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술은 특별합니다-13화 (13/175)

13잔. 바백.

1.

바 테이블 안에서 만나자.

별거 아닌 말처럼 들릴 수 있지만, 바텐더에겐 의미가 큰 말이다.

플로어 스태프를 졸업하고 이제는 바백으로 가자는 말. 또, 조금 더 술과 그리고 손님과 가까이 지내자는 말이 바로 바 테이블 안에서 만나자는 말이었다.

바 테이블을 넘게 되면 재료 손질과 얼음 카빙, 그리고 술병을 관리하는 일과 손님을 응대하는 일까지 맡게 된다.

칵테일을 만들어 손님께 서브하는 일을 제외한. 바텐더의 모든 일을 할 수 있다.

생각보다 빠른 진급이다. 비록 이명진 마스터가 ‘한동안’이라는 추상적인 단어를 썼지만, 그게 한 달이라는 이렇게 짧은 시간일 줄은 꿈에도 몰랐던 정환.

‘경력 1년 취급을 해준다는 건가?’

아직 크게 보여준 건 없었기에, 이렇게 빠른 진급이 조금은 낯설게 느껴졌다.

“아. 정환 씨. 왔어? 오늘부터 바 테이블 안에서 일 배우라던데.”

설레고 낯선 마음으로 들어선 아르센에선 매니저 신정우가 정환을 반겼다.

매일 문을 여닫는 건. 매니저인 신정우의 일이었다.

“마스터께서는 아직 안 나오셨나 봐요?”

“응. 나중에야 오실 거야. 요즘 몸이 부쩍 안 좋으셔서.”

“걱정이네요.”

“그러게. 마스터야 기준이 때문에 정환 씨를 뽑았다고 말씀하셨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거든. 사실 마스터 건강도 예전 같지 않고.”

이명진 마스터의 나이는 얼핏 봤을 때 50대 정도. 정확한 나이야 알 수 없지만, 외관으로 보이는 건 그러했다.

바텐더라는 직업이 하루 반나절을 서서 보내야 하는 직업인 만큼 건강이 상하는 이들도 한둘이 아니다.

순환계통이나 다리, 또는 손목···까지.

정신적으로 이상해지는 바텐더도 드물진 않았고.

당장 정환부터도 12년이란 경력에 몸이 먼저 상하지 않았나.

그 이상 가는 경력을 가진 이명진 마스터의 몸이 상하는 것도 이상한 건 아니었다.

“제가 얼른 사람 한 명 몫을 해야겠네요.”

“그래 주면 좋지. 그러려면 지금부터 일을 자알-. 배워야 하고.”

매니저 신정우는 손짓하며 바 안으로 들어오란 시늉을 보였다.

“우선 옷부터 갈아입고 나와. 이제부터 하나씩 시작하자.”

“옙!”

정환은 백사이드로 향해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아직 재킷이 지급되지 않아 조끼까지 밖에 없는 유니폼. 그럼에도 지난주부터 받은 ‘차정환’이라는 이름이 새겨진 명찰까지 걸어주니, 제법 바텐더 같은 모양새가 났다.

“자, 바닥을 쓸고 닦는 건 당연히 해둬야 하는 거고. 이제부터는 일이 늘어난다고 생각하면 좋아. 정환 씨 지난 한 달 동안 우리가 일하는 거 잘 봤잖아? 그지? 그럼···, 제일 먼저 뭐부터 해야 할까?”

백사이드에서 나오자, 본격적인 교육이 시작됐다. 지난 견학 시간을 어떻게 보냈는지. 이를 확인하려는 정우.

“과일부터 다듬고 얼음을 준비하겠습니다.”

“잘 봤네. 정확해.”

정우는 과일을 몇 개 꺼내더니 도마에 올려두고는 정환에게 칼을 건넸다.

“하는 거 봤으니까. 할 수 있는데 까지만 해봐. 정환 씨 수준을 알아야 내가 뭘 알려주지.”

과일 다루는 거야 어렵지 않은 일이다. 바텐더는 술만 다루는 사람이 아닌, 그에 부속되는 여러 재료 역시 함께 다루는 사람이다.

정환에게 과일은, 술만큼이나 친숙한 재료였다.

“레몬이랑 라임. 오렌지랑 자몽까지. 귤류 과일 먼저 해보자.”

