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하면 잘살거 같지-65화 (65/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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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의외의 복병

무더위 속에 밀알이 하루가 다르게 영글어 가는 계절이 되었다.

인구가 약 16,000명으로 불어난 아나톨리아는 오늘도 살을 찌워가는 낱알처럼 나날이 성장해 갔다.

주민들은 열심히 땀을 흘리며 오늘과 같은 풍요와 평화를 가져온 팰리스를 더 없이 찬양했다.

그런데 정작 당사자는 그럴 수가 없었다. 오늘도 팰리스는 주요 인사들과 회의실에 모여 한숨을 푹푹 내쉬고 있었다.

아나톨리아 총독에 임명된 지 벌써 3년이 가까워졌다.

다음 달에는 파이온에서 빌려왔던 병사 500명을 다시 돌려줘야한다. 이것이 바로 팰리스가 충분히 예상했던 문제였다.

“하아~ 시간이 정말 빠르네. 벌써 3년이 다 되었다니.”

팰리스의 넋두리처럼 이는 충분히 예상된 스케줄이었다.

이 때문에 팰리스와 수뇌부가 마냥 놀고만 있지 않았었다.

그동안 병사들을 전향(?)시켜 가족과 친척까지 아나톨리아에 정착시켰다.

파이온의 빈민이나 제국을 떠도는 난민을 받아들여 아나톨리아의 인구를 처음보다 3배 이상으로 늘렸지 않았던가.

그럼에도 인구부족은 여전했다. 충분한 병사를 선발할 토양으로써 아나톨리아의 인구가 너무 부족했다.

“총독님, 병사 500중에서 170명가량이 정착을 결정하여 소속을 이곳으로 변경했습니다. 그리고 기존의 주민과 새로 받아들인 사람들 중에서 80명을 선발하여 훈련시켰습니다.”

팰리스에게 보고하는 제이콥의 얼굴 또한 밝지 않았다.

각종 무기로 중무장한 아나톨리아 소속의 250명의 정예병사!

이런 군사력이라면 남작영지의 무력에 해당하는 규모였다. 게다가 정예로 소문난 파이온 출신의 병사가 고참병이고 그들에게 체계적으로 훈련받은 자들이 신병이었다.

과도한 무장이라는 ‘뒷담화’까지 듣는 마당이니 결코 허약할 리가 없었다.

하물며 아나톨리아는 남작영지처럼 크지도 않을뿐더러 병사의 수도 충분했다.

문제는 이곳이 일반적인 지역이라면 그렇다는 뜻이다. 아나톨리아는 결코 일반적인 곳이 아니었다.

“하아~ 정말 열심히 노력했는데도··· 겨우 250명밖에 안 되는군요.”

“죄송합니다, 각하! 도자기 공장에 이어 조만간 비누라는 물건을 만들 작업장도 지켜야 하는데 250명밖에··· 다음 달부터가 문젭니다.”

바로 이 때문이었다.

제이콥의 얼굴이 어두운 이유. 아나톨리아의 비밀을 노리는 자들이 너무 많은데 반해 다음 달부터는 병사의 수가 절반으로 줄어들기 때문이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보고하는 제이콥 이하 기사들과 지금껏 성실한 관리자로 일했던마법사들도 파이온으로 복귀해야 한다.

피리온과 토머스를 비롯한 주요 인사 1/3가량이 아나톨리아에 정착을 결정했다.

그러나 이들로는 부족했다. 다음날에는 관리들이 대거 이곳을 떠나 파이온으로 돌아갈 테니 정상적인 업무가 곤란해질 것이다.

그래서 팰리스가 수뇌부에게 그 대책을 물었다.

“무슨 좋은 해결책이 없겠습니까? 기탄없이 말해보시오.”

“···”

“죄송합니다, 각하! 아무리 생각해도 도무지 방법이···”

“미안하오, 총독. 이곳에 남아 계속 봉사하고 싶소. 허나, 가족들이 이주를 반대하는구려. 총독도 알다시피 5대 조상 때부터 살던 곳이 파이온이라서···”

파이온 영지에 깊이 뿌리를 내린 드레이크. 그 또한 다음 달에는 파이온으로 복귀해야 한다.

영주의 대전(大殿)에서 오고간 말에는 결코 허언(虛言)이 없다고, 이번 사안은 팰리스와 브라이트 개인이 맺은 약속이 아니었다.

아나톨리아 총독과 파이온 영주의 협정에 준하는 수준이었다.

