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잔. 소주와 사이다와 레몬, 그리고 깻잎.
1.
“모히토요?”
시은은 갑작스레 튀어나온 모히토란 이름에 고개를 갸웃하며 되물었다.
말은 되묻고 있었지만, 그녀의 표정이 모히토를 모르는 사람의 표정은 아니다.
“좋아는 하죠···, 그런데 왜 그러세요?”
알고 있고, 또 좋아한다는 말이 들리자 정환의 얼굴에 미소가 걸린다. 당연히 알고 있을 거라 믿고 물은 말이지만, 한 번의 확인은 필요했다.
딱 2012년 이맘때쯤. 모히토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굳이 칵테일 바가 아니어도 대학가 펍이나 일반적인 술집에서도 만날 수 있던 음료가 모히토.
21살에 한창 대학 생활을 즐길 여대생이라면, 모히토를 모를 리는 없을 거란 게 정환의 예상이었다.
이맘때쯤 이런 모히토의 인기를 등에 업고 모히토 맛을 내는 담배가 발매된 적도 있을 정도였으니, 그 인기는 말로 설명할 필요가 없을 정도였다.
“모히토?”
“그게 여기 팔았나?”
“모히토? 그게 뭔데?”
“담배 아냐? 너 끊었잖아.”
반응은 시은뿐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나왔다.
어느새 주변은 정환과 시은의 대화에 참여하며 모히토란 단어에 집중하고 있다.
다른 여대생들 역시 모히토를 아는 듯 보였고, 조금 칙칙한 정환의 친구들은 그저 담배나 떠올렸다.
“제가 만들어 드릴 수 있는데···, 소주가 별로면 한 번 드셔 보실래요?”
“여기서 직접 만드신다구요?”
“의외로 간단해요. 완전히 모히토랑 같은 칵테일은 아니지만, 맛있을 거예요.”
정환은 최대한 부담을 느끼지 않을 어투를 선택해 시은에게 말을 전했다.
술을 권하는 말인 만큼 강제성이 느껴져선 안 되기에 더욱 조심스레 말해본다.
간단하게 만들 수 있다는 말이 떨어지자, 이내 시은보다 그녀의 친구들이 더 크게 반응했다.
“시은아, 한 번 만들어 달라고 해~!”
“그래, 우리도 구경 한 번 해보자!”
“으응? 재밌을 거 같은데?”
적당히 오른 취기를 이용해 시은을 부추기는 시은의 친구들. 마침 이야깃거리가 떨어져 가기도 했고 내심 술을 먹지 않아 자리에 어울리지 못하는 시은이 걸리기도 했다.
원래 술자리라는 곳이 모인 이들 중 한 명이라도 적응하지 못하면 전체적인 분위기가 죽지 않나.
시은의 친구들도 그건 피하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시은은 그런 부추김에 못 이기겠는지, 살짝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다.
부담감이 느껴지는 것도 있다. 하지만, 더 큰 고민은 애써 만들어준 술이 맛이 없다면. 만약 그렇다면, 그걸 모두 마실 자신이 없는 시은이었다.
“제가 술을 그렇게 잘 마시는 건 아니어서요···, 우선은 한 잔만···”
한참을 고민하던 그녀는 친구들의 눈치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지못해 응하는 그녀의 표정이 좋지는 않았다.
“맛없으면 남기셔도 돼요. 편하게 드셔봐요. 잠시만요!”
어정쩡하게라도 허락이 떨어지자 정환은 손을 바쁘게 움직였다.
주변을 살피며 이것저것 눈에 담아둔 걸 모으기 시작한다.
“석훈아, 거기 깻잎 있지? 세 장만 줘. 상호는 저기 가서 얼음이랑 레몬 좀 더 받아다 줄래? 거기···, 네. 사이다랑 소주 좀 여기로 주실래요? 네, 한 잔씩이면 되요.”
“레몬이랑 얼음? 어···, 잠시만!”
“소주랑 사이다 여기요!”
주문했던 안주 중 깻잎이 함께 나온 안주가 있었고, 또 이 술집에서 제공하는 얼음물에는 작게 썰린 레몬이 들어가 있었다.
제 버릇 남 못 준다고, 이런 재료들을 미리 눈에 담아둔 정환이다.
“여기 레몬이랑 얼음. 레몬은 반 개밖에 없다는데?”
“충분해. 고맙다.”
