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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칸의 게르에서 발한 뿔나팔신호가 봉화처럼 꼬리를 잇다가 부근의 야쿠트 부족의 숙영지에 전달되었다.
‘뿌우우우우우~ 뿌뿡, 뿌우우우우~’
“응? 조, 조용해 봐!”
“저 신호는 설마··· 전쟁?”
“전쟁이다! 대칸께서 전쟁을 선포하셨다.”
“지금부터 전쟁을 준비한다. 빨리 가축들을 모으고, 건조식량을 준비해라.”
“그보다 먼저 주변에 소식을 빨리 전파해야지! 전쟁의 뿔나팔을 사방에 알리란 말이다.”
‘뿌우우우우우~ 뿌뿡, 뿌우우우우~’
아쿠트 부족에서 발한 뿔나팔 소리는 드넓은 평원을 지나 근방에서 양과 염소를 치는 타타르 부족에게도 전달되었다.
타타르 부족도 즉시 전쟁의 신호를 전파하며 이때부터 타타르는 전시체제로 돌입했다.
타타르 부족의 근처에서 주로 말을 기르던 우량카이 부족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들 또한 뿔나팔을 불어 전쟁소식을 주변에 알렸다.
그리고 마침내 북부초원 동북부를 관통하는 깊고 넓은 어머니의 강, 블랙드래곤강 부근에 지내고 있던 퉁구스 부족에게도 뿔나팔 신호가 전파되었다.
알다시피 통구스 부족은 최근 상당한 양의 전리품을 챙겨 나눠가졌다.
전쟁소식이 그리 반갑지가 않았지만 지배부족이자 대칸이 초원에 총동원령을 내렸다.
족장 억센 마빡이의 아들 주먹이 워낙 친 테라칸 성향이라 퉁구스도 자연스럽게 전쟁준비에 돌입했다.
“밍간(천인대장) 대칸의 독전사자가 언제 도착할지 모른다. 나도 족장으로써 준비하겠지만 너 또한 빨리 전쟁준비를 마쳐야 한다.”
유목민이 아무리 이동하는 삶이라지만 전쟁을 시작하려면 많은 준비가 필요했다.
곡도(曲刀)에 날을 세우고 소모품인 화살도 충분히 만들어놔야 한다.
전투식량인 보르츠와 볶은 곡물가루도 충분한 양을 미리 확보해놔야 한다.
아참, 보르츠(borcha, 이미지 참조)는 뼈를 발라낸 고기를 길게 잘라 3~4개월을 바짝 말린 후에 가루로 빻아 만든 바바리안의 대표적인 건조식량을 말한다.
주로 전투나 비상시의 식량 또는 겨울에 먹을 요량으로 만든다.
더운 물에 조금만 풀어 마시면 한 끼의 식사로 거뜬한데, 소한마리분의 고기가 3~4kg까지 압축되어 소나 양, 염소 등의 방광에 넣어 보관 휴대한다.
현재 부족이 만들어놓은 보르츠는 모두 이번 전쟁에 가져갈 것이다.
그렇다면 남은 사람은?
아무리 전쟁이라도 산사람은 살아야 한다.
부족이 겨울을 나거나 비상식량으로 보유할 보르츠는 지금처럼 날이 좋을 때에 미리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전쟁준비와 함께 빨리 가축을 도축하고 말려야 한다.
“저도 빨리 전사들을 단속하겠습니다. 그런데 족장님, 이번에도 자근애기를 데려가야겠죠?”
물음보다는 그렇게 하겠다는 쪽에 더욱 무게가 실렸다.
“자근애기라··· 그보다 밍간 아니, 내 아들 주먹아~ 꼭 그래야 하겠니?”
“···”
상당한 의미들이 농축된 물음으로 억센 마빡이는 아들의 마음을 얼핏 눈치 채고 있었다.
“800년 넘게 이어온 퉁구스다. 그리고 언젠가는 네가 이어받아 봉사해야할 부족이다.”
“그렇지요. 그렇지만 노예부족이지요. 테라칸이란 울타리가 없었다면 예전에 사라졌을 지도 모릅니다.”
‘피식~’
“정말 그랬을까? 800년을 이어오면서 오늘 같은 고난이 한 번도 없었다고 생각하나?”
