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잔. 사이드카.
1.
필기시험장과 비교해 실기시험장은 더욱 한산한 풍경이었다.
필기 합격 후 2년 내에만 응시하면 되는 게 실기였기에 다들 연달아 시험을 보는 건 피하는 눈치였다.
실기는 직접 칵테일을 만들어야 하는 시험이다.
7분이라는 제한 시간 내에 제시된 3잔의 칵테일을 만들어 내면 합격인 시험.
그 과정을 보며 감독관들이 점수를 매기는 방식으로 위생과 술 다루는 솜씨, 칵테일 제조 기법, 그리고 과일 다루는 방법까지.
기본적으로 칵테일을 만드는 데 필요한 능력을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시험이 조주기능사 실기시험이었다.
7분 안에 3잔을 만든다는 게 듣기에는 쉬워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모두 외우고 있어야 하는 레시피는 39종이나 되고 이를 만들기 위해 알고 있어야 하는 재료는 수백 가지에 이르렀다.
한 번도 술병을 직접 만져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쉽게 합격할 수 있는 시험은 아니었다.
그래서 요즘은 이런 실기를 대비하는 학원 역시 늘어나는 추세라고 한다.
재료가 되는 술들의 가격이 개인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기에 학원에 다니며 이를 체험해보는 것도 나쁜 방법은 아닐 것이다.
물론, 정환에게는.
전혀 필요 없는 일이었지만.
편안한 마음으로 대기실에서 차례를 기다렸다.
한 번에 3명씩 입장해 시험을 보는 방식이기에 뒤쪽 번호를 배정받았던 정환은 대기시간이 제법 긴 편이었다.
기다리는 동안 여러 사람이 시험장을 드나들었다.
누구는 울면서 뛰쳐나가기도, 누구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당당히 걸어 나오기도 했다.
그렇게 사람들이 대부분 사라지고 난 다음에야.
정환의 차례가 찾아왔다.
“정희경 님 이승준 님···, 그리고 차정환 님.”
“옙!”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당차게 답하고 시험장으로 들어섰다.
시험장에는 3개의 시험대와 3명의 심사위원, 그리고 진행을 도와주는 진행요원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심사위원들의 나이대는 생각보다 높아 보였다. 셋 모두 50대거나 최소 40대 후반 정도의 나이.
이는 많은 걸 시사해주고 있었는데, 대표적으로 저들이 정통 바텐더는 아니란 걸 정환은 알 수 있었다.
한국 바텐더의 역사는 그렇게 깊지 않다.
1990년대에 패밀리 레스토랑의 진출과 함께 성장한 게 한국의 바 씬(Bar Scene).
물론 그 전에 미군 부대를 주변으로 1세대라 부를 만한 바텐더들이 있었다는 말도 있지만, 그 명맥은 이어지지 않았다.
그 말은.
저 나이대의 사람들이.
정통 바텐더일 리는 없다는 뜻이다.
저 나이에 심사위원이라는 직책을 꿰찰 정도면 적어도 20년의 경력은 있어야 할 텐데.
그럼 저들이 최소 30은 넘어서 업계에 들어왔다는 말이니, 그건 조금 무리가 아닐까.
정환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대학교수 정도려나?’
호텔에서 F&B를 담당했거나 커피 관련 학위를 딴 사람들이 칵테일까지 담당하며 대학교수를 역임하는 경우가 있다던데.
아마 저 심사위원들도 대부분 그런 경우일 것이다.
‘집중하자. 누가 평가하든 그게 뭐 어때서.’
진행요원들이 수험생들 사이를 돌며 신분을 확인했다.
마지막 차례인 정환까지 신분증을 확인한 후, 본격적인 시험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다.
“2분간 집기와 재료를 살필 시간을 드릴 겁니다. 자유롭게 만져는 보시되 위치 이동은 안 되니 이점 명심해 주세요. 아, 1번 응시생 나와서 공을 뽑아주세요.”
원래 일하던 바처럼 각자의 손에 맞게 배치된 집기들이 아닌, 임의로 배치된 집기를 익히는 시간이 주어졌다.