제일 먼저 정환의 앞에 놓인 과일은 귤류 과일. 속을 알 수 없는 이명진 마스터의 제자답게. 신정우 매니저 역시 제법 능구렁이 같은 면이 있어 보였다.

다른 과일에 비해 바텐더의 플루트 컷팅 실력을 가늠하기 좋은 과일이 바로 이 귤류 과일.

혹여나 실수로 껍질이나 과육을 제외한 하얀 부분을 건드리기라도 하면 크게 맛이 변하기에 실력을 가늠하기에는 귤류 과일이 최적이었다.

정환은 조심스레 과일을 씻으며 상한 부분이 없는지 살폈다.

우선은 좋은 과일을 고르는 것. 그 안목에서부터 과일을 다루는 솜씨는 시작한다.

도마를 준비하고 레몬과 라임, 오렌지와 자몽을 올려둔 정환이 손에 칼을 들었다. 눈가에 힘을 주며 정환의 손 끝에 주목하는 신정우.

- 스으윽.

정환은 그런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대로 손을 내렸다.

정환이 든 칼은 레몬과 라임을 썰어가며 옆으로 통통 밀어내기 시작했다.

- 슥, 슥, 슥.

경쾌하게 도마를 울리는 정환의 칼질.

이를 보는 정우의 눈빛이, 살짝 떨려왔다.

‘크기가···’

균일하다. 장식용으로 사용되는 레몬과 라임에 알맞은 딱 그런 크기. 정확히 용도를 정하고 잘라가는 정환의 칼질이 일정한 모양의 레몬을 한곳에 모아갔다.

‘음···’

정우는 조용히 칼질하는 정환의 곁에서 잘린 레몬을 들어 올렸다. 그래, 크기를 일정하게 써는 건 칭찬할 만하다. 하지만, 바텐더라면 더 주목해야 할 건 따로 있었다.

과육이나 껍질이 칼질에 눌려 상하진 않았는지. 그래서 맛에 변화가 오지는 않았는지. 정우는 이를 살피려 레몬을 들어 올렸다.

빠르게 과일을 훑고 간 칼은 섬세한 조절을 보여주지 못한다. 정우는 그런 의심으로 정환이 잘라둔 레몬을 꼼꼼히 살폈다.

‘이건···’

정우의 눈이 커진다. 믿었던 확신이 깨어지는 자의 그런 모습이 정우의 얼굴을 채웠다.

신정우 매니저가 들어 올린 레몬은. 아무런 상한 부분 없이 너무도 멀쩡한 상태로 잘려있었기 때문이었다.

‘······.’

입을 다문 정우는 칼을 내려두고 얌전히 서 있는 정환을 멀뚱히 바라봤다.

“다른 과일도 채워둘까요?”

“어···, 어?”

“파인애플이나 다른 과일요.”

“어, 응. 그렇게 해. 잘하네.”

원래라면. 정말 원래대로 신입이 칼질을 한 뒤라면. 정우가 그렇게 하는 게 아니라며 나서서 시범을 보여줘야 한다.

하지만, 정환이 보여준 칼질이 너무나 완벽했기에. 정우는 무어라 입을 댈 부분도, 또 가르쳐야 할 방법도. 더는 떠오르지 않았다.

‘미안해요, 정우 형.’

정환은 속으로 정우에게 미안한 마음을 삼켰다. 신입이 들어오고 새로운 일을 가르치며 정우 역시 배우는 부분이 있을지도 모른다.

누군가를 가르치는 과정에서 자신도 몰랐던 것, 또 잘못된 것을 새롭게 배우는 사람도 있지 않나.

그를 생각해 적당히 맞춰주고는 싶어도.

정환에게는 먼 길을 돌아갈 여유가 없었다.

‘얼른 실력을 보여주고 인정을 받아야지.’

실력을 보여주고 최대한 빠르게 인정을 받아 프론트로 나선다. 정환은 그를 위해, 자신의 실력을 감출 생각이 없었다.

얼음을 카빙(*조각)하는 작업에서도 정우는 정환에게 아무런 말을 보태지 못했다. 블록 아이스라 부르는 커다란 얼음을 자르는 것부터, 작은 얼음을 원형으로 깎아내는 작업까지.

