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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 파이온 왕국을 위하여.
친위쿠데타는 예상대로 어이없는 해프닝으로 끝났다.
그렇다고 마냥 해프닝이 아닌 것이 (이리얀 해의 동부지역에)파이온 왕국을 건설하라는 조언과 함께 충실한 지원까지 약속받았다.
쿠데타의 주동자, 메이플이 기대했던 것보다도 훨씬 많은 것을 선물 받은 셈. 그러자 삶의 터전을 빼앗긴 상실감에 겉돌았던 파이온 주민들에게 새로운 목표가 생겨났다.
낙동강 오리알이었던 파이온 백작과 레온에게도 새로운 목표를 생겼다.
파이온 왕국이라는 목표!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다.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서는 부단히 노력해야할 것이다.
파이온 백작과 레온은 사정상 해산시켰던 (파이온의)병사들을 소집했다.
이에 주민들이 적극 동참하여 당초의 예상을 초과한 2만의 병력을 확보했다.
팰리스는 이들에게 예비군이 사용했던 개량형 캐논소총(독일의 Kar98k와 유사)을 무상으로 지원했다.
캐논소총은 본래 종이나 몬스터가죽으로 포장(탄피)한 탄환에 뇌관딱지를 장착한 가이아 최초의 후장식 소총이었다.
로이얀 왕국이 최근에 개발한 후장식 소총과 유사한 방식이었다.
‘이었다.’ 라고 말한 건 지금의 캐논소총이 초기형과 크게 달라졌기 때문이다.
사연이 어찌된 것이냐면 캐논소총은 배달소총(M1)에 밀려나 치장물자로 보관되다가 예비군에게나 지급되었던 무기였다.
그런데 예비군이 사용하기에도 소위 너무 구렸다.
보유수량이 많아 폐기하기도 곤란했었다.
과거 세 영지와의 전쟁을 앞둔 어느 날, 바륨이 팰리스를 찾아와 이리 따졌던 일이 있었다.
“와, 왔어요?”
‘하아~ 웬만하면 맥주나 마시고 잠이나 퍼 잘 것이지. 오늘은 또 무슨 일이야?’
“젊은 영주. 쪽팔려서 도저히 못 참겠다.”
“아니, 왜 또요. 오늘은 뭐가 또 불만인가요?”
“어째 말본새가··· 내가 뭐 어쨌다고 그래?”
“그래 용건이 뭔데요?”
“예비군이라지만 한심한 소총을 들고 다니는 것이 말이나 돼?”
“한심한 소총이라면 아~ 캐논소총 말인가요?”
“그래, 캐논소총. 마음 같아서는 몽땅 녹이고 새로 만들고 싶다.”
“수석식 소총보다 훨씬 빠르고 강력하고 그럴 시간이 없습니다만. 아참~ 예비군은 전투에 투입시킬 생각이 전혀 없어요. 단순한 전장정리나 치안 유지에 투ㅇ····”
“그만! 쓸데없는 잔소린 됐고.”
“···”
‘아이 씨~ 저 놈의 드워프가··· 뭐라 한소리하면 한참동안 삐칠 테고. 으~’
“젊은 영주. 그거 개량할 수 있도록 허락··· 아니다. 나랑 친구들이랑 그거 살짝 개량할게. 그렇게 알고, 알았지?”
“자, 잠깐! 개량하려면 시간ㅇ···”
“금방이면 되거든? 허락한 거다? 그럼 그렇게 알고 나는 간다.”
팰리스가 논리적으로 반대하기 전에 급히 도망가는 바륨. 그와 그 일당들이 캐논소총의 약실과 노리쇠, 총열뭉치의 일부만 살짝 개량했다.
아주 작은 부분만 개량했어도 성능이 대폭 향상됐다.
탄약이 종이포 방식에서 정식 뇌관을 사용하는 풀 메탈 쟈켓 방식으로 바뀌었다.
1발을 쏘면 탄약주머니에서 탄환을 꺼내 다시 장전하던 것을 (배달 소총처럼)클립으로 한꺼번에 8발을 장전하고 발사하는 방식으로 개선시켰던 것. 주력소총(배달 소총)과 차이라면 1발을 발사한 뒤에는 노리쇠를 후퇴, 전진시켜야 차탄이 장전된다.
그 과정에서 조준선이 흐트러지지만 (배달 소총을 제외하고)가이아에서 가장 발전된 소총이었다.
각설하고, 무상지원은 소총만이 아니었다.
팰리스는 트랙터에 조립식 장갑키트를 장착한 다목적장갑차도 지원하기로 약속했다.
