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하면 잘살거 같지-71화 (71/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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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최악을 피해 차악을 선택하다.

다음날, 브라이트 파이온백작의 자리한 가운데 가신들이 모두 참석한 회의가 열렸다.

오늘 결정해야할 사안은 팰리스가 아나톨리아 총독자격으로 다시 상정한 안건 하나뿐이다.

이전에 논의되었던 안건이라 의사진행이 꽤 빠르고 형식적이었다.

그래도 갖출 것은 갖춰야 한다고, 드레이크가 아나톨리아를 대표해 팰리스의 입장과 요구사항을 장황하게 설명했다.

이후에는 올리비아 2부인 측의 킹스턴 남작이 나와 파이온의 안정과 성장을 위해 보다 빨리 병사와 관리들을 복귀시켜야 한다는 궤변을 늘어놓았다.

그들이 복귀하더라도 지금 당장 아나톨리아가 어찌되는 건 아니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아나톨리아에 크고 작은 문제가 발생할 것이다.

그럼, 그것을 명분으로 팰리스가 총독에서 내려와야 할 상황이 만들어진다.

즉, 오늘의 결정으로 아나톨리아의 운명이 결정된다는 뜻이었다.

이제 남은 절차는 거수로써 안건의 찬반을 묻는 절차만을 남겨 놓았다.

“끄응~ 지금까지 드레이크 남작과 킹스턴 남작, 양측의 입장과 주장을 들었소이다. 그럼 이제부터는 손을 들어 안건을 찬반을 결정하겠소.”

회의의 사회를 맡은 메이플 자작의 말에 킹스턴 남작은 비웃음 가득한 얼굴로 팰리스를 슬쩍 바라봤다.

아마도 죽을상을 기대했으리라.

그런데 팰리스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계속 굳은 얼굴로 일관했다. 드레이크도 마찬가지, 킹스턴은 이것을 포기했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각설하고, 마침내 결정의 순간이 다가왔다.

“그럼 팰리스 총독이 요청한 병사와 관리들의 복귀를 유예시켜야 한다는 안건에 찬성하시면 손을 들으시오.”

메이플 자작의 말에 팰리스와 드레이크가 번쩍 손을 들었다. 이어 파이온 백작과 소영주 레온이 손을 들었다.

하나둘 귀족들이 손을 들어 전체적으로 1/3가량의 가신들이 찬성을 표명했다.

30%의 찬성. 충분히 예상된 결과였다.

더 이상 손을 드는 귀족들이 나타나지 않자 킹스턴의 비웃음이 더욱 짙어졌다. 때가 되었는지 메이플이 회의에 참석한 귀족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더 이상 찬성하는 분은 없소이까?”

“···”

“그럼, 본 안건은 이것으로···”

메이플이 의사봉을 집어 들어 들었다. 의사봉을 3번 두드리면 이번 사안은 확정. 바로 그때였다.

“잠깐!”

이사벨라의 아버지 도미니코 남작. 갑자기 그가 번쩍 손을 들었다.

아니, 이사벨라 본부인을 추종하는 귀족들이 하나둘씩 손을 들기 시작했다.

모두 합쳐 70%가량이 손을 들었으니 압도적인 찬성이었다.

순간, 킹스턴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팰리스의 표정은 여전히 변함이 없었다.

시간을 잠시 거슬러 어젯밤, 팰리스는 최악을 피해 차선을 선택하겠다고 마음먹은 후에 드레이크를 불러들였다.

“남작님, 아나톨리아를 포기하겠습니다. 아니, 정당하고 올바른 지배자에게 그곳을 넘겨줄 생각입니다.”

이런 팰리스의 뜻에 드레이크는 펄쩍 뛰며 만류했다.

그렇다. 팰리스는 아나톨리아에 대한 집착이 없었다.

3년간 도자기를 판매하며 벌어들인 돈이 많아 지저분한 집안싸움에 굳이 끼어들고 싶지 않았고 그럴 필요도 없었다.

