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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발전하는 아나톨리아.
"성장하고, 발전하겠어. 막아야 하는데··· 놈들의 성장과 발전을 막아야 하는데···"
넋두리하듯 중얼거리던 주세페 가리발디 후작. 조용히 스푼을 들어 도자기 찻잔을 슬쩍 두드렸다. 그리곤 들려오는 소리를 집중해서 들었다.
'팅~ 팅~ 티팅~'
"흐음~ 맑은소리가 참 듣기 좋아. 순백의 색상도 참으로 고급스럽고."
도자기에 대한 찬사와 달리 주세페의 눈동자엔 알 수 없는 분노와 탐욕이 이글거렸다.
"죄송합니다만 도자기란 식기는 정말 유리처럼 반짝이며 아주 매끄럽습니다."
"내가 보기에도 그런 것 같군."
"그 때문에 귀족들이 아주 좋아한다고 합니다. 후작님도 아시다시피 파이온 상단이 이것을 앞세워 상계에 한발을 걸쳐오고 있습니다."
'으드득~'
"파이온에다 이젠 파이온상단까지 사사건건 내 앞을 가로막는군. 젠장~ 각궁에 이어 또 다시 엄청난 돈을 벌어들이겠어. 놈들이 또 발전할 테고. 안 그런가?"
제이슨 자작의 보고에 가리발디 후작이 이를 갈며 투덜거렸다.
알다시피 주세페 가리발디 후작은 파이온 영지가 각궁을 수출하면서 자금난에서 벗어나자 체르키 자작을 부추겼다.
그에게 아나톨리아라는 계륵 같은 지역을 파이온 영지에 편입시키도록 공작했었다. 아나톨리아를 관리하고 정상화시키는 동안 많은 자금과 시간을 허비하게 할 목적이었다.
그런데 자금난에 빠지기는커녕 오히려 도자기라는 물건을 만들어 더욱 많은 돈을 벌어들였다.
덕분에 그렇잖아도 강했던 군사력이 더욱 강력해졌다. 이젠 상계에도 한발을 걸치고 영향력을 발휘하려는 중이다.
"죄송합니다, 각하! 조사해보니 도자기라는 물건은 아나톨리아에서 생산하고 있었습니다."
"아나···톨리아?"
"체르키 자작을 부추겨 파이온에 넘겼던 바로 그곳입니다."
"아~ 불한당 놈들이 득시글거렸던 그곳?"
"죄송합니다, 각하!"
'으드득~'
"어떻게?"
제이슨은 '그런 척박한 아나톨리아에서 어떻게 도자기라는 매우 고급스러운 상품을 만들었나.' 라는 뜻을 정확하게 알아들었다.
주세페의 말이 이처럼 짧아질 때는 기분이 몹시 나빠졌다는 신호였다. 그래서 제이슨이 긴장의 끈을 바짝 조였다.
"죄송합니다, 각하! 그건 저도 잘···"
"제이슨! 방금 전부터 자넨 계속 죄송하다고만 말했네."
"죄송··· 시정하겠습니다. 각하!"
"어떻게?"
이번에 말한 '어떻게'는 어떤 방식으로 파이온 영지나 상단에 타격을 줄 것인지, 그 대책을 보고하라는 뜻이었다.
안타깝게도 제이슨에게는 마땅한 대책이 없었다.
"···"
"하아~ 그런가? 그렇다면 자넨?"
"죄ㅅ··· 흠흠~ 도자기를 복제하려고 시도했지만 그것 또한 실패했습니다."
"드워프?"
"그렇습니다, 각하. 드워프에게도 만들라고 지시했습니다만 각하께서 보유했던 드워프도 크리스탄 교단이 확보한 드워프도 모두 실패했습니다. 한결같이 도자기는 처음 보는 물건이라고 말했습니다."
"확률은?"
