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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아아~ 공격하라! 바바리안을 죽여라!”
“우와아~ 돌격! 게르를 불태워라.”
깊이 잠들었다가 요란한 말발굽소리와 함성에 잠을 깬 전사들. 습관적으로 게르 밖으로 뛰쳐나왔다.
변변찮은 무기도 없이···
그런 그들을 기다린 건 기동타격대의 검과 예비마까지 포함된 인마일체의 기마돌격이었다.
“왜 이렇게 시끄럽··· 어? 서, 설마···”
‘이히히히힝~’
‘뻑!’
“으아아악~”
예비마에 들이받힌 전사가 공중에 떠 멀리 날아갔다.
그자의 뒤를 따라 뛰쳐나왔던 자는 재빨리 몸을 날렸으나 기수의 검까지 피하진 못했다.
“에잇~ 죽어!”
‘서걱!’
머리가 잘린 전사가 땅바닥에 널브러졌다.
바바리안 수비대는 막 잠에서 깨어난 상태라 정신이 없었다. 게다가 여기저기에서 게르가 불타고 있었다.
당황한 전사들은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무력하게 살해당했다.
물론, 그들도 바보가 아니었다. 경험이 많은 지휘관이 존재했다.
“불은 나중에 끄고 무기부터 들어. 원진부터 만들란 말이다!”
“장창을 세워라! 기마돌격을 저지해야 한다!”
“빨리, 빨리 움직여!”
여기저기에서 고함소리가 터져 나오며 바바리안의 지휘체계가 살아날 조짐이 보였다.
야습이라 아직까진 공격자의 피해가 거의 없었지만 시간을 지체하면 당연히 사상자가 발생할 것이다.
아르펜은 급히 명적을 울려 기동타격대가 전투현장에서 이탈하도록 지시했다.
‘삐이이익~’
“후퇴신호다, 후퇴! 후퇴하라~”
“놈들이 정신 차리기 전에 빨리 이탈해!”
사전에 약속된 작전이라서 기동타격대가 신속하게 반응했다.
그런데 기동타격대는 바바리안 전사들에게 아주 유명한 부대였다.
“밍간! 제국 놈들의 특작부대가 도망가려고 합니다.”
“비겁한 제국 놈들··· 그런데 야습해온 놈들이 몇인지 확인했나?”
“어두워 정확하진 않지만 400이 넘어 보였습니다.”
“사백?”
“넵, 밍간! 초반에 피해가 발생했지만 원진을 만들고부터 제대로 공격하지 못했습니다. 아무대로 수적으로 열세라 겁먹은 것 같습니다.”
“호오~ 그렇단 말이지?”
게르 20여 채가 불탔지만 이들이 지키려했던 군수품은 모두 무사했다.
지휘관은 야습을 성공적으로 막아냈다는 사실에 기뻐하다가 조금 더 욕심내기로 마음먹었다.
‘놈들의 수는 400이다. 400이 모두 공격했으니 양동작전은 절대로 아니다.’
“좋아! 놈들을 추격한다.”
“지금··· 말입니까?”
“그럼, 다 도망간 뒤에 추격할까? 서둘러! 놈들이 멀리 도망가기 전에 빨리 붙잡아야 한다.”
팰리스의 예상대로 보급기지의 우두머리는 기동타격대를 공략하기로 결정했다.
물론, 1,000명을 남겨 혹시 모를 사태나 화재를 진압하라고 지시하곤 급히 기동타격대를 추격했다.
2,000의 기마가 집결하여 진채를 빠져나가려는 그 시간, 역으로 안으로 스며드는 소수의 인원이 있었으니 예상대로 팰리스를 비롯한 침투부대였다.
침투부대가 막 울타리 밑을 통과해 게르 뒤에 몸을 숨겼을 때였다.
땅을 울리는 둔중한 말발굽소리가 사위를 울렸다.
공교롭게도 대칸의 명으로 급히 달려온 뼈다귀의 오천 기마대가 이제 막 도착했던 것이다.
“올곧은 뼈다귀다! 지휘관은 어디에 있나!”