“글쎄요. 그때는 그때였고 지금은 지금입니다. 저는 부족 모두의 행복을 위해선 퉁구스가 테라칸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마빡이가 주먹의 눈동자를 빤히 바라봤다.
맘속을 꿰뚫어보는 것 같은 눈빛. 주먹은 순간적으로 철렁했다.
남을 완벽하게 속이려면 자신까지도 속여야한다.
“아버지! 부족보다는 사람이 먼접니다. 저는 결심했습니다. 평범한 부족민의 행복을 위해서는 퉁구스가 반드시 테라칸이 되어야만 합니다.”
“····진심이냐?”
“네! 진심입니다.”
“그래··· 알았다, 밍간!”
“감사합니다, 아버지. 그럼 주술사는 어떻게···”
‘후우우우우~’
대답에 앞서 길고 긴 한숨소리가 먼저였다.
“샤먼께서는 아직도 제대로 몸을 추스르지 못했다. 이번에도 자근애기와 함께 하는 것으로 결정하고···”
마빡이가 말끝을 또 잠시 늘였다. 왠지 모르게 슬픈 얼굴이었다.
“아들아~ 이제 그만 나가 보거라.”
“예, 족장님.”
군례를 마치고 족장의 게르를 나가는 주먹. 이로써 퉁구스 부족 또한 전시체재에 돌입했다.
* * *
제국 북부군의 진채.
‘뿌우우우우우~ 뿌뿡, 뿌우우우우~’
전쟁을 선포하는 뿔나팔 신호는 꼬리에 꼬리를 이어가다가 목책과 (물 없는)해자로 보호되는 북부군의 거대한 진채에도 전달되었다.
북구군 부사령관이자 안방마님으로 통하는 오스카 이고르 자작. 온갖 수단을 이용하여 바바리안의 뿔나팔 신호를 알아냈다.
오스카는 사령관 크리스티앙 발터 백작에게 보고하기 위해 급히 석재 건물로 향했다.
그런데 잠깐!
바바리안의 옛 근거지에 웬 석재 건물이냐고?
아무리 야전이고 영지가 없는 관료, 무장이라지만 사령관은 황제가 하사한 작위를 가졌다.
고위귀족답게 그는 게르나 통나무집이 아닌 (병사들이 힘들게)석재로 쌓은 건물에서 생활했다.
“사령관님 기뻐하십시오. 놈들의 뿔나팔 신호를 알아냈습니다.”
뿔나팔 신호를 알아내서 기뻐하라는 뜻인지 내용 때문인지 다소 헷갈렸다.
“응? 무슨 뜻이지?”
“본격적인 전쟁이 시작됐습니다.”
“?···”
‘허허~ 오스카. 그렇다면 지금은 전쟁이 아니었다는 소리냐?’
다소 심드렁한 크리스티앙이 은백색 팔찌를 슬쩍 두드리며 말없이 자세한 설명을 재촉했다.
참고로, 팰리스가 가진 것에 손색 있지만 사령관 또한 무한주머니를 가졌다.
무한주머니는 보급 측면에서 상당한 도움이 된다.
그래서 사단장이나 기사단장, 마법단장 급의 귀족들이 심심찮게 보유했다.
“뿔나팔 신호를 알아봤는데, 놈들이 드디어 싸우겠답니다. 뿔나팔소리는 공식적으로 전쟁을 선포한다는 신호였습니다.”
“호오~ 정말인가? 그렇다면 이제야 전쟁을 끝낼 수 있겠군.”
한쪽에서는 전쟁을 선포했지만 한쪽에서는 전쟁을 끝마치겠다고 벼렸다.
그도 그럴 것이 발터 사령관은 황제가 맡긴 10만의 정예 병력에다가 파이온산 각궁을 보유했다.
그런 막강한 전력으로 바바리안들을 ‘청소’하려고 했지만 상대가 좀처럼 싸워주질 않았다.
북부군이 나타났다하면 죄다 도망가기에 바빴다.
그래서 전투다운 전투도 없이 지금껏 귀중한 군수물자만 허비하고 있었다.
사령관이라면 전투뿐만 아니라 제국의 정치나 경제문제까지도 고려해야 한다.
