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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오전, 나바호 공격군의 숙영지.
“집합! 각 대대별로 빨리 집합하라.”
‘터벅터벅~’
“에이 씨~ 오늘은 한몫 크게 잡아야 하는데.”
“그러게? 어제는 죄다 맹탕이었어. 제길~ 열 받게도 모두가 빈집이었다니.”
벽돌 같은 빵에 멀건 스프로 아침을 해결한 병사들이 모여들며 투덜댔다.
이들의 불만은 어제 점령한 (빈)마을의 집에서 제대로 약탈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피식~’
“배부른 소리하고는··· 난 맹탕이라서 다행이더라.”
“응? 야~ 라이손. 갑자기 무슨 헛소리야?”
“생각해봐. 우리가 어디 놀러왔냐? 여긴 죽고 죽이는 전쟁터야.”
“그래서 뭐. 그래서 뭐 어쩌라고.”
“싸우지 않는 것이 가장 좋지 않겠어? 전쟁터에 끌려왔으니. 안 그래?”
“뭐, 틀린 말은 아니지만··· 기사님들이 우리가 무조건 이긴다고 했잖아. 그러니 이왕이면 한몫 단단히 잡고 전쟁을 마치면 좋잖아.”
“그렇지. 덤으로 계집년들을 마음껏 품어보고. 안 그래?”
“아이고~ 이런 화상들 하곤. 전쟁터에 끌려와서 엉뚱한 생각이라니. 한 목숨 부지하는 것이 최고란 말이네."
“그런데 배달 놈들이 모두 부자라는 소문이던데. 굶는 사람도 없고 말이야.”
“정말이야? 그럼 계집년들이 잘 먹어서 꽤 삼삼 하겠는데?”
“흐흐흐~ 잘 먹어 보기에 좋은 것들이 맛도 좋지.”
“그런데 정말로 굶은 사람이 없대?”
“그래 정ㅁ···”
“야~ 믿을 말을 믿어라. 세상에 그런 곳이 어디에 있냐?”
“내 말이··· 굶는 사람이 없다는 말을 어떻게 믿어? 말이 되는 소릴 해야지.”
정말이라니까? 배달은 정말 굶은 사람이 없대.”
“샤이엔 시절에 빌어먹던 놈들이 무슨··· 놈들이 퍼뜨린 거짓말이겠지.”
“아니라니까? 정말 믿을 만한 장사꾼들에게 들었어.”
“뭐 장사꾼?”
“나도 알아. 걔네들 장사꾼이 원래 뻥이 심한 거. 그래서 다른 상인에게도 물어 보니까 모두들 같은 말을 했어.
“야~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라. 그것이 정말로 가능한지.”
“이런 씨ㅂ··· 좀 믿어라. 신용사회 몰라? 배달은 우리 같은 평민들에게는 정말 천국이더라. 세금이 2할이고 굶을 수준이면 아예 면제한다나?”
‘피식~’
“그렇다면 정말 거짓말이네. 세상에 어떤 영주가 미쳤다고 세금을 안 걷겠냐? 장사꾼들은 원래 거짓말이 기본이야.”
“하아~ 거참. 정말 속고만 살았냐? 진짜! 진짜 거짓부렁이 아니라고.”
켈란이 시뻘게진 얼굴로 항변했지만 도무지 믿어주질 않았다. 그래서 저도 모르게 목소리가 높아졌다.
“거기~ 아가리 닥치고 빨리 모여.”
신경에 거슬렸는지 백부장이 나직하게 경고했다.
지금은 전시상황이고 백부장부터는 즉결 처분권을 가지고 있다. 소란스럽던 주변이 단번에 조용해졌다.
“아, 알겠습니다.”
‘후다닥~’
켈란을 끝으로 병사들의 집합이 얼추 완료됐다.
그제야 귀족들이 막사를 슬금슬금 기어 나왔고 다시 1시간이 지나고서야 영주가 모습을 보이며 병사들의 행군이 시작되었다.
오늘도 배달은 나바호군의 진군을 방해하지 않았다.
정찰대가 주변을 철저하게 수색했지만 배달의 레인저 몇 명이 멀리서 부대이동을 살피는 것 이외에는 깨끗했다.
“부대~애. 진군하라.”
“이랴~”
강행기마정찰대와 기병대 일부가 먼저 출발했다.
그 뒤를 보병과 포병대, 보급부대, 징집보병, 나머지 기병대가 후미를 엄호하는 순서로 행군하기 시작했다.
아참, 정찰을 위해 소수의 레인저를 먼저 보냈다.