술병 역시 진행요원들이 임의로 섞어 놓은 배치. 정환은 서둘러 주변을 살피며 필요한 집기들을 쏙쏙 머리에 집어넣었다.
응시자들이 비치된 집기를 살피는 동안 진행요원과 1번 응시생이 공을 뽑았다.
진행요원은 그 공을 보고 화이트보드에 무언갈 쓰기 시작했다.
- 맨해튼(Manhattan)
- 사이드카(Sidecar)
- 데킬라 선라이즈(Tequila Sunrise)
이번 시험의 문제로 보이는 칵테일들의 이름이었다.
맨해튼은 저어주는 스터(Stir)를, 사이드카는 흔드는 쉐이킹(Shaking)을. 그리고 데킬라 선라이즈는 층을 만드는 플로팅(Floating)이란 기법을 평가하려는 의도로 보였다.
딱, 시험다운 문제 출제였다.
“자, 이제 시험을 시작합니다. 7분 안에 3잔을 만들어 코스터 위로 제출까지 해야 하니 시간을 잘 활용하시기 바랍니다. 2분 남았을 때 한 번 더 시간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앞에 놓인 스톱워치를 잘 봐주세요.”
2분이 흐른 뒤 스톱워치에는 7분이란 숫자가 다시 채워졌다.
그리고 시작하십시오! 란 진행요원의 말이 끝나자, 주변의 응시생들이 손을 분주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다들 힐끔거리며 스톱워치를 바라보는 눈길이, 시간에 쫓기는 모습이었다.
정환은 오랜만에 잡아 보는 바툴과 술병들에 감회가 남달랐다.
찬찬히 바툴과 술병을 아련히 바라보고 고개를 끄덕이는 정환.
- 후우우우.
가볍게 숨을 내쉰 정환이.
칵테일을 만들기 시작했다.
2.
“자, 시험 종료! 다들 여기까지만 해주셔야 합니다. 더는 손대시면 안 됩니다!”
시험 종료를 알리는 알람이 울렸다. 안타까움의 탄식과 안도의 한숨으로 가득 찬 시험장.
그리고 그런 소리에 맞춰.
응시생들의 맞은편에 앉았던 심사위원들이 일어섰다.
이미 제조 과정에 대한 평가를 마친 심사위원들은 칵테일의 완성도를 심사하러 발을 옮겼다.
딱, 한 사람만 빼고.
“김태현 교수. 최종 평가하러 가셔야죠?”
“······.”
김태현 교수.
그레인 호텔의 F&B 부장을 지내고 이제는 한국 관광 대학에서 F&B를 교육하고 있던 그는 자리에서 부동이었다.
“김 교수? 무슨 일 있어요?”
김태현 교수가 자리에서 꿈쩍을 하지 않자, 함께 심사위원을 맡은 정 교수가 나서서 그에게 말을 물었다.
커피를 전공한 정 교수는 태현의 표정을 전혀 읽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3번.”
“예?”
“방금 마지막 조 3번 말입니다.”
“아, 그 젊은 남자 응시생 말씀이군요. 3번이 왜요?”
“못 보신 겁니까?”
“···뭘···?”
못 본 게 아니라, 봐도 모르는 거라. 태현은 정교수의 반응을 보자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해는 한다.
커피를 전공해 그저 같은 음료란 이유로 칵테일을 공부했을 것이다. 실무랑 관련 있는 경력은 없는 사람이고 그냥 학자가 아닌가.
호텔 F&B에서 근무하며 직접 바텐더로 뛰어본 경험도 있는 태현에 비하면.
보는 시야가 다른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아닙니다.”
태현은 고개를 갸웃거리는 정교수를 향해 아니란 말로 일축했다.
서서히 몸을 일으키는 태현.
태현의 몸은 당연하다는 듯 3번 응시생, 차정환이라는 젊은 청년이 시험을 본 시험대로 향했다.
데킬라 선라이즈에 맨해튼, 그리고 사이드카.
