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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기동타격대
“지금! 지금이다. 지금 즉시, 발사하라!”
‘뻐어엉~’
‘뻐, 뻐어어, 뻐버버버벙~’
팰리스가 자신과 레인저의 생명을 판돈으로 도박을 벌이는 그때, 자근애기는 샤먼의 사체 3구를 수레에 싣고 테라칸으로 운구하고 있었다.
“자근애기야~ 자꾸 왜 미적거리지?”
주먹이 이동속도가 늦다며 이전부터 자꾸 불퉁거렸다.
그도 그럴 것이 자근애기가 화장실이 급하다, 전사들의 운수가 좋지 않아 그늘에서 쉬고 가야 한다는 둥의 온갖 핑계로 시신운구를 지체시켰기 때문이다.
“시신을 빨리 전달하고 다시 대칸의 부름에 응답해야 해. 이렇게 시간을 끌다간 싸움이 끝날지도 몰라. 그러니 자근애기야, 서둘러서 임무···”
“잠깐! 주먹 오빠 아니, 밍간(천인대장)! 지금의 난, 자근애기가 아니에요. 퉁구스의 샤먼 자격이에요.”
예전과 달리 상당히 차가운 반응이었다.
의식을 잃고 깨어난 직후부터 자근애기의 분위기가 이처럼 묘하게 차가워졌다.
“어? 어····”
“퉁구스 부족장을 대리하는 자이자 주먹 밍간! 본 샤먼에 대한 호칭을 주의해 주세요.”
“미, 미안··· 험험~ 알겠소이다. 샤먼.”
“밍간도 알다시피 싸움은 족장의 몫이에요. 하지만 통구스가 가야할 길은 예로부터 샤먼이 제시해 왔어요.”
그러니 자신의 결정에 대해 함부로 왈가왈부하지 마라.
바바리안은 전통적으로 외부와의 분쟁은 전사가 담당했지만 대외정책과 주요 의사결정은 샤먼의 입김이 크게 작용해왔다.
“하지만 샤먼. 지금은 전쟁의 시간이오.”
전시라는 특수한 상황이니 족장을 대리한 자신이 전사들을 통제하겠다는 뜻이었다. 자근애기의 반박도 만만치 않았다.
“전쟁의 시간이지만 퉁구스는 계속 살아가야 하네요. 샤먼의 지혜는 전쟁의 시간에 더욱 빛을 발하네요.”
“샤먼의 지혜를 무시할 의사는 전혀 없소. 다만, 퉁구스가 계속 살기 위해서는 전쟁의 시간에 충실해야 한단 말이오.”
주먹의 주장대로 대칸이 전쟁의 뿔나팔을 불어 초원에 총동원령을 내렸다.
대칸의 의지에 반한다면 퉁구스는 더 이상 초원에서 살아갈 수가 없다.
“밍간, 내 눈을 똑바로 보세요.”
“으, 응?”
“방금 퉁구스가 계속 살길 원한다고 말했나요?”
자근애기의 말에 주먹이 속으로 무척 놀랐다.
예로부터 신통한 샤먼은 사람의 마음속을 꿰뚫어본다고 전해진다.
‘서, 설마··· 진정한 샤먼으로 각성한 것인가?’
“그, 그렇소.”
“····”
자근애기가 잠시간 말없이 주먹의 눈동자를 노려봤다.
주먹뿐만이 아닌 모든 전사들도 잔뜩 긴장한 채 자근애기의 입을 주시했다.
‘피식~’
“····그렇다고 믿어주겠어요.”
“사, 사실이란 말이오.”
“아, 네에~ 그렇겠죠. 아무튼, 텡그리의 의지가 나에게 말하네요. '기다려라!' 이렇게요.”
“기다···려라? 무엇을 기다리라는 말이오?”
“그건 바로····”
자근애기가 잠시 말을 늘이자 전사들이 더욱 긴장했다.
“구원자! 퉁구스를 구원해줄 구원자를 기다려라. 아니, 그를 도와 퉁구스를 다시 부흥시켜라! 그렇게 본 샤먼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네요.”
텡그리의 명확한 의지가 아닌 그런 느낌이란 뜻이었다.
“부···흥? 샤먼! 방금 부흥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퉁구스가 다시 부흥한단 말이오?”
자근애기의 말에 전사들이 흥분하기 시작했다.
“그러네요. 그래야만 퉁구스가 살 것이고 구원자에게 반한다면 퉁구스는 조만간 소멸할 것이라는 느낌이네요.”
“소멸? 도저히 믿을 수가 없소.”
