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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토니아!”
“··”
“안토니아 연대장!”
“···”
안토니아는 여전히 일라이를 비롯한 엘프 여성들에게서 눈을 돌리지 못했다.
물론, 그 혼자만 그런 한 것이 아니었다.
남자병사 대부분이 여성 엘프들에게 여성병사들은 남성 엘프들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보다 못한 토머스가 안토니아의 옆구리를 툭 건드리···
려다가 보조가방에 살짝 삐져나온 익숙한 19금 문양을 발견했다.
“오호~”
‘앗싸아~ 득템이다.’
19금 문양. 그렇다, 헨타이 망가였다.
피리온과 그의 성(性)스러운 작업을 숭상하는 일부 마법사들이 발행했고 프랭클린이 구입했다가 동기사랑 에쉴리에에게 잠시 맡겨졌다가 압수당했던 그것. 이제 욕심꾸러기 토머스의 손(금고)에 입고됐다.
아닌 말로 멀쩡하게 눈을 뜨고 최신판 망가를 빼앗긴 셈이 됐다.
보조가방에서 전해진 감각 때문인지 아니면 팰리스의 목소리 때문인지 그제야 안토니아가 반응했다.
“네, 네? 부르셨··· 습니까?”
“하아~ 그래, 우리가 도착했다는 사실을 알렸소?”
“네. 네? 넵! 특급으로 임시영주님께 전했습니다. 최대한 빨리 오신다고 하셨으니 약 4시간 후에 휘슬러경과 함께 도착하실 것입니다.”
“그렇소? 그렇다면 이곳에서 잠시 휴식하면서 기다리면 되겠군.”
“그런데 영주님. 정말 저들이 엘픕니까?”
“마도사님이 도착하면 그때 자세하게 설명하겠소. 경은 그만 일보시오.”
팰리스는 귀찮게 구는 안토니아를 떨치곤 오랜 행군에 지친 엘프들에게 휴식하도록 지시했다.
그리곤 꾀죄죄한 몰골부터 해결했다.
그제야 팰리스 일행과 엘프들이 본모습으로 돌아왔고 그때쯤 드레이크와 아르펜이 병사 200명을 이끌고 도착했다.
드레이크는 임시영주 직을 반납하며 팰리스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황도에서 벌어진 참변 그리고 이로 인해 발생할 파장들을 간략하게 설명했다.
“그렇다면 전란의 시기에 들어섰다는 말이겠군요?”
“그렇습니다, 영주님. 그래서 임시영주님의 지시대로 병력을 2배로 확충하는 중입니다.”
“수고했소, 휘슬러경.”
팰리스가 고개를 끄덕이곤 드레이크에게 눈을 돌렸다.
“영주님. 일단 기존에 비축한 곡물이 있어 당장은 문제가 없습니다. 세바스찬 경에게 통보해 2배 가격이라도 무조건 구입하라고 지시했습니다.”
‘끄덕끄덕~’
“현명한 조치였습니다.”
“문제는 이번 사태가 장기간 지속될 것 같습니다. 빨리 부산으로 복귀하셔서 대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드레이크의 우려대로 전란의 시기가 오래갈 조짐을 보였다.
실제로 그 시간, 외견상으론 정권을 잡은 것으로 보이는 자베르 공작과 루벤 공작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몹시 흐리지만)황족의 피를 이었고 그래서 자신이 꼭 황제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겁 없는 ‘멍청이’들이 하루걸러 1건씩 등장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제법 방귀뀌는 귀족들의 후원을 받았다.
심한 경우에는 백작영지의 후원을 받고 기가 살아 설레발쳤다.
현실은 고위귀족들이 내세운 간판이거나 새로운 황조 창건(皇朝 創建)의 징검다리에 불과한, 그래서 사냥을 마치면 솥에 삶아질 사냥개였을 따름이었다.
그 말인즉, 타이판제국은 현재 새로운 황제가 질서를 확립할 때가지 확실하게 분열됐고 조만간 엄청난 혼란에 휩싸일 것이라는 점이다.
이런 혼란 속에 귀족가문 상당수가 휩쓸려 멸망할 것이다.
그리고 그만큼의 새로운 자가 공을 세우고 영지를 얻어 귀족가문으로 성장할 것이다.
“낡은 귀족가문이 멸망하고 새로운 이가 나타나 성장하는 건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일 것이오. 멸망할 가문들이 불쌍하지만 세상의 이치가 원래 그런 것이니.”
