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술은 특별합니다-24화 (24/175)

24잔. 셰이킹과 스터.

5.

- 살각! 살각! 살각!

부드럽게 흔들리는 셰이킹 소리.

음료와 얼음, 그리고 다른 음료가 섞이는 소리가 부드럽게 들려왔다.

‘자신 있게 말하더니···’

그럴 만한 실력은 있는 것처럼 보였다. 아직 경험이야 다른 바텐더들보다 못하겠지만, 실력만큼은 확실히 큰소리칠 이유가 있어 보였다.

헌데, 정환이 보여주는 셰이킹의 자세가 조금 이상하다. 재훈은 소리만 집중하던 중 눈을 뜨고는 이상한 자세의 정환을 주목했다.

보통 셰이킹이라는 건 셰이커를 옆으로 눕힌 다음 이를 앞으로 뻗어준 후 손목의 스냅을 이용해 흔들어주는 과정을 말한다.

얼마나 뻗고 접을지, 또 어디서 흔들지. 바텐더마다 방법이야 제각각.

하지만, 옆으로 눕혀 이를 흔든다는 건 변하지 않는 상식이었다.

셰이커를 옆으로 눕히는 건 명백한 이유가 있다.

셰이킹은 단순히 믹싱이나 냉각만을 위한 것이 아닌, 캡이라 불리는 뚜껑 윗부분에 담긴 공기와 액체를 마찰시켜 술 속에 기포를 담아주는 과정이다.

이를 위해서는, 셰이커를 옆으로 눕혀 윗부분의 공기가 아래로 향하게 해야 한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정환의 자세는 확실히 그 원리에 위배 되는 자세였다.

일반적인 모습과 다르게 정환은 셰이커를 똑바로 세운 뒤, 아래위로 흔들고 있었다.

‘자세를 모르는 건가···?’

소리를 저렇게 경쾌하게 내면서 자세를 모른다? 그건 말도 안 된다는 걸 재훈도 알고 있다.

하지만, 저런 자세를 처음 접하는 재훈은 달리 다른 생각을 떠올릴 수 없었다.

- 살가악!

셰이킹이 멈췄다. 잔을 찾아 이를 털어 내는 정환. 잘 섞인 영롱한 보랏빛 액체가 잔에 담겨 정환과 재훈을 맞았다.

색상은 뚜렷한 파리지앵의 색이 확실했다.

“···이게 파리지앵이라는 말씀입니까?”

“아닌가요?”

“······.”

들어간 재료가 같고 또 비율도 같다. 기법만이 바뀐 상황에서 자신의 상식과는 어긋나지만, 아니라는 말은 나오지 않는 재훈이다.

“셰이킹은 왜···그런 식으로 하신 거죠?”

“우선 드셔보시죠.”

궁금한 게 많아지는 재훈. 그런 재훈에게 정환은 우선 잔을 내밀며 맛을 봐달라는 말을 전했다.

재훈은 떨리는 눈으로 잔을 내려봤다.

새로운 칵테일에 거부감은 없다. 다만, 무언가 불안감이 재훈을 덮쳤다.

알 수 없는 감정. 마치 자신이 알던 세계가 곧 깨지고만 말 것 같은 그런 감정이 재훈의 온몸을 휘감았다.

말없이 재훈이 잔을 들기를 기다리는 바텐더 차정환. 재훈은 그와 눈을 한 번 맞추고는 조심스레 손을 뻗어 잔을 들어 올렸다.

잔은 코로 향했다. 풍성한 카시스의 향이 처음 그의 코를 스치더니, 이내 뒤따라오는 진득한 마티니의 향이 이를 밀어낸다.

정확한 파리지앵의 향. 그 자체였다.

‘말도 안 돼···’

스터를 셰이킹으로 바꾸면 맛의 결 자체가 달라진다는 건 알고 있다.

헌데, 지금 재훈이 맡은 이 향은. 결 자체가 바뀌지 않은 잘 저은 스터로 만든 파리지앵의 향 그대로였다.

마시고 싶다.

충동이 재훈의 머리를 지배했다. 조금 전까지 자신을 휘감던 불안감을 일시에 지워버리고 본능에 가까운, 바텐더로서 누구나 가지고 있는 그런 욕구를 불러오는 재훈의 속마음.

재훈은 욕구를 억누르지 않고 그대로 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셰이킹으로 만들었음에도 거품이 전혀 생기지 않은 날 것 그대로의 액체가 재훈의 입술을 타고 흘렀다.

부드러운 맛이 혀를 감돈다. 카시스 특유의 달콤함과 신맛이 합쳐져 마치 음료를 마시듯 부드럽게 혀를 감싸는 파리지앵의 맛.

하지만.