‘내가 가진 가장 큰 재산은 지구의 지식이다. 도자기로 많은 돈을 벌었고 나이도 아직 어리다. 기회는 충분하지. 뭐, 지금은 14살 미성년자라 곤란하지만 매물로 나온 황무지나 영지를 구입해서 따로 독립할 수도 있을 테고. 성인이 되면 언제라도 가능하단 말이다. 다만···’

다만, 3년 동안 정성스럽게 성장시킨 그곳을 무책임하게 넘길 수는 없었다.

오거스틴 같은 자가 총독이 된다면 아나톨리아와 주민들의 삶이 어떻게 될 것 같은가?

팰리스는 전생의 자신처럼 고생했던 주민들이 계속 행복하길 바랐다.

‘주민들의 미소를 지켜주고 싶다. 아나톨리아를 지킬 수가 없다면 영주님이나 소영주님에게 들어 바치는 편이 낫다.’

이것이 팰리스가 선택한 차악(次惡)이었다.

“이이··· 아니 되오. 우리가 더욱 노력하면 해낼 수 있소. 내일 회의에서 역전시킬 수 있단 말이오.”

노인의 얼굴에 얼핏 분노한 기색이 떠올랐다.

분노는 차츰 안타까움으로 대신했다. 드레이크의 눈동자는 이제 손자를 바라보는 그것이 되었다.

“총독, 포기하긴 아직 이르오.”

“남작님, 현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아나톨리아는 계속 지킬 수가 없습니다.”

“아니오, 총독! 그른 현실은 마땅히 바른 현실로 고쳐야 하고 그것이 바로 세상이 유지되는 이치요. 인간종족이 다른 인류를 제치고 계속 발전하는 이유가 무엇이겠소?”

가이아에는 드워프나 엘프, 수인족 같은 여러 종류의 인류(人類)가 살고 있는데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그들과 달리 인간종족은 매우 불합리하고 오류투성이의 인류였다.

그런 인간종족이 가이아의 인류를 대표하는 종족으로 성장했다.

도대체 왜 그리 되었을까! 인간종족은 자신들이 벌였던 잘못들을 반성하고 바로잡으려고 노력했다.

이러한 움직임이 모이고 모여 인간종족을 성장시켰기 때문이다.

즉, 잘못을 반성하고 올바른 방향으로 고쳐가는 것이 바로 정(正)이오, 역사적인 흐름이라는 뜻이다.

그 반대의 흐름은 역천(逆天)이자 반인륜적인 범죄라는 뜻이다.

혹자는 당장이라도 너무 관념적이고 정의(正義)나 민주주의(民主主義)가 밥 먹여 주냐고 반박할 것이다.

감정적인 판단을 뒤로하고 곰곰이 따져보라.

그럼 그러한 반박이 터무니없다는 ‘진실’을 알아차릴 것이다.

막말로 정의와 민주주의가 밥 먹여준다. 국방문제까지 해결해준다.

실제로, 대한민국은 독재정권을 청산하고서야 겨우 F-15전투기를 수입할 자격을 얻었다.(무기의 발달로 F-15전투기의 전략적인 가치가 낮아진 면도 작용했었다.)

이전에는 우방국이라도 의식수준이 미달하면 판매하지 않았던 무기였다.

이것이 바로 ‘사실(事實)’이 아닌 ‘진실(眞實)’이다.

각설하고, 이런 드레이크의 설득은 지금의 팰리스에겐 그리 적절하지 않았다.

“남작님, 이치를 따지더라도 그것이 순리입니다. 비록 아나톨리아가 독립적인 성격이 강하다지만 결국에는 파이온의 일붑니다.”

“지금은 총독이 로드(Lord)이고 영주나 다름없소.”

“그렇지만 한시적이겠지요. 어차피 아나톨리아는 파이온에 편입되어야 할 곳이었습니다. 아니 그렇습니까?”

“···”

“남작님, 지저분한 집안싸움으로 그곳을 망칠 수는 없습니다.”