"거짓말이 아니었습니다. 각하께서도 아시다시피 드워프는 장인의 종족입니다. 만약 드워프가 도자기 제작법을 알았다면 분명 큰소리치며 자랑했을 것입니다. 그것이 드워프의 프라이듭니다. 그런데 어떻게 제작하는지 알려달라고 오히려 저에게 사정할 정도였습니다."
"하긴, 드워프가 원래 그런 놈들이었지."
"···"
"제이슨. 앞으로는?"
"크리스탄 교단은 현재 드워프 1마리를 확보하고 잠시 잠적한 상탭니다. 마침, 한동안 작업을 중단해야할 테니 그놈들을 투입해서 도자기 제작법을 꼭 확보하겠습니다."
"아~ 이번에도 성공했나?"
"네, 각하! 휴런 영지에서 드워프 1마리를 무사히 확보했습니다. 지금은 휴런 추적대가 잦아들 때를 기다리는 중입니다."
"호오~ 그래? 그렇군, 그랬어. 그런데 놈들의 행사가 좀 거칠던데··· 시끄럽지 않을까?"
주세페의 말이 살짝 길어졌다. 그제야 제이슨이 바짝 조였던 긴장의 끈을 놓았다.
"놈들의 행사가 다소 과격한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일이 잘못 되어도 우리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놈들입니다. 언제든지 버릴 수도 있고, 드워프 건도 그렇지만 이번 일도 우리와 관련이 없어야만 합니다."
"그건 그렇지. 그 때문에 우리가 크리스탄 교단을··· 아니다, 제이슨. 이번엔 힘쓰는 일이 아닌 정보문제다. 이런 일에는 크리스탄 교단이 어울리지 않아."
"각하, 그렇다면 누구를···"
"이런 일에는 정보를 다루는 자들이 어울리지 않겠나?"
"아~"
"정보길드에 의뢰하거나 블랙핸드를 투입해라. 그편이 훨씬 나을 것이다."
주세페가 말한 정보길드는 정보를 상품으로 사고파는 지하조직이고 블랙핸드는 가리발디 후작가문이 대대로 양성했던 암살자와 정보원들을 말한다.
주로 어린 고아들을 모아 어릴 때부터 세뇌하고 교육시켰다고 한다.
"알겠습니다, 각하. 정보길드보다는 블랙핸드가 적당할 것 같습니다. 정보길드는 보안도 보안이지만 아무래도 신뢰하기가 좀···"
'끄덕끄덕~'
"그렇겠지. 정보를 다루는 한 개인은 몰라도 단체로 역이면 괴물이 되어버리지. 그런 괴물을 절대로 신뢰할 할 수가 없고 믿어서도 안 되지."
사람이 사는 건 대충 비슷하다고, 한국에서도 그렇지만 가이아에서 또한 신뢰받지 못했다.
"각하의 말씀이 전적으로 옳습니다."
"단체의 이권이 걸리면 어떤 범죄라도 태연하게 저지를 놈들이야. 여론조작과 날조, 모략은 기본이고 아무런 죄가 없어도 잘못보이면 어떡해든 제국의 반역자로 만들어 버리지."
"제국정보원! 황제의··· 개자식들!"
"그래 황제의 개자식들! 황제파 귀족들은 황제의 충견이라고 오해하지만 솔직히 개자식들이 맞아. 황제와 황실의 안위보다는 자신들 단체의 이익을 우선하는 놈들이거든?"
"맞습니다, 각하. 우리가 이런 말 하긴 뭣하지만 놈들은 괴물이고 쓰레기 중에 가장 더러운 쓰레깁니다."
"제이슨~ 우리가 만든 블랙핸드 또한 믿지 마라. 아무리 세뇌했다지만 정보를 다루는 놈들이 뭉친 조직이야. 우리와 연결될 가능성이 없는 놈을 골라야 해."
"명심하겠습니다, 각하."
"그래, 자넨 빨리 도자기 제작법을 알아오도록."