아이러니하게도 테라칸으로의 흡수 즉, 소멸을 바랐던 주먹이 고개를 흔들었다.
‘피식~’
“밍간이 할 소리는 아니라고 생각하네요. 아닌가요?”
‘흠칫~’
“···”
‘뭐야! 어떻게 알았지? 정말로 샤먼으로 각성한 것인가?’
“일곱 날! 7일이네요. 퉁구스의 멸망과 부흥이 결정되는 시간··· 그동안 전사 여러분은 전적으로 본 샤먼의 뜻에 따라주세요.”
“···”
워낙 뜬금없는 말이라 전사들이 눈치만 보며 대답을 주저했다.
“더도 덜도 말고 딱 일곱 날. 전사 여러분~ 그래줄 수 있나요?”
“뭐, 그렇다면야···”
이렇게 처음엔 미심쩍은 대답이었다.
그러나 이것을 기화로 봇물이 터졌다. 곧 하나둘씩 목소리를 키워갔다.
“샤먼께서 우리 퉁구스가 부흥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당연히 샤먼의 뜻에 따라야 합니다.”
“맞소. 자칫 잘못하면 소멸할 수도 있다고 예언했소.”
“샤먼의 뜻에 따르자!”
“샤먼의 뜻에 따라 퉁구스를 부흥시키자!”
이름 없는 전사들이 각기 제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객관적으로 보면 너무도 허무맹랑했고 ‘도박’같기도 했다.
그러나 바바리안 사회에서 샤먼은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그들은 자근애기의 뜻에 따라 행동하기로 결정했다. 퉁구스의 생존과 부흥을 바라는 마음으로···
* * *
‘뻐, 뻐어어, 뻐버버버벙~’
23발의 총성!
대회전을 실질적으로 마무리하는 효시나 다름없었다.
북부군 보병을 효율적으로 학살하도록 지휘하던 18명의 중간 지휘관. 일제히 부르르 몸을 떨다가 낙마했다.
그것만 해도 놀라만한 일인데 엄청난 총성에 놀라고 공포에 질린 말들이 마구 날뛰었다.
기마돌격은 참으로 무서운 파괴력을 선보이지만 말은 본시 몹시도 겁이 많은 동물이었다.
군마로 쓰기 위해 특별한 훈련으로 단련시킨다지만 천둥소리보다 더한 굉음까진 대비하지 못했다.
게다가 천둥은 본래 번개와 함께 원초적인 공포를 불러오는 자연현상이었다.
[도박이 성공했다! 앗싸아~]
팰리스와 레인저가 속으로 쾌재를 부를 때, 바바리안의 기마들이 마구 날뛰었다.
‘이힝~ 이히히힝~ 이히히~’
‘이힝~ 빠빡! 퍽~ 이히히힝~’
“마, 말들이 미쳤다. 빨리 진정시켜. 으헉~”
“으아악~ 젠장! 내말 들어, 이 새꺄~”
“떠, 떨어진다. 으아악~”
바바리안들은 앞발을 쳐들고 난리치는 애마 때문에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기수가 양손과 양 발로 직접 통제하는 기마들이 이 모양인데 기수가 없는 예비마들은 어떻겠는가!
기수의 노력으로 겨우 안정을 찾은 기마들까지 공격하여 다시 콧김이 거세지도록 만들었다.
‘이히힝~ 이힝, 이힝~ 이히히힝~’
“으아악~ 어떻게 좀··· 누가 좀 어떻게 해봐!”
“이익~ 그렇다면 네 놈이 먼저 그 어떻게 좀 해 보던가.”
“처, 천벌이다. 텡그리의 천벌···”
“지혜님에게 내렸던 천벌이다. 텡그리께서 저주를 내리신다.”
여기에 유언비어까지 나돌아 혼란이 더욱 커져갔다.
핀치에 몰렸던 북부군에게 잠시 살아날 길이 열린 순간이었다.
기회는 놓치지 않고 꽉 붙들어야 그 가치가 살아난다.
팰리스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사방을 둘러보는 크리스티앙을 향해 목에 마나를 두르고 고함쳤다.
“사령관 각하! 지금입니다~ 진채 안으로 빨리 후퇴해야 합니다.”
크리스티앙 뿐만 아니라 모두가 들을 수 있을 정도로 큰 목소리였다.
모든 병사들의 머리가 일제히 크리스티앙에게로 향했다.
마침, 사령관도 이것이 기회라고 생각했는지 깃발과 북소리로 전면적인 후퇴를 하달했다.