그래서 아나톨리아에 이주하지 않는 한 드레이크가 계속 남고 싶어도 남을 수가 없었다.

“벤자민과 피리온이 이곳에 이주를 결정했소만 다음 달에는 나와 상당수 마법사들이 떠날 테고··· 미안하오, 총독.”

“아, 아닙니다. 남작님과 마법사들이 없었다면 아나톨리아가 지금처럼 발전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아니오. 총독이 현명하게 결정해 왔소. 나와 마법사들이 없었어도 능히 해결했을 것이오.”

“아무리 그래도···”

“허허허~ 총독, 과도한 겸손은 예(禮)가 아니라는 말이 있소이다.”

“···네, 알겠습니다. 그런데 남작님···”

팰리스가 뒷말을 흐려 그에게 할 말이 있다는 뜻을 알렸다.

“말씀하시오, 총독.”

“개인적인 자격이라도 계속 남아계시면 안되겠습니까?”

“흐음~ 나 개인이야 아나톨리아에 남아 이곳이 계속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싶소. 하지만 총독도 알다시피···”

목소리가 뒤로 갈수록 작아졌다.

개인의 약속이 아닌 협정수준의 약속이었다. 파이온 백작이 양해하지 않는 한은 불가능했다.

‘잠깐! 양해라고?’

“그렇다면 남작님. 혹시 영주님께 부탁하면 안 될까요? 당분간 복귀를 유예해 달라고요.”

“유예라··· 오~ 총독. 그거 아주 좋은 생각이오.”

“아~ 그런 방법이 있었군요?”

표정이 어둡던 제이콥도 무릎을 치며 동의하자 벤자민이 첨언했다.

“영주님은 총독님의 부탁을 들어주실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각하. 아시다시피 아나톨리아가 성장하면서 파이온도 함께 성장했습니다. 아나톨리아 덕분에 항상 부족했던 재정이 늘어났고 예전엔 병사 3,000명을 유지하는 것도 힘들어했는데 이젠 4,000명 이상으로 늘렸어도 군비에 여유가 있다고 합니다.”

제이콥의 말이 맞았다.

몬스터의 침입으로부터 제국동부를 수호하느라 힘겨워했던 시절도 이젠 옛말이 되었다.

각궁과 편전이라는 장거리 투사무기의 개발로 몬스터의 침입을 보다 안전하고 적은 피해로 막아냈다.

도자기를 판매하면서부터는 엄청난 수익을 벌어들여 이젠 남아도는 예산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를 걱정할 정도로 변했다.

파이온은 아나톨리아가 성장하며 거둔 과실을 함께 나누는 중이다.

앞서 밝혔다시피 아나톨리아와 파이온, 파이온 상단이 각각 4:3:3의 비율로 수익을 배분한다.

그런데 파이온상단은 백작과 파이온 영지가 각각 30%와 40%의 지분을 가지고 있다. 어찌 보면 재주는 팰리스와 아나톨리아가 부리고 돈은 백작과 파이온 영지가 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특이하게도 파이온 영지는 다른 영지와 달리 백작가문의 재산과 영지의 재산을 분리하여 운용한다. 파이온 영지는 변경백이라 세금이 면제됐지만 그럼에도 수입이 너무 적었고 이런 적은 수입으로 어떻게든 영지를 유지하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

이런 상황이니 백작과 파이온에게 아나톨리아는 매우 중요한 지역이 되었다.

백작도 이곳이 흔들리는 걸 원치 않을 것이다.

“그럼, 지금 당장 영주님과 통신하겠소.”

팰리스의 결정에 드레이크가 눈짓했고 피리온이 얼른 마법수정구를 가져와 회의실 탁자에 세팅했다.

10분후에 팰리스는 백작과의 마법으로 통신했다.

- 그래, 팰리스 총독. 나에게 요청할 것이 있다고?

팰리스가 안부를 마치자마자 백작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그렇습니다, 영주님. 다음 달이면 약속했던 3년입니다.”

- 허허~ 벌써 그렇게 됐나? 어느새 3년이 흘러버렸군. 그런데?

“영주님도 아시다시피 이곳 아나톨리아는 인구가 너무 부족하고···”

아나톨리아를 경영할 관리의 수도 부족하다.

팰리스는 백작에게 통신하게 된 사연들을 차분하게 설명했다.

다른 곳도 아닌 엄청난 수익을 벌어들이는 아나톨리아의 문제였다.

가만히 듣고 있던 백작이 간간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보아 긍정적인 결론이 도출될 것 같았다.