뼈다귀는 막 추격하려던 지휘관을 불러 상황보고를 요구했다.
지휘관은 특작부대가 보급기지를 공격하려다가 실패해 도주하는 중이라고 보고했다.
“한시가 급합니다. 놈들이 멀리 도망가기 전에 빨리 추격해야 합니다.”
“양동작전의 가능성은! 유인작전일 수도 있잖나.”
“특작부대의 규모는 400명이었습니다. 수를 확인해보니 놈들이 모두 야습에 참가했습니다. 양동작전이 절대로 아닙니다.”
“흐음 그렇단 말이지···”
‘놈들의 가장 큰 목적은 제국군을 먹일 식량을 탈취하는 임무다.’
놀랍게도 뼈다귀는 세작을 풀어 기동타격대의 목적까지 알아냈다.
다만, 무한 주머니의 존재까지 알지 못해 여기에서 결정적으로 오판했다.
‘아무리 보르츠라도 제국군을 먹일 식량이다. 소수의 인원으로는 절대로 옮길 수가 없겠지. 이번 기회에 화근을 없애야겠다.
“좋다, ,놈들을 추격한다! 뭐하나, 빨리 서두르지 않고!”
“네, 네? 넵! 알겠습니다.”
뼈다귀의 5천 병력까지 총 7천의 기마부대가 기동타격대를 쫓아 어두운 초원을 질주했다.
난데없이 벌어진 야습에다 뼈다귀의 추가병력까지 도착했다가 휑하니 빠져나가자 정신이 하나 없었다.
기지에 남은 갈색추억은 한동안 멍한 상태로 지켜보다가 고개를 거칠게 흔들어 정신을 일깨웠다.
“뭐하나! 구경났나?”
“예? 갑자기 무슨···”
“빨리 불부터 꺼야지. 움직여~ 빨리빨리 움직이란 말이다!”
“아, 예에~”
기지에 남은 전사들이 반쯤 홀린 기분으로 불을 끄거나 괜스레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침투부대는 이런 혼란을 틈타 식량을 모아놓은 게르로 접근했다.
현명한 바람은 이곳에 방문해 식량을 바쳤던 적이 있어 이곳의 지리를 잘 알았다.
“팰리스님, 이곳입니다. 여기에서 저기까지의 게르는 모두 식량이 들어찬 게릅니다.”
“고맙소, 바람. 그럼··· 시작하자.”
팰리스의 지시에 2인 1조, 5개의 조가 유능한 도둑으로 변신했다.
한명은 오줌을 누거나 소일하는 척 망을 보는 동안 다른 한명이 게르의 뒤편에 단도로 쭉 찢어 구멍을 만들었다.
그리곤 아주 작게 중얼거렸다.
“열려라, 창꼬 하나!”
암호를 들어보니 바람이 가진 무한 주머니의 암호. 그는 구멍 속으로 한쪽 발을 집어넣어 아공간에 식량을 쓸어 담기 시작했다.
한쪽 발(?)로 다 비우질 못해 다른 발까지 사용하여 게르 안을 깨끗하게 비웠다.
“나와라, 아공간!”
팰리스도 아공간을 불러내어 그 안에 보르츠를 잔뜩 집어넣었다. 그의 것은 용량이 가로, 세로, 높이가 각각 10m 씩에 달하는 최고급품이었다.
다만, 골드를 비롯해 식수와 화살이 꽤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어 게르 3개를 비우자 아공간이 가득 차버렸다.
침투부대는 23개의 무한 주머니에 차근차근 식량을 채워 마침내 모든 무한 주머니의 여유 공간이 사라졌다.
‘가장 위험한 임무가 남았군. 어떡해야 잘했다고 소문날까?’
이제 남은 임무. 아깝지만 남은 식량을 모두 불 태워야 한다. 침투보다 더욱 어려운 퇴출이 남았다.
“흐음~ 무사히 퇴출해야 하는데.”
“영주님. 이런 방법은 어떨지···”
팰리스가 퇴출문제를 고민할 때였다.