참고로, 제 할일은 모두 마친 팰리스는 레인저의 소총을 수거하곤 재빨리 진채를 향해 꽁지 빠지게 도주했다.
‘펄럭, 펄럭~’
‘둥! 두둥, 두둥~ 둥! 둥! 두두둥···’
“와아~ 후퇴하라.”
“질서! 살려면 질서부터 지키란 말이다.”
중간 지휘관이 고래고래 질서를 지키라고 소리쳤지만 정작 그조차도 질서를 지킬 것이라곤 기대하지 않았다.
북부군인 전면적인 패주양상으로 진채를 향해 무작정 달렸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정예답게 무기를 내던지고 도망가진 않았다는 점이다.
전투중의 가장 큰 피해가 발생하는 때는 이런 전면적인 후퇴 상황에서 발생한다.
만일, 바바리안이 평소처럼 공격했다면 아마도 북부군의 2/3 이상을 몰살시켰을 것이다.
허나, 바바리안의 주력은 기마병이었다.
날뛰는 예비마를 제때에 통제하지 못해 결국은 천금 같은 기회를 헛되이 날려버렸다.
‘콰아앙~’
분노한 대칸이 의자의 난간을 주먹으로 내리쳐 박살냈다.
“이, 이럴 수가··· 도대체 이것이 어떻게 된 일이냐!”
“저, 저도 잘···”
“뼈다귀~ 저것이냐? 지혜를 죽였다는 그 무기란 것이!”
샤먼의 힘과 주술의 신비를 가장 많이 알고 있었지만 그 때문에 오히려 미신을 거의 믿지 않았던 대칸. 화약무기의 본질을 정확하게 꿰뚫었다.
당연히 천벌을 믿지 않았다.
“그, 그런 것 같습니다. 아마도···”
“저것이 도대체 무엇인지 꼭 밝혀내라.”
“넵, 대칸! 알 수 없는 무기에 다수가 희생당했습니다. 일단은 사체의 상태부터 조사하여 의문의 무기가 무엇인지를 알아내겠습니다.”
“그건 자네가 알아서 하고···”
대칸은 잠시 말을 끊고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놈들을 전멸시킬 기회였는데 너무도 아쉽군.”
“··· 죄송합니다, 대칸! 저의 전략이 다소 미흡했습니다.”
초원의 지배자는 절대로 실수하지 않는 법. 그래서 뼈다귀가 대신 죄를 청했다. 뭐, 형식적인 대화라고 여겨도 무방했다.
“아니다. 자네는 잘못이 하나도 없다.”
“···”
“그나저나 이제부턴··· 어떡한다?”
대칸은 멀찍이 떨어진 전장을 둘러보며 말했다.
북구군은 모두 진채 안으로 들어가 버렸고 바바리안 경기병이 아직도 날뛰는 예비마를 단속하고 있었다.
실질적으로 오늘의 대회전이 끝난 셈이다.
‘피식~’
“이젠 놈들이 싸워주지 않겠지?”
“아마도 그럴 것입니다. 놈들의 주력은 역시 기사와 중장기병입니다. 그런데 이번 싸움에 기마들의 다수가 죽고 상해 본래의 위력을 발휘하지 못할 것입니다. 게다가 만족스럽지 않았지만 병사들이 많이 죽고 다쳤습니다.”
“그렇지. 아마도 진채 속에 숨어 고슴도치처럼 가시를 세울 게야. 수적으로 너무 불리해졌으니. 문제는 공성전인데···”
대칸은 아쉬움에 뒷말을 삼켰다. 바바리안은 주로 경기병, 공성전이 익숙지 않았다.
석성이나 토성도 아닌 허약한 목책뿐이다.
그러나 바바리안은 투석기 같은 공성무기를 보유하지 못했다.
보병전술도 다소 부족해 억지로 목책을 공격하다보면 각궁으로 인해 상당한 희생이 발생할 것이다.
그래서 뼈다귀가 적절한 대책을 제시했다.
“대칸! 그냥 포위해서 말려죽이면 그만입니다.”
“포위? 하긴··· 그편이 제일 안전하고 확실한 전략이겠군.”
추가적인 물자유입이 힘들어졌으니 아마도 오래 견디지 못하고 자멸할 것이다.
물론, 포위전술에는 반드시 수반되어야할 전제조건이 필요했다.
방어측보다 물자가 부족하면 도리어 바바리안이 곤란해진다.