‘이건 너무 약한 데···’

재훈을 만족시키기에는 역부족이다. 재훈은 어디까지나 순한 맛 속에서 마티니의 풍미를 살리고 싶었다.

향에서야 마티니의 향이 뿜어졌지만, 혀로 전해지지 않아 너무도 부드럽고 감미로운 맛에 재훈은 살짝 실망하는 표정을 지으려 했다.

- 후우우우.

그리고 마지막으로 뿜어내는 재훈의 콧바람. 입을 닫고 술이 넘어간 후 올라오는 피니쉬를 느끼기 위해 재훈은 바람을 내쉬었다.

재훈의 콧바람이 뿜어지고 속에서 마지막 잔향이 올라오려 할 때.

‘······!!!’

재훈은 전해지는 잔향에 깜짝 놀라 두 눈을 번쩍 뜨고 말았다.

고소하고 진득한 풍미. 그리고 묵직한 느낌마저 드는 잔향이 재훈의 입을 가득 채운다.

이건 분명히.

마티니 특유의 풍미였다.

‘아···!’

아련하게 번지는 재훈의 미소. 재훈은 자신도 모르게 턱을 들고 고개를 내저으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얼굴에 지어버렸다.

맛난 걸 마주한 이의 표현 욕구가 그대로 얼굴에 퍼졌다.

“괜찮나요?”

한참 감상에 빠져있던 재훈을 깨우는 누군가의 목소리. 이런 말도 안 되는 조화를 이뤄낸, 신입이라는 한 바텐더의 목소리였다.

“······.”

재훈은 서둘러 고개를 내리고 정환을 바라봤다. 그의 눈동자에 복합적인 심정이 그대로 묻어났다.

솔직히 말하자면.

방금 마신 파리지앵은 재훈이 만들고자 했던 파리지앵,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어떻게···, 어떻게 하신 겁니까?”

무얼 먼저 물어야 할까. 고민하던 끝에 나온 말은 우선 칵테일에 관한 말이다.

재훈은 정환이 만들어낸 파리지앵이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꼭 스터로 만들란 법은 없으니까요. 셰이킹으로 트위스트를 줘봤습니다. 마음에 드신 모양이네요.”

“···일반적인 셰이킹과는 다르더군요. 마치···”

“깎는 것처럼.”

!

재훈은 자신이 말하려던 감상을 먼저 뱉는 정환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하고 싶었던 말이기도 했고. 또, 저 말은 정환이 그런 느낌을 내려 의도했다는 뜻이기도 했으니까.

“···옆으로 눕히지 않은 셰이킹이라니 처음 봅니다···.”

“스터를 대신해 셰이킹을 하는 경우는 세워서 하는 게 맞습니다. 그래야 공기가 섞이지 않아 맛이 변하지 않거든요.”

끄덕여지는 재훈의 고개. 간단한 말이지만, 바텐더이기에 이해가 가지 않는 말은 아니다.

이를 생각해내지 못했다는 게, 이 원리를 모른다는 뜻은 아니었다.

“셰이킹을 하면 칵테일이 부드러워집니다. 헌데, 스터로 만드는 칵테일은 그런 부드러움과는 다른 묵직함과 날카로움이 살아있는 칵테일들이죠. 그래서 공기를 포함하지 않은 셰이킹을 해봤습니다. 술을 깎아내린다는 느낌으로.”

“스터로 만드는 칵테일을 셰이킹으로 하는 것도 신기한데 그런 생각까지 하다니···”

“스터와 셰이킹은 큰 차이가 있는 방식은 아닙니다. 믹싱과 냉각, 그리고 물을 더한다는 것. 거기에 공기가 포함되느냐 아니냐의 차이죠.”

“······.”

재훈은 자신보다 한참 뒤처진 경력의 바텐더 입에서 나오는 원론에 할 말을 잃었다.

어쩌면 신입이기에 편견 없이 알 수도 있는 걸까. 그런 생각이 재훈의 머리를 스쳤다.

“대단하군요···. 한참을 고민해도 답이 나오지 않던 걸···.”

“이제 찾았으니, 된 거 아니겠어요?”

“네···?”

재훈은 정환을 칭찬하다가도 그의 이어지는 말에 다시금 눈을 크게 떴다.

저 말이. 마치 방금 정환이 만들어 낸 그 레시피를, 자신에게도 알려주겠다는 뜻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괜찮은···겁니까?”

“안 될 이유가 없죠. 그저 방식만 바꾼 건데요. 제가 개발한 칵테일도 아니고요.”

“······.”

“싫으신가요?”

“아, 아닙니다! 가르쳐만 주신다면···!”

정환은 밝게 웃고 재훈의 곁으로 다가서 하나둘 자신이 펼쳤던 방식을 알려줬다.

조금의 숨김도 없이 차분히 노하우를 전수하는 정환의 손길.