전쟁 중에는 장갑키트를 부착하여 군사무기로 사용하다가 이리얀 해가 안정되면 황무지를 개간하는 농기계로 사용할 계획···· 이라는 핑계였지만 무턱대고 최신형이자 비대칭 전력이 될 무기를 함부로 지원할 수는 없는 법이다.
그러나 이것만 해도 엄청난 지원일 것이다.
그런데 욕심이란 끝이 없다.
말 한마디를 잘하면 천 냥 빚도 갚을 수가 있었다.
파이온 백작은 자신의 얼굴이 뜨끈해지더라도 새로 만들어질 파이온 왕국을 위하여 좀 더 욕심내기로 했다.
“아~ 아버님. 오셨습니까? 그런데 오늘은 무슨 일로···”
“험험~ 메이플이 말하기를 로이얀과 싸우자면 원거리 광역제압무기가 꼭 필요하다던데.”
“?···”
‘그런데 뭐, 어쩌라고요.’
“속사포가 참 좋아 보이더라고. 차후 파이온 왕국을 수비할 때도 꼭 필요할 것 같고.”
“속사포··· 말입니까?”
“마음 같아서는 기관총까지 욕심나더군.”
“기, 기관총까지요?”
“그래, 기관총. 아아~ 안다, 알아. 사람의 욕심을 모두 채울 수가 있나? 그냥 속사포로 만족할 생각이다.”
“?···!”
팰리스를 생각해서 나름 미련을 접었다는 말투에 정말 어이가 없었다.
기관총은 상당히 민감한 무기체계였다.
그렇잖아도 왕국들이 후장식 소총과 대포를 연구, 생산하는 와중인데 기관총까지 공개되면 비슷한 방식으로 역설계할 수도 있었다.
가이아의 무기발전 속도가 비정상적으로 빠른 것도 문제지만 배달의 우위가 사라지기에 조심해야 한다.
기관총이 배달을 향해 발사될 수도 있어 실전에 사용하기 전까지는 함부로 공개할 수가 없었다.
기관총은 아무리 파이온백작이 부탁하더라도 거부하기로 결정된 무기체계. 백작은 아르펜을 통해 잘 알고 있었던 문제였다.
“아, 예에···”
“아르펜에게 들어보니 속사포 보다 더욱 강력한 대포를 만들고 있다고 들었다. 105mm라든지 보병들이 쉽게 들고 다니는 쪼매난 대포··· 이름이 뭐였더라?”
“박격포 말입니까?”
“아~ 그래, 박격포! 아무튼 그런 대포를 만들고 있다면서? 그렇다면 속사포는 이제 창고에 들어가야겠지?”
“아직도 현역에 사용해도 충ㅂ···”
“그렇지. 시대에 뒤떨어진 무기는 빨리 퇴역시켜 창고에 보관해야지.”
“···”
“그런데 말이다. 창고에 보관할 것이면 우리 파이온에 지원해 주면 좋지 않을까? 이왕이면 무상자원이면 더욱 고맙겠고.”
“무상지원까지··· 하아~”
“너도 알다시피 우리 파이온은 재정이 너무 미약해서 말이다. 어험~”
“···”
팰리스는 내심 기분이 상했다.
무상으로 지원하는 소총과 속사포가 아까웠던 건 결코 아니었다.
‘105mm와 박격포가 양산되고 있다. 속사포는 이제 치장물자로 창고에 처박아 둬야겠지? 문제는···’
고위 관리들의 허술한 보안의식이었다.
아무리 파이온과 친밀하더라도 본질적으로는 타국 간의 관계였다.
뭐, 몇몇 인사에 불과하지만 배달의 비밀들을 너무 쉽게 오고가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팰리스는 내심 고위관리들을 소집해서 따끔하게 경고를···
‘아니, 아니다. 굳이 그리 나쁘게만 볼 것도 아니다.’
파이온은 매우 특수한 관계였다.
팰리스가 파이온 백작의 피를 이어받은 아들이었다.
‘비밀을 지킬 생각 자체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 로이얀과 싸우고 왕국을 지키자면 반드시 대포가 필요할 것이다.’
팰리스는 찜찜함을 털어버리고 흔쾌히 속사포를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알겠습니다. 속사포와 이번에 소비될 탄약까지 무상으로 지원하겠습니다.”
“그으~래? 으흐, 으허··· 고맙구나. 나는 바빠서 이만···”
자꾸만 귀에 입이 걸리려는 파이온 백작. 이렇게 말 한마디로 백작은 속사포 100문과 다량의 포탄들을 확보했다.
사실 캐논소총 2만정과 속사포 100문, 다목적장갑차 100대라면 웬만한 왕국의 몇 년 치 예산에 해당하는 엄청난 물자였다.
혹자는 팰리스가 너무 퍼주는 것이 아니냐고 따질 수가 있을 것이다.
