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9/261 --------------
토머스의 넋두리는 분명 허튼소리였다. 그러나 누구에게는 해결책으로 다가왔다.
"그래, 그거다! 아주 좋은 방법이야!"
"응? 총독, 무슨 좋은 생각이 떠올랐소?"
"네, 남작님. 병사들을 결혼시켜 이곳에 정착시키는 겁니다."
"결혼? 결혼이라···"
"부하들을 결혼시켜 정착시킨다? 흐음~"
드레이크와 제이콥은 결혼정책이 타당한지를 잠시 따져봤다.
일단, 이곳에 파견된 병사들은 3년간 외지에서 근무하는 형식이다.
그 때문에 미혼자 위주로 병사들을 선발했다.
조건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건 좀 뭣하지만, 잘 훈련된 정예이면서도 미혼이라면 결혼 상대로써 병사의 '상태(?)'가 어떨지 능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아나톨리아에 널리고 널린 여성들도 결혼 상대로써 다소 흠이 있었다.
대체로 몬스터나 악당들에게 남편을 잃고 힘겹게 자식을 키우는 미망인이 대다수였다.
티모시가 임신시킨 미셀도 그런 미망인 중의 한사람이었다.
그런 남자와 여자가 결혼하여 이곳에 정착한다.
티모시는 잘 훈련된 병사이므로 초보자를 선발하여 정예병으로 훈련시킬 필요가 없다.
아나톨리아의 부족한 인구문제와 2년 후에 다가올 병사의 수급문제. 그리고 아나톨리아의 심각한 사회문제인 미망인의 문제까지 한꺼번에 해결하는 매우 효율적인 정책일 것이다.
"오호~ 결혼이라, 아주 좋은 정책일 것 같소이다."
드레이크가 찬성하자 제이콥이 이에 맞장구쳤다.
"그렇습니다, 남작님. 아주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적극 찬성합니다. 이제야 말하지만 성격이 참 좋은 놈인데 장가를 못간 경우가 아주 많습니다."
"로건 경의 말이 맞습니다. 이런 말은 뭣하지만 이상하게도 이 세상 여자들은 눈이 어떻게 된 것 같습니다."
기사 로건과 안토니아도 이견이 없었다.
여담이지만 결혼 상대를 탐색하는 눈은 대체로 여자 쪽이 더욱 정확하다.
그리고 남자에게 성격 좋다는 말을 듣는 사람치고 부인과 자식들에게 좋은 평을 듣는 경우가 드물다.
결정적으로 로건과 안토니아는 피닉스 기사단이라는 엘리트임에도 아직까지 미혼이었다.
물론, 당사자들은 자유로운 영혼이고 영원한 로맨스 때문이라고 주장하지만 어쨌든!
"하지만 각하! 결혼은 매우 신성합니다. 강제로 결혼시킨다는 건 좀 아닌 것 같습니다."
40대의 벤자민이 부정적인 의견을 개진했다.
불쌍하게도 그 또한 성공한 자에 속했지만 아직도 미혼이었다.
"맞습니다, 각하! 강제적인 결혼이라니요! 병사들이 크게 반발할 것입니다. 가뜩이나 3년을 외지에서 근무합니다. 그런 병사들을 강제하면···"
'자칫 폭동을 일으킬 수도 있습니다.'라는 뒷말이 생략되었다.
기사 로베르토의 부정적인 의견에 찬성하던 자들이 흠칫거렸다. 그러자 팰리스가 헛기침해 시선을 자신에게 집중시켰다.
"어험~"
"···"
"프랑크 경의 말대로 결혼은 아주 신성하지요. 본 총독도 강제로 결혼시키자는 뜻이 아닙니다."
"강제가··· 아니다? 그렇다면 총독, 어떻게 하겠다는 뜻이지요?"
"혜택을 주는 겁니다. 아나톨리아 주민과 결혼하여 이곳에 정착한다는 조건으로요.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현재 파이온 병사들이 수령하는 임금을 10이라고 평가하면 파이온 주민은 보통 6~8정도를 벌어들인다.
그리고 아나톨리아에 파견된 병사들은 외지근무수당이 더해져 12~13정도를 수령하고 이곳의 주민들은 (최근에 소득이 늘어)9~11정도를 번다.
만일, 군적을 파이온이 아닌 아나톨리아로 변경하고 정착하겠다면 그때부터는 15의 임금을 지급한다.
