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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술은 특별합니다-5화 (5/175)

5잔. 조주기능사.

1.

유명한 바텐더가 되겠다는 정환의 말에 상호는 별다른 반응을 보여주지 않았다.

당장에 “네가 무슨 바텐더냐.”, “이상한 소리 하지 마라.” “취업 준비나 열심히 해라.” 등.

현실적인 말을 예상했던 정환에게 상호의 반응은 의외였다.

“바텐더? 완전히 결심한 거야?”

“응. 제대로 해보려고.”

“열심히 해봐.”

“응?”

“그래도 넌 뭐가 되고 싶은지 정해둔 거잖아. 잘했네. 원래 전역할 때 그런 거 생각해 둬야 해. 군대에서 생각한 거지?”

“어, 뭐···. 그렇지.”

한창 진로에 대한 고민이 많았던 시기였다. 군대를 막 전역한 남성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진지한 고민에 빠지는 시기가 이쯤이니까.

상호는 갑작스레 꺼낸 친구의 선언에 무언가 느낀 점이 있는 듯했다.

조용히 돌아서서 걷는 상호의 어깨가 무겁게만 보였다.

집으로 돌아간 친구들은 밤새도록 또 술을 마셨다.

앞서 나온 진지한 이야기는 쏙 집어넣고 그저 웃고 떠드는 이야기로 가득했던 평범한 술자리.

정환은 오랜만에 20대 시절로 돌아가, 친구들과 원 없이 웃고 떠들었다.

그렇게 회귀한 삶.

그 첫날이 지나갔다.

2.

정환이 2012년으로 돌아오고 일주일이 지났다.

제법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

그래도 변해버린 상황에 적응하고 이곳에서 살아갈 준비를 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제일 먼저 정환은 가족에게 연락을 남겼다.

이전 생에서 손목이 망가진 후 앞뒤 가리지 않고 가족 역시 챙기지 않았다. 과거로 돌아와서야 전하는 소식이 유독 아련했다.

가족은 변함없이 그대로였고, 가족과 연락이 닿자 안정감이 정환을 채웠다.

안정감이 찾아오자 훗날에 대한 그림 역시 그릴 수 있었다.

기왕에 과거로 돌아왔고 몸도 멀쩡한 상태라면. 그리고 이미 12년간 쌓은 바텐더로서 지식과 실력이 그대로라면.

과거로 돌아오게 된 이 말도 안 되는 조화가. 정환에게는 꿈을 다시 이룰 기회일지도 모른다.

손목이 망가져 이루지 못했던 나만의 바를 가지겠다는.

그리고 그 바를 세계 최고 수준까지 올려놓겠다는 그 꿈을 정환이 다시금 그리고 있다.

생각이 거기에 닿자, 해야 할 일이 보이기 시작했다.

2012년은 정환이 아직 업계에 입문하기 전의 단계로 정환은 평범한 대학교 2학년의 복학생이다. 바텐더가 되는 건 지금부터 2년 후 일본에서의 일.

정환은 이를 조금 더 앞으로 당기기로 결심했다.

우선 당장 일할 바를 찾기로 했다. 나만의 바를 바로 열 수 있다면 무엇보다 최선이다. 하지만 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

돈. 돈이란 게 없기 때문이다.

2012년인 지금 정환은 고작해야 군대를 막 전역한 23살의 복학생.

그에게 떡하니 바를 차릴 만한 그런 돈이.

있을 리는 만무했다.

대출을 생각하지 않아본 건 아니다.

다만, 은행에 찾아가 가게를 열려고 하니 돈을 좀 빌려주십쇼, 라고 했을 때.

“업계 경력이 어떻게 되시나요?”란 질문에 “신입입니다.”라고 말할 순 없지 않은가.

대출을 받든, 돈을 모으든. 아니면 투자자를 찾아 투자를 받든. 바에서 일하며 훗날을 생각하는 게 상책으로 보였다.

바라는 곳에 투자할 사람은 자연스레 바로 모여들게 되어있다.

우선 바에서 일하며 그런 투자자를 찾는 것. 정환은 이를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따로 떠오르는 사람이 있기도 했지만. 이는 아직 불확실한 일이니까.

투자자를 찾는 또 다른 방법 역시 없진 않다.

흔히들 말하는 바텐딩 대회에 참석해 스펙을 쌓아 이름을 날리면 된다.

허나, 아쉽게도 유명세를 떨칠 수 있는 바텐딩 대회는 모두 영업 중인 업장 소속의 바텐더가 아니면 참가가 불가능한 대회들이다.

현역 바텐더가 아니라도 참여할 수 있는 대회들도 있긴 했지만, 그리 공신력이 높은 대회들은 아니었다.