외견상 그리 보이는 것도 사실이었다.
[아무리 친족이라도 국가와 (미래의)국가 간의 거래관계다. 절대로 공짜는 아니다.]
팰리스는 배달의 왕이었다.
마냥 공짜가 없는 세상을 살았던 자였고 푼돈마저도 아쉬웠던 ‘산업역꾼’이었다.
‘전생의 미국이 왜 주한미군을 주둔시켰겠어? 그것이 다 자기들에게 훨씬 이득이었고 비용 면으로도 훨씬 싸게 먹히니깐. 그래서 ’양키 고 홈‘ 소릴 들어가면서도 계속 주둔했었지.’
한국의 입장에서 주한미군이 주둔함으로써 아주 큰 안보적인 도움을 받았다.
미국을 통해 안전을 보장받고 마샬 플랜(Marshall Plan)의 경제적인 지원으로 산업화를 성공시켰었다.
이런 고마움 때문에 한국은 미국을 위해 월남전에 참가해 피를 흘렸고 16,000명의 사상자가 발생했어도 자유진영에 기여했다고 마음이 뿌듯했었다.
그렇다면 이젠 미국의 입장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주한미군은 미국이 설계한 세계전략을 위해서도 분쟁지역에서의 즉각적이고도 효율적인 무력을 행사를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했다.
게다가 경제적으로도 이익이었다.
얼핏 이해가 안 되겠지만 종합적으로 따져보면 이익이었다.
실제로 주한미군 뿐만 아니라 미국이 세계 곳곳에 전개시킨 군대와 군사시설을 자국 내에 건설한다면 얼마나 많은 예산과 유지비가 필요할까?
물가나 지대 및 기타 생활여건 등을 고려하면 미국 이외의 지역이 군부대를 주둔시키는 것이 훨씬 유리했다.
또 다른 이유로 안전과 사회문제를 들 수가 있다.
군대는 생산 활동이 전무한 완벽한 소비조직이고 병사들은 혈기가 왕성한 젊은이였다.
배우는 건 죄다 효율적으로 적을 살상하는 기술이었다.
다른 말로 든든한 무력조직이지만 언제든지 치명적인 무뢰배가 될 확률이 매우 높은 조직이란 점이다.
군부대가 존재함으로써 발생할 각종 범죄와 사회문제를 고려하면 군부대를 자국이 아닌 외국에 떨어뜨려 놓는 편이 훨씬 나았다.
각설하고, 세상은 독불장군으로 살아갈 수는 없었다.
팰리스는 전생의 패권국가 미국을 롤 모델로 배달왕국을 위해 큰 그림을 그려가고 있었다.
배달과 동맹한 국가는 아직 이리자야와 파이온 두 곳뿐이고 관계설정도 수평적인 동맹관계였다.
‘실제로는 수평적일 수가 없겠지. 전생의 한국과 미국처럼, 안 그래? 지금은 수평적이지만 조만간 종속관계로 변질될 것이다.’
외견상 수평적인 관계지만 실질적으로는 종속적인 관계!
약자를 대등하게 대우한다는 명분을 얻는다.
남방의 물자들을 안정적으로 공급받는 실리까지 챙길 수가 있었다.
팰리스가 마냥 퍼주는 것 같지만 이렇듯 계산기를 두드리면 전혀 손해가 아니었다.
패권국가 배달을 위한 장기적인 투자였다.
배달이 꾸준하게 얻을 이익에 비하면 파이온과 이리자야에 지원했던 건 거저나 다름없었다.
‘어차피 창고에 보관할 물자였다. 그것으로 생색을 내면서 지원하면 서로에게 이익이지. 게다가···’
조만간 퇴역시킬 무기를 공여함으로써 새로운 수익원이 창출된다.
알다시피 캐논소총과 속사포를 공여했지 포탄은 전쟁에 소비할 물량만 지원하기로 약속했다.
즉, 탄약과 포탄이 떨어지면 캐논소총과 속사포가 무용지물이 된다.
그런데 배달의 탄약들은 흑색화약을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
화학 처리한 무연화약을 사용했다.
파이온 백작에게 비밀이 없는 아르펜마저도 무연화약과 몇몇 비밀에 관해서는 언급조차 피할 정도였으니 파이온이 남방에 왕국을 건설하더라도 탄약과 포탄을 제조하지 못할 것이다.
배달은 전생의 미국처럼 조만간 퇴역시킬 무기를 공여하거나 싸게 판매한다.
그러나 진짜는 꾸준하게 소비되는 탄약을 판매함으로써 수익을 창출한다.
이런 전략이라면 파이온이 배달과 수평적인 관계를 맺지만 실제로는 배달에 종속되고 만다.