“호오~ 그래요?”
“뭐, 그동안 부귀영화를 누렸으니 그리 억울하진 않을 것이외다.”
“허허허. 루벤 공작께서는 역시 현자시구려. 본 재상은 엄청난 혼란에 수많은 백성들이 죽어갈 것이 걱정되어 밤에도 잠이 잘 안 옵니다.”
“그렇겠지요. 재상, 혼란은 가능한 귀족의 선에서 해결되어야 합니다. 윗대가리들이 치고 박고 싸우더라도 그 피해가 백성들에게 전가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그것이 가능할까요? 영주는 작은 왕이나 다름없잖소.”
“그렇겠지요. 앞으로 많은 피가 흐르겠지요. 그래서 제가 가능한 피를 적게 흘릴 방책을 고민했습니다. 일단은····”
루벤 공작이 그동안 생각했던 최선의 방책들을 쏟아냈다.
자베르 공작이 간간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보아 조만간 포고의 형태로 발표될 것이다.
각설하고 그건 앞으로 벌어질 일. 배달의 당장에 닥친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
“영주님. 곡물을 확보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젭니다.”
드레이크의 진단처럼 배달은 무엇보다 곡물의 확보가 가장 중요했다.
안타깝게도 배달은 토지가 척박해서 식량자급률이 30%미만이었다.
목축과 어업이 돌파구가 될 수도 있겠으나 목축은 여전히 가축의 절대적인 수를 늘리는 단계였다.
어업도 몬스터 힘줄로 짠 그물로 잡는 방식이라서 기대만큼 충분한 양을 잡지 못했다.
‘그물을 만들기 위해서 나일론이라도 개발해야 하나? 일단 그 건은 나중으로 넘기고···’
배달에게는 천만다행으로 축복의 경고 덕분에 어찌어찌 엘프들을 영입했다.
그들은 식물학자에 버금가는 식물재배의 전문가들이었다.
‘이번 원정은 그야말로 신의 한수가 됐군. 그렇다면 세계수를 키우고 엘프마을을 건설하는 작업이 먼저다.’
“마도사님. 부산에 복귀하지 않겠습니다. 그보다 먼저 세계수를 심고 엘프들의 마을을 건설해야 합니다.”
“영주님, 잠시만! 방금 세계수라고 하셨습니까? 전설에 나오는 그···”
“그렇습니다. 마도사님. 미리 사정을 말한다는 걸 깜빡했네요.”
“오오~ 세상에 이런 일이.”
“어떻게 된 일이냐면···”
팰리스는 실버 라이칸슬로프 새끼들을 얻게 된 사연과 초특급마정석으로 엘프들을 영입하게 된 사정들을 간략하게 설명했다.
“그렇다면 앞으로 배달의 토지가 살아날 수 있다는 것입니까?”
“이 땅을 황폐화시켰던 마나집적 결계가 사라졌으니 서서히 살아날 겁니다. 게다가 세계수를 성장시키면 특유의 생명의 기운을 발산합니다. 잘만하면 생각보다 빨리 대지가 살아날 것으로 기대합니다.”
“오~ 됐습니다. 우리에게 가장 큰 난제가 해결된 갑니다. 허허허~”
드레이크가 한시름 놓았다는 듯이 크게 기뻐했다.
“영주님. 아무리 돈이 많아도 곡물이 없으면 굶어야 합니다.”
“그렇지요. 무역을 통해 식량을 조달할 수는 있지만 완전한 해결책이 아니지요. 전란의 시대에는 어떤 돌발사건이 벌어질지 모르고요.”
“배달의 땅이 살아난다니··· 배달의 가장 큰 약점이 해결된 셈입니다.”
“그렇습니다, 마도사님. 그래서 가능한 빨리 세계수를 성장시키고 엘프마을을 건설해야 합니다.”
배달이 수행해야 할 일이 결정됐다.
“아참~ 또 깜빡할 뻔했네요. 마나집적 결계가 사라져 몬스터 생태계가····”
교란되어 몬스터들이 불쑥 튀어나올 수도 있다.
이런 팰리스의 경고에 드레이크는 안토니아와 신입기사 둘 그리고 병사 100명을 남겨 대비하자고 제안했다.
“럭키! 럭키 이리와!”
면담을 마친 팰리스는 라이칸(실버 라이칸슬로프) 새끼들의 우두머리, 럭키를 불렀다.
아참, 녀석들은 송아지만한 크기였으나 아직도 성체로 다 자라진 못했다.