병사의 입장에서는 소속만 바꿨을 뿐인데 똑같이 일하고도 더욱 많은 임금을 받는다. 여기에 더해 이곳의 주민과 결혼해 정착한다면 20의 임금을 지급하는 혜택을 부여한다.
과거라면 조건이 아무리 좋아도 고개를 내저었을 것이다. 그러나 최근엔 이곳의 생활환경이 크게 달라졌다.
일단, 계엄령 때문인지 범죄가 거의 사라졌다.
오크부족의 침입 이후에는 몬스터의 침입도 크게 줄어들었다. 여기에 더해 도자기 판매로 인해 주민들의 소득이 크게 늘어 아나톨리아가 발전하기 시작했다.
단점으로 인구가 적어 상점이나 술집 같은 근린생활시설이 너무 부족하다는 점이 아쉽지만 이것도 도자기를 수출하고부터 점차 늘어나는 추세였다.
다만, 이런 혜택은 오직 이곳에 파견된 500명에게만 인정된다.
"대략 이런 식으로 생각해 봤는데··· 제이콥 경! 어떨 것 같소?"
"흐음~ 괜찮을 것 같습니다. 방금 말씀하신 혜택이 주어진다면 결혼이나 정착을 고민하던 병사들이 혹할 것입니다."
"저 로베르토도 같은 생각입니다."
기사 대부분이 고개를 끄덕이며 찬성했다. 로건은 한발 더 나갔다.
"그런데 각하! 왜 500명에게만 한정시키는 것입니까? 파이온에 근무하는 병사 중에도 미혼자가 있을 텐데, 그들까지 아나톨리아로 유인하면 더욱 좋지 않겠습니까?"
"로건 경. 그건···"
길었던 설명으로 다소 지쳤던 팰리스. 그가 다시 설명하려고 하자 벤자민이 대신 나섰다.
"총독님, 제가 대신 설명해도 괜찮겠습니까?"
"그러시오, 프랑크 경."
"감사합니다, 각하! 로건 경. 그건 소탐대실이 될 것이오."
"벤자민 마법사님. 작은 것을 탐하다가 큰 것을 놓친다는 말씀입니까?"
"그렇소. 파이온에 남은 병사 중에서 미혼자는 10% 미만이오."
"하지만 그중에서 일부라도 이곳으로 유인하면 우리에게 이득이면 이득이지 손해날 것이 없잖습니까."
"글쎄요. 파이온의 입장이라면 어떨 것 같소? 킹스턴 남작님이나 메이플 자작님이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를 생각해 보셨소?"
킹스턴 남작은 피닉스 기사단장이고 메이플 자작은 파이온 영지를 전체적으로 조율한다.
아나톨리아 또한 파이온 영지에 포함된다. 그러나 팰리스를 총독으로 임명한 것처럼 상당히 독립적인 지위를 가지고 있었다.
두 사람에겐 파이온 영지의 우수한 재원이 외부로 유출되는 셈이었다. 이곳의 파견된 병사 500명 중에서 정착(유출)하는 것도 거슬릴 텐데 파이온의 병사까지 욕심낸다면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킹스던 단장님이나 메이플 자작님이 싫어하시겠군요?"
"그렇지요. 비록 파이온의 깃발 아래지만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소속이 다르고 인재의 유출이 될 것이오. 겉으로야 체면 때문에 뭐라고 항의하지 않겠지요. 그러나 기분이 좋을 리가 있겠소?"
벤자민이 설명을 마치자 팰리스가 배턴을 이어받았다.
"프랑크 경이 문제점을 제대로 지적했소. 그래서 병사들에게 주는 혜택은 500명에 한정할 것으로 결정하겠소."
"알겠습니다, 총독님."
"그럼, 다른 의견은··· 좋은 의견이 있다면 발언하시오."
팰리스가 주위를 둘러보자 피리온이 손을 들었다.
"그래, 리저드 경! 발언하시오."
"감사합니다, 각하! 흠흠~ 방금 제가 생각한 것은 저를 비롯한 여러분들의 가족. 그리고 아나톨리아에 정착하겠다고 결심한 병사들의 가족들을 이곳으로 이주시키는 것입니다."
"오호~"
드레이크가 탄성을 터뜨렸으나 팰리스는 저도 모르게 침음성을 흘렸다.
"가족? 가족이라···"
이름이 팰리스 휘슬러에서 팰리스 파이온으로 바뀌었다.
유전적으로도 브라이트 파이온 백작이 그의 아버지였다. 그러나 팰리스의 마음은 여전히 아르펜 휘슬러와 라이나가 부모였다. 헬레나와 해리스도 여전히 사랑스런 동생이었다.