“총독, 아깝지 않으시오? 조만간 성인이 될 총독이오. 독립하거나 분가할 때 그곳을 기반으로 새로운 가문을 열수도 있소.”

“아깝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요. 3년이나 애정을 쏟았으니까요.”

“그렇다면 왜··· 총독, 굳이 그럴 필요가 있겠소? 병사와 관리들이 복귀한다고 해서 꼭 문제가 발생하진 않을 것이오.”

“그럴 수도 있지만 아닐 가능성이 더욱 높지요.”

“···”

드레이크가 마음에 담았던 말을 토해내려고 입을 열었지만 냉정한 현실 때문에 제대로 뱉어내지 못했다.

가슴이 답답한지 손바닥으로 가슴만 쳤다.

그러다가 크게 숨을 내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야 현실을 인정한 것이리라.

“알겠소, 총독. 그렇다면 내가 어찌하면 좋겠소? 총독이 직접 나서는 것보다는 본작이 중간다리가 되는 편이 자연스러울 것 같소.”

그 때문에 팰리스가 직접 움직이지 않고 지금처럼 드레이크를 불러 설득하지 않았던가.

“고맙습니다, 남작님. 일단 이사벨라마님과 영주님에게 제 뜻을 전해주십시오.”

그 말인즉, 이사벨라와 영주에게 아나톨리아를 바치겠다는 뜻이다.

양측이 만족할 만한 대상은 소영주 레온이 유일했다. 이런 팰리스의 뜻은 백작과 이사벨라가 적극 수용했다.

그래서 아나톨리아는 당분간 팰리스가- 성인이 될 때까지- 관리하다가 파이온에 편입하되 레온이나 그가 인정하는 인사가 주관하기로 약속했다.

다시 시간을 되돌려, 파이온에서의 모든 행사를 마친 팰리스 일행은 다시 아나톨리아로 향하는 길을 잡았다.

‘떠드덕, 떠그덕~’

팰리스가 원하는 바를 이뤘으나 결과적으로는 1~2년 후에 아나톨리아를 내놓아야할 상황이 되었다.

자연, 분위기가 착 가라앉았다.

피리온과 토머스, 제이콥은 얼굴을 찡그리다가 씩씩거렸다.

드레이크는 무슨 고민인지 자그맣게 중얼거리다가 고개를 흔들며 말을 몰았다.

팰리스도 마찬가지였다.

통 큰 마음으로 아나톨리아를 양보(?)했으나 기분이 결코 좋을 리가 없었다.

자꾸만 울화가 치밀었다. 심호흡으로 마음을 진정시키려고 했지만 답답한 기운은 좀처럼 가시질 않았다.

“후우웁, 하아~ 후우웁~, 하아·····”

‘정말 기분이 엿 같네. 한바탕 푸닥거리나 하면 좋겠다.’

이런 기분일 때에는 그저 아무런 생각 없이 몸을 혹사시키는 편이 나을 것이다.

잔뜩 땀을 흘리면 답답함이 씻겨 사라질 것만 같았다.

그러나 그는 개인이 아닌 아나톨리아를 지배하는 로드였다.

로드답게 그런 기색을 함부로 내보일 수는 없었다.

이런 팰리스의 마음을 하늘이 배려했을까? 앞서가던 첨병이 급히 말을 몰아 보고했다.

‘떠그덕, 떠그덕~ 이히히힝~’

“총독 각하, 전방에 트롤입니다.”

“트롤? 트롤이라면···”

3~4m크기에 엄청난 재생력을 가진 중상급 몬스터로, 팔다리가 잘려나가더라도 며칠 사이에 새로운 팔다리를 재생시키는 몬스터였다.

검에 베인 자상(刺傷) 정도는 2~3분 안에 흔적도 없이 재생시키기에 사냥하기가 꽤 곤란하다고 한다.

“각하! 트롤이 오크를 사냥했는지 지금 한창 먹고 있습니다. 이동을 잠시 멈춰야할 것 같습니다.”

“알았다, 병사. 그런데 이상하군요. 이곳은 본래 트롤이 나타나지 않는다고 들었소만.”

