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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간, 자신 때문에 제국에 크나큰 골칫거리가 생겨난 줄을 꿈에도 모르는 팰리스. 현명한 바람을 길잡이 삼아 어두운 초원을 이리저리 떠돌고 있었다.
알파지점이 합류지점이었지만 생각 없이 그곳으로 향하면 절대로 안 된다.
“바람 경! 그대도 잘 알겠지만 집결지에 도착할 때까지 조심해야 할 것이오. 그곳이 발각되면 기동타격대와 자근애기가 위험해집니다.”
“알고 있습니다. 구원자님.”
“도착할 시간을 잘 조절해서 안내해 주시오.”
“맡겨 주십시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퉁구스의 미래를 팰리스에게 맡겼다.
바람의 어께위에 목숨보다 소중한 자근애기와 부족의 운명이 걸려 있었다.
‘내가 실수하면 신녀님도 퉁구스도, 모든 것이 사라진다. 정신 똑바로 차려라, 현명한 바람!’
다시금 각오를 다진 바람이 눈을 부릅뜨고 팰리스의 눈이 되었다.
눈을 갸름하게 뜨고 어둠속을 노려보며 이동했다.
그러다 갑자기··
‘번쩍!’
오른 주먹을 번쩍 들어올렸다. 정지신호였다.
순간, 입에 천을 씌운 말들이 일제히 제자리에 멈췄다.
팰리스와 대원들의 눈이 일제히 바람의 오른손이 그려내는 수신호를 집중했다.
‘스윽, 휙휙~ 스윽, 스윽~’
‘말에서 내려라? 바닥에 엎드리되 예비마까지 모두 땅바닥에 뉘이라는 신호구나.’
팰리스와 일행들은 빠르게, 그러나 매우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수신호에 따라 말에서 내려 예비마까지 모두 풀밭에 뉘였다.
그리곤 한쪽 귀를 땅바닥에 가져다댔다.
‘구그그그그웅~ 구그궁~ 구그그···’
미약하지만 다소 급박한 말발굽소리 아니, 울림이었다.
울림은 점차 커지다가 미약한 소리로 변했고 기어이 제법 귀에 시끄러운 소음으로 발전했다.
‘더그덕, 더그덕~’
“우리가·· 찾아··· 현상금··· 차지···”
‘현상금? 젠장~ 이번에도 또 현상금이냐? 수색을 독려하기 위함이라는 건 잘 알겠는데, 이러다가 현상수배범으로 소문나는 거 아냐?’
긴장을 풀기 위해 속으로 농담한 팰리스. 슬며시 고개를 들어 (주변시를 이용하여)지평선을 살폈다.
2Km부근에서 거뭇한 덩어리들이 한곳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추격부대다. 놈들의 규모는 500명! 아마도 우리와 아군을 찾기 위해 천인대를 둘로 나눴나보군.’
팰리스의 추측대로 뼈다귀는 7개의 밍간, 7,000명을 500명 단위로 부대를 쪼개 기동타격대를 저인망식으로 수색하고 있었다.
참고로, 아무리 무월광이라 사위가 어둡더라도 초원에서의 2Km는 바로 옆이나 다름없는 거리였다.
밤에는 공기의 밀도가 높아지고 상승기류가 사라진다.
그래서 작은 소리도 공중으로 흩어지지 않고 멀리까지 전달된다.
여기에 방금 전의 팰리스처럼 주변시(peripheral vision)로 지평선을 흘깃 노려보면 어둠속에서도 아군의 이동을 찾아낼 수가 있었다.
이런 이유로 추격부대가 가까워진다 싶으면 무조건 땅바닥에 말을 뉘이고 바짝 엎드려야만 한다.
각설하고, 다행히 발 빠른 대처로 발각될 위기에서 벗어났다.
소음이 사라졌어도 한참동안을 움직이지 않고 엎드려 있었다. 그러다 바람이 신중하게 주위를 살피더니 속삭이듯 팰리스에게 말했다.
“팰리스님. 이제 일어나셔도 괜찮습니다.”
“고맙소, 현명한 바람.”
몸을 일으킨 팰리스와 일행들이 다시 어둠을 벗 삼아 추격부대를 피해 이동하기 시작했다. 이동은 20분 만에 다시 멈춰야했다.
‘번쩍!’
바람이 정지신호 보냈지만 이번에는 추가로 이어지는 신호가 없었다.
팰리스가 조심스레 바람에게 다가가 살펴보니 잔뜩 인상을 찌푸린 채로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가만! 무슨 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은데··· 어디!’