정환의 손놀림은 가히 신입이라 부르기 아까울 정도였다.

“너 정말 처음 맞지?”

“집에서 연습해서요. 공부도 하고···, 또 지난 한 달간 보기도 많이 봤구요.”

“······.”

이쪽 업계만큼은 ‘천재’나 타고난 재능 같은 게 없다고 굳게 믿었던 정우였다. 헌데, 지금 보니. 그 믿음도 어쩌면 바뀌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천재 바텐더라···’

그런 말은 처음.

정말 처음 떠올려 보는 신정우 매니저.

문득 정환이 면접을 본 날이 정우의 머리를 스친다. 정환이 만들어 두었던 마티니. 마스터 이명진 바텐더만이 맛을 봤던 그 마티니가.

‘설마···?’

에이, 아니겠지.

설마.

마스터가 정환의 마티니를 맛보고 실력을 알고 있어서. 남다르다는 걸 알아채서. 그래서 자신에게 맛을 보게 하지 않은 거라.

그런 생각이 슬쩍 정우의 머리를 스쳤지만, 정우는 거기까지는 생각을 하지 않기로 했다.

마스터 바텐더라는 큰 자리가 비어있음에도 영업 준비가 빠르게 끝났다.

평소보다 훨씬 여유로워진 아르센.

아르센은 그렇게 여유로움을 품고, 손님을 맞았다.

2.

“흠. 오늘은 마스터께서 자리를 비우신 건가?”

깔끔한 아르마니 정장에 고급 시계를 찬 노신사가 잔을 들어 올렸다.

그는 바의 사정을 잘 안다는 듯 평소와 다른 점을 바로 짚어 내었다.

“몸이 조금 안 좋으셔서요.”

“요즘 들어 자리를 자주 비우시는군.”

“죄송할 따름입니다.”

“괜찮네. 매니저의 실력이야 확실하지 않나. 마스터에 비할 바는 아니라도.”

괜찮다는 말을 전했지만 그게 전부가 아님을 알고 있다. 아르센의 매니저 신정우는 벌써 두 잔째 진토닉만을 들이켜는 노신사를 보며 그런 생각을 떠올렸다.

‘마스터가 있을 때는 마티니부터 시작하시는 분이···’

마티니는 섬세한 칵테일이다. 실력의 편차에 따라 맛도 많이 달라지는 그런 칵테일이 바로 마티니.

아직 자신의 실력이 마티니를 조화롭게 하지 못한다는 뜻일까. 계속해서 진토닉만을 마시는 노신사의 주문에 정우는 슬쩍 신경이 쓰이고 있었다.

“음···. 한 잔을 더 마셨으니 다음 잔을 주문했으면 하는데.”

“말씀하시죠.”

“진···”

토닉일까. 또?

진토닉은 손님이 정하는 진에 토닉워터와 레몬 가니시만을 올리면 끝나는 간단한 칵테일이다.

바텐더마다 비율에 차이를 줘 맛은 다르겠지만, 크게 변화를 일으킬 수 없는 칵테일이 진토닉이기도 했다.

정우는 자신의 실력을 믿지 못하는 것 같은 마음에 노신사의 입술에 신경을 집중했다.

“피즈.”

휴우.

다행이다.

이번에는 진토닉이 아닌, 진피즈(Gin Fizz)라는 말에 정우는 한숨을 속으로 내쉬었다.

진피즈는 진토닉과 비슷한 칵테일이다. 토닉워터만을 첨가하는 진토닉과 달리 시럽과 레몬즙이 들어가고 또 셰이킹까지 들어가는 진피즈는 바텐더의 실력을 보여주기에 모자람이 없는 칵테일이었다.

“네, 진피즈. 진은 늘 드시던 거로 하시겠습니까?”

“그렇게 해주게. 기대하지.”

정우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옆으로 몸을 돌렸다. 노신사가 늘 마시는 진은 탱커레이 넘버텐(Tanqueray No.10).

이와 함께 레몬과 시럽 등을 준비하려 몸을 돌리는 정우.

하지만, 그의 몸이 돌아간 곳에는.

‘···?’

이미 순서에 맞게 준비된 텡커레이 넘버텐과 레몬즙, 그리고 시럽을 담은 병이 정갈하게 놓여있었다.

‘이게 왜···?’

