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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 배달군 VS 마왕군단.
배달군 3만과 그들을 엄호해줄 5만, 도합 8만이 마왕군단과 맞서겠다는 건 계란을 던져 바위를 깨뜨리겠다는 짓이나 다름없었다.
가이아에서 가장 강력하다는 그랜드 마스터와 백여 명의 초인들, 그리고 30만 병력이 5일 전에 마왕군단에게 패배했었다.
그것도 일방적으로 패배했었다.
재수 없게 배달군을 지원하게 된 5만 병사들이 두려워했다.
‘꿀꺽~’
“천하의 스트롱 공작님도 어쩌지 못했는데···”
‘그런 마왕과 싸우라고? 우리보고 죽으란 소리군.’
“으~ 살 떨려.”
‘몬스터에게 잡아먹힐 것이 뻔해. 우린··· 좆 됐다.’
생존은 생명체에게 가장 중요하고도 원초적인 본능일 것이다.
가망성 없는 싸움에 동원된다는 점이 너무도 두려웠다.
당장이라도 무기를 내던지고 도망가고 싶었다. 그러나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
어느 한사람이 먼저 도망가면 또 모르겠지만.
‘두리번두리번~’
‘누구라도 상관없으니 제발 한 놈만 먼저 도망가라. 그래야 나도 눈치껏 도망가지.’
‘마왕군단이 바로 앞까지 다가왔잖아! 그런데도 계속 눈치만 볼 셈이냐? 제발 누가 빨리 나서라, 쫌! 으~ 미치겠군.’
‘도대체 왜 도망가질 않는 거야?’
세상을 구하는 와중에 죽는 건 받아들일 수가 있으나 아무리 생각해보 헛된 죽음 같았다.
그래서 죽음이 두려웠고 어떻게든 이 자리를 피하고 싶었다.
그런 자들에게 두려움 없는 배달의 병사들이 참으로 이상했다.
‘그나저나 배달왕국이라고 했던가? 저놈들은 무슨 오우거 간이라도 씹어 먹었나? 뭐가 저리도 태평한 거야?’
‘마왕군단이 얼마나 무서운 줄 몰라서 그런가? 그래, 모르니깐 저리 태평한 것이겠지.’
그들은 두려워하지 않는 배달군 병사들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배달군이 무장한 현대식 무기를 제대로 체험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알다시피 배달군은 시대를 앞선 무기로 무장했다.
그런 무기들을 제대로 활용할 줄 아는 (잘 교육받은)지휘관을 신뢰했다.
그리고 지금껏 실패가 없었던 그들의 로드, 팰리스를 굳게 믿었다.
“우리 배달군은 천하무적이다.”
“아부 같지만 우리 대대장도 제법 똑똑해. 입에 걸레를 물어서 좀 문제지만.”
“입이 삐뚤어도 말을 바로 하라고, 그게 조금이냐? 아주 큰 문제지. 배달육군을 대표하는 욕쟁이 나르손이라니!”
브라보 백인대장이었던 나르손. 어느새 많은 병사들을 지휘하는 대대장이 되었다.
“아참, 나르손 대빵 말이야? 이번 진급심사에서도 떨어졌다면서? 입에 걸레를 물어서.”
“에이~ 설마··· 입이 걸다고 설마 진급에서 탈락했겠어? 실력이 부족했겠지.”
“맞아. 실력이 부족했을 거야. 알다시피 무능한 지휘관은 적보다 훨씬 무섭다는 말이 있고 그래서 진급심사가 꽤 까다롭잖아.”
“우리 나르손 대빵 정도면 지휘능력이 제법 좋지 않나? 입이 좀 더러워서 그렇지.”
나르손은 평민출신이었고 특별한 것 하나 없던 자였다.
그런 그가 이젠 지휘관으로써 제법 실력이 좋다는 평을 듣는다.
그런 이유는··
“아이고~ 실력까지는 좀 그렇다. 지겹게 교육을 받고 띨띨하면 그게 어디 사람이냐? 오크새끼도 그렇게 교육받으면 천하의 명장이 될 거다.”