"뼈다귀! 물자들은 충분하겠지?“
“대칸께서 초원에 전쟁을 선포했습니다. 당연히 초원의 모든 부족들이 군수물자와 보르츠, 곡물가루를 충분히 가져와 6개월 이상을 버틸 수 있습니다.”
“호오~ 그래? 그렇다면 안심이군.”
대칸은 고개를 끄덕이곤 북부군 진채를 포위하라고 명령했다.
바바리안 전사들이 500m 거리를 두고 포위···
보다는 일정한 간격으로 게르를 세우는 것으로 마침내 대회전의 막이 내렸다.
그 시간, 사지에서 돌아온 크리스티앙은 한동안 집무실에 틀어박혀 해결책을 골몰했다.
“어떡하지? 놈들이 우릴 포위했는데···”
실상은 진채를 둘러 듬성듬성 게르를 세운 것에 불과했지만 사실상 포위나 다름없었다.
초원이 너무 넓었다.
포위망(?)을 뚫고 도망갈 수는 있겠지만 결국에는 기동력에서 앞선 바바리안에게 따라잡혀 하나둘씩 사냥당할 것이다.
“물자부족 때문에 마냥 버틸 수도 없고··· 다시 한 번 대회전을 벌일까?”
부상자까지 포함해서 아직도 7만 병사를 보유했다.
대회전을 벌일만한 군세였다.
그러나 7만이라도 세부적으로 따져보면 손색이 너무 컸다.
가장 자신하는 기사와 중장기병 전력까지 반불구가 됐었지 않았던가. 망실한 병장기도 문제였다.
“그건 그렇다 치고 폐하께는 또 어떻게 변명해야 할지··· 하아~”
사령관의 한숨소리가 길어졌다.
보고문제는 급하지 않아 일단은 무시하기로 결정했다. 그러자 전세를 뒤집어 북부군을 구원했던 팰리스가 떠올랐다.
자신과 북부군을 구원했던 팰리스. 굉음을 만들어내는 화승총(?)으로 엄청난 혼란을 만들어냈다.
‘으드득~’
“고얀 놈! 그런 무기를 보유했다면 처음부터 우릴 도울 것이지, 그래! 이번 패배는 배달남작이 나서지 않아서였다!”
응? 갑자기 이 무슨 황당한 주장이란 말인가!
크리스티앙의 머릿속은 이제 팰리스에게 함부로 나서지 말라고 경고했던 기억이 싹 사라져버렸다.
어떻게 해서든 자신의 실책을 가릴 변명거리가 필요했다.
“그래! 배달 남작 때문에 싸움에서 졌다. 애송이 때문에 우리가 졌단 말이다.”
크리스티앙은 궤변으로 자신을 정당화시켰다.
물론,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팰리스가 아닌 자신 때문에 패배했음을 잘 알고 있었고 그래서 공론화할 생각으로 이어지진 못했다.
“놈을 가만히 둘 수는 없다. 그래, 정의! 그리고 대의를 위해서··· 오스카!”
사령관의 호출에 오스카가 후다닥 들어왔다.
“지금 당장 배달 남작을 불러와라.”
“배달 남작 말입니까? 전공 문제는 나중에···”
“뭐, 전공? 그 자 때문에 우리 북부군이 패배했단 말이다. 그런데 그런 자에게 어찌 전공을 운운한단 말이냐!”
“····”
오스카가 잠시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허나, 그는 크리스티앙와 오랫동안 손발을 맞춰왔던 인사였다.
“그, 그렇습니다. 배달 남작 때문에 우리 북부군이 패배했습니다. 진실을 모르는 병사들이 뭣 모르고 칭송하겠지만 그자가 적극적으로 나섰다면 우리가 패배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지?”
“넵, 사령관님! 아참~ 그러고 보니 이번에도 남작이 각하의 명령을 위반했군요.”
“맞아! 나는 분명 진채를 방어하라고 명령했다. 그런데도 명령을 위반하다니.”
겉으로는 이리 말했지만 자신들이 ‘개소리’를 지껄인다는 사실쯤은 알고 있었다.
실제로 명령위반이란 명목으로 팰리스를 처벌한다면 북부군 병사들부터가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다.
“건방진 애송이를 처벌해야하는데··· 함부로 처벌했다간 역풍만 맞을 것 같고···”
“그렇다면 각하! 제게 아주 좋은 수가 있습니다.”
“좋은 수?”
“그렇습니다. 배달 남작을 징치하려면 일단···”
음모의 밤! 오스카의 설명이 길어질수록 크리스티앙의 얼굴이 살아나며 입가에 음흉한 미소가 피어나기 시작했다.
* * *
31. 기동타격대-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