마지막으로 상호가 주방에서 잘린 레몬 반 개와 얼음을 얻어 왔다. 소주와 사이다, 얼음과 레몬, 그리고 깻잎까지 재료가 모두 모였다.
럼과 라임, 그리고 탄산수와 설탕이라는 원래 재료와는 전혀 다른 재료들이지만, 모히토의 맛을 내기에는 충분했다.
능숙한 바텐더에게 재료는 아무런 제약이 되지 않는다.
“정말 이런 거로 칵테일을 만들 수 있어요?”
“와, 무슨 바텐더 같아요!”
“나 칵테일 만드는 거 처음 봐. 대박!”
여대생들은 이런 건 처음 본다며 손뼉을 쳤다. 반대로 수줍은 듯 시은은 고개를 돌렸지만, 어쩐지 그녀의 시선 역시 조금씩 정환을 의식하고 있다.
관심이 쏟아지는 와중에도 정환은 긴장한 기색이 보이지 않는다. 바텐더에게 쏠리는 시선은 당연한 것. 바텐더에겐 맛있는 술과 함께 그 술을 만드는 과정까지 하나의 상품이다.
이런 시선에는 익숙한 그였다.
준비 과정이 끝나자 정환의 손이 술병으로 향했다. 빈 맥주잔에 소주를 두 잔 정도 거침없이 부어버리는 정환.
검지와 중지 사이에 잔을 끼워 술을 계량하는 모습이 제법 바텐더처럼 보였다.
연달아 정환은 미리 잘라둔 세 장 정도의 깻잎을 맥주잔에 넣고 이를 으깨기 시작했다.
소주와 깻잎이 한 데 섞이며 조금은 괴상한 모습이 펼쳐졌다.
“레몬 이리 줘 봐.”
그렇게 깻잎과 소주를 으깨가며 섞어주길 몇 번.
상호가 가져온 레몬 반 개를 받아든 정환은 이를 세게 누르며 잔 안에 레몬즙을 채워 넣었다.
원래 모히토는 라임과 민트를 함께 넣고 으깨가며 만들어야 한다.
소주와 깻잎, 레몬으로 재료가 바뀌었어도 이는 마찬가지 일터.
하지만, 이렇게 물에 넣는 용도로 사용되는 레몬은 시큼한 맛 외에도 쓴맛이 강한 경향이 있었는데, 이를 통째로 으깨면 쓴맛이 강해져 맛의 균형이 깨지곤 했다.
이미 바텐더로서 이런 경험이 많은 정환은 레몬을 통째로 으깨는 것 대신 과육과 껍질을 빼고 그저 즙만 넣어 주는 것을 택했다.
이제 절반이 넘게 왔다. 남은 건 얼음을 채우고 남은 부분을 사이다를 통해 채워주는 것.
사이다 자체에 당분이 강하기에 설탕은 굳이 더하지 않아도 괜찮을 것이다.
- 촤아아아.
사이다의 탄산이 시원한 기포음을 내며 잔으로 흘러간다. 얼음을 피해 기포를 최대한 살리며 이를 부어 잔을 완성해 갔다.
정환은 마지막으로 깻잎을 다듬어 잔 위에 장식을 더했다. 보이는 것 역시, 맛만큼 칵테일에는 중요한 요소다.
- 스으윽.
완성된 잔이 가볍게 밀리며 시은의 앞으로 향했다.
그리고 바텐더스럽게 나오는 한마디.
“자, 모히토. 나왔습니다.”
손끝으로 이를 밀어내는 얼굴에는 여유가 가득했다.
맛을 보지 않았음에도, 이를 만든 이의 얼굴에는 확신이 아려있다.
맛있을 거라는 당연한 확신이.
“와, 이게 모히토에요?”
“보기에는 엄청 맛있어 보이는데!”
잔이 내어지자 모든 이들의 시선이 모히토에 쏠렸다. 저마다 맛을 궁금해하는 눈빛을 빛내며 이를 바라보던 때.
“드셔봐요. 모히토랑 완전히 같진 않겠지만···, 맛있을 거예요.”
정환은 잔을 일부러 시은 쪽으로 조금 당기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잔을 바라보는 시은의 눈에는 이전과는 다른 눈빛이 서려있다.
기대하는 거라.
정환은 그렇게 믿기로 했다.
“정말 이뻐요.”
첫 소감은 외관에 대한 평이다. 이쁘다는 말은 칵테일을 평가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말이다.