“하긴. 우리의 지휘관 교육이 솔직히 빡세긴 좀 빡세지.”
배달을 제외한 여타 왕국들은 주로 기사나 귀족같이 신분이나 무력이 뛰어난 자가 병사들을 통솔하는 지휘관이 된다.
그런데 개인이 강한 것과 부대를 지휘하는 능력은 별개의 문제였다.
화약무기시대에는 그런 점이 더욱 부각된다.
배달군은 가장 먼저 화약무기를 도입했고 분대장부터 지휘관 교육에 철저했다.
계급이 높아질수록 그 강도가 더욱 높아진다.
그래서 특별할 것 없던 평민 나르손이 ‘빡센 교육’을 통해 병사들에게 제법 유능한 지휘관으로 변모했던 것이다.
“그런데 말이야. 그렇다면 우리 대빵이 심사에서 왜 탈락했단 거야?”
“입이 더러워서 떨어졌다니깐 그러내. 야~ 사람이 말하면 좀 믿어라.”
“리얼리? 정말? 진짜로 그것 때문에 진급하지 못한 거야?”
“그렇다니깐? 대빵이 누구랑 심사하러가면서 심사관들의 작태를 더럽게 씹었다더라.”
“우리 대대장이라면 뭐··· 평소에도 아무나 씹어댔으니 그랬겠지. 그런데?”
“문제는 그 사람이 바로 왕창 씹어댔던 심사관이었다는 거야. 완전히 똥 밟은 것이지.”
“크크크~ 역시 대대장이군. 다른 건 다 좋은데 입이 너무 더러워서 문제야, 문제."
“더러운 입만 문제였냐? 알고 보면 똘끼도 너무 충만해.”
“똘끼란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인데, 헤라클(토머스) 자작님 말이야. 정말 대단하지 않냐? 하는 꼴통짓도 그렇지만 엘프는 또 어떻게 꼬셔 결혼했는지 몰라. 나는 당최 이해가 안가요, 이해가.”
“하하하~ 맞아, 맞아. 나도 도통 이해를 못하겠더라고. 힘이 좋아 그런가?”
“힘이라면 설마 밤에 쓰는 그 힘?”
“크크크 당연한 소릴. 그런데 말이야. 정말 대단한 분은 따로 있지 않냐?”
“또 누굴 말하는 건데?”
“우리 대왕님. 아무리 똘끼가 충만한 분들이라도 전하 앞에서는 모두 꼼짝 못하잖아.”
‘우리 대왕님’은 예상대로 팰리스를 말함이다.
“야~ 그걸 말이라고 씨부리냐? 우리 대왕님이 어떤 분인데. 그분 앞에서 어떻게 함부로 깝치겠어?”
병사들에게 팰리스는 폭정에 신음하는 자신과 가족들을 구해준 구원자였다.
축구와 럭비, 야구를 비롯한 여러 운동경기와 놀이들을 개발하고 보급한 문화 혁명가였다.
뛰어난 발명가이자 과학자이면서도 시대를 앞서가는 철학자였다.
그리고 그와 가족들의 생사여탈권을 가진 배달의 ‘로드’였다.
시간을 잠시 되돌려 며칠 전이었다.
“뭐라고? 우리만 이곳에 남아 마왕군단과 싸우라고?”
“엉. 그렇게 결정 났다더라.”
“미쳤군, 미쳤어.”
“야~ 말조심해. 전하께서 그리 결정하셨단 말이다.”
“그, 그랬···냐? 그렇다면야 말이 또 다르지. 전하께서 그리 결정하셨다면 당연히 따라야지.”
“그렇지? 우리가 이길 만하니깐 이곳에 남아 싸우겠다고 결정하셨을 거야. 안 그래?”
“당연하지. 아무리 마왕이라도 우리 대왕님에겐 못 당해.”
며칠 전에 오고갔던 이런 대화처럼 병사들은 팰리스의 결정을 무조건적으로 신뢰했다.
