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잔. 맛있는 것들.
1.
“와.”
“이걸···?”
“허어.”
한 바텐더의 움직임에 여러 개의 눈알이 움직이며 제법 다양한 감탄사가 뿜어졌다.
이들은 마치 바텐더의 움직임을 뜯어보듯 하나씩 주목하며 일거수일투족을 눈에 담으려 노력했다.
손님으로서 눈 앞에 펼쳐지는 무언가를 즐기는 자세보다는. 눈 앞에 펼쳐지는 것을 익히려는, 또 무언가를 배우려는 그런 자세로 보였다.
“확실히 그런 말이 나온 이유를 알 것도 같네요.”
아티치에서 경력을 쌓고 있는 여성 바텐더 이연희가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도 모르게 말을 흘렸다.
지금 자신이 일하는 곳에서는 조금 배신감이 드는 말일 수도 있었지만, 눈앞의 결과물을 본 이상 그런 생각을 떠올릴 틈도 없는 그녀였다.
“실력만큼은 아르센이다···죠?”
“지웅 씨도 들으셨네요.”
“네···. 오너께서. 무성 선배는 가지 말라고 난리도 아니었다니까요.”
“저도 사장님이 아르센에 간다니 많이 배우고 오라고 하시더라구요.”
“전 오래된 단골께서···. 아직도 안 가봤냐고. 거의 혼났어요.”
이들은 일전에 노벰버라는 바에서 열렸던 칵테일 스터디에 참여했던 주니어 바텐더들.
강남에서 내로라하는 바에 적을 둔 이들이었지만, 오늘만큼은 정통이라 불러도 좋을 이곳에 시선을 빼앗겨 버렸다.
이들이 앉은 자리는, 강남의 골목길에 있는 아르센이라는 작은 바였다.
“이런 자리에 잘 오지도 않는 재훈 씨도 올 정도니까요. 그렇지 않나요?”
“좋은 곳이네요.”
누군가의 던지듯 나온 말에 끝자리에 앉은 무뚝뚝한 바텐더가 잔으로 얼굴을 가렸다.
실력도 좋고 훗날 제법 큰 인물이 되지만 붙임성은 그리 좋지 않은 임재훈이라는 바텐더였다.
일전에 칵테일 스터디에서 정환에게 한 수를 배운 그는 아르센이라는 말에 얼른 손을 들어 참여 의사를 전했다.
차정환이라는 바텐더의 칵테일을 맛보는 건 기대하지도 않았다.
그 역시 바씬이 어떻게 굴러가는지 정도는 알고 있었으니까.
다만, 그의 말도 안 되는 해석 능력과 실력, 또 발상 등.
다음에 알려주겠다는 그 원천을 혹여나 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재훈은 이 자리에 참석했다.
이제는 조금 붙임성있게 살아보겠노라, 그런 생각도 없진 않았고.
그의 눈이 칵테일을 만들지는 않지만 계속해서 분주히 움직이는 누군가를 따라 다녔다.
바백을 맡은 차정환이라는 바텐더였다.
“다들 맛은 괜찮으신가요?”
저마다 맛을 음미하며 이런저런 말을 주고받을 때. 이들이 감탄한 실력과 결과물의 주인공이 다가온다.
강남에서도 실력만큼은 아르센이라는 말이 떠돌게 만든 장본인, 이명진이라는 바텐더였다.
“최고예요, 마스터!”
“소문이 과장된 게 아니었네요.”
“마티니가 정말 말로 다 할 수 없을 정도네요···”
“많이 배웠습니다.”
다들 아르센에 견학 가겠다는 말을 가게에 남겼을 때 들었던 말들이 있다.
- 실력만큼은 아르센이지.
누구는 자신보다 바를 잘 아는 손님에게, 누구는 자신의 사장에게, 또 누구는 바로 직속 선배에게 들었던 이 말이. 이제는 진짜임을 직접 확인한 이들이다.
“즐기셨다니 다행이군요. 편히 있어요. 부담 가지지 마시고.”
교과서적이란 말로도 전부 설명하지 못할 기술들에 또 입이 쩍 벌어지는 맛까지.
거기에 이렇게 인자한 접객까지 받게 되니, 주니어들이 아르센을 인정하는 것도 이상한 건 아니었다.