'처척~'
"넵, 각하! 모든 일은 후작각하의 뜻대로 처리될 것입니다. 그럼···"
제이슨이 예를 갖추고 집무실을 빠져나갔다.
이처럼 제국 서부의 가리발디 후작이 아나톨리아가 생산한 도자기를 욕심냈다.
그런데 이런 움직임은 비단 가리발디 후작가문만이 아니었다. 도자기에 눈독을 들인 자들이 가리발디 후작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뭐, 도자기 세트를 구입하느라 8만 골드나 적자가 났다고? 이런~ 잘못하다간 영지가 파산한다. 도자기 제작법을 반드시 확보하도록! 그래야 우리 영지가 산다.]
[작년농사가 흉작이고 몬스터까지 난리쳤다. 영지의 재정상황이 말이 아냐. 그러니 우리도 도자기를 만들어 돈을 벌자. 뭐, 운이 따르면 중앙정계에도 진출해야겠지? 꿀꺽~]
이처럼 제국의 여러 영지와 귀족들이 도자기를 탐냈다.
그들은 황실 몰래 양성했던 암살자나 정보원들을 아나톨리아로 파견했다. 그럴 깜냥이 안 되는 귀족들은 도둑길드나 정보길드 같은 지하조직에 의뢰했다.
심지어는···
[네? 도자기 제작법을 빼내라고요? 원장각하! 파이온 백작은 우리 황제파 중에서도 매우 중요한 귀족입니다. 그런데 어찌 도자기 제작법을··· 아, 알겠습니다. 도자기 제작법은 곧 비자금이자 우리 제국정보원의 쌈짓돈이란 말씀! 명심, 명심하겠습니다.]
황제의 직속기관인 제국정보원에서도 도자기를 욕심냈다.
원장은 황제 몰래 비밀요원을 아나톨리아에 파견했다. 자연, 많은 사람들이 도자기 제조법을 찾아 아나톨리아로 향했다.
* * *
"사람이 많이 몰려와서 좋긴 좋은데··· 쳇~ 소설처럼 난민도 거의 없는 아주 평화로운 세상이라니."
팰리스가 불만인 듯 투덜거렸다.
알다시피 아나톨리아는 인구가 너무 적어 문제였던 곳이다.
그 때문에 팰리스가 가장 중점적인 사업으로 인구를 늘리는 정책을 시행하고 있었다.
파이온의 빈민 일부를 받아들였다. 결혼을 원하는 여성들의 모아 병사들과 만남의 자리도 주선했다.
어제가 바로 티모시를 비롯한 20여 쌍이 합동결혼식을 올렸던 날이었다.
센트럴과 여러 마을에도 건물을 세우는 중이다.
건물이 모두 완성되면 그곳에 학교(겸 탁아소)를 열어 6~12살 사이의 아이들을 돌보고 교육시킬 예정이었다.
참고로 전면적인 무상급식을 시행할 예정이었다.
아무튼, 이런 복지정책 때문인지 아나톨리아에 정착하겠다는 사람들(병사들의 가족이나 주요 인사들의 가족)이 줄을 이었다.
그런데 몰려오는 사람들 중에는 원치 않는 자들이 섞여 들어왔다. 그것도 아주 많았다.
"각하께서도 아시다시피 도자기 제작법을 빼내가려는 놈들입니다."
'으드득~'
군사와 보안을 담당한 제이콥이 이를 갈았다.
도자기는 아나톨리아뿐만 아니라 그가 충성을 맹세한 파이온 백작에게도 매우 소중한 기술이었다.
그런 소중한 기술을 감히 날로 먹으려들다니!
"그런 놈들은 노예로 잡아들여 광산에 처박아놔야 합니다."
참고로, 자원이 풍부한 제국의 동부답게 아나톨리아도 철광석과 석탄을 캐는 탄광을 여럿 보유했다.
그리고 팰리스는 결코 휴머니스트가 아니었다.