다소 계산적인 백작과 툭하면 독을 먹이고 팰리스를 견제하려는 이들은 좀처럼 가족으로 다가오지 못했다.
이제야 말하지만 그 때문에 팰리스는 오크의 침입을 막아낸 직후에 그린 포레스트에 전령을 보냈었다.
'아나톨리아가 안정됐으니 이곳에서 나랑 같이 살자. 잘 모시겠다.'
이런 부탁에 아르펜은 '팰리스 공자님'으로 시작하는 답장으로 보냈다.
자신은 파이온의 레인저를 지휘하고 있기 때문에 아나톨리아에 정착할 수가 없다는 내용이었다.
아르펜은 이런 명분을 내세워 팰리스의 부탁을 거절했다.
'이 편지는 진심이 아니다!'
팰리스는 98년의 오랜 경륜을 가지고 있어 문단과 문단 사이에 감춰진 진실을 끄집어냈다.
아르펜과 가족들이 아나톨리아로 이주하면 어떻게 될까?
아르펜과 가족의 존재로 인해 팰리스 파이온의 입지가 흔들릴 것이다. 팰리스의 입장도 곤란해질 것이다.
아르펜은 이런 점을 염려해서 팰리스의 부탁을 거절했던 것이다.
"가족이라, 가족···"
"아차~"
팰리스의 안색이 살짝 어두워졌고 피리온은 괜한 말을 꺼냈다고 후회했다.
주요 인사들도 팰리스의 마음을 알아차리고 침울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그런데 속없는 토머스가 말썽을 부렸다.
"와우~ 좋은 생각입니다. 나도 찬성! 아빠랑 엄마가 보고 싶어요."
속없는 말에 팰리스가 쓴웃음을 지었다. 피리온은 얼굴을 찌푸렸다. 직속상관인 제이콥은 빠르게 미간을 좁혔다.
"닥쳐, 토머스! 헛소리하려면 잠이나 자라."
"응? 제이콥 형님 아니, 조장님. 갑자기 왜 화를 내고 그래요? 왜 나만 미워하냐고요."
"정말 몰라서 이러는 것이냐?"
"네! 정말 몰라요. 도대체 왜 그러는 건데요? 아줌마들처럼 오늘이 '그날'이에요?"
"이이··· 이런 또ㄹ···"
'또라이 새끼'라는 욕이 완성되기 전에 재빨리 팰리스가 끼어들었다.
"그만! 모두 그만하시오."
"죄송합니다, 각하!"
"쳇~ 나도 죄송해요."
"어험~ 분명 리저드 경과 헤리클 경의 말이 맞소."
"하, 하지만···"
"아니오, 제이콥 경. 지금은 한 개인의 감정을 따질 때가 아니오. 아나톨리아에 정착할 병사들이나 이곳에 계신 분들의 가족을 불러들이는 건 분명 아주 좋은 제안이었소."
팰리스가 논란의 종지부를 찍었다.
그런데 팰리스가 결정했어도 가족을 아나톨리아에 이주시키는 정책은 결코 만만치 않았다.
"그런데 총독. 이곳으로 이주하려고 하겠소? 내 경우도 그렇지만 웬만해서는 생활터전을 옮기려고 하지 않을 것이오."
드레이크의 말이 맞았다.
병사들이야 어차피 독립해야할 젊은 남자였다. 그래서 아나톨리아 정착을 쉽게 결정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병사의 가족은 사정이 달랐다. 파이온에서도 잘 살고 있는데 굳이 이곳으로 생활터전을 옮길 이유가 없었다.
"그렇다면 남작님. 무슨 특별한 혜택이 필요하겠군요? 그래야 이곳으로 이주하겠지요."
"혜택 말이오? 어떤 혜택을 생각하고 있소?"
당사자인 드레이크가 관심을 보였다.
솔직히 이 자리에 참석한 자들은 파이온에서도 상위권에 속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런 이들의 가족들을 만족시킬 만한 혜택. 해답이 금방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팰리스가 역으로 물었다.
"글쎄요. 어떤 혜택을 줘야 가족들이 이곳으로 이주할까요? 기탄없이 발언해 주시지요."
"흐음~ 글쎄올시다."
"그건 저도 잘···"
"···"
해답이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회의실이 다시 고요해졌다.
팰리스는 전생시절의 경험을 토대로 어떤 혜택이 가장 좋을지를 고민했다.