즉, 공짜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배달에 상당한 이문이 남는 ‘장사’였다.
아무튼, 외견상 엄청난 특혜로 보이는 지원덕분에 파이온군이 빠르게 재무장을 완료했다.
그리고 3달이 지난 후에는 새로운 무기체계에 익숙해진 진짜 군대로 변신했다.
냉병기라면 어림도 없는 기간일 것이다.
다행히 화약무기 시대에는 빠르면 4~6주의 훈련만으로도 제법 쓸 만한 병사로 양성된다.
그것도 힘들기로 소문난 배달의 신병훈련소를 수료했다면···
파이온군은 이제 강력하기로 소문 난 파이온의 군대로 변신했다.
이때에는 새로운 호위함과 주력전투함 건조가 모두 완료됐다.
병력과 물자를 실어 나를 수송선들도 충분히 만들어져 시험운항을 하는 중. 팰리스는 마침내 마법통신으로 로이얀에 선전포고를 전달했다.
배달의 선전포고!
이 소식에 안드레아와 로이얀의 수뇌부들이 놀랐지만 그건 잠시뿐 크게 분노했다.
“동부 10개국을 해방시키고 이제 마타람만 남았습니다. 그런데 이제야 분쟁을 구실로 우리에게 선전포고했습니다.”
“전하~ 이는 필시 우리 로이얀을 우롱한 것입니다.”
“배달왕국이 너무도 비열하고 야비합니다.”
로이얀의 대전은 한동안 배달을 성토하는 소리들로 이어졌다.
이들이 아무리 떠든다고 바뀌는 건 하나도 없었으니, 안드레아왕이 냉정을 찾고 이해득실을 따지고자했다.
‘웅성웅성~’
“그만, 조용하라.”
“···”
“우리는 결정해야 한다. 놈들이 최종통첩을 받아들이고 고갤 숙여 점령지에서 물러날 것인지. 아니면 그 놈들과 싸울지를 먼저 결정해야 한다. 그런데 싸우면! 이길 수가 있겠나?”
“전하께서 우리 남방인들을 위해 동부지역까지 해방하셨습니다. 이 땅의 정령들이 전하를 수호하시니 당연히 승리합니다.”
“정의가 승리하고 우리가 곧 정의입니다. 우리가 승리하되 그것도 압도ㅈ···”
객관적인 근거가 전혀 없는 ‘헛소리’를 서로가 먼저 말하려고 했다. 마치 충성경쟁처럼···
그래서 안드레아가 경고했다.
“잠깐! 대전에서는 허언이 없는 법, 자신의 말에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이제부터는 신중하게 발언하기 바란다.”
“헉~”
“···”
대전이 갑자기 조용해졌다.
안드레아는 조개처럼 입을 다문 이들을 둘러보고 피식거렸다.
“몰래 꿀이라도 먹었나? 갑자기 너무 조용해졌군.”
“···”
“베티스타 공작도 설마 꿀을 자셨소?”
“후후후~ 설마 그러했겠습니까? 전하~ 걱정하지 마십시오.”
“걱정하지 말라니··· 갑자기 무슨 소리요?”
“저는 우리 로이얀이 승리한다고 생각합니다. 반드시!”
로이얀에서 전략전술에 가장 밝은 자를 꼽으라면 모두가 베티스타를 꼽을 것이다.
그런 그가 승리를 자신했다.
그것도 그가 직접 지휘했던 함대에 크나큰 피해를 안겼던 배달에게···
“전하~ 배달이 우릴 너무 띄엄띄엄 보는 것 같습니다.”
“그런··· 가?”
“물론, 배달 놈들도 바보는 아닐 겁니다. 아마도 1년 동안 전투함을 키우고 대포도 대형으로 만들어 이번 전쟁을 준비했겠지요.”
“공작. 겨우 1년이다. 그동안 그것이 가능할까?”
“우리도 예전의 교훈을 통해 준비하지 않았습니까?”
“그렇지. 장갑이 흘러내려 허무하게 장갑전투함을 잃는 일은 더 이상 없을 것이다.”
“우리가 준비한 것처럼 배달도 나름 준비했을 겁니다. 군을 지휘하는 자는 최악을 가정해야 하는 법. 그것까지 염두에 둬야 합니다.”
“그렇다면 전투가 어렵지 않겠나.”
“후후후~ 앞서 말했듯이 놈들이 우릴 너무 만만하게 봤습니다. 이 전쟁···”
길에 말을 늘이던 베티스타. 갑자기 허공을 강하게 움켜쥐곤 다시 이어갔다.
“전하를 위하여 이 전쟁 이겨 보이겠습니다.”
68. 파이온 왕국을 위하여-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