‘우선 바에 취직해야 해.’

우선 바에 취직해야 한다. 결론은 그게 전부였다.

정환은 그대로 노트북을 켜 구직 사이트에 접속했다.

- 따각, 따각.

구직 사이트 상단에 있는 검색창에 ‘바’란 단어를 검색했다. 쏟아지는 검색 결과들. 제법 많은 구인 공고란에 눈매를 좁혔다.

[여대생 환영***고수익 보장***]

[사장님도 여자, 시급 4만원 보장, only 대화.]

[놀면서 돈 벌 미모의 바텐더 구합니다**언니들**]

.

.

.

결과는 참담했다.

구직 사이트에 ‘바’라는 단어를 검색하자 쏟아지는 건 흔히들 말하는 ‘토킹 바’의 구인 공고.

‘모던 바’ 또는 ‘토킹 바’라고 부르는 이곳은 유흥과 일반 술집의 경계에 있는 곳으로, 바텐더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곳이었다.

‘시급 4만원···?’

정환의 동공이 흔들렸다.

4만원? 남자는 안 되려나···.

그런 금전의 유혹이 머리를 스치길 잠시. 정환은 얼른 정신을 차리고 자신이 찾던 ‘오센틱 바’에 대한 공고를 탐색했다.

쉽지는 않았다. 대한민국에 바가 이리도 많았나. 그런 생각으로 모던 바의 숲속을 정환이 방황하고 있을 때.

“고수익 보장? 터치 일절 없음?”

정환의 옆으로 룸메이트 상호의 얼굴이 조용히 다가오더니, 화면을 소리 내 읽기 시작했다.

“으응?”

“네가 말한 바가 혹시 호빠였냐?”

“아, 아니! 이, 이건 보다가···”

“하트 눌렀는데?”

“시, 실수!”

갑작스러운 상호의 등장에 당황한 정환은 서둘러 추려놓은 오센틱 바 목록으로 화면을 바꿔버렸다.

여전히 의심 가득한 상호의 눈이 정환의 얼굴을 따갑게 만들었다.

“음···, 그렇게 자리가 많지는 않네.”

상호는 어느새 정환의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아 추려놓은 공고를 살피고 있다.

진지하게 바라봐주는 눈빛이. 그래도 의심은 지운 듯 보였다.

“응. 그래도 한 곳 정도는 받아주겠지.”

“공고 자세히 본 거 맞냐? 전부 경력자만 받는다고 되어 있잖아. 참나, 신입은 그럼 경력을 어디서 쌓으라고. 바텐더란 직종도 쉽지 않네.”

“그건 괜찮아. 일단 지원부터 해보지 뭐. 경력은 없어도 채울 방법도 있고.”

“방법? 무슨 방법?”

“그런 게 있어, 인마.”

경력자만을 찾는 공고에 걱정스러운 눈빛을 보내는 상호. 정환은 그런 상호의 눈빛이 무색하게 아무런 걱정이 없어 보였다.

이미 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정환은. 이런 바의 구직 실태를 모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바에 사람을 들이는 건 신중한 문제다.

바텐더라는 직업이 당장에 어깨너머로 본다고 기술을 익힐 수 있는 직종도 아니며 노력한다고 해도 단시간에 노련해지기 힘든 직종이다.

처음 바에 들어오는 이들에게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걸 가르쳐야 한다는 뜻이다.

해서 대부분의 바는 경력자를 요구한다.

적어도 1년. 이 뜻은 바텐더로서 경력을 쌓아 능숙해져 있을 걸 요구하는 게 아닌, 바라는 곳에 대해 모르는 초심자를 걸러내려는 일종의 장치란 뜻이다.

다행히도 정환은 이 1년의 경력을 대체할 방법을 알고 있었다.

자신이 열었던 바 역시 사람을 구할 예정이었기에 주변 한국 바텐더들에게 미리 조언을 받아 놓은 덕이었다.

‘관련 학과 졸업생을 신입으로 맞을 것. 아니면 특성화고 졸업생. 그것도 아니면···’

정환은 구직 사이트를 즐겨찾기에 추가하고 창을 닫았다. 그리고 새로 열린 포털 사이트의 검색창에 ‘조주기능사 시험’이란 단어를 입력했다.

“조주기능사···?”

“응. 조주기능사.”

“이건 또 뭐냐?”

“일종의 바텐더 자격증 같은 거야. 꼭 필요한 건 아닌 데, 호텔에서 일하려면 있어야 한대.”

“별게 다 있네. 진짜 처음 들어 본다, 난.”

“관심 없으면 모르는 거지.”

상호는 조주기능사란 말 자체를 처음 들어보는 것 같았다.