칵테일의 첫맛은 코도 입도 아닌, 눈으로 보는 거라는 말도 있으니까.
“맛도 좋을 거예요.”
“잘 마실게요···. 감사합니다···.”
시은은 가볍게 고개만 끄덕이고는 잔을 들어 코로 가져갔다.
칵테일의 청량한 향이 그녀의 코를 간지럽히자, 이내 그녀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자신이 맡은 향을 그대로 믿지 못하는 이의 표정이다.
시은은 그렇게 놀란 눈을 한 번 하고는 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연분홍으로 칠한 그녀의 입술이 잔을 머금었다.
아주 작게. 주변에서는 들리지 않을 정도로 호르륵 하는 소리를 내며 입술을 넘는 술.
연달아 꼴깍하는 작은 소리가 그녀의 목에서 들리더니, 이내.
!!!!
그녀의 눈은 이전보다 더 크게 떠지고 만다.
그리고.
“마, 맛있어요!”
터지는 그녀의 큰 목소리.
목을 타고 넘기는 시원한 청량감과 소주의 맛을 중화시키는 레몬의 상큼함. 그리고 끝에서야 올라오는 사이다의 달콤함과 은은한 깻잎의 향기까지.
그녀가 만족할 모든 요소가 정환이 만든 모히토 속에 들어있었다.
이게 자신이 그토록 싫어하던 소주로 만든 술이란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 그녀였다.
여전히 껌뻑거리는 시은의 눈이 정환에게 향했다. 양손으로 꽉 잡은 잔은 그대로 그녀의 손에 있다.
“맛있죠? 목 넘김도 괜찮고?”
정환은 기세를 놓치지 않고 계속해서 말을 붙인다. 마음이 열리려 할 때. 확 열겠다는 그런 생각으로.
하지만.
- 꿀꺽, 꿀꺽!
그대로 잔을 들고 한 번 더 술을 들이켜는 시은.
“자, 잠시만요! 그거 그렇게 마시면···!”
취할 텐데.
걱정하는 정환이 무색하게 시은은 호탕하게 잔을 비워버렸다.
- 탁.
시은은 카아-!하는 탄성과 함께 잔을 내려뒀다. 손등으로 입술을 닦는 그녀의 모습이 낯설게만 보였다.
- 척!
빈 잔을 보란 듯이 정환에게 다시 내민 그녀는.
“오빠!”
언제 들어본 게 마지막일지도 모를 그런 호칭과.
“한 잔 더 부탁해요!”
라는.
바텐더가 가장 좋아하는 말을 들려줬다.
- 씨익.
“네. 물론이죠.”
바텐더의 얼굴에도 미소가 번졌다.
2.
정환이 만든 모히토를 마신 시은은 이내 취기가 올라 자연스레 분위기에 녹아들었다.
누군가는 계속해서 술을 만들어야 했지만, 얼마 전까지 손을 쓰지 못해 절망했던 걸 생각하면 오히려 이건 그에게 기쁜 일이었다.
시은은 생각보다 밝은 아이였다. 수줍어하던 모습은 어느새 사라져 버렸고 취기가 오른 그녀는 여느 대학생들처럼 자리에 어울렸다.
점차 떨어져 가던 술자리의 분위기가 다시금 살아났다.
원래 사람이 모이면 그런 법이다. 친구 하나라도 어울리지 못하면 전체적인 분위기는 그 친구 한 명에게 맞춰지게 된다.
어쩌면, 지난 생에서 과팅이 아쉽게 끝났던 건. 이런 이유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이제야 보이네.’
그때는 몰랐지만, 이제는 보인다. 어쩌면, 이것도 바텐더라는 직업을 접한 후이기에 보이는 것일지도 모른다.
짧게만 끊기던 시은과의 정환의 대화도 이후로는 길게 이어졌다. 술에 대해 이것저것 묻는 그녀와 정환은 제법 대화가 잘 통했다.
특히나 원래 마셨던 모히토보다 맛있었다는 시은의 말은 한동안 정환의 귓가를 맴돌며 그를 기쁘게 했다.
그렇게 술자리가 이어지길 몇 시간. 지하철 막차가 끊길 시간이 되어서야 자리는 파했다.
여학생들이 모두 돌아간 후, 친구들은 정환의 자취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야, 차정환!”
네온사인이 번쩍거리는 대학가를 벗어나 주택가를 지날 무렵.