'으음~ 한국 시절이었다면 이 문제를 어떻게 풀었을까? 잠깐, 현재의 상황을 한국으로 비유하면 파이온은 70년대 서울의 강북인가? 그럼, 아나톨리아는 강남이 되는 셈이고."
칠성이 죽을 무렵 강남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비싼 땅값을 자랑했다. 모든 것이 고급인 지역이었다. 모두들 강남에서 살길 원했다.
'맞아. 한국의 부유층이 대부분 강남에서 살았어. 그땐 왜 그랬을까?'
일단, 70년대의 개발붐으로 인해 소득이 높아졌다. 그리고 국가적인 시책으로 명문 고등학교들이 속속 강남으로 이전했다.
'맞아! 불타는 교육열도 한몫했어. 처음엔 신도시라 환경이 열악했지만 결국엔 8학군으로 아주 유명했잖아?'
그랬다. 알다시피 대한민국은 조선시대부터 실력을 중시하는 사회로 변했다.
부모가 아무리 권력자라도 과거라는 시험에 통과해야만 관직(공무원)에 오를 수가 있었다.
예외적으로 문음(問蔭)과 천거(薦擧), 취재가 존재했지만 고위관직은 과거 합격자나 그에 비견되는 학자만 가능했다.
그래야만 제대로 된 양반으로 행세를 할 수 있었다.
드라마에서 보면 권력자가 돈을 받고 관직을 팔거나 자신의 가족을 척척 관리로 임용하는데 이런 부패 또한 과거시험 합격자에게만 해당했다.
즉, 탐관오리도 과거에 합격한 실력자란 뜻이다.
이렇듯, 조선시대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현대의 대한민국보다 더욱 강력한 실력위주의 사회였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때문에 한민족의 부모들은 전통적으로 자식교육에 열을 올렸다.
사람은 많고 일자리를 한정됐으니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인데 한국시절에도 강남하면 8학군이 떠오를 만큼 교육열이 대단했다.
'그래, 아카데미 비슷한 시설을 만들자!'
팰리스가 마침내 해답을 찾아냈다.
"잠시 본 총독을 주목해주시오."
"오~ 무슨 좋은 생각이 떠올랐소?"
"네, 남작님. 이곳 아나톨리아에 아카데미 비슷한 학교라는 교육시설을 만드는 겁니다. 그곳에서 아나톨리아에 사는 6~12살까지의 모든 어린이에게 학문과 검술, 마법을 가르칠 생각인데···"
'이 정책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라는 뒷말이 생략되었다.
"학교?"
"아카데미? 아카데미는 황도에 있는 건데··· 그래도 됩니까?"
벤자민의 염려대로 아카데미는 귀족의 자제와 (소수의)부유한 상인의 자제들을 교육시키는 황도의 교육기관이었다.
이런 교육시설은 많은 자금을 필요로 하기에 파이온에도 없었다.
일반적인 영주들은 가정교사를 초빙해 학문을 배우게 하고 검술이나 마법은 영지 소속의 기사나 마법사에게 가르치게 한다.
영주의 자식이 아니라면 부모에게 배울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런 교육시설을 척박한 아나톨리아에 만들겠다고 제안했다.
"아나톨리아에 못 만들 이유는 없겠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팰리스의 호언에 드레이크가 기뻐했다.
"허허허~ 그렇지요. 이곳에다 못 만들 이유는 없겠지요. 우린 돈도 아주 많으니까요."
드레이크의 우스갯소리처럼 아나톨리아는 돈이 아주 많았다.
매년 많은 자금과 상당한 유지비를 필요로하는 학교도 지금처럼 별다른 고민 없이 결정할 정도였다.
"그렇다면 만들죠? 학교란 거!"
"자식을 가진 부모들이 아주 좋아할 것입니다."
"솔직히 기대됩니다."
학교에 대한 반응이 꽤 좋았다.
팰리스는 자신이 제안한 안건을 정책으로 결정하기로 했다.
"흠흠~ 그렇다면 결정하겠소. 아나톨리아는 학교라는 교육시설을 만들어 이곳의 모든 아이들을 교육시킬 것이오. 그리고···"
팰리스가 잠시 말을 끊고 빙그레 미소를 지어 보였다.
"여러분~ 이제부터 아나톨리아를 더욱 발전시키고 성장시킵시다."
"충! 모든 일은 총독님의 뜻대로 처리될 것입니다."
17. 발전하는 아나톨리아- 1