과거 잭슨 시절에는 운 없는 영지민이 그곳에서 강제로 노동했다. 지금은 잭슨의 부하들이 막장에서 강제로 죄 값을 치르고 있었다.
"당연하지요. 마침 석탄을 캘 일꾼이 부족하답니다."
"아~ 도자기 공장 때문이겠군요?"
"그렇지요. 석탄 소모가 너무 많아졌소. 흐흐흐~ 제이콥 경, 이번 기회에 놈들을 노예로 잡아 일꾼으로 부리시오."
"하하하~ 알겠습니다, 각하! 그럼 저는 노예나 잡으러 나가보겠습니다."
"수고해 주시오, 제이콥 경."
"감사합니다, 총독님. 야~ 토머스. 이제 그만 일어나라."
'흔들흔들~'
"하~암! 회의 끝났어요?"
"그래 인마. 빨리 노예나 잡으러 가자"
"노예요? 히히힛~ 앗싸~아."
집무실을 빠져나가는 제이콥과 토머스는 왠지 모르게 즐거워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잠깐! 뭔가 좀 이상하지 않나?
알다시피 암살자나 정보원은 극한의 훈련으로 단련된 엄청난 요원들이다.
실제로 아나톨리아에 파견된 자들은 매우 특별했다.
도자기가 중요한 만큼이나 정예요원 중에서 정예만을 골라 파견했던 자들이었다.
제이콥이나 토머스가 잡초 뽑듯이 쉽사리 잡아들일 수가 없는 자들이란 소리일 것이다. 그럼에도 제이콥이 심심풀이 땅콩처럼 큰소리쳤다.
"뭐, 극한의 훈련으로 단련된 암살자라고? 정보원이고? 그래서 뭐! 그래서 뭐 어쩌라고!"
"맞아요, 조장님. 그래봐야 걔들은 딱 노예가 될 팔자에요. 지들이 여기에서 어쩌겠어요?"
"하하하~ 맞아. 여긴 어디도 아닌 아나톨리아니깐!"
토머스와 제이콥의 호언장담처럼 이곳은 인구가 무척 적은 아나톨리아였다.
아나톨리아는 아직도 계엄령이 유지되는 지역이었다.
주민들의 수도 적어 누가 아침을 굶으면 그것을 화제 삼아 떠드는 동네였다.
[뭐, 막심이 아침밥을 굶었대? 허허~ 충고를 무시하더니만 쯧쯧쯧~ 아침상은 (전날 저녁의)남자하기에 달렸다고, 마석을 사라고할 때 좀 사서 가지고 다니지. 쯧쯧쯧~]
이런 식이었다.
물론, 낯선 사람이라고 무조건 수상한 자들은 아니었다.
이즈음 괴물기사(토머스)와 천재마법사(피리온)의 가족을 비롯한 병사들의 친인척들이 아나톨리아로 이주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아나톨리아가 워낙 좁고 특수하다보니 대충 서로의 사정을 알고 지냈다.
그래서 낯선 사람이 출현하면 주민들의 심심풀이(?) 표적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저기, 저놈 말이야. 거 뭐더라··· 아 맞다, 스파이! 저 새끼 저거··· 스파이 아닐까?"
"스파이?"
"그래 스파이. 우리 총독님이 그랬잖아. 도끼로 쳐 죽일 놈들이 글쎄 도자기 만드는 법을 훔치러 올 것이라고, 안 그래?"
"아~ 맞다. 그러고 보니 저 새끼가 좀 수상하네?"
"그렇지? 앗싸~아. 가자! 신고하러!"
이렇게 낯선 사람을 발견한 주민은 병사에게 신고한다.
이곳의 병사는 잘 훈련된 정예병이라 자신이 충분히 붙잡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이 사실을 기사에게 알린다.
그럼 대련이란 명목으로 토머스에게 괴롭힘 당하던 기사가 얼씨구나 곧장 출동한다.
17. 발전하는 아나톨리아-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