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하면 잘살거 같지-88화 (88/261)

-------------- 88/261 --------------

“영주님! 전공을 세우는 것까지는 바라지 않습니다. 그저 무사히 귀환해 주십시오.”

드레이크 남작이 전장으로 떠나는 팰리스를 전송하며 말했다.

그런데 드레이크처럼 강력한 패, 5서클 전투마법사가 왜 팰리스군에 함께하지 않았을까?

“제가 참전하면 큰 도움이 되었을 텐데··· 정말 아쉽습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당연히 그렇겠지요. 하지만 드레이크님도 안토니아 경도 따로 할 일이 있습니다. 배달영지를 접수하고 관리해야죠. 우리가 무사히 돌아올 때까지···”

“아무리 그래도 목숨이 달린 전장입니다.”

“아니오. 오늘의 전쟁도 중요하지만 우리에겐 내일이 더욱 중요합니다.”

‘설마 죽기야하겠어? 6.25때도 살아 돌아왔던 몸인데.’

팰리스의 결정처럼 오늘보다 내일이 훨씬 중요했다.

풍요로운 내일을 위해서는 오늘 피와 땀을 흘려야 한다.

참고로, 팰리스와 친구들이 전장으로 출발하듯 드레이크와 남은 이들도 (배달에 정착하기로 결정한)병사 100명과 함께 조만간 배달 영지를 인수, 관리하기 위해 아나톨리아를 떠나야 한다.

영주, 팰리스가 한동안 전장을 전전할 상황이라 배달영지는 사전에 계획한 사업을 시작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당분간은 (소규모)제철소와 작은 조선소를 지어 (용접이 아닌 리벳공법으로)철선을 만들고 도로와 항만을 건설하는 등의 SOC(사회간접자본)를 갖출 계획이었다.

팰리스는 여기에 필요한 자금으로 10만 골드를 드레이크에게 맡겨 경비로 충당하게 했다.

언뜻 듣기로는 엄청난 대공사를 벌이는 것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렇지는 않았다.

배달영지는 인구 5,000명밖에 안 되는 몹시 작은 규모이고 통행까지 힘들어 인력수급이 거의 불가능했다.

배달의 자체 인력으로 충당하는 관계로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대규모의 SOC가 아니었다.

각설하고, 지금은 배달 영지의 개발보다는 출전문제가 훨씬 중요했다.

“돌아올 때까지 배달 영지를 잘 부탁하겠소.”

“맡겨주십시오. 영주님이 도착하면 곧장 사업을 시작할 수 있도록 미리 준비해 놓겠습니다.”

“고맙소. 그럼···”

팰리스가 눈짓하자 토머스가 광장에 집결한 병사들에게 출발하라고 명령했다.

“전구~운! 수레에 타.”

“충!”

“와아~ 출전(出戰)이다.”

병사들이 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4마리의 말이 이끄는 전투수레에 올랐다.

전마에 탄 팰리스와 토머스, 피리온은 팰리스군의 선두를 이끌었다.

‘떠걱, 떠걱~’

팰리스군이 출전하기 위해 움직이자 주민들이 큰소리로 만세를 불렀다.

“와아~ 아나톨리아 만세!”

“와아~ 파이온 영지 만세!”

“와아~ 팰리스 배달 만세!”

마침내 전쟁터로 출발한다.

때가 때인지라 수레에 탄 병사들의 얼굴에 얼핏 불안감이 감돌았다. 그래서 팰리스가 토머스에게 눈치를 줬다.

“이번엔 또 뭔데요? 지금은 잘 못한 거 하나 없는 것 같은데···”

토머스는 모르겠다는 의미로 어께를 들어 으쓱거렸다.

“야, 바보야~ 영주님이 지금 군가를 부르라는 거잖아.”

“응? 아, 군가?”

“그래, 인마. 진짜 사나이나 멋진 영지병··· 아니지. 이젠 멋진 팰리스군인가? 아무튼 군가 그거, 안 그렇습니까?”

“어험, 어험~”

대답으로 충분했다.

“그렇다면야··· 흠흠~”

토머스는 잠시 목청을 가다듬다가 고함치듯 소리쳤다.