인간으로 비유하면 청소년기로 상급몬스터의 사체를 먹어서 그런지 생각 외로 똑똑하고 말도 잘 알아들었다.
팰리스는 이곳에 라이칸들이 풀어놓을 생각이었다.
그렇잖아도 배달이 식량을 걱정하는 판국인데 녀석들이 먹는 고기의 양이 무지막지했다.
그리고 몬스터 생태계가 교란되어 언제 어느 곳에서 불쑥 튀어나올지 몰라 병사와 함께 몬스터 퇴치 임무를 맡길 생각이었다.
‘좋구나. 몬스터도 사냥하고 그 고기로 먹보들의 배를 채울 수도 있으니.’
‘컹! 컹, 컹.’
“저기 일라이랑 여자 엘프들에게 알짱거리는 남자 보이지?”
‘갸웃~’
‘끼이잉?’
“안토니아라는 제법 강한 기사란다. 너도 기사가 뭔지 알고 있지?”
함부로 까불지 말란 뜻으로 말했는데 럭키는 대련상대로 적당한 뜻으로 알아들었나 보다.
‘휘릭, 휘릭, 휘리리릭~’
‘컹, 컹, 컹!’
맹렬하게 꼬리를 흔들며 자신만만하게 짖었다.
걱정하지 말라는 뜻으로···
‘피식~’
‘토머스에게 그리 처 맞고도 이리 까부는군. 확실히 몬스터는 몬스터야.’
“적당히, 적당히! 알았지?”
‘컹, 컹, 컹!’
“그래, 럭키. 이제부터 너와 형제들에게 임무를 주겠다.”
‘컹!’
“몬스터 사냥이다. 아까 말한 안토니아랑 총을 든 인간들과 협력해서 몬스터를 사냥해라. 알았지?”
‘컹!’
서당 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라이칸들은 행군과 사냥을 통해 화약무기에 익숙해졌다.
이젠 의도적으로 하급몬스터들을 총구 앞으로 몰아올 줄 알았다.
강한 놈이 나타나면 배달소총 앞으로 유인하여 ‘작살’내버리는 꼼수도 터득했다.
라이칸은 개과 동물이라 청각과 후각이 몹시 뛰어났다.
그래서 불시에 튀어나올 몬스터에 대한 대비책으로 최선이었다.
“산악지대 남쪽은 이렇게 틀어막았으니 됐고, 북쪽지역도 막아야 하나?”
팰리스가 잠시(5초간) 고민했지만 그곳은 그냥 내버려두기로 결정했다.
북쪽은 샤이엔 영지와 접한 곳이다.
그곳은 암살자를 파견했던 잠재적인 적대세력이었다.
‘흥! 감히 축복이를 노렸어? 이번에 혼 좀 나봐라.’
암살은 팰리스와 배달정보부의 착각이자 오해였지만 적대세력인 건 과히 틀리지 않았다.
“가만! 나중에 기회를 봐서 아예 샤이엔 쪽으로 몰아버릴까? 몬스터도 토벌하고 미운 놈들에게 골탕도 먹이고. 좋아, 나중에 시간이 나면 꼭 그래야겠다.”
음흉하게 미소 짖는 팰리스에게서 샤이엔의 불행이 무럭무럭 자라나기 시작했다.
각설하고, 몬스터 난입에 대한 조치를 마친 팰리스는 호위병력 100명과 엘프들을 이끌고 세계수를 심을 예정지로 이동했다.
‘떠걱, 떠걱~’
‘덜컹, 덜컹~’
병사들은 모두 체구가 작은 북부말에 (승마에 익숙지 않은)엘프들은 수레를 타고 거친 황야로 줄지어 이동했다.
“그런데 영주님. 정확하게 어디로 가야 합니까?”
드레이크의 물음에 팰리스가 별다른 생각 없이 대답했다.
“중심지요. 쇼쇼니 반도 중심지로 이동할 생각입니다. 그곳이면 효과가 가장 좋을 테니까요.”
“그러니까 거기가 어딘지요.”
“네?”
배달의 땅 대부분이 버려진 땅이고 이름이 없었다.
이로 인해 발생한 혼선이었다.
“아~ 그러고 보니 이름이 없었군요?”
“그럼, 이번 기회에 적당한 이름을 정하시지요.”
“그럼 그럴까요? 이름, 이름이라···”
알다시피 팰리스는 작명실력이 영 꽝이었다.