이제야 막 주문을 받은 참이었다. 일전에 진토닉을 타며 사용했던 탱커레이 역시 뒤로 빼두었었고.

완벽하게 준비된 재료를 보며 정우는 영문을 알 수 없었다.

정우는 슬쩍 고개를 돌려 바백인 기준이 있는 곳을 바라봤다.

“···해서, 아마 다음 달 초쯤일 거 같습니다.”

“음, 데뷔전이라. 다음 달 초에는 꼭 시간을 비워둬야겠군요.”

“감사합니다.”

“기준 씨가 벌써 데뷔전이라니······ ··· ···”

한창 손님을 응대하며 대화에 삼매경인 기준. 잔을 닦으면서 대화를 나누는 그에게 재료를 챙길 여유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진 않았다.

또 방향 역시 달랐다.

재료는 정우의 왼편.

기준은 오른쪽에 자리하고 있었으니까.

‘그럼···?’

정우는 왼쪽 바 구석을 바라봤다.

오른쪽과 비슷한 풍경이 정우를 반긴다.

“신입이 제법 빠릿하구만.”

“감사합니다.”

“내가 아르센에만 벌써 3년···, ······ ······!”

다른 손님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정환.

정우는 준비된 재료가 온 곳들과 놓인 위치 등을 살피며 이 재료들이 왼쪽, 그러니까 정환 쪽에서 준비된 것들이란 것을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다.

‘대화를 나누면서도···’

이쪽의 주문을 듣고 있었다는 말일까.

정우는 애써 그렇진 않을 거라. 그렇게 생각하며 정환의 면면을 살폈다.

하지만, 그런 정우의 생각이 무색하게 정우를 향해 슬쩍 고개를 돌리는 정환.

밝게 웃으며 재료를 가리키는 그의 눈빛이. 마치 이걸 내가 준비했다. 그렇게 말하는 것처럼만 보였다.

“······.”

이게 다 뭐란 말인가.

정우는 혼란스러운 머릿속을 감출 수가 없었다.

영업을 준비하며 보여준 모습과 바백으로 들어와 자연스럽게 손님을 응대하는 모습까지.

거기에 더 나아가 옆에서 들려오는 주문을 듣고는 그에 맞춰 재료를 준비하는 세심함까지.

다른 진을 준비했다면 그저 열심히 한다는 생각에서 그쳤을 정우였다.

허나, 아름드리 놓인.

탱커레이 넘버텐.

정확히 노신사가 연달아 마셨던 진과 같은 브랜드의 진이 준비된 걸 보자. 정우는 그저 아무런 말도 정환에게 보탤 수가 없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흠···. 마스터가 자랑스러워하시겠군.”

“네?”

들려오는 노신사의 말.

“마스터가 없어도···, 이렇게 아르센이 잘 돌아가니까 말일세. 허허.”

아르센이 잘 돌아간다.

그런 말에 정우는 고개를 들고 좌석을 차지한 손님들을 바라봤다.

‘여섯···, 아니, 일곱?’

시간은 이제 11시를 향해가는 무렵.

거기에 오늘은 평일인 월요일.

네다섯 명 정도가 전부인 평일에 비해 많은 손님이 바 안을 채우고 있었다.

이명진 마스터가 없는 날 이렇게 평소보다 많은 손님이 이렇게 들어섰다면 분명 분주했을 바 안.

하지만 오늘은 어느 때보다 여유롭고 고요한 느낌만이 바 안을 채우고 있었다.

정우는 셰이커를 흔들며 정환을 바라봤다.

분명 신입이고 오늘에야 바백으로 활동에 나선 사람이 저 차정환이라는 인물이다.

원래라면 바 안에 새롭게 사람을 들였을 때, 동선이 겹치고 이것저것 방해를 받으며 바 안이 더욱 바빠짐을 알고 있는 신정우 매니저.

그는 오늘 한 번도 일이 막히지 않았고 아무런 방해를 받지 않았음을. 더 나아가 더욱 여유롭게 모든 준비가 마쳐지고 있었음을.

자신도 모르게 잊고 있었다.

“······.”

신정우가 슬쩍 입술을 깨물었다.

도대체 저 신입이 누굴지.

또 어떤 인물이 아르센에 들어온 건지.

정우는 아직 알 길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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