“전구~운! 이동 중에··· 군가 한다. 군가는! 머쮠, 팰리스군! 헛, 둘, 셋, 넷!”

"멋있는!"

병사들이 고함치듯 군가하자 토머스가 중간 중간에 추임새를 넣었다.

"머쉰느~은~"

"팰리스군!"

"팰리스구~운~"

"많고 많지만~"

"누가아~"

"바로 내가, 팰리스으~군! 멋진 팰리스군. 싸움에는 천하무적···"

악을 쓰듯 군가 부르는 병사들들에선 이젠 불안한 기운이 완전히 사라졌다.

병사들이 군가를 부르자 만세를 부르던 주민들도 따라 불렀다.

‘···사랑은 뜨겁게! 사랑은 뜨겁게! 바로 내가···’

마침내 마지막 짐수레까지 광장을 빠져나갔다.

짐수레의 후미는 전마에 오른 아르펜과 그가 지휘하는 레인저부대. 그들까지 광장을 떠나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그럼에도 군가는 한참동안이나 계속 반복되었다.

“멋있는! 팰리스군. 많고 많지만···”

“흐흑~ 총독님. 총독님이 영영 떠나신다니··· 정말 아쉽네요. 막심 형님, 안 그래요?”

그랬다. 팰리스는 이제 아나톨리아와 영영 이별해야 할 상황이었다.

팰리스 때문에 굶주림에서 벗어나 풍요로움을 만끽했던 테일러에겐 정말 아쉽고 안타까운 날이었다.

“바로 내가 팰리스군··· 어, 어? 그래, 인마. 그러니깐 그렇게 질질 짜지 말고 너도 목청껏 군가나 불러.”

“군가···요? 아니 왜요?”

“정말 몰라서 그러냐? 고마운 마음을 담아 가능한 크게 부르란 말이야. 그래야 총독님이 더욱 힘을 얻지 않겠어? 당연히 무사히 돌아오시겠지.”

“···”

“그리고 돌아와서 우릴 다시 찾으실 지도···”

테일러도 그렇지만 막심에게도 팰리스는 자신들의 삶을 구원한 구세주였다.

가만히 눈만 끔뻑이던 테일러가 갑자기 악을 쓰듯 군가를 따라 불렀다.

‘···사랑은 뜨겁게! 사랑은 뜨겁게····’

“바로 내가 팰리스군. 머쮠~ 팰리스군! 다시 한 번! 멋있는····”

군가를 다시 반복하는 테일러의 눈자위가 어느새 붉게 물들었다.

주책없이 눈물을 흘리다 못해 이젠 콧물까지 질질 흘러내렸다.

“많고 많지만. 바로 내가~ 팰리스군··· 팽~ 초, 총독님···”

“멋진 팰리··· 흐흑~”

테일러뿐만이 아니었다.

막심도 눈물을 흘리다가 어느새 흐느껴 울고 있었다.

흐느낌은 강력한 바이러스가 되어 광장 속으로 빠르게 전염되었다.

“싸움에는··· 흐흑~”

“사랑은 뜨겁··· 사랑··· 으흑~ 총독님이··· 떠났어··· 으흑~”

주민들에게 팰리스는 구세주였다.

그런 그가 이제 아나톨리아를 떠나갔다. 그것도 일이 꼬여 생사를 장담할 수 없는 전쟁터로 떠나갔다.

“으앙~ 총독님이 떠났어요. 으앙, 으아아앙~”

기어코 작은 아이가 목 놓아 울기 시작했다.

이것이 시작이었다.

“죽을지 모르는 전쟁터인데··· 어흑~”

“우리 총독님 불쌍해서 어떡해··· 으흑~ 흐흐흑~”

광장은 이제 우렁찬 군가소리 대신 흐느끼는 소리로 채워졌다.

자비롭고 훌륭한 지도자를 잃은 자들의 울음소리로···

흐느끼는 울음소리는 바람을 타고 멀리까지 퍼져나갔다.

* * *

팰리스가 막 광장을 벗어날 무렵이었다.

수레 1량에 1개 분대, 본부 분대까지 계산하면 총 41량의 수레가 차례대로 광장을 출발했다.

