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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하면 잘살거 같지-244화 (243/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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팰리스는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전생을 기억했지만 크리스탄 교단의 초대 세인트였던 제라르는 10살이 되어서야 겨우 지구에서 생활했던 기억들을 떠올렸다고 한다.

이때부터 그는 어른이 되었다.

지구에서 배웠던 검술로 신체를 단련하고 동료를 모은 뒤에는 전생처럼 가난하고 약한 자들을 위한 의료기관을 만들었다.

그런데 이곳 가이아는 초현실적인 마법이 난무하고 신의 권능이 자주 발현되는 세상이었다.

신성력이 없는 그와 달리 부패하고 탐욕스런 신관이라도 신성력이란 치트키로 병자들을 완벽하게 치료했다.

치료대상이 귀족이나 돈 많은 부자에게만 한정돼서 문제였지만.

신심과 이타심이 깊었던 제라르. 자신에게 없는 신성력이 아쉬웠지만 그뿐이었다.

그에게는 문제가 되지 못했다.

신성력이 없었어도 약자들에게 인술을 펼치기에는 충분했다.

제라르가 만든 조직은 복합적인 성격을 가졌는데 전생처럼 의료봉사의 색채가 가장 짙었다.

여기에 무력과 종교적인 색채가 살짝 곁들여졌다고 이해해도 무방할 것이다.

의료봉사조직이 크리스탄 교단으로 확실하게 자리매김한 건 시나몬이란 자가 3대 세인트가 되었던 시절이었다.

수장이 된 그는 크리스탄 교단의 문제점을 깊이 고민했다.

크리스탄 교단의 문제점. 의료봉사가 가장 큰 사업이었지만 우습게도 의술이 너무 부족했다.

그도 그럴 것이 제라르는 중세유럽을 살았고 이때는 의술이 너무도 형편없던 시절이었다.

중세유럽에서는 병이 들면 이발소에서 가서 피(Blood) 즉, 악한 기운(?)을 뽑아 치료(?)했다.

미용 목적으로 (이집트의)미이라를 구해 가루로 곱게 빻아 연고로 발랐다.

황당하게도 정력제 용도로 그것을 복용하기도 했단다.

여담이지만 고대 이집트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미이라로 만들어 장례를 치렀다.

건조한 기후 때문에 오늘날에도 엄청난 수의 미이라가 존재할 것이란 추측과 달리 현재의 이집트에는 미이라가 우리의 예상보다 무척 적다.

그 이유는 대약탈의 시대(대항해시대)에 유럽인들이 몰려와 미이라를 미용이나 정력제 용도로 판매하기 위하여(미이라를 전문적으로 조달, 판매하는 업자들도 존재했음) 무자비하게 도굴했기 때문이다.

뭐, 도굴이라면 일제강점기의 일본도 빼놓을 수가 없을 것이다.

각설하고, 제라르는 이처럼 괴이하고 황당한 치료법이 상식이었던 시대를 살았다.

그래서 환자를 치료하다가 도리어 병증을 악화시키는 경우가 흔했다.

그럼에도 별다른 문제없이 대중에게 성자로 추앙받았던 건 치료대상자들이 모두 사회적인 약자였고 그들에겐 선의에서 비롯한 의료과실이었지 고의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제라드는 성자로 추앙받았지만 시나몬은 아니었다.

그는 부족한 의술을 향상시키기 위해 고민하다가 마침내 그 해결책을 찾았다.

그것은 바로···

“하아~ 이럴 수가. 우리의 의술이 흑마법사에서 비롯됐다니.”

“그, 그래도 양심적이고 착한 흑마법사라고 적혀 있습니다.”

그랬다. 흑마법사!

그중에서도 착한(?) 흑마법사였다.

흑마법사라고 하면 보통은 시체를 되살리거나(강령술, Necromancy) 마왕을 현세에 소환하여 세상을 어지럽히는 천인공노할 악당이 먼저 떠오른다.

맞다. 실제로 흑마법사들이 그런 사건들을 일으켜 사회를 어지럽힌 적이 많았다.