설혹 마왕과 싸우다가 자신이 죽을 수는 있어도 배달군이 승리할 것이란 점은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그래서 눈앞에 닥친 전투에 긴장했어도 마냥 두려워하지 않았다.
실제로 팰리스는 지금껏···
“우리 대왕님은 실패가 없었어. 그분이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하면 메주는 콩으로 쑤는 거야. 안 그래?”
“야~ 메주는 원래 콩으로 만드는 것이거든?”
“응? 그, 그랬냐? 나는 투라(메주콩)로 만드는 줄로 알았는데···”
‘피식~’
“투라가 콩의 한 종류잖냐.”
“야~ 잠깐, 잠깐. 메주랑 투라 이야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투라를 철판에 볶으면···”
병사들의 잡담이 또 삼천포로 빠지기 시작했다.
타국의 병사들은 이런 배달군을 좀처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도망갈 생각에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도 태평한 배달군을 발견할 때마다 고개를 가로저었다.
뭐, 배달의 실체를 제대로 몰랐기에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반응이었으리라.
그렇다고 해서 배달군의 생각이 모두 옳았던 건 아니다.
‘오만’이나 ‘경시’까진 아니지만 객관적으로 배달의 병사들이 너무도 자신만만했다. 아직 마왕군단과 직접 겪어보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배달군은 아스타로와 (마기로 강화된)몬스터가 얼마나 강력한지 제대로 몰랐다.
그래서 이리 태평한 면이 없지 않았다.
[마냥 두려워하는 것보단 훨씬 낫다. 오히려 모르는 것이 약이다.]
배달군은 장거리 투사무기 위주로 무장했다.
어쩌면 모르는 것이 더욱 유리할 것. 아무튼 시간이 흘러 마침내 결전의 시간이 다가왔다.
‘몽글몽글~’
“대충 십 오륙 키로까지 접근한 건가? 후우~”
‘눈에 보이지 않으니까 오히려 더욱 긴장되는군.’
마왕군단은 아직 병사들의 시야에 들어오지 않았다.
다만, 점점 가까워지는 흙먼지를 통해 대략적인 위치를 대충 가늠했다.
보다 정확한 위치정보는 역시···
‘펄럭, 펄럭~’
아스타로와 마왕군단이 15Km 지점에 도착했음을 알리는 깃발신호. 주변 고지의 관측소에서 신호수들이 색색의 깃발을 흔들어 지휘망루에 보고했다.
그런데 뜬금없이 웬 깃발신호?
통신마법이 아닌 깃발로 신호한 건 예상대로였다.
(팰리스가 위치한)지휘망루를 중심으로 반경 20Km 지역의 마나가 동결됐기 때문이다.
중요한 건 깃발신호 따위가 아닐 것. 조만간 마왕과 싸울 것이란 사실이 연합군에게 가장 중요했다.
“전하~ 마왕군단이 15Km 지점에 도착했다고 합니다.”
“그렇소? 그렇다면 슬슬 준비해야겠소.”
“전투를 준비하라고 지시하겠습니다.”
아르펜이 신호수에게 슬쩍 고개를 끄덕였다.
신호수는 깃발을 이리저리 흔들어 지휘부의 지시사항을 단위부대에게 전파했다.
깃발신호에 가장 먼저 반응한 부대는 역시 포병이었다.
그들은 105m 곡사포와 90m 박격포로 포격할 준비를 마치고 지휘망루의 다음 신호를 초조하게 기다렸다.
배달군 3만과 지원병력 5만의 시선이 집중된 지휘망루.
이곳에서는 (마왕군의 이동을 감시하는)관측소의 신호를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였다.
“어? 휘슬러 경! 관측소에서 신호를 보내고 있소.”
“아~ 그렇군요. 신호내용이···”
마왕군단이 예상경로 10Km 지점에 진입했다는 내용이었다.
마침내 마왕군단과의 전투를 목전에 뒀다.
팰리스가 일어서 망루난간에 손을 걸쳤다.