이들이 아르센에 와서 놀란 건 이명진 마스터의 실력만이 아니었다.
“다른 분들도 장난 아니다, 그죠?”
“기준 형, 평소 성격만 봤을 때 접객은 포기구나 했는데···, 말도 잘하고 실력도 더 느셨네요.”
“신정우 바텐더도 장난 아니에요. 아까 움직이는 손 보셨어요? 플레어 바텐더도 저렇게 빠르진 않을걸요?”
함께 일하는 이들의 실력까지. 전부 이들에게는 놀라운 것들이다.
보통 바라는 곳에 일하는 이들은 실력이 들쑥날쑥한 곳도 많은 법이다.
한곳에서 오래 일하는 것보다는 여러 가게를 도는 게 만연한 바씬에서, 이렇게 실력이 전체적으로 통일된 가게를 보니 이들은 내심 부러운 마음도 들고 있었다.
“재훈 씨는 어때요?”
주니어 바텐더 중 한 명의 고개가 재훈 쪽으로 기울었다. 구석에 있어 특히나 고개를 틀어야 했던 위치이기에 일부러 말이 적은 재훈을 향한 듯 보이는 질문이다.
“실력이··· 다들 뛰어나군요.”
“그렇죠.”
“역시 똑같이 느끼네요.”
형식적인 대답이라. 전부 그렇게 여기며 고개를 끄덕였다. 흐름에 맞는 답이기도 했고.
하지만 재훈의 말뜻은 다른 곳에 있었다.
그의 고개는 앞에서 바텐딩을 펼친 이명진 마스터가 아닌 뒤에서 분주히 뛰어다니던 정환을 향했다.
‘석 달 차···그것도 신입이···’
다른 이들이라면 한 수 배우겠다는 목적하에 대선배 이명진의 모습에 집중했을 수도 있다.
애초에 목적이 달라서였을까. 재훈은 이곳에 드는 순간 계속해서 정환의 모습에 집중했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눈에 담기는 풍경이 있었다.
자연스러움.
너무도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명진의 바텐딩과 정환의 움직임이 재훈의 눈가에 들어왔다.
처음 그를 마주했을 때만 해도 성격 좋은 사람이며 개인적인 기술이 좋은 이라 여겼다.
스터디 이후 이리저리 수집한 정보에 따르면 실력이 좋다는 이명진에게 직접 칵테일을 배우고 있다고도 했고.
칵테일 메이킹이야 어디까지나 개인이 노력하면 성장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닌가.
하지만 바 안에서의 움직임은 달랐다. 이미 3년 차에 접어든 재훈은 1년 미만의 바텐더가 바 안에서 어떤 존재인지를 모르지 않았다.
‘전혀 방해되지 않고 심지어 자연스럽게 움직인다?’
바 안에 사람을 하나 들이는 건 동선의 변화를 의미한다. 익숙한 동선에 따라 움직이는 게 자연스러운 바텐더들은 새로운 사람이 오면 동선이 꼬이는 것도 당연한 일.
석 달을 넘어 이제는 넉 달에 접어든 정환의 기간을 고려해도 단기간에 다른 바텐더들이 익숙해질 수 있는 일은 아니란 말이다.
헌데도, 저 차정환이라는 바텐더는.
너무도 익숙하게 아르센의 바 안을 누비며 명진의 바텐딩을 보조하고 있다.
동선이 겹치지 않는 건 당연한 일이요, 주문에 맞춰 명진이 따로 레시피를 일러주지 않아도 자연스레 재료가 준비된다.
순서 역시 서로 대화를 나누지 않음에도 맞춘 듯 딱딱 떨어지는 순서.
이는 자신이 주문을 듣고 그에 따른 판단을 내려 순서를 정했고, 그게 마스터 바텐더의 선택과도 닿아있었다는 말일 것이다.
재훈은 자신이 지금 다시 바백을 봐도 저 정도의 퍼포먼스를 해낼 수 있을지, 그런 의구심이 들었다.
- 호르륵.
재훈은 이명진 바텐더가 만들어준 파리지앵을 들이켰다.
스터디에서 정환에게 따로 배우기도 했던 그 칵테일.