재훈은 조금의 부끄러움도 없이 신입 바텐더에게 기술을 배워갔다.

- 살각! 살각! 살각!

정환이 했던 것처럼 셰이커를 세워 흔들어보는 재훈. 익숙하지 않은 자세에 몇 번은 실패하기도 했다. 그래도 정환이 어깨와 팔목을 잡아주니 어느새 자세가 안정되어 갔다.

“되, 된다!”

재훈은 몇 번의 시도 끝에 자신이 탄생시킨 셰이킹 파리지앵을 맛본 후 기쁜 듯 소리쳤다.

그의 표정에 성취감이 가득하다. 오래도록 머리를 채우던 고민이 일시에 사라진 것처럼.

“정말 감사합니다! 이런 파리지앵이라면···!”

“한남동에서도 통할까요?”

“물론이죠! 아주 잘 통할 겁니다. 이건···! 오히려 먼저 추천해도 좋을 정도이군요.”

“다행이네요.”

“정말 뭐라고 감사를 드려야 할지···.”

“아니요, 이러라고 있는 스터디잖아요. 같이 배워나가는 거죠. 또···, 제가 언제 도움을 받을지 누가 알겠어요?”

정환은 계속해서 감사하다는 재훈을 뒤로 자리를 벗어나려 했다.

그런 정환을 향해 한마디를 더 던져보는 재훈.

“근데 정환 씨는 어떻게 이런 실력을···?”

믿을 수 없는 신입의 퍼포먼스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이다. 누구나 궁금해할 법한, 그런 질문.

돌아서서 재훈을 바라보는 정환.

여기서 뭐라 답해야 할까.

정환은 명확한 답 대신, 작은 아련함을 하나 흘리기로 한다. 임재훈이라는 훗날 크게 성장할 사업가를, 또 좋은 바텐더를.

낚을 작은 미끼와 같은 아련함을.

“다음에 알려드리죠. 또···, 볼 날이 있지 않을까요?”

“···네···?”

“못 보면 못 알려드리는 거고요.”

- 씨익.

정환은 말을 마지막으로 완전히 자리를 떠 기준의 옆으로 향했다.

너무 과하게 다가서는 건 좋지 않다. 무엇이든 적당히. 또 천천히.

그리고 확실하게.

정환은 그렇게 재훈을 자신의 사람으로 만들 계획을 세웠다.

“또 뭘 한 거야, 정환 씨?”

“그냥, 간단한 칵테일요.”

“하여튼.”

정겹게 대화를 주고받는 기준과 정환을 넋이 나간 표정으로 재훈이 바라봤다.

“자자, 다다음주에 아르센에 갈 사람은 더 없죠? 이제 마무리합니다?”

그리고 그런 재훈의 뒤로 스치듯 들려오는 아티치의 바텐더 이연희의 목소리.

기준과 정환에게 아르센을 방문해도 좋다는 말을 들은 그녀는 견학 차 함께 갈 주니어 바텐더를 모집하고 있었다.

셋 정도의 바텐더가 지원한 모양이었다.

“저···. 연희 씨.”

“어, 재훈 씨? 네. 왜 그러세요?”

“저도 신청해도 되겠습니까?”

“뭐···를요?”

“···아르센.”

“네에?”

평소 모임에도 꾸준히 나와도 스터디나 연구 외에는 별다른 활동을 하지 않던 임재훈이었다.

실력이야 월등히 좋다는 걸 알고 있던 다른 바텐더들도 알고 있다. 다만, 그렇기에 더욱 쉽게 다가가지 못했던 게 또 임재훈 바텐더였고.

그가 이렇게 먼저 모임에 참석하겠노라, 나선 게 처음이기에 이연희를 비롯한 바텐더들은 조금 놀란 눈치였다.

“재훈 씨가요? 의외네요···?”

“이제···, 모임도 자주 나와야겠네요. 네···. 그래야죠.”

“저희야 좋죠. 재훈 씨 같이 실력 좋은 분이 자주 나오고 또 같이 연습하면. 그런데··· 갑작스럽긴 하네요. 혹시 무슨 일이라도 있어요?”

“아뇨···, 그런 건.”

재훈은 무슨 일이 있냐는 말에 아니란 말을 하면서도 반대쪽을 바라보며 이채가 가득한 눈빛을 보냈다.

한 선배와 웃으며 대화를 나누고 있는 젊은 바텐더에게.

“그러라고 있는 스터디잖아요. 같이 배워나가야죠. 언제 또···, 제가 도움을 받을 수도 있는 거니까요.”

그리고 조금 전 자신이 들었던 말을 차분히 뱉어보는 재훈. 한 번 따라 해본 말인데, 이를 뱉다 보니 문득 진심이라는 게 담긴다.

정환이 던진 미끼에.

어쩌면 대어가 걸린 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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