그리고 성대에 마나를 잔뜩 두르고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들어라~ 세상의 미래를 위해 마왕과 맞서 싸울 전사들이여~”
배달군 3만과 지원 병력 5만의 머리가 일제히 지휘망루의 팰리스를 주목했다.
“마왕군이 전방 10Km 지점에 도착했다고 한다. 이제 곧 마왕과의 전투가 시작될 것이다.”
“···”
‘꿀꺽~’
대다수 병사들이 저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이곳의 사령관으로써 선포하노니! 지금부터 2차 마왕전쟁을 시작한다.”
“충!”
“충!”
하나 된 ‘충’이란 구호 뒤로 거대한 함성들이 이어졌다.
“우와~ 마왕과 싸우자!”
“우리는 반드시 승리한다. 마왕을 물리쳐 세상을 구하자!”
병사들 과반수는 자신들이 승리할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목이 터져라 승리할 것이라고 고함쳤다.
함성이 커지면 자신의 예정된 운명이 변할지 모른다는 기대감으로.
“만세! 연합군 만세.”
“팰리스 사령관 만세~”
“우와아~ 우리가 승리한다.”
“와아아~”
목청껏 고함치는 병사들을 지휘망루에서 지켜보던 팰리스. 오른손을 번쩍 들었다.
순간, 거대했던 함성소리가 빠르게 잦아들었다.
‘스윽~’
‘뚝!’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말에 이르기를, 죽기로 싸우면 반드시 살고, 살려고 비겁하면 반드시 죽는다는(必死則生 必生則死, 生則死 死則生, 오자병법) 말이 있다.”
팰리스는 이순신이 명랑해전을 앞두고 오자병법에서 인용했던 경구를 풀어 소리쳤다.
“···”
‘꿀꺽~’
“사령관으로써 명령하노니, 전사들이여~ 죽도록 싸워라.”
말을 잠시 멈춘 팰리스가 토머스에게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넵, 전하! 싸우겠습니다. 용감히 싸우다가 죽겠습니다.”
토머스의 고함소리에 이어 병사 다짐이 여기저기에서 터져 나왔다.
“싸, 싸우자! 용감하게 싸우자!”
“그, 그래. 싸우다가 죽자! 살기 위해서 싸우다가 죽자!”
“우와~ 싸우자. 마왕과 싸우자~”
여기저기에서 터져 나온 함성으로 주변이 다시 소란스러워졌다.
팰리스가 손을 들어 함성을 가라앉혔다.
“그렇다. 살기 위해서는 죽도록 싸워야 한다. 그래야만 내가 살고 그대들이 산다. 그리고 멀리서 기도하는 나와 그대들의 가족이 살 수 있다.”
“···”
“우린 살아야 한다. 반드시 살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 그대들은 어찌할 것이냐!”
“충! 죽도록 싸우겠습니다.”
토머스가 먼저 대답하고 뒤따라 병사들의 대답이 이어졌다.
“싸우겠습니다.”
“용감하게 싸우다가 죽겠습니다.”
“그렇다! 나와 그대들. 그리고 나와 그대들 가족들이 살기 위해서···· 이제부터 용감하게 싸우자. 알겠느냐?”
“우와~ 싸우자. 용감하게 싸우자.”
“우와아아~”
지휘망루가 거대한 함성소리에 묻혔다.
이런 엄청난 소음을 뚫고 병사들의 귀속을 파고든 목소리가 있었으니 이는····
“계획대로 공격한다. 포병대~에. 지금이다.”
팰리스의 공격명령이었다.
순간, 포병 지휘관이 150m(사정거리 10Km) 곡사포를 발사하게 했다.
“발사, 발사하라!”
‘꽈콰콰콰콰꽝~’
고막을 터뜨릴 것 같은 굉음과 함께 엄청난 포연이 발생했다.
팰리스와 병사들이 본능적으로 포탄의 궤적을 주시했다.
은이나 미스릴로 코팅했고 성수처리까지 마친 포탄. 고개 너머로 진군해오는 마왕군단을 공격하기 위해 날아갔다.
75. 배달군 VS 마왕군단-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