팰리스도 귀에 마나를 집중하고 미약한 소음을 붙잡으려고 노력했다.
마나를 활용하자 미약한 소음이 구체적인 소리로 변화되었다.
‘뿌우우~ 뿌뿡, 뿌뿡~’
‘더그덕, 더그덕~’
‘와아~ 저쪽··· 제국놈···’
‘후환··· 추격··· 그물···’
“서, 설마···”
팰리스가 생각한 그 설마가 맞았다.
기동타격대가 기어이 추격부대에 발각되었던 것이다.
아무래도 수가 많아 비도기닉에 실패한 것으로 같았다.
“구, 구원자님 기동타격대가 지금···”
“알고 있소. 바람 경, 잠시만 기다리시오.”
‘어떡하지? 어두워서 자칫하다가는 그물망에 갇혀버리는데.’
방금 전까지는 어둠이 친구가 되어 아군의 자취를 숨겨줬었다면 이젠 추격부대의 접근까지 감춰 아군에게 극히 불리해졌다.
그들이 펼친 대단위 그물에 갇히면 필시 몰살당할 것이다.
“어둠이 오히려 방해가··· 가만! 어둠이라···”
불현듯 좋은 아이디어가 생각났다.
숨바꼭질! 400명은 쉽사리 어둠에 녹아들 수가 없겠지만 10명은 다르다.
물론, 자신과 침투부대까지 위험으로 내몰 수도 있었다.
‘부하들이 몰살되는 모습을 무력하게 지켜보는 것 보다는 훨씬 나을 것이다. 그래, 결정했다.’
팰리스는 토마스와 바람에게 계책을 설명하곤 무한주머니에게 캐논 소총을 3정을 꺼내 토머스와 레인저 대원에게 건넸다.
한밤중의 총성은 아주 멀리까지 전달된다.
총성의 굉음으로 바바리안들의 주의를 끌어 포위망을 다소 느슨하게 풀어낼 목적이었다.
그런 와중에 놈들이 팰리스 일행에게 접근하면···
‘당연히 납작 엎드려야지. 우리의 수가 적으니 찾아내기가 어려울 것이다.’
팰리스 일행은 추격전이 펼치지는 곳으로 말을 속보로 걷게 했다.
거리가 줄어들자 놈들의 뿔나팔 신호와 고함소리가 어둠을 타고 똑똑하게 들려왔다
‘뿌우우우~ 뿌뿌뿡, 뿡~’
“놈들이 진로를 수정했다.”
“북쪽, 제국 놈들이 북쪽으로 향하고 있다.”
“절대 빠져나갈 틈을 줘선 안 된다. 이럇~”
‘이히히히힝~’
일단의 바바리안의 추격부대가 진로를 살짝 틀어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런 그들에게 너무 가까이 접근하면 팰리스 일행까지 위험해질 것이다.
‘떠걱, 떠걱~’
‘팰리스님, 더 이상 접근하면 위험해집니다.’
바람이 수신호로 경고하자 팰리스가 일행을 멈추게 했다. 팰리스는 문득 의문이 들었다.
‘깜깜한 한밤중인데 어떻게 진로를 수정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지?’
팰리스가 고개를 한쪽으로 기울일 때, 뿔나팔 신호가 아련하게 들려왔다.
“그래, 뿔나팔!”
당초의 계속은 숨바꼭질, 총성으로 추격부대의 주의를 이끌어 아군을 돕고 몸을 숨길 생각이었다.
그런데 뿔나팔 신호를 듣자 더욱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네? 방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바람 경! 혹시 허리에 찬 것이 뿔나팔이오?”
“그렇습니다만.”
“그럼, 뿔나팔 신호도 알고 있소?”
“그야, 당연하지요. 뿔나팔 신호를 외우지 못한다면 초원의 전사 아니, 초원의 자손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합시다. 바람 경이 뿔나팔을 불어···”
신호체계를 교란시킨다.
아군이 북쪽으로 이동하면 남쪽이나 동쪽으로 이동했다는 신호로 추격의 혼선을 주어 아군을 구원한다.
처음의 계획보다 더욱 안전하면서도 아군에게 도움이 되는 계책이었다.
바람은 팰리스와 잠시 의논하곤 뿔나팔을 불어 아군이 동쪽으로 진로를 수정했다는 신호를 전파했다.
‘뿌우우우~ 뿡, 뿌뿌~ 뿌뿌뿡~’
“···동쪽··· 제국놈··· 진로를 수정··· 보강···”
아련하게 그물을 급히 수정하라는 고함소리들이 들려왔다.