데킬라 선라이즈를 만들 때까지는 그저 연습을 많이 한 학원생이거나 관련 전공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데킬라 선라이즈야 그저 술을 부어내고 또 시럽을 조금 느리게 가라앉히며 만들면 그만인 술이 아닌가.
하지만, 맨해튼부터는 달랐다.
‘분명 그 스터는···’
전문가의 솜씨였다. 태현은 그렇게 확신할 수 있었다.
정석적인 손가락 움직임과 절대 얼음을 건드리지 않고 정확히 믹싱 글라스의 면을 타고 춤추던 스푼.
그리고 믹싱 글라스를 잡은 손의 각도와 자세까지.
학생들, 아니 이제까지 자신의 손을 걸쳐간 모든 바텐더를 불러서 보여주고 싶을 정도로 스탠다드에 가까운 자세가 분명 저 3번 응시생의 자세였다.
태현은, 현직에 종사하는 바텐더들 사이에서도 저런 움직임을 보여주는 바텐더는 극소수일 거라. 그렇게 장담할 수 있었다.
사이드카는 또 어땠는가.
- 찰각, 찰각, 스르륵, 착!
분명 그런 소리가 들렸다. 착! 하는 순간 절도있게 꺾이는 셰이커의 각도가 아직도 눈앞에 선명하다.
말도 안 된다. 태현은 눈으로 보고 귀로 소리를 들으면서도 자신의 앞에서 펼쳐지는 광경에 입을 쩍 벌릴 수밖에 없었다.
보통은 마지막에 탈탈 털며 술을 따르는 게 전부인 응시생들 사이에서, 3번 응시생은 자신이 만든 술의 정량을 알고 있다는 듯 마지막에 셰이커를 털어 올렸다.
이건, 단기간에 익힐 수 있는 감각이. 절대 아니었다.
소리 역시 마찬가지였다.
셰이킹에서 저런 깔끔한 소리가 나올 수 있다니.
태현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자세에 대해서도 할 말은 많다.
다만, 여기까지 생각해보니.
감히 스스로가 이걸 평가할 자격이 있나.
그런 생각까지 들자, 태현은 이내 3번 응시생의 자세에 대해 생각하길 멈춰 버렸다.
태현이 바라보는 테이블 위에는 3번 응시생, 차정환이 만든 칵테일이 3잔 올려져 있었다.
저마다 영롱한 빛깔을 내뿜고 있는 칵테일들.
이미 응시생들이 나가고 몇 분이 흘렀다.
그런데도 3번이 만든 칵테일은 그 영롱한 빛을 잃지 않고 있었다.
“흠, 색이 아주 좋네요.”
태현의 곁으로 조금 전 말을 걸었던 정교수가 다가왔다.
자신이 담당하던 응시생의 칵테일을 전부 심사한 그는, 태현이 오래도록 관심을 보이는 3번 응시생에 흥미가 생긴 모양이었다.
“시간이 5분 넘게 지났는데도 멀쩡합니다. 데킬라 선라이즈는 조금 변했지만···, 이 사이드카. 여전히 황옥빛이 남아있군요.”
“흠, 그렇네요. 어디 학원 출신이려나요? 아님, 학부생?”
“···글쎄요.”
- 꼴깍.
태현의 목으로 한 모금의 침이 넘어갔다.
코를 자극하는 향과 군침을 돌게 하는 색.
거기에 눈길을 끌었던 제조 과정까지.
태현의 몸은 자신이 눈과 코로 느낀 저 칵테일에 강하게 이끌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태현을 신기하게 바라보는 정교수.
태현과 함께 조주기능사 실기시험 심사를 맡은 지 이미 3년이 넘은 그는 태현이 이런 반응을 보이는 걸 처음 봤다.
“맛보고 싶으시죠?”
“안 되는 걸 아시지 않습니까?”
실기시험 평가 항목에 맛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이 말은 심사위원이 함부로 응시생의 술을 맛봐서는 안 된다는 뜻이기도 했다.
평가 항목에 포함되지도 않은 맛이 평가에 영향을 주는 걸 방지하기 위한 규칙이었다.