그 뒤는 천막과 무기, 식량, 예비부품 등을 실은 짐수레 20량. 마지막은 아르펜이 지휘하는 레인저부대가 그 뒤를 따라 느릿느릿 말을 몰았다.

레인저부대는 아나톨리아의 경계를 벗어나는 것과 동시에 정찰임무를 전담할 것이다.

이렇듯 팰리스군(軍)은 걷는 자가 한명도 없었다. 모두들 전마와 수레를 이용했다.

급속기동보병?

제국군의 주력이 두 발로 걷는 보병이란 점을 생각하면 상당히 특이한 편제였다.

“급속기동군단인가? 400명밖에 안되니 규모니까 군단이란 말은 좀 거창하고···”

센트럴 광장이 잘 내려다보이는 언덕이었다.

메이플 자작이 착잡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파이온 백작에게 말했다.

“영주님. 정말 특이한 구성입니다.”

“···”

“아마도 아르펜 녀석이 조언해서 저런 편제를 갖춘 것 같습니다. 안 그렇습니까?”

“···그럴지도.”

파이온 백작이 평소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대답했다.

팰리스군이 모두 떠난 광장을 힘없이 바라보며···

“주군! 걱정하지 마십시오. 팰리스 공자 아니, 이젠 배달의 영주라고 불러야겠군요? 아무튼, 배달 영주는 무사히 돌아올 것입니다. 뭐 상당한 전공을 세울지도 모르겠군요. 안 그렇습니까?”

이상하게도 메이플의 말이 좀 많아졌다.

그런데 이상한 건 파이온 백작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야··· 겠지? 뭐, 그렇겠지.”

기사 중의 기사!

대외적으로 상당히 유명한 파이온 백작이었다.

그런 그가 이렇게 넋 놓고 있을 것이라곤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메이플이 성을 내듯 버럭 소리쳤다.

“주군! 언제 까지 이러실 겁니까?”

“으, 응?”

“누가 죽었습니까? 배달영주는 배달영주고 우린 우리잖습니까!”

“···”

“저도 이렇게 돼서 정말 안타깝습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주군이 더욱 의연해야하지 않겠습니까!”

메이플의 일성에 백작의 미간이 좁혀졌다.

순간, 5월의 따사롭던 공기가 급속도로 식어갔다.

마침내 익스퍼트 중급의 실력자로 돌아온 백작. 힘껏 발을 구르며 일성을 터뜨렸다.

‘쿠우우웅~’

“건방지구나, 메이플! 나는 파이온의 로드, 브라이트 파이온! 기사 중의 기사로다!”

백작의 일성에 메이플이 즉각 한쪽 무릎을 꿇고 죄를 청했다.

‘처척~’

“충! 죄를 청합니다. 주군, 제가 너무 건방졌습니다.”

“···알고 있다니 다행이구나.”

‘챙~’

말을 마친 백작이 검을 뽑아 메이플의 목을 겨눴다.

“어떻게 해주랴!”

“제 목숨은 주군께 맡긴지 오랩니다. 어떤 벌이든 달게 받겠습니다.”

‘피식~’

“좋다! 너의 죄, 파이온을 일신하는 것으로 씻어내라. 알았나?”

“예스, 마이 로드! 모든 일은 주군의 뜻대로 처리될 것입니다.”

‘···많고 많지만 바로 내가···’

분위기가 돌변한 파이온 백작. 팰리스군이 모두 떠난 광장에 남아 아직도 군가를 부르는 주민들을 잠시 바라보다가 몸을 획 돌렸다.

‘···팰리스군. 멋진··· 흐흑~ 으아아앙~’

백작의 등 뒤로 어느덧 흐느낌으로 변해버린 소리가 꿈결처럼 작고 아련하게 들려왔다.

* * *

'떠그덕, 떠그덕~'

“아이 씨~ 귀속이 엄청 간지럽네. 누가 내 욕을 하나?”

팰리스가 손가락으로 귀를 파며 투덜거렸다.

괜스레 양심에 찔린 토머스가 조금 전부터 우물거리던 것을 급히 삼키곤 말을 이어받았다.