이런 이유로 가이아에서는 흑마법사가 공공의 적으로 규정되어 발견 즉시 처벌받았다.

그런데 모든 흑마법사들이 문제를 일으킨 건 아니었다.

세상은 음과 양 즉, 빛의 속성과 어둠의 속성으로 나눌 수가 있다.

좋고 나쁘다는 개념이 아니다.

개성처럼 서로 다르다는 개념이다.

마나와 반대의 속성인 마기를 다루는 흑마법사라고 해서 모두가 악하거나 천인공노할 사태를 일으키는 건 아니었다.

사회적인 편견 때문에 흑마법에 입문하는 자들의 수가 적었고 대부분은 소외된 자들이 막판에 몰려 마계의 존재를 소환해서 문제가 됐을 뿐이다.

흑마법 자체로는 특별히 나쁜 건 아니었다.

물론 예외가 없는 법칙은 없다.

마법계열에서의 흑마법은 문제가 없었지만 마계의 존재를 소환하는 계열은 대부분 상당한 문제들을 만들었다.

그들은 절차탁마(切磋琢磨)의 과정 없이 마왕이나 마족과의 계약을 통해 엄청난 능력을 보유한다.

마왕이나 마족의 하수인이 될 수밖에 없는 구조일 것. 마계의 존재들은 세상을 도탄에 빠뜨려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마이너스의 카르마를 얻는다.

이런 계열을 제외하면 흑마법사는 크게 문제될 것이 없었다.

아무튼 사회적으로 지탄받고 탄압받는 흑마법사지만 사회에 도움이 되는 자들이 꽤 많았다.

예를 들면 죽음과 사체를 연구하는 자들로 그들은 자연스럽게 인체와 수술에 대한 이해도가 높았다.

시나몬은 그런 고위 흑마법사를 우연히 구해줬다.

다행히 그는 사람을 살리려는 목적으로 죽음과 인체를 연구했던 자. 크리스탄 교단의 취지에 잘 맞았다.

“그랬었군. 흑마법사로 인해 수술법이 도입되었군.”

세인트의 말대로 흑마법사와의 인연으로 크리스탄 교단에 수술법이 도입되었다.

그와 친했던 흑마법사는 몬스터를 테이밍하는 비법과 교단에 유용한 여러 치료법들을 알려줬다.

그런 과정 중에 우연히 마왕을 소환하는 비술과 그 매개체로 사용할 펜던트까지 확보했다.

다행히 마왕소환은 착한(?) 흑마법사들이 바라지 않았다.

교단의 취지에도 맞지 않았다.

다만, 당시에도 (약자들을 치료했기 때문에)탄압받는 교단이라서 시나몬은 만일을 위해 비술과 펜던트를 봉인, 보관케 했던 것이다.

사연을 모두 읽은 한참동안 생각에 잠겼던 데이비드가 먼저 입을 열었다.

“후우~ 세인트. 어떡하실 겁니까?”

데이비드가 이리 물었지만 얼추 마음을 굳힌 상태였다.

크리스탄 교단은 현재 막판까지 몰려 있었다.

“소환··· 해야겠지? 마왕이란 존재를.”

“····그렇군요. 그런데 세인트. 명색이 마왕입니다. 자칫하다간 세상이 멸망할 수도 있습니다.”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구나. 다행스럽게도 소환하는 기간을 조절할 수가 있다는 구나.”

기껏 적을 물리쳤는데 세상이 멸망하면 말짱 황이다.

당시의 흑마법사도 이것을 걱정했는지 마왕이 중간계에 머무는 기간을 조절할 수 있도록 조치했다.

그리고 그런 내용들은 모두 책자의 두꺼운 표지 속에 숨겨져 있었다.

* * *

세인트와 데이비드가 현세에 마왕을 소환시키기로 결심할 순간이었다.

배달왕국 유일의 신전, 가이아신전의 여신상이 갑자기 강렬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술주정뱅이 신관으로 유명한 제랄드에게 가이아의 의지가 전달됐다.