“심사 중이라면 안 되는 게 맞죠. 하지만 지금은···”
- 츠윽.
심사가 끝났다.
정교수는 그런 말을 하려 평가지를 소리 내 반으로 접고 태현의 앞에 놓인 데킬라 선라이즈를 들어 올렸다.
눈을 찡긋하는 그의 모습이, 자신들끼리의 비밀이라 말하는 것처럼 보였다.
“······.”
태현은 잠시 망설이는 표정을 짓고 주변을 살피더니, 이내 허공을 향해 손을 뻗었다.
맨해튼과 사이드카.
그 사이에서 잠시 고민하던 손이 사이드카를 향해 나아갔다.
“이건 우리끼리의 일탈인 거로.”
“···예, 뭐.”
“그럼.”
정교수는 어깨를 한 번 으쓱하고는 그대로 잔을 입에 가져갔다.
태현은 정교수와 달리 잔을 코로 가져갔다.
‘흠, 노즈는 완벽하군.’
술의 맛을 표현할 때는 세 가지 단계로 표현할 수 있다. 제일 처음 향을 맡는 단계를 부르는 게 바로 노즈.
태현은 코를 가져다 대 사이드카의 재료인 브랜디와 트리플섹을 떠올렸다.
브랜디 특유의 진득한 향과 트리플섹의 오렌지 껍질 향이 진하게 태현의 코를 자극했다.
태현이 잔을 입으로 가지고 갔다.
다음으로 평가할 건 팔레트.
술이 처음 혀에 닿았을 때를 표현하는 말이 팔레트로 일차원적인 ‘맛’이란 단어가 여기에 대칭된다.
포근한 팔레트가 태현의 혀를 감싼다.
브랜디라는 제법 강한 술을 썼음에도 셰이킹 덕에 부드러워진 질감이 태현의 혀를 감고는 포근하게 목으로 빨려 들어갔다.
부드러움 속에서도 여전히 은은한 맛을 내는. 브랜디가 전혀 죽지 않은, 그런 맛이었다.
- 흐으으음.
술을 목으로 넘긴 태현이 입을 닫고 코로 숨을 내쉬었다. 이는 마지막 평가 단계인 피니쉬.
잔향이라고도 부르는 단계로 목을 넘어가고 난 다음 입속에 맴도는 향을 마지막으로 느껴보는 단계가 바로 피니쉬였다.
태현의 눈이 감겼다. 피니쉬는 섬세한 영역. 태현은 감각을 집중해 사이드카의 피니쉬를 느끼려 노력했다.
여전히 남은 브랜디의 향. 그리고 태현이 숨을 밖으로 뿜는 순간.
!!!!
혀 저 끄트머리에서 갑자기 치고 나오는 시트러스한 맛. 이건 레몬 특유의 맛이라. 태현은 바로 알아챌 수 있었다.
노즈에서 브랜디와 트리플 섹, 팔레트에서 다시 브랜디.
그리고 피니쉬에서는 레몬즙.
사용된 재료란 재료는 모두 살린 사이드카의 맛에 태현은 머리가 하얘지고 동작이 굳어버렸다.
이런 완벽한 칵테일은.
교과서에나 나오는 칵테일이 아닌가.
태현은 잔을 내려놓고 눈을 껌뻑였다.
다시금 3번 참가자가 있던 테이블을 바라봤다.
차오르는 감정과 의문들.
누굴까. 또 뭘까. 저 사람은.
그런 생각이 머리에 가득 들기 시작하자, 태현은 또 다른 일탈을 멈출 수가 없었다.
“···정 교수님.”
“예, 김 교수.”
“지금은 심사가 끝난 거죠?”
“뭐, 그렇죠. 특히나 우리 둘은.”
“그럼, 제가 여길 벗어나도 규정 위반은 아니겠군요.”
“그건 그렇지만···, 왜···?”
“오늘 고생하셨습니다.”
“예? 김 교수, 잠깐···!”
- 탁.
정교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태현은 잔을 내려놓고 시험장을 뛰쳐나갔다.
태현이 내려놓은 잔에는.
조금의 술도 남아있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