그들은 배달군의 매복이나 특별한 이상이 발생하면 즉각 돌아와 보고할 것이다.
‘떠그덕, 떠그덕~’
말이 씨가 된다고, 행군을 시작한지 1시간이 지났을 무렵이었다.
레인저의 기마가 급하게 돌아왔다.
“그러니까 3시간 거리에 놈들이 진을 치고 기다린다고?”
“넵, 사령관님. 전방 15Km 지점의 평원입니다. 배달군은 중갑총병 1천과 징집병으 보이는 총병 5천이었습니다. 지형은 평탄한 초원이고 특별한 지형지물이 없었습니다. 보급부대로 보이는 대형마차(장갑차)까지 관측된 것으로 보아 아무래도 놈들이···”
“정면으로 승부하자는 뜻이다?”
“넵, 사령관님. 배달이 무슨 생각으로 정면승부를 바라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보급마차는 본래 안전한 후방에나 있을 물건입니다. 대열 곳곳에서 관측된 것으로 보아 놈들은 분명 회전을 청하는 제스처로 판단했습니다.”
“수고했다, 레인저. 그만 일보도록.”
‘배달의 지휘관이 누구인지 모르겠지만 완전히 미쳤군.’
사령관이 어이없어 하는 건 너무도 당연했다.
나바호의 병력이 23,000명인데 반해 배달은 겨우 6천명 이었다.
더욱 기가 막힌 건 배달군은 대포를 보유하기는커녕 기마대도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사령관. 레인저의 보고를 들어보니 놈들이··· 아차~ 미안하군. 괜한 참견이었어.”
나바호 자작이 최고통수권자이지만 병력운용에는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전문가에게 맡겼는데 군무에 대해 함부로 왈가왈부하면 사령관의 권위가 훼손될 것이다.
“아닙니다. 그냥 말씀하십시오.”
“흠흠~ 그럴까? 사령관은 놈들의 저의를 어떻게 생각하나?”
“영주님도 아시다시피 우리가 압도적으로 유리합니다.”
“그건 그렇지.”
“놈들은 성에 틀어박혀 농성해도 부족한 판국입니다. 그런데도 어리석게 정면승부를 걸어왔습니다. 놈들이 정신 차리고 농성하기 전에 빨리 응해야 합니다.”
“그런데 사령관. 기마대가 보이지 않았네. 멀리 우회시켰을 수도 있지 않겠나?”
“그럴 가능성도 있겠지요. 허나, 배달이 준비한 전장은 시야가 확보된 평야지댑니다. 정찰대의 눈을 피하려면 기마가 피로해질 것이고 그럼 온전한 제 능력을 발휘하기 어렵습니다.”
“호오~ 그런가?”
“넵, 영주님. 게다가 병력마저 우리가 압도적으로 유리합니다. 그저 정석으로 승부하면 압도적으로 승리할 것입니다.”
“그래도 기마부대잖나. 전장의 주역이라는···”
“영주님, 절대적으로 우세한 병과란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순신의 조선 수군이 장거리 투사무기(대포)를 해상전투에 활용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왜(倭)의 수군을 철저하게 농락했다.
그런데 원균은 똑같은 함선과 무기, 여기에 이순신이 승리하는 전투를 가까이에서 지켜봤음에도 불구하고 한심하게 지휘하다가 참패 중의 참패를 당했다.
경계에 실패한데다 소수의 적에게 기습받자 우왕좌왕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
이를 보듯, 전투는 승패는 병사의 수와 무기의 우위가 결정하지만 반드시 그런 건 아니었다. 병법이나 병사들의 사기, 전투력 그리고 병과에 따른 상성들을 이용해 적재적소에 활용해야만 한다.
“기마부대는 빠른 기동력과 기마돌격으로 전장을 압도해왔습니다. 허나 지금은 화약무기의 시댑니다. 당연히 전장이 달라졌지요. 가리발디와 도야마의 회전에서 보듯이 기마부대는 총병들의 일제사격에 너무도 취약합니다. 연사속도가 궁병에 크게 미치지 못한다지만 전장의 주역은 이미 포병과 총병으로 옮겨갔습니다.”
“호오~ 그런가?”
“네, 영주님. 뭐, 기마부대는 여전히 전장에서 활약할 겁니다. 허나, 그 필요성이 조금씩 떨어질 것인데 배달은 기마부대는 물론이고 대포까지 보유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승부를 벌이면 당연히 우리 나바호가 압도적으로 승리한다.’
라는 장담을 귀가 아닌 머리로 전해졌다.
“좋아, 좋아. 결론적으로 배달자작이 미쳤거나 매우 어리석다는 말이겠군?”