- 흐음~ 워낙 인구가 적은 곳이니 그럴 수밖에 없겠군. 아무튼, 그래서 병사와 관리들의 복귀를 미뤄 달라?

“그렇습니다. 아나톨리아는 여전히 인구가 너무 부족합니다. 외람되지만 영주님께서 저희의 이런 사정을 감안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팰리스의 요청에 백작이 고개를 끄덕이며 흔쾌히 허락했다.

- 걱정하지 마라, 팰리스 총독. 아나톨리아는 파이온에게도 매우 중요한 지역이 되었다. 본 영주는 이 사안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

“감사합니다, 영주님.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팰리스가 통신을 마치고 수정구에 맺힌 영상이 사라졌다.

그동안 숨죽이고 지며보던 사람들이 일제히 환호성을 터뜨렸다.

백작이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말했으니 별다른 일이 없으면 팰리스의 요청이 받아들여질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전체회의를 통해 요청을 정식으로 확정하는 형식적인 절차만이 남았기 때문이다.

예상했던 복병을 얼추 해결했으니 이젠 팰리스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드레이크가 팰리스를 대신해 안건으로 올렸다.

“다음 안건은 이곳 아나톨리아에 매우 심각한 문제일 것이오. 여러분, 북부의 휴런영지와 서부의 가리발디영지에서 도자기를 생산했다고 합디다.”

“네? 정말··· 입니까?”

“그럴 수가···”

“어떻게 그런···”

“드르렁, 쿨~ 드르렁, 쿨···”

드레이크의 발표에 회의실이 얼어붙었다. 토머스의 코고는 소리만 들려왔다.

사실, 아나톨리아를 성장시킨 요인은 누가 뭐래도 단연 도자기였다.

도자기를 판매하며 벌어들인 수익으로 직원에게 높은 임금을 지불했다. (농사를 짓는 와중에도)시간이 날 때마다 영지민을 고용하여 저수지를 만들고 부실한 수로도 수리하게 했다.

이렇게 도자기를 팔고 번 돈으로 아나톨리아는 체질을 개선하는 중이었다.

그런 소중한 도자기를 다른 영지에서도 만들기 시작한다?

너무도 충격적인 소식이라 한동안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책임감 때문인지, 도자기 공장의 보안책임자 제이콥이 가장 먼저 충격에서 빠져나왔다.

“드레이크 남작님. 그것이 사실입니까?”

“상업을 주관하는 프랑크 경의 말에 따르면 그렇소. 황도의 드레이먼드 지부장이 마법통신으로 전해오길, 두 영지의 초도물량이 황도에서 판매되고 있다고 합디다. 아무래도 두 영지에서 도자기 만드는 비법을 확보한 것 같소.”

“그렇··· 습니까? 그것도 주변의 영지가 아닌 이곳에서 아주 먼 북부와 서부에서요?”

제이콥이 머리를 한쪽으로 기울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정말 이상합니다. 변명으로 들리겠지만 지금껏 저와 병사들이 도자기 공장을 빈틈없이 관리했다고 자부합니다.”

제이콥이 자신하자 상업부문을 주관하던 벤자민이 의문을 제기했다.

드레이먼드에게 가장 먼저 도자기가 복재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아직도 믿기지가 않았다.

“제이콥 경! 정말 우려하던 일이 없었소이까?”

“그렇소. 프랑크 경도 알다시피 도자기 공장은 높은 목책을 둘러 외부의 시선으로부터 보호하고 있소. 그 때문에 외부에서 도자기 비법을 알아낼 수는 없소.”

“혹시 기술자 중에서 사라진 자가 없었소? 혹은 납치를 당했다거나···”

이번엔 팰리스가 물었다.

언젠가는 비법이 알려질 것이란 점을 각오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막상 복재 소식을 접하자 속이 쓰렸다.

“당연히 없었습니다. 각하~ 저 제이콥은 특기할 만한 사건이나 불미스러운 일이 없었다고 자신합니다. 중요한 기술자는 모두 특별하게 관리중이고 수상한 자와 접촉하지 못하게 통제했습니다. 그런데 어찌 휴런과 가리발디 영지에서 도자기가 만들었는지 도무지 영문을 모르겠습니다.”

제이콥이 아무리 생각해도 도자기 비법을 탈취당한 적도 없을뿐더러 그런 정황 또한 없었다.

그만큼 제이콥 이하 병사들이 도자기 공장 직원들을 철저하게 관리해왔다.

영지민들도 사정은 비슷했다.