불량소년으로 자라 이런 일에 제법 익숙한 토머스가 좋은 계책을 생각해냈다.
“토머스? 어떤 계획이지?”
“영주님, 일단은 불 태워야할 게르에 미리 기름을 뿌려놓고···”
토머스가 작은 소리로 계책을 설명했다.
팰리스를 비롯한 대원들이 마음에 들었는지 피식거리며 고개를 끄덕여 계책을 승인했다.
10분 후, 침투부대는 적당한 기회를 노리다가 미리 기름을 뿌려둔 (식량이 가득 찬)게르 20여 채에 일제히 불을 놓았다.
그리곤 당황한 표정을 연기하며 큰소리로 고함쳤다.
“부, 불이야! 식량창고에 불이 붙었다.”
“제국 놈들이 불을 냈다아~”
“저기! 저기로 도망갔다! 제국놈들 50명이 저쪽으로 도망갔어.”
“얼마 가지 못했을 것이다. 서두르면 놈들을 잡을 수 있다아~”
방귀 뀐 놈이 성내는 것처럼 침투부대는 일본정부처럼 피해자인양 코스프레하며 요란하게 소리쳤다.
당황한 표정으로 불을 끄는 연기 또한 당연히 곁들어졌다.
이렇게 침투부대가 소란을 벌이고 토머스가 어둠을 가리켰다.
“어, 어? 어디··· 어디로 도망갔어!”
“저쪽이다. 무기고 거의 없었으니 빨리 가면 큰 공을 세울 거야.”
“오~ 그래? 가자! 서둘러라.”
500명가량이 흉흉한 표정으로 어둠 속으로 달려 나갔다.
나머지 500명은 불을 끄기 위해 우물물을 길어 불타는 게르에 끼얹었다.
그들은 화제를 알리고 지금은 열심히 불을 끄는 팰리스 일행을 전혀 의심하지 못했다.
‘이제 그만 퇴출하자.’
팰리스는 턱짓으로 신호하곤 슬금슬금 불타는 게르에서 멀어졌다. 그리곤 미리 준비한 말에 올라 일제히 어둠속으로 도망갔다.
“마, 맙소사! 보르츠가···”
화재를 모두 진압한 은드르 부족의 밍간, 갈색추억. 엄청난 참사에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앞서 말했듯이 보르츠는 육류를 고밀도로 건조하고 압축하여 방광에 보관했던 전투식량이었다.
이것들이 화재로 불타거나 불을 끄는 와중에 물에 흠뻑 젖어버렸다.
‘뻥, 뻐뻥~ 뻥! 뻥!···’
물을 만난 보르츠는 당연히 본래의 크기로 부풀어 올라 방광을 터뜨리더니 급기야는 게르까지 터뜨려 버렸다.
이젠 화재가 아닌 물에 젖은 식량이 부패할 것을 걱정해야할 상황이 되었다.
북부군을 한참 공략중인 대칸의 군대에게 병참에서 메울 수 없는 구멍이 뚫려버린 순간이었다.
참고로, 침투부대는 고작 10명이었고 해가 뜰 때까지 본대와 합류하지 못하는 특수한 사정이 있었다.
만약 갈색추억과 부하들이 곧장 팰리스 일행을 추격했다면 크게 위험해졌을 것이다.
실제로 그 시간 팰리스는 현명한 바람을 길잡이 삼아 최대한 빠른 속도로 보급기지에서 멀어지고 있었다.
팰리스와 침투부대에게 행운이었던 갈색추억이 나름 정세파악이 빠른 지휘관이었다는 점이다.
‘운 좋게도 이곳의 전사들은 모두 우리 은드르의 전사들이다. 대칸이 알면 나와 중간 간부들을 처형하고 나머지는 노예로 삼겠지?’
그렇잖아도 은드르는 기동타격대로 인해 괴멸적인 피해를 입었다.
자신을 비롯한 간부들이 죽고 전사들이 노예가 된다면 미래가 너무도 명확했다.
자위할 전사가 없어 은드르는 필시 멸망할 것이다.