“미친 수준··· 아니, 아마도 미쳤을 겁니다.”
“후후후~ 하긴 미치지 않고서야 어찌··· 아무튼 어리석게도 배달이 정면승부를 걸어왔네. 사령관~ 적들에게 뜨거운 맛을 보여주도록.”
“넵, 영주님. 완벽하게 승리하여 영주님께 배달을 바치겠습니다.”
승리를 자신한 사령관은 배달이 후퇴하기 전에 병력을 5Km 떨어진 지짐에 일단 집결시켰다.
이곳에서 전투 진형을 갖추고서 승부에 임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크로우와 푸에블로 연합군도(이하, 연합군) 사정은 나바호와 다르지 않았다.
그곳에서도 배달군 1만(정예병 2천 + 예비군 8천)이 평지에 진을 치고 연합군에게 정면승부를 걸어왔다.
크로우의 병력이 26,000명(영지군 4,000명 + 징집병 22,000명)이고 푸에블로의 병력이 15,000명(영지군 2,000명 + 징집병 13,000명) 도합 4만이 넘는 병력이었다.
자신들의 병력이 4배 이상인데도 정면승부를 피한다?
나중에 창피해서 얼굴을 내밀고 다니지도 못할 것이다.
게다가 4Km 떨어진 배달의 진형에서는 대포도 기마부대도 보이지 않았다.
“대포까지는 모르겠는데 기마부대도 없다. 이상하군. 혹시··· 우회공격인가?”
‘그렇다면 후방 지휘부를 타격할 셈인가?’
상황이 너무 유리하자 크로우 자작이 괜스레 기마부대를 이용한 우회공격을 우려했다.
‘피식~’
“설마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아닐 겁니다.”
“남작 아니 사령관. 전장은 유동적이라고 하잖나. 그럴 가능성도 있지 않겠나?”
푸에블로 남작이 연합군의 통합사령관을 맡았다.
연합작전의 고질적인 문제인 분산된 명령계통을 통합하기 위함이었다.
그가 제국군을 지휘했던 경험과 함께 체면을 세워준 면이 없지 않았다.
“뭐, 그래도 문제없습니다. 설혹 기마부대가 우회했더라도 결국에는 우리에게 달려와야 합니다. 우린 가만히 기다렸다가 총병으로 기마부대를 전멸시키면 그만입니다.”
“오~ 그런가? 제국군 출신이라서 그런지 역시 다르군.”
“별 말씀을··· 솔직히 병법을 아는 자라면 누구나 알만한 내용입니다. 알다시피 이곳은 시야가 확보된 평원입니다. 얕은 수를 쓴다면 (가리발다의 총병들처럼)순차적인 사격으로 전멸시키면 그만이지요.”
“전멸이라··· 빨리 그랬으면 좋겠군.”
“안심하십시오, 자작님. 이번 전쟁··· 오늘 끝장내겠습니다. 실질적으로 말입니다.”
* * *
“이번 전쟁··· 오늘 끝장낼게요. 완전히 아작 내서요.”
기갑부대를 달라고 떼를 써서 기어이 기갑부대의 지휘관이 된 헬레나가 이리 전의를 다졌다.
그녀 또한 푸에블로 남작 못지않게 승리를 자신했다.
뭐, 객관적으로 평가해도 배달의 승리가 명백했다.
그럼에도 사령관 아르펜의 얼굴이 그리 밝지가 않았다.
“헬레나. 방심은 금물이다. 장갑차는 처음으로 실전에 투입되는 장비다. 아직은 신뢰할 무기가 아니야.”
무기란 건 성능이 좋다고 해서 능사는 아니다.
전장에서는 일상다반사로 돌발 상황이 발생한다.
군사용 무기는 성능이 좋아야겠지만 아무런 문제없이 작동하는 신뢰성 또한 중요했다.
그런데 장갑차는 이제 막 개발됐고 이번에 처음으로 실전에 투입된다.
그럼에도 영주의 여동생이자 자신의 어여쁜(어린 시절에는 사각턱으로 꽤 사내다웠지만(?) 마나운용 덕분에 그나마 좀 볼만해졌다) 딸이 총탄과 포탄이 집중될 기갑부대의 지휘관이 됐다.
빗발치는 총탄과 포탄을 뚫고나가 적들을 아작 내겠다고 날뛰고 있으니 아르펜의 얼굴이 좀처럼 밝아지질 못했다.
“설마 우리 애기(장갑차)들을 무시하는 건가요? 걱정 마세요, 아ㅃ···아니, 사령관님. 제가 완전히 아작 내고 올게요.”