그러자 곧이어 기동타격대를 추격하는 부대가 북쪽으로 계속 이동한다는 뿔나팔 신호를 전파했다.
동쪽이냐 북쪽이냐!
서로 다른 뿔 나팔 신호에 추격부대는 갈팡질팡했다.
“바람 경! 이번엔 남쪽! 남쪽으로 이동했다는 신호를 보내시오.”
“알겠습니다, 구원자님.”
‘뿌우우우~ 뿌우~ 뿡뿌우~’
남쪽으로 진로를 수정했다는 신호에 혼란이 더욱 가속화되었다.
일부는 아예 추격을 멈췄다.
이렇게 바람이 잘못된 뿔나팔 신호로 포위망을 교란시키자 자근애기도 현 상황을 알아차렸다.
그녀는 급히 동쪽으로 기동타격대를 안내했고 당연히 동쪽으로 진로를 수정했다는 신호가 전파되었다.
‘뿌우우~ 뿌우~ 뿌르르르~’
“바람 경! 이번엔 서쪽이오!”
‘앗싸아~ 놈들이 크게 당황하겠군. 크크큭~’
“넵, 구원자님.”
신이 난 바람이 뿔나팔을 다시 거짓 신호를 전파했다.
그물망이 사실상 와해된 순간이었다.
바바리안들에게 더욱 운이 없었던 건 천인대를 둘로 쪼갰기 때문인데, 추격하는 자들과 추격당하는 자들의 규모가 서로 엇비슷했다.
말발굽소리나 주변시로 적인지 아군인지 구별할 수가 없었다.
500명 단위의 14개 부대가 그물을 펼쳐 400명의 기동타격대를 몰아가는 와중이었다.
바람의 뿔나팔신호로 혼선을 야기하자 진정한 숨바꼭질이 시작되었다.
자근애기는 의도적으로 진로를 연이어 수정했다.
기동타격대를 악착같이 추격하는 부대는 그때마다 정확한 신호를 사방에 전파했다. 물론, 그와 동시에 잘못된 신호가 전파되었다.
“앗싸아~ 리저드 경, 아르펜 대장님. 팰리스과 바람님이 근처에 있나 봐요. 헤헤헤~”
“휴우~다행입니다, 자근애기님.”
“아르펜 대장님. 조금은 위험할 수도 있는데···· 이렇게 하는 것이 어떻겠어요?”
아르펜에게 작게 속닥거린 자근애기. 그녀는 좀 더 모험을 걸기로 작정했다.
자근애기의 제안을 받아들인 기동타격대는 부근에서 갈팡질팡하다가 아예 제자리에 멈춰선 추격부대 한곳을 향해 다가갔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똑바로 다가오는 병력이 가동타격대라고 꿈에도생각하지 못했다.
그저 신호가 엇갈려 잠시 혼선이 발생한 것으로 믿고 멍하니 5Km의 거리를 두고 지나지는 모습을 바라봤다.
이 순간, 기동타격대를 악착같이 추격하던 부대가 아군을 적으로 오인하고 말았다.
“드디어 놈들이 지쳤다.”
“교활한 제국 놈들이 저기에 있다.”
“활을 쏴라!”
말을 몰아오다가 활의 사거리에 들어오자마자 화살부터 날렸다.
잠시 멈춰섰던 부대는 난데없이 불벼락을 맞은 셈이었다.
‘피리릿, 피리리릿~’
“도대체 뿔나팔 신호가··· 큭!”
“조심해라. 특작부대다. 제국 놈들이 우릴 공격한다!”
“우리도 빨리 반격해!”
‘피리릿~ 피리리릿~’
동료의 죽음에 흥분한 전사들이 활로 반격했다.
사방에 적과 교전에 들어간다는 뿔나팔 신호를 전파하곤 곧장 돌격을 개시했다.
무월광이라 무척 어두웠지만 초점을 하늘에 두자 검은 인영이 시야에 얼핏 들어왔다.
그것도 아주 가까이에···
“죽어라, 제국 놈아! 에잇~”
“이이~ 교활한 제국 놈··· 어? 아니다. 나는 제국 놈이···”
‘싹둑~’
제국군이 아니라고 소리치던 전사가 곡도에 목이 잘려 죽었다.
공격자는 그제야 상대가 아군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군이다! 제국 놈들이 아니다!”
뒤늦게 고함쳐 어이없는 참사를 재빨리 중단시켰다.
그러나 초반의 격돌에 그만 양측 합쳐 100여명의 전사가 죽거나 다쳤다.
그보다 더욱 심각한 건 악착같이 추격하던 기동타격대의 종적을 놓쳐버렸다는 점이다.