술 냄새 가득한 석훈의 목소리가 정환을 덮쳤다.
“응?”
“언제 이런 기술을 배워뒀냐? 이 기특한 자식!”
“그러니까. 오늘 대박이었어, 진짜. 딱 텐션 떨어지려 할 때 정환이가 살렸다.”
“일로와!”
- 꽈악!
석훈은 취기가 올라 붉어진 얼굴로 정환의 목에 팔을 둘렀다.
장난스레 힘을 주며 웃는 석훈의 표정이 무척이나 행복해 보였다.
웃으며 정환의 팔을 툭툭 치는 상호의 표정 역시 마찬가지.
석훈과 상호는.
오늘 두 여학생의 번호를 얻는 것에 성공했다.
“다음 주에 같이 점심 먹재. 안녕-! 이제 너희랑 먹는 학식은 그만이다.”
“꺼져. 나도 다음 주에 보기로 했어.”
분명 이전과는 다른 결과다. 석훈은 물론이고 상호와 심지어 자신까지. 이전에는 그 누구도 연락처를 얻지 못했다는 게 정환의 기억이었다.
아, 물론 이번에는.
정환도 시은과 연락처를 교환했지만.
- 오빠, 오늘 감사했어요! 다음에 또 맛있는 술 알려주세요^^. 기대할게요!
스마트폰에 뜨는 시은의 메시지에 정환은 자신도 모르게 입꼬리를 올렸다.
‘다음’이란 워딩이 유독 마음에 들었다.
‘크흡. 역시 손이 멀쩡해야···’
뭐든 되는구나. 그렇게 정환이 홀로 얼굴을 붉히고 있을 때.
“그나저나, 대답 좀 해봐. 야, 차정환. 넌 전역하고 맨날 우리랑만 놀았으면서 언제 저런 걸 다 배워 놓은 거냐? 칵테일? 소맥 말고 언제 저런걸···”
상호는 정환이 만들었던 칵테일에 대해 더 깊게 물었다. 앞서 물었던 석훈의 물음에 비해 더욱 진중함이 가미된 질문이다.
전역한 지 이제 석 달. 그리고 전역 후의 시간은 대부분 상호와 함께 보냈다. 상호가 이에 의문을 가지는 것도 당연했다.
“응?”
“모히토든 뭐 다른 거든, 어쨌든 먹어봤어야 만들 줄 알 거 아니냐? 너 언제 저런 걸 다 먹어봤고?”
추궁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명확한 이유를 답할 수 없는 이에게는 저 질문이 무척이나 날카롭게 느껴졌다.
“어? 그게···”
“여자 꼬시려고 저런 걸 준비할 놈도 아니잖냐. 뭐 하려고 저런 걸 배워둔 거야?”
생각하자. 빨리 뭐라도 떠올려야 한다.
회귀해서 그렇다.
사실 12년의 경력을 가진 유명한 바텐더라서 그렇다는 말을 할 수는 없지 않나.
정환이 바텐더라는 직업을 처음 접하고 또 그쪽으로 본격적으로 일하기 시작하는 건 적어도 지금으로부터 2년 후.
그것도 일본에서다.
원래라면.
아직은 바텐더는커녕, 칵테일이란 말조차 제대로 알고 있을 리 없는 정환이었다.
“음···, 저기, 그 뭐냐···”
당장 할 말이 떠오르진 않았다. 이걸 어떻게 얼버무려야 할까, 그런 고민도 잠시.
이내, 정환의 머릿속에는.
이 사안에 대해 얼버무릴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이게 정말 현실이고···, 내가 계속해서 여기 살아가야 하는 거라면···’
난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다시 바텐더로 살아갈 것이다. 이번에야말로 나만의 바를 만들 것이고 이를 통해 저번 생에서 이루지 못한 꿈을 마저 이룰 것이다.
그런 생각이 들자, 이내 떨리던 동공은 멈추고 자연스러운 미소가 정환의 얼굴을 채우기 시작했다.
“공부했어. 나중에 쓰려고.”
“나중에?”
“응. 나중에. 아니지, 이제 곧 쓰려고.”
“······?”
상호는 정환의 말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이제야 복학한 처지에 칵테일 만드는 기술을 어디에 쓰겠다는 말이냐 그런 표정이다.
정환은.
그런 상호의 의문에, 어깨를 넓게 펴고 당당하게 답했다.
“나, 바텐더가 되려고. 엄청 유명한 바텐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