천문학적으로 늘어난 전쟁비용으로 인해 제국의 허리가 휘다 못해 부러질 지경이라고 한다.
그래서 보급을 제국군이 아닌 봉건영주들에게 떠맡기고 있지 않던가.
이런 상황에 고맙게도 바바리안이 공식적으로 싸우겠다고 선포했다.
“이번이 기회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전쟁을 끝낼 기회를 완전히 잃게 된다.”
“그렇습니다. 이번 기회에 지루하고 소모적인 원정을 끝내야 합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지 잘 알고 있겠지?”
“네, 지금 즉시 황제폐하께 이 사실을 보고하고 식량과 무기를 비롯한 물자현황을 다시 점검하며 병사들 또한 단속하겠습니다. 아울러 마법사와 기사단에도 협조를 구해놓겠습니다. 아참, 오르도스 영지와 보급부대를 잊었군요. 그곳에도 이 사실을 전파하여 전면전에 대비하게 하겠습니다.”
“후후후~ 역시 자넨 믿음직한 부관이야.”
“승진한지가 언젠데 아직도 부관이라뇨. 저도 이젠 어엿한 부사령관입니다.”
“하하하~ 그랬던가? 흰소리는 이쯤 그만하고, 이고르 자작. 자넨 방금 언급한 사안들을 그대로 집행···”
이대로 대화를 마치려던 발터백작. 갑자기 찾아든 궁금증에 뒷말을 얼버무렸다.
“잠깐, 그런데 오스카. 갑자기 놈들이 왜 그랬을까?”
“네? 무엇을 말입니까?”
“바바리안 놈들 말이다. 놈들은 지금처럼 시간을 끄는 편이 훨씬 유리하잖아. 피해도 적을 테고.”
“생각해보니 정말 그렇군요.”
“그렇지? 그런데도 우리와 싸우겠다고 선포했어. 그렇다면 무슨 변수가 발생했다는 뜻이겠지. 아니, 반드시 그 이유가 있을 것이다.”
“간자(間者, 스파이)나 협력자를 통해 생각을 바꾼 사정을 알아보겠습니다.”
“좋다. 가능한 빨리 알아보도록.”
“넵, 사령관 각하!”
사령부를 나온 오스카는 부관에게 정보원을 풀어 전략을 변경한 이유를 알아내라고 지시하곤 전면전 소식을 황실에 보고했다.
그리곤 만인대를 지휘하는 사단장 10명과 마법단장, 기사단장을 호출하여 현재의 상황을 전파했다.
아울러 오르도스와 보급부대에 전면전이 벌어질 것이란 소식을 전파하며 주의를 당부했다.
전면전!
아무리 북부군이 준비된 정예라지만 전면전을 앞뒀다면 여러모로 평소의 행동과 달라져야 한다.
북부군은 각 단위부대별로 대회전을 준비하며 긴장의 끈을 조금씩 죄여갔다.
팰리스군은 이런 어수선한 분위기에 봉건영주들이 마련한 보급품을 잔뜩 싣고 북부군 진채에 도착했다.
우연이라면 우연이겠지만, 오스카는 팰리스의 도착과 때를 같이해 간자를 통하여 대칸이 전면전을 선포한 이유를 알아냈다.
그는 즉시 이 사실을 사령관 크리스티앙에게 보고했다.
“사령관 각하! 유력한 차기 추장이자 현 추장의 아들이 그만 죽었답니다. 그래서 이에 분노한 추장이 전면전을 선포했다고 합니다.”
참고로, 바바리안들은 ‘위대한 첫발’을 초원의 지배자란 의미를 지닌 ‘대칸’으로 불렀지만 제국에서는 미개한 부족의 우두머리라는 뜻의 ‘추장’으로 낮춰 불렀다.
‘피식~’
“아들이 죽었다고 전면전을 선포했단 말인가? 그것도 자신들이 훨씬 유리한 상황에서?”
“그러게 말입니다. 그래서 놈들이 바바리안입니다. 아무래도 우리가 추장을 너무 과대평가한 것 같습니다.”