“각하, 예전에는 그랬지만 오크들의 침입을 막아내고부터 가끔씩 트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방벽 역할을 해주던 오크들이 약해지면서 이곳까지 모습을 보인 것 같습니다.”

팰리스가 의문을 표하자 제이콥이 대답했다.

“트롤이라면 재생력 때문에 병사들이 사냥하기가 꽤 힘들겠군요?”

“그렇습니다. 다른 몬스터는 각궁과 편전으로 쉽게 잡을 수 있습니다만 트롤은 가죽이 두껍고 재생력까지 아주 높습니다. 퇴치하는 도중에 간혹 부상자가 발생합니다.”

“부상자까지? 제이콥 경. 그런 보고는 듣지 못했··· 아참~ 포션을 사용했겠군요?”

이전에 밝혔다시피 파이온의 군대와 그곳의 체계를 그대로 이어받은 아나톨리아 군대는 비상시 사용하는 군수물자로써 포션을 배급받는다.

“네, 각하! 보통의 병사는 상대하기가 곤란하지만 우린 파이온의 정병입니다. 방패병이 견제하면서 각궁과 편전으로 피해를 누적시키는 방식으로 트롤을 사냥합니다.”

제이콥의 보고에 고개를 끄덕이던 팰리스. 불현듯 자신이 직접 트롤을 사냥하고 싶어졌다.

“네? 각하께서 직접 트롤을 사냥하시겠다고요? 안 됩니다. 절대로 허락할 수 없습니다.”

제이콥이 팰리스의 안전을 들어 반대했다.

그러다가 팰리스 뒤편의 드레이크가 슬며시 고개를 흔들며 엄지로 자신을 가리키는 모습을 발견했다.

‘아하~ 포션도 있고 총독님이 위험하면 남작님이 즉각 개입하겠다는 뜻이겠지? 몬스터를 상대하다보면 기분이 풀리실 지도···’

5서클 전투마법사에게 트롤은 그리 어렵지 않은 몬스터였다. 그리고 파이온이 워낙 특별한 영지라서 그렇지 팰리스 보통 사람이 아니었다.

다른 영지의 기사에 해당하는 실력을 보유했다.

알파시피 파이온 영지는 마나를 신체 외부로 투사하는 익스퍼트 급에 올라야만 기사가 될 수 있다.

“좋습니다. 단, 저의 통제에 따르셔야만 합니다.”

“알겠소. 걱정 마시오.”

이렇게 해서 뜬금없는 트롤사냥이 시작되었다.

트롤! 익스퍼트 급의 실력자가 겨우 맞상대할 수 있는 몬스터였다.

팰리스의 실력으로는 다소 버거운 상대일 것이다.

제이콥은 안전한 사냥을 위해 미리 조치를 취했다.

“준비····”

‘끼익, 끼이이익~’

“지금··· 쏴!”

'피릿! 피리리릿~'

일반 화살보다 훨씬 빠른 편전이었다.

작고 빠른 편전이라면 몸통에 완전히 박아 넣어 트롤이 화살을 쉽게 빼낼 수 없을 것이다.

그럼 팰리스가 보다 안전하게 트롤을 사냥할 수 있을 것이다.

각설하고, 한창 오크를 뜯어먹다가 난데없이 화살세례를 받은 트롤. 크게 화를 내며 팰리스 일행과 거리를 좁혔다.

드레이크와 피리온은 언제라도 마법을 날릴 준비를 마쳤다.

검을 빼어든 제이콥과 토머스도 긴장의 끈을 바짝 죄어놓았다.

이렇게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서야 팰리스는 티아늄이 만들어준 예리한 검을 빼어들었다.

‘스릉~’

“후우웁, 후우~ 후우웁, 후우···”

팰리스는 단전의 마나를 풀어 온 몸으로 돌렸다.

마나를 머금은 팔다리는 평소보다 훨씬 빠르고 강력해진다.

“이야야야압~”

팰리스가 트롤을 향해 달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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