼에 대해 정정을 요구했다.

- 지동철은 거부했다.

- 그리고 김태현은 지면을 사 반박하는 칼럼을 기고했다.

여기까지가, 빠르게 지나가며 정환이 머리로 정리한 지금까지의 내용이다.

이해는 간다.

한 명은 로드 바를 중심으로 다녔던 사람이고 한 명은 호텔 바에서만 일했던 사람이다.

둘의 시선이, 다를 수밖에 없는 일이다.

정환은 고개를 끄덕이며 두 교수의 얼굴을 한 번씩 훑었다. 둘은 여전히 열기를 가라앉히지 못하고 씩씩거리는 중이다.

“결론만 놓고 보세. 어이, 동철이. 아니, 지 교수. 지금 그 바는 어떻게 되었나? 결국, 성업 중에 있지 않나? 자네가 틀렸다는 걸 이렇게 증명하고 있지 않냐는 말일세!”

“흥! 그레인 호텔이란 간판 없었으면 진즉에 망했을 곳이네. 로드에 그런 바를 차렸어 보게. 한 달을 못 버텼을 거라, 내 장담하지.”

“그런 간판 밑에서 장사해 수익을 내는 곳을 우린 호텔 바라고 부르네만.”

“그럼 호텔 잡지에 기고를 부탁하지 그랬나!”

“끝까지! 틀렸다는 말은 안 나오는군! 누구 덕에 내가 그 프로젝트에서 손을 떼야 했는데도 말이지!”

“허! 자기만 피해를 본 것처럼 말하는군! 말도 안 되는 반론 때문에 지면을 잃은 내 생각은 하지도 않고!”

정환의 머리에 몇 개의 내용이 추가된다.

- 김태현은 칼럼의 악평 덕분에 프로젝트에서 하차했다.

- 지동철은 반론을 받아 칼럼을 더는 쓰지 못하게 되었다.

- 둘은 사이가 나빠졌다.

- 9년, 1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여전히 누구 말이 맞는지 싸우고 있다.

이제는 완전히 결론이 난 둘의 사연이다.

더불어 정환은 지동철이 자신에게 칼럼에 대해 말하지 않은 이유도 알게 되었다.

‘짤리셔서···’

고개가 끄덕여지는 정환이다.

둘의 언쟁은 끝나지 않았다.

“한쪽 바만 아는 우물 안 개구리인 줄 진즉에 알았다면···!”

“우물 안 개구리···? 이 가라(から) 바텐더가 어디서···!”

“뭐, 뭣? 가라? 가라아!? 아마추어 주제에!”

“흥. 아마추어여도 가라 바텐더보단 낫지!”

오가던 말이 결착에 이르자, 둘은 이내 감정적인 싸움을 시작한다.

뱉는 말이, 제법 의미심장하다.

“그러니까···”

그런 두 사람 사이로 끼어드는 바텐더.

그는 어떤 중재를 할까.

그저 싸우지만 못하게 하고 넘어가려는 걸까.

아니면 화해라도 시키려는 걸까.

멀리서 곁눈질로 이곳을 엿보던 다른 바텐더들도 긴장하며 지켜보고 있을 때.

“결국, 두 분은 바에 대한 의견이 달라 싸우셨던 거고··· 여전히 자기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하시는 거네요?”

!!!

정환은 둘 사이에 기름을 붓는 발언을 하고 만다.

“당연하네!”

“당연한 소릴!”

두 교수는.

동시에 입을 열었다.

“상대가 나보다 더 잘 알고 있다는 생각도 없으실 테고···”

“물론이네!”

“물론일세!”

계속해서 둘을 자극하는 말을 뱉는 정환.

“당연히 상대방이 내 말을 이해 못 하고 사과하지 않는 이유 역시, 뭘 잘 몰라서라고 여기시고요.”

“그렇네! 호텔 바와 로드 바를 구분도 할 줄 모르는 이가 저치가 아닌가!”

“저자는 ‘바’의 기본도 모르는 사람이네! 둘을 나누기 전에 기본부터 알아야지!”

둘은 정환의 말에 격하게 반응하며 날을 세웠다.

정환은 마치 싸움을 붙이는 이의 모습처럼 보였다.

정환은 팔짱을 끼고 고개를 몇 번 끄덕이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두 분의 말씀은 잘 들었습니다. 제가 들어보니···, 결국. 누구 말이 맞냐. 누가 더 ‘바’에 대해 잘 아느냐 하는 문제로 보입니다. 아닌가요?”

“음, 뭐. 지난 결과야 차치하고라도, 지금에야 남은 건 그 문제가 맞네.”

“뭐, 나 역시 지나간 일에 할 말은 없네. 그저 잘 모르는 이가 여전히 우기는 꼴이 우스울 뿐.”

정환은 긴 이야기 속에서 여전히 남은 마지막 앙금을 찾아냈다.

마지막에야 나오던 감정적인 비난들, 그리고 그 비난들이 하나같이 담고 있는 한쪽으로 치우친 의미들까지.

이건 결국, 자존심 싸움이었다.

지나간 결과는 어디까지나 부수적인 문제들이다.

이는 세월 덕에 이미 잊혀도 졌고.

허나, 이들이 마지막까지 양보할 수 없는 건.

적어도 일본 타령만 하며 로드 바에 밖에 다녀본 적이 없는 이보다는.

호텔은 맨날 다르다며 로드 바와 호텔 바를 전혀 다른 곳으로 여기는 이보다는.

내가 더 바에 대해 잘 안다는, 내 말이 맞다는 그 자존심인 것이다.

정환은 기나긴 둘의 사연 속에서 이점을 정확히 짚어냈다.

매번 느끼지만, 남자는.

나이가 들어도 언제나 똑같다.

“그럼, 간단한 문제군요.”

!

간단하다.

지난 9년의 세월을 네 글자로 표현하는 젊은 바텐더 앞에서 두 중년인은 눈을 껌뻑였다.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걸까.

그들의 기분이 상하려 할 때.

“결국, 누가 더 바에 대해 잘 알아서 맞는 말을 한 건지. 그걸 가리면 되는 거로 보입니다. 일종의 결착···, 즉. 승패를 가리면 될 일인 거니까요.”

둘은 핵심을 찔러오는 정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승패란 말이, 쏙 마음에 드는 둘이다.

마치 답이 나왔다는 듯 함께 고개를 끄덕이는 정환.

그는 한 번을 짙게 웃고는 자신이 생각한 답을 들려준다.

“여기서 한 판 붙어 보시죠.”

!!

짙게 웃는 그의 답이.

제법 명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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