아니, 전사를 잃은 가족들이 다른 부족의 노예가 될 것이다.
동족개념이 약한 바바리안의 가장 큰 폐해였다.
“안 되겠다. 부족이 살길을 찾아야한다.”
“살길이라면··· 밍간! 설마 도망가자는 뜻입니까?”
“그렇다, 부관.”
“안 됩니다. 대칸이 알면 우리 은드르 부족은 필시··· 저는 명예롭게 죽겠습니다.”
“이봐~ 내가 구차한 목숨 때문에 이러는 것 같나?”
“···”
‘그럼, 아닙니까?’라는 뜻이 부관의 얼굴에 그대로 드러났다.
“그래서 너는 평생을 부관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야. 나이도 적고 경험도 일천한 내가 왜 너 대신 밍간인 줄 아나?”
“네? 갑자기 무슨···”
“나이를 밑구멍으로 처먹었나? 생각해봐. 나와 너 그리고 간부들까지 처형당하면 부족은 어떻게 될 것인지를···”
“부족 말입니까? 부족에 무슨 문제가··· 아차~”
그제야 부관도 은드르가 처한 상황을 제대로 직시했다.
“은드르는 이제 멸망을 피할 수가 없다. 이래저래 죽을 바에는 부족전체가 살아날 수에 운명을 걸어봐야 한다. 그렇지 않나?”
“밍간의 말이 맞소. 우리가 죽으면 가족들이 다른 부족의 노예가 될 것이오.”
“그렇습니다.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까지 그 꼴은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입니다.”
“부관! 이제야 돌아가는 상황을 이해하겠나?”
“죄송합니다, 밍간! 빨리 서둘러야겠습니다.”
“좋다! 빨리 필요한 것을 챙기고 부족으로···”
생각해보니 그렇게 하다간 대칸에게 추격당할 것만 같았다. 촌각을 아껴야 한다.
“아니다! 전령을 먼저 보내야겠다.”
마음이 급해진 갈색추억. 대칸의 군대에 차출된 전사들과 부족의 피난처에 급히 전령을 보냈다.
은밀하게 탈출하여 모처에서 합류, 초원을 떠나자는 뜻이었다.
그 사이 500 전사들이 이곳의 남은 물자를 급히 챙겨 떠날 채비를 모두 마쳤다.
출발하기에 앞서 갈색추억이 짧게 연설했다.
“이제부터 우린 초원의 아들이 아니다. 우린··· 제국으로 내려간다, 알았나?”
“네, 밍간!”
“알겠습니다, 밍간!”
북부초원에서 은드르 부족이 갑자기 사라진 순간이자 대칸의 군대가 본격적으로 무너지는 시발점이었다.
그리고 타이판 제국민들이 이를 박박 갈아대는 은드르 마적단이 시작된 첫날이었다.
각설하고, 은드르의 갈색추억이 막 보급기지를 떠날 때였다.
그제야 보급기지에 도착한 500명이 있었으니 그들은 토머스의 거짓말에 속한 한동안 어둠속을 헤맸던 제야부족의 전사들이었다.
제야 부족에게 천만다행이었던 건 그들 중에 지휘관이자 결정권자인 밍간, 싱거운 피바람이 그곳에 함께 있었다는 점이다.
피바람은 엉망으로 변한 보급기지와 급히 보급기지를 빠져나가는 은드르 부족의 전사들을 통해 현재의 상태가 매우 심각하다고 판단했다.
‘처형을 피하고 부족의 생존을 위해 도망가려는 것이겠지? 그렇지만 네 놈 때문에 우리가 죽을 판이다.’
‘으드득~’
“젠장! 우리가 모든 죄를 뒤집어 쓸 수는 없겠지. 은드르 놈들이 그랬다면 우리도 똑같이 행동한다.”
피바람도 갈색추억과 비슷한 결정을 내리고 신속하게 조치를 취했다.
여담이지만 제야부족 또한 타이판 제국이 이를 가는 마적단으로 성장하게 된다.
그리고 이 모든 단초를 팰리스가 제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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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전쟁의 끝을 향하여-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