“···”
‘이러는 네가 더 걱정이거든? 게다가 기갑부대의 임무는 위험도 위험이지만··· 하아~’
장갑차는 이번 작전 ‘충격과 공포’의 주역이었다.
전투초반부터 강력하고 잔인하게 제압하여 적들의 전투의지를 꺾어버리는 임무였다.
아무리 기사라지만 헬레나는 여자였고 아르펜의 예쁜(?) 딸이었다.
그런 예쁜 딸이 꿈자리가 뒤숭숭할 참상을 주도적으로 만들어야 한다.
장갑차만 보면 오줌을 질질 싸도록···
‘하아~ 웬만하면 곱게 시집이나 갈 것이지. 도대체 쟤가 어쩌려고 저러는지, 원.’
“헬레나.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안토니아 경에게 기갑부대를 양보해라."
"에이~ 또··· 그 얘긴 벌써 끝났잖아요. 히힛~ 사령관님. 빨리 출전명령이나 내려줘요.”
“···그래. 알았다.”
“와아~ 이제 출전이에요?”
“험험~ 헬레나 휘슬러!”
‘처척~’
“넵, 사령관님.”
“지금부터 기갑부대를 지휘하여 적들의 전투의지를 꺾어 버리도록.”
“넵, 알겠습니다. 사령관님, 명령대로 적들을 완전히 아작 내겠습니다.”
“···”
‘내가 언제! 내가 언제 아작 내라고 했어?’
군례를 마친 헬레나가 지휘용 장갑차를 향해 달려갔다.
아르펜이 복잡 미묘한 눈길로 부하이자 어여쁜 딸을 배웅하며 길게 한숨을 뱉어냈다.
‘하아~ 어떡하냐, 쟤를··· 시집은 가야하는데.’
* * *
헬레나가 지휘용 장갑차에 탑승하는 시간, 5Km 거리에서 대치하던 연합군이 먼저 보병과 포병을 전장에 투입했다.
“보병대~애! 앞으로!”
“앞으로!”
‘쿵짝, 쿵짝, 띠리리리~ 띠리리···’
‘구쿵, 구쿵, 구쿵···’
군악대의 연주와 함께 좌우와 중앙에 각각 오천씩 15,000명이 (가리발디의 병사들처럼)북소리에 발을 맞춰 전장으로 진군했다.
그들의 뒤는···
“포벼~엉. 앞으로.”
“앞으로! 이럇~”
‘이히히힝~’
포병들이 대포를 끄는 말에 채찍을 휘두르고 때로는 대포바퀴를 굴려 전장으로 이동시켰다.
이들은 배달군과 500m 거리에 진지를 구축했다가 발사명령이 하달되면 즉각 대포를 발사할 것이다.
“포벼~엉. 정지. 서둘러라! 지면을 단단하게 다져야 할 것이다.”
“보병들이 벌써 대열을 갖췄다. 대포들을 빨리 방열하란 말이다.”
기사와 백부장들이 돌아다니며 다그치자 얼추 포병이 준비됐다.
이로써 보병이 준비됐고 포병도 대포를 운용할 준비를 모두 마쳤다.
후방 3Km 지점의 연합군 기마부대 또한 명령만 떨어지면 언제든지 기마돌격 할 준비가 완료됐다.
그럼 이제부터 본격적인 회전이 벌어질 것이다.
연합군 사령관, 푸에블로가 교전명령을 내렸고 보병대가 막 출발하려는 순간이었다.
‘뀌릭, 뀌리리릭~’
배달의 진형 곳곳이 갈라지더니 그곳에서 거대한 마차가 불쑥 튀어나왔다.
모두 25대로 보급부대의 대형마차라고 생각했는데 그것은···
“뭐, 뭐야!”
“세상에··· 말도 없이 저절로 굴러오네?”
말이나 소가 없이 연합군 보병을 향해 느릿느릿 스스로 굴러오고 있었다.
그렇다. 헬레나가 지휘하는 기갑부대였다.
이는 나바호 방면의 전선도 마찬가지. 병사들은 장갑차가 자신들을 향해 다가오자 무척 신기했다.
“진짜 말이나 소가 없는데도 막 굴러오네?”
“그런데 참 신기하군. 바퀴가 이상하게 막 굴러다녀.”
라이손과 켈란이 바보처럼 중얼거렸다.
이때까지만 해도 두 사람은 꿈에도 몰랐다.
이때부터 악몽이 시작됐고 또 앞으로의 꿈속에서 끊임없이 재방송될 악몽이 이제 시작되었음을···
* * *
61. 배달, 가진 힘을 드러내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