혹시나 명진에게 배운 건 아닐까, 그런 생각에 이를 셰이킹 기법으로 바꿔 주문해봤지만, 결과물은 달랐다.
‘맛있다. 분명 맛있는데···’
다르다. 감히 우위를 평가하지 못할 정도로 맛있는 파리지앵이다.
기법이 바뀌었음에도 풍미를 잃지 않은 그런 맛.
하지만, 이건 정환이 알려준 방법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만들어진 파리지앵임이 분명했다.
한 번 아르센이라는 곳에 들린다면 저 말도 안 되는 신입의 기원을 알 수 있지 않을까. 그런 고민에 잘 참석하지 않던 친목 모임에도 참석했던 재훈.
허나, 막상 와서 실제로 저들이 일하는 걸 접하니.
재훈은 머리는 더욱 복잡해지기만 했다.
“자자, 여기까지. 오늘은 딱 여기까지만 합시다.”
저마다 아르센에 대한 즐거운 호평과 이런 자리에 대한 감상으로 이들이 들떠가고 있을 때.
날카로운 눈매의 바텐더가 너스레를 떨며 이들 앞으로 난입했다.
아르센의 매니저, 신정우였다.
가볍게 자리를 정리하려는 그의 말에 다들 아쉬움을 얼굴에 새겼다.
“벌써요?”
“저희 이제 세 잔 밖에 안 마셨는데···”
“조금만 더 마실게요!”
“···너무 이른 감이···”
슬쩍 투정을 부려보는 주니어들.
하지만.
“쓰읍.”
정우의 태도 단호했다.
“넷이야, 넷. 각자 세 잔이며 열두 잔이고. 그것도 전부 마스터가 만든 거로만. 안 돼. 봐 줄 생각 없어, 돌아가.”
“너무해요! 손님을 이렇게 쫓아내도 되는 거예요?”
“바에서는 원래 진상 손님을 쫓아내는 법이랍니다. 바텐더 여러분. 한 번 경험해 보실래요?”
귀엽게 부려보는 투정에 한 번 봐줄 법도 한데. 정우는 단호한 태도에 흔들림이 없다.
이명진 마스터를 스승처럼 생각하는 신정우에게 다른 무엇보다 중요한 건 명진의 건강이다.
한 자리에서 열두 잔. 다른 이들과 함께 만드는 것도 아니고 홀로 만드는 것.
이는 명진에게 충분히 무리가 될 것이라, 정우는 그렇게 생각해 제법 강경한 태도를 고수했다.
“자자, 다들 정리하고 이제 집에 가서 복습들 해.”
“아니···”
“제발요, 자주 올 수 있는 곳도 아닌데···”
“또 오려고? 그것도 안 돼. 진토닉만 마실 거면 몰라도.”
“에이, 한 잔만이라도!”
“쓰으읍!”
뭐 바씬이 워낙에 좁디좁고 손님 역시 공유하는 시장이다 보니 이런저런 말이야 진즉에 전해 들었던 주니어들이다.
아르센에 평소 잘 오지 못했던 이유 역시 명진의 건강 문제가 컸었고.
다들 아쉽지만 어쩔 수 없이 정우의 말을 들으려 할 때.
“괜찮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잔 정도는.”
근엄하고 인자한 목소리가 정우의 말을 자르고 들어왔다.
“마스터···?”
배신당한 강아지의 울상을 지어보는 신정우 바텐더. 명진은 여전히 인자한 표정만을 지으며 이들을 바라볼 뿐이다.
“대신 한 잔은 제가 추천하는 칵테일로 드셔보시죠. 바텐더가 멋대로 정한 칵테일이니, 당연히 제가 사겠습니다.”
“좋아요! 뭐든지요!”
“좋습니다. 배울 수만 있다면요.”
“한 잔이 어딥니까! 거기에 마스터 추천이라면요!”
“···감사히···.”
어떻게든 명 바텐더의 기술을 하나라도 더 볼 수 있다면 좋은 게 이들이다.
당장에 쫓겨났을 판국에 한 잔이라도 더 마실 수 있다면 이들은 진토닉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정환 씨.”
명진은 조금 전과는 달리 정환을 불렀다. 손님의 주문을 받은 칵테일이라면 정환이 먼저 움직일 수 있다.