“응? 이 기운은 설마··· 아아~ 나의 주인 가이아시여.”

‘아차~ 이럴 때가아니지.’

신탁의 조짐에 제랄드가 신성한 빛을 발하는 여신상 앞으로 달려가 오체투지하고 경배했다.

‘털썩~’

“당신의 신실한 종, 제랄드가 제 영혼의 주인께 엎드려 경배하나이다.”

[나의 신실한 종 제랄드야~ 눈을 떠라. 세상을 뒤덮을 거대한 어둠이 다가오고 있구나.]

“네, 네? 어둠이라면 설마···”

[그렇구나. 조만간 마왕이 강림할 것이니라. 그러니 신실한 종은 그때를 준비하여라.]

예전에도 인간이 감당하기 힘든 천재지변이나 마왕이 강림할 때가 많았다.

그때마다 신은 자신을 따르는 신관에서 신탁을 내려 미리 경고했었다.

신탁을 받은 신관들은 세상에 널리 알리곤 세상을 구할 용사를 모집하여 고난을 해결했었다.

참고로, 마왕이 강림할 것이라는 신탁이 가이아 신전만의 사정이 아니었다.

12대신(大神)들이 일제히 권능을 발휘하여 가장 신실한 종에게 마왕이 강림할 것을 경고하고 있었다.

‘불끈~’

“알겠습니다, 저의 오롯한 주인이시여. 제가 중심이 되어 마왕을 물리칠 용사들을 모집하겠습니다. 저만 믿으십시오. 당신의 뜻을 받들어 반드시 마왕으로부터 어둠에 잠긴 세상을 구원하겠습니다.”

[···너 말고.]

“네, 네?”

[너는 그냥 (나의)집이나 지켜라.]

“집이나··· 지키라굽쇼?”

[그렇구나. 이왕 너에 관해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인데. 웬만하면 술 좀 줄여라. 너의 간을 치료하느라 얼마나 귀찮은 줄 아느냐?]

“···”

[그런데 너··· 삐쳤냐?]

“아, 아닙니다. 미천한 종이 어찌···”

[그럼 됐고. 세상을 구원하는 자는 따로 있구나. 세상을 구하는 임무는 그자에게 맡길 것이니라.]

“···주인이시여. 그자가 누구인지 알려주십시오.”

[그 자의 이름은 김칠··· 아니, 배달의 왕 팰리스다. 그자를 나의 집에 초대하여라.]

이쯤이면 눈치 챘을 것이다.

지구인 김칠성을 가이아에 환생시킨 존재가 바로 가이아 여신이었다.

제랄드는 여신의 지시에 즉각 마고성으로 달려갔다.

그는 자초지종을 간단히 설명하곤 팰리스를 신성한 빛을 발하는 여신상 앞에 데려왔다.

“전하~ 저의 오롯한 주인이신 가이아 여신입니다.”

‘단순한 청동으로 만든 동상이 아니다. 저분은 지금 이 세상을 주관하는 절대적인 존재! 가이아 여신이다.’

거대한 신성(神聖)에 팰리스가 저도 모르게 무릎을 꿇었다.

가이아 여신은 이 행성을 주관하는 주신(主神)이자 절대적인 존재였다.

요즘 잘나가는 왕국의 왕이라지만 신이라는 절대적인 존재 앞에 팰리스는 한낱 인간에 불과했다.

‘털썩~’

“차, 찾으···셨습니까?”

[그렇구나, 나의 아들 팰리스야. 내가 왜 너에게 신탁을 전하는지 알겠느냐?]

“제랄드 신관에게 얼추 들었습니다. 마왕이 현세에 강림한다는.”

[그렇단다. 마계에서도 손꼽이는 마왕이라서 너희가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런 어마무시한 마왕이 이곳에 강림할 것이니라.]

마왕은 신(神)이란 카테고리에 속하고 신이란 존재는 인간이 어찌 해볼 수가 없는 존재였다.