“하하하~ 어이가 없어 자꾸만 실없이 웃음이 나오는군. 하하핫~”
“각하께서도 잘 아시겠지만 그래도 방심하시면 안 됩니다.”
“그거야 당연하지. 오우거가 고블린을 사냥할 때도 최선을 다한다고 하잖나?”
“그렇지요. 그런데 저도 모르게 김이 새는 건 어쩔 수가 없군요”
“이런, 이런~ 나보다 자네가 더욱 문제였구먼.”
“하하하~ 시정하겠습니다, 각하!”
“좋아. 그런데 오스카. 도대체 아들이라는 녀석은 도대체 누구지? 어떻게 죽었기에 추장이 전면전을 선포했느냔 말이야. 도무지 이해가 안 가는구먼.”
“간자의 말에 따르면 바바리안중에서 제법 똑똑했다고 하는데, 우리의 보급부대를 공격하러 갔다가 천벌을 받았다고 합니다.”
“으잉? 천벌이라고?”
‘뜬금없이 무슨···’
사령관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패잔병을 만나 봤다는데 그자의 말에 따르면 천둥소리가 여러 번 울리고 나서 갑자기 주술사와 추장 아들이 피를 흘리며 죽었답니다.”
발터백작은 미신 같은 ‘헛소리’보다는 ‘패잔병’이란 단어에 집중했다.
“패잔병이라면··· 그렇다면 전투 중에 죽었다는 소리가 아닌가!”
“어떻게 아셨습니까? 역시 사령관 각하께서는 너무도 예리하십니다.”
“험험~ 내가 좀 대단하지.”
오랫동안 상관과 부관으로 지냈던 사이라 그런지, 가끔씩 농을 주고받았다.
잠시간 미소를 지었던 오스카가 다시 굳을 얼굴로 보고를 이어갔다.
“오르도스에서 이곳으로 향하던 보급부대를 공격하다가 오히려 당했다고 합니다.”
“응? 보급···부대? 내가 생각하는 그 보급부대?”
“네, 영주들이 보낸 그 허약한 보급부댑니다.”
“정말인가? 보급부대가 정말로 약탈부대를 물리쳤단 말인가?”
발터백작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작금의 곤란함은 보급부대가 자꾸 약탈당했기 때문이다.
봉건영주들이 보급부대를 담당하고부터 더욱 피해가 막심해졌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그자들은 도대체 어느 영지의 군사들이지? 혹시 추장의 아들을 죽이는 데까진 성공하곤 안타깝게 모두 전멸··· 아, 아니지. 패잔병이라고 말했으니 분명 물리쳤단 말이겠군? 아닌가?”
“맞습니다, 각하. 보급부대가 약탈부대를 격퇴했다고 합니다.”
“오오~ 그래? 그렇다면 도대체 어느 소속이야?”
“사령관 각하. 간자도 보급부대의 소속까진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오스카가 뒷말을 흐리자 안달이 난 크리스티앙이 대답을 재촉했다.
“그, 그런데?”
“시간과 거리를 따져볼 때 유력한 부대 하나가 짐작됩니다. 마침 오늘 도착한 보급부대가 바로 그곳입니다.”
“그러니까 그 영지가 도대체 어디냐고! 대관절 어떤 대단한 영지길래 그런 자들을 키워냈느냔 말이야.”
“보고라인을 통한 바에 따르면 배달의 영주 본인이 직접 지휘하는 부대라고 합니다.”
“배···달? 거긴 또 어디야?”
“그건 저도 잘··· 이제 막 도착한지라 저도 자세한 사항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래? 그렇다면 빨리 조사하게.”
“알겠습니다, 사령관님. 지금 당장···”
“잠깐! 아니다. 그럴 것이 아니라 아예 배달영주를 저녁 만찬에 초대하게. 도대체 어떤 영주이기에 약탈부대를 격퇴했는지, 그래서 추장이 전면전을 선포하게 했는지 직접 들어봐야겠어.”
“네, 그럼 당장 배달의 영주란 자를 초대하겠습니다.”
사령관과 일별한 오스카는 팰리스는 자신이 직접 초청하기 위해 걸음을 재촉했다.
팰리스 파이온 배달!
그가 원치 않았음에도 자꾸만 북부의 전쟁에 휘말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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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전면전-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