그는 아주 단순하게 (한반도를 닮은)쇼쇼니 반도의 중앙이니 엘프마을이 들어설 지명을 ‘대전’이라고 결정했다.
그런데 잠깐! 한반도의 중심지는 원래 서울이나 개성쯤이 아니었나?
안타깝게도 칠성은 남한에 살았다.
그의 머릿속의 한반도는 남한지역만 해당됐다. 그래서 쇼쇼니 반도의 중앙 지점의 이름이 대전이 되고 말았다.
“그런데 영주님. 이렇게 무작정 이동해도 괜찮겠습니까?”
드레이크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왜요? 무슨 문제라도···”
“대전이 될 곳인데 입지라든가 무슨 특별한 조건이 없는지요.”
“황무지잖습니까. 거기서 거기겠죠.”
“제 말 뜻은 엘프들이 가꿔갈 대전이잖습니까. 그리고 세계수를 심으면 생태계가 다시 살아날 테고요.”
“그렇···겠지요?”
“마을이나 도시는 입지조건이 중요하니··· 그리고 엘프들이 살아갈 지역이니 엘프들에게··· 험험.”
“아차~”
그제야 팰리스가 드레이크의 뜻을 알아차렸다. 그랬다.
막말로 ‘내가 그리 결정했으니 너희는 그냥 이곳에서 살아라.’라고 강제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세계수가 아무리 특수한 생명체고 엘프들이 특별한 종족이라지만 마을이나 도시는 입지조건이 중요했다.
팰리스는 일라이와 토라이를 불러 제반사항을 자세히 알려줬다.
“그러니까, 영주님의 뜻은 쇼쇼니 반도의 중앙지점에 세계수를 심어 최대한 많은 토지가 생명의 기운에 노출되게 하라는 뜻이지요?”
“그렇지. 그리고 엘프들이 살아가기에 적당한 곳을 골라야겠지.”
“접수했습니다.”
“된 건···가?”
“네, 영주님.”
“레인저나 정찰병을 보내 입지조건이 좋은 곳을 고르는 것이 아니고?”
“네, 쓸데없이 고생시킬 필요가 없으니까요.”
일라이가 배시시 웃더니 엘프의 고어로 뭐라고 중얼거렸다.
그러다가 하늘을 향해 오른손을 쭉 내뻗었다.
‘퍼더더덕~’
‘끼엑, 끼에에엑~’
신기하게도 창공을 날던 야생송골매가 일라이의 손에 아주 조심스럽게 착지했다.
알다시피 맹금류의 발톱은 몹시 날카롭고 위협적이다.
그래서 매의 주인이라도 보호 장비를 착용하고 다뤄야하는데 일라이의 팔에 앉은 송골매는 그녀의 팔목에 상처 날 것을 걱정했는지 꽉 움켜쥐지 않았다.
“오호~”
“허허허~ 이건 뭐 길들인 매보다 더욱 친해졌구먼. 혹시 패밀리어 계약인가?”
“호호호~ 맞아요, 마도사님. 송골매와 계약을 맺었어요. 이제 3시간동안은 매의 눈으로 지상을 내려다 볼 거예요. 가라, 친구.”
‘퍼더더덕~’
‘끼엑, 끼에에엑~’
송골매가 하늘로 날아올랐고 일라이의 시선은 대지를 내려다봤다.
그녀는 90분가량을 송골매의 눈으로 대지를 굽어보다가 엘프마을을 건설하기에 적당한 곳을 찾아냈다.
경사가 없는 벌판에 형성된 야트막한 구릉이란다.
“구체적으로 어떤 지형이냐고요? 영주님, 제가 보기는 확실하게 보았는데 말로 설명하기가 참 어렵네요.”
‘어째 어디서 많이 들어본 말툰데. 도대체 뭐였더라?’
“그렇다면 사물로 비유하면 어떤 모양이지?”
“사물로 비유한다면··· 아~ 예전에 영주님이 요리해줬던 달걀프라이요. 둔덕이 달걀프라이의 노른자 부분을 꼭 닮았네요.”
그제야 일라이가 점찍은 지형이 머릿속에 쏙 들어왔다.
“저쪽으로 가야해요. 대략 100Km만 더 올라가면 될 것 같네요.”
팰리스는 일라이가 가리킨 곳을 향하여 황무지를 관통했고 다음날 10시경에 마침내 프라이의 노른자 같이 야트막한 언덕을 목전에 뒀다.
* * *
49. 엘프마을을 건설하라.-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