이처럼 엇비슷한 규모라 적인지 아군인지 구별하기가 몹시 어려웠다.
여기에 잘못된 뿔나팔 신호가 여기저기에서 울리자 혼란이 더욱 가중되었다.
“젠장! 젠장! 으아아아아~”
분노한 뼈다귀가 고개를 쳐들고 시커먼 하늘에다 울분을 잔뜩 토해냈다.
갑작스런 신호체계의 혼선으로 인해 기동타격대의 꼬리를 놓쳤기 때문이 결코 아니었다.
“놓친 놈들이야 다시 찾아내면 되겠지만···”
불에 타고 물에 젖어 썩어가는 식량을 어찌할 수가 없다.
그제야 보급기지가 완전히 와해되었고 그곳을 지키던 전사들까지 도망쳤다는 소식이 전해졌던 것이다.
병참이 부실한 군대는 결코 오래 유지될 수가 없다.
마음이 산산조각 난 초원의 군대에겐 더욱 치명적으로 작용할 것이다.
‘이 전쟁··· 졌다. 우리가 패배했어!’
대칸의 군대가 무너지면 테라칸 부족도 위험해진다.
정진을 비롯한 초원의 위대한 스승까지 잃었던 참이다.
주변 부족들이 벌떼처럼 달려들 것이 분명했다. 현재의 상황을 역전시키지 않는다면···
부족의 멸망을 떠올리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어떻게든 역전시킬 방도를 찾아야 한다.
“그래! 특작부대 놈들이 향할 곳은 오직 그곳이다.”
세작을 통해 알아낸 바에 따르면 기동타격대는 식량을 확보하기 위해 목책 밖으로 나섰단다.
그렇다면 필시 북부군에게 다시 돌아가려 할 것이다.
‘어떻게 식량을 운반하는지는 모르겠지만 특작부대에게 식량을 다시 빼앗아야 한다. 그래야 대칸이 승리하고 테라칸이 왕국으로 성장한다.’
그랬다. 아직도 역전시킬 방도는 남아 있었다.
뼈다귀는 이곳에서 기동타격대를 잡겠다고 숨바꼭질할 것이 아니라 길목을 노리기로 작정했다.
“여봐라~ 뿔나팔을 울려 병력을 집결····아니, 전장으로 복귀하라는 신호를 전파하라.”
“네, 알겠습니다, 뼈다귀님!”
‘뿌우우웅~ 뿌우~ 뿌우~’
이로써 뜬금없는 숨바꼭질이 끝이 났다.
기동타격대는 그제야 제자리에 멈춰 주변을 살폈다.
팰리스 일행도 추격부대가 지나갈 때까지 납작 엎드려 몸을 피했다.
“제국 놈들을 잡을 수 있었는데. 젠장~ 아깝다, 현상금 받으면 이번에 장가갈 수 있었는데.”
“너 좋다는 여자는 있고?”
일과(?)를 마친 전사들이 이렇게 잡담하며 말을 몰았다.
“그런데 그 소식 들었나? 식량이 죄다 사라졌다 던데.”
“아니 왜요? 한두 시간 전까지는 멀쩡했잖아요.”
“그러게 말이야. 그것들이 죄다 못 쓰게 됐다는구먼. 퉁구스 놈들이 배신해서 이런 난리가 났지.”
“맞아요, 아저씨! 퉁구스 놈들이 배신하지만 않았다면···”
“멍청한 놈들이지. 대칸께서 배신자를 가만 두겠나? 토벌부대를 보낸다니 놈들의 필시 죄 값을 치를 걸세.”
‘흡!’
납작 엎드려 숨었다가 청천벽력 같은 소식에 손바닥으로 입을 틀어막은 바람과 자근애기.
전사들의 잡담대로였다.
대칸은 주먹을 통해 배신한 퉁구스를 멸족시키기 위해 3,000명의 군대를 보낼 생각이었다.
일단은 보급기지가 너무 중요하여 출동을 잠시 미뤘지만···
초원에서 부족 간에 전쟁이 벌어지면 보통 상층부만 죽이고 나머지는 노예로 삼는다.
그래서 주먹이 아무런 거리낌 없이 심복을 보내 고자질했던 것이다.
억센 주먹은 세상을 알기에 너무 젊었다.
세상은 그의 뜻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퉁구스의 배신에 대칸이 크게 분노했던 것. 그는 흡수 합병이 아닌 퉁구스의 멸족을 결정하고 말았다.
퉁구스 부족! 멸망할 위기에 처하고 말았다.
35. 퉁구스 부족을 구원하라-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