허나, 이번에는 명진의 머리에만 있는 칵테일이기에 그를 불러 차분히 재료를 전하는 명진이다.
“드라이 진, 드라이 셰리, 드라이 베르무트 그리고 듀보네와 코앵트로를 부탁드립니다.”
조금은 독특하고 잘 찾아볼 수 없는 레시피의 칵테일에 다른 주니어들은 눈을 껌뻑이며 이게 무슨 칵테일이냐는 표정을 지었다.
정환은 잠시 멈칫하더니 이내 옅은 미소를 지으며 명진이 말한 재료를 준비한다.
“진에 셰리, 베르무트랑 듀보네? 그리고 코앵트로까지···?”
“형은 무슨 칵테일인지 아세요?”
“···가만히 기다려라. 그럼 중간이나 간다.”
“······.”
재훈마저 입을 닫았다. 그나마 이들 중 가장 우등생은 아마도 재훈. 그런 재훈도 가만히 있는 상황에 누가 답을 알 수 있겠나.
“셰이크···하실 건가요?”
누군가 소심하게나마 질문을 던져 본다.
손님이라면 아무런 부담 없이 건넬 수 있는 질문에도 바텐더란 입장에서 이들은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멀리서 더는 귀찮게 마스터를 괴롭히지 말라는 강렬한 눈빛의 신정우가 있기도 했고.
“한국에서는 잘 접하기 힘든 칵테일이죠.”
명진은 그런 이들에게 인자하게 웃으며 차분히 설명을 이어갔다. 믹싱 글라스와 바 스푼을 드는 걸 보니 기법은 셰이킹이 아닌 스터로 보였다.
- 딸그락, 딸그락, 또르르르륵!
가볍게 벽면을 타고 도는 바스푼. 유려하게 얼음과 음료 사이를 비집고 들어서는 바스푼이 마치 춤을 추듯 믹싱 글라스의 벽을 타고 돌았다.
바스푼을 돌리는 명진의 손은 춤추는 스푼의 모습이 무안하게 미동조차 없다.
“이건···, 마스터의 오리지널 칵테일인가요?”
“아쉽게도 아닙니다.”
“그럼···?”
“해외에서는 나름 유명한 칵테일입니다만, 한국에서는 잘 찾으시는 분은 없죠. 아무래도 셰리와 듀보네, 베르무트와 코앵트로 모두. 스트레이트로 마셨을 때 더 맛있는 것들이니까요.”
“맞아요! 셰리는 강화 와인, 듀보네는 레드 와인, 베르무트는 화이트 베이스! 그리고 코앵트로는 오렌지 껍질 술이니까요! 차게 해서 원샷! 하는 게 제일 맛있죠!”
“공부를 많이 하셨군요. 맞습니다. 와인 베이스에 또 와인 베이스. 거기에 오렌지 껍질 술과 진이라는 베리류 증류주까지. 어쩌면 섞어 먹지 않는 게 더 맛있을지도 모르는 술들이죠.”
“그만큼 어렵기두 하구요.”
“쉽게 빠지는 착각입니다. 맛있는 것에 맛있는 걸 더하면 더 맛있을 거란 착각. 바텐더가 늘 경계해야 하는 상념이고. 해서 더 어려운 칵테일인 것도 맞습니다.”
명진은 스터를 하면서도 앞에서 전해져 오는 말을 놓치지 않았다.
믹싱 글라스를 타고 돌던 그의 바스푼이 이제야 멈췄다.
- 스르르르륵, 촤악!
거칠게 뿜어지는 명진의 칵테일. 정확히 네 잔 분량을 전부 채우고 나서야 믹싱 글라스가 바닥을 보였다.
분량마저도 완벽한, 짙은 갈색에 투명함을 갖춘 칵테일이 넓은 잔에 부어졌다.
“그래서 이 칵테일은 이렇게 부릅니다. 맛있는 술에 맛있는 술을 섞어 더 어렵게 만드는 술. 그리고 굳이 그런 일을 하는 사람들···”
명진은 잔을 하나씩 내밀며 주니어 바텐더들과 시선을 맞췄다. 하나씩 그들의 얼굴을 기억에 담듯 차분히 눈을 맞추는 그의 시선이 따스하게만 다가왔다.
“칵테일의 이름은 바텐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