“방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저 잘못한 것 하나도 없는데요?”

“응? 죄가··· 없다?”

팰리스는 그저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는 뜻이었다.

“육포 좀 훔쳐 먹은 것만 빼고요. 영주님, 배고픈 건 죄가 아니잖아요.”

“어, 어? 하아···”

토머스가 천연덕스럽게 말하자 팰리스는 고개를 흔들곤 가장 현명한 대응책 즉, 관심을 꺼버렸다.

반면, 피리온은 심심한 참에 마침 잘됐다며 토머스와 대거리했다.

“야, 토머스 이 자식아~ 오늘도 육포를 훔쳐 먹었냐?”

“쳇~ 피리온 너 같은 약골은 몰라요.”

“약골 아닌데? 이래봬도 조만간 4서클 마법사가 될 몸이시다.”

“그러니까 약골이지. 나하고 한번 붙어볼텨?”

3서클 마스터의 실력이면 웬만한 기사를 상대할 수가 있다.

문제는 토머스. 그는 ‘웬만한’이란 수사가 결코 어울리지 않는 괴물이란 점이다.

“····”

“피리온. 나 같이 우람한 근육을 유지하려면 제대로 먹어 줘야한단 말이다.”

“근육? 쳇~ 근육 좋아하네. 그래서 뇌까지 온통 근육질이냐?”

“어, 어? 머리통 속에도 근육이 있어? 그럼, 머리통 근육은 어떻게 단련하는 거야?”

알려주면 당장이라도 수련할 것 같은 기세였다.

피리온도 결국 고개를 절래 흔들곤 토머스에게 관심을 꺼버렸다.

‘절래, 절래~’

“하아···”

‘떠그덕, 떠그덕~’

피리온과 토머스까지 조용하자 무척 심심해졌다. 팰리스군은 점심을 마치고도 하염없이 말과 수레를 몰았다.

1시간 전에 (아나톨리아 경계를 벗어나면서)레인저 1개조, 5명이 먼저 앞서간 것을 제외하면 특별한 일이 하나도 없었다.

여행할 때면 심심찮게 나타난다는 도적떼도 없었고 몬스터도 나타나지 않았다.

‘하긴~ 미쳤다고 우리에게 달려들까?’

정예병사 400명이면 웬만한 남작령의 군사력에 해당한다.

그런데 팰리스군은 달랑 창 하나만 무장한 허접한 병사가 아니었다.

기본무장으로 각궁과 단검, 그리고 각각의 병과에 어울리는 무장까지, 남들이 봤다면 ‘돈지랄’을 해도 너무했다는 욕을 들을만한 모습이었다.

그래서 으슥한 곳이면 꼭 ‘출연’한다는 도적떼도 몬스터 나타나지 않았다.

놈들은 팰리스군의 위용을 확인하곤 ‘앗 뜨거라’ 재빨리 도망가 버렸다.

그래서 팰리스는 전쟁터에 나간다는 사실이 무색하게도 너무도 심심했다.

"집결지 오르도스 영지까지는 여유 있게 1달인가?"

'오늘 하루도 심심해 죽겠는데 1달을 어떻게 견디지?’

정작 1달 뒤에는 기분이 어찌될지 모르겠지만 지금 당장은 너무 심심했다.

각설하고, 팰리스가 침묵을 깨뜨리자 말없이 말을 몰던 토머스가 기회라며 재빨리 말을 받아넘겼다.

"그럼, 저처럼 수련을 하십시오."

"토머스 너··· 수련하고 있었어?“

“당연합지요. 그래야 남들보다 더욱 강해지지 않겠습니까?”

토머스와 수련이란 말은 좀처럼 어울리지 않았지만 실제로는 수련광이었다.

가만히 듣고 있던 피리온이 끼어들었다.

“무슨 수련? 너는 그냥 말만 몰았잖아.”

“아니거든? 방금 전까지 정말로 수련을 했거든?”

“어, 어떻게···”

“영주님. 그거야 당연히···”

얄밉게도 토머스가 일부러 말을 끊었다.

25. 오르도스로 향하는 길- 1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