정환은 바텐더 자격증이란 말로 이를 설명하긴 했지만, 바텐더에게 꼭 필요한 건 아니었기에 조금은 찝찝함이 남은 설명이었다.

조주기능사는 무려 국가에서 공인하는 자격증이다.

말을 이렇게 하면 제법 거창해 보이지만 사실 호텔 취업이 아니면 별다른 쓸모가 없는 자격증이기도 했는데, 정환은 이를 조금 다르게 활용해 볼 생각이었다.

앞서 말한 오센틱 바들이 내건 경력 1년이라는 장벽. 정환은 그 장벽을 부술 도구로 이 자격증을 쓸 생각이다.

1년이란 경력은 어디까지나 바 업계에 대한 이해를 위해 요구하는 경력이다.

그렇다면, 경력이 없어도 이 업계에 대해 잘 알고 있음을 어필할 수 있다면 된다는 뜻이다.

정환은 이 자격증을 내밀며 경력이 없어도 업계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음을 어필할 생각이다.

‘다른 바텐더들도 굳이 신입이면 이걸 요구하라 했었지.’

마우스를 길게 내리며 시험에 대한 정보를 입수했다.

해외에서 생활했기에 이 시험에 대해 잘 알지 못했던 정환은 하나부터 열까지 새로운 마음으로 시험을 알아봤다.

시험은 필기와 실기. 두 개의 시험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필기는 주류에 대한 지식과 업장 운영에 관한 지식, 그리고 기초 영어에 관한 문항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실기는 제한 시간 안에 음료를 만드는 방식이었다.

전부.

실무로 이미 경험한 과목들이었다.

“이야, 공부 좀 해야겠는데? 필기도 어려워 보이고···, 실기는 학원들도 다닌다고 하네. 보자아···, 이번 달은 말도 안 되고···, 음. 한 8월에 시험 보면 되려나?”

상호는 공고에 나와 있는 시험 일정을 보며 이번 해에 가장 늦은 시험인 8월을 가리켰다.

정말 초심자라면 제법 합당한 추론이다.

12년이란 경력이 있는 정환에겐. 아니었지만.

정환은 망설임 없이, 3월에 열릴 시험에 마우스 커서를 가져 갔다.

깜짝 놀라며 기겁하는 상호.

“야야, 너 뭐하냐!”

“뭐가.”

“3월 시험은 바로 다음 주잖아? 이미 접수도 마감했다는데···”

“여기 추가 모집도 있네. 이런 건 빨리 해치우는 게 최고야.”

“아무리 그래도···”

“괜찮아.”

상호의 걱정스러운 만류에도 정환은 3월 시험을 클릭해 개인 정보를 입력하고 결제까지 완료하며 시험 접수를 마쳤다.

상호는 마치 미친놈을 봤다는 듯 고개를 내젓고 있었다.

“걱정마. 군대에서 계속 공부했으니까.”

“아, 난 또. 뭐 어쨌든 잘 준비해봐. 첫 시험이니까 너무 기대하지 말고.”

정환은 그런 상호를 달래기 위해 애써 거짓말을 짜냈다. 상호와 떨어져 있던 유일한 기간인 군대는. 이럴 때 만병통치약이다.

상호는 그제야 고개를 끄덕이더니 침대 위로 올라가 자리를 잡았다.

슬쩍 보이는 상호의 스마트 폰 속 화면이 진로와 관련된 사이트로 보였다.

3.

시간은 빠르게 흘러 조주기능사 필기시험 당일.

한 주간 빠르게 훑어본 기출 문제 덕일까. 문을 나서려는 정환의 어깨가 유독 올라가 있다.

“합격 뿌수고 올게.”

“떨어지면 바로 연락해. 술이나 먹자. 울지 말고!”

상호의 따뜻한 응원을 뒤로, 집에서 멀지 않은 시험장에 도착한 정환.

시험장에는 고등학생부터 50대까지. 다양한 연령의 응시생이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필기시험은 CBT라 불리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는데, 컴퓨터를 통해 문제를 보고 답안을 입력하는 방식이었다. 정환이 가장 많은 시간을 쓴 건. CBT에 익숙해지는 거였다.

문제는 어렵지 않았다. 일본에서 공부했기에 전통주 부분이 조금 힘들었지만, 60점이라는 낮은 커트라인을 생각하니 미련 없이 포기할 수 있었다.

‘모르면 3번이지.’

시간을 조금 남겨두고 시험을 종료했다. 컴퓨터로 치러진 시험이었기에 점수도 바로 채점되어 화면에 송출됐다.

90점.

정확히 90점이라는 쓸데없이 높은 점수가 화면에 껌뻑거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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