그들 또한 도자기 때문에 아나톨리아가 성장하고 자신들의 삶이 풍요해진다는 사실을 잘 알았다.

그 때문에 수상한 자들을 나타나면 곧바로 신고하지 않았던가.

실제로, 아나톨리아에 정보원들을 보내 도자기비법을 알아내려고 시도했던 집단들은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고르고 골라서 침투시킨 정예 보원들이 아나톨리아 내부로 들어가는 족족 소식이 끊겼기 때문이다.

어떤 소규모 정보길드는 현장요원 절반이 사로잡혀 급기야는 다른 정보길드에게 흡수당하기도 했단다.

그러나 세상에는 장담할 일이 없고 열손이 도둑 하나를 막지 못한다.

잠시 시간을 거슬러서 1년 전의 일이었다.

제국정보원과 블랙핸드 또한 많은 현장요원들을 투입했고 하나같이 소식이 끊기자 큰 충격을 받았다.

그들은 정상적인 마석사냥꾼들을 고용하고서야 겨우 소식이 끊긴 요원들이 아나톨리아에 입성하자마자 붙잡혀 지금은 광산에서 강제 노동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막장에서 강제 노동하는 요원들을 구출한다?

가능성도 희박했지만 도자기 비법만을 요구할 뿐, 그럴 의지조차 없었다.

함흥차사도 아니고, 사정이 이리되자 현장요원들은 아나톨리아에 투입하라는 명령을 두려워했다.

“아나톨리아가 너무 특별한 곳이다. 내부로 들어가면 무조건 사로잡혀. 총독이 이제 겨우 14살이라는 생각 자체를 버려야만 한다.”

제국정보원의 우수한 요원이었던 리하르트. 그는 자신의 차례가 되자 두려워졌다.

그래서 현재의 상황을 냉정하게 따져봤다.

“내가 아나톨리아 내부로 들어가면···”

‘꿀꺽~’

다른 요원들처럼 사로잡혀 철광산이나 탄광에 끌려가 강제로 노동할 것이다.

우수한 요원이었던 그는 헛되이 사로잡히기보다는 방식을 달리 생각했다. 그편이 자신에게도 제국정보원에게도 이로울 것이다.

“맞아. 두려운 것도 사실이지만 사로잡히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 내부가 철저하게 막혔다면 외부에서 뚫어보자.”

그는 아나톨리아로 침투하는 대신 외곽에 숨어 가만히 지켜보기로 했다.

- 리하르트, 상부의 지시에 항명할 텐가?

상부에서는 빨리 아나톨리아로 침투하라고 성화를 부렸다.

자신의 판단을 믿은 리하르트는 상부의 지시를 과감하게 거부했다.

블랙핸드의 달튼은 리하르트처럼 우수한 요원이 못됐다.

대신 운이 좋았다. 상당히 반항적인 그가 파이온 영지에서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뭐? 이젠 내 차례라고?”

“그렇다, 달튼 요원. 반드시 도자기 만드는 비법을 확보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이런 씨부랄 새끼들이···’

“아나톨리아에 들어가면 무조건 붙잡히는데?”

“그건 당신 사정이고. 상부에선 무조건 내부로 들어가 정보를 확보하라는 명령이다.”

“쳇~ 윗대가리들은 도대체 현장을 몰라요, 현장을··· 그럼 지들이 먼저 모범으로 사로잡혀서 강제노동을 하던가. 어이~ 마법사 양반. 안 그런가?”

“···항명할 생각인가?”

“항명은 무슨··· 나는 말이야? 아주 길고 오래 살고 싶어. 윗대가리에게 잘못 보여 괜히 모가지가 잘리고 싶지 않단 말이지.”

“그럼 뭐하자는 짓이지?”

“뭐하기는, 나는 그저 ‘아주 잘’ 하려는 것뿐이다.”

“···방안이 너무 추워졌다. 웃기지도 않다.”

“쳇~ 요즘 유행하는 농담인데, 아무튼 마법사 양반은 나만 믿으쇼. 나에게 다 생각이 있으니깐. 알았나? 당신은 그냥 나만 믿고 가만 기다려.”

‘생각은 무슨··· 일단 시간을 벌고 보자.’

달튼은 사로잡힐 것이 두려워 이렇게 큰소리치며 명령을 거부했다.

그렇다고 마냥 파이온에 죽치고 지낼 수는 없었다.

그는 변명거리를 만들기 위해 아나톨리아 외곽을 돌아다니다가 이상한 광경을 발견했다.

그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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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의외의 복병-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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