그런 마왕 중에서 손꼽히는 마왕이라면···

“···”

‘어마무시? 우리가 감당하기 어렵다고? 그렇다면 아무리 발버둥 쳐도 마왕을 막을 수가 없다는 말이잖아?’

긴장이 풀리자 자연스럽게 의아한 점이 떠올랐다.

그런데 팰리스와 대화하는 존재는 신이라는 절대적인 존재였다.

[감당하기 어렵다고 말했지 불가능하다고 말하진 않았구나.]

“···”

‘제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는데요?’

[방금 속으로 그리 생각하지 않았느냐.]

“아, 예에~ 그런데 제가 정말 마왕을 막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래야지. 너와 네 가족이 생존하고 내일을 계획하려면.]

막말로 죽기 싫으면 마왕을 물리치라는 말이었다.

마계의 존재는 세상을 파괴하고 그런 과정 중에 발생하는 마이너스 카르마를 흡수하여 강해진다.

마왕에게는 가벼운 유희나 수련(?)이겠지만 도륙당하는 인간에게는 생존과 미래가 달렸다.

오늘과 내일을 위해서라면 어떡하든 마왕의 행사를 막아야할 것이다.

“알겠습니다, 여신님. 반드시 마왕으로부터 세상을 구원하겠습니다.”

[그래, 팰리스. 너를 믿겠노라.]

“그런데 여신님. 어떻게 해야 마왕을 물리칠 수 있겠습니까?”

신이 사명을 하달할 때에는 그에 걸맞은 신기(神器)를 내려주거나 마왕을 약점 같은 것을 알려준다.

팰리스는 이것을 확신했다.

[어떻게 마왕을 물리치느냐? 그거야 당연히···]

“···”

‘꿀꺽~’

[잘! 그야 잘 물리쳐야지.]

“네, 네?”

아주 당연하고도 정확한 대답이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기분이 상했다.

“여신님. 구체적이고도 실현가능한 방법을 알려주셔야죠.”

‘이야기는 원래 이렇게 흘러가잖아요. 그래야 제가 마왕을 물리치든 막든지 하잖아요.’

[내가 그것까지 알려주랴?]

“그럼 무기는요? 마왕을 물리칠 신기나 무기를 주셔야죠.”

[어째 나한테 맡겨놓은 것 같구나?]

“···”

[너는 모르겠지만 천계와 마계는 서로의 업무(?)를 방해하지 않겠다는 협약을 맺었단다.]

“혀, 협약이요?”

[그래, 마왕이 자의로 강림하면 우리 천계의 신들이 막을 수가 있지만 중간계의 존재에 의해 강림하면 직접적으로 방해할 수가 없단다. 고로, 마왕은 행사는 전적으로 너희가 감당해야 한다.]

“그, 그걸 말이라고···”

[어험~ 나는 너희만 믿겠노라.]

신의 권능이 담긴 무구나 신기도 없이 마왕을 물리치라는 말은 알아서 자살하라는 말과 동일했다.

‘지, 지금 뭐하자는 플레입니까?’

“여신이시여. 최소 영웅소설에서처럼 마왕을 물리칠 비법이나 신기 정도는 내려주셔야죠.”

[팰리스야~ 현실은 영웅소설이 아니란다.]

“네, 네?”

[너도 많이 들어봤지 않느냐. 현실은 시궁창이라는 아주 정확하고도 현실적인 명언을!]

가이아여신의 말이 맞았다.

아무리 이상(理想)이, 꿈이 높아도 현실은 시궁창이었다.

“그렇다면 왜 접니까? 하필이면 왜 그런 막중한 임무를 저에게 맡기시는 겁니까?”

[그야 네가 주인공이니깐! 주인공이니까 당연히 마왕을 물리쳐야지.]

“주인···공? 방금 주인공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그렇구나. 지구인 칠성의 영혼을 가진 팰리스야.]

“어, 어?”

[너는 나에게 선택된 일곱 번째 주인공이니라.